그 많던 믿음은 누가 다 만들었을까? (루시앨),
사기꾼과 폭로자의 구도 (하늘빛마야) 에서 트랙백
사르트르의 설명에 의하면 지식인은 원래는 전문가 들 중에서 나타난 자로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속에서 태동한 자들이다. 전문가들 중,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평등이나 자유가 사실은 또다른 지배의 수단으로서 사용된다는 것을 느낀 이들이 보편성의 진정한 실천을 위해서 지배계층의 하수인이 되는것을 거부한 사람이 바로 지식인이다. (루시엘)
이 이야기를 듣고 딱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코웰티John G. Cawelti가 『
육혈포의 신비』에서 설명했던 서부극의 전형적 구도다.
[서부극의 세계는] 전형적으로 두 지역의 세계로 나누어지는데(산지와 읍내, 산지와 목장, 목장과 가정), 그 중 한 지역에는 거칠고 독립적인 악한들이 살고, 또 한 지역에는 보통 덜 유능하지만 선량한 사람들이 산다. … 서부소설의 주인공은 항상 외부집단 지역에서 사용하는 것 같은 재주를 지니고 있지만, 무슨 까닭인지 읍내집단의 가치체계를 보호하기 위해 그 재주를 부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결심한다. 읍민을 지켜주는 데 성공을 하고 나면 잭 쉐퍼Jack Schaefer의 『쉐인』에서처럼 집단내의 지역을 말을 타고 떠나거나, 오웬 위스터Owen Wister의 『버지니아 사람들』에서처럼 총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무척 유사하게 들리지 않는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악당이나 갖고 있던 싸움 기술을 구사하는 총잡이. '우리 편 전문가'라는 인식이 '우리 편 총잡이'같은 진부하지만 대중들이 오랫동안 사랑해온 플롯의 한 변형이라면, '우리 편 전문가'에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의
적어도 일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짜 중요한 것은, 왜 이런 현상이 2000년대 한국에서 자주 발생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인것 같다. 이것은 사실 예전 한미연합사 관련 논쟁에서 sonnet님의 중요 문제의식 - 즉 왜 진짜 전문가 집단의 말이 무시되고 있는가 - 으로 볼수도 있고, 아니면 좀더 통시적으로 왜 인류사에서 음모론과 잘못된 믿음에 대한 boom-burst cycle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가란 질문을 던질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최근(5~10년)의 한국사회로 한정시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인류사에서 언제나 집단적 믿음이 존재해 온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지금처럼 정보간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정책결정집단과 피결정집단의 네트워크가 맞닿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가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 (하나는 학계에서(황우석), 하나는 군사-안보 부문에서(연합사), 하나는 경제에서(미네르바))에서 그러한 잘못된 믿음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향후 한국의 좁게는 정책결정, 크게 봐서 거버넌스(…) 전체의 의사결정에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루시앨)
루시앨 씨께서 잘 요약해 주신 대로
정부-전문가-대중 간의 관계 문제는 내 블로그에서 오래전부터 문제로 삼고 있던 주제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3자 관계 중에서 정부-대중 축만 떼어내서 보려는 시각도 있다.
그러므로 미네르바 신드롬의 실질적인 문제는 "왜 미네르바는 우리편이 되었는가"가 아니라 "왜 정부는 국민의 적이 되어버렸는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있어 책임 소재는 전적으로 현 정권에게 있습니다. 정부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만큼 중요한 것이 없으니 여하를 막론하고 믿음을 얻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늘빛마야)
그런데
'왜 정부는 국민의 적이 되어 버렸는가' 혹은 내가 선호하는 조금 다른 표현으로 바꿔 보자면
'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에 대해 말하자면, 이 원인을 현 정부에서 찾아서는 결코 만족스러운 답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보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부연해 두자면 이 점에 대한 내 문제의식은 2001년 경에 나이Joseph Nye의 책을 읽고 형성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으로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호오와는 무관하다.
왜 그렇게 말하느냐 하면 자국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폭락하는 문제는 사실 20세기 후반 들어 전세계 정치의 공통된 골칫거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1964년만 해도 미국 국민의 3/4이 연방 정부가 하는 일에 대체로 옳다는 믿음을 표명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단지 1/4만이 그런 믿음을 갖고 있다. 주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그보다 조금 높아서 35% 수준이며 때때로 여론조사에 따라 그보다 더 떨어지기도 한다. 1995년의 한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신뢰도는 연방정부 15%, 주정부 23%, 지방정부 31%였다. 1997년의 조사에서는 연방정부 22%, 주정부 32%, 지방정부 38%로 약간 높아졌지만 30년 전에 비하면 여전히 훨씬 낮은 수준이다. …
정부만 그런 게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 많은 주요 기관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두 동강이 났다. 대학은 61%에서 30%로, 대기업은 55%에서 29%로, 의료계는 73%에서 29%로, 언론계는 29%에서 14%로 신뢰도가 떨어졌다. 1996년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30%가 언론계 지도자들 등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으며 의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캐나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노르웨이, 스웨덴, 아일랜드에서도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추락했다. 수십 년간 정치에 대한 불신이 컸던 일본에서는 최근 그 불신이 관료층으로까지 번졌다.
Nye, Joseph S., Jr. et al.(eds.),
Why People Don't Trust Government, Harvard University Press, 1997
(박준원 역, 『
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 굿인포메이션, 2001, pp.21-22)
우선 첫번째 문제는 이미 언급한 정부 신뢰도의 폭락 문제다. 그다음 이 문제를 더욱 골치아프게 하는 것은 대학, 대기업, 의료계, 언론계 등 정부 이외의 사회조직들에 대한 신뢰도 같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즉
이 문제를 단순히 정부 자신의 잘못으로만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우리도 우리 주위를 떠올려보면, 비슷한 현상을 많이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20년 전보다 공교육에 대한 사회의 신뢰가 올라갔는가? 언론에 대한 냉소가 줄어들었는가? 의료계에 대한 믿음이 커졌는가? 공무원은 과거보다 존경받는가? 어지간한 분야에서는 대중의 신뢰가 다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 더 우울한 결과도 있다.
사실 지난 30년간 정부에 대한 신뢰 저하와 더불어 그렇게까지 가파르진 않았지만 국민 상호간의 신뢰도 하락했다. 워싱턴 포스트·카이저 가족재단·하버드 대학교 공동설문조사에서 사람들 대부분은 신뢰할 수 있는지 혹은 사람들 대부분은 신뢰할 수 있는지 혹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조심스럽지 않은지 질문했을 때, “다른 사람을 대부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5%였다. 이 수치는 1964년(54%가 “다른 사람들 대부분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과 1968년(56%)에 비해 약 20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Nye et al.(eds.), 같은 책, p.321
즉 시민이 다른 시민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 자체가 20%쯤 떨어진 것이다. '결국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식의 사적 서바이벌론이 인기를 끄는 것은 이런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책의 감수자는 번역판 서문에서 국민의 정부를 표방한 김대중 정부가 왜 이렇게나 국민의 불신을 받게 되었는가 하고 한탄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나오자 마자 사서 보았는데, 과연 한국도 이런 장기추세에 포함되는지 직접 관찰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8년이 지나고 두 명의 대통령이 그 자리를 이어받아 통치 중이지만, 다들 알다시피 정부 전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혐오는 김대중 대통령 때보다 점점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진 적이 없었다. 이명박 후보가 그렇게 쉽게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노무현 대통령 말기에 정치에 대한 국민적 환멸이 엄청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이명박 정부가 실정으로 이 추세를 어느 정도 가속화시키거나 대규모 시위의 방아쇠를 당겼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이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무시한다면, 다음, 그 다음 대통령을 뽑아도 기본적으로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현상을 보면 대중이 정부(및 각종 사회제도, 전문직업군, 동료 시민 등도 마찬가지)에 대해 점차 점수가 짜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수준은 따라 내려오지 않으면서 모든 분야에 대해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상당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광범위한 배경 불만의 존재는 적당한 초점이 주어지면 만병통치약 혹은 미륵을 찾아 모여드는 심리적 배경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