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불균형이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유례없이 커진 반면, 미국 외 국가, 특히 중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가 대폭으로 증가해 지역별 불균형이 심화된 현상을 말한다.
GDP 대비 미국의 경상적자: 15년간의 증가 후 최근 2년간 꺾임새를 보이고 있다.
국제무역에 있어
누군가의 적자는 다른 누군가의 흑자로 모두 합치면 합계는 0이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이 현상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하의 설명에는 국민소득계정 항등식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덧셈뺄셈만 할 줄 알면 되는 간단한 것이지만, 글의 난삽함을 피하기 위해
별도의 글로 분리해 두겠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흥미롭게 느낀 점은 한국 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은
특정한 구도로 이해하는 관점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 미국은 거대한 경상수지 적자 하에서 분수 이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 중국이나 한국 같은 대규모 대미무역 흑자국은 외환보유고로 미국 국채를 쌓아놓아야 하다 보니 좋든 싫든 미국에 뼈빠지게 일해 벌어들인 돈을 저리에 빌려주어 이러한 미국의 과소비를 떠받치고 있는 중이다.
- 일이 이렇게 굴러가게 된 것은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고 있기 때문에 누리는 특권이다.
그런데 이런 시각은 현상에 유일한 설명이 아니거니와, 사실 이에 맞서는 그 이상으로 유력한 설명이 존재한다. 그것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다.
- 수출주도 경제성장을 노리는 개발도상국들이 인위적으로 낮은 환율을 고수하며 거액의 경상수지 흑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 그들이 환율방어 및 외환위기 대비용으로 거액의 외환보유고를 건설하다보니, 자금이 미국으로 밀려들어왔고, 이것이 미국 경제를 분수 이상으로 흥청망청하게 부추겼다.
- 일이 이렇게 굴러가게 된 것은 세계 각국이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인정하고 보유하기 위해 안달이기 때문이다.
당혹스럽게 들리는가? 하지만 이런 시각은 학계 주류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Dooley, Folkerts-Landau, Garber, 그리고 미국의 중앙은행장인 Ben Bernanke도 그런 입장이다.
[1]Bernanke는 미국의 경상적자가 주로 미국 내부 요인에서 기인한다는 해석에 회의적이다.
중국 탓이라니까... 그 대표적인 설 중 하나인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가 경상적자를 유발한다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 설에 대해 논평하면서, 그는 미국 재정이 흑자이고 당분간 계속 흑자일 것으로 예상되던 1996~2000년 사이에도 경상적자는 3천억 달러나 늘어났으며, 독일과 일본도 GDP 대비로 미국 못지 않은 재정적자가 있지만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낼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의 거대한 경상수지 적자와 개도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동전의 양면, 즉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상관관계가 특정한 방향의 인과관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위 두 설명은 인과관계의 방향이 반대이기 때문에 같은 정보를 갖고서도 판이하게 다른 결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어느 쪽 인과관계가 맞는지는 국제수지 통계만 봐서는 알 수가 없고, 보다 더 넓은 맥락을 살피며 증거를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자, 이제 이 글에서 소개할 책은 그러한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물건이다.
Eichengreen, Barry.,
Global Imbalances and the Lessons of Bretton Woods, MIT Press, 2006
(박복영 역, 『
글로벌 불균형: 세계 경제 위기와 브레튼우즈의 교훈』, 미지북스, 2008),
15,000원, A5 하드커버, 259페이지. 평가 ★★★★
이야기는 우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글로벌 불균형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데서 시작한다.
40여년 전에도 국제체제에는 중심부와 주변부가 있었다. 중심부는 대외 준비금으로 사용되는 통화를 발행할 특권을 갖고 분에 넘치는 생활을 했으며, 중심부를 따라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주변부는 저평가된 환율을 갖고 수출주도 성장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는 지금처럼 중심부 국가가 자국 통화 단위로 발행한 저수익 대외 준비금의 대규모 축적이었다. 1960년대 중심부는 미국이었고, 주변부는 유럽과 일본이었다. 거의 반 세기가 흘러 유럽과 일본이 졸업하고 나간 추격자의 자리에 아시아의 개도국들이 들어와 똑같은 전략을 다시 한번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의 대표자는 앞서 잠깐 언급했었던 Dooley, Folkerts-Landau, Garber인데, 이들은 이것을 부활한 브레튼우즈 체제(Revived Bretton Woods System)라고 부른다.
이들의 전략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주변부의 추격자들은 중심부 국가에 대규모 수출을 하여 흑자를 만든다. 이때 정상적이라면 수출 대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달러의 공급이 늘어나 달러가치는 떨어지고 추격국가의 화폐가치가 올라 자연스럽게 수출은 가격경쟁력을 잃고 줄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수출을 계속할 심산인 추격국가의 중앙은행은 외환시장에 개입해 넘치는 달러를 사들여, 자국 통화가 오르는 것을 막는다. 이들의 외환보유고가 급증하는 것은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의 당연한 귀결"이다. 이렇게 하면 단기적으로는 소득과 생활수준을 억제해야 하지만, 높은 성장률을 통해 미래에 훨씬 더 높은 생활수준을 가질 수 있다면 좋은 전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중심지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달러가치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데, 이것은 추격자들이 미국 시장 점유율을 잃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격자들 중 상당수는 1990년대 일련의 외환위기에서 쓴 맛을 본 다음, "Never again!"을 곰씹으면서 외환보유고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며, 저수익 미국 국채를 쌓아놓는데 따른 이자손실 같은 것은 IMF의 비정한 구조조정 철퇴를 맞는 것에 비하면 값싼 보험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경쟁적으로 외환보유고를 늘린 결과는 황당하게도 개발도상국들이 집단적으로 흑자를 내어 선진국에 돈을 빌려주는 꼴이 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팽창적 통화/재정 정책을 쓰고 달러표시 국채를 찍어내도 중국과 다른 개도국들이 공급을 증가시켜 짝을 맞추어 주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렵게 허리띠를 졸라매어 공공지출을 억제하고자 하는 압박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주머니끈이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부활한 브레튼우즈 체제'론자들은 중심부의 이익과 주변부의 이익이 일치하고 중국 등이 주변부를 졸업하려면 아직 멀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한참 동안은 이렇게 굴러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저자 아이켄그린은 이 지점에서부터 '부활한 브레튼우즈 체제'론자들과 결별의 길을 걷는다.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40년 전과 지금은 비슷한 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아서, 그들이 생각하듯이 이 체제가 오래 지속될 거라는 낙관론은 근거가 허약하다는 것이다. 그는 여섯 가지 이유를 든다.
- 골드풀 카르텔에 참여했던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중국과 개도국들은 입장이 다양해 담합을 성사시킬 가능성이 낮다.
- 브레튼우즈 시절과 달리 유로라는 달러에 대한 대안이 있다.
- 달러 가치를 안정시킬 미국의 결의가 허약하다. 옛날엔 금태환이라도 있었지만...
- 자본자유화 때문에 중앙은행들의 담합이 더욱 어려워졌다.
- 금융자유화 때문에 환율을 낮추고 국내저축을 올렸을 때, 수출이 가능한 교역재 분야에 투자되는 대신 자산 버블이 생길 가능성이 늘어났다.
- 아시아 정책담당자들도 역사를 안다.
여기서 문제는 브레튼우즈 시절과 마찬가지로 고전적인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이다. 즉 미국의 국제 수지 적자와 달러 유출은 기본적으로 미국 이외 지역의 경제 성장의 결과 증가하는 유동성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 밖의 달러 잔고 누적은 달러의 금 태환성(=가치 유지)을 위협함으로서 체제의 기초를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체로는 현 시스템을 지탱하는 것이 모두의 이익이지만, 어차피 무너질 것이라면 무너지기(달러가 폭락하기) 전에 내 외환보유고를 달러에서 다른 것으로 바꿔놓는 게 개별 국가의 이익인 셈이다. 배신자를 철저히 응징하는 강철의 규율이 없이는 이런 상황을 오래 끌고 나가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개괄적인 설명에 이어, 사례연구로서, 2장에서는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글로벌 불균형을 관리하려고 노력했던 미국-유럽 중앙은행의 카르텔 Gold Pool의 탄생과 고난, 그리고 붕괴를 그리며, 3장에서는 저평가된 고정환율을 갖고 막대한 무역흑자를 쌓아올렸던 일본이, 고정환율에서 이탈해 나가는 과정을 분석한다.
개인적으로
2장은 이 책의 백미라고 평가한다. 어지간한 다른 책에서 보기 힘든 분량을 할애해 골드풀 체제의 흥망성쇠와 그 원인을 설명해 놓고 있다. 오직 이 부분만 잘라서 출판했다 하더라도 나는 이 책을 샀을 것이다.
반면 3장은 일본의 경험을 통해 현재의 중국이 달러 페그에서 벗어날 가능성과 경로를 탐색해 보는 것이 목적인데, 기술적인 분석에도 불구하고 그 정책적 함의는 2장만큼 명징하지는 않다. 하지만 정부가 신중한 이행과 좋은 타이밍을 선택한다면 경제성장을 죽이지 않고도 달러 페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역사적 사례를 제시함으로서, Dooley 등이 주장하듯이 중국이 경제성장에 목을 매달고 있는 관계로 충분한 성장이 이루어질 때까지 현재의 글로벌 불균형을 반드시 유지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결론 격인 4장에서 아이켄그린은 달러의 미래에 대해 다시 한번 도발적인 지적 자극을 제공한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어느 시점이든 금융의 세계에는 하나의 지배적 통화만 존재하는 경향"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달러가 전체 외환준비금의 85%를 차지했던 20세기 후반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기억이 투영된 것일 뿐이며, 역사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차대전 직전, 아직 대영제국의 위세가 한창이던 시절에도 스털링은 전체 외환 보유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기축통화가 강력한 네트워크 외부성을 갖는다는 추정도 근거가 빈약하다고 지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외환 준비금을 위한 통화로서 유로는 달러에 대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아울러 깊은 유동성 등 중요한 자질이 필요하긴 하지만 외환준비금 통화는 반드시 국제사회의 지배적인 거래 통화일 필요는 없다고 덧붙인다.
끝으로 조정의 이니셔티브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미국으로서는 꼭 필요하고도 불가피한 조정에 참여할 인센티브가 별로 없다. 그간 분에 넘치게 좋은 생활을 해왔는데 왜 그런단 말인가? 조정은 수출 주도 성장이 효용체감의 지점에 도달했다는 판단을 내린 후 아시아가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200쪽 남짓한 짧은 분량에 평이한 서술(3장에 기술적인 묘사가 좀 있는데 대충 뛰어넘어도 결론을 이해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로 당면한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중기적으로 국제경제체제가 직면한 중요한 도전에 대한 역사적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삼가 추천할만하다.
[1] Dooley, M. P., Folkerts-Landau, D., and Garber, P., "An Essay on the Revived Bretton Woods System," NBER working paper
w9971.pdf, September 2003.;
Bernanke, Ben S.,
The Global Saving Glut and the U.S. Current Account Deficit, Speech at Homer Jones Lecture, St. Louis, Missouri. 버냉키는 미국의 무역수지를 '개의 꼬리'라고 부른다. 다른 원인에 의해 표면적으로 나타난다는 현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