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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소련군 의료(잠정판)
지속할 수 없는 노력 (루스) 에서 트랙백

요즘 바빠서 글을 쓸 틈이 잘 나지 않는군요. 다음은 예전에 쓰다가 시간이 없어서 내버려 둔 것인데, 끝없이 내버려두게 되는 것 같아서 대충 번역된 부분만 정리해서 올리는 것입니다. 저는 의학이나 군 의무체제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번역이 이상할 수 있습니다. 오류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언제든지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볼드체 강조는 번역자가 추가한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했던 소련 제40군의 의무지원에 대한 개괄로 글란츠 대령의 논평으로부터 시작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0년간 [아프간 파병] 소련군에 복무한 사람은 총 64만 2천여 명인데, 아프간 전쟁에서 소련군의 사망자와 실종자는 1만 5천여 명이다. 이들의 사인은 각 가정에 구체적으로 통보되지도 않았다. 또한 469,68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는데, 최종적으로 각자 고향으로 복귀한 전체 병력의 73%에 육박하는 것이다. 더욱 경악할 만한 것은 질병을 앓은 환자의 숫자(415,932)로서, 이중 장티푸스(Typhoid Fever) 환자가 31,080명, 간염(Hepatitis) 환자가 115,308명이었다. 이 숫자는 단순히 많고 적음을 떠나서 소련군의 위생과 그들 병영생활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숫자는 현대적인 군대와 현대적인 약이 있는 곳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복귀한 병사와 소련 국민들 사회에 제기된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1)


이어서 소련군 자신의 평가입니다. 이 문건은 자체평가이기 때문에 상황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뒤의 (이 책을 번역했던) 미군의 논평은 이와 대조적으로 매우 신랄합니다.

의무지원: Yu. G. Avdeev 대령 (*2)

아프가니스탄에 진입함에 따라, 소련파견군 장병들의 건강과 생명은 커다란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는 그들이 전투에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험준한 지형, 극단적인 기후, 위생상태, 역학 상황에 노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발 1,500-1,800m 이상의 고도에 병사들이 오래 노출됨에 따라 그들은 고산병에 직면하게 되었다. 여름에 주간 기온은 그늘에서도 45-50℃에 이르렀다가 밤이 되면 떨어졌다. 겨울에는 사람들이 덥고 건조한 곳에서 춥고 얼어붙는 곳을 오가야 했다.
이에 더해 인력과 물자를 이러한 지형에서 이동시키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도로망이 발달되지 않아 수송과 처리 능력을 제한했다. 계곡과 협곡은 떨어져 있어 서로 만나지 않았으며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도 없어, 의무지원인력과 장비가 이동하는 것을 심각하게 제한했다. 산과 골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긴 비탈을 따라 좁은 길이 굽이쳐 나 있는데, 이는 차륜형 의무수송차량이 시속 10-15km 이상으로 이동할 수 없게 만들었다. 험준한 지형, 햇볕에 말라비틀어진 대지의 단조로운 풍경, 엄청난 흙먼지, 낮 시간 동안 끊임없이 불어대는 (‘아프간’이란 별명의) 바람과 모래폭풍에 따른 제한된 시야는 의료지원, 그리고 종종 부상자 수색의 효율을 떨어뜨렸다. 이러한 지리나 고도의 요소들은 응급처치나 의료 후송에 타격을 주었고, 병사들의 눈과 폐를 해쳤다.
또한 독사가 대량으로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부단한 경계가 필요했고, 대대 의무반까지 해독제 공급을 보장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는 전반적인 전구 환경이 묘사되는데, 그 중에 아프간이란 나라 특성상 앰뷸런스를 사용하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지적됩니다. 뒤에서 이 문제는 계속 다루어집니다.


이 나라의 위생수준과 역학적 상황은 심각했으며, 주민 전반에 걸쳐 심각한 의학적 문제의 만연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는 심각한 장 질환들, 티푸스, 파라티푸스, 바이러스성 간염, 결핵, 나병, 말라리아, 수두 등이 포함된다. 이는 소련 장병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들이 야전에서 생활하거나 신체 저항력이 약화되었을 때 특히 그랬다.
한 지역에 병력을 집중시키게 되자 전염병이 크게 창궐했다. 1986년 가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준비를 하던 첫 번째 소련군 6개 연대가 이 나라 각지에서 철수해 임시로 한 곳에 집결하였다. 그러자 바이러스성 간염이 창궐해 6개 연대 전체를 휩쓸었다. 환자의 수가 폭증했고, 결과적으로 전염병 격리병동으로 쓰이던 의료시설에 평소의 서너 배의 부하가 걸렸다. 심지어는 전문 야전병원(신경과, 안과, 이비인후과)들도 전염병 담당으로 변경되었다. 오직 외과, 마취과, 집중치료병동만이 이런 업무변경을 피할 수 있었다.

글란츠 대령이 지적한 것처럼 전염병 문제가 지독했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런 데서 미군과 소련군의 차이가 드러난다고 할까요. 아프간에 가서 미군도 꽤나 고생을 하고 있지만 적어도 이런 꼴은 보이고 있지 않지요.


의무지원은 아프가니스탄의 열악한 의료체제로 인해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의료 인력의 심각한 부족, 낮은 전문 훈련 수준, 불충분한 의약품과 의료시설이 의무지원을 방해했다. 가령 예를 들자면 카불의 아프간 중앙병원에서 2~3개월 간 소련군 위생병과 동등한 수준의 훈련을 받은 아프간인은 장교로 임관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이 나라의 개업의들에는 수의사로 훈련받은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파라 주에 있는 신단드 병원의 원장은 수의사로 훈련받은 고참 대위였다. 따라서 소련 의무병과, 특히 독립 의무대대와 야전병원의 전문가들은 현지 의료 시설에 의약품, 소련제 물자, 도구를 제공하는 한편, 실습 서비스, 기술적 지원, 심전도, X레이 검사 등을 제공하고 현지 주민들에게 자문과 도움을 주어야 했다.
아프간 최고사령부의 간청에 따라 아프간 군 인력과 그 가족들은 군 야전병원과 제40군의 독립 의무대대들에서 검사와 치료를 받았다. 할 일의 범위와 양은 늘어만 가는 상황에서, 이는 소련파견군의 의무병과에 추가적인 부담을 지웠다. 이 또한 진료의 질을 떨어뜨렸다.

현지 의료수준이 지독히도 나빴기 때문에, 소련군은 현지 의료시설을 활용할 수 있기는 커녕, 자신들의 부족한 자원을 현지 동맹군들에게 나눠 줘야 할 판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소련이 서유럽을 쳐들어갈 경우 기대하던 것과는 천양지차였지요.


사단 의무대대와 다목적 군 야전병원이 병자와 부상자들에게 수준 높은 군 의학을 제공하기 위해 배치되었다. 이들은 주요 병력 집결지에 배치되는 한편, 전문치료시설들은 카불에 집중되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도합 일곱 군데의 주요 의료시설이 있었다. 우선 카불에는 400침상 규모의 군 병원과 500침상 규모의 전염병 군 병원이 있었다. 이는 둘 다 중앙병원이라고 불리었으며 전문적인 치료를 제공하도록 지정되어 있었다. 이들 시설은 인공 신장을 갖춘 혈액 투석반을 보유하고 있었다. 더 심각하게 아픈 환자들은 An-26M "Savior" 고정익 프로펠러 경항공기와 Mi-8MB "Bisector" 의료 후송 헬리콥터를 이용해 아프가니스탄 각지로부터 이들 중앙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또한 카불에는 군 병원 한 곳과 군 구강학(stomatology) 병원 한 곳이 있었으며, 수혈센터(이들은 또한 신단드의 군 다목적 야전병원에 분소를 가지고 있었음), 병리학/해부학 실험실, 법의학 실험실도 있었다. 카불은 소련군 전사자들을 장례지내기 위해 고국으로 후송하는 (“검은 튤립”이라는 별칭을 가진) An-12 항공기가 출발하는 장소기도 했다. 카불에는 위생과 전염병 통제를 실시하고 의료 정찰을 수행하는 위생-전염병 통제 분견대도 있었다. 그리고 약품과 의료 보급품을 담당하는 의무보급창과 병원과 치료시설들을 지원하는 중앙 약제국이 있었다.

두 번째로 큰 의료시설 집결지는 파라 주의 신단드에 있었는데, 이곳은 시멘트 활주로를 갖춘 잘 만들어진 비행장에 붙어 있었다. 덕분에 전력의 재보급을 방해받지 않았으며, 병자와 부상병들을 카불이나 소련의 병원으로 후송할 수 있었다. 신단드에는 350침상 규모의 군 다목적 병원이 있었다. 독립 의무대대 하나와 위생-전염병 분견대(SEO), 약국, 이동 구강학 수술팀이 신단드에 주재하고 있었다.

칸다하르에는 의무 중대 하나가 소련군 여단을 지원하기 위해 175침상 규모의 군 종합병원을 운영하였다.

쿤두즈 주의 의무지원은 180침상 규모의 전염병 군 야전병원에 기반하고 있었다. 독립 의무대대 하나가 주둔지의 환자들을 위한 치료를 제공했다. 또한 쿤두즈에는 이동 구강학 수술팀, 이동 X선 반, 위생-전염병 분견대가 각각 하나씩 있었다.

풀이쿰리에는 200침상 규모의 군 종합 야전병원과 의약품 저장소가 있었다.

바그람에는 400침상 규모의 군 전염병 야전병원과 독립 의무대대가 있었다. 이곳에는 또한 전염병이 유행할 경우 1,000침상을 수용할 수 있는 회복 센터도 있었다. 이곳은 카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의료시설이었다.

잘랄라바드에는 200침상 규모의 군 전염병 야전병원이 있었는데, 독립 차량화소총여단의 의무중대에 의해 운영되었다.

약 10만명 정도의 주둔군 규모에 비춰 볼 때 이 규모가 적정한지 저는 전문지식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실제 운용실태를 모른다면, 단순히 병상수만으로 야전병원을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겠지요. 게다가 양적 기준 달성에 특히 예민한 소련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어쨌든 전반적으로 전염병 관련 시설의 비중이 높다는 느낌이 들긴 합니다. 여기 등장하는 의무부대들은 군급 제대의 정규 편제보다 상당히 많은데 실전 투입에 따라, 상당수가 추가로 배속된 것으로 보입니다.


대조국전쟁 때와 비교하면 병사를 후송하는데 걸린 시간은 짧아졌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2차대전 중에는 61.7%의 부상병이 부상당한 후 6시간 이내에 사단 진료소(DMP)나 이동야전외과병원(KhPPG)까지 후송될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90%의 부상병이 그 시간 이내에 후송되었다. 부상당한 후 후송되는데 24시간이 넘게 걸린 부상병은 단 2%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보통 전투 상황의 어려움에 따른 것이었다.

동무들은 대조국전쟁때보다 훨씬 좋은 서비스를 받고 있소!


의무병들은 부상자를 운반하고 모으기 위해 표준 의무 들것을 사용하였다. 환자와 부상자들은 BTR, BMP 또는 LUAZ-967 차륜형 야전 앰뷸런스를 이용해 전장으로부터 후송되었다.
환자나 부상자의 장거리 수송을 위해서는 UAZ-452A 혹은 AS-66 앰뷸런스가 이용되었다. 아울러 격오지의 중상자는 의무대에 있는 8기의 특별 장비된 Mi-8 "Bi-Sector" 의무후송 헬리콥터 중 하나를 사용해 긴급 후송 비행으로 이동시킬 수도 있었다.
그리고 비행 중 기내에서 외과수술과 집중치료를 제공하면서 환자와 부상병을 수송할 수 있는 An-26M "Savior" 고정익 의무 후송 항공기도 있다. “구세주”의 승무원에는 의사, 마취과 의사, 간호원, 마취과 간호사가 포함되어 있다.
[…]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의견은 항공기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환자와 부상자를 후송하는데 더 효율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특별 장비된 Mi-8 "Bi-Sector" 헬리콥터 외에도, 화력지원과 수색 구조 헬리콥터도 의무후송을 수행했다. 그리고 응급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모든 비행에 연대 의사 한 명을 동승시키는 것을 규정으로 하였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이유로 앰뷸런스의 가치가 낮았고, 제40군이 보유한 의무헬기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프간의 소련군은 가능한 모든 헬기를 이 임무에 활용하게 됩니다.


의무지원은 아프가니스탄의 소련군의 삶과 작전적, 전술적 성취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의 노력의 목표는 군의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동시에 분쟁 전 기간에 걸쳐 여러 문제들은 결코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은 주로 여러 가지 질병을 예방하는 것과 병사들에게 빠르고 수준 높은 응급처치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된 일들이었다.
이와 같이 아프가니스탄의 소련군의 메인터넌스와 후방지원은 엄격하고 광범위한 시험을 통과하였다. 다양한 분야에서 그들은 최고 수준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성공과 아울러 결점도 있었다. 이러한 결점들은 군의 일상생활과 전투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결점의 대부분은 메인터넌스와 후방 지역 지원 업무의 물질적-기술적 기반이 취약했고 인력 훈련의 수준이 불충분함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향후 진지한 조사와 대책이 요구된다.

이 글의 결론인데, 뭔가 좀 두리뭉실한 내용(우리는 열심히 했다. 그러나 문제도 있었다)이지요. 이 점에 대해서는 미군 측의 강평으로 보충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 논평: 중병은 이 장에서 묘사된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였다. 아프가니스탄의 전 소련 병사 중 67.09%가 중병으로 입원하였다. 바이러스성 간염, 콜레라, 이질, 아메바증, 티푸스, 파라티푸스, 기타 수인성 질병들이 제40군 장병들을 휩쓸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병사 중 2.33%가 전사했고, 8.67%가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제40군에게 있어 질병은 전투보다도 훨씬 더 큰 문제임이 분명했다.
전쟁 초기 몇 년 동안 대부분의 부상은 총탄에 의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자헤딘은 박격포와 지뢰를 손에 넣게 되었고, 파편상을 입는 소련 부상병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소련의 의료지원 절차가 개선됨에 따라, 목숨을 건지는 소련군 중상자들이 점차 늘어났다. 주요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헬리콥터 후송과 특별수술팀을 준비시키고 이들을 최대한 전방으로 진출시키는 것이 중상으로 인한 사망자를 줄이는데 특히 효과적이었다.
소련군의 의무지원은 아프간 전 지역에 걸쳐 잘 분포되어 있어서, 소련 병사들은 필요할 때, 의사의 도움을 가까이서 받을 수 있었다. 소련 부상병들은 연대 의무실까지 앰뷸런스로 후송되도록 되어 있었다. 특별히 준비된 소수의 의료 후송 헬리콥터가 치명상을 입은 환자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게릴라전의 본질상 앰뷸런스를 타고 간다는 것은 기습공격을 당하고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별 후송 헬리콥터건 더 흔한 돌아가는 수송 혹은 보급 헬리콥터에 실어서건 간에, 점점 더 많은 부상병들이 헬리콥터로 후송되게 되었다. 의료진은 이런 일반 헬리콥터에 자주 동승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서 헬리콥터가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날아가는 동안 환자들을 돌볼 수 있었다.



출처
1. Glantz, David M., "Introduction," in Grau, Lester W.(ed,), The Bear Went Over the Mountain: Soviet Combat Tactics in Afganistan, Washington:National Defense Univ. Press, 1996, xiv.
(허남성, 임석훈 역, 『산맥을 넘은 불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소련군 전투전술』,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 2003, xv-xvi)

2. Grau, Lester W. and Gress, Michael A.(eds,), The Soviet Afghan War: How a Superpower Fought and Lost,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2, pp.295-303
by sonnet | 2008/12/03 10:42 | 정치 | 트랙백(1) | 핑백(2) | 덧글(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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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10 at 2008/12/03 10:54
바이러스성 급성간염이 특히 군대에는 쥐약이죠... 제가 복무하던 시절(불과 5년전)에 건너편 섬에서 부대인원의 절반(십수명)이 급성간염에 걸려서 후송되고 나머지는 격리되고 급히 대체인력이 투입되고... 조리병이 감염경로였던 걸로 기억나네요. 하기사 아무리 그래도 6개 연대라니... ㅎㄷㄷ...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6:35
내무반 생활은 전염병에 정말 취약한 것 같습니다. 훈련소에선 왜그렇게들 감기에 잘 걸리는지 ;;
Commented by 만고독룡 at 2008/12/03 10:54
으음...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확실히 아프간의 지형 + 무자헤딘의 게릴라전에서 엠뷸런스등의 차량을 이용해 부상자들을 옮기는건 거의 자살행위겠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6:37
네, 어느 군대나 필연적으로 헬기 이용도가 높아지게 되지요. 현재의 미군도 딱 그런 경우이고요. 자존심 강한 무자헤딘들도 스팅거 휴대용 대공미사일의 가치는 높게 평가했는데 그럴만하다고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8/12/03 11:00
20세기 후반에 현대화된 군대 내부에서 전염병이 창궐하다니...orz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6:45
사실 저렇게 민간 위생 수준이 나쁜 곳에서는 전염병에 걸리는 사람이 나오는 것 자체는 피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그게 통제가 되느냐 안되느냐겠지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03 11:00
비교대상이 대조국전쟁이라니-_;;;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베트남전의 미군이 그 대상이 되어야겠지만, 그건 소련군 수뇌부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겠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6:55
미국과 1:1 비교는 아무래도 무리죠.
Commented by 카군 at 2008/12/03 11:02
확실히 아프간 상태가 좋지 않긴 하지만...소련군 의료문제를 보면 이건 뭐 한숨밖에 안 나오는군요-_-;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6:54
세계를 호령하던 초강대국으로서는 좀 부끄러운 구석이지요. 당시에는 몽땅 감추어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요.
Commented by 自重自愛 at 2008/12/03 11:08
"대조국전쟁때보다 훨씬 좋은 서비스" => 이 대목에서 갑자기 안구와 눈꺼풀 사이에 솟구치는 습기가..... -o-;;;;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6:55
사실 소련 입장에서 그 사이에 장기전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별로 위안이 되지 않는 이야기인 건 확실합니다.
Commented by organizer at 2008/12/03 11:14
이래 저래 질 수 밖에 없었던 아프간 전쟁이었군요..^^ ;;

다음에는 현재의 미군의 활약상(?)이 기대됩니다..... 뭐든 헬리콥터라니, 이건 완전 "돈지랄"이었을텐데, 그들로서는 그 수 밖에 없었을테니....... ㅎㅎ ;;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3 17:46
사실 돈으로 인명을 살 수 있다면 사는 것은 꽤 숭고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떨어지지만 않는다면요...
Commented by kirhina at 2008/12/03 11:25
1940년대보다 월등한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자랑하는 1980년대의 군대라니... 무섭군요.
만일 지금 우리나라 군대에서 "우리 장병들은 베트남 전쟁 때보다 월등히 개선된 의무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소리를 한다면, 자식 군대 보낸 부모님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저 같으면 한대 때려주겠습니다.)
Commented by 에르네스트 at 2008/12/03 12:45
뭐 의무병교육정도를 따지면 배트남전쟁수준정도일텐데 말입니다~(소총병,공병이 자대에가서 의무병 변신~)
(유명한 명언은 조금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상처나면 마*카솔,속아프면 진통제)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6:56
우리도 6.25사변 때보다는 좋아졌을 거라고 굳게 믿쑵니다!!
Commented by categoriae at 2008/12/03 11:29
무려 대조국전쟁때보다는! 인 겁니까!
스탈린그라드와는 다르다 스탈린그라드와는! ...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7:07
그 때는 자기나라를 지키는 전쟁이었으니까 그나마 애국심이라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것 조차 없어서 더 심했겠지요. 통제는 했지만 입소문이 좀 돌고 나서는 실제로도 징병기피 풍조가 만연하기도 했구요.
Commented by 고어핀드 at 2008/12/03 11:33
게릴라전의 본질상 앰뷸런스를 타고 간다는 것은 기습공격을 당하고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 앰뷸런스를 타고 가는 것은 "날 잡아 잡수" 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 (뭐?)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6:59
게다가 앰뷸런스를 잃게 되면, (이미 전투력이 없는 부상병 뿐 아니라) 귀중한 의료인력과 장비까지 같이 잃게 되는 거죠. 그럼 다음 번에는 의료서비스 수준은 더 낮아질거고...
Commented by Alias at 2008/12/03 11:35
충공깽....-_-;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6:49
인기도 없는 전쟁에 '전염병과의 투쟁'까지 할 판이니, 징병기피가 극성을 부린 것도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Commented by Ya펭귄 at 2008/12/03 11:42
모든 비교대상이 '일제시대 연간'이 기준이고 '일제시대보다도 상황이 안좋다'라고 하면 쳐죽일넘으로 취급되는 어느 왕국과도 비교되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6:49
일제시대 때 세계대공황도 왔었으니까 뭐, 몰아서 다 맞은 셈 치지요 ^^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8/12/03 11:50
설마 체첸전쟁에서도 "대조국 전쟁시기보다 나은 의료서비스"운운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는 건...무리일까요? -ㅅ-;;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6:48
소련방 해체 후 러시아군이 겪은 참상을 생각해 볼 때, 그때가 이때보다 많이 나아졌을거라고 추측하는 것은 무리일 듯 합니다. (예: http://sonnet.egloos.com/3143291)
Commented by rumic71 at 2008/12/03 11:58
AN-2 안토노프를 사용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6:46
고정익기는 그렇게 중요한 역할은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게릴라전 상황이니까요.
Commented by 우마왕 at 2008/12/03 12:08
안토노프 뱅기들의 An과 AN이 혼재하고 있으니 통일을 요망한다능.....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3 17:23
수정했습니다.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8/12/03 12:11
바이러스성 간염으로 6개 연대나 뻗다니, 정말 어쩌면 그럴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래도 전반적인 의료지원 시스템 자체는 그리 나빠 보이진 않습니다.
(저는 해군 출신이라 육군 의료지원 시스템을 잘 모르지만, 느낌상 그렇다는 말입니다요)
Commented by 델카이저 at 2008/12/03 13:31
뭐 일차적으로 붉은 군대가 저런 쪽으로 별로 신경을 많이 안쓴다는게 문제구요..-_-;; 규정은 확실히 정말 엄격하지만 그걸 열씸히 지키지는 않는 것도 붉은 군대의 전통이라죠..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8/12/03 14:10
2000년대 초반까지 전방 MASH에는 제작년도 "1950년"이라 찍힌 수술기구들을 비상 장비로 보관중이었다 합니다. (뭐 소모품이 아닌 금속제 물건은 안쓰고 제대로 보관한다면야...) 그 이야기듣고 대전군의학교에서 베트남전때 개인장비받아 쓴다고 투덜댄 거 반성했지요^^;;;

Commented by 에르네스트 at 2008/12/03 14:45
우리나라 하고 비슷하게 저쪽도 도는 소문에 의하면 전쟁나서 그야말로 애들까지 징병할때가 되면 30~40년 묵은 탄약이 튀어나오니 AK가 아니라 SKS카빈이 개인무장으로 지급된다니한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훈련소때보니 AR-15라고 박혀있는 탄창(20발짜리용)을 주더군요~~~ 배트남전때 미군것 훔쳐왔나?)
Commented by rumic71 at 2008/12/03 15:35
훈련소 때 44년형 수통도 본 적 있는걸요 (일명 노르망디라고들 불렀죠)
Commented by 에르네스트 at 2008/12/03 17:14
rumic71 // 그런수통은 너무흔해서 이야기거리도 안되다보니....(왠만한 분들이면 그런수통 한번씩은 목격했다.이나 내가 그런수통을 썼다! 이니 말입니다)
1942년제작 CAL.30용 TRIPOD(삼각대)도 있는 판이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3 18:11
네비아찌/ 제가 의료시스템에 대해선 아는 게 전혀 없어서 그냥 단순번역+요약 정도만 했습니다. 6시간 내 후송 같은 기준도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감이 안 오고 말입니다.
다만 저 간염 사건은 파병 후 첫 해도 아니고 7년차에 벌어진 일이라 잘 모르고 무방비로 당햇다고 변명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7년 정도면 현지에서 예상되는 일은 이골이 나게 겪어 보았을 텐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윤민혁 at 2008/12/03 19:12
적어도 제가 겪은 사태들로 볼 때 1990년대 후반 기준 한국 육군보다 나으면 나았지 나쁘지는 않습니다.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8/12/03 19:26
대제님//6시간 내 후송이면 상당히 빠른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8/12/04 00:57
에르네스트 // SKS라, 아직도 M1카빈을 경건하게 모시는 한국군보다는 나은 건지도 몰라요(응?)
Commented by s10 at 2008/12/04 01:33
에르네스트//제가 듣기로는 M-16이 정식으로 수입된 적은 없다고.... 말 그대로 colt사 총번이 찍힌 M-16은 모조리 베트남에서 '들고 온'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해군출신이라 훈련소에서 colt사에서 만든 오리지널 M-16A1을 썼었지요. 국산(대우)과 콜트산이 반반씩 섞여있던 것 같은데...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7:02
all/ 보급품에 대해서 말하자면 소련 제40군 병사들 사이에서는 CIA가 가져다 준 가볍고 방수되는 무자헤딘™ 침낭이 최고의 전리품이었다고 하지요. 그 다음은 무자헤딘™ 운동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7:15
네비아찌/ 사실 저 글은 대조국전쟁과 비교를 하지만, 대조국전쟁은 방면군급 대공세가 벌어지는 전쟁이었던 반면, 아프간전쟁은 중대급 이하 교전이 반복되는 전쟁인지라, 그런 측면의 차이는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즉 의무체제가 포화될 정도로 많은 부상병이 발생한다거나 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지요.
뒤에 언급되는 소탕작전 직전 의료진의 전방 추진으로 문제를 개선했다는 의미도 강도높은 전투의 시점을 소련 측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과 연계해 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08/12/03 13:01
글 잘 읽고 갑니다. 저기에 갖다 놓으면, 우린 저보다 나을지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3 17:37
한국군은 기본적으로 자력으로 한반도 밖에서 싸우기 위한 구상을 해본 적이 있는 군대가 아니잖습니까. 되든 안되든 100% 자력으로 해외 전투를 치를 수 있게 준비된 소련군과 비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Empiric at 2008/12/03 13:57
"대원수 앞에서는 찍 소리도 못 하더니, 시대가 좋아져서 이 것들이.."라는 의미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7:25
그정도까진 아니겠지만요. (웃음)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8/12/03 14:07
다산, 동의 부대가 가서 그토록 인심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 있었군요.
400-500석 보다는 400-500 침상이라고 용어를 고치시는 게 더 나을 듯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3 17:30
조언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아프간 역사를 고려해 볼 때, 탈리반 정권 붕괴시까지는 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 뻔해 보이는지라 의무지원은 현지에서 큰 호평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흐음 at 2008/12/04 15:00
영어로는 'bed' 입니다만 병원에서 쓸 경우 '침상'보다는 '병상'이란 단어로 번역합니다. ^^
Commented by 계원필경 at 2008/12/03 14:53
순서를 살펴보자면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넘사벽)>>>아프간 주둔 소련군>>>아프간군>대조국전쟁 당시 소련군>제1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군>아프간 무자헤딘 순서일듯 하군요.(결국은 보급부분좀 제발...OTL...)
Commented by 곤충 at 2008/12/03 15:22
.......... 군 의료체계의 민영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7:26
크크, 교훈을 얻는 방법도 여러가지지 말입니다.
Commented by 까르르 at 2008/12/03 16:36
훈련소때 44년 수통이라... 저희 자대에 제일 많았던게 1941,2 -_-

포병이었는데 포들도 1942,3,4 -_-;;;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7:04
저도 수통은 2차대전 때 생산품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포는 105mm인가요?
Commented by 까르르 at 2008/12/03 16:38
가장 압권은... 콜트 거버먼트 극초기형 =ㅁ= 100살이 다되가실겁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4 17:04
흐흐흐.
Commented by Ladenijoa at 2008/12/03 17:09
막장의 소련군-_-;; 소련군 교리상 아프간같은 격오지 전장은 전혀 예상하지 않은 덕이긴 하다지만 너무하는군요. 수의사 교육받은 야전병원장이라니-ㅅ-

그래도 대조국전쟁보단 나아졌다는 게 위안(...이라지만 그럼 대조국전쟁은 뭔 막장?-_-;;)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3 17:27
그 병원은 아프간 정부군 병원인 듯 합니다. 소련 병사들도 그런 데는 가고 싶지 않았겠죠...
Commented by 전문의 at 2008/12/03 17:10
언제나 글을 잘 보고있습니다. 일단 마취 전문의사라기보다는 마취과 의사 라고 하시는게 좀 자연스럽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편집자 총평에서 '중병'이란것이 severe disease 인지 원어를 알고 싶습니다. 중한 상태의 질병이란 뜻이 아니신거 같아서 말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2/03 17:26
지적하신 용어는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원문은 serious disease입니다. 이 번역도 적당한 것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Commented by 어부 at 2008/12/03 23:38
sonnet님 / '총, 균, 쇠' 등 몇 곳에서는 비슷한 경우에(원문을 보지 못했지만 아마 serious disease가 맞을 겁니다) 그냥 '심각한 질병'또는 '심각한 질환'이라고 합니다. 따로 분류가 있지는 않을 겁니다.
Commented by theadadv at 2008/12/03 18:38
96년인가 논산 훈련소에서 입소. 사람 많음. 약 모자람.

약제 담당 사병이 막 들어온 훈련병들에게 상비약 삥을 뜯어가더군요...
'약좀 모자란다! 좀 내놔라! 감기약 특히!'

덧붙여 귀가 조치 당한 사람들에게는 우리는 아직 70년대 제정된 법이 그대로라 제군들이 집에 돌아갈 차비를 줄 여력이 없다. 지금 돈 있는 사람은 받지 말고 돈 없는 사람에게 몰아준다! (사람은 20여명이었는데 받을 수 있는 사람이 1명이었던가 2명이었던가...)
Commented by s10 at 2008/12/04 01:15
쿨럭, 저는 02년 군번인데도 같은 낚시를 당했지 말입니다. 분명히 '개인 비상약품 지참 가능'이라고 써있어서 맨소래담 로션까지 챙겨갔는데 입소하자마자 의무병들이 바구니 들고와서 대일밴드 하나까지 다 걷어가더라는...-_-
Commented by 익명 at 2008/12/04 18:53
s10 / 저 08년 2월에 입대했습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Commented by 팰컨 at 2008/12/04 20:34
07년 8월에 공군 입대한 저도 그렇습니다;;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8/12/03 19:25
저도 저 책들을 처음 읽었을 때 엄청나게 충격받았습니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조차 저 정도 수준의 전투 지원능력밖에 없다는건 놀라운 일이더군요. 게다가 본토에서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전쟁을 벌이는 미군과 비교한다면;;;;; 소련군은 프라하 사태때도 보급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저런 이야기들을 읽을 때 마다 이런 나라가 냉전기 미국의 경쟁상대였다는 것은;;;;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8/12/03 21:11
Aeromedical Evacuation이란 용어를 만들어놓고 4개 비행대대(고정익기)를 써먹는 미국과 비교하기에는 너무 난감할 것 같습니다[..] (USAF의 AE 대대들은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래 48000명을 고정익기를 통해 '의료후송'시켰으니..)

지난 4월 101사단본부와 함께 배치된 101 지원여단 소속 의료부대가 주로 "응급치료, 화상, 후송지원"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소식과도 대비되는 점 같습니다. 적어도 야전병원까지 전염병 병동으로 뒤덮일 걱정은 없어보이니 말입니다.
Commented by oldman at 2008/12/03 22:20
그저 안구에 습기가 찰 따름입니다...ㅠㅠ
Commented by 일화 at 2008/12/03 23:46
의료시설문제는 저로서도 모르겠지만 감염을 예방할 수 없었다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리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12/04 00:06
정말 '종이 고지라'였군요, 당시 구소련은... (예전의 아프간 파병 현황도 그렇고...;;;)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8/12/04 00:59
왠지 남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서 감히 비웃을 수가...
Commented by categoriae at 2008/12/04 01:35
하지만 구소련이 강한 분야는 또 따로 있었지 않았습니까. 89년 기준 51개의 기갑사단이라든가 (카테고리 C까지 포함하여), 공수기갑이라던가.

소련군 교리에 있어서 의료... 는 아무래도 중점노력분야는 아니지 않았을까요? 다만 잘못된 전장에 잘못된 부대를 투입한다는 반복된 실수를 반복했다는 것일 뿐.

다만 개전 이후 7년이 되었는데 전염병 창궐이라... 이건 어쩌면 고질적인 전투근무지원부문의 경시, 라는 느낌이 듭니다.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12/04 01:45
이건 뭔가요 왠 삼국지에서 오랑캐국으로 원정간 얘긴가요
Commented by 전문의 at 2008/12/04 09:27
serious disease 라면 소넷님의 해석이 적확하다고 봅니다. 감염성 질환을 포함한 말이기 때문에 중상자는 어울리지 않고 중질환 혹은 심각한 질환 정도로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여간 경험상, 사람들을 집단 시설에 모아놓으면 병이 생깁니다. 의사들만 모아놓은 훈련소에서도 사회경제적으로나 신체건강도나 일반 대중에 비해 낮은 수준이 아니고 위생에 대해 관념이 일반인보다 높은데다가 연령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고령층도 아닌데 감염성 질환은 이환율이 90%를 넘더군요...(간단히 말하면 한 내무반에 한두명 빼놓고 전원 감기에 걸렸다~ 입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갈까마귀 at 2008/12/04 13:35
어떤 분이 당시 소련군 위생상황을 한국군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실제 상황을 알면 그런 말은 못할겁니다.

[1980년대 아프간 주둔 소련 군의 위생상황]

-병사들은 평균 3개월에 한 번씩 내의를 갈아입었고, 군복과 모포도 거의 비슷한 주기로 세탁했다. 살균처리되지 않은 물을 마셨고, 쓰레기는 그저 내버리기만 할 뿐 청소하지 않았으며 대변은 야전 화장실보다는 텐트 근처의 한 곳에서 마구 보았다. 장교가 강요할 때에만 대변을 보고 나서 손을 씻었다.-

전염병이 퍼진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Commented by 갈까마귀 at 2008/12/04 13:36
당시 소련군이 6시간내 후송하는것도
80년대 미군은 모르겠으나
지금 이라크의 미군 기준 45분에 비하면 열악하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윤민혁 at 2008/12/04 14:02
제가 이야기한 것은 어디까지나 의료지원 스피드 얘기니까요. 앰뷸런스 배치 현황, 헬리콥터에 의한 부상자 및 환자 수송 같은 건 우리가 확실히 저때 소련군에도 밀리기 쉽다고 봐야죠. 부대 기계화율 문제지 위생문제는 아닙니다만.



... 3개월에 한 번 내의 갈아입고 세탁주기가 그꼴이라는 거야 걔네들 물자보급수준이 처절해서 그런 데다가 병사 교육수준 문제도 높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주코프 at 2008/12/04 14:12
위생상황은 참전 군인들의 생활레벨과도 관련이 있었으리라 봅니다..

일본에서 알게 된 우즈벡 출신 아저씨에 의하면 구소련 시절 대학출신은 당연히 면제였고, 웬만한 고등학생 수준의 학력만 있어도 편법을 동원한 군면제가 가능했고 또한 만연해 있었다는..(그 우즈벡인도 그 중 하나..)

아프칸전 말기에는 우즈벡 청년들 사이에 빅토르 최 노래가 유행했다며 직접 들려주는데, '혈액형'이란 익히 알던 노래라 묘한 기분이 들었지요..
Commented by 오토군 at 2008/12/04 15:15
베트남 참전 미국인과 아프간 참전 러시아인이 자기 군대 이야기를 하면 그것 참 나름 재미있겠습니다.(…)
Commented by 오토군 at 2008/12/06 14:48
핑백 신고할께요~
Commented by deokbusin at 2008/12/04 20:37
어째, 1990년대 초반에 방문했던 국군수도통합병원의 사병 입원실의 음울한 분위기가 생각나는 군요.
Commented by zeck-li at 2008/12/07 06:47
예상했던 수준이군요.

왜 그런 생각을 가졌냐 하면 배트남에서 활약한 한국군도 그 수준의 위생수준이라고 보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배트남에는 미국이 있었고 오히려 고엽제 같은 화학약품이 더 심각히 대두 되었지만 사실 한국군이라 하여 저런 문제에 노출되지 않은 것은 전혀 아니란 점입니다.

군대가 잘 싸우려면 정신력이 전부가 아닙니다. 위생문제의 해결이 군 전투력의 핵심이죠. 그런면에서 한국군은 아직 하안참 뒤처져 있습니다. 어떤면에서?

내무반에서 2층침대를 사용한 병사들의 숙식공간이 재공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한번 따져보면 재미있을 껍니다.
Commented by 에르네스트 at 2008/12/10 18:28
아직 현역의 절반도 안되는 사람만 그런 내무반에서 잡니다~
(한 2012년쯤되면 모두바뀐다~ 하는데 총사령관님께서 군사비절약을 외치시는 고로.... 후방은 그냥 지금 그냥 쓸것같습니다)
Commented by .......... at 2008/12/14 18:26
아아아...........저는 Mi-8로 후송을 하였다는 데에서 안구에 습기가 -_-;;;;;;
UH-1이나 UH-60같이 소형도 아니고 대형 헬리콥터......
글을 보니 Mi-24도 쓴 것 같은데 이것도 안습 -_-

원래 헬리콥터란 게 군대에서는 한 번 뜨기 어려운 물건이니만큼,
정원 다 차야 뜰 것 아니겠습니까 -_-

메디벡 (Medi-evac...맞나? 어쨌든 발음은 그러한데) 에서 중요한 건
빨랑빨랑 후송하는 게 최우선인데.

중상자가 대박 났으면야 금방 뜰 수도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_-
Commented by 미연시의REAL at 2009/12/28 23:21
결국 소련군 스스로 전투지원체계의 부족과 육군항공전력의 부족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가장 큰 교훈이 되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각각의 소련군의 문제이전에 각 부대의 위생상태와 부족한 전투지원체계들인 공병이나 의무부대들이 너무나 부족한것이 실책이 아니었을까 하네요. 공병-의무부족의 실태가 결국 부대 위생상태문제까지 연계되어서 문제를 더 크게 만든 비전투손실문제가 나온게 아닐가 합니다;
Commented by 子宮母腸 at 2011/01/07 03:11
글쎄요. 뭐 싸움이란게 너죽고 나죽자 싸운다면 조용히 끝내 버리면 되겠지만 살겠다고 피보고 태여났는데 즐거웁게 춤추고 노래하며 살아야지요. 매일 오늘은 누굴 죽일까 내일은 누굴 죽일까 하고 궁리를 한다면 이것처럼 큰 불행이 어디 있겠읍니까. 이러면 이미 사는게 아닙니다. 서로 선거를 통해 교대로 정치를 하고 여러 의견을 종합해서 운영을 한다면 지금도 잘먹고 잘사는것이지요. 최소한 굶고 매맞는 사람 없으면 된거지요. 울고 웃는것이야 감정표현인데 어쩔수 없지요. 직장이나 가정에서 스트레스 쌓인분들 나이트 클럽에 가서 꽝꽝 울리는 음악에 흔들어 버리자구요. 신나는 달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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