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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의 문제
글을 읽다 생각난 의문 (밀리네스) 에서 트랙백

이 글에서는 우선 트랙백 해온 글의 의문에 간략화된 형태로 답한 다음, 그와 연관된 문제 한 가지를 다룬다. 보통은 일반인들이 익숙한 예를 들려고 하는 편인데, 트랙백 해온 분께는 SW개발의 비유가 익숙하리라고 예상되어, 본문 중에 그러한 예를 일부 사용하였다. 가능한 쉽게 쓰려고 하였으나 이 점에 대해서 읽는 다른 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1. 문제의 간단한 검토

왜 왕정시대에서 민주주의시대로 바뀌었을까? 왕정에 근원적 모순이 있어서 민주주의로 바뀐것일까? 아니면 왕정을 지키고자 하는 그 모든 보수주의적인(sonnet님 말을 빌자면 과거의 진보를 지키려는) 모든 시도가 실패하여 왕정시대가 무너진 것일까?

인간의 이성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하지만 사회구성원들의 지식 평균량이 많아지는것은 가능하다. 지식 평균량이 늘어나는 속도는 처음에는 느리지만 어느 임계점을 넘게 되면 급격하게 높아진다.

금속활자가 발명되고 일어난 르네상스 혁명
증기기관등으로 인해 지식의 전파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지자 일어난 산업혁명

그럼 그 이전의 시대에 근원적인 모순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시스템이 근원적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스템이 사회구성원의 평균지식량을 못따라잡음에 따라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 생각한다.

[…] 따라서 내가 지지하는 것은 다음의 방식이다.
컨텍스트가 서서히 변화 하는 곳에서는 과거의 방식을 존중해 가며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는 보수주의자의 방식을 따른다. 하지만 컨텍스트가 급격하게 변화 하는 곳에서는 컨텍스트의 변화를 최대한 파악하려 노력하며 그 컨텍스트에 맞는 새로운 모델을 찾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는 진보주의자의 방식을 따른다. (밀리네스)

서유럽에서 왕정에서 민주정으로의 변화는 두 가지 유형, 즉 혁명 등으로 신속히 왕정을 폐지한 후 공화정을 수립한 유형과 국왕이라는 껍데기를 놔둔 채 점진적으로 권력을 의회로 옮겨나간 끝에 입헌군주정 형태로 정착된 유형을 생각할 수 있다.

이제 첫째 유형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와 둘째 유형의 대표인 영국을 비교해 보도록 하자.

(기술 진보가 가속화된 중요한 사회현상이었던) 산업혁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영국이 프랑스보다 앞서면 앞섰지 뒤쳐졌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앞서 제기된 가설과는 잘 맞지 않는 현상이다. 즉 '컨택스트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산업혁명의 선도국가인 영국이 가장 진보적인 대책을 택해야 할 것 같은데, 실은 가장 보수적인 방법을 택했으며, 결과적으로도 원만히 민주정으로의 전환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례 하나로 일반화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수적인 접근법으로도 큰 변화의 필요에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는 충분하다.

어쨌든 컨택스트의 변화가 크다면 그만큼 더 큰 진보가 요구된다는 것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관점이며, 아마도 어떤 "다음 단계"(*1)에 도달한 후 지나온 길을 돌이켜 보면 그 말이 옳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적으로) 큰 진보가 요구된다고 생각되더라도 (속도 면에서) 빠른 진보를 추구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전략이라고 결론내릴 수는 없다. 사실 빠른 진보의 추구가 나쁜 전략이 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근거가 몇 가지 있다. 그렇다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은 언제 설득력을 갖게 되는가?


2. 이행의 문제(1): 중단 없는 서비스

살던 집을 재건축하기로 했다고 생각해 보자. 이럴 경우 두 가지 대조적인 접근법을 취할 수 있다. 우선 낡은 집을 허물어 버린 후, 바닥부터 출발해 완전히 새 집을 짓는 방법이 있다. 반면 집의 일부를 수리한 후 그 일이 끝나면 다음 부분을 수리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방법을 취할 수도 있다.

낡은 집을 허물고 바닥부터 새 집을 짓는 방법은 옛 집의 문제점들을 신속히 일소할 수 있다는 굉장한 장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이 방법을 더 매력적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왜 옛 집의 단점을 더 오래 겪어야 하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가 필요할까?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을 경우, 거기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숨은 가정이 하나 있다. 즉, 그 집에 살던 가족은 새 집이 완공될 동안 어딘가 딴 곳으로 이사를 가 당분간 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딴 곳에 가서 살 데가 없다면? 온 가족이 철거한 집 옆에서 몇 달 동안이나 노숙을 하게 되지 않을까? 노숙 기간 동안 환경이 양호, 즉 날씨가 맑고 따뜻하다면 텐트를 치고 버텨 볼 수도 있겠지만, 폭풍우나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면?

재건축 때와는 달리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구조나 체제를 손볼 경우, 대부분의 사회구성원은 그 기간 동안 자신이 속해 있던 사회를 떠나 안정적인 다른 사회에 피신해 있을 수가 없다. 다소 불만족스러운 점이 있더라도 어느 정도 우리를 지켜주던 기성 체제는 철거되었는데,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새 체제는 아직 동작하지 않을 경우, 사회구성원 다수는 예측불가능한, 그리고 위험한 환경에 장기간 무방비로 노출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집의 일부를 조금씩 수리해 나가는 보수적 방법을 택하는 중요한 이유가 드러난다. 그것은 새 집(혹은 부분적인 수리를 여러 차례 거쳐 새롭게 거듭난 집)이 완공될 때까지, 즉 이행의 시기 동안에도 그 집이 제공하는 기본기능(주거)를 계속 제공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3. 이행의 문제(2): 개발 상의 난점

이제 SW 개발의 비유를 통해 다른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당신은 정치체제™ 2.0(혹은 '사회체제™ 2.0'라도 좋다) 개발을 새로 맡게 된 프로젝트 매니저(PM)이다. 노련한 PM답게, 즉각 현황파악에 착수한 당신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우선 정치체제™의 기존 시스템(ver.1.7.3pl39)은 낡아빠진(legacy) 시스템 답게 프로그램 소스코드가 남아있지 않다. 지금까지 거쳐간 시스템 관리자들이 대를 이어 전수해 온 자료란 것을 넘겨받아 검토해본 결과, 시스템의 대략적인 동작원리와 구조 정도는 알 수 있지만, 그 조차도 완벽과는 거리가 먼 것임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나마 최근 몇 년간 적용된 패치에 대해서는 소스코드가 남아 있지만, 바이너리 패치가 적용될 각 서브시스템의 소스코드가 남아있지 않아서 그 가치는 그리 높다고 할 수가 없었다.

혀를 차면서도 "이 정도 쯤… 예상 못한 바는 아니야"라고 생각한 당신이지만, 다음 문제를 듣게 되자 안색이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체제™는 특수한 메인프레임 호스트에서 실행되기 때문에, 별도의 개발용 호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새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면 기존의 프로그램을 내리고 그 자리에서 작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새 실행파일을 컴파일하기만 해도, 기존 프로그램의 실행은 중단된다.(*2) 전임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일을 했냐고 묻자, 그들도 지금까지 모두 그렇게 일했다는 답이 당연하게 돌아온다. 예상되는 문제점은 종이 위에서 이루어지는 기획단계에서 잡아야 마땅한 것 아니냐면서.


자, 이 일을 어떻게 한다??

SW개발자들에게는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사회과학을 기반으로 한 대부분의 정책 기획과 구현은 이런 수준으로 집행된다. 이론적 지식, 도구, 경험 축적의 수준이 모두 SW개발자들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게 열악하다.

자, 어찌 되었든 주어진 현실은 현실이다. 당신에게 이 일이 맡겨진다면 이 일, 정치체제™ 2.0개발을 어떤 식으로 진행하고 싶은가?

이런 -테스트베드가 전혀 없는- 개발환경이 주어지고, 게다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구 시스템의 서비스를 최대한 계속 제공해야 할 필요가 중요하다면, 그 개발방법은 필연적으로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다.

SW의 예가 잘 와닿지 않는 사람이라면, 제약회사를 떠올려 보는 것도 좋겠다. 제약회사가 실험실 수준에서 연구된 어떤 신물질을 생산해 엄격한 신약시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전 국민에게 먹인다면, (설령 그 약이 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해도) 맞아죽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책은 대개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고 집행된다. 학계에서 말로 하는 논의와 전국적인 집행 사이에 체계적인 임상시험에 해당하는 것이 존재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가 국가의 결함을 다룰 때, “삼가 아버지의 상처를 치료하는 심정으로, 경건한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을 품고”(to the faults of the state as to the wounds of a father, with pious awe and trembling solicitude) 접근해야 한다라고 목청을 높였던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4. 이행의 문제(3): 정보와 학습 측면

이 논점은 스티글리츠가 공산권 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함에 있어서 중국의 점진적인 이행이, 러시아의 급격한 이행보다 성공적이었던 이유를 설명하면서 잘 정리한 바 있다.

(이) 주장은 학습에 초점을 둔다.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차원과 조직적 차원의 학습이 이루어진다. 개인들은 시장의 신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사회는 어떠한 기구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 알아야 하고, 조직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점진적 이행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 이러한 학습과정을 용이하게 한다. 첫째, ‘정보의 과부하’ 문제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체제에 과도한 요구가 부과될 때 효율성이 저하되게 된다. 모든 교사들에게 친숙한 일반적 원리가 있다. 학습 재료는 소단계별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 오늘 배운 것은 내일 체화된다는 것, 앞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다음 단계의 문제를 푸는 것은(적어도 쉽게 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둘째, 점진적 이행은 급격하고 급속한 변환에 의해 불가피하게 조직이 파괴될 때 나타나는 정보의 손실을 피할 수 있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진화는 혁명보다 낫다. 조직은 개인들이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보이는 상대적 역량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다. 이행의 과정에서 업무 분담이 바뀌더라도, 앞 단계에서의 정보는 다음 단계에서도 유용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정보를 지니고 있는 것이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보다 낫다.

Stiglitz, Joseph E., Whither Socialism?, MIT Press, 1994
(강신욱 역, 『시장으로 가는 길』, 한울 아카데미, 2003, pp.383-385)

이것은 사회제도의 설계(구현)자가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들의 입장에서 본 관점이라는 점이 좀 다르다. 사회에 변화가 일어날 경우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변화에 맞추어 자신의 지식과 업무수행방법을 학습하고 바꿔야 한다.
(2) 변화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을 바꿀 것인지 적절히 예측해야 한다.

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 일단 나의 학습이 불충분해 따라가는데 문제가 생기기 쉽다. 두번째로는 다른 사람들도 같은 문제를 겪기 때문에, 남들의 행동을 예측한다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러면 사회가 돌아가는데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5. 속담: "급할수록 돌아가라"

기술발전이나 사회진보 같은 진보의 개념들이 사용될 경우, 그 진보는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atomic operation처럼 다루어질 때가 많다. 즉 논의의 편의를 위해 '진보 이전'과 '진보 완료'라는 두 상태를 비교하거나 둘 사이를 징검다리를 건너뛰듯 옮겨다님으로서 그 두 상태 사이에는 마치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생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상태 사이에 존재하는 이행과정에는 진보의 폭에 상응하는 시간과 여러 가지 실무적인 난점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이행의 문제를 진지하게 붙잡고 씨름할 경우, 급한데 멀리 돌아가는 길처럼 보였던 보수적인 접근법의 장점이 부각되기 마련이다.



1. 이 예에서는 영국이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정, 즉 여성과 저소득층을 포함한 전 성인 인구에게 보통선거권을 부여한 입헌군주정에 도달한 단계라고 임의로 정의해볼 수 있다.
2. 예를 들어 solaris(sparc)에서 실행 중인 바이너리 파일을 overwrite해 보기 바란다.
by sonnet | 2008/11/26 23:54 | 정치 | 트랙백 | 덧글(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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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11/27 00:1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30 14:43
네, 말씀하신대로 각국은 끊임없이 서로 경쟁하고 모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그리고 모방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완성된 형태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한 장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최종형태에 대해서는 시장경제가 동작하는 수십 개의 선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대한 선례는 마땅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다른 나라는 중앙계획경제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기에 이행이나 전환의 길에 대해서는 참고가 되지 못했던 것이지요. 따라서 두 나라는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서로 상반되는 노선을 택했고, 그 결과도 사뭇 다르게 나타났던 게 아닌가 합니다.
Commented by 하이얼레인 at 2008/11/27 00:16
그 때 옆 상급자와 동료들이 속삭이시매, "문제는 우리의 경력과 인센티브와 회사 및 사회내에서의 입지일지니, 회사의 위태로움과 서비스 제공자의 다소의 피해는 그 다음이니라."
Commented by 우당 at 2008/11/27 07:30
이러한 문제는 진보/보수와 무관한 듯 합니다. 가령, 시민단체의 경우 공금횡령 또한 과감했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30 14:44
그렇지. 그래서 늘 조직은 조직의 성패와 직원의 성패가 같은 방향이 되도록 인센티브를 설계하려고 노력하지. 늘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야.
Commented by 새벽안개 at 2008/11/27 00:24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서 대중의 요구에 선행해서 이행하는것이 꼭 좋은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습적 측면에서도 궁금증을 유발하여 먼저 지식에 목마르게 한다음 반박자 늦추어 가르쳐 주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의식을 가지기 전에 가르쳐 주면 한귀로 듣고 흘려버립니다. 민주적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도 이렇게 약간 늦게 반응하면 대중들이 더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30 18:48
우리나라의 경우도 민주주의 제도는 대한민국 건국 직후부터 매우 수준높은 형태로 직수입되었는데, 그 제도를 따라갈 경험은 일천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11/27 00:25
하긴, 실제로 대한민국™을 기반으로 심즈 에디터하고 계신 '그 분'께서도
그 꾸준함에 있어서만큼은 '혁신적'이긴 하죠. (문득 좌절)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30 18:24
그쪽도 '내 진심을 몰라주는' 사람들에 대해 야속한 심정을 품고 있을테니, 이 어찌 비극이 아니리잇까.
Commented by 나츠메 at 2008/11/27 00:35
sonnet님/
오늘 또 좋은 책을 알려 주셔서 감사. <<시장으로 가는 길>> 방학 때 시간 있으면 꼭 읽어봐야 겠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28 11:56
네, 흥미로운 논점이 많은 책입니다.
Commented by s10 at 2008/11/27 03:55
이행에 대한 글을 읽으니, 월러스틴의 '이행의 시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네요. sonnet님도 읽거나 접해보셨으리라 생각되는데, 직설적인 제목 그대로 21세기 초반에 세계체제 수준의 이행기가 올 거라는 전망을 담은 책이죠. 미국패권의 약화와 브레튼우즈 체제의 해체 등등...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월러스틴은 세계체제 수준에서 이행이 진행될 때 개인과 집단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에서 잡았던 걸로 기억합니다.(뭐 원래 정치적 입장이 그렇다 보니) 이행기에는 조그마한 노력과 움직임으로도 상당히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동시에 수구 반동이 올 가능성도 크다는), 적극적으로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한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이죠.

여하튼, sonnet님 요지대로 미리 테스트가 불가능한 사회개혁/변동을 시도하는 데 있어서 보수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 주의사항은,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 같지는 않네요. 오히려 역사적으로 많은 경우에, 무리한 변화를 시도하는 건 극우파나 전체주의자들이니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우당 at 2008/11/27 07:43
좋은 지적입니다. 보수와 극우는 매우 다른 태도라고 봅니다. 보수가 현재를 부정하기 보다는 현재를 인정하고 출발점으로 삼는 태도라면, 극우나 극좌는 모두 현재를 부정하고 자신의 이상향을 주장하는 태도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진보적'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조금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극우'나 '극좌' 모두가 서양에서 말하는 이념을 토대로 삼기 때문에 '극우'가 '복고'또는 '회고'라고는 말할 수 없고, 따라서 '극좌'가 '극우'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고 봅니다. 좌파의 특징은 우파보다 진보적이라기 보다는 우파와 이상향이 다르다고만 말해야 하며, '진보적'이라는 말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좌우의 구분이 없이 사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우당 at 2008/11/27 07:51
보수주의는 현실을 인정하고 변화해야 하는 최소한의 것을 천천히 변화하는 태도, 현실을 부정하고 이상향을 주장하는 사람들로써 그 이상향이 과거에 설정되어 있다면(요순시대/에덴동산처럼..) 복고 또는 회고주의, 그 이상향이 미래에 있다면 진보주의로 구분하고, 다시 진보의 이상향의 종류에 따라 좌파와 우파..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맞지 않을까요? 물론, 보수중에서도 다시 좌우의 성향은 있을 수 있겠지만.. 자칭 우익이라는 사람들이 저같이 보수적인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유쾌한 일이어서요..
Commented by 일화 at 2008/11/27 08:49
역시 소넷님다우신 깔끔한 반론이네요. 사실 역사적으로 진보적 접근방법이 어느 정도 실효성을 발휘하는 것은 타자를 모방하는 경우외에는 찾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진보적 접근방법에 대한 선호가 강한 것도 모방시기(라고 해도 독자적인 발전노선을 찾기 위한 나름의 시행착오를 거쳤지만)의 빠른 발전속도를 잊지 못한 향수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08/11/27 09:25
테스트베드 없이 곧바로 전국단위 실행이라니 함부로 새걸 개발하기 무서운 환경이군요.
Commented by 에르네스트 at 2008/11/27 09:51
그러고보니 앳날에 올라왔던 하느님께서는 하위호환성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빌 게이츠) 라는 글이 생각납니다?
(테스트 할것 없이 만들면서 디버깅하다가 요즘은 손을놓으신 같은 그분 말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28 12:47
그게 소위 (원래 그런 거라는 의미에서) '주제의 난점'인데, 그런 상황에서도 어떤 정책이 나와야 할 때는 물론 있지요.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의 파급력에 대해 정책결정자들(과 그들을 감시하는 유권자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한 번 더 고민을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어부 at 2008/11/27 10:12
정치체제™의 유사품; 지구상 현존 생명체 구조™.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28 12:01
말씀하신대로 흡사한 구석이 많죠. 다만 정치체제™를 손보는 쪽은 윤리적 문제나 목적의식 측면에서라도 순수히 자연선택을 택하지도 않고, 또 그럴 생각도 별로 없다는 정도가 차이일 듯 합니다.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8/11/27 15:59
대공황기의 미국과 내전 직후의 소련을 비교해도 비슷한 결론을 얻을 수 있을 듯 싶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28 12:42
예. 트로츠키가 외무인민위원이 되어 제국주의자들과 짜르가 맺은 모든 조약을 폐기하고 외무성 문을 닫아버리겠다고 했었는데, 나중에 국제체제의 왕따클럽인 라팔로 조약으로 흘러가는 과정을 보면 참...
Commented by monsa at 2008/11/27 17:11
영국은 실제로 diverge 할 가능성이 많이 있었던고로, 결과론적 점진법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소련과 중국의 경우도 중국은 문혁시대의 문명에서 자본주의를 들여왔고(본인들도 발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자각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소련은 미국과 동일한 자존심을 지닌상태에서 자본주의를 들여왔어야 했다는 사실에서, 어떻게 보면 소련은 점진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29 16:21
영국이 걸은 과정이 어떤 그랜드 플랜이나 지적 설계위에서 보수적인 행보를 한 것은 아니라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과론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영국인들이 정치나 사회 제도를 손보는 데 있어 성향적으로 보수성이 짙었던 것은 사실이며, 그런 성향이 결과에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소련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자면 긴데, 나중에 한번 별도의 글로 다루던가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ItMoNW at 2008/11/27 21:39
부분과 전체의 문제가 이행기문제와 완전히 매치하는건 아니겠지만 차선의 이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차선의 이론에 의하면 부분적 개혁에 회의적이고 전면적 개혁이 선호되지만, 이행기경제를 고려하면 그 반대에 가까울 것이고..
저는 이 둘이 도통 정리가 안됩니다. 조화로운 해석은 고사하고 둘다 논리적 기반이 탄탄해서 하나를 취하고 다른 하나를 버릴 자신도 없고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29 16:43
후생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것 말씀인가요? 그거라면 이 둘이 별로 상충되지 않는 것 같은데요.
Commented by ItMoNW at 2008/12/01 21:06
예, sonnet님.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100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개혁의 스케줄을 다음 두가지로 가정합니다.
1) 점진적 개혁: 100일, 일간 목표 달성량은 1개의 목표,
2) 급진적 개혁: 1일, 일간 목표 달성량은 100개의 목표.
첫번째의 경우 확실히 후생이 개선되는 시간은 100일후로 이연되고 그 100일동안은 부분적 목표만 달성됩니다(부분적 개혁).
두번째의 경우 부분적 목표만 달성된 시기는 최소화됩니다(전면적 개혁).
따라서 점진/급진적 개혁과 부분/전체적 개혁간에 유사한 관계가 있고,
만약 이행의 문제를 고려해 기간을 늘려 점진적 개혁을 추구할수록 부분적 개혁에 근접해져서 차선의 이론상 그 개선여부가 불확정된 시간이 증가하는 상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08/11/27 22:45
프랑스 혁명도 공화정으로 단번에 이행한 것이 아니기에,
(1789년 혁명, 테르미도르 반동, 나폴레옹 제정, 부르봉 왕가 복귀, 7월 혁명, 루이 필리프 왕, 2월 혁명, 나폴레옹 3세, 파리 코뮌, 제3공화정...)
크게 보면 점진적 변화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28 12:18
스케일을 너무 크게 잡으면 뭐든 다 작아보일 수 있기 때문에(http://sonnet.egloos.com/3031467), 이 문제는 결국 대조군을 고려해서 적절한 척도를 잡아야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정치체제 변동은 제도나 구성원의 연속성이란 측면에서 점진적이라기 보다는 온탕냉탕을 오락가락했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Commented by deokbusin at 2008/11/28 00:37
영국도 한 번은 공화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청교도혁명 직후의 일인데, 이게 다시 평화적(?)으로 왕정으로 회귀하였지요.

영국의 사례와 프랑스의 경우로 짐작하건대, 체제변화는 권력을 쥐기 위한 기득권자들끼리의 다툼이 기존방식으로는 해결이 안 될 경우에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28 12:29
네, 알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에는 안정된 의회제 하에서 (폐하의) 충성스러운 야당(loyal opposition) 개념이 정착되는데, 이 체제가 안정적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통해 체제 안에서 적절한 속도로 변화를 수용할 수 있어서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Commented by Nara at 2008/11/28 02:01
외부 변수 - 경쟁자, 환경 변화 - 가 있는 상황에서 쉽게 결론을 낼 수는 없다고 봅니다.
disruptive tech 들이 작살낸 것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28 12:36
위의 논의에는 사회구성원 다수를 가능한 보호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가치평가가 들어 있습니다. 사회구성원들이 (예를 들어 inaction에 따른 손해가 크다고 보아) 위험을 무릅쓰겠다는 정치적 동의를 보여주거나, 정치지도부가 사회구성원들의 별 동의 없이도 정책을 추진할 수 있어서 희생을 무릅쓸 수 있을 경우에는 보다 빠른 변화의 추구는 언제든 가능할 것입니다.

전자의 예로는 대공황 이후 수정자본주의의 성립이, 후자의 예는 소련의 대도약이 좋은 예일 것입니다.
Commented by cryingkid at 2008/11/28 14:31
네, 어떤 정책이나 사상의 재정립이 '장기적으로' 이루어질 동안 (저를 비롯한)수많은 민중들은, 성도들은 제 삶의 오르내림을 견디는 데 여념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앞서 나가는 자들의 뒤란을 제 목숨 붙었을 동안 무릎 찧으며 따라갈 사람들을 위해서, 기존 질서의 '단기적' 온존은 필요할지도 모르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29 15:48
재건축의 비유로 돌아가자면,
집을 부수고 새로 짓기로 '했다면' 적어도 그 옆에 잠시 살 컨테이너 가건물이라도 하나 짓고 시작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버헤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진보의 목표지점에 너무 집중하다보면 일직선으로 최단거리를 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식의 결론이 나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말이죠.
Commented by reske at 2008/11/28 19:53
sonnet님이 소개해주신 에드먼드 버크의 말은 정말로 공감이 가는 것들이 많군요! 보수계의 본좌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정도 포스인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어린시절에는 이상에 충실하지 못한 정치인들이 타락한 정치인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그렇지도 않더군요. 정말 위험한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이상을 정말로 실현하기 위해서 급진적인 개혁을 실행하는 자들이 아닐까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보수주의가 수구세력과 도매금이 되어 욕먹는 현실은 상당히 난감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29 15:56
1. 루소나 벤담도 그렇지만, 버크 역시 (현대에 들어) 그들이 인용되지 않는 부분에는 (요즘 기준으로는) 정말 멍청해보이는 주장도 종종 있습니다. 어느 정도 시대를 감안해서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2. 저도 10대때는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을 단순하게 봤던 거죠.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11/29 14:08
으음.. 영국과 프랑스의 변화점 자체에는 단면적으로 잘라 비교하기엔
여러 배경점 차이점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길어지고
논점이 다소 흐려지려나요

제 기억에는 영국의 귀족[지배층]은 여러 세대동안 컨텍트의 변화의
최신을 재빨리 업뎃하고 그 특이한 지리적 이점으로 왕권과 꾸준히 맞서 싸워
그 사상적 배경이 그 시대의 최신의 합리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고
또한 합리적으로 사회체제를 패치하는 방법을 꿰고 있어서
산업혁명때의 삭막한 사회에 비해 사상은 어디까지나 '합리적'이였기때문에
프랑스처럼 빵이 터질일이 없었던데 비해

프랑스는 태양왕의 절대왕권이래 왕권신수설로 일절 패치 없이
상당히 피지배층을 몰아부쳤던게 피지배층은 어차피 거주할 집이 없었으므로
집을 허물어 버리는- 즉 사회체제자체를 갈아치워 버리는 특단의 조치가 별 문제
없이 실행됐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첫 패치 이후에 엄청난 버그가 있었지만.
점차 개선이 되어 입헌군주제 못지 않는 안정성을 갖는 체제가 되었지만 말입니다.

물론 보수주의가 지지 받기 위해선
sonnet님이 언급하신 꾸준히 패치를 돌려준 영국의 보수주의의 형태를 해야 겠지만요
우리나라는 그저 수구(...)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29 16:12
네, 세부적으로 가서 문제를 특수성에 귀착시켜버리는 시도를 할 수도 있지요. 대신 그렇게 하면 신속한 진보가 필요하느냐에 대한 일반론도 희석되어 버리겠지요.

영국의 예를 들어 제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점진적인 개선책이 화끈해 보이진 않더라도 성공적일 수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저는 그런 가능성이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보는 쪽인데, 사례로 검증하려면 상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오늘날에도 영국은 국왕이며, 귀족에, 귀족원인 상원을 300년 전과는 달리 대단한 의미는 없지만 계속 유지하고 있는데, 사실 이건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처럼 내각책임제를 하는 공화국들은 상징적인 대통령을 따로 두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게 결국 영국에서 국왕이 하는 역할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11/29 23:51
확실히 흥미로운 점이네요 그런곳은
영국의 왕정은 문화재 보존이라는 측면이지만
굳이 얼굴마담 대통령을 만들다니요
Commented by 子宮母腸 at 2011/01/07 04:16
동에번쩍서에번쩍 북에번쩍남에번쩍 그저 칼차고 날아다니기에 바쁩니다. 잡히면 끝이지요. 만주에서 몽골에서 기다리는 식구들이 있는데 여기서 잡히면 끝입니다. 목을 치는건 겨우 면한다 해도 평생 잡혀서 머슴을 살아야 합니다. 절대로 잡혀선 아니 됩니다. 아가운 미녀들을 다 어찌하겠읍니가. 다 내것인것을. 치마만 둘렀으면 숨을 예정 입니다요. 아가야 이리온 손좀 줘 봐라 이 예쁜손으로 내 밥좀 해주지 않겠느냐. 잘못 들었나 내귀를 의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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