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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포지션
앞선 글을 쓰면서 거기서 밝힌 포지션은 좌 우 양쪽의 견해와 대립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과연 그렇게 되는군요. 이런 구도는 폴 크루그먼이 묘사한 케인스를 둘러싼 3파 진영의 입장과 흥미로울 정도의 오버랩을 보여줍니다.

다른 주요 지적 공헌들처럼 케인스의 사상도 심하게 비판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뿌리 깊은 원인이 있기에 대규모의 경제 침체가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경제 침체는 본질적으로 신호 혼선의 문제에 불과하며 이는 돈을 약간 더 많이 찍어냄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는 케인스의 주장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집권 초기에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대공황 극복을 위해 통화 증발 계획을 제안한 메모를 받았다고 한다. 이 때 그는 “너무 쉽군”이란 말 한 마디로 기각했다고 한다).
좌파들 역시 오랫동안 케인스와는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마르크스 이래로 그들은 경기 순환을 자본주의 체제의 불안정성과 궁극적인 붕괴의 증거로 간주해 왔다. 그러므로 그들은 경기 순환이 제도상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도 해결될 수 있는 기술적인 문제라는 견해에 적이 실망하였다.
그러나 케인스에 대해 가장 큰 적개심을 보인 쪽은 언제나 우파였다. … 더욱 심각한 것은, 케인스가 정부 역할의 확대를 정당화한 것 같았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이 케인스를 싫어하였다는 점이다. 케인스의 경기후퇴이론은 경기 후퇴를 민간 시장이 일종의 교통 혼란에 빠져 버린 상황, 즉 정부의 조치만이 풀 수 있는 그러한 상황으로 본다. 케인스 자신은 결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고, 그의 친구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자본주의가 더욱 잘 돌아가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았지 자본주의를 대체해야 할 근거로 보았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항상 케인스의 경제학을 정부의 대대적인 시장 개입을 노린 미끼로 간주하여, 다른 대안을 모색하면서 케인스 주의를 거부해 온 것이다.

Krugman, Paul., Peddling Prosperity: Economic Sense and Nonsense in an Age of Diminished Expectations, W. W. Norton, 1994
(김이수, 오승훈 역, 『경제학의 향연』, 부키, 1997, pp.52-53)

제기된 논점 각각을 살펴보는 건 분량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이니까 순차적으로 이후의 포스팅에서 다루기로 하고,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구도를 보는 큰 틀에 대해 조금 다루어 볼까 합니다.


우선 왼쪽에서 제기된 견해를 살펴보지요.

전후 자본주의는 그 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였다기보다는 주로 임시변통적인 변수에 의해 "예외적으로" 작동하여왔다고 할 수 있다. 과도할 정도의 저유가(低油價), 이를 위한 침략전쟁, 이를 지원하는 군사력과 방위산업, 노동운동 해체/비정규직 확산 등을 통한 소득양극화, 이에 따른 소비침체를 이연시키는 모기지와 같은 대부(貸付)경제, 기축통화인 달러의 발권력을 이용한 과소비, 중국 등 신흥국으로부터의 저가상품 유입 등 몇몇 특수한 변수가 운 좋게도 그때그때 시장의 위기를 지연시켜왔다. 그리고 그 모순은 지금 폭발한 것이다. 이건 쓰나미가 아니라 화산폭발이다. 오랜 동안 마그마가 내부에서 응축되어 왔던 산에서 터진.

“결국 시장은 복구되어야 한다” (foog)

이 견해는 결국 '전후 자본주의에는 (근원적인) 모순이 존재하며 그것이 이제야 폭발한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는데, 이를 위 글의 녹색 강조 부분과 비교해 보면 그 유사성이 잘 드러납니다.

무엇이 근원적 모순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그것을 규정하는 방법에 따라 상당히 자의적이 될 수 있음을 다들 잘 아실 것입니다. 꽤 쓸만한 반론이 제기되어도 원래의 주장을 고수할 수 있을 때가 적지 않지요.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근원적 모순 대 신호혼선 논쟁의 핵심은 그것이 근원적이냐 아니냐 하는 개념적 부분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하냐 혹은 지금 수술이 필요하냐 같은 증상이나 처방의 부분에 달려 있습니다.

요컨대 내가 궁금한 점은 그것이다. 현재의 시장위기를 해결한 후 그것을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을 만큼 시장은 절대적으로 보존할 가치 있는 것인가? 또는 적절한 통제장치만 마련되면 시장은 다시 순수한 시장예찬론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상태의 시장으로 순화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만 되면 시장은 공산주의자들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하는 경기변동 및 공황의 두려움으로 해방될 수 있는 것인가? (같은 글, foog)

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는 순수한 시장예찬론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혀 저런 입장을 갖고 있지 않지요. 저는 "경기변동 및 공황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같은 만병통치약 약장수 놀이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저 뿐 아니라 제가 가끔씩 의견을 소개했던 조지프 스티글리츠, 폴 크루그먼,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같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앨런 블라인더는 『Hard Heads, Soft Hearts』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의 시각을 재치있게 묘사합니다.

"이성적인 개인으로서 우리는 두통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뇌수술(lobotomy)을 자청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전체로는 툭하면 …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 전두엽절제술에 맞먹는 처방을 내리고 있다. 왜인가?" (p.51)

우리가 제대로 된 수술법을 모르고 또 그렇기 때문에 감으로 진행되는 그 수술이 아주 위험한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그래도 수술을 해야 할까요? 감기약 좀 먹고 좀 지나면 평소처럼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면 어떨까요?

이러한 생각이 적절한 대증요법으로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여전히 끌고갈만 하지 않은가라는 시각을 낳게 됩니다. 크루그먼이 말하는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자본주의가 더욱 잘 돌아가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았지 자본주의를 대체해야 할 근거로 보았던 것이 아니"라는 입장은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 즉 이들은 이상적인 목표에 눈높이를 맞추는 대신, 현재 가능한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서 왜 '순수한 시장예찬론자'가 아닌 게 분명한 사람에게 저런 질문을 던졌나란 의문이 남습니다. 우선 이것은 전형적인 허수아비치기 전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 쉽죠. 그러나 전술 보다 한 단계 높은 배경도 있음직합니다. 근원적 모순을 강조하는 논법의 주요한 용도는 사람들에게 본격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OO의 근원적 모순"을 성토하는 대부분의 주장들을 돌이켜 보면 그것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수술(개혁이든 혁명이든)론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듯이 말입니다.

어찌 되었든 저는 근원적 모순론자들의 견해에 회의적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에 대한 보론을 한 편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제기된 한 견해를 살펴보지요. 이쪽은 기본적으로 번지수를 잘못 잡은 비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이 믿는 일종의 '리버태리언 신조'를 설파하는 방식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요.

전의 글도 그렇고 시장과 국가에 대한 오개념의 전형입니다. '시장'은 국가와는 달리 기구, 조직, 체제가 아닙니다. '시장'은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일 뿐이고, 자유주의자들이 시장을 믿는다는 말은 각 개인들이 자신에 관한 것을 타 개인보다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국가에 대립하는 시장이라는 조직을 믿는 것이 아니죠. 그러므로 '시장'과 '국가'의 대립은 허구적인 것이며, 대립이 있다면 개인의 자유와 국가 권력의 대립이 있을 뿐입니다. (산마로)

이 문단에는 반박의 여지가 아주 많지만, 그건 다음 글로 미루기로 하고 리버태리언에 대해 좀 더 주목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자유지상주의'라고 번역되곤 하는 libertarianism은 경제학의 사조라기 보다는 정치철학에 가까운 물건입니다. 이들은 무정부주의를 제외하면 주요 정치 사상들 중에서 정부의 역할에 가장 비판적이며, 그 논거들 또한 주로 윤리학이나 철학에서 출발한 것들입니다. 물론 이런 것이 규범경제학에 영향을 줄 때가 있긴 하지요.

리버태리언의 규범경제학을 좀 살펴보는 것은 이 집단의 성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자유주의자들에게 우월성과 적합성이란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파레토 개선의 성취 여부를 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님이 시장원리주의자들이 시장을 금송아지 모시듯 한다고 묘사했듯이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개인 자유 침해의 최소화'를 중요한 목적으로 두고 정책 수단을 모색합니다. (산마로)

후생경제학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파레토 효율성(Pareto efficiency) 또는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을 거론하니 이것을 예로 들어 보지요. 파레토 개선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누군가의 경제적 후생을 개선하는 행동이고, 파레토 최적이란 파레토 개선이 극한에 이른 상태, 즉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어떤 사람의 경제적 후생을 더 이상 향상시킬 수 없는 데까지 끌어올린 상태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파레토 최적이 정책논의를 위한 좋은 준거점이라고 생각하며, 파레토 개선을 달성할 기회가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여기까지는 별 이견들이 없지요.

파레토의 기준은 쉬운 말로 바꾸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열심히 일해 더 나은 삶을 살자" 쯤 된다고 할 수 있는데, 개인의 소박한 행동윤리로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문제가 되면 어떨까요?

파레토 최적이란 기준에는 중요한 숨겨진 특성이 있습니다. 즉 이 기준은 개인 복지의 절대수준만을 평가할 뿐, 서로 다른 개인 간의 상대적인 복지수준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유시장 완전경쟁의 결과로 부유층의 소득은 1년에 10%씩 성장하고, 빈곤층의 소득은 1년에 3%씩 성장한다고 한다면 이것도 엄연한 파레토 최적이라는 점입니다.

대개 이런 상황에서 진짜 리버태리언들은 당당하게 말하곤 합니다. "맞습니다. 점점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있지요. 그게 뭐 어떻단 말입니까. 그것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파레토 최적이라면 (리버태리언의) 윤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파레토 최적이란 개념이 언제나 이런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빈부격차가 줄어들면서도 파레토 최적인 결과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안 그런 경우도 많지요. 앞에서 든 예는 모든 간단한 준칙에 따르는 한계, 즉 간단한 준칙은 간단하기 때문에 거기 포함되지 못한 중요한 것들이 많이 남아있기 마련이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여기까지 오면 리버태리언들이 파레토 최적이란 개념에 집착하는 이유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것은 그 개념이 리버태리언들의 개인자유지상주의적 덕목이나 윤리관, 예를 들어 신성한 재산권 옹호를 위한 부의 재분배 반대 같은 것과 잘 맞기 때문입니다.

이제 리버태리언과 시장과의 관련성을 점검해 보겠습니다. 후생경제학에는 기본정리(fundamental theorem)라고 불리는 정리가 두 개 있습니다.

1. 완전정보 하의 완전경쟁시장은 파레토 최적이다
2. 모든 파레토 최적의 자원배분은 적절한 초기분배를 갖는 경쟁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이 후생경제학의 기본정리는 한 사회의 파레토 최적인 자원분배를 경쟁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즉 이제 리버태리언들은 정부의 개입이 없더라도 경쟁시장 메커니즘만 있으면 파레토 최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결과에 어떤 변화를 주고 싶다면 제2정리가 말하는 것처럼 정부가 적절한 초기세팅을 한 다음 뒤로 빠지고, 나머지는 경쟁시장에게 맡겨서 다시 파레토 최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국민경제에 있어 정부의 역할을 아주 작게 축소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후생경제학의 기본정리란 아주 강한 이론적 가정들, 즉 완전정보니 완전경쟁 같은 이상적 조건 위에서 성립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불완전 정보나 불완전 경쟁은 현실경제의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파레토 최적 상태가 아니고, 여기에는 파레토 개선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게 됩니다.

자 이제 앞선 논쟁으로 돌아가 보지요. 제 글이 하는 이야기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시장은 완벽하지 않으며 때때로 시장 실패 상황이 발생한다.
2) 시장 실패가 일어난 상황에서는 정부 개입 같은 대안들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잠재적인(potential) 가능성이 있다.
3) 1)과 같은 시장 실패 상황에서도 '시장이 할 수도 있는 여지가 있는 모든 일은 시장이 가장 잘 할 수 있다'라고 믿는 사람들이 2)의 가능성을 사전 봉쇄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시장원리주의자라 부름직하다.

그 글은 기본적으로 시장실패를 전제로 논하는 글입니다. 우리가 중대한 위기나 시장실패에 직면했는데도, 평소와 동일한 기준으로 시장 이용을 옹호해야 할까요? 시장이 잘 돌아갈 때야 시장을 이용하는 메커니즘이 설득력이 있겠지요. 그러나 모기지 기반 채권에서 보듯이 시장이 사실상 소멸되거나, 은행들 사이에서 서로 돈을 빌려주지 않고 몸을 사리는 shadow bankrun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교조적으로 그런다는 건 앉아서 죽자는 소리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순간에도 시장을 활용할 여지는 좀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시장 실패에 대응하는 정부 실패도 존재한다는 비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위기시에는 기준이 변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Kenneth Rogoff나 Gary Becker같은 사람들도 정부의 전액예금보호나 MMF 보장에 대해 '모랄 해저드 문제가 있다. 그러나 신경끊어라. 지금은 위기다.'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즉 시장실패를 전제로 하는 글에 대해 반론이라고 리버태리언의 교리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이야길 들고나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기와 다른 의견을 상상하지도 못하는 광신도들이 자신의 가치 판단을 의식하지 못하곤 합니다." 같은 이야길 들이밀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고 말해줄 수 밖에요.

어찌 되었든 리버태리언이 발끈하는 현상은 크루그먼이 묘사한 "정부의 대대적인 시장 개입을 노린 미끼로 간주하여, 다른 대안을 모색하면서 … 거부"라는 바로 그런 상황이지요. 사실 이런 식의 거부를 너무나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불필요한 분란을 피한다는 차원에서라도 앞선 글의 마지막 부분에다가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이탈해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상황이 해소되면 시장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재확인차 넣었던 것입니다.

리버태리언 사상과 관련된 철학적, 윤리적 논쟁은 깊이도 상당하고 쉽게 끝날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만, 윤리/철학 논쟁을 피하고 시장실패와 관련된 지금 제기된 수준의 이야기에 대해서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짚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에 대한 보론도 한 편 쓰도록 하지요.
by sonnet | 2008/10/30 23:16 | 정치 | 트랙백(1) | 핑백(1) | 덧글(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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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Periskop ove.. at 2008/11/03 14:26

제목 : 시장이냐 정부냐 그것이 문제일까
요즘 마무리 지을 보고서, 논문이 줄줄이 있는 관계로 맘 편히 블로그 글을 써댈 처지가 못 된다. 그나마 어느 정도 수습을 하고 돌아와 보니 예로부터 이어져온 시장과 정부 역할의 조화 문제에 대해 이웃 블로거 분들께서 의견을 펼쳐놓으셨다. 시장원리주의에 대한 단상 (sonnet) "결국 시장은 복구되어야 한다" (foog) 시장 원리주의적으로 생각하기 (sprinter) 논쟁의 포지션 (sonnet) 몇 가지 변명과 질문 (sprinter)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11/11 11:19

... 지난 글</a>에서 자세히 다루었지만 재확인하는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근원적 모순론은 다음과 같은 시각을 말한다. 전후 자본주의는 그 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였다기보다는 주로 임시변통적인 변수에 의해 "예외적으로" 작동하여왔다고 할 수 있다. … 몇몇 특수한 변수가 운 좋게도 그때그때 시장의 위기를 지연시켜왔다. 그리고 그 모순은 지금 폭발한 것이다. (foog) 그리고 이런 시각에서 자연스럽게 유도되는 문제가 뿌리깊으므로 본격적이고 커다 ... more

Commented by PAIN at 2008/10/30 23:42
어헛 일등같으니 기념으로 덧글 한줄.. 잘읽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05 20:10
네엡.
Commented by Ya펭귄 at 2008/10/30 23:42
심장은 평소에는 (동적안정영역에서)잘 뛰지만 가끔 심장마비에 걸릴 때도 있으며 그럴 경우 심장을 다시 정상적으로 뛰게 하기 위해서는 전기충격기(정부의철권)가 직빵이라는....
Commented by 愚公 at 2008/10/31 10:18
전기충격기 가지고 되겠습니까. 흉부 절개를 하고 심장을 직접 마사지해야 합니다. -.,-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05 20:15
그게 과거엔 케인스주의자들의 전매특허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이 (저명한 반 케인스주의자였던) 마틴 펠스타인이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촉구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론적인 논쟁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학계 주류의 흐름이 역전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Alias at 2008/10/30 23:4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흥미로운 주제지요.. 주제넘게 약간 말을 덧붙이자면..

뭔가에 대한 근원적인 치료라는 건 대개 그 "근원적" 이라는 범주규정 자체가 임의적으로 규정된 경우가 많은데 이 점이 종종 간과되고 있죠. 예를 들면, 관상동맥의 막힘 현상을 치료하기 위해 혈관을 넓혀주는 협심증약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스텐레스 그물을 삽입하여 강제로 넓힐 거냐의 비교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범주에서 그물 삽입이 근원적인 치료처럼 보이지만, 그건 순전히 상대적인 비교에 불과하니까요.. 그물을 삽입하는 것보다는 아예 다른 신체부위의 혈관을 떼다가 이식하는게 더 근원적인 치료라고 주장할 수 있고, 그보다 더해서 아예 심장을 통째로 들어내고 인공심장 이식하는게 더 근원적인 치료라고 주장할 수도 있죠...-_-; 더군다나, 제가 앞서 든 사례들은 1<2<3<4 의 순서대로 비용이 증가하는 예죠...-_-;
Commented by Alias at 2008/10/30 23:47
자본주의 때려치우자는 주장은 까놓고 말해 협심증이 있는(그것도 가슴통증을 겪긴 하지만 당장 목숨이 넘어갈 상황은 아닌) 사람에게 약물처방은 근원적인 치료가 아니니 심장 들어내고 인공심장 (아직 10년 스케일로 동작하는 물건 없죠? 협십증약물은 십년넘게 잘 먹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장착하자고 주장하는 거랑 비슷한 소리로 들립니다..-_-;
Commented by foog at 2008/10/30 23:49
'순수한 시장예찬론자'가 아닌 사람에게 '근원적 모순론자'가 허수아비치기 전술을 구사했냐면서 살짝 잽을 피하시는 모습은 조금 실망스러운데요? :) 결국 sonnet님도

"시장원리주의자와 반시장주의자 같은 극단주의자들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성공적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이럴 경우에 대해 스티글리츠는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앞서의 글에서 '결국 시장은 복구되어야 한다'는 스티글리츠의 글을 인용하면서 '성공적으로 균형'을 잡았다고 멘트하셨으니까 저는 그에 대한 일종의 (보론적) 반론으로서 님께 질문을 던진 것이랍니다. 정말 '결국' 시장으로 복구되어야 한다면 어떠한 시장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랄 수 있겠지요.

아무튼 좋은 글은 늘 그렇듯이 잘 읽었습니다. :)
Commented by foog at 2008/10/30 23:51
비유법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다른 이의 주장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윤색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굳이 뇌수술 이야기는 왜 언급되었는지 저는 잘 이해가 안 되네요. :)
Commented by 2017 at 2008/10/31 00:07
원래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감기를 잡기 위해 긴축정책이라는 뇌수술을 왜 하는가 라는 논지로 아는데 저도 좀 그게 궁금...... 이해가 약간 안되네요.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10/31 01:44
그러니까. 뇌수술이 언급되는 이유는 지금까지 해왔듯 현체제에 수정을 가하면 되는일을
체제 자체를 갈아야 한다라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을 비유하기 위한게 아닐까요
Commented by foog at 2008/10/31 06:47
비유의 취지야 저도 어느 정도 짐작합니다. 제 블로그에 따로 글을 쓸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로서는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 다섯개가 거의 골로 가고, 미국이 사상최대의 재정적자가 확실할 구제금융을 통해 이들을 부분국유화하고, 전 세계 부동산 침체는 장기화 조짐이 거의 확실하고,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미국과 IMF에 돈달라고 아우성치고, 몇몇 국가는 이미 모라토리엄 증세를 보이는 ... 이러한 위기가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큰 작금의 상황을 "두통 감기" 정도로 치환하시는 그 배포가 부럽기도 하고요. :) 또한 "만약 다시 시장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면 우리는 이전의 시장에서 상상할 수 있었던 몇 가지 핵심적인 구성요소를 버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라는 제 멘트가 sonnet님의 표현에 의하자면 "두통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뇌수술(lobotomy)을 자청하지는 않는다"는, 통상의 비유로 들자면 '이쑤시개 하나 얻으려고 고목을 베는' 그런 무지막지한 충격요법이라고 여겨지는 지가 좀 의아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

요컨대 비유법은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는 편리한 방법이기도 하되 논의의 더 정밀한 전개를 가로막는 장애가 될 위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
Commented by 일화 at 2008/10/31 10:11
사카키바라의 글을 읽으면서 뭔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었는데 foog님의 글을 읽다보니 그게 위기에 대한 평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작금의 상황은 분명 위기지만 결코 예외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원래 시장이라는 것은 10~20년에 한번 꼴 정도로 위기를 겪는 것이 경험적으로 관찰되고 있으니까요(여담이지만 부자아빠~로 유명한 로버트 기요사키는 이걸 20-10-5주기설이라고 명명하고 있죠) 따라서 현재의 사태는 분명 시장 외부(대체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기는 하지만, 시장의 핵심적인 구성요소 중 일부를 버려야만 하는 상황은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지만, 이런 위기를 과대평가하는 일본인의 집단적인 특성이 한 원인이라는 해석도 가능할 듯 합니다.)
Commented by autrian at 2008/10/31 12:25
저는 foog님이 지나치게 과장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아직 실물부분의 경제가 심하게 나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공황 시절과 비교해서 말이죠. 금융 부분이 경제의 핏줄인 만큼 이런 결과가 실물부분에 더 반영될 것 같기는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의 데이터로 봤을 때는 그렇게 세상 망하는 것 같이 굴 정도는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진짜 경제가 뇌사 상태에 들어 간다고 하려면 최소한 대공황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업률이 20-30%는 왔다 갔다하고 큰 폭의 마이너스 경제 성장을 기록해야 되겠지요. 그래서 사회가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혼란이 올 쯤은 되어야 "뇌수술"을 언급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일본이 10년 장기불황이나 서유럽의 90년대 저성장 기조 때 실업률이 10%를 넘어갔지만 사회적으로 커다란 혼란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그쪽의 서민들이야 경제적으로 고통은 받았겠지만 그렇다고 과거 소련 처럼 집단 농장 실패로 수백만명이 꿂어 죽는 형태의 극단의 고통도 아니였지요. 제가 자유시장 옹호론자 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케인즈식의 치료 방법을 적용할 여지는 있다고 봅니다. 물론 저는 다른 방법을 선호하지만요.
Commented by foog at 2008/10/31 13:08
autrian님/autrian님의 댓글이 바로 제가 원글에서의 비유법의 부작용으로 우려한 바인데요. "뇌수술"을 언급한 이는 제가 아닙니다. 바로 sonnet님이죠. 그리고 제 입장을 "케인즈식 치료방법"의 좌측으로 놓은 것도 sonnet님입니다. 비유법과 공세적 포지셔닝의 절묘한 결합이라고나 할까요.
Commented by reske at 2008/10/31 21:15
foog/
"개인적으로 위 질문 중 어떤 것에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것에는 회의적이다. 전후 자본주의는 그 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였다기보다는 주로 임시변통적인 변수에 의해 "예외적으로"3 작동하여왔다고 할 수 있다. 과도할 정도의 저유가(低油價), 이를 위한 침략전쟁, 이를 지원하는 군사력과 방위산업, 노동운동 해체/비정규직 확산 등을 통한 소득양극화, 이에 따른 소비침체를 이연시키는 모기지와 같은 대부(貸付)경제, 기축통화인 달러의 발권력을 이용한 과소비, 중국 등 신흥국으로부터의 저가상품 유입 등 몇몇 특수한 변수가 운 좋게도 그때그때 시장의 위기를 지연시켜왔다. 그리고 그 모순은 지금 폭발한 것이다. 이건 쓰나미가 아니라 화산폭발이다. 오랜 동안 마그마가 내부에서 응축되어 왔던 산에서 터진.

만약 다시 시장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면 우리는 이전의 시장에서 상상할 수 있었던 몇 가지 핵심적인 구성요소를 버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예외적인 변수들 말이다. 저것은 전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예외적인 변수였지 모든 시장에 항상 따라다니는 행운의 과자들이 아니다."


->foog님이 핑백된 글에서 실제로 뇌수술에 해당하는 급진적인 해법이나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으셨다고 봅니다. 그러나 제가 인용한 부분에서 보듯이, 시장 자체에 뭔가 근본적인 모순이 있고, 또 그러한 근본적 모순 때문에 이번 사태가 시장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수반하리라고 보는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foog님의 견해는 이번 사태가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을 드러내는 징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우파진영과는 다소 차이점을 보이는 듯하는군요..
Commented by 일화 at 2008/10/31 01:13
누가 말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는 모두 케인지언이다'라는 말이 사실이 되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릴 듯 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05 20:18
그건 리처드 닉슨의 말인데, 사실 그 시점부터 정책전선에서 케인스주의가 크게 퇴조한 것은 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어쨌든 그 구호가 요즘 다시 부활하는 듯한 느낌이 드니, 세월은 돌고 도는 것일까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10/31 01:19
보론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히려 양측 부류야말로
시장에 대해 진정으로 '공포'를 가진 부류들인가 싶은 생각도...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05 20:18
좀 바빠서 밀렸는데, 보론을 곧 쓰도록 하겠습니다. ;-)
Commented by austrian at 2008/10/31 01:45
후생경제학의 기본 정리 두가지는 1930년대 코스가 거래비용의 걔념을 정립할 때 부터 이미 현실성에 많은 의문점이 있었습니다. 현실세계에서는 실제로 파레토 우위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방해하려는 무수한 비용들이 산재 하지요. 하지만 이것이 곧장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다는 논리는 아닙니다. 왜냐면 코스의 또다른 정리 때문인데 "거래비용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은 재산권으로 부터 독립적이다."라는 것입니다.
제가 과거의 초기의 시장주의자들의 첫번째 한계가 바로 이것이 었다고 봅니다. 시장 경제를 작동하게 하는 하부구조(제도, 법, 정치세력 등)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선진국에서 주로 경제학이 발전하다 보니 시장 경제를 작동하게 하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을 간과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단순화된 가정에서 출발해서 완전균형에 도달하는 "아름다운" 결과를 도출하고는 거기에 넋이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시장주의자들이 이런 자신감을 가질만하데에는 역사적으로 시장경제가 대체로 경제 성장에서 우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거의 도그마에 가까운 시장우위론이 등장한 것도 무리는 아니죠.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근본적인 수단은 바로 전 사회가 확실히 보장하는 재산권 체제이죠. 말년의 밀턴 프리드만이 "이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시장 경제에 앞서 법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이라는 소회를 밝힌 것은 이런 깨달음으리고 할까요. 게다가 경제학자인 하이에크가 <자유헌정론>이라는 책을 쓰면서 법연구에 빠져 있었던 것은 괜한 이유는 아닌 것이라고 봅니다. 최근 신제도학파가 부흥하고 경제적 제도의 개념을 확장시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라고 봅니다.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10/31 01:47
현 세계에 이상기후를

인간의 지나친 개발로 인한 균형붕괴이며 인류가 멸망할수 있는 조짐으로서
이제껏의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해석되는 경우와

단순히 지구가 이제껏 지나쳐 왔던 변화의 일부분이다라고

같은 현상이 두가지로 해석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네요
Commented by austrian at 2008/10/31 02:00
그다음 시장주의자들의 두번째 한계는 시장을 지나치게 정적인 상태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일단 파레토 최적점인 계약곡선상에 올라가게 되면 거기서 일단 균형은 끝이 납니다. 또한 초창기 신고전학파의 거시모형은 항상 일정상태로 돌아오게 되는 왈라지언 일반균형상태였기 때문에 어떠한 정부개입도 무의미한 결과만을 가져왔지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시장은 그런 정적인 상태가 도달하기도 전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계속해서 기준점도 변화하게 된는 것이죠. 따라서 이 한계점들을 극복한다면 시장주의자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먼저 실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도 하나의 정치시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반 경제 시장에 비해 파레토 효율 원칙에 있어서 사실 선거가 자원 배분 효과가 뒤떨어집니다. 게다가 수익자부담 원칙이란 측면에서도 선거가 일반 거래 시장보다 기준을 더 만족시켜주기 힘들죠. 따라서 민주주의의 한계를 일정 정도 거래 시장이란 정치력으로 견제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특히 정부의 거시적인 경제 정책 상당수가 실제로는 소수의 엘리트 수중에 떨어져 있는점을 지적하여 정부의 임의적인 행동 또는 즉흥적인 행동을 상당수 견제한다는 측면에서도 여전히 시장주의자들의 역할이 긍정적이라고 개인적으로 판단합니다.
Commented by 일화 at 2008/10/31 05:02
제가 본 글 중에서 가장 깔끔한 옹호글이 아닌가 싶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다만 현대경제학에서 시장주의자들은 개인 내지는 시장의 합리성을 강조하는데, 이것 또한 극복해야할 한계점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umberto at 2008/10/31 04:00
저도 사실 산마로씨에게 궁금한게 하나 더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열심히 이영훈-낙성대연구소에서 주장하는 경제사 관점을 고집하던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조선총독부의 경제개발이나 박정희의 경제계획은 하이에크나 프리드먼의 주장과는 까마득한 간격이 벌어져 있는데 말이죠. 사실 박정희는 프리드먼과 가깝다기 보다는 스탈린과 더 가까운거 아닌가요? (^^)

한국의 보수우파들은 철지난 개그 "그때 그때 달아요."처럼 때에 따라서 프리드먼이 되었다가 박정희가 되었다가 변화무쌍하긴 한데 뭔가 족보가 이상하더라 말입니다. 청와대에 있는 분도 그렇거니와 어떨때는 이영훈 교수도 양쪽을 왔다 갔다 하시더군요. 그런데 진짜 한국에 'libertarian'들이 있긴 있는 걸까요?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10/31 11:07
아이디를 꾸준히 쓰다보니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당연히 조선총독부와 박정희는 자유주의와는 몇광년 떨어져 있지요. 그런데 조선왕조나 박정희 반대자들은 몇십광년 떨어져 있습니다. 어느 쪽을 옹호해야 할까요?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10/31 11:38
당시 우리나라에 서구 기준의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집권가능성 있는 정치적 세력을 찾을 수 있었다면 당연히 그 세력을 옹호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현실적으로 시장과 시민사회에 한치라도 더 가까왔던 쪽을 긍정적으로 볼 수밖에요.
Commented by umberto at 2008/10/31 16:31
리버테리안과 조선총독부, 박정희는 몇광년 이요, 조선왕조나 박정희 반대자들은 몇십광년이라??? 근거를 좀 대주시죠. 제가 보기에는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방식은 조선총독부나 스탈린이나 오십보, 백보처럼 느껴지던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11/01 09:40
umberto//시장은 개인 간의 자유로운 합의가 이루어지는 장소라는 정의는 리버태리언-자유주의과 상관없는 국어사전적 정의입니다. 도리어 그 정의에 기반해서 자유주의 정치철하이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죠. 시장이 '개인'이나 '자유'가 등장하기 전부터 있었다는 발언은 근대적인 개인이나 자유 개념이 등장하기 전부터 인간 사회가 권력의 강압 없이도 개인들 간의 합의가 가능했다는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증거일 뿐이고요. 시장을 유지하는 데에 법이나 관습,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시장의 위와 같은 정의에 대한 반론이 되지 못합니다. 아무 규범도 없는 '인간'이 가능하다는 전제는 시장의 '자유로운 합의가 이루어지는 장소'라는 사전적 정의에 불필요하지요. 자유가 무규범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유가 '합의'를 수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의 정의 자체 내에 함의되어 있지요.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10/31 11:22
여전히 오개념으로 점철된 반론인 것 같군요. 근원적으로, 정책이 정치철학과 관련이 없거나 희박하다고 보는 것을 글쓴이 자신은 진심으로 믿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이는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의심의 대상으로 놓지 않고 있거나 의심할 능력이 없는 징후 중의 하나입니다. 자유주의(자유지상주의보다는 고전적이라는 말을 선호함) 정치철학에 따르면 시장(개인 간의 자유 합의가 실현되는 장소)은 일차적으로 우선되어야 할 정책수단입니다. 시장실패가 있더라도 자동적으로 정부개입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며, 이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에 따른 당연한 기본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위기시에 변하는 기준을 규정하는 것은 누구이며,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설마 위기 시에 기준이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시장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 목적의 하나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고려해야 할 수단은 시장친화적인 것이어야 하죠. 즉 시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 당연하며, 위기 시의 대응도 시장을 일차적으로 고려하고 난 다음의 최후의 수단으로서나 정부 개입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글쓴이의 본문은 시장을 수단으로만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을 우선 고려해야 하는 필요성을 부정하고 시장을 우선 고려하는 이들을 시장원리주의자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글쓴이의 정치적 가치관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글쓴이는 계속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구체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전히 제가 쓴 이전의 댓글의 비판은 유효합니다. 글쓴이가 집단의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임을 당연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10/31 11:24
최후의 수단으로서 정부 개입을 고려할 수 있다면 이미 시장과 정부는 보완적인 것이겠지요^^;;;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10/31 11:32
그런 식의 시장-정부 관계라면 시장 아나키스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이 수용하지요. 그런데 사카키바라의 최초의 글도 그렇고 연속되는 sonnet의 글이 시장 아나키즘을 비판하기 위한 것 같지는 않군요. 연속되는 글은 모두 시장을 일차적인 정책수단으로 고려하려는 '노력'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10/31 11:46
댓글을 읽으시는 다른 분들께 논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본문의 다음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파레토의 기준은 쉬운 말로 바꾸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열심히 일해 더 나은 삶을 살자" 쯤 된다고 할 수 있는데, 개인의 소박한 행동윤리로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문제가 되면 어떨까요?' 글쓴이가 사회적인 문제에서 집단의 관점에 서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문구이지요. 다른 말로 하면 '특정 개인에게만 피해를 줘도 집단이 나아질 수 있다면 상관없다'가 되니까요.
Commented by 야채 at 2008/10/31 13:05
시장이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보는 것이 바로 시장원리주의입니다. 저로서는 시장근본주의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적합해 보이는군요. "사회 전체가 잘 돌아가는 것보다 시장이 잘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씀까지 겹치면 더 말할 것도 없죠. 더구나 그 이야기를 "집단의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임을 당연시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면, 결국 "시장이 잘 돌아가는 것이 최고의 가치다"라는 의미가 되지 않습니까? 그 점을 의식하셨는지 산마로님도 파레토 최적 문제를 다루셨지만, 이 글에서 sonnet님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 이외의 '특정 개인에게 피해를 주는' 방안을 언급하지 않으신 이상 다른 의미로 해석할 방법이 없죠.

개개인이 파레토 최적에 도달하는 것과 그 결과 시장 전체가 파레토 최적에 도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더구나 개개인이 정말로 파레토 최적에 도달해 있는 것도 아니죠. 그렇다면 '패닉'은 대체 무엇으로 해석하겠습니까? 게다가 '내쉬 균형점'이 하나가 아닌 이상 균형 상태에서의 개개인조차도 파레토 최적에 도달해 있다고 볼 근거도 사실은 그다지 단단하지 않습니다. 전체 구성원이 파레토 최적에서 거리가 먼 균형점으로 달려가고 있다면 목에 정부가 밧줄을 걸고 끌고 올 충분한 이유가 있는 셈이죠.

목적 자체가 기한 한정적이고 구체적인 경우 거의 모든 경우에 시장보다 관료조직이 효율적입니다. "최고의 자동차를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적당한 수량 만큼 생산하자" 같은 추상적인 목표는 시장에 맡기는 게 좋죠. 하지만 그 시장 안에서 "어떤 자동차를 어떤 재료와 스케줄로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를 결정한 기업들은 관료조직을 통해서 생산과정을 철저하게 관리하지, 결코 노동자들과 관리자들이 시장원리에 따라 '파레토 최적'을 달성하도록 풀어놓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종류의 시장근본주의자라도 기업 내부를 시장원리로 조직해서 노동자들에게 완전한 자유시장의 생산자로서 존재할 권리를 주라고 종용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효율이 턱없이 떨어지니까요. 그렇다면 정부도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시장에 맡기는 것이 효율이 턱없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개입하라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주장은 아닐 겁니다.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8/10/31 13:24
일단 대제폐하의 정치적 포지션에 대해서는 이쪽을 참고하십시오.
http://sonnet.egloos.com/3026982

감히 한 말씀 드리자면, 산마로님의 문제는 지금 막 다가온 위기에 대해서 어떤 처방을 해야 할까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아니라 libertarian의 교리를 설교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교리에 sonnet님의 생각이 어긋나기 때문에 "오개념"이니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의심의 대상으로 놓지 않고 있거나 의심할 능력이 없는 징후"라는 멸시적인 어투가 문장에 그대로 드러나는 거고 말입니다.

뭐 "글쓴이의 본문은 시장을 수단으로만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 목적의 하나" 라는 문장이 역으로 드러내긴 하지만, 역시 시장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sonnet님의 금송아지 비유는 적절하다 하겠군요.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10/31 13:34
Executrix / 그것과는 다른 문제가 여전히 있습니다. 전시의 정부 통제 강화와 평상시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둘의 비교 기준이 같아야 합니다. 정부의 효용을 극대화 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 개개인의 효용을 극대화 하는 것인지, 어쨌든 비교 대상은 같아야 비교를 하든지 말든지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이유로 전시를 사례로 드는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10/31 14:38
Executrix //사카키바라의 글에서부터 연속되는 글에 무슨 정책 제안이 있기나 했습니까? 그 글들은 특정한 정책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비난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으라고 요구받아야 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블로그 주인장이죠. 당연히 비판에서 면제된 대상이 아니고, 비판자는 자기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죠. 그럼 내가 아무 입장도 없는데 비판하겠습니까? 그리고 제 입장이 무엇인지도 밝히지 않고 어떻게 비판합니까? 아예 비판을 하면 안되는 신성한 글이라고 블로그 주인장을 옹호할 것이 아니면 제가 리버태리안 입장에서 가하는 비판에 대한 명확한 반론이 있으면 그만입니다. 또 문장이 늘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계속 시장이란 용어를 쓰고 있긴 하지만, 제가 금송아지로 숭배하는 것이 있다면 개인의 권리입니다. 이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오개념이란 비판을 하며, 용어 설명을 처음에 했던 것입니다. 처음의 댓글부터 차근차근 읽어주기를 부탁합니다.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10/31 14:51
다시 기초부터 설명하자면 '시장'이란 '개인 간의 자유로운 합의가 행해지는 장소'입니다. 중학교 때 배우는 이 내용을 잊거나 고의적으로 무시하면 집단의 효율성과, 시장이 잘 돌아가는 것이 같은 것인 줄 아는 초보적인 오류가 생깁니다. 단어의 정의 상, 시장에 개입한다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를 억압하고 강제함을 뜻합니다.
Commented by umberto at 2008/10/31 16:39
왜냐하면 소넷님은 회색분자(^^) 거든요. (부정적인 함의는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덩샤오핑 같은 사람인데, 그럼 사람에게 마오의 '주자파' 같은 소리를 하다니;;;;; 으흐흐.

산마로님의 글을 읽다 보면 역시 리버테리안이란 경제적 효율성이나 경제법칙의 객관성 보다 신념을 강조하는 콩사탕의 또 다른 버젼 같아 보입니다. 일단은 경제 논쟁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꾸 윤리학이나 철학, 정치사상으로 신념을 설파하신다면 논쟁이 산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서양의 자유관념에 대해 서양 자유관념의 한계나 폭주를 지적한 전남대 교수 김상봉의 주장을 끌어와서 반박을 할 수도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일단 경제학 범주를 넘어가게 되므로 곤란하죠.
Commented by umberto at 2008/10/31 16:45
'시장'이란 '개인 간의 자유로운 합의가 행해지는 장소'라는 것도 리버테리안 끼리나 통하는 정의일 뿐, 이게 실제 시장의 모습에 대한 정확한 정의인지는 알 수 없지요. 시장은 '개인'이나 '자유'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고, 또한 '개인 간의 자유로운 합의가 행해지는 장소'라는 정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법과 관습, 판례, 사회적 합의, 교육이 필요 하다는 것을 인지 하시는가도 궁금합니다.

예를 들자면, '스탠다드오일'을 해체시킨 미국 법원의 판결도 '개인 간의 자유로운 합의'를 독점기업이 반대하기 때문에 해체시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른바 한국의 '리버테리안' 중에 재벌들의 독과점체제를 해체 하자거나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을 강화 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11/01 09:28
규범 경제학에서 철학이나 정치이론을 빼놓고 얘기하자니, 뭘 얘기하자는 건가요? 농담 따먹기? 연속되는 이 블로그의 글이 이런 정책대안을 취하면 현재의 불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글이기라도 했다면 제가 댓글을 달 이유도 없었겠지요.
Commented by 야채 at 2008/11/01 15:30
산마로님은 계속 정부의 개입만 없으면 모든 경제주체는 자유 시장에서 완벽한 권리를 누릴 수 있으며 단지 정부의 개입만이 그런 자유를 위협하는 원인이라는 식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많은 경제주체가 그러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제가 저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깡패의 '자기 신체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을 두들겨 팰 자유'를 억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과 같습니다. 대공황 때의 아이들은 그냥 거리를 배회할지 썩어가는 농작물에 손을 대려다 총에 맞아 죽을지 선택할 자유는 있었지만 일자리를 얻을 권리는 없었죠. (물론 희망 없는 노력을 계속할 자유는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덮어놓고 자유 자유를 외친다고 자유가 공짜로 떨어지지는 않는 법입니다.

더구나 산마로님의 주장은 자의적이고 편파적이기까지 합니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기업이라는 관료조직에 종속됩니다. 자기가 일할 기업을 찾을 때는 나름대로 시장원리에 따를 수 있겠죠. 하지만 일단 취업을 한 후에는 관료조직의 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한 노동자가 이 부품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조립할 것인지 그때 그때의 효용을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움직입니까, 아니면 회사에서 계획하고 결정한 대로 움직입니까? 당연히 후자입니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생산자로서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시장원리가 아닌 명령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장에서의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 중 아무도 기업 내부의 경영에 시장원리를 전면적으로 도입해서 노동자가 어떤 방식으로 작업할 것인지를 개개인의 효용에 따라 결정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산마로님 이외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모순이 아닙니다. 그들은 시장원리를 요구하는 편이 "잘 돌아가기 때문에"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이지 시장에서의 자유 자체를 근본적인 원리로 상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산마로님은 그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적용되는 '기업 내부에서의 명령 원리'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오로지 정부의 개입만이 시장원리대로 움직일 자유를 제한하는 유일한 이유나 되는 듯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게 모순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규범 말씀을 하셨지만, 자기 입맛대로 같다 붙였다 제외했다 하는 것은 규범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Commented by 이상한점 at 2008/10/31 13:19
사람들이 잘사려고 시장이 있는거고,정부의 개입이 있는거지요.

시장이나, 정부의 개입을 위해 사람들이 살아야만 합니까?

너무 간단하고 당연한게 아닌가요?

어떻게 그걸 오해할수가 있지요?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10/31 13:34
사람이 잘 산다는걸 정의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문제인거죠. 사실은.
Commented by nolog at 2008/10/31 13:46
핵심을 집으셨네요.
본문에 있는 정치적, 시장적 논의를 모르는것은 아니지만
소위 '학자'의 자부심에 쩔어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학문을 위한 학문을 하지. 삶을 위한 학문을 하는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삶은 수치화할수없는 요소들이 산재되어있고. 학문들은 삶을 잘 살기 위해 고안된것에 불과해요. 그렇지 않나요?

요새는, 학문을 위해 삶을 살기도 하지만요(그래야 잘 살고 대접 받고 살 수 있기 떄문이죠... 수단을 추구하다보니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렸다고나 할까) 그래서 많은 '배운'자들이 까먹는것이 있습니다.

학문은 삶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이며. 우리가 추구하는것들도 결국 '잘 살려면 저렇게 되어야 한다'라는 뜻의 명제들일 뿐인데
과연 그걸 추구하면 잘 살수 있을까? 라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저렇게 하면 잘 살거야 라는 맹목적 추종, 그리고 한발짝 더 나아가 논쟁이 붙으면 이론을 위한 논쟁이 되어버리곤 하지요

로버트 기요사키의 10-15-20년 주기설도, 원인이 있기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냥 그런게있나봐~ 원래 그런거야 라고 하는게 아니란거죠.

자꾸 기침을 하면 "가끔가다 한번씩 그래~" 라고 말하기보단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는게 낫습니다. 혹시 암일줄 누가 알아요??

경제를 어떻게 하면 계속 발전시킬수 있을까..라고 말씀 하셨나본데
시야를 국가가 아닌 지구촌 전체로 한번 넓혀보세요.
미국 유럽의 금융, 실직자 문제에서 벗어나 아프리카 말레이시아 베트남 르완다쪽으로도요.
봉사활동을하라는것이 아닙니다.

다만 시장경제는 이미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것이 되었습니다.
지구가 한 가족인 셈이죠. 지구가 하나의 국가구요. 이미 쌀은 외국에서 수입해다 먹지 않나요 ^^ 그렇다면, 그중 몇명만 흩어보는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흩어보셔야 될 겁니다.

이미 중병이 들다 못해. 곪아 터지기 직전이라는걸 알수 있을겁니다.

제도가 사람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모든것을 움직입니다.

경제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람의 행동들이 많죠.
하지만 사람이 경제를 합니다.

어설프게 떠들어서 죄송합니다.
Commented by nolog at 2008/10/31 13:59
주인장께서 계실것 같아서 곧 지웁니다.
제가 자본주의를 잘 아는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생산을 위해서는 요소가 투입되어야 합니다.
지구촌 전체로 보면 그건 천연자원, 인적자원 정도로 크게 나눌수 있겠네요
기술적 요소가 포함된다고 하지만 그건 수단일 뿐이고
어쨌든, 모든 일은 사람과 자원으로 이루어집니다.
기계로 이루어진다고도 하시겠지만. 퍽이나 많은 기계가 움직이겠습니다.
어떤 산업이든 사람의 개입이 없으면 이루어지는건 없습니다. 설마 옷을 공장에서 프레스로 찍어서 나온다고 믿는건 아니시죠 ^^;

그런이유로 투입되는 자원은 지구의 천연자원 + 인적자원인겁니다.
경기지표같은건 모두 상황이 어떤지 추측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자본주의의 곁다리입니다. 2차, 3차 창작(?)을 하여 수익을 얻는 것이죠.

하지만 현재 지구의 천연자원도, 아니 그 전에 인적자원이 고갈상태입니다.
세계적으로 불균형인건 아실 겁니다. 지금은 국가 내부에서가 아닌 세계적인 불균형 상태입니다.
식민지 수탈은 오래전에 끝났다고 하겠지만. 지금도 한국을 포함한 여러 선진국(인구의 몇프로도 안된다죠)는 후진국을 수탈하는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괜히 노학자가 말년에 법에 관심을 갖는게 아니겠죠? 국내법도 개판인데. 국제법 특히 다국적기업들의 외국 착취는 어찌 재제할수도 없죠. 그래서 더 해외로 나가는것이고)

또한 각 국가 내부에서도 수탈상황이 벌어지고 있구요 (이건 양반입니다..)
여기서 수탈이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명백히 이런 상황은 '인적자원을 깎아먹습니다.'
즉. 사용할수 있는 자원을 계속 감소시킨다는거죠.

사람들이 불만이 쌓이면 사회적 불안전성은 가속화되고. 그게 어떤 식으로든 표출이 됩니다. 한국의 촛불시위가 대표적인 예죠 (제가 이걸 보고..제 예상이 틀리길 항상 바랬었는데 사실이 된거 같아서 많이 씁쓸했습니다.) 아랍권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안전성과 불만이 쌓여서. 경제 주체인 사람들이 제도에 반박하기 시작하는겁니다.
제도는사람을 만들지만 그 사람 역시 새로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복잡하게 석유니 기름이니 미국이니 하고 따지고 들지만 결론은
'사람들이 꼴받아서' '불만을 해결하고싶어서' 따지고 들고 해결하려고 하는 겁니다.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이기적인 개인의 궁국적인 모습인거죠.
살기 불편하면 결국 '내'가 잘 살기 위해서 이제 문제를 제기하는겁니다.
여러 방식으로......

그리고 주로 이럴 땐, 외부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게 되죠 (실제 문제가 밖에 있지만, 자기 책임까지 외부로 돌리는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밖에서 찾으며, 그것만 해결되면 모든게 해결된다고 믿게 됩니다.

그것은 제도이고, 다른 집단이고, 다른 사람이고 그렇게 됩니다.
사회가 극단화되고 힘겨워질수록. 사람들의 분노도 커져서 극단화되죠
그게 촛불집회나 전쟁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적당히 불 붙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누구나. 문제를 외부에서 찾아내기 쉽고 스트레스를 어떤식으로든 해소하지 않으면 살아갈수가 없습니다. 생명체의 존속문제죠. 왕따문제도 이런 전형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어렸을때 어른들이 하는 말씀이 틀린게 아닙니다. 사소한 속담같은것도 큰 문제에 얼마든지 적용할수 있어요. 사람 사는건 다 똑같고. 뭐든지 사람이 하는 거니까요 : )

더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는 (순수한 경제 체제가 아닌 체제가 낳은 부산물 사회까지 파악하는겁니다.)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지만' 행복해지고 박탈감을 느끼지 않기 떄문에 경쟁이 항상 전제되게 됩니다.
이런 사회는 가속화 될수록 분쟁을 낳을 수밖에 없어요.

누구나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누구는항상 뺏길 수밖에 없거든요.

그럼 항상 불만은 쌓이고. 아무도 만족하는사람은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전성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공산주의를 하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북한 소련처럼 되라구요? 오~노~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똑같아요. 제가 한나 아렌트랑 비슷한가요?) 인류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개선이 있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잘 사는 법'. 저는인류의 정신문화 발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 자로 요약해보겠습니다. 인간은 존중받길 원하고 사랑받길 원하고 인정받기 원하고. 하나 덧붙이자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네가지만 있으면 되요. 히피같나요? ㅎㅎ

사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이 네가지를 위해서 하고 있다는걸. 금방 깨달으실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뉴에이지나. 사회환원적인 기업에 조금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만
인류가 회복하기보단 깎아먹히는게 더 빠른것 같네요.

먹을것도 없고 입을것도 없고. 심지어 무시당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걸 겪고 있죠) 상황에서 누가 존중받는다고 생각할까요

개개인이 사회를 만든다는걸 다시 한번 생각해볼때인듯 싶습니다.

말이 너무 어렵나요?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말 하는걸 안 좋아해서
Commented by nolog at 2008/10/31 14:13
로버트 기요사키가 왜 200년 주기설은 말 안했는지 모르겠군요.
어떤 강대국도 200년 버티면 오래 버티는거요.
지금도 그런 걸까요? 사회적 엔트로피가 너무 높은걸지도 모르겠군요. 주인장님 보셨으면 답글 달아주세요 이 글은 곧 지울겁니다.
Commented by 히피들이.. at 2008/10/31 14:41
단체 만들면 얼마나 위계질서 지*을 하는지 보시면 웃길겁니다.
Commented by nolog at 2008/10/31 14:59
몰랐네요. 전 히피가 아니라서. 단지 히피들이 저 구호를 많이 썼다고? 알고 있었어요.
Commented by 3월의 토끼 at 2008/10/31 15:45
noblog/인간은 존중받길 원하고 사랑받길 원하고 인정받기 원하고. 하나 덧붙이자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계급 차별이 생기고 빈부격차가 증가하고 각자의 성취 정도의 차이가 나는겁니다.

일반적으로 명성, 돈, 지위 등 사회적으로 혜택받은 사람들이 비교적 존중받고, 사랑받고, 인정받고, 꿈을 이룰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이 정도는 판단할 줄아는 인간은 어느 사회에서도 사회적 지위상승을 노려왔고, 남보다 앞서기 위해 경쟁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소망 자체가 사회 문제의 원인입니다.

이 소망들을 억압해서 인위적인 (상대적이지만) 평등을 도입하는 것이 공산주의라고 할 수 있죠.
물론 기본적인 소망 충족이 안 되는 것 자체가 또다른 사회문제를 양산하게 되죠.
Commented by 3월의 토끼 at 2008/10/31 15:50
noblog/그리고 자원을 인적자원과 천연자원 두가지로 나누는 것이라는 기본 전제는
비경합재의 개념 도입에서 무너집니다.
자본이 증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같은 인적/천연 자원 투입으로도 더 많은 효용을 창출하는 점도
님은 무시하고 있구요.
Commented by 3월의 토끼 at 2008/10/31 15:54
덧붙여서 말하면 공산주의가 경제적 평등을 보장하면
경쟁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사회적 지위 갈등으로 투입되는 소모가 커집니다.

경제적 부의 증가는 모두가 삶의 질 향상이란 방식으로 어느정도는 혜택을 입을 수 있지만,
사회적 지위 경쟁은 본질적으로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노력이 낭비되어 손해보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nolog at 2008/10/31 16:18
1. 비경합재란 경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재화를 말하는 거지요? 제가 단어의 뜻을 제대로 파악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말 그대로 인적 자원과 천연 자원이라는 표현을 쓴 것 뿐입니다.

비 경합재는 경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재재라는 뜻으로서
제가 말한 천연자원과 인적요소와는 모순되지 않는 뜻입니다.
오히려 분류 방식에 따라서 자원이라는 카테고리 안의 소 카테고리의 하나쯤 되겠습니다만, 제가 말하는 천연자원과 인적자원은 지구계 안에 존재하는 자원 전체를 크게 둘로 나눈 것입니다. 인간이 아닌 것들과 인간이라는 뜻이지요.

기술의 발달로 인한 더 많은효용을 창출하는점은 더이상 말 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제 말 뜻은,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기술로 인한 자원 생산의 효용성이 증가한다 하더라도 (심지어 이 점에서도 제레미 리프킨은 오히려 '-'라고 주장했지요. 인간의 노동력이 줄어드는 대신 자연계에서 투입되는 노동력, 석유자원이나 천연자원등의 활용을 더한다면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밝혔습니다.) 기본적인 생산 재료는 언제나 인간과 자연이라는 뜻입니다.

위 본문에서도 말했다시피. 아무리 기술이 개발해도 두가지 요소가 투입된다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2. 인정받고, 사랑받고. 존중받고 꿈을 이룬다는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소망이 맞습니다.
다만 제가 지적했듯이. 자본주의 내에서는 '남보다 더' 가져야 된다는것이 저런 욕구 충족의 전제 조건입니다. 저런것들은 자기가 아닌 남이 가져다 주는 요소이기 때문이지요. (종교나 불교에서 '해탈' 한다는것은 저런 외부 조건이 아닌 스스로가 저런것을 깨닫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자본주의 시스템 하'- 책에 정의되어있는 순수한 학문적 자본주의가 아닌 현대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인 자본주의가 파생하는 사회를 말합니다 - 의 존중받기 위한 조건은 '남보다 많이 갖는 것'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많이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천연자원과 인적자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인적자원을 왜 스스로 깎아먹는지는 윗 덧글에 설명해 놓았구요.

님이 말하신 공산주의에 대한것은 한번 더 배웠군요.
사회적 지위 경쟁은 본질적으로 제로섬 게임이기 떄문에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노력이 낭비된다는 점은 제가 생각해보지 못했군요. 좀 더 제 생각이 명쾌해지는 느낌입니다.
(제가 말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는 비슷하다는 말과 연결됩니다.)

그렇지만 님의 의견에 비판을 해 보겠습니다.
경제적 부의 증가가 모두의 삶이 질의 향상일까요? 그게 바로 현대 사회의 문제점입니다.
경제적 부가 향상되면 모두의 삶이 향상되어야 할텐데. 왜 지구는 예전보다 더 헐벗고 굶주리고 사람들의 분노가 들끓으며 괴로워야 할까요? 많은 물건을 가지면 과연 행복한가요? 흔한 얘기지만 왜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아프리카 나라의 행복지수보다 떨어질까요

그리고 경제적 부가 향상되기 위해 지금 우리는 우리의 하부 구조에게 얼마나 많은 짐들을 지워 왔을까요?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소망을 이루는 방법은 ' 더 많이 갖는 것 ' 이기 때문에 그걸 떠받치는 하부구조(사회의 피지배층, 후진국, 자연)의 하중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구요. 하부 구조가 파괴되면 결국 상부 구조도 무너집니다.

존중받고, 인정받고, 사랑받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항상 더 많이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이 '더 많이 가져라'일 뿐이지. 본질적으로 인간이 더 많이 가져야지만 저런 소망을 추구할수 있는 걸까요?

제 생각엔. 이 구조 하에서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계속 다른 사람에게서 빼앗아 오고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서 무언가 일을 벌리고.

아래에서 위까지 전부 똑같습니다.

그 하중은, 사람이 받지 않는다고 해도 자연이 받게 됩니다.
결국 이 구조는 하부 구조에 계속적으로 충격을 줘서. 집 자체를 무너뜨리는 구조입니다.

제 헛소리라고 생각하실수도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파괴되는 이웃과 가정, 나라.
하다못해 자연을 위해서라도 그런 낡은 생각과 연결고리는 끊어야 합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공산주의 하자는 의견이 아닙니다 -_-;)

최악의 경우, 촛불집회나 전쟁같은 불길이 더 터져 나올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도. 넘쳐나는 불만이 어디론가 터질 기회만 바라보고 있다는게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조금만 물러서 바라보면, 스스로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점점 나락 속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약과지요. 세계적으로. 지금은 점점 화약고 불만고가 되어가는 상황입니다.

제 의견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짜집기 한것에 불과하구요.
여러 석학이나 서로 다른 분야 (경제, 사회, 환경, 과학 등등..)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결국
점점 위기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거지요.

이번 금융 사태도 인간의 이기심이 부른 것.
결국 '더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사회나 지구라는 '계'에 계속 하중을 부과시켜 한계상황이 온 거라 할 수 있겠지요. ('계'는 과학용어입니다..^^;)
Commented by nolog at 2008/10/31 16:38
경제 얘기를 하다가 계속 썼군요.
결국 제 글의 요지는. 경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현제 경제 시스템은 바닥 없이 탑을 쌓는 것이다. 허리 없이 어깨 위와 머리만 있는 것이다.
어찌하여 천연자원과 인적자원을 사정없이 깎아먹으면서 몸통만으로 뛰려 하느냐.

곧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그전에 정신차리고 문제의 본질을 보자. 다들 잘 살자고 하는 짓 아닌가. .... 이런 겁니다.

오랜만에 열띤 토론을 보다 흥분해서 길게썼습니다 ^^
그렇다고 기술수준이나 생활수준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쪽 책들을 봐도 인류가 육식만포기하면 전 세계 인류를 먹여 살릴수 있다고 하죠. 발전한 기술로는 충분히 공생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인간의 이기심이 그걸 못하게 막을 뿐이죠 (이 블로그 주인장님이 말하신 폴 크루그먼 역시 분을 토했더군요. 복잡하게 볼걸 간단하게 보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해야 할 이론들이 정치꾼들의 입에서 튀어나와 대중들을 미혹하고 있다고..)
대책없는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우리가 사는 '계'를 포기하지 말고.
진정 원하는것에 집중하자는 뜻도 있습니다. 사실 욕심이라는게 토끼님도 말한 인간의 본성 (인정, 존중, 사랑, 꿈)을 이루기 위해 있는 거잖아요? 돈과 물질, 성취로 인정과 존중을 사는 시대지만 그런것에서 한발 물러나 그런것없이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미 경제 얘기가 아니게 됐군요. (근데 제가 돌팔이는 아닙니다만 ^^:
제가 쓴 글의 부분부분은 많은 분야의 학자나 책, 심지어 어르신들의 말씀에도 나오는 말입니다.)

다만 경제도 우리가 사는 삶에 많은 책임을 지고 있고.
현재 인류는 물질적인 가치를 너무 중시하기에 경제 얘기가 나오면 같이 꼭 나와야 할 얘기라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다루는것과는 너무 멀어져 버렸군요.

다만 '잘 살기 위해서 시장과 국가가 있는 것이지. 시장과 국가를 위해서 인간이 삽니까?'
라는 말에서 울컥해서 길게 써 보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본주의 자체만을 보실게 아니라. 선진국만, 혹은 선진국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주장이나 사설, 논설만을 보실게 아니라.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현재 시스템을 지탱하기 위해. 지구라는 계 안에서 주목받지 않고 있는 다른 국가들이 얼마나 하중을 짊어지고 있는지 한번 알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지구촌화된 사회에서. 한 나라가 무너지면 다른 나라도 같이 무너지거든요.
이번 중국 사태도사실은 예견된 사태였을지 모릅니다.

고대 사회는 폐쇠되어있는 국가가 많아서 그 파국이 지방적으로 이루어졌지만. 현대에서 는 한 나라가 무너지면 다른 나라 모두 피해를 입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한국 IMF나 아주 사소한 나라들의 붕괴에 대한 선례를 가지고 오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일일히 세부적으로 따지귀는 귀찮으니까요 ^^; 또 그떄는 그 나라만 폐쇠된 상태로 다른 나라들끼리 연결해서 살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정보화가 훨씬 가속되어있고. 나라별로 의존도가 큽니다.

하다못해 신문에 이름 한 쪽 나오지 않는 가난한 나라라 하더라도. 그 나라들에게 '생산에 대한 의존'은 큰 편이지요.
특히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중동쪽의 불안정성은 석유 뿐만 아니라 재화의 생산에 있어도 영향을 미칠수 있습니다. 옷만 보면 알 수 있지요.

책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알수 없는, 환경쪽으로 나가보면 오히려 그 가난한 나라들이나 사소한 나라들의 역할이 더 큽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지구라는 행성은 아직 환경 재해를 막는 기술이 없기도 하고요. 향후 몇년간, 몇십년간도 무리입니다. 알고 있다면 아니 제대로 된 방식에 관심이라도 있다면 이런 체제로 나아가지도 않겠지요.
Commented by 3월의 토끼 at 2008/10/31 16:26
저는 현재 미국의 경제위기가 1929년 대공황 만큼 심각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http://caseymulligan.blogspot.com/2008/09/wall-street-will-drown-alone.html
2007-2008년 미국 전체 고용의 94%를 차지하는 비금융부문의
한계자본 생산성은 떨어지기는 커녕
역사적 평균치7-8%보다 높은 10%에 달하여,
대공황1930-33년, 1982년 침체, 2001년 경기침체 때
한계자본 생산성이 역사적 표준보다 낮았던 것에 비해 건전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금융부문의 위기가 확산되어도 실물 경제의 역량이 튼튼하기 때문에 위기의 수준은 제한될 것으로 봅니다.
Commented by 3월의 토끼 at 2008/10/31 16:34
noblog/
1.자본주의 내에서는 '남보다 더' 가져야 된다는것이
->남보다 더 가져야 할 이유가 바로 사회적 지위경쟁입니다. 당연히 자본주의에서만 적용되는것도 아니구요.

2.경제적 부가 향상되면 모두의 삶이 향상되어야 할텐데. 왜 지구는 예전보다 더 헐벗고 굶주리고 사람들의 분노가 들끓으며 괴로워야 할까요?
->1920년대 세계의 하루1달러이하 생계수준인구는 전체의 60%에 달했지만 최근 20%로 감소했습니다.

3. 제레미 리프킨은 오히려 '-'라고 주장했지요. 인간의 노동력이 줄어드는 대신 자연계에서 투입되는 노동력, 석유자원이나 천연자원등의 활용을 더한다면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밝혔습니다.)
->제레미 리프킨은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사례를 취사선택했기 때문에 잘못된 과가 나온것입니다.
미국에서 인간과 천연자원을 모두 합쳐도 생산성이 계속 증가중입니다.
알루미늄 캔에 필요한 자원만해도 2차대전이래 80%나 감소했고
1975-2000년 사이 미국 GDP1달러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투입 에너지는 40%감소했습니다.
Commented by nolog at 2008/10/31 16:43
3월의토끼 // 앞에서도 말했지만 계속 같은 말의 반복이군요.
님은 상당히 물질에 치우친 사고방식을 가지고 계시는것 같은데. 저는 하부 구조의 붕괴 위험성을 지적했습니다.

1. 남보다 더 가져야 하는 .. 에 대한 한계는 이미 지적했습니다.

2. 1달러 이하의 생계수준 인구가 20프로로 줄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1920년대의 조사와 1990년대의 조사가 같을까요? 1920년대라면 조사 대상도 굉장히 한정적이고 조사 기술도 떨어졌을거라 생각합니다. 1920년대의 조사를 신뢰하실수 있겠습니까? 그 당시에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까지 가서 조사를 했단 말입니까? 그때 세계사회에 편입된 인구의 비율과 현재 세계사회에 편입된 인구 비율에 대해 너무 이해가 부족하신것 같네요.
또한 아까도 말했지만 '삶의질'은 물질적인것에만 좌우되지 않습니다.

제 글에서 부분만 발췌해서 반박하시는것 같네요 ^^:

3. 제레미 리프킨의 취사 선택은 제가 잘 모르는 부분입니다.
좀더 자세히 알고 싶으니 그 통계가 나온 부처와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시겠습니까?
통계라는게 워낙 함정이 많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알아야 정확한 사항을 파악할 수 있거든요. 그래야 통계를 활용할수 있는 선택의 폭이 결정됩니다.

그렇게 수치만 나열하는건 광우병 논쟁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
(광우병 발병에 대한 기전과 원인 결과가 분명하지 않은 과정에서 % 놀이 하기;)
Commented by nolog at 2008/10/31 16:53
더 문제인것은. 그 1달러도 받지 못하는 인구가.
과연 지금처럼. 물. 먹을것. 마실것조차 없어서 고생을 했을까요?
지금 전면적인 문제는 가속되는 환경파괴와. 경제적인부분으로 축소하여서 말하자면 하부 구조의 붕괴입니다.

일단 1920년대에 조사대상에 취합되지 않았던 인구는 최소한 물 정도는 먹고 살았을 겁니다. 더 나아가서 그 1S 안에 마실수 있는 권리와 먹을 권리는 포함되어 있습니까?
1920년과 1990(?)년의 1S는 어떤 기준에서 나온 건가요? 거기에는 물도 경합재. 돈 주고 사 먹어야 되는 물질로서 등록이 되어 있던 겁니까?????

물이 비경합재에서 경합재로 바뀌어가는것과 비슷한 맥락 아닌가요.. ^^
Commented by 3월의 토끼 at 2008/10/31 16:40
noblog/존중받고, 인정받고, 사랑받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항상 더 많이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이 '더 많이 가져라'일 뿐이지. 본질적으로 인간이 더 많이 가져야지만 저런 소망을 추구할수 있는 걸까요?
->인간의 사회적 지위 경쟁에서는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더 많이 가질수록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아프리카 나라의 행복지수보다 떨어질까요
->애초에 아프리카보다 덜 행복하다는 결과는 나오지도 않았고,
(언젠가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1위라는 엉터리 결과가 보도되고 계속 많은 사람이 낚이는데, 일반 방글라데시인이 아닌 수도의 외국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했죠)
비슷한 소득국가에 비해서 행복지수가 낮은 것은 한국사회내의 경쟁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Commented by nolog at 2008/10/31 16:46
1. 글쎄요. 항상 많이 가져야지만 행복하지 않다는것은. 개인적 체험담이나 신문지상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물론 많이 가져야 행복해지기 쉽기 떄문에 (그게 현재 사회에서 요구하는 행복의 조건입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이상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수 있는 '일종의 경향성'이 있는것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회' 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 그래서 그런 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 뿐입니다.

방글라데시 조사 결과는 오인의 소지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비슷한 조사가 굉장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 이번에 조사 결과에서도, '돈을 남에게 쓸 때'행복을 느낀다는 미국발 조사결과도 있었죠 (이런 조사 결과들은 사실 부질 없는 것들이긴 합니다만 ^^ 비슷한게 하도 많고 완전 반대의 결과도 있기 떄문이죠. 이런것 하나 하나에 경도되면 아무것도 알수 없습니다;)

2. "비슷한 소득국가에 비해서 행복지수가 낮은 것은 한국사회내의 경쟁이 심하기 떄문입니다" 제가 말한건 이겁니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행복의 요건이 '경쟁에서 이겨'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격화될수록 누구나 불행해지기 쉬운 거구요. 왜 같은 얘기를 계속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저도 손이 아픈데... 조금 더 읽어보시고 차근차근 말씀 하시면 안될까요? 저도 성격이 급해져서 말이 막 꼬이고 울컥울컥 해지려고 하네요.
Commented by 3월의 토끼 at 2008/10/31 17:02
1. 남보다 더 가져야 하는 .. 에 대한 한계는 이미 지적했습니다
->지적만 했지 별로 근거는 보이지도 않는데요?
2. 1달러 이하의 생계수준 인구가 20프로로 줄었다고 하는군요....
->현재 학자들의 추산입니다. 그외에도 50년,1980,2000년 연속으로 조사해서 줄곧 감소한 것이 확인됩니다.
3. 삶의 질은 물질적인것에'만'좌우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가난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아의 위험에 노출되고 5세이전에 유아의 50%전염병으로 죽었던, 그래서 쌀 몇말에도 목숨을 걸었던 전근대 사회보다는
현대사회가 덜 물질적이라고 봅니다.
당장 굶주리는데 비물질적인 삶의 질 논해봤자 뜬구름잡기에 불과하니까요.

4.3. 제레미 리프킨의 취사 선택은 제가 잘 모르는 부분입니다.
좀더 자세히 알고 싶으니 그 통계가 나온 부처와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시겠습니까?
->미국 노동통계국Bureau of Labor Statistics,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사이트를 가보시기 바랍니다. 자료가 풍부하니.
Commented by 3월의 토끼 at 2008/10/31 17:12
noblog/더 문제인것은. 그 1달러도 받지 못하는 인구가.
과연 지금처럼. 물. 먹을것. 마실것조차 없어서 고생을 했을까요?
지금 전면적인 문제는 가속되는 환경파괴와. 경제적인부분으로 축소하여서 말하자면 하부 구조의 붕괴입니다.

일단 1920년대에 조사대상에 취합되지 않았던 인구는 최소한 물 정도는 먹고 살았을 겁니다. 더 나아가서 그 1S 안에 마실수 있는 권리와 먹을 권리는 포함되어 있습니까?
1920년과 1990(?)년의 1S는 어떤 기준에서 나온 건가요? 거기에는 물도 경합재. 돈 주고 사 먹어야 되는 물질로서 등록이 되어 있던 겁니까?????

물이 비경합재에서 경합재로 바뀌어가는것과 비슷한 맥락 아닌가요.. ^^
->기본적으로 경합재의 개념부터 착각하는 것같습니다만? 어떻게 물을 두고 경합재다 아니다 할 수 있는지?
1달러는 1990년에 1달러로 살 수 있는 물품을 살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1920년 당시 세계인구의 절반 가량이 오염된 식수를 공급받고 있다고 조사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오염된 물을 그대로 마시지 못해 차를 끓이고, 유럽에서는 어린애들도 물에탄 맥주를 마셨습니다.
식생활에 대해서 말하자면, 1917년 페르시아 북부인구의 1/4가 기근으로 사망,
1917-21년 투르키스탄 인구의 1/6이 기근으로 사망,
1921년 러시아에서도 기근으로500만명이 죽었고
1921-22년 러시아의 볼가 식민지에서는 인구의1/3이 죽었고,
1928-29년 북중국에서도 기근으로300만명이 사망했습니다.
그외 기록되지 않은 기근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릅니다.

현재와 비교도 안될 정도록 기근이 흔했던 시절입니다.
Commented by nolog at 2008/10/31 18:10
경합재의 개념에 대해서는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경합재라고 해서 서로 차지하기 위해 경쟁이 붙는 재재라고 생각했는데. 아닙니까? 지금 당장 다시 알아볼 수는 없겠네요. 어쩄든 제 말은 물이 가격을 지불하지 않고 누구나 접근할수 있는 재화인지, 아니면 가격을 지불해야 되는 재화인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단 이건 인정하고 넘어가고...


님의 말은 얼핏 보면 맞는 말씀 같습니다. 예전엔 굶어죽는 사람도 많았고. 병에 걸려 죽는 인구도 무척 많았지요. 또한 그것에 대한 근거로 이것 저것들을 많이 제시하시고 계시고 있으십니다만. 일단 기본적으로 상대를 무시하고 흑백논리적으로 밀어붙이는 태도가 거슬립니다.

몇번 이야기했는지 이젠 지겹네요. 공산주의를 하자는것이 아니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야 되지 않을까. 인류가 정신적으로 발달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물질에 경도되는 사고방식을 버리고. 인류가 진정으로 다같이 추구하고 있는. 인정. 존중. 사랑받기에 중점을 두자. 현재 사회에서 제시하는 기준인 '물질의 만족'에 의한 행복추구는 그 끝이 없기 떄문에 하부구조가 붕괴되기 쉽다. 그리고 인류는 사실 물질을 원하는게 아니라 '그런 것'들을 원하는게 아닐까. 그런것들을 얻기 위해 물질을 이용할 뿐이고. 사회 자체에서(개개인의 총합이죠. 아까 말했다시피 인정, 사랑, 존중은 스스로 획득하기 어려운 물질이니까요. 종교적인 관점에서야 신과의 대화. 해탈 등을 통해 스스로 혼자서 획득이 가능하다 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물질을 받고 인류가 원하는 가치들을 팔고 있기 떄문에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것이다라고요. 이 부분까진 님과 저의 의견이 일치했죠? 그렇지 않습니까?

더욱이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경제적으로 하부구조가 붕괴되고 있기 떄문에. 모든 자원은 인간과 자연 두가지 요소가 합쳐서 이뤄지기 떄문에 (기술적 요인은 +A 적인 부가요인입니다. 기본적인 '두가지 재료'는 인간과 자연입니다. 설마 이걸 저에게 다시 설명하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시겠죠? 다른 독자분들을 위해 설명드립니다. 기술이 발달하는것은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지. 현재의 어떠한 기술도, 앞으로도, 심지어 현대의 어떠한 법칙 하에서도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수는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모든 창조의 과정에는 재료가 들어갑니다. 설마 제가 틀린 부분이 있다면 다른 분들이 말해주십시오. 개인적으로는 눈에 보이는것, 눈에 보이지 않는것 모두 무에서 유가 나올수는 없지만. 좀더 의논의 폭을 좁혀 눈에 보이는 것들도, 아무것도 없는것에서 무언가를 생성하는건 불가능 합니다. 기술은 이 과정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고안되는 장치이자 수단일 뿐입니다.) 현재 사회의 문제점인 그 두가지 요소를 파괴하는 시스템 (환경파괴 + 인간 파괴)는 결국 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하부 구조를 붕괴시켜 전체적인 시스템 붕괴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환경 파괴는 우리가 흔히 아는 내용이니 생략하며
인간 파괴는. 사회에서 이탈자를 만들어내는 것으로서. 계속되는 양극화나 분노는
인간에게 밖으로 그 분노를 표출시킬 대상을 찾게 만듭니다.
이번 촛불집회나 전쟁 역시 그런 원리로 인해 나타난 한 현상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즉 이 시스템에 '반항하는'인간을 생산하기 때문에
(인간은 경제시스템의 도구이자 주체입니다. 시스템은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시스템을 만듭니다.) 시스템 자체가 유지될수 없다는 겁니다. 한발짝 떨어지면 나나 너나 모두 현재 불만을 표출할 대상을 찾아 표류하고 있습니다만. 서로서로가 불만의 대상이므로 문제는 항사 가장 안 좋은 방향으로 폭발하기 마련입니다. 이런건 상식적으로 알아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활용할수 있는 자원이 고갈되면 다른 자원을 찾아서 떠나면 되지만. 지구라는 계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즉 지금은 식민지 시절처럼 한 나라가 수탈되면 다른 나라를 수탈하면 되는게 아닙니다.
예전처럼 '세계'라는 계 안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이나 나라가 있어서. 한 지역에서 고갈되면 다른 지역에서 가져오면 되는게 통용되지 않습니다.
지구가 한계라는것도 그런 뜻입니다. 심지어 경제적인 영역에서만 봐도요
(생태적인 영역은 경제적인 영역을 초월합니다. 생태적인 영역이 경제적인 영역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포함되는 이유는, 원칙적으로, 생태계안에 인간이 있지만. 그 인간이 경제활동을 하기때문입니다. 인간이 경제활동을 함으로서 시스템 안에 합류되기 때문에 그 경우엔 이제 경제시스템이 인간 위에 서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양측은 피드백이 이루어지는 관계로서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이고 완전한' 우위에 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전차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하며,
그런 증거로 경제 불황이나 금융의 공황 -금융의 공황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견없이
'인간의 욕심'이 불러온 화라는데에 의견이 일치합니다.- 이 있기에 예를 든 것 뿐입니다.

공산주의를 하자거나 전근대 사회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아니죠.
도대체가 핵심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언제까지 해야 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3월토끼님의 말처럼 물질적 요소는 대부분의 경우에 (득도한 도인이 아닌 이상) 필수불가결합니다.
제가 말했듯이. 기본적인 음식물과 의복, 신체생리적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는 상황을 '존중받는다'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은 현재 아프리카에서 일어나고 있구요. 도대체 이 말이 왜 3월의 토끼님이 저를 공산주의자냐 말을 못알아 먹느냐, 그리고 전근대 사회라면 경쟁에서 패배하면 바로 굶어죽거나 병에 걸려 죽기 때문에 덜 괴로울지도 모른다 까지 가면서 비난하게 만드는지 모르겠군요.

지금은 전근대 사회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사회 시스템이며. 인간이 사용하는 한가지 도구일 뿐입니다.
어쨰서 자본주의를 반대하면, 공산주의자 혹은 중세를 긍정하는 인간이 되는지 모르겠군요. 이게 글쓴님이 말하는 시장교(?)에 영향 받으신 분들의 하나의 행태인가요 ^^....

제 말은 물질적인것에서 조금 떨어져 인간의 욕심을 올바르게. 진정 원하는, 이해.존중.사랑.인정에 집중하자는 것인데 그게 어쨰서 모든 물질적 생활을 포기하자가 될수 있는지 모르겠군요.

극단적인 자본주의화가 진행되어서. 몇사람의 희생을 감내하면서 휘황찬란한 생활을 하는 부자들이 존재하는것과. 모두가 굶어 죽어서 난리가 나는 세계는 서로 양 극단에 위치할 뿐인되요?

물물교환에서 화폐의 발달. 경제의 발달로 인간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는것은 일종의 정설입니다. 실제 경제의 역사. 인간의 역사를 배우다 보면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는것은 사실이죠. 저도 아직 이 건에 대해서는 부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최소한 현재 정설로 굳어져 있는 역사적인 연구나 역사적인 기록들도. 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인간의 생활이 향상되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화폐경제는 일종의 수단입니다.
고대사회가 노예제, 농노제, 자본주의 순서로 발달을 했던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는 인간이 지나가는 한가지 방법론의 하나일 뿐입니다.

물론 이게 마르크스가 한 주장과 유사해서. 마르크스주의자냐 공산주의자냐 하실 분도 계실것 같습니다만 (우리나라는 특히 피에 맺힌 역사가 존재하기에. 이런 말은 쉽게 꺼낼수도 없으며 흥분하실 분들이 많은것도 사실입니다.) 공산주의는 저 역시 실패한 체제이며. 쉽게 측정할수 없는 인간의 여러 국면을 너무 간단히 측정하고 통제하여 실패한 경우입니다. 토끼님 말이 맞습니다. 사회적 경쟁이 심한게 맞습니다. 좀더 제 생각이 명확해졌구요.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역시 공산주의와 비슷한 문제가 없다고는 할수 없겠지요? (사회적 지위 경쟁 말입니다.) 공산주의가 제로섬이고 자본주의는 제로섬이 아니다라는 말에는 동의할수가 없는데요? 자본주의 역시 세계를 무대로 한 이상. 세계라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때문에 원칙적으로 무한한 발전이라는건 존재할수 없습니다. 이미 자본주의가 더이상 집어삼킬 자원이 거의 없는 상태이구요 (위의 인적/자연적 자원 고갈을 다시한번 보세요)
이건 주로 환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환경운동가, 환경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퍼진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는 비슷하다는것 역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나 아렌트도 그런 말을 했지요. 그녀는 '인간 본연의 모습'에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서로 닮았다고 했지만 말이죠. 저도 다시 한번 책을 읽어 볼 생각입니다만...

그리고 몇 마디만 더 하자면 3월토끼님은 통계의 정확성과 통계의 생산 과정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것 같습니다. 더의상 생산성 없는 토론은 종료하도록 하죠. 제가 분명히 통계의 생산 과정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그것과는 전혀 없이 반복적으로 권의에 의존해 하고 싶은 말씀만 하시고. 또 의미없는 자료만 가지고 오시는데 (정말 질적인 토론을 원하신다면, 통계를 누가 작성했으며 조사 주체는 누구고, 조사 대상은 누구며 조사 방식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져야 합니다만. 그런게 통계자료에 아주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이상까지 추론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것도 안 가져오시고.. 하긴 말씀하시는 투를 보아하니 더이상 길게토론할 만한 깊이가 없으신 분 같습니다만.) 미국 홈페이지 하나만 또 달랑 링크해 주셨네요 (제레미 리프킨 건에 대해서만 말이죠......) 또한 통계 자료는 참고 사항중 하나일 뿐입니다. 뭐..더이상 말이 안 나오네요.
이제 통계자료에 대한 정보(통계가 말해주는 정보가 아닌. 그 통계 자체에 대한 정보)를 가져오시더라도 더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처음부터 그런것까지 고려하셔서 가져오시면 좀 더 기대를 할 뻔했습니다.


그리고 님을 까다가 한가지 잊은 것이 있는데.
꼭 지금이 싫다고 하면 전근대를 들고 나오시는데요. 성장지상주의의 망령이 아니신가 하네요. 그당시에 굶어 죽었다고 해도. '과학 기술의 발달'이 그들을 모두 먹여 살릴거란 생각은 하는게 아니시죠? 단순이 과학과 자본주의의 발달이 일천해서 그들이 굶어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시기적으로 보아하니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닐것 같은데. 미처 고려해보지 못한 외부 효과들도 고려해보시기 바랍니다. 과학기술이나 자본주의의 발달만으로 모두 해결될거라고 믿는건 마치 구세주가 내려와서 우리 모두를 구원해줄거라고 믿는거랑 마찬가지의 발상이네요. 과학과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준 혜택도 있지만. 우리에게 준 해악도 있고. 이제 너무나 해악이 커져서 그 생명이 다 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물질론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공산주의는 이제 소멸할 시기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물질의 투쟁을 해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지만. (다시 말하지만 절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통계자료, 자료 자체에 대한 조사부터 해서 제대로 가져와 보세요. 하다못해 출처조차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으시는 분이니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먹고살고 굶어죽을일 없고 의복정도는 있고. 남는것은 '사회로부터의 인정'
과 '존중과 사랑.. 스스로의 존재가치'에 대해서만 의문이 남아있는 현대인. 적어도 한국인쯤 되면. 그런 사고방식에선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삶의 질을 구성하는건 이원론적으로 보자면 물질적, 정신적인 두가지가 있습니다.
(님 수준에 맞춰서 이야기해드리는겁니다.) 그걸 합해서 '삶의 질'이라고 하는 건데요.
그럼 물질적인건 충족됬지만 삶의 질은 어떤가요?
님의 지금 세계에서, 님의 머릿속에서 바라보지 말고
님이 지금 진짜 무엇때문에 힘든지부터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님이 드신 물에 관한 예시도 웃긴건데.
그게 정말 물을 바로 먹지 못해서 물 부족이란 말이 나오는겁니까?
'섭취할수 있는 액체'가 부족해서 물 부족이라는 말이 나오는거지요. 차 끓여 마시고 맥주 마실수 있으면 '그나마 괜찮은 상황' 입니다. 네? 아시겠어요? 차 끓여마시는게 좀 힘들었어요. 아궁이에 불 떼야 하고.. 이런식의 반박 나오면 완전 비웃어 드리겠습니다.
쌀 못 먹고 빵 먹으면 기근입니까. 현 상황을 한참 몰라도 모르시는군요. 원래 언어라든가
문맥이라든가 하는게 해석하고 싶은 놈 하고싶은대로 해석하는거지만

아프리카에 와인박스 갖다주면 물부족하다는 말이 지금하고 똑같은 양상으로 나올것 같습니까?

동문서답도 정도껏 하셔야지요. 이만 줄입니다.

좀 더 절 기대하게 해주는 덧글이 있으면 좋겠네요. 제가 너무 많은걸 바라나요.
오랜만에 길게 썼더니 조금 힘드네요. 그럼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3월의 토끼 at 2008/10/31 17:28
또한
1. 글쎄요. 항상 많이 가져야지만 행복하지 않다는것은. 개인적 체험담이나 신문지상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물론 많이 가져야 행복해지기 쉽기 떄문에 (그게 현재 사회에서 요구하는 행복의 조건입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이상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수 있는 '일종의 경향성'이 있는것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회' 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 그래서 그런 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 뿐입니다.
-> 많이 가져야 행복한 사회는 현대보다 오히려 과거 사회죠. 미국에서 물질주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1900년대 탄생한 세대부터 시작해서 1980년대 출생한 세대까지 줄곧 줄어들었습니다. 그만큼 여유가 생겼으니까요.

방글라데시 조사 결과는 오인의 소지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비슷한 조사가 굉장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 이번에 조사 결과에서도, '돈을 남에게 쓸 때'행복을 느낀다는 미국발 조사결과도 있었죠 (이런 조사 결과들은 사실 부질 없는 것들이긴 합니다만 ^^ 비슷한게 하도 많고 완전 반대의 결과도 있기 떄문이죠. 이런것 하나 하나에 경도되면 아무것도 알수 없습니다;)
->남에게 자선을 함으로써 실제 행복을 얻기도합니다. 남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한 방법이거든요. 한 짐승이 다른 짐승에게 뭔가 베풀고 지위를 획득하는 것은 동물들에게도 발견되는 행동입니다.
Commented by 3월의 토끼 at 2008/10/31 17:31
2. "비슷한 소득국가에 비해서 행복지수가 낮은 것은 한국사회내의 경쟁이 심하기 떄문입니다" 제가 말한건 이겁니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행복의 요건이 '경쟁에서 이겨'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격화될수록 누구나 불행해지기 쉬운 거구요. 왜 같은 얘기를 계속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저도 손이 아픈데... 조금 더 읽어보시고 차근차근 말씀 하시면 안될까요? 저도 성격이 급해져서 말이 막 꼬이고 울컥울컥 해지려고 하네요.
->경쟁에서 이겨야 행복한 사회는 자본주의뿐만이 아니라니까요? 몇 번 말해야 알아듣습니까? 근본적으로 제로섬인 사회적 경쟁이 심한 곳은 공산주의권 사회라고요.
전근대 사회에 대해 말하자면 경쟁에서 패배하면 바로 굶어죽거나 병에 걸려 죽기 때문에 덜 괴로울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행복을 위한 경쟁의 중요성이 '감소한 사회'(경쟁을 완전히 없앨 수 없으니)는 오직 신분제 차별 사회만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신분차별을 도입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리고 조사된 모든 나라에서 소득이 증가할 수록 행복지수는 상승합니다. 한국만이 해당되는 것도 아니며 특히 빈곤한 국가일수록 상류층과 하류층의 행복지수값의 차이가 큰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만큼 부유한 국가들은 부의 차이가 행복지수에 미치는 영향이 감소되었다는 얘깁니다.
Commented by nolog at 2008/10/31 18:18
빈곤한 국가라고 하더라도. 상류층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_-..........
몰라서 그러세요 알아서 그러세요?

누가 신분차별 하쟤요? 님은 그냥 A는 옳고 B는 그르고 C는 그른데.. 그럼 우린 A밖에 할게 없어..이렇게 말씀을 하시네요.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시고 답 내리신 분한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미 머릿속에 흑과 백이 꽉 들어차신분한테 말하는것만큼 고역인 일도 없습니다.

미쿡에서 80-90년대 태어난 애들이, 그때 그 사회에 몰아쳤던 뉴에이지 열풍의 수혜자라는건 아시는지 ^^.. 과연 소득이 늘어나서 행복한걸까요 아니면 문화가 바뀌어서 행복한걸까요? 그러는 우리나라는 왜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질까요? 님이 좋아하는 통계에서도 그랬는걸요. 이런 경우는 외부효과다라고 말씀하실건가요? 아니면 우리나라가 특수해서 그런거라고 말씀하실건가요? 우리나라는 경쟁이 심한 사회고. 미쿡은 경쟁이 안 심한 사회라서 그런거라구요? 그럼 왜 우리나라는 경쟁이 심하고 미쿡은 경쟁이 안 심하나요?
뭐 여러가지 이유는 있겠지만 어쨋든 결과는 '심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그렇다는 답이 나오겠죠. 딱히 우리나라가 물자가 부족해서 심적으로 여유가 없는건 아닌데요? 힘든 경쟁을 이겨온건 사실이지만 말이죠. 그럼 님 말대로 물자가 많아서 여유가 있는건 아닌데요? 결국은 심리적 문제가 되겠네요? 물자 수급이 어렵든 좋든 간에. 결국 우리가 '힘들다고 느끼'기 때문에 힘든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왜 자꾸 신분제나 할래? 라는 말이 나오는지. 님이야 말로 답을 '딱 한가지'만 정해놓고 모든걸 거기에 끼워 맞추시는 것밖에 안 되는거 아닙니까? 힘들게 사는건 맞는데. 답은 자본주의의 발달. 경제의 발달. 현재 시스템의 끝없는 발달이야! 라는 그것. 제발 그 끝도없는 원궤도에서 나오세요 -_-

계속 모든 얘기가 그런 식이었어요. 지치네요. 아무튼. 우리가 떠들어도 시대는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 으니.
그럼 구경이나 해 보시던가요.
Commented by nolog at 2008/10/31 18:25
까고 말해서 지금 세계는' 버블 ' 상태라고 봅니다.
국지적 버블이 아닌 국제적 버블이죠..........................
제 의견에 동의하시는 분이 몇분이나 계실지 궁금하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1/05 20:20
바야흐로 버블이 꺼지고 있는 상태라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주식이나 주택 가격이 떨어지고 있지만, 아직 바닥을 친 것은 아니니까요.
Commented by 3월의 토끼 at 2008/10/31 20:49
미쿡에서 80-90년대 태어난 애들이, 그때 그 사회에 몰아쳤던 뉴에이지 열풍의 수
혜자라는건 아시는지 ^^..
->지금 장난하십니까? 대체 방금 알게 된 사실을 뉴에이지와 연결하는 근거는 뭡니까?
그리고 조사가 1900-2000사이 중간중간에 계속 이루어진 점진적인 변화는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1980-90년대에 갑자기 수치가 변한 것도 아닌데.

한국이 살기 힘들어진다
->주관적인 의견일뿐입니다. '요즘은 살기 힘들고 옛날이 좋았네'는 고대이집트로 부터 시작해서 계속 내려오는 전통일 뿐이죠, 한번 부모님 계시다면 여쭈어보세요. 과거로 돌아가서 살고 싶냐고요.

빈곤한 국가라고 하더라도. 상류층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_-..........
몰라서 그러세요 알아서 그러세요?
->부유한 국가가 부의 차이가 행복지수에 미치는 영향이 감소->이 뜻도 못 알아듣습니까? 부유해질 수록 물질주의 추구 수준이 감소했다는 뜻도 이해못합니까?

그럼 왜 우리나라는 경쟁이 심하고 미쿡은 경쟁이 안 심하나요?
뭐 여러가지 이유는 있겠지만 어쨋든 결과는 '심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그렇다는 답이 나오겠죠.

->심적 여유가 없다니 근거도 없이 막 말을 하지 맙시다. 그리고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위에서 말했듯 부유한 국가-부의 차이가 행복지수에 미치는 여향 감소->경쟁 감소정도도 이해 안갑니까?

'섭취할수 있는 액체'가 부족해서 물 부족이라는 말이 나오는거지요. 차 끓여 마시고 맥주 마실수 있으면 '그나마 괜찮은 상황' 입니다. 네? 아시겠어요? 차 끓여마시는게 좀 힘들었어요. 아궁이에 불 떼야 하고.. 이런식의 반박 나오면 완전 비웃어 드리겠습니다.
쌀 못 먹고 빵 먹으면 기근입니까. 현 상황을 한참 몰라도 모르시는군요. 원래 언어라든가
문맥이라든가 하는게 해석하고 싶은 놈 하고싶은대로 해석하는거지만
->그래서 요즘도 세계인의 절반이 '섭취할 수 있는 액체'가 부족합니까? 당시는 ''섭취할 수 없는 액체'가 부족해서 1200만명이 콜레라 등으로 죽어가던 시대입니다. 요즘은 수인성 질병을 앓는 인구가 얼마나 될까요?
독해력이 전무한 분의 비웃음은 반사하겠습니다.

누가 신분차별 하쟤요? 님은 그냥 A는 옳고 B는 그르고 C는 그른데.. 그럼 우린 A밖에 할게 없어..이렇게 말씀을 하시네요.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시고 답 내리신 분한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미 머릿속에 흑과 백이 꽉 들어차신분한테 말하는것만큼 고역인 일도 없습니다.

->신분제 외에는 어느 사회에서도 경쟁 자체를 감소하는데 성공한 적이 없는데요? 대체 대안이 뭡니까? 대안을 요구합니다. 자본주의만 아니면 장땡이라는 무근거 답변은 사양합니다.
->나머지 D의 대안을 제시해보라니까요? 뜬구름 사냥하는게 재밌나요? 무슨 대안
이 있어야 비판을 하지, 아무 주장도 없는데 그럼 뭘 비판합니까?
그냥 주관적인 느낌을 근거로 개인이 세상을 바꾸자는 엄청난 말이 나오니 비판하는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자꾸 신분제나 할래? 라는 말이 나오는지. 님이야 말로 답을 '딱 한가지'만 정해놓고 모든걸 거기에 끼워 맞추시는 것밖에 안 되는거 아닙니까? 힘들게 사는건 맞는데. 답은 자본주의의 발달. 경제의 발달. 현재 시스템의 끝없는 발달이야! 라는 그것. 제발 그 끝도없는 원궤도에서 나오세요 -_-
->그나마 발전 때문에 우리가 덜 힘들게 산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데 어이없게 반대로 이해하네요. 어떻게 논쟁을 계속할 수 있겠습니까.

계속 모든 얘기가 그런 식이었어요. 지치네요. 아무튼. 우리가 떠들어도 시대는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 으니.
그럼 구경이나 해 보시던가요.
->구경 안 하면 어떻게 할건데요? 개개인의 일상적인 삶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변화들이 시대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한두번의 혁명이 시대를 바꾸지 않습니다.

그리고 통계비판에 대해서:
제레미 리프킨을 들먹이면서 권위에 의존한 사람이 누굽니까? 정말 황당하군요. 제가 소개한 사이트들은 가봤습니까? 워낙 많아서 일일히 소개하기 힘들만큼 있는데.
제가 가르쳐 줘도 찾아서 이해하기나 할건지?
아니 그보다 통계학을 이해하기나 하는겁니까?
아무리 통계를 부정해도 주관적인 느낌이나 일화적인 증거보다
통계가 더 신뢰성을 가지는건 당연한데 님은 순전히 느낌이나 신문기사에서나 들은 소문으로 주장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레미 리프킨이나 신문기사를 예를 들고 있는데
리프킨이 데이터를 어떻게 냈는지 알고는 있습니까?

일단 여기서
http://www.worldvaluessurvey.org/
->Findings->Development, Freedom, and Rising Happiness
Written by Inglehart, Foa, Peterson and Welzel
행복지수 조사한 결과를 직접 다운받을 수 있으니,
객관적으로 어떻게 비판좀 해보시죠?
Commented by 3월의 토끼 at 2008/10/31 20:51
그리고 이 글의 주제에 맞지 않는 논제를 가지고
쓸데없이 논쟁을 벌인것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 주인에게는 사과드립니다.
Commented by reske at 2008/10/31 21:41
nolog/쓰신 글의 전반적 내용이 대부분 첫번째로 본문과는 그다지 관련없는 글 같군요. 이런 글이라면 트랙백을 해서 글을 쓰는것이 온당하다고 봅니다만.

그리고 대안제시없이 무조건 "물질문명에서 벗어나자"라고 말하는건 공허해 보이는군요. 자본주의, 공산주의 이외에도 대안적 체제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시지만, 제 상식 안에서는 자유시장경제와, 제도-정부에 의해 재화가 통제되는 경제체제 이외의 대안적 체제는 존재하지 않는걸로 보입니다. (물론 이슬람권이나 아프리카같은 지역에서는 종교나 부족체제가 사회적 부를 분배하기도 하지만..) 최소한 그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청사진 정도라도 제시하신 다음에, 대안적 체제를 주장하심이 순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Commented by 별마 at 2009/12/22 13:48
본문과 상관없지만 케인즈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던정짓는
'지그문트 돕'이라는 베리타스 재단 출신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돕은 더 나아가 슘페터마저 네오마르크스주의자라고 몰더군요. ^^
혹시 궁금하시다면 http://www.keynesatharvard.org/book/index.html

여담이지만 홈지기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해리 덱스터 화이트는 정말 소련 스파이었을까요?
국내에서 완고한 자유주의자로 정평이 높은(?) 이상돈 교수는
해리 화이트를 소련 스파이로 단정하는 류의 책들을 번역해 왔는데
솔직히 저는 좀 갈피를 못 잡겠더라구요(이것 때문에 케인즈도 공산주의자로 모는...)
sonnet님의 의견이 어떤지 혹시 괜찮으시면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 해서 덧글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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