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소개했던 사카키바라의 글
시장 원리주의의 종말에 개인적인 의견을 좀 덧붙여 볼까 합니다.
우선 금을 선호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유에서부터 시작해 보기로 하지요.
그런 사람들 중에는 투자 수단으로서 적합하다고 생각해 금을 매입하는 사람도 있겠고, 소재로서의 미적 특성에 만족해 금붙이 장신구를 자주 사모으게 된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여기까지는 약간의 편차는 있을 지언정 대략 상식적인 행동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어떤 사람이 금을 좋아하다 못해 집에 금송아지를 빚어 놓고 하루에 다섯번씩 절을 하기 시작하면 어떨까요?
아마 집에서만 절을 한다면 그래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경지에 도달한 이들은 확신에 찬 사람들이기 때문에 대개 거기서 멈추진 않지요.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너도 금송아지에게 절을 같이 하자고 권하고 다닌다거나, 그가 권력자여서 모든 백성들에게 금송아지에게 절을 드리도록 칙령을 내린다면?
이것은 금이
수단으로서의 정상적인 역할을 벗어날 경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이것은 시장 원리주의자들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시장 원리주의자들은 시장의 우월성과 적합성에 대한
특별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떤 문제가 주어지면,
반사적으로 시장을 이용한 해결책을 내놓고 그것을 옹호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곤 합니다. 그들에게 있어 시장이란 어떤 요리에 넣든 음식 맛이 200% 좋아진다는 마법의 조미료와 비슷한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이지요.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정책 수단 중 매우 강력하고 효과적인 것이며, 아마도 우리의 도구 상자에 있는 것 중 제일 우수한 도구일 거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제일 우수한 도구라는 것과 마법의 조미료와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마법의 조미료는 성적으로 말하자면 언제나 +α점을 만들어주는 물건인 반면, 제일 우수한 도구라는 개념은 평균을 냈을 때 상대적인 성능일 뿐 그 도구가 현 상황에 적합한지 혹은 부적합한지나, 성적의 평균기대값, 편차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선 글에서 사카키바라는
"어떤 사람이 시장 원리주의자의 관점과 공산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둘(정부와 시장)은 대체물로 보일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확실히 둘은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나 시장경제에 대해 본능적인 혐오와 거부를 보이는 것처럼, 시장 원리주의자들 또한
시장이 할 수도 있는 여지가 있는 모든 일은 시장이 가장 잘 할 수 있다라는 대전제 하에서 시장의 역할 확대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에 대해 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시장이란
수단은 우리의 정책 도구 상자에서 가장 우수한 것일 거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도구 상자에서 시장은 평균점수 40점으로 종합평균 1위를 달리는 도구라고 해 봅시다. 당연히 이 말은 모든 경우에 시장이 40점을 보장해 준다는 이야기일리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60점, 또 어떤 경우엔 30점, 또 20점 이런 식일 수가 있겠지요. 그러다보니 가끔은 시장이 낮은 점수를 보이는 문제에 대해 다른 대안들이 보다 좋은 점수를 내는 경우가 있기 마련입니다.
거의 모든 국가는 전시가 되면 정부의 권한을 강화합니다. 총력전 같은 본격적인 전쟁이 되면 전체주의 국가는 물론이거니와, 자유시장경제에 가장 크게 의존하던 국가들 조차도 시장에 대한 의존을 크게 줄이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의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평상시에 정부의 관료주의가 지체와 비효율성을 낳는다는 인식이 그처럼 널리 퍼져 있는데, 왜 전시에는 다들 정부의 통제와 동원이라는 수단을 향해 몰려드는 것일까요?
미국의 자동차 생산(1900~) :
제2차세계대전 기간 중 자동차 생산이 0로 떨어진 것은 시장에 의한 결과가 아니었다.
흔히 시장은 가장 효율적으로 정보를 배분하는 수단이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시장경제는 명령경제보다 우월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시에 적국을 압도해 승리하고자 하는 국가라면 그 어느 때보다도 효율적인 정보배분 수단을 활용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선 완벽한 것은 아니더라도 한 가지 설명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경험적으로 보면,
시장은 위기에 취약합니다. 그것도 다른 대안적 수단들에 비해 더 심하게 취약한 경향이 관찰됩니다.
1) 이번 미국의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다수의 금융기관이 보유중인 많은 모기지 기반 증권들은 사실상 거래가 중단되어 시장 가격을 매길 수조차 없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즉 이 상품에 대한 시장이 스스로 붕괴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증권들을 구성하는 모든 모기지 채권이 몽땅 채무불이행 사태에 빠질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과거 사상최악의 상황(25%의 실업률!)을 자랑하던 세계대공황 당시 부실 모기지 채권을 처리했던
HOLC의 경험을 보더라도 이 중 상당수를 살려내 적어도 본전 이상은 건질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설마 지금 시장은 1930년대의 세계대공황 보다도 훨씬 엄혹한 대파국이 우리를 덮칠 것이라고 예견하기 때문에 그 합리적 기대를 반영해 붕괴한 것일까요?
2) 사카키바라 역시 비슷한 사태를 지적합니다.
1997~98년의 [아시아 외환] 위기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배운 한 가지 교훈은 그것이 환율이든 이자율이든 간에, 가격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반드시 시장에서 균형을 회복시켜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많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만약 환율 -예를 들자면 인도네시아의 루피 화- 이 충분히 평가절하된다면, 수요공급은 그 지점에서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기는커녕, 많은 경우 시장은 그대로 붕괴되고, 환율은 끝없이 떨어졌습니다.
3) 마찬가지로 (변동가능한) 고정환율제이던 브레턴우즈 체제 시절, 자유변동환율제를 지지하던 밀튼 프리드먼은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오르거나 떨어질 경우 이를 공격하는 반대투기가 일어나 투기꾼들은 환율 안정화 세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논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환율 안정화 투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세를 거스를 수 있는 배짱투자가는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이번 미국 금융위기 사태의 경우 워렌 버핏은 골드먼 삭스에 50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좋은 거래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요즘같은 상황에 이런 식으로 투자은행에 돈을 묻어둘 간 큰 투자가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4) 세계대공황 당시 은행예금인출사태(bankrun)로 큰 곤욕을 겪은 후, 세계 각국에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예금보험 및 중앙은행의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통해 이런 공황상태를 예방하는 것이 표준적인 관행이 되었습니다. 이 또한 시장은 스스로 만든 혹은 자신이 빠져든 공황을 적절히 벗어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평온한 일상적 환경에서라면 대개 가장 좋은 성과를 가져다 주며, 장기적이 될수록 더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를 해 보자면, 우리처럼 상식적인 수준에서 "도구로서" 시장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좌 우 양 측면에서 적을 만나게 됩니다. 즉 오른쪽에는 시장이 잘 하건 못하건 그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는 "믿쑵니다"파 시장 원리주의자들이 있고, 왼쪽에는 시장이 잘 하건 못하건 간에 꼬투리잡을 거리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거봐라"파 반시장주의자들이 웅거하고 있는 셈입니다.
시장원리주의자와 반시장주의자 같은 극단주의자들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성공적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이럴 경우에 대해 스티글리츠는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그렇지만 시장 메커니즘을 포기하는 데 따르는 비용도 있는데, 이 비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거의 모든 중앙집권적 배분 메커니즘이 시간에 따라 점증하는 문제에 부딪친다. … 시장 메커니즘이 더 오랫동안 정지될 때, 시장이 가져와서 비시장 메커니즘이 이용하는 정보는 점점 더 낡아빠진 것이 된다. 비시장 메커니즘은 이 오랜 시간 동안 작동하게 되는데, 그것이 사용하는 정보는 시장이 작동하고 있는 동안 제공된 정보이다. 그러나 최신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고,
결국 시장은 복구되어야 한다. 따라서 어떤 조건하에서는 위기 동안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 시장과정을 폐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장이 불완전하다는 점, 시장 메커니즘의 일부 장점이 - 혹은 적어도 시장이 제공하는 정보가-
이 집권화의 장점과 잠시동안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Stiglitz, Joseph E.,
Whither Socialism?, MIT Press, 1994
(강신욱 역, 『
시장으로 가는 길』, 한울 아카데미, 2003, pp.256-257)
즉 위기 상황에서 단기 극약처방이라는 단서를 붙인다면, 시장 메커니즘을 정지시키는 것 조차도 시장을 완전히 저버리는 것이 아니며 시장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스티글리츠의 처방은 기본적으로 수단의 장점보다는 단점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즉 위기때는 시장이 약점을 노출하니까 비시장적 수단으로 위기를 넘기고, 또 비시장적 수단은 장기적으로 취약하니까 약점이 누적되기 전에 빨리 시장으로 복귀해 문제점을 억제한다면, 양자의 약점을 상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서 던졌던 의문, 즉 자본주의 진영에서조차 왜 전시엔 국가가 경제의 주도권을 장악했다가 전쟁이 끝나면 시장에게 주도권을 반환하는가에 대한 한 가지 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해법은 전시 뿐 아니라 대규모 경제위기 등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