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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원리주의의 종말
7~8년 전에 번역해 두었던 "Mr. Yen" 사카키바라의 글입니다. 저는 속칭 '신자유주의'라는 용어가 매우 모호하다고 느껴서 보통 시장 원리주의(market fundamentalism)이란 용어를 선호하는데, 사카키바라의 글은 그 개념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장원리주의의 종말(The End of Market Fundamentalism)
* 필자: 사카키바라 에이스케(榊原英資)
* 출처: Asiaweek
* 일자: 1999년 2월 5일

이 문건은 1999년 1월 22일, 일본 대장성 재무관(차관) 사카키바라씨가 도쿄 외신기자클럽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여기 드러난 관점은 개인의 것이며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그 유명한 “자유방임주의의 종말”이란 글을 발표했던 것은 1926년의 일이었습니다. 그 이래 역사는 대공황, “뜨거운” 전쟁과 냉전, 브레튼우즈 체제의 성립, 미국 달러의 금태환 정지, 오일 쇼크, 정보통신기술의 혁명 등을 거쳐 왔습니다. 20세기 말에 맞이한 현 상황은 한바퀴를 완전히 돌아 1920년대 말의 상황과 무척 유사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대영제국의 패권(Pax Britannica) 아래서 1870년부터 1913년 사이에 자리를 굳혔던 고전적인 금본위체제는 적어도 GDP에 대한 국경을 넘은 상품과 서비스, 자본의 유통 비율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현 시대의 그것을 능가하기까지 하는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통합을 달성했습니다.

1919년에 발표한 새로운 시대를 연 소논문 “평화의 경제적 귀결”에서, 케인스는 당시의 보통 영국 사람들에게 있어 글로벌리제이션 혹은 세계 경제의 통합이란 “그것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을 제외한다면, 정상적이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불변의 것으로 이런 방향으로부터의 이탈이란 몰상식하고 끔찍하며 피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기록했습니다. 1910년대에 유행했던 이와 같은 글로벌리제이션과 자유방임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은 1990년대의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나날이 커져만 가는 강력한 신념으로 재현된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정보통신혁명이 국제거래, 특히 국제금융거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글로벌리제이션은 금본위시대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기는 합니다. 이러한 가상거래의 속도와 복잡성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3년 이전에 존재했던 국경을 넘나드는 국가들 간의 강력한 상호의존성과 결부된 자유방임 이데올로기의 횡행은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빨아들여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글로벌리제이션과 결합된 대처-레이건 시대 이후의 시장 원리주의(market fundamentalism)의 우세와 매우 흡사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지난 20여 년간에 걸친 시장원리주의의 물결이 금본위시대의 자유방임주의처럼 지탱불가능한 것으로 입증될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입니다. 예를 들어 조지 소로스는 시장원리주의는 1913년 이전에 보여주었던 사회 정치적 제도들에 대한 시장의 승리처럼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소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불건전하며, 계속 굴러갈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금융시장이란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것이며, (세상에는) 시장 세력들의 고삐를 풀어놓는다고 해서 충족될 수 없는 사회적 요구사항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국제자본체제를 불건전하고 지탱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시장원리주의입니다. 이는 비교적 최근에 벌어지기 시작한 사태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국제자본의 이동은 제한되었고 브레튼우즈 체제는 자본이동이 부재한 상태에서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설치되었습니다. 각종 규제는 점진적으로 축소되어 왔으며, 1980년 무렵에 마가렛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이 권력을 잡고 나서야 시장원리주의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된 것입니다.”

“자유방임의 종말”이란 케인스의 선언이 이루어진 후 반세기가 넘도록 민간국제자본의 이동은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국제적 자본 중개의 부흥은 1970년대 발생한 두 차례의 오일 쇼크 후에야 벌어지기 시작한 (새로운) 현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소로스의 말은 옳습니다. 자유방임 이데올로기의 최신판인 「시장원리주의」는 대처, 레이건, 콜 같은 신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실현되었고, 이는 런던이나 뉴욕 같은 금융시장이 글로벌 자본주의의 핵이 되도록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금융자본 중심의 시장원리주의의 점진적인 침식은 1994~95년의 멕시코 위기와 1995년의 아르헨티나 위기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1982년의 멕시코 위기와는 달리, 이들 위기에서는 미국 이자율과 달러 가치의 급등 같은 외부 요소들이 위기를 촉발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1994~95년 위기 당시 다른 명백한 외부 요인은 없었습니다. 미국 시장을 포함한 제반 국제상황은 안정되어 있었으며,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경제개혁은 국제사회에 의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일부 경제학자들, 예를 들면 루디거 돈부시 같은 이들은 1997년의 아시아 (외환)위기처럼 과대평가된 통화가 직접적인 요인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1994년에서 1998년에 걸친 위기를 통해 실질환율의 과대평가는 공황을 촉발시킨 요소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또한 1994년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단기부채는 그들의 외환보유고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특히 1995년 초의 수개월 안에 갚기로 되어 있던 약 280억 달러 가량의 미 달러화 표시 단기 공공부채(tesobonos)는 당시 60억 달러밖에 없던 외환보유고 수준을 훨씬 넘는 것이었습니다.

1997년 중반 태국, 인도네시아, 남한의 민간 단기부채와 외환보유고 사이에도 비슷한 상황이 존재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이는 민간의 단기 부채로 누적되어온 공공부채가 아니었습니다.

몇 가지 취약성의 징후가 증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사건, 정치적 불확실성, 혹은 대기업의 파산 등이 공황을 촉발시킬 때까지, 멕시코에서 남한에 이르는 이들 위기는 시장참여자들과 분석가들에 의해 예측되지 못하였습니다. 대출에 대한 리스크 프리미엄은 낮게 유지되었으며, S&P와 무디스 같은 신용평가기관들은 위기가 시작될 때까지도 국채에 대한 높은 평가를 유지했습니다. 많은 분석가들과 자본가들은 위기가 터져 나올 때마다 고도의 투명성이나 적절한 정보공개의 부재가 리스크를 적절히 평가할 수 없도록 방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객관적 증거와 자료들은 실질환율, 민간부문의 단기대외부채, 경상수지, 금융부문 대차대조표 같은 관련 정보가 대부분 가용했음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들이 시장의 리스크 평가에 적절히 반영되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특히 헤지펀드나 연금펀드 같은 비은행권 금융기관들의 행태를 본다면, 누구나 (제3세계) 신흥시장 리스크에 대한 합리적이고 상세한 계산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군중심리가 지배적이라는 결론으로 기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소위 “합리적”인 계산이라던 LTCM 같은 사례에서는 어떤 안정된 균형이 당연히 존재한다고 가정했던 그들의 모델이 엉터리였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들 위기의 세부사항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살펴본다면, 사람들은 시장의 신뢰가 갑자기 뒤집어질 때마다 다양한 강도와 기간에 걸친 주기적인 공황이 발생하는 것은 자유화된 국제자본시장의 본질적인 불안정성이 보내오는 청구서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멕시코와 남한 위기는 이들 국가들이 OECD에 가입하여 그 기구의 자본자유화의 규칙에 따르기 시작한 직후에 벌어졌다는 것을 적시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1993년 이후에 이루어진 다섯 아시아 국가들 -남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의 자본계정의 상당한 자유화 조치 후, 1994년에서 1996년 사이의 3년간 대략 2,200억 달러에 달하는 민간자본이 이 지역으로 유입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시장 신뢰의 갑작스런 변심에 따라 1997년에 벌어진 자본의 역류는 대략 1,00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어떠한 나라나 지역도 장밋빛 환상에서 공황으로 급락한 시장 정서가 일으킨 민간자본흐름의 거대한 역류를 견뎌낼 수는 없습니다.

시장원리주의의 중심에는 왈라스의 일반균형모델 내지는 신고전파 패러다임을 널리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범위의 경제, 제한적 합리성, 비대칭 정보, 그 외 각종 시장의 불완전성 같은 관점에서 그런 모델들의 포괄적 적실성에 의심을 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자화된 개인 그리고 이들 원자화된 개인과 기업들 사이에 어떤 안정된 균형이 달성될 수 있도록 거래를 중재하는 시장에 어떤 종류의 합리성을 가정하는 학설이 여전히 정통교리로 남아 있습니다.

조지 소로스는 최근 그가 내놓은 책에서 합리성과 원자성을 그가 정의한 “실패가능성”(fallibility)과 “반사성”(reflexivity)이라는 개념과 대조시킵니다. 이러한 개념들에 대한 소로스의 정식화는 사회와 역사에 대해 우리가 가진 상식적인 이해와 더 잘 들어맞습니다. 일단 우리가 개인들의 합리성과 원자성을 가정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즉각 어떠한 사회적 상호작용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정지된 세계로 뛰어들게 됩니다. 우리는 자료들을 그저 조잡하고 간단한 수학적 모델로 분석할 수 있는, 움직일 수 없고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객체로만 관찰하게 됩니다. 따라서 경제학은 역사와 사회가 결여된 채 자연과학의 고전적인 형태를 모방한 조잡한 과학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어떤 사람이 인류의 지식은 극도로 제약되어 있으며, 우리가 그 어떠한 데이터나 분석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미래는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건 사회적인 것이건 예측불가능하다는 것을 용인한다면 우리는 케인스가 자신의 글에서 지적했던 대로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경제적 악은 리스크와 불확실성과 무지의 소산”이라고 손쉽게 결론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제적 주체들의 한정된 지식과 제한된 합리성, 그리고 시장에 관여하는 주체들의 기간 간 상호의존성과 동시성을 고려한다면, 시장이 언제나 경제주체들로 하여금 안정된 균형으로 향하도록 인도한다고 결론짓기는 지극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왈라스의 일반균형이론의 설정 아래서 고전파 혹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경매관리인이 있어 시장에서 다양한 경제적 거래들을 성사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공공 인프라스트럭처가 순조롭고 적절하게 동작하게 해준다고 상상함으로서 이들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정합니다. 이때 비대칭 정보, 독점, 기만과 사기 같은 문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경매관리인은 “시장”을 운영하는데 있어 전지전능하다고 가정되기 때문입니다. 제도, 정치, 사회, 시장 사이에서 벌어지는 근본적인 문제들은 여기서 단순히 사라진 것처럼 치부됩니다.

1940년대 칼 폴라니가 적절히 지적했던 것처럼, 19세기의 자유방임체제는 시장 메커니즘의 필요에 사회가 몸을 맞추도록 강요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자유방임체제에서는 “경제가 사회적 관계들 속에 포함되는 대신, 사회적 관계가 경제체제 안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유방임체제는 20세기 초부터 점차 해체되어 경제적 사회적 혼돈으로 빠져들었습니다. 폴라니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시장 메커니즘의 필요에 사회가 몸을 맞추어야 했기에, 시장 메커니즘이 가진 기능의 불완전성이 사회적 본체에 무거운 부담이 누적되도록 만들었다”고.

20세기 말인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이와 매우 흡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19세기 자유방임주의의 최신판인, 시장원리주의는 많은 나라의 사회에 시장 메커니즘을 강요하고 있으며, 잘못 동작하는 시장들이 다양한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체제전환중이거나 신흥 경제권에서 그럼 문제가 현저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1998년 8월 17일 발생한 러시아 위기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러시아 사회와 통치체제를 시장 메커니즘에 적합하도록 개조하려던 7년간의 소위 “개혁”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충분히 발달된 시장경제로 변신하는 대신, 러시아는 사실상 경제거래의 상당 부분이 물물교환을 통해 이루어지는 제2경제를 만들어낸 것처럼 보입니다. 인도네시아 또한, 1997~98년 사이 IMF 프로그램 하에서 시장 메커니즘을 신속히 도입할 것을 강요당한 후, 현재 그 사회정치체제를 시장체제에 맞추기 위한 매우 괴로운 과정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1997~98년의 [아시아 외환] 위기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배운 한 가지 교훈은 그것이 환율이든 이자율이든 간에, 가격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반드시 시장에서 균형을 회복시켜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많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만약 환율 -예를 들자면 인도네시아의 루피 화- 이 충분히 평가절하된다면, 수요공급은 그 지점에서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기는커녕, 많은 경우 시장은 그대로 붕괴되고, 환율은 끝없이 떨어졌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다수의 균형점이 존재하는 경우라고 부르면서, 일단 우리가 한 균형점 근처를 벗어나버리면, 우리는 대혼돈 혹은 대폭발 상황으로 내던져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 체제는 균형점 근처를 제외하면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것이지요.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자유변동환율제는 위기상황에서 상황을 안정시키기는커녕, 외환거래만 붕괴시키게 될 것입니다. 똑같은 현상이 몇몇 위기상황에서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이자율을 끌어올릴 경우에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높은 이자율은 국내외 자금의 수요와 공급의 안정적인 균형점을 이끌어내는 대신, 그저 광범위한 금융거래의 붕괴만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이 바로 1997년 말에서 1998년 초에 걸쳐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복수의 균형점의 존재와, 균형점 근처를 벗어날 경우에 발생하는 불안정성은 일반적으로 시장의 근본적인 특성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현상은 금융시장에서 특히 심합니다. 따라서 소위 과열-붕괴 순환이란 어떠한 금융 시장에서도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나 아시아의 금융 버블은 꼭 거시경제정책 단독의 실책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실패가능성을 지닌 시장참여자들이 다른 참여자들과 불완전한 통찰력을 갖고 상호작용하는 곳인 시장이 만들어내는 자연적 귀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양호한 거시경제정책과 함께 적절한 정보공개와 투명성을 확보한다고 해서 이런 유형의 위기를 반드시 예방할 수 있게 된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지난 수년간 우리가 배운 점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990년 4월, 존 윌리엄슨은 1980년대의 부채 위기 당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 부과된 조건들을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이름으로 규정했습니다. 이 컨센서스는 그 이래 G-7 국가들과 국제 금융기구들이 1990년대에 글로벌 경제를 관리하기 위한 작업원칙으로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이 컨센서스를 열 가지 정책 지침으로 정리하고 논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컨센서스란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시장과 건전한 통화”라는 구호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해두면 충분할 것 같군요.

우리가 지금까지 이 컨센서스의 자유로운 시장이라는 측면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해왔기 때문에, 이제 건전한 통화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1980년대와 그 이전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몇 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정책 당국에게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었습니다. 그리고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다루기 위한 이론으로서 통화주의는 가장 적절한 거시경제적 틀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따라서 1980년대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대한 정책논의를 할 때, 통화주의적 사고방식이 그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IMF의 금융 프로그램들은 그 이론적 기원에서 상당히 통화주의적이었거니와 IMF의 사고방식의 주춧돌이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들은 1960년대부터 IMF의 서반구 담당부서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이 부서가 미주대륙, 주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담당했던 것(과 IMF의 정책이 통화주의적인 성향을 띄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습니다.

통화주의적 사고방식을 확산시킨 견인차로 작용한 또 다른 사태전개는 유럽 통합, 특히 유럽 화폐들의 통합이었습니다. 이들 국가들 간의 인플레이션율과 이자율의 수렴은 화폐통합의 핵심이었습니다. 따라서 재정적자의 축소와 견실한 통화정책을 통한 반 인플레이션 정책은 유럽 통합 정책의 열 가지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통합과정의 핵심국가는 바로 독일이었는데, 이 나라는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처럼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악몽을 유산으로 갖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다고 칩시다. 하지만 통화주의가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잠재적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맞서기 위한 기본 틀이라는 수준을 벗어나 거시정책관리의 만능 이론으로까지 숭배되면, 문제는 재발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내 사무실을 방문했던, 국제통화기금의 한 국장은, IMF에서 그가 벌였던 어떤 실험에 대해 우스갯소리처럼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한 컨설팅 보고서에서 해당 국가의 이름을 지워버린 다음 그 문서를 자기 부서의 전문가들에게 회람시키고, 그들에게 그 나라의 이름을 맞춰보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나라는 비교적 작은 아시아의 한 개발도상국이었습니다. 그 보고서는 통화 공급, 국내 신용, 예산적자, 부채-서비스 비율 같은 워싱턴식 전문용어들로만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걸 보고 그 나라의 이름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신고전주의든 통화주의든 간에, 만능 이론을 개발도상국 경제에 맹목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국제기구나 정부 또는 민간 채권자들의 지배적인 관습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개발도상국들은 그런 처방을 거부할 경우 시장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을 우려해, 교조적인 규칙들이 일방적으로 부과되는 것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던 면도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워싱턴” 컨센서스란 워싱턴에만 있는 컨센서스가 아니라, G-7 및 다른 IMF-세계은행 회원국들, 채권자뿐 아니라 채무자, 그리고 시장참가자들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완벽한 공조는 문제의 국가에 대한 과도하게 낙관적이었다가 비관적으로 돌변하는 기대를 상호 강화하였습니다.

아시아 위기는 이러한 워싱턴이 만들어낸 과도한 낙관주의가 공황으로 돌변한 좋은 사례인 것 같습니다. 아시아, 특히 동남아시아는 어떤 면에서 글로벌 자유방임 유형의 금융과 상업 거래에 잘 어울리는 지역이었습니다. 동남아는 워싱턴이 주도하는 글로벌리제이션을 전통적인 그들 자신의 글로벌 상업주의 구조와 접목시켜 왔습니다. 8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아시아는 이슬람, 인도, 중국 상인들이 펼치는 세계 상업 활동의 중심지였고, 나중에는 베네치아, 네덜란드, 영국 상인들도 뛰어들었습니다. 따라서 그곳에는 금융 및 상업 양 면에서 국제 거래를 위한 인적 네트워크가 이미 갖춰져 있었으며 중국과 인도 같은 역외 국가들도 새롭게 떠오르는 국제시장에 신속히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 외환 위기 이후 우리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공명한 아시아적 전통이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품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시장은 아시아에 워싱턴 컨센서스를 실현함에 따른 이익이 클 것이라고 믿었으며, 아시아에 대한 낙관론은 계속되어 그 결과 1993년부터 1996년 사이에 거대한 자본의 유입이 일어났습니다.

아시아 상업주의와 금융과 통신기술의 글로벌리제이션의 결합이 가져온 주요한 측면 하나는 그것이 경제 구조의 겉면만 건드리면서 제조업 기반을 약화시켰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인프라나 제조업 보다는 금융센터 건설과 같은 서비스업과 부동산 산업에 프로젝트들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교육과 근로자들의 현장교육훈련, 기업의 조직 개선 등이 뒤처지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노동생산성과 효율 향상은 실질실효환율의 상승에 영향을 받는 수출산업에서조차 신통치 않다는 점을 폴 크루그먼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지적했습니다. 한때 갖고 있던 낮은 임금에 따른 경쟁력은 빠르게 소멸되었고 급등하는 사무실 비용 또한 상대적인 경쟁력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아시아 외환 위기는 워싱턴에 있는 국제기구들이 워싱턴 컨센서스를 일방적으로 부과해서 발생한 것만은 아니며, 이 지역의 거품을 만들고 결국 그 지역의 거품을 터지게 한 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한 전세계가 시장 메커니즘에 대해 과도한 낙관론을 품은 결과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1997년 7월 이후 아시아에서 진행된 G-7국가와 국제기구들에 의한 위기관리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으며, 적어도 초기단계에서는 그랬다는 주장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전세계의 기성 관리들은 여전히 통화주의적 경향을 가진 신고전파 패러다임을 믿고 있었으며 그것이 초기 단계에 재정 통화 정책에 대한 처방이 너무 엄격했던 것과 국제기구들로 하여금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단시간 내에 이루기 힘든 비현실적인 구조개혁을 요구하도록 한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 자신이 국제기구들의 의사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했었고 내켜서 한 것은 아니라도 결과적으로 [국제기구들이] 권고한 것에 대해 동의했었기 때문에, 저는 그런 일이 일어난 데 대해서 남들을 비판할 입장이 못 됩니다. 다만 저는 제가 앞으로 이와 비슷한 상황에 다시 직면하게 된다면, 일을 다르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새로운 국제 금융 체제에 대한 미야자와 대장상의 1998년 12월 15일 연설에서 명백히 공표된 바 있기 때문에, 여기서 저는 오늘날 새로운 국제 체제와 개발 전략 모두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이 강력히 요구된다고만 말씀드려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국제 금융 체제에 대한 문제들을 다루는데 있어서, 우리가 직면한 마지막이자 아마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화에 대한 것일 겁니다. 지난 10여 년간 세계화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앞서 제가 지적했던 것처럼 1990년대의 세계화의 원동력이 된 정보통신기술의 혁명은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다수파라고 생각되는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 또는 세계화의 궁극적 목표는 즉 진정 글로벌한 자본주의를 수립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에 따르면 글로벌 자본주의란 실질적인(virtual)인 수준에 머무를 수도 있겠지만 바람직한 것이거나 적어도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혁명적인 발전 때문에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현재의 세계금융시장이 더 긴밀히 통합되었고, 24시간 내내 실시간 가상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혹자는 우리가 이미 글로벌 자본주의 하에 있다고, 적어도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그렇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권국가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지난 1,20여 년 사이에 시장에 대한 주권국가의 직접 개입 수단은 상당히 쇠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책과 포고는 어떤 근본적인 형태로 시장에 영향을 줍니다.

다니엘 예르긴과 조셉 스타니올라우 같은 필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프로세스를 정부와 시장 간의 싸움으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사실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정부와 시장을 대체관계라기보다는 보완적인 관계라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한 것처럼 생각됩니다. 맞습니다. 어떤 사람이 시장 원리주의자의 관점과 공산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둘은 대체물로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1945년 이래의 전개는 그런 관점에서 분석될 수도 있습니다.

최소한 한 세기를 단위로 삼는 더 긴 역사적 시각에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페르낭 브로델에 따르면 역사에는 크고 작은 사건들, 장기지속이나 순환주기들, 그리고 구조라는 세 가지 시간단위가 있다고 합니다. 1945년 이래 50년 정도의 기간은 구조라는 단위를 갖고 분석하기에는 너무 짧으며, 순환주기나 순환주기의 일부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저의 잠정적인 관점은 1930년대에서 1990년대 후반까지의 시기는 대공황 이후의 강한 정부개입의 시기에서 시장 원리주의의 시기로 가는 장기순환주기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앞서 주장한 것처럼, 미국의 강한 영향 하에서 있던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시장 원리주의의 시기는 영국의 패권 하에 있던 1870년에서 1913년 사이의 시기와 유사한 것처럼 보입니다. 1870~1913년 사이의 금본위제 대신, 우리는 지난 20여 년 동안 실질적으로 미국 달러 본위 하에 있었습니다. 이제 문제는 이러한 새로운 버전의 자유방임체제, 즉 팍스 아메리카나가 컴퓨터 통신 혁명의 뒷받침을 받아 21세기에도 계속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의 답은 여러분도 짐작하시듯이 부정적인 쪽입니다.

첫째, 사회주의의 사망 이후 한동안 보장된 것처럼 보이던 미국의 지배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기반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얼마간은 유럽 통합 때문이고, 다른 얼마간은 근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잠재적 반미 감정 때문입니다. 둘째, 가장 중요한 점인데, 글로벌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세계는 중대한 규모의 소동을 오랫동안 견뎌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본 딜레마는 자유롭게 굴러가는 글로벌 시장과 주권국민국가 사이에 가로놓여 있습니다. 대니 로드릭은 칼 폴라니를 인용해 이 점을 아주 간결하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

“폴라니의 불후의 통찰력은 시장이란 사회적, 정치적 제도들 안에 포함되어 있는 한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의 결과를 규제하고, 안정화하고 정당화하는, 세 가지 기능을 제공하는 제도들이 없다면 시장은 살아남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제대로 굴러가는 사회라면 어디든 불공정 경쟁이나 사기를 규제하는 기구, 호황-불황의 경기순환을 완화해주는 통화와 재정 기관, 그리고 시장이 만들어낸 결과가 위험과 보상의 분배에 관한 한 사회의 선호와 합치되도록 도와주는 사회보험체제를 갖고 있는 이유이다.”

사회 정치적 기관이나 정부는 시장을 보완하고 지원하는 것이지, 시장과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 대 시장의 문제를 규제 대 경쟁이라는 식으로 바꿔놓아선 안됩니다. 정부는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며, 금융시장은 적절한 감독이 있을 때만 잘 동작하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시장의 산출물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글로벌한 차원에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우리가 단순히 이러한 글로벌한 기관들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책 독립성을 가진 주권정부들을 가진 이상, IMF나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들은 완전히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글로벌 자본주의를 보완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논리적으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정책공조란 것은 어느 정도는 글로벌리제이션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만, 주권이 존재하는 이상 글로벌 자본주의를 완전히 보완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쇠퇴하는 미국의 헤게모니는 오늘날 존재하는 공조의 수준을 떨어트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 정부나 미국 혹은 다른 단일 국가가 지배하는 세계 제국을 갖지 못하는 이상 글로벌 자본주의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논리적 결론일 수밖에 없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미국이 금융 제국에 근접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20세기 말에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분명히 그렇지가 못합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는 어떤 형태로건 국민국가나 국민국가들의 연방이 남아있을 거라고 간주해야만 하며, 글로벌 자본주의의 해외거래는 구속될 필요가 있고 정보공개, 감독, 신중한 규제와 완전한 통제를 통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해치는 일방적인 주권행동을 제약하기 위해 금융과 무역 양 분야에서 공통의 국제규칙이 수립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점은 효과적인 경쟁을 유지하는데 주의가 기울여져야 하는 것이지, 시장 참여자들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보장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정책공조는 국내외의 전문가들로부터 나오는 실질적이고 전문적인 조언 못지않게 정치적인 레벨에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주권국가의 정치적 의지는 글로벌한 정책 결정이 필요할 때도 존중되어야만 합니다. 이는 정책공조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정보혁명 이후의 시대에 공조의 필요성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만, 공조는 공조로 남아있어야지 강압이 되면 안 됩니다.

넷째는 셋째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만, 유효한 공조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각 국가들의 자본주의 구조 간의 상이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장은 그 국민국가의 사회 정치적 제도 속에 효과적으로 포함될 필요가 있으며, 그런 제도들은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여러 자본주의 형태들 사이의 상이점은 남게 됩니다. 각국의 자본주의는 합의된 국제적 규칙과 규제에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만, 다른 나라의 국내적 규칙이나 규제에 동화될 필요는 없습니다. 세계 전체는 그 참가국들이 공통의 국제적 규칙을 받아들이는 한 참가국들의 체제적 다양성으로부터 이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21세기에 갈망하는 것은 각자의 고유한 문화와 사회경제적 체제를 지닌 각 지역과 국가를 상호 연결하는 글로벌 세계체제입니다. 다양성 속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은 다음 세기를 향한 저의 이상이며, 저는 이러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결된 다양한 문명들의 공조가 시장 원리주의 같은 단일 이데올로기를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들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by sonnet | 2008/10/24 11:09 | 정치 | 트랙백(2) | 핑백(4) | 덧글(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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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원리주의의 종말...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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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소개했던 사카키바라의 글 시장 원리주의의 종말에 개인적인 의견을 좀 덧붙여 볼까 합니다. 우선 금을 선호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유에서부터 시작해 보기로 하지요. 그런 사람들 중에는 투자 수단으로서 적합하다고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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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에 대한 비판은 대개 주류경제학의 전통적인 모델을 과신해서 서툰 결론을 내놓는 사람들에게 가해진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와 그 불만』, 사카키바라 에이스케의 「시장원리주의의 종말」등이 그렇고, 워싱턴 컨센서스니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많은 논평들도 대개 비슷한 표적을 겨냥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9/05/19 18:52

... 많이 들리게 되는 건지 지금도 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자유방임체제의 문제가 있을 때는 폴라니를 언급하곤 했었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 외환위기 후 사카키바라 에이스케의 연설 같은 경우 말이다. 나도 그 때 흥미를 느껴 대우학술총서에서 나온 번역으로 그의 책을 접해본 기억이 난다. 하여간 딱히 폴라니를 겨냥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 ... more

Linked at 漁夫의 'Questo e qu.. at 2009/11/30 00:26

... 시 감안해야 하겠지요. 이 점을 무시할 경우, IMF 때처럼 - 이런 꼴 되기 십상일 것입니다. 漁夫 ps. 구체적인 사례는 http://sonnet.egloos.com/3954221를 참고하시기 바람 ... more

Commented by 피그말리온 at 2008/10/24 11:13
오...시장 원리주의....적절한 말이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1:21
네, 본문에서도 밝혔지만 저는 저 말이 신자유주의보다 훨씬 명료하다고 느껴서 좋아합니다.
Commented by marlowe at 2008/10/24 11:22
월스트리트의 탈레반이라고 해야할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1:23
'워싱턴 컨센서스'란 말에서도 좀 드러나지만, 저 개념은 꼭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월스트리트의 금융기관들이 저런 시각을 공유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요.
Commented by 리스 at 2008/10/24 11:25
지금 시점에서는 거의 완벽한 설명이네요.
...일본의 저력이란 저런 것일까요.. 재무성 관료가 케인즈의 1919년 논문과 폴라니의 논문을 (재)인용하다니..-_-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2:00
지금 보니까 더 재미있지 않습니까 ;-)
사카키바라는 퇴임 후에 대학에 적을 둔 채 책도 많이 내고, 대외활동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하는 것 같더군요.
Commented by 은혈의륜 at 2008/10/24 11:43
요새 정치경제학을 조금씩 배우면서 깨닫는 사실은 서양놈들은 참 지들 기준에서만 생각한다는거지요(...) 그나저나 시장 원리주의라는 단어는 신자유주의보다는 그 개념이 명확하게 전달되는 느낌이 들긴 하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1:54
서양은 자기네들 바깥은 바바리안들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게 로마 이래의 전통 아니겠습니까. 뭐 중화(나 소중화)도 주위는 다 오랑캐니까 비슷한지도요.
Commented by Alias at 2008/10/24 12:33
저도 제 블로그에 비슷한(정말?) 시각을 올린 적이 있죠.

http://phys22797.egloos.com/584774

균형점이 여러 개 존재한다는 사키가바라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문제는 다른 균형점으로 넘어갈 때 벌어지는 현상들이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어떡하든 급격한 전환을 막으려고 드는데 잘 안 되는 것일 테니까요.

까놓고 말해서, 그 "균형점" 이라는 것이 이른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결과" 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_-; 사망률 출생률 둘 다 높아서 인구규모가 정체되는 것도 인구조절이라는 결과만 놓고 보자면 "효율적"으로 동작하는 체계이듯이...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1:53
저는 복수의 균형점을 갖는 수요공급곡선에 대한 논의를 크루그먼의 글(http://web.mit.edu/krugman/www/opec.html)에서 처음 보았는데 신선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말씀하신 대로 가격이 균형점 인근의 안정지대를 벗어나면 폭등 아니면 폭락이니까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줄 수 밖에 없고,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요.
Commented by impetuous at 2008/10/24 12:40
사카키바라씨는 국제 언론에서 대장성의 마우스피스 역할을 톡톡히 하던 인재죠.

제가 아는 일본 관료 집단에서라면 '영어 스피킹 라이팅이 되는 사람이 너 밖에 없으니
니가 나가서 써봐라 ㄲㄲ'라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듭니다만, 개인의
역량을 보면 상당한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주류 경제학에 대한 조예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중요한 패스워드/shibolleth가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의 사용 여부인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입에 올리시는 분들의 글을 보면 경제학 원론조차 들었는지 의심스러우신 분들이 ㄷㄷㄷㄷㄷ

시장 원리주의에 대한 반대 의견은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주류 학계에서 퍼져나가다가 지금은 거의 주류의 주류 의견이 된 것 같더군요. 부시II의 위업은 역시 분야를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OTL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2:26
확실히 신자유주의까는 좀 심한 사람들이 많더군요. 저는 그 용어를 쓰면 일단 좀 경계심을 갖고 보는 습관이 들어버렸습니다.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10/24 12:46
시장원리주의를 까는 글에 '페르낭 브로델'을 들먹였다는 점만 고려해도 저는 일반 별 한개는 깎고 들어갈것 같습니다만...

정부가 시장을 '지원'한다는 이야기야 말로 이미 1990년대에 다 무너진 신화아닙니까. 사까끼바라씨가 100년단위 이야기를 너무 함부로 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2:20
브로델의 개념을 차용한 거야, 역사적 개념의 시간분류를 3단계로 했다는 거 정도인데 그건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은데요. 사건과 구조는 원래 널리 쓰이는 것이고, 브로델이 한 것은 그 사이에 중단단계인 콩종튀르를 하나 더 넣었다 정도니까요. 저도 그 두 가지 분류로 나누기 좀 애매한 것이 나올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정부와 시장과 상보적인 관계란 이야긴 여전히 주류의 견해라고 봅니다. 이에 대해서 토론이 필요하면 응할 용의도 있습니다.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10/25 11:25
이 글에서 사카기바라가 브로델의 개념중 차용한 핵심 내용은 '장기 순환 주기 또는 파동'입니다. 명백히 최소 100년 주기의 파동 - 콘트라티에프든지 뭐든지 - 을 전제로 하고, 50년은 짧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단기적인 경기 순환을 제외한다면, 장기적인 어떤 파동이라는 개념은 경제학적으로 정의되기도 어렵고, 원인과 결과도 다 때려맞추기 식인 것이 많습니다. 장기 파동 부분을 제외하면 사건과 구조라는 개념이 '한세기 단위로 보아야 한다'라는 개념과 합치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그리고 정부와 시장이 '상보적'이라고 할때, 그 '상보적'의 범위는 매우 넓은 함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지원'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면, 저로서는 일본인인 사카키바라씨가 시장 원리주의를 까면서 대신 일본이 과거부터 해왔던 관치금융 + 적극적 정부 산업 정책을 신자유주의의 반대편에 대치시키고 있다고 밖에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아니면 제가 오해하고 있는것인가요?
Commented by 일화 at 2008/10/26 03:41
제가 끼어들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위 글에서 브로델의 개념을 차용해서 저자가 주장한 것은 시장과 정부의 관계가 어떠해야하는가에 대한 주류적 태도가 정립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즉 워싱턴 컨센서스(시장원리주의)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라 경제학의 파동개념보다는 맥락에 어울린다고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6 19:19
sprinter/ 인간의 사상에는 앞 시대의 지배적 사조와 대립되는 경향의 사조가 다음 시대의 주류로 대두되는 경향이 자주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낭만주의가 그 전후의 사조와 갖는 관계 같은 것이 대표적이겠지요. 이런 식의 순환에 대한 생각은 세상에 무척 흔합니다. 예를 들면 전통시대 중국인들의 소박한 역사관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삼국지연의의 첫구절 "대저 천하대세란 나뉜 지 오래면 반드시 합하며, 합한 지 오래면 반드시 또 나뉜다" 같은 것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정도의 개념을 굳이 콘트라티에프 파동 같은 경기순환론과 연결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필자가 자유방임/금본위제->대공황 후 개입주의/브레튼우즈체제->시장원리주의/워싱턴 컨센서스 같은 구도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상황에 따라 방임주의와 개입주의가 번갈아가면서 득세하는 현상을 장기순환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인 셈이지요.

사카키바라 자신이 대장성 관료였던 만큼 그의 주장이 관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인정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게 얼마만큼 좋은 정책인지는 사안에 따라 따로 논해야 할 것입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8/10/24 12:58
미스터 엔이란 별명이 허언이 아니었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2:28
현직 시절에도 일본인 치고는 자기 주장을 깨놓고 이야기하는 편이었지요.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도 일본 경제 관료들의 시각을 외부에 소개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구요.
Commented by categoriae at 2008/10/24 14:08
세줄 요약을 보고 싶습니다.
Commented by austrian at 2008/10/24 15:20
요즘 재정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시장이 불완전 하다고 해서 정부 개입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면 정부가 시장보다 더 불완전 하거든요. 민주주의 정부의 결정은 정치적 시장의 프로세스에 따라가게 된다는 공공선택 이론을 봐도 정부 역시 불완전 하지요. 역시 정보비대칭이나 제한된 합리성등으로 시장을 비판한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관점이 역시 정부에게도 투여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거래비용으로 신고전파 경제의 균형이론을 비판했던 코스의 이론에 따르자면 정부개입을 오히려 부정하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2:55
"시장이 불완전 하다고 해서 정부 개입이 (단순히)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정부가 시장보다 더 불완전"하다는 하다는 것은 입증하기 매우 힘든 주장으로, 저 개인적으론 도그마에 가깝다고 봅니다.
시장과 정부는 모두 완벽하지 않고 고유한 실패를 갖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그리고 서로 다른 지점에서 실패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것을 동일한 기준에서 비교하기 힘든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둘이 서로 다른 실패의 패턴을 갖고 있다면 이 둘을 적당히 배합하여 상보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 또한 분명히 가능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austrian at 2008/10/24 15:28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결국은 시장과 정부의 각각의 비용-편익 분석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오네요. 그러나 신고전파 이론은 적어도 장기에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단기적으로는 불안한 금융시장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느 정도 균형점에 맞춰 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초창기 증권의 개념이 도입되고 주식이 거래 되었을 때나 새로운은 상품 시장이 등장하였을 때마다 늘 버블이 발생하고 많은 문제를 일으켰지만 그 이후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제법 주식이나 채권 시장이 잘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실물 시장에서도 과거에는 여러 가기 상품에 대한 투기도 많이 있었지만 이제는 선진국에서는 실물 쪽은 대부분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편이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3:04
장기에만 맞는 이론은 위기대응이 필요할 때는 정말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게 큰 문제죠. 케인스는 "장기엔 우리 모두 죽는다!"고 갈파한 바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남해회사 이래 증권시장의 수많은 버블 이후에는 그렇게 발견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해결책들이 도입된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해결책이 즉시 도입되지 못하는 경우 시장이 수십년간 뇌사상태에 빠진 적도 종종 있었지요.
Commented by 일화 at 2008/10/24 15:41
최근에 소넷님의 블로그를 알게 되서 계속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댓글을 남기게 되네요. 제 나름의 수준에서 간단하게 요약하면 통제되지 않는 시장은 역기능이 순기능보다 커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적절한 대안이 있느냐인데 그에 대한 저자의 의견은 희망사항이상으로 밖에 읽히지가 않네요. 세계정부가 없는 상태에서는 국제적 자본이동에 따른 금융위기는 전쟁처럼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현상이고, 이걸 다자간 협조로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보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2:58
저자의 의견은 새로운 다자간 협조가 해결책이라는 것이 아니고, "현재 가능한 다자간 협조 수준에 글로벌 자본주의를 두드려맞추는 게 답이다"라는 쪽에 가깝습니다. 글로벌 자본주의를 restraint하자고 하니까요.
Commented by 일화 at 2008/10/26 03:34
제가 생각한 문제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현행 공조 수준에 맞게 두드려맞추는 것이 가능하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자가 생각하는 수단은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다자간 협조로 보이는데, 이건 다자간 협조로 통제불가능한 시장을 통제가능한 수준으로 만들도록 다자간 협조를 하자는 얘기라 결국 고양이 목에 방울다는 얘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6 19:32
제 생각은 예전(http://sonnet.egloos.com/3650488)에도 한번 밝혀 둔 적이 있습니다만, 금태환과 금수송점을 갖는 금본위제 하의 지난 번 글로벌 자본주의가 왜 restraint되었느냐 하는 점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 문제도 없는 상황에서 다자간 협조로 글로벌 자본주의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그러나 위기가 잇따르면서 글로벌 자본주의가 큰 상처를 받고, 그 와중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자 결국 세력균형은 역전되고 말았습니다. 즉 목에 칼이 들어오게 되면, 평소에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였던 것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게 이 문제를 보는 제 시각입니다.
사카키바라가 이 이야길 했던 것은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이고, 지금은 미국발 금융위기 와중인 만큼, 태평성대 때보다 이런 글에 대한 반향이 더 긍정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austrian at 2008/10/24 15:44
진짜 시장주의자들의 귀착은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시장의 역동성과 창조성, 그리고 그것이 주는 경제적 자유에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지 시장의 완전 균형을 목표로 두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좋은 정부보다 나쁜 시장이 낫다."라는 말로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무지 때문에 오히려 시장 경제가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한 하이에크에도 귀가 기울여 지구요. 그래서 정부 개입의 역할은 균형점을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공정함을 잡아주는 규칙을 잘 세워야 하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3:01
완전정보하의 왈라시안 경매인 가정은 시장원리주의에 경도된 분석의 가장 흔한 패턴이라 그것을 무시하긴 힘듭니다. 소위 "숨은 가정"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어쨌든 이야기하자면 길어지니 정상적인 시장주의가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제 의견은 별도의 포스팅으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흐음 at 2008/10/24 18:01
마지막 부분은 어째 윌슨의 국제연맹을 다시 만들자는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2:43
뭘 새로 만들자는 이야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의견은 기본적으로 뭘 만드는 건 어려우니까 현재에 적당히 몸을 맞춰 살고, 새로운 걸 강요하지 말라에 가까운 것이지요.
Commented by 스펀지처럼 at 2008/10/24 19:00
방문할때마다 느끼지만,경제학 공부하는데 항상 도움이 되네요, 처음으로 글 남깁니다.
식민지를 가지지않는 제국의 경제를 이전과 같은 제국으로 성립시키려고 하려는 점부터가 무리가 아닐까 합니다? 실상 한국의 수정주의(?)계열 경제학 강의 에서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의 적정선이나 시점이 책의 저자애 따라 천차만별이라......
시장을 특정 국가가 주도적으로 개입한다는것은 고전에서나 현대에서나 항상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2:44
네, 뭐 그저 몇 개의 번역글 정도인걸요.
제국, 내지는 보다 좁게 (킨들버거가 말하는) 국제금융체제의 선의의 헤게몬으로서 미국의 역할이나 가능성에 대해선 여전히 합의된 의견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그야말로 만년떡밥이고요.
Commented by 섬백 at 2008/10/24 19:48
저로서는 감탄할 수 밖에 없는 통찰력이군요.

다양성을 존중해줘야 한 다는 말에도 공감가고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2:42
네, 그게 사실 주도세력인 미국에 대한 일본의 불만 표출인데, 일본같은 강대국도 그렇게 느끼니 우리 같은 새우는 오죽하겠습니까 ;;;
Commented by 키치너 at 2008/10/24 23:39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상 다수의 상이한 경제사회적 배경을 가진 주권국가가 존재하는 가운데, 글로벌한 '시장 원리 주의'가 원활히 돌아가는 건, 사까끼바라씨의 말처럼 어려운 일이겠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2:41
G-7의 일원이자 경제대국의 책임자급 관료가 IMF(나 다른 국제기구들)에게 본격적인 세계의 중앙은행 같은 역할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으니 현상황에 맞춰 살 궁리를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국제적인 역학관계나 해당 조직들의 실제를 충분히 경험해본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10/25 00:31
시장이나 정부나, 완전하지 않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자기들 방식대로 이끌어(강요하여) 나아간 결과는 '역사의 악순환'인가요...;;;;

* [ 새로운 국제 금융 체제에 대한 미야자와 대장상의 1998년 12월 15일 연설 ]은
요지가 어떤 것인지...?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5 02:33
저도 그 연설을 본 적이 없는데, 막연하게 일본이 동네 왕고의 역할을 맡아 아시아에 1천억불을 풀고 AMF를 진행하겠다는 소위 "미야자와 플랜"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맞는지는 확인이 필요)
Commented by austrian at 2008/10/26 10:13
에르난도 데소토라는 남미 경제학자는 자신의 저서에서 역사상 정부가 시장을 자신의 체제로 두드려 맞추려는 시도가 성공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더군요. 결국은 새로운 물결에 정부가 타협하거나 굴복하여 새로운 체제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더군요. 이점은 이미 19세기 또 다른 천재 사회학자인 "허버트 스펜서"에 의해서도 지적된 바 있습니다. 스펜서는 그의 저서에서 "정부는 시장을 통제하려던 어떤 시도도 실패할 것이다."라고 서술했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 마르크스와 동시대 같은 영국이란 공간을 바라보고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는 점이 신기하네요.
Commented by austrian at 2008/10/26 10:28
솔직히 정부 규제에 대한 저의 회의감은 논리적인 귀결이라기 보다는 관료집단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개인적인 경험이 더 강렬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위의 알란 바인더 글에도 지적되어 있고 또 다른 칼럼니스트도 규제와 감독 강회에 대한 관료들의 인센티브 문제를 거론 하더군요. "연봉 4만달러짜리 SEC직원들이 과연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수학 박사들이 만드는 파생 상품을 공부할 동기가 있겠느냐"는 거죠. 결국 이제는 정부와 시장의 대결의 관점을 벗어나서 완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 시장을 다른 방향에서 보기를 종용하는 사카키바라씨의 지적은 상당히 유횽하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6 19:53
지난 번 미국 재무장관이었던 폴 오닐은 알코아의 현직 회장으로, 장관이 되면서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보았지요. (경영자 직을 물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보유주식을 상당부분 처분했기 때문임)
이런 식으로 단순히 재정적인 차원에서는 상당한 손해를 보면서도 공직을 맡는 사람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 이유는 공직이 주는 가치는 보수가 더 많은 민간 직장과는 내용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꼭 최고위 관리가 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중간급 관리로서 정부에 봉사하는 것은 거물들과 protege-mentor 관계를 맺고, 실무 경험을 쌓아 미래의 고관으로 컴백하기 위한 경력관리의 측면이 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K변호사(사법시험 8회)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기억이 납니다. 말이 많은 전관예우 관례는 사실 다른 보상이 부실하고 부패의 기회가 큰 상태에서, 현직 판사들이 부패에 덜 연루된 채 현직생활을 마감하도록 유도하는 간접적이지만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직종의 인센티브 구조는 현재 받는 월급의 크기만 갖고 단순 비교하기엔 훨씬 복잡한 면이 많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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