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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그리스의 공공봉사 문화
앞에서 로마식 온돌 "하이퍼코스트"에 대한 글을 쓰면서 지나가듯이 그리스의 공공봉사 관행에 대한 이야길 했더니 거기 관심을 보이시는 분들이 많군요. 모제스 핀레이의 책에 그에 관한 이야기가 좀 다루어지는데 간단히 옮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페리클레스가 배심원들에 대한 정무 수당 지급제를 도입한 것에 관해 언급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페리클레스는 키몬의 재산을 공격하는 선동을 일으키기 위해 이 조치를 취하였다. 제후에 견줄 만한 재산을 소유한 키몬은 공공 봉사로서의 자선을 관대히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동료 구역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하였다. 구역민들은 매일 그에게 와서 적절한 공급품(ta metria)을 받았다. 더욱이 그의 영지에는 울타리가 없어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과일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재 페리클레스의 재산은 이런 지출을 하기에 충분치 못했으며, 그는 다이모니데스의 충고를 들어 그들에게 속한 보통 사람들에게 분배해 주고자 하였고, 그런 까닭에 배심원단에게 정무 수당을 제공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Finley, Moses I., Politics in the Ancient World,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3
(최생열 역, 『고대 세계의 정치』, 동문선, 2003, p.57)

결국 이 이야기는 고대 아테네 민주정이 가장 잘나가던 시절, 갑부인 키몬이 돈질로 페리클레스를 압도하려 하자, 머니 게임으로는 상대가 안되는 페리클레스가 공금을 끌어다가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전술로 맞섰다는 겁니다. 멋지죠??


기원전 5세기 말 한 소송의 피고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마지막 8년간의 공공봉사에 법정 요구액의 3배 이상, 공공봉사 임무 이행에 필요한 최소 재산 기준의 20배인 약 9.5달란트(talent)를 지출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리시아스 21.1-5) 액수의 과장 정도를 충분히 인정한다 해도 - 배심원은 우리만큼이나 그가 제시한 수치를 조사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 그 경비는 엄청난 액수였다.
봉사를 맡게 된 사람은 그 사실을 자랑하였다. 자신이 봉사 임무를 획득하고 경쟁자가 태만했다는 사실에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은 정치적 또는 법정 연설에서 표준적 관행이었다. “내가 여러분의 즐거움을 위해 경비를 부담하는 것은”이라는 표현은 기원전 4세기의 한 웅변 정치가가 대규모 연설에서 공공 봉사 원칙을 요약한 방식이다. (아이스키네스 1.11) '공공 봉사 계급'의 모든 구성원이 정치적으로 활동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시할 만한 예외를 제외하면 모든 정치가들은 공공 봉사 계급에 속하였다. 그들의 자랑은 무어의 표현인 ‘공공 봉사를 통한 불평등의 확인’의 성공적 기능을 예증해 준다. 그것은 데모스가 정치적 지도력을 이 계급에게 위임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개별의 엘리트 구성원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벌이는 경쟁에서 그들이 지지를 얻도록 도와준다. 그것은 1:1의 후원-고객 관계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후원제의 명목 하에 이와 같은 특이한 형태의 공동체 봉사를 실체로서 보장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전적인 공공 봉사 체제가 정치적 유용성을 상실했을 때, 그것은 마케도니아의 정복자들이 민주정을 과두정으로 대체하기 위해 기원전 317년 아테네의 ‘섭정’으로 임명한 디미트리오스에 의해 신속히 폐지되었다.

같은 책, pp.53-54

즉 이런 공공봉사는 일종의 사회계약에 가까운 측면이 강했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기분은 좀 묘하지만, 아무래도 2천 5백년쯤 전의 이야기니까 오늘날의 기준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겠죠.
by sonnet | 2008/10/08 19:07 | 정치 | 트랙백 | 덧글(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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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tarLArk at 2008/10/08 19:11
빵을 말고 여자를 달라~
Commented by umberto at 2008/10/09 15:21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노총각, 노처녀 결혼도 시켜줬다죠.
Commented by 곤충 at 2008/10/08 19:17
3S는 영원하다... 라고 보면 될까요?
Commented by 양과알 at 2008/10/08 20:21
그래도 해외쪽은 인기를 얻으려고라도 돈을 푸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본적이 드문 것 같군요.
Commented by muse at 2008/10/08 20:34
로마 공화정 시절도 대단했지요:D
Commented by 헤르시온 at 2008/10/08 20:41
페리클레스 하니 파르테논 신전 생각이...우하하
공금을 들여 건설이 안되면 사재를 털어서 만든뒤에 내이름을 밖아 버리겠다
Commented by 들러갑니다 at 2008/10/08 21:08
우리에게도 막걸리, 고무신 돌리기 및 그 변형인 관광버스 태우기와 같이 공공봉사의 유구한 전통이 있습니다.^-^
Commented by (sic) at 2008/10/08 21:21
그리고 다 받고서 정작 선거때는 다른 당을 뽑아준 멋진 전통도 있지요. (..)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10/08 21:44
그 반대로, 뭐 하나 받아본 것도 별로 없으면서 의리인지 관성인지에 쏠려
주구장창 특정 세력을 깃발만 보고 밀어주는 전통도 있지요.
(그 놈의 "우리가 남이가"... 선거는 분명 정상적으로 이뤄졌지만,
그 선거하는 분들의 자세가 너무 무비판이라... - 어느 갱상디언 반동분자의 푸념)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16 08:37
거 뭐 그런 게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10/08 21:29
당장 뭐 받지 않아도 '너의 자존심을 지켜 투표하라'라는 것은 상당히 고결한 행위이지요. 기껏해야 최근 수십년 사이에 획득한, 인류의 꽤 고결(...) 한 가치관이라고 해야 할지. ㄲㄲㄲ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16 08:38
네, 그런 생각은 정말 역사가 짧은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새벽안개 at 2008/10/08 22:10
예나 지금이나 민주주의는 '공공봉사'를 먹고 자랐군요. 요즘 선거법에서 공공봉사를 금지하는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올때가 되었는데...
Commented by 하얀까마귀 at 2008/10/08 22:52
플루타르코스를 최근에 완독했는데, 매수 치고 당대건 플루타르코스의 시대건 나쁘게 평한 것은 "외국인에게 뇌물 받기"와 "재판때 매수로 판결 뒤집기" 정도밖엔 없던 듯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16 08:39
저는 너무 예전에 봐서 잘 기억도 나지 않는데... 하여간 그런 쪽의 기준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던 느낌은 어렴풋이 나네요.
Commented by 미친고양이 at 2008/10/08 23:00
이건 뭐 인디언 부족들의 선물전쟁같은...;;;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16 08:40
그런 느낌이죠. 저 시대는 사실 정치에 대해 어떤 전례가 될 (어느 정도 문명수준을 갖춘) 사회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와는 비교가 안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해도 놀랍지가 않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8/10/08 23:41
왠지 낯설지 않은 풍경이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16 08:40
그럼요 ;-)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10/09 00:15
"얼마야? 얼마면 돼?" -_-;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16 08:40
푸하하!
Commented by 이네스 at 2008/10/09 03:54
우와. 매우 낯익어서 놀랐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16 08:41
네, 세상엔 정말 공짜 점심은 드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8/10/09 12:10
개인자산으로 선심을 베푼다는 점은 차이가 있지만 남조선의 선심성 공약과도 비슷해 보이는군요. 물론 후자야 지켜지지 않기도 하지만;;;;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08/10/09 13:27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에도 수준 차이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선례로군요...
Commented by umberto at 2008/10/09 15:23
요즘이라고 해서 그닥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단지 자기 돈을 푸는 방식에서 국가예산을 푸는 방식으로 달라지긴 했지만...... 이것도 역사의 발전이라면 발전인가?
Commented by 에르네스트 at 2008/10/09 17:12
위에도 있지않습니까~ 페리클레스가 내재산이 경쟁상대보다 딸리니 공금 나누어주는 정책(=국가예산 나누어주는 정책)을 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Commented by monsa at 2008/10/09 15:29
고전시대의 공공을 사회계약으로 봐야할지 두레나 품앗이로 봐야 할지는 애매한 구석이 있지요.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10/09 16:01
저런 관행은 근세영국까지 있지 않았었나요

표를 얻기 위해 물건을 푸는게 당연한가 당연하지 않은가에 대해 논쟁이 벌어졌다고
들었을땐 좀 기분이 묘했지만서도요
Commented by 쿠쿠 at 2008/10/10 12:40
사실 표 한장이 투표인에게 갖는 의미와 출마인에게 갖는 의미, 부자인 출마자와 가난한 투표자에게 현금이나 대용물이 갖는 심리적인 가치의 차이 등을 생각하면 거래치고는 윈윈게임이 잘 이루어지는 예 중 하나같네요. -.- 법으로 억제하지만 어느 정도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Commented by 바보이반 at 2008/10/12 10:58
공금으로 현질하는 것 보다 사재로 현질하는게 덜 민주적이기는 하지만 도의적으로는 더 옳은일로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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