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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코스트(Hypocaust)
이런 것에는 문외한이지만, 최근 흥미가 생겨 약간 찾아본 것을 정리. 단국대 건축공학과에 이 주제를 다루는 분이 한 분 계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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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코스트(Hypocaust)는 그리스/로마의 공중목욕탕(Thermae)에 주로 사용되던 난방기술이다. 이 기술은 불을 땐 연기로 바닥을 데워 난방을 한다는 점에서 온돌과 흡사한데, 로마 멸망 후 곧 잊혀져, 서양에서는 19세기에 폼페이를 발굴하기 전까지 그런 게 있는지도 잘 모르던 기술이었다고 한다.


하이퍼코스트는 주로 로마의 기술로 알려져 있지만, 가장 오래된 하이퍼코스트 유적인 BC 100년 경의 올림피아 공중목욕탕 유적에서 바닥난방이 점진적으로 도입되는 과정을 짐작케하는 흔적이 발견되어, 원래는 그리스에서 발원한 것으로 보인다.

하이퍼코스트와 온돌은 비슷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용도가 달랐다. 하이퍼코스트의 용도는 대규모 공공시설(공중목욕탕)에서 욕탕난방+온수가열인 반면, 온돌의 용도는 소규모 가옥에서 주택난방+취사였다.

기술적 구조에서도 중요한 차이가 있는데, 온돌은 아궁이와 굴뚝 사이에 좌우가 막힌 긴 관을 여러 줄 배치하는 게 기본이라면 하이퍼코스트는 사방이 뚫린 기둥 형태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퍼코스트 구조는 따뜻한 연기를 구석구석 보내는 데 약점이 있고, 이 점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굴뚝을 여러 곳에 뽑음으로서 연기가 지나가는 길을 다변화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왜 하이퍼코스트는 로마의 멸망과 함께 사라졌을까? … 하이퍼코스트 보다 나은 난방기술에 의해 밀려난 것이라면 모르되, 로마시대 이후 4-5백년간 중세 유럽에는 그보다 나은 변변한 난방법이 아직 발전하지 못했고, 건물 내에서, 특히 주거 내에서 매우 춥게 지낸 기록들이 다수 등장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1)

정말 온돌은 끊임없이 전승된 반면 하이퍼코스트는 곧 기술이 실전되어 잊혀졌는데 그 차이는 무엇일까? 참고자료는 규모와 용도의 차이가 둘의 운명을 갈라놓았다고 주장한다. 즉 온돌은 마을 사람들이 자기 집 지을 때 쓰는 기술인 만큼 어려운 상황이 와도 별 무리없이 계속 전수가 되었던 반면, 하이퍼코스트는 대규모 공공건축을 떠맡을 제국이 무너지고 나자, 개인 레벨에서 계승하기 힘들어 쇠퇴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로마 시대에 공공건축물의 건축이나 축제의 개최는 정치가들이 시민을 매수하는 주요 수단이었음. 사실 그리스의 명연설이란 것을 보면 "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밥을 많이 샀는데…"라는 식의 표현을 쉽게 볼 수 있음.)

오늘날에도 최고의 기술이 궁극적으로 시장에서 살아남는 기술이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이런 적응성의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 같다.


참고자료
1. 김남응, "온돌과 하이퍼코스트의 차이점," 『대한건축학회논문집 - 계획계』 제20권 제1호, 2004.1, pp.131~140
2. 김남응, "고대 서양의 바닥난방 하이퍼코스트의 고래의 유형에 관한 고찰," 『대한건축학회논문집 - 계획계』 제16권 제11호, 2000.11, pp.171~178
3. 김남응, "하이퍼코스트의 발전과정에 관한 고찰," 『대한건축학회논문집 - 계획계』 제15권 제1호, 1999.1, pp.19~30
by sonnet | 2008/10/08 14:00 | 과학기술 | 트랙백 | 핑백(1) | 덧글(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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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10/08 19:07

... 앞에서 로마식 온돌 "하이퍼코스트"에 대한 글을 쓰면서 지나가듯이 그리스의 공공봉사 관행에 대한 이야길 했더니 거기 관심을 보이시는 분들이 많군요. 모제스 핀레이의 책에 그에 관한 이야기가 좀 ... more

Commented by 성큼이 at 2008/10/08 14:03
사회가 뒷받침이 되어주어야 기술이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법이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08 16:25
지당한 말씀입니다.
Commented by 나츠메 at 2008/10/08 14:05
sonnet님/
1. "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밥을 많이 샀는데…"그리스 (아테네) 민주정.....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 하이퍼 코스트가 굴뚝이 여러개 라고 하셨는데, 굴뚝이 여러개면 오히려 연기가 잘 빠져나가서 덜 따뜻하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10/08 15:29
그건 굴뚝의 직경을 줄여서 커버해야 하겠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08 16:32
1. 그건 사실 키몬과 페리클레스의 대결만 보아도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습니까?

2. 그건 연기가 통과하는 거리와도 관계가 있고, 경험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값 같습니다. 경로가 너무 멀거나 통기가 방해받을 정도로 저항이 크면 연기가 아궁이 쪽으로 역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잘 생각해서 결정해야 할 듯.
Commented by 우마왕 at 2008/10/08 14:07
하이포코스트라고 하는 쪽이 혼동을 줄일 수 있지 않겠는지? hyper cost로 보고 왔다능 -ㅅ-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08 16:33
우리나라에 딱 한 명 연구자가 있는 것 같은데, 용어번역을 두 개 만들면 괜히 혼란만 일으키는 것 같아서요. 지적에 따라 제목에는 영문을 병기했습니다.
Commented by 서산돼지 at 2008/10/08 14:08
몇년전에 저 기술을 사용해서 로마식 사우나를 재건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읍니다. 디스커버리채널이 아니었나 싶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08 16:59
그렇군요. 재미있는 다큐멘터리가 많군요.
이 분야의 연구가 아직 일천하던 1950년대에 독일에선, 과연 이 방식으로 난방이 되긴 되는게 맞는가 보려고 건물을 지어 실험을 해 보았다고 합니다. 온돌이 늘 사용되어 온 한국에선 이상하게 들리지만, 유럽 사람들은 그게 그리 당연해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하여간 저는 문헌조사만 하지 않고 제대로 실험을 해본 걸 보면 역시 독일 사람들은 제대로 된 사람들인 것 같다고 감탄했습니다.
Commented by 고어핀드 at 2008/10/09 22:23
허 참, 국민성이라는 걸 믿지는 않지만, 철두철미한 게 정말 독일인답네요.
Commented by 제갈교 at 2008/10/08 14:13
고대 그리스에서는 밥 샀거나 먹었다고 선관위에서 달려들지는 않는 모양이군요. (…)
아무튼 온돌이 중간에 실전되지 않은 기술이어서 참 다행입니다. :)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08 17:02
고대 그리스는 그런 걸 완전히 당당하게 하는 분위기라서요. 재판에 회부된 피고가 제가 대중들에게 무료로 연극도 보여주고, 서커스도 보여주고 하느라 돈을 이렇게나 썼는데 제발 선처를! 이라고 말하는 게 있는 걸 보면 그건 사회적으로 자랑스러운 일이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0/08 14:16
가끔 느끼는 거지만, 그리스 정치가들은 "빅맨"의 수준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08 16:56
하하. 2천몇백년 이상 전의 일인데 너무 큰 기대를 가지면 어렵지 않겠습니까 ;-)
Commented by 바닷돌 at 2008/10/08 14:42
고대 그리스 정치가라는 친구들이 대학 선배들이 후배 갈굴때나 할 법한 소리를 ㄱ-;;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08 16:51
하하, 저들은 사실 저런 데 대해 하등의 부끄러움을 갖지 않았고, 자랑스러운 일, 즉 "공공봉사"를 했다고 말합니다. 대중들도 당연히 그런 것이 나올 거라고 기대한 눈치구요.
Commented by monsa at 2008/10/08 15:24
기본적으로 그리스나 로마는 동북아와 비교해 따스해서 난방의 필요성이 덜했다는 것도 저 기술이 소형화 되어 가택으로 침투하는데 부정적인 역할을 했을것으로 보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08 16:48
네. 잘 보셨습니다. 그 점도 참고문헌에서 지적이 됩니다.
그것은 이 기술이 (나중에) 왜 주거용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보다도, (처음에) 왜 공중목욕탕 용으로 먼저 발전해 나갔는가, 즉 초기조건에 따른 경로종속성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거용으로는 난방이 별 필요가 없으니까 목욕탕용으로 중후장대한 방향으로 일단 발전을 하고, 발전된 형태가 대형이다보니 오히려 주거용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로마 시대 끝무렵에 가서 북쪽 변방지대(현재의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주거용으로 사용된 유적이 있는데, 결국 일반화에는 실패한 모양입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08/10/08 15:32
밥 사는 건 민주주의에 있어서 중요 스킬이었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08 16:53
요즘도 그렇더군요. 다음은 최장집, 남재희, 이부영, 강금실 등이 참여한 한국의 민주주의 관련 토론회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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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 지구당은 밥 사주는 것이다. 내가 지구당 위원장 할 때는 한 달에 천만 원이 들었다. 요즘에는 TV 같은 매체의 영향으로 돈이 훨씬 덜 든다. 그런 점에서 지구당 폐지는 최 교수 주장처럼 '정당 약화'가 아니라, '정당 변형' 아닌가.
Commented by TSUNAMI at 2008/10/08 16:30
로마가 멸망하면서 '도시'란 시스템이 붕괴되어버린게 많은 걸 사라지게 한 것이군요.
(리처드 셍크먼은 '유럽통합의 상실'이란 표현까지 썼지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08 16:55
서로마는 그렇다 치고, 하이퍼카스트가 동로마 쪽에선 어떻게 되었는지 상당히 궁금하긴 합니다. 아마 그 기원적인 속성에서 볼 때, 비잔티움에는 꽤 오랫동안 하이퍼카스트가 전수되었어야 정상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떨런지.
Commented by 야기꾼 at 2008/10/08 20:12
동로마로 가면서 목욕 문화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기독교를 공식 종교로 만든 국가가 로무의 공중 목욕탕 제도를 이어갔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려운 만큼...) 동로무 주요 지역의 기후를 생각해봤을 떄 하이퍼카스트는 없어지거나 상실되었을 공산이 높다고 생각되네요.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10/08 21:30
아시다시피 터키에는 하맘이 있는데, 이 하맘이 목욕탕의 변형으로서 지속된 것으로 생각할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맘이 다른 이슬람 국가에는 따로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맞나?) 그것이 비잔틴 제국 이후로 꾸준히 내려온 것으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일곱 혼돈 at 2008/10/08 23:09
다른 이슬람 국가에도 목욕탕이 있었습니다. 이슬람 교리 자체도 예배 전에는 씻으라 강조하는 등 청결을 중시했으며, 전성기의 코르도바에는 300~700개의 공중 목욕탕이, 바그다드에는 3만 개의 공중 목욕탕이 있었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이슬람의 팽창 자체가 로마 제국의 동방 속주들(시리아, 이집트)과 페르시아를 흡수한 것이니.....
Commented by 일곱 혼돈 at 2008/10/08 23:24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 시대에도 공중 목욕탕이 존속했던 것 같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에 대형 공중 목욕탕을 재건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이후 이슬람 팽창으로 동방 속주들을 다 잃어 제국이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탓인지 옛날만큼 사이즈가 크진 않았지만, 짓긴 지었던 것 같습니다.

테살로니키에서 발굴된 비잔티움 목욕탕의 사진도 찾았습니다. 비잔틴 미술 관련 책에서 본 것 맞군요.
http://www.flickr.com/photos/vulpicula/1094984630/
Commented by muse at 2008/10/08 18:10
로마/그리스 시대에는 '공공봉사'가 없으면 대중들이 실망했었지요 끼끼끼(...)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08 19:08
하하, 물론입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10/08 21:48
때에 따라서는 목숨도 왔다갔다 하기도...
(돈 많고 영향력 많은 사람일수록, 그만큼 베푸는 게 당연한 시대였으니...)
Commented by 동쪽나무 at 2008/10/08 20:00
give and take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08/10/08 20:02
글 잘 읽고 갑니다. 관악산에 저런 곳도 있었나보군요. 어릴 때 숱하게 갔는데 몰랐네요.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10/09 16:09
왠지 기묘한 느낌이군요
기술의 소실이란건
Commented by 고어핀드 at 2008/10/09 22:22
로마 군단병의 무기나 갑옷도 저것하고 비슷한 취급을 받더군요. 놀라울 정도로 표준화된 이 장비들의 배경 중 하나가 로마 제국 전체 지역의 분업과 전문화라고 들었습니다. 요즘 인도와 중국이 전쟁이 나면 당장 랩탑 컴퓨터 케이스 생산이 멈출 거라는 얘기하고 비슷한 것 같습니다.

확실히, 로마 제국은 현대인의 시각으로 봐도 정말 현대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 때가 많습니다.
Commented by sanister at 2008/10/10 01:40
셰익스피어의 '율리우스 케사르'라는 작품에서도 이런게 나오던게 기억나는군요.
시저가 죽은 후에 안토니우스가 연설을 하는 중에서...
"시저는 모든 로마인들에게 75드라크마를 남겼습니다."
Commented by 린지 at 2009/09/30 12:10

안녕하세요? 좋은 자료 담아갈께요. linsey8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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