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주 투기 열풍, ‘우아한 50’
앞선 글에 대한 코멘트들을 보면서 기묘하게 느낀 점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것의 기본 문제가 그것에 내재된 리스크가 큰 데 있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의견은 다르다. 본질적인 문제는 버블 혹은 규제의 미비나 관리 부실에서 시작되는 것이지 내재된 리스크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내재된 리스크도 사태를 악화시키는데 일조한 중요 요소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점은 다음 일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1960년대 말 미국 증시에는 개념주(concept stock) 버블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실적은 아직 별볼일없지만 소위 "뜨는" 주식이라는 걸 다들 덮어놓고 사는 바람에 이들 주식의 가격이 폭등했다가 거품이 터지면서 많은 희생자가 나온 사건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닷컴 버블이 이와 비슷한 유형의 버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때 개념주 투기에서 호되게 데인 투자자들이 '자라 보고 놀란 놈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라는 심정으로 모두 대형 우량주로 쏠리자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우아한 50’(Nifty-Fifty) 열풍이었다.

1970년대 월스트리트 전문가들은 ‘건전한 원리’로 되돌아갔다. 개념은 가고 우량주 투자가 등장했다. 1960년대 투기적 열풍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주식들이었다. 이들 주식을 매수한 후 골프장에서 쉬면서도 장기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주식을 사는 것처럼 신중한 투자는 없었다.

기관투자가를 자극할 수 있는 성장주는 48개 정도였다. IBM, 제록스, 코닥, 맥도널드, 폴라로이드, 디즈니 정도를 나열해볼 수 있다. 이들은 ‘우아한 50(Nifty Fifty)’이라고 불렸다. 대형주는 다시 말해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고 적당한 양을 살 수 있는 자본금이 많은 회사의 주식이다. 전문가들은 정확한 주식 매수시점을 포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주식들은 의미를 가졌다. 한때 고가에 이 주식을 샀다면 어떤가. 이들 주식이 성장주이기에 매수가격을 정당화시켜 준다. 덧붙여 전문가들은 이들 주식을 가보로 여기며 결코 팔지 않았다. 그들은 이러한 주식을 ‘원 디시즌(one-decision) 주식’이라고 불렀다. 매수하기로 일단 결정하면 포트폴리오는 해결됐다.

이들은 다른 측면에서 기관투자가들에게 안전망이 됐다. 존경을 받았다. IBM과 같은 우량주에 투자한 신중함에 동료들이 어떠한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다. 주가가 떨어져 손해를 보아도 신중하지 못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토끼 뒤만 쫓는 그레이하운드처럼 거대한 연금펀드, 보험회사, 신탁은행들이 원 디시즌 주식으로 ‘우아한 50’을 사들였다.

믿기 어렵지만 기관투자가들이 실제로는 우량주에 투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주가의 상승은 믿기 어려웠다. <도표 3-4>에서 1972년의 주가수익비율과 1980년대 초 주가수익비율을 볼 수 있다. 기관투자가들은 어느 기업도 주가수익비율이 80배 내지는 90배에 이를 정도로 빨리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볍게 무시했다. 이들은 “거짓말도 잘 하면 진실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격언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 끝은 피할 수 없다. ‘우아한 50’에 대한 열기 역시 다른 투기열풍처럼 종말을 맞았다. ‘우아한 50’은 『포브스』지의 칼럼니스트인 마틴 소스노프(Martin Sosnoff)의 말처럼 하나씩 선택돼 사라졌다. … 실제 문제는 개별적인 거품을 찌르는 특정한 바늘이 아니다. 우스꽝스럽게도 주가의 과대평가가 문제였다. ‘우아한 50’을 숭배하며 같은 자금을 관리하던 운용자들이 두 번째 결정인 매도를 해야만 했다. 폭락이 뒤따랐고, 성장 일변도의 주식들이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공정하게 보면 기업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다. 1980년대에 이들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들은 20세기 말 시장 평균보다 높은 수익을 건졌다.

Malkiel, Burton G., A Random Walk Down Wall Street (7th Ed)., W. W. Norton, 1999
(김헌 역, 『랜덤워크 이론』, 국일증권경제연구소, 2000, pp.80-84)

결국 제아무리 우량주라고 해도 버블 상태에서는 제 값(fundamental)보다 훨씬 더 비싸게 살 수 있기 마련이어서, 우량주 투기이건 정크본드 투기이건 투기의 본질은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개념주 투기와 우량주 투기에서 달랐던 점은 개념주는 회사 자체가 부실한 게 많아서 폭락하면서 그대로 망해 휴지가 된 경우가 잦았지만 우량주는 주가 폭락으로 손해는 볼 지언정 회사는 건전했기 때문에 주식이 완전 휴지가 되는 일은 없었다는 것 정도이다. 그런데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부동산 기반이기 때문에 손해를 볼 지언정 최악의 상황에서도 담보물인 땅과 집은 남게 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서브프라임은 개념주보단 오히려 우량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럼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끝을 맺기로 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브프라임 사태의 본질은 서브프라임모기지와 그에 기반한 증권들의 리스크가 컸던 데 있다고 진짜로 믿어버린다면, 그 반동은 이번에도 ‘우아한 50’ 사태 때처럼 사람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리스크가 적어보이는 반대편으로 돌진하는 형태로 재현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by sonnet | 2008/09/20 19:28 | 정치 | 트랙백 | 덧글(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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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바닷돌 at 2008/09/20 19:55
sprinter님 포스팅이랑 같이 보니 느끼는게 많네요 ..

'교과서대로'생각하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듭니다.ㄱ-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9/21 00:37
어떤 분야든 교과서를 제대로 읽는 사람들이 드물고, 그 중에서도 제대로 뭘 알고 인터넷에 글 쓰는 사람들은 더 드문 듯 합니다. 여기를 봐도 야매, 저기를 봐도 야매 -_-;
Commented by sonnet at 2008/09/21 10:18
경제학개론 같은 학부용 교과서라 하더라도, 현실의 뉴스 같은 걸 보면서 거기 실린 내용을 종횡무진으로 구사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이미 본좌 소리를 들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하얀까마귀 at 2008/09/20 20:12
땅과 집이 남기는 남되, 그 부동산을 결국 누가 갖게 되는 것인지가 아리송하지요.

이런 때 뛰어들어서 낙엽긁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부자가 된다는 사실은, 크라수스가 불난 집을 현장에서 사들이던 시절 이래 변치 않는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요즘 뭐하고 있을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9/21 10:22
그렇죠. 앞서도 그런 이야기(http://sonnet.egloos.com/3909917#11933926.01 )를 했었는데, 그짓을 하려면 실탄 필수죠. 저는 HOLC 제안이 이에 대한 좋은 대책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음 다음 포스팅 정도에서 그 이야길 좀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9/20 20:37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제 보니, 저도 달이 아니라 손가락 쳐다보고 있던 녀석... oTL
Commented by sonnet at 2008/09/21 10:24
사실 사람들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 중 하나죠. 크게 신경쓰실 것 없습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9/20 20:47
역시 리스크는 어딜가나 있는 것이군요. 견뎌낼 멧집이 있거나 잘 피할 요령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9/20 20:49
리스크가 문제가 아니라, 리스크에 대한 판단이 '오류'가 있을때 문제가 되는 거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9/21 10:24
'우아한 50' 투기에서 제일 문제가 되었던 게, 이 표적들이 우량주라서 이게 내재가치의 상승인지 투기의 결과인지를 깨닫기가 한층 더 어려웠다는 겁니다. 잡주가 급등하면 누구나 투기이겠거니 하겠습니다만.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08/09/20 21:55
우량주 투기는... 규제할 수도 없어보이고. 결국 버블 그 자체의 문제입니까?
Commented by sonnet at 2008/09/21 10:25
네, 경고는 할 수 있겠지만, 일단 탐욕에 눈 돌아간 사람들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겠죠.
Commented by joyce at 2008/09/20 22:42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어찌 보면 참 보편적인 전개인 듯.
Commented by sonnet at 2008/09/21 10:25
참 인간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게임 아닙니까. 파블로프 영감 만세!
Commented by _tmp at 2008/09/20 23:41
예컨대 전국의 읍 중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상동의 주택이 1970년만한 가치라도 갖고 있는가...를 놓고 본다면 조금은 의문이 있습니다. 아무리 불량주식이라도 최소한 가치가 시간에 따라 상각되지는 않거든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9/21 10:38
주식은 그 자체로 상각되진 않지만, 주식의 내재가치를 구성하는 기업의 자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각되기 마련이니까 비슷한 속성은 있는 셈입니다. 빌딩 한 채를 소유하고 임대수익을 내는 기업의 주식을 생각해 보면 동일한 거죠.

그나마 저런 자산주들이어야 위기시에도 매각을 통해 가치를 건지기 쉽지, 한참 기술개발을 하고 있는 (그러나 아직 확실한 특허권을 획득하지 못한) 회사의 기술주나, 한번 주저앉으면 불난집 세일 가격도 건지가 힘든 엄청난 채무와 채권 덩어리를 양 손에 쥐고 있는 금융주 같은 건 가격 계산 자체가 힘들어지니까요.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9/21 00:34
제가 경제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어서, 마지막에 제기하신 의문이 구체적으로 부동산에만 해당하는 것인지, 금 등 여러가지 투자수단에 일반적으로 해당되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부동산에만 한정한다면 가령 뉴욕 등 대도시 요지의 고층빌딩 지분을 수많은 사람들이 조각내서 사는 "기획 부동산" 같은 걸 생각하면 될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9/21 10:28
전자는 너무 좁은 논의인 것 같고, 후자처럼 동작할 가능성이 크겠지요.
Commented by 꽃곰돌 at 2008/09/21 02:11
전 부동산과 주식 둘 다 하는데 주식을 하는 가장 좋은 이유는... 환금성이죠. 어느 정도 주식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면 5년 만기 적금을 매년 탄다는 생각으로 쉽게 쉽게 현금화할 수 있다는 거... 목돈은 부동산이죠; 새삼 느끼고 가는 점이 포스팅되서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9/21 10:41
분명히 그런 차이가 있죠. 사실 모기지담보채권 자체가 부동산 투자의 환금성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에서 출발한 것 아니겠습니까. 무츄얼펀드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요.
Commented by 꽃별 at 2008/09/21 03:42
글쎄요, 지난 포스팅과 이번 글을 종합해 볼 때 하나 의문이 생기는 것은, 그럼 sonnet님은 금융기법의 발전으로 인해 새로운 시장/상품이 발생할 때 규제와 관리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제 기본적인 관점은 이런 신흥시장이 급속히 팽창하는 건 규제나 감독이 기존의 시장에 비해 허술하고 미비하기 때문이고, 결국 그로 인해 이번 사태처럼 발생하는 피해는 공공영역이 떠맡으면서 이익은 사유화되고, 피해는 공공화되지 않는가 하는 겁니다.
조금 더 일반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새로운 산업기술에 대해 공공성이 미리 담보되지 않으면 쉽사리 독과점시장이 생겨나는 것이구요. 여기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네요. 신규시장에 대한 국가의 사전개입을 지지하시는 건지, 아닌지.
Commented by sonnet at 2008/09/21 10:59
그걸 지지하느냐 않느냐라고 물어보시면, 지지하다고밖에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는데요. 사실 저는 이 질문은 반대한다는 답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1) 현상 내지는 속성
현상으로서 "신흥시장이 … 규제나 감독이 기존의 시장에 비해 허술하고 미비"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런 속성은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겁니다

2) 당위
"새로운 시장/상품이 발생할 때 규제와 관리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도 당연한 결론이라고 봅니다.

3) 한계
다만 새로운 것은 본질적으로 개발한 쪽이나 규제자 양 쪽의 경험이 부족한 만큼 처음 만들어진 규제나 관리가 최선(best practice)의 것이긴 힘들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앞에서 말씀하신 "규제와 관리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규제와 관리가 즉각적으로 "시도되어야 한다"로 바꿔 쓰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4) 실제
실제로는 이 세상에 100% 새로운 것은 드물기 때문에 대개의 규제나 관리는 발전의 계보나 유관관계를 통해 어떤 틀을 갖고 출발하게 됩니다. 새로운 산업기술이 만들어낸 공산품이라 해도 대부분의 기존 공산품을 포괄하기 위한 각종 규정, 예를 들면 제품안전이나 소비자 보호에 대한 기존 규정들을 따르지 않으면 판매할 수가 없죠.
은행이나 보험회사들이 만들어낸 신상품들도 그들 기관들을 규제하는 기존 감독기관들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거구요.

5) 기타
실제로 산업계에서 일을 해보면 규정이 "없어서" 시장이 발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규제가 심해서 발전하지 못하는 경우 만큼이나 많습니다. 신제품을 개발한 업체가 규정을 신설하기 위해 관공서를 뛰어다니는 일이 그래서 생기는 것이구요.
Commented by 미친고양이 at 2008/09/21 10:51
현재 우아한 미국채와 금값이 뛰고 있습니다.(응?)
Commented by sonnet at 2008/09/21 11:00
흐흐흐.
Commented by reske at 2008/09/21 20:19
우량자산에 대한 몰빵도 상당한 위험성이 있군요 ㅡㅡ; 요즘 전세계 금융시장 돌아가는걸 보면서 뼈져리게 느끼는게 단순논리의 위험성입니다;;

미친고양이님 말씀대로 역시 가장 믿을건 금괴나 미국 국채, 원자재 이런건데 또 이런대로 투자자금이 너무 몰리면 물가가 뛰어버리니 ㅠㅠ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부동산시장이 거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와 관련이 있지 않은가 싶네요.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은 '하늘이 무너져도 부동산값은 안떨어진다'라는 부동산 불패론일테니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9/22 08:30
일본도 주택버블이 터지기 전까지는 불패론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 이런 건 정확히 알긴 힘들죠. 하지만 대중이야 당연히 소박한 경험법칙에 입각한 불패론으로 기울기 마련이겠지요.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09/22 00:57
지나치면 좋지 않단거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9/22 08:28
거품이 영원히 유지될 수가 없다는 건 사실 철칙이니까요.
Commented by 나츠메 at 2008/09/22 02:55
그래도 우량주는 거품이 빠져도 계속 가지고 있다 보면 언젠가는 급등할 장래성이 있으니, <장롱에 모셔놓기>만 하면 대박의 가능성도.........
Commented by sonnet at 2008/09/22 08:28
1. 우선 제아무리 우량주라도 상투 때 샀다면 그 가격을 회복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2. 게다가 집도 언젠가 다시 오를 때까지 버틸 수만 있으면 똑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량주야 <장롱에 모셔놓기>밖에 못하지만, 집은 버티고 살면서 잘 써먹을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봐서 훨씬 유리하지요.
Commented by 고어핀드 at 2008/09/23 12:22
"집은 불타도 터는 남는다." 라는 말이 있지요. 세이노라는 재테크 칼럼 저자도 "부동산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크게 심리적 안정이 되므로 집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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