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ed by umberto at 2008/08/21 08:59 Commented by umberto at 2008/08/21 09:13 에 대한 의견
대한민국의 60년 역사에 정말로 국가가 소멸할 뻔 한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그게 6.25가 일어난 1950년입니다. 이런 식의 소멸은 한일합방처럼
외세의 힘에 의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대한민국이 존속한 기간 동안 그런 외세 위협의 1순위는 북한이었습니다.
1960년의 학생혁명이나 그 다음해의 군부쿠데타를 보면, 역사는
1960년대 초 정권의 붕괴가 북한의 침공에 의한 대한민국의 소멸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결과로 보여줍니다. 이제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지요. 우선 한미상호방위조약이나 대규모 미군의 주둔 등으로 표현되는 외부 강대국의 안전보장이 확보되었고, 또 북한이 소련이나 중국 등으로부터 새로운 전쟁에 대한 지지와 후원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문제도 이에 더해집니다. 사실 후자는 전자를 관찰하고 내려진 결정인 만큼 둘은 상호연관되어 있기도 하지요. 또한 해방 후 한국전쟁까지 좌익은 월북하고 우익은 월남하면서 흩어모여가 강력히 진행되여 양 쪽 진영의 인적, 사회적 안정도가 올라갑니다. 후방교란을 위한 빨치산 활동 등도 대부분 정리된 상태이구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번 무력통일 시도가 실패했다는 쓰라린 경험이 있습니다. 뭐 다른 이유를 더 들 수도 있지만 일단 이정도로 해 두지요.
그럼 이제 우리는 추정을 해볼 수 있습니다. 학생혁명이나 군부쿠데타가 1~2년 앞서서 일어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대한민국의 소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을까? 그 추정은 앞서 우리가 찾아낸 "이유"들에 비추어 검토할 수 있습니다.
1958~9년에는 위 이유들이 거의 그대로 존재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1958년의 가상적 학생혁명이나 1959년의 가상적 쿠데타도 북한의 침공에 의한 대한민국의 소멸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낮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 1949년이 되면, 우리는 그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전부 소멸되어 버리고 반대로
나날이 강화되어가는 적대적인 조건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미국의 안전보장은 없었고, 미군은 영구적 철수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국군은 규모도 작고 빈약합니다. 북한 지도부는 무력에 의한 국토완정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전력증강에 힘을 쏟고 있었으며, 소련과 중국은 최종적인 승인은 하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를 후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남한 후방의 게릴라전과 군사반란 등도 심각하였고, 마지막으로 아직 남한의 무력접수가 실패했다는 쓴 경험도 아직 없었지요.
역사에서의 유추는 허공에서 순수창작으로 시작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딘가 현실에 발판을 두고 출발해야 합니다. 위 사례에서 저는 "정권의 붕괴 ≠ 대한민국의 소멸"이 현실에서 입증되는 가장 가까운 시기인 4.19, 그리고 그 조금 뒤에 일어난 5.16이라는 두 사건을 발판으로 삼아 그 가능성이 어디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는지를 탐색해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탐색에는 일반적인 규칙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발판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추정의 힘은 약화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명시적인 이유를 제시할 수 없을 경우, 견고한 발판에서 너무 멀리 가는 것은 자멸적인 선택입니다.
앞선 글에서 저는 두 가지 사실, 즉 1949년의 잦은 무력충돌과 불안한 내정 상태, 그리고 1950년 여름엔 북한의 전면침공으로 대한민국이 멸망 직전까지 갔다는 점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간당간당한 상황에 1949년에 일어난 조금 더 불리한 조건이 더해졌다면 대한민국의 멸망으로 귀결되기 쉽다라는 것을 주장했는데, 그것은 결국
더도 덜도 아닌 1년짜리 추정을 한 것입니다.
결국 발판으로부터의 거리를 놓고 볼 때, 40년대 말을 놓고 본다면 6.25에 근거를 둔 추정이 더 강하고, 50년대 말을 놓고 본다면 4.19/5.16에 근거를 둔 추정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50년대 중반은 발판으로부터의 거리가 먼 만큼, 추정의 신빙성은 상대적으로 약한 셈이지요.
이러한 단순 추정을 좀 더 강화해 보지요.
앞서 거론한 "이유"들을 따져보면 그것은 결국
한국전쟁(1950~53)에 따른 국제정세의 변화이며, 그것이 대한민국의 안보상황의 개선을 가져왔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판단은 1950년대 중후반에 이승만정권의 붕괴가 일어날 경우, 그것이 대한민국의 소멸로 연결될 가능성이 그 전 시기보다 꽤 낮아졌다는 평가를 가능하게 합니다. 반대로 한국전쟁 이전에는 그 이후 시기의 상황을 연장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추정들은 본질적인 불확실성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믿을만한 설과 덜 믿을만한 설을 구분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이제 끝으로 umberto씨께서 제시한 예시 "북한은 굶어 죽는 거지국가이고, 우리는 발전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아니 이승만이 무엇을 해도 옳았다."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이런 주장은 '선진 자본주의'와 '이승만' 사이에
50년의 간격이 있는 50년짜리 추정입니다. 저런 주장은 끝없는 논쟁을 벌일 수 있는 소재일지는 몰라도 기간이 너무 길어 근본적으로 방어가 불가능합니다.
이건 제가 내놓았던 짧고 간단한 1년짜리 추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지요.
덧붙이기앞서 몇 번의 논란을 보니까 늘 저의 마지막 한 마디가 사람들의 뇌리에 인상깊게 남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이번 글에도 한 가지 논쟁거리를 하나 던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이승만 정부는 국민이 정부를 타도할 수 있게 해주는 긍정적 조건들을 창출했다는 겁니다.
위에서 다룬 것처럼 이승만 정부는 한국전쟁을 종결지으면서 전쟁 전보다 훨씬 좋은 안보상황을 확보합니다.그 결과 이승만 정부를 타도하여도 대한민국이 따라 붕괴할 가능성이 줄어들게 되었고, 국민들은 그를 더 쉽게 몰아낼 수 있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안보상황 중 일부는 그냥 역사의 귀결이지만 한미상호조약같은 다른 일부는 분명한 이승만 정부의 업적입니다. self-destruc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