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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으로 친일을 가리는'게 아니지요.
친일파 떡밥을 한번 물어볼까요? (자그니)에서 트랙백

"'반공으로 친일을 가리는' 행태"라는 지적은 사실을 거꾸로 보는 것입니다. 이 말은 친일이 몸통이고 반공이 몸통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라는 것인데, 실제로는 그 반대여서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서는 친일전력자라도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친일을 보호함으로써 정치적으로 큰 손해를 볼 줄 익히 알면서도 반민특위와 충돌한 것입니다.

이 시기를 심도있게 다루는 박명림의 노작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을 몇 부분 인용해서 그렇다는 것을 보이도록 하지요. 이 책은 이승만에게 충분히 비판적인 책이고, 이 책을 읽으면 이승만을 공격하는데 유용한 근거를 아주 많이 발굴해낼 수 있으니 저와 입장이 다른 분들이라도 읽어 두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이승만 역시 친일세력이 체제의 골간이자, 좌파를 제압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기 때문에, 이들을 비호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그가 이들을 감싼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의 기여라는 발생적 기원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들의 적극적 반공투쟁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이들을 제거하고 북한과 맞설 자신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자주 대북 자신감을 표출하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남한이 북한보다 허약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민중적 수준에서는 북한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정부와 군대는 이를 이기기 어렵다고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2: 기원과 원인』, 나남출판, 1996, p.449


이승만이 핵심적으로 비호하려고 했던 세력은 최남선이나 이광수 같은 저명한 문화계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이승만에게 아무 쓸모가 없었죠. 일제시대의 거부인 화신백화점의 박흥식같은 자산가들은 물론 문화계 인사들보다는 유용했겠지만, 이들도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승만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지 않습니다. 이 점은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기득권층=자산가 계급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이승만의 목적이 아님을 잘 보여줍니다. 사실 이승만 이후의 대통령들인 박정희나 전두환은 집권 직후 한번씩 재벌을 손봐주면서 길들이기에 나서는데, 이승만도 친일청산을 명분으로 이러한 방법을 쓰지 못할 이유는 없지요. 체포되자 이승만이 반민특위 부위원장 김상돈을 면담해가면서 구해내려고 했던 핵심인사는 친일경찰인 노덕술이었습니다.

다음은 언론에 보도된 김상돈의 의회에서의 발언이다. 이것을 『국회 속기록』에서 인용하지 않고 신문에서 인용하는 것은 의도적이다.

우리 위원회에서 비상한 노력을 계속하던 차에 대통령이 부르시기에 반민특위활동을 무슨 원조나 하여주시려는가 보다하고 기쁜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랬더니 기대와는 천양지차로 노덕술을 석방하라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노덕술을 석방할 수 없다고 말하였더니 그래도 노덕술은 경찰기술자이며 공훈이 있는 자이다. 이 사람이 없이는 신생국가의 치안유지가 안된다고 말하며 다시금 석방을 요청하기에 나는 민주주의국가에서는 그러한 기술이 필요치 않다고 거절하였다. 그랬더니 대통령은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 당신들이 그대로 나가면 나는 나대로 생각이 있다고 말하였다. … 대통령은 특위활동 때문에 치안이 혼란상태에 빠졌다고 말하였는데 그렇다면 제주도사건을 비롯하여 전남반란사건, 38선의 혼란상태 이 모두가 다 반민특위의 고문 난타 때문에 그렇다는 말인가? 대통령의 담화는 부당한 것이며 다시 는 대통령이 신생국가의 건전한 발전을 위하여 꿈에라도 그러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20]

[20] 2월 17일 제 33 차 본회의 발언, 『서울신문』 1949년 2월 18일. 대통령의 담화에 대한 반민특위의 공식 반박담화는 같은 날짜, 같은 신문에 실려 있다.

같은 책, p.450

주요 일간지에 이렇게 실리면 정치적 타격이 막대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요. 박명림에 따르면 "토지 개혁이나 친일파 문제, 각료들의 비행,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적 보도에 있어 전간기는 보기 드문 언론자유의 시기"라면서 "친일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과 의회가 충돌할 경우 대통령의 담화와 그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국회의원의 주장이 같은 크기로 실렸다"고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에게는 그만큼 절실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48년질서에서 분단과 통일의 문제는 상쇄적이었다. 불행히도 현실은 북한수용과 통일을 주장하는 세력이 소수였고 반공 반북의식으로 남한을 강화하여 북한을 타도하자는 세력이 다수였다. 이는 현실조건의 반영이자 국토완정을 주장하는 북한의 대응물이었다. 남한의 단정 노선을 강화해 주고 정당성을 부여해 준 요인의 하나는 먼저 분단으로 갔던 북한의 선택이었다. 단정세력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단의 논리와 반공주의를 강화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대중들이 오직 그것에 의해서만 반공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설명은 진실의 절반만을 말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와의 생사투쟁적 대결을 끝내고 정부가 수립되었고, 또 그들과 그러한 대결을 지속하고 있는 상태에서 평화통일주장은 지배적이지 않았다. 평화통일 주장보다는 반공통일 주장이 더 강력하게 받아들여지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친일세력 숙청문제는 전혀 달랐다. 표면적으로 이것은 이념 문제와도 분리되어 있어 보였다. 또 토지개혁 같은 구조적 변환을 가져오는 것도 아닌 문제로 보였다. 달리 말하여 사람을 자르고 가두는 문제였기 때문에 효과도 훨씬 더 즉각적이고 선명하였다. 민주화 과정에 5공 청산과 군부권위주의 청산이 마치 커다란 사회적 구조변화를 가져온 듯 보였던 과대포장 효과는 제도와 구조의 변화보다 인적 청산이 갖고 있는 일종의 사회적 집단착시였던 것이다. 한국의 정치문화는 가장 근본이 되는 이슈가 쟁점화되면 세부적인 내용과 정책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따지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사회적 합의인 친일세력 숙청을 거부한다는 것은 이승만 정부에게는 커다란 부담이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도덕적 명분보다는 현실적 이득을 취하였다. 이 선택은 남한이 이 문제를 수용할 수 없었던 48년질서의 구조와 그 속에서의 지배체제의 성격을 함께 보여준다. 그것의 수용은 곧 1948년질서의 붕괴 내지는 상대 공산주의국가에 이니셔티브를 양도함을 의미했다. 반공체제를 지탱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 친일파도 숙청하고 반공도 강화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생사투쟁적 대결을 진행 중인 이승만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이승만의 선택은 현실적으로 두 가지 결과를 초래했다. 하나는 도덕적 비난이었고 다른 하나는 체제의 강화였다. … 48년질서에의 참여문제에서 이승만과 김구는 참여와 참여거부로 결별하였는데 이때 전자는 현실주의로 선회하였고 후자는 도덕주의를 고수하였다. 친일숙청문제는 이러한 대립의 세 번째 의제였다.

같은 책, pp.460-462



이 문제는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가 헌법 문제로 한민당의 김성수를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김성수 씨는 양원제, 내각책임제에는 곧바로 찬성하였으나 농지개혁에는 약간 망설이는 빛을 보였다. 자신 지주이고 또 지주출신자들이 많이 집결된 정당의 대표자이니 나로서는 처음부터 예기했던 반응이었다. 그래 나는 … 제1차세계대전 후 동구제국이 농지개혁을 단행한 이야기를 하고 그것 없이는 농민이 공산당으로 쏠리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음을 역설하였다. … 김성수 씨는 ‘농지개혁만이 공산당을 막는 최량의 길’이라는 내 말에 ‘그것도 그렇겠다’하면서 결국 농지개혁에도 찬성하였다.

같은 책, pp.477-478

이는 공산당을 막는데 필요하다는 요구는 지주들이 토지개혁에 관한 내용을 헌법에 넣는데도 동의하게 만들 정도의 파괴력이 있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런 것은 그저 빈 말로 하는 일이 아니지요.


이들은 반민특위가 진행되던 당시에도 실제로 격렬히 싸우고 있었습니다.

남한의 한 자료에 따르면 이후 한국전쟁 발발 때까지의 충돌은 874회 에 달했다. 최초의 충돌이 있었던 49년 1월부터 매일 두 번 이상의 충돌이 이어졌음을 뜻한다. 38선은 사실상 전장이었던 것이다. 북한 측의 주장에 따르면 1949년 1월부터 9월까지 38선 전 전선에 걸쳐 남한의 침입횟수는 432회에 달했고 총 침입인원수는 4만9천 명에 달했다. 그들은 총 13개 군, 45개 면, 136개 리가 10여 차례 이상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 중에는 71회의 비행기 침입과 42회의 함대 습격도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어느 쪽의 주장을 취하든지 전투횟수가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객관적으로 말하여 공격의 횟수는 서로 비슷하였다. 어느 지역에서는 남한이 더 많았고 어느 지역에서는 북한이 더 많았다. 또 초기에는 남한이 좀더 공격적이었으나 나중에는 북한이 더 공격적으로 바뀌어갔다. 북한이 점점 더 공격적으로 되었던 것은 남한내륙의 게릴라투쟁을 도와주기 위한 이유 때문이었다. 38선 충돌은 황해도 옹진에서 강원도 양양까지 전 전선에 걸친 것이었기 때문에 단순한 국부적 충돌이 아니었다.

유엔한위의 보고는 “게릴라 대원들이나 정보원들의 다수는 북한에서 훈련된 남한인들”이라면서 그들은 그들이 가진 지방에 대한 지식이 그들의 작전 실시와 지방불평분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있어 유리하게 작용하는 각 지방들의 전투원으로 다시 파견되었다고 분석하였다. 보고에 따르면 게릴라들은 현지보급으로 생활해야 했지만 무기와 탄약은 북한당국으로부터 받고 있었다. 여러 증거와 게릴라 심문에 근거하여 위원단은 “북한당국은 대한민국에 대하여 주의깊이 계획된 게릴라전(a carefully-planned guerrilla campaign against the Republic of Korea) 을 실제로 실행중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고 결론내렸다.

이를테면 9월 16일에는 게릴라가 광양에 주둔하는 군부대의 대대본부를 공격하여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군의 대대본부뿐만 아니라 인근의 광양경찰서와 지서까지 공격하여 막강함을 과시하였다. 이를 진압코자 출동한 군부대는 매복에 걸려 패퇴하였고 대대규모의 부대가 게릴라에게 패퇴하기도 하였다. 결국은 다음날 사단장이 직접 전투에 나서서야 게릴라를 격퇴시킬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군경은 39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실종되는 피해를 입었다. 11월 3일에는 진주시가 게릴라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하였다. 진주시 같은 규모의 도시가 공격당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남한에 많은 충격을 주었다. 게릴라들은 진주군청, 형무소, 법원, 경찰, 해병대 부대를 동시에 공격하였고 법원과 군청은 전소되었다.

같은 책, p.620, 631, 633


게다가 이 시기는 주한미군이 철수를 결정해 진행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미군의 철수가 김일성과 스탈린으로 하여금 남침의 성공가능성을 믿게 하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요. 그렇지 않아도 약하다는 걱정을 하고 있는 이승만이 얼마나 초조했겠습니까?

이런 상황이 이어지다가 반민특위 문제가 있었던 바로 다음 해 6월 결국 북한의 전면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이 때 남한은 문자 그대로 멸망 직전까지 몰립니다. 국군이 좀 더 빨리 무너지거나 후방 교란 활동이 조금만 더 강했어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지금 없을 공산이 큽니다.

파괴적이었던 한국전쟁 이후에는 결국 그때 이승만이 반공을 위해 기를 썼던 것이 일리가 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어서, 이 문제를 갖고 이승만을 비난하기가 아주 어려워집니다.

그러니 당장 대공수사에 투입할 경험있는 인력이 광복 후 건설한 우리나라의 생존에 일조하지 못했다고 볼 이유가 있는지 잘 생각해 볼 일입니다. 반민특위 문제를 어떻게 풀었으면 좋았을지에 대한 제 의견은 앞선 글의 말미에 적어 두었으니 궁금하신 분은 그 쪽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부기
" "친일파가 '속죄의 의미로 한국 정부에서 일한'것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하시면 곤란하지요. 그것은 정확한 인용도 아니거니와, 문장을 곡해한 것이고, 실제로는 한국정부의 생존을 위해 기여했다면 조금이나마 속죄가 된 것이라는거지요. 제가 말하는 것은 결과의 논리이지 동기의 논리는 아니거든요.
by sonnet | 2008/08/20 10:40 | flame! | 트랙백 | 핑백(2) | 덧글(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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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몰아세우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제발 팩트를 가지고 와서 보편타당하게 적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잣대를 버려라. 좀.http://sonnet.egloos.com/3871407 sonnet님 이글루에서 자세한 내용은 참조하시길. ... more

Commented by 은혈의륜 at 2008/08/20 11:00
개인적으로는 이승만정권을 미군정의 꼭두각시 정도로 생각해서, 이승만 시대의 친일파 기용 문제는 미군정이 한국을 빠르게 안정시켜보려고 숙련자=일제시대 친일관료들을 기용했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1:12
1. "미군정이 한국을 빠르게 안정시켜보려고 숙련자=일제시대 친일관료들을 기용"했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런 의견을 미군 문서로 입증할 수도 있습니다.

2. "이승만정권을 미군정의 꼭두각시" 이건 잘못된 이미지입니다.
http://impetuous.egloos.com/2024267
http://sonnet.egloos.com/3839978 등 참조

결론적으로 말하면 초기에 이야기되던 한 10년 넘는 신탁통치를 했으면 모를까, 미군정 3년은 인력대체를 끝내기엔 어려운 기간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미국이든 소련이든 이들이 키운 인력은 그 나라와 깊은 관계를 갖는지라 그렇게 하는 것 자체도 꼭 좋은 것 같지도 않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8/20 11:05
원글을 이상한 의미로 해석하는 분이 생각보다 의외로 많네요.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던 사람도...
"저놈은 나쁜 놈일 수도 있다"와 "저놈은 분명히 나쁜 놈이다"가 어떻게 가ㅌ은 의미로 해석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역시 독서의 부족일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1:08
제가 오해하기 쉽게 쓴 것은 몇몇 분이 지적해 주셨고, 저도 인정을 합니다. 몇 개의 글을 더 쓰게 된 건 그 책임을 지기 위한 것이지요. 코멘트에 대한 답변에서도 이 문제를 수 차례 밝혔구요.
Commented by wizmusa at 2008/08/20 11:49
인사때문에 친일파까지 적극 기용한 마당에 정말 인사만 잘 했어도 국부로 칭송을 받았을 만도 한데. 결국 사욕때문에 많은 일을 그르친 것 같네요. 우선순위에서 밀린 아쉬운 게 많았겠죠. 단순하게 보면 김영삼 전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한 것 같아요.

http://kr.blog.yahoo.com/sawoochi/335310
http://kr.blog.yahoo.com/sawoochi/1244077
http://kr.blog.yahoo.com/sawoochi/1243233
http://eniac90.egloos.com/4559876
http://www.mediamob.co.kr/badboy/Blog.aspx?ID=215372 (상당수의 인식)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2:21
이승만의 문제점을 꼽으면 또 끝이 없지요. 개인숭배나 인의 장막 이런 것도 심각한 문제이구요. 저 때는 국회의원들을 막 체포하기도 하고 개판입니다.

다만 제 이야기는 저 때 경찰 문제는 이승만도 절박한 사정이 있었고, 그게 지나고 보면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측면이 있었다는 겁니다. 좀 더 잘 할 수 있었냐... 라고 한다면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럴 가능성은 많이 있었겠죠. 언제나 많이 있으니까요.
Commented by wizmusa at 2008/08/20 14:40
그 절박한 사정을 사욕 때문에 자초한 게 아닐까 싶어서요. 하고 싶은 거(?) 다 한 다음에 수습만 성의껏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최선을 다했다 정도로 봅니다.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8/20 11:59
이승만 본인은 '반공으로 친일을 가렸다'고 말할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당시의 친일계열들이 '반공으로 친일을 가렸'고 이승만이 이를 '나름의 이유'로 수용했다, 라고 기술하는게 특별히 이상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2:13
옛 친일파 개개인의 생존전략이 앞부분이라면, 국가와 정부의 정책은 뒷부분인 것이군요. 뭐 그 정도면 무방하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Ya펭귄 at 2008/08/20 12:01
'도덕적인 삶을 꾸리기 위한 전제조건은 우선 '죽지 않아야' 한다는 점인 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2:31
그렇죠. 我生然後 殺他.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20 12:03
결과론적으로 우리나라에 기여했으니 되는 거 아니냐... 하시면


세간에는 결과론으로 상황을 제단하는 것에 대하여 상당히 거북해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참고하셨으면 이런 수백플의 논쟁도 없었으리라 판단되네요.


뭐 소넷님의 검역소의 냉철한 식견에 따르면 친일부역자들이 권력기반에 들어서고 우리나라의 빨간애들도 쓸어버리는 것이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었는 지 모르지만 사람의 감성은 그게 아니거든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2:32
네 잘 알겠습니다.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20 12:06
사족을 하나 첨언하면, 소넷님은 본좌의 수준에 맞는 높은 지적 수준과 풍부한 자료와 상당히 센스있는 인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만인이 보는 이글루에서 통용되는 '사회통념적인 감성'도 어느 정도는 갖췄으면 하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8/20 12:14
"사회통념적인 감성"이라는 단어가 "대중이 옳다고 하면 그대로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것 역시 또 다른 형태의 파시즘일 뿐이라고 봅니다만.
Commented by 세이리온 at 2008/08/20 12:17
이런식으로 가르치는 투의 댓글은 무례하다는것 정도는 아셔야 될것 같네요.

이런 경우엔 그 '사회통념적인 감성'을 넣어서 글을 쓰신후 트랙백을 쏘시면 됩니다.
이렇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게 아니라요.
Commented by .... at 2008/08/20 13:17
사회통념적인 감성이 아니라, 사회통념성을 빙자한 님의 입맛이겠죠.

Commented by 아텐보로 at 2008/08/20 13:24
말씀하신 만인이 보는곳에서의"사회통념적인 감성"이란 단어를 그대로 80년대 이전에 적용해보면 "반공주의와 경제발전"도 만인이 원한 "사회통념적인 감성"에 의한것이겠군요.
Commented by H-Modeler at 2008/08/20 13:49
사회통념이 항상 옳을수는 없고, 사회통념에 대해 이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어서도 안됩니다.
Commented by impetuous at 2008/08/20 14:08
'이글루스에서 통용되는 사회통념적 감성'이면 이오지마에 무수히 보이는
"2MB까자/딴나라당까자 하악하악" 글을 쓰시라는 말씀인가요?

거기에 무슨 인생 선생님 같이 구는 투하며=_=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20 15:42
님들도 초딩 시절에는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하고, 일의 동기도 중요하다'는 소리 정도는 얼핏 듣지 않았나요?


제가 말하는 '사회통념적 감성'이란 '사람이 결과만 갖고 따지는 것에 대한 반감'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뭐 님들이나 소넷님처럼 어느 경지 이상 넘어서는 고수분들이라면 결과가 다른 제반 요소를 만회할 수 있다고 보실지는 모르지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8:29
제가 하나 질문드리겠는데, 말씀하시는 "사회통념적인 감성"은 결과나 당시 상황에 이미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Commented by maxi at 2008/08/20 12:37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서는 친일전력자라도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친일을 보호함으로써 정치적으로 큰 손해를 볼 줄 익히 알면서도 반민특위와 충돌한 것입니다.

으악 성지예감(후덜덜)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2:56
푸하. 성지예감입니까.
그 때 이승만은 국회의원들을 막 잡아들이고 난리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승만이 여전히 죄가 많은 것은 변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때 "반민특위 좋습니다. 100% 밀어드리겠습니다"라고 응했을 때, 결과가 좋았을거냐 이건... 솔직히 부정적입니다. 1년 후에 전쟁이 나버리니 진짜 다르게 해석해 주기가 힘들어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8/20 13:08
그런데 반민특위에서 군대에도 손을 댈 움직임이 있기는 있었습니까? 친일파의 기준으로 "중좌 이상의 계급을 가진 자"라고 했으니 걸려들 사람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긴 한데, 이게 들쑤시기 시작하면 애초 예정대로 끝났을까 싶어서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8/20 12:59
다만 문제가 있다면 우남께서는 과인이 곧 국가라고 믿으셨던 것일려나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3:14
그것도 사실이죠.
http://sonnet.egloos.com/3023530 같은 걸 보면 분위기가 익히 짐작되지요.
Commented by 上杉謙信 at 2008/08/20 13:34
우왕ㅋ굳ㅋ 북괴의 태조주석인민지부항일대제(-_-)와 대한민국의 태조는 의외로 공통점이 많은것같네요 .

능수능란한 정적제거..... 정치감각, 국제정세판단력, 적절한 나쁜짓(?) 그리고 개인숭배까지요,...

예전에 태조동상과 각학교마다 걸려있는 태조사진을보고 잠깐 정신적충격에 빠진적이있습니다.... ㅋㅋ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8:14
저는 모 유명 인터넷 서점 대표하시는 분께서 국부의 생신을 축하드리는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셨다는 일화를 들어본 적 있습니다 ;;;
Commented by monsa at 2008/08/20 13:44
사실 친일파 논쟁은 지난번 테러에 대한 입장정리와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앞으로 나라가 넘어간다면 부역해도 되나? 다시 찾았을때 어떻게 해야 되나의 문제 말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좋지 않은 선례가 남은 것은 사실인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참 난감합니다.
Commented by maxi at 2008/08/20 13:55
매우 좋지 않은 선례라는데는 동의합니다. 프랑스 예를 드는게 워낙 막장짓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으니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7:57
네. 맞는 말씀입니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빨갱이야말로 앞뒤 가리지 않고 때려잡은 케이스인데, 이게 또 돌이켜보면 구린 데가 많은 것이거든요.
그 둘의 차이는 앞서 토론에서 드러난 것처럼 일제는 소멸해서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은 과거의 존재인 반면, 공산권은 현실에 존재하는 절박한 위협이었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국력의 성장 및 소련의 붕괴 등으로 안보상황에 상당한 개선이 생기자 이 문제에도 점차 여유를 보여주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북한이 소멸되고 나면 좌우 진영에 관계없이 이 문제도 과거의 것이 되겠지요.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08/08/20 13:45
노덕술에 대한 필수불가결성 입증은 박정희 편보다 훨씬 지난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8:09
저는 오히려 이쪽이 더 쉬울 것 같습니다. 김일성이 친일경찰 청산여부를 보고 남침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므로 여긴 시간이 기껏해야 1년 정도밖에 없다고 봐야 하는데, 수사 과정에서 간부 여럿을 체포해 조사함에 따르는 조직 마비는 피할 수 없어보입니다.
그런 건 공조직에서 갑작스런 다수의 인사교체나 감사 등에 따르는 효율 변화를 관찰하는 정도로도 뒷받침되지 않을까요. 즉 제 이야기는 반민특위의 수사 방식을 그대로 두는 한 잡혀간 사람들 대신 누구를 채워넣어도 그렇게 짧은 기간에 효율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긴 힘들 거란 말입니다.
Commented by 주코프 at 2008/08/20 13:48
'우리나라'를 South냐 North냐로 보는가의 문제와도 연관되겠죠....

여담이지만..90년대 '공안정국'의 선봉을 자처했던 노재봉 총리시절, 부상한 이야기가 '악질경찰 노덕술의 친자식 노재봉'이었죠(실은 전혀 아닌)...사실 둘이 얼굴이 닮긴 닮았어요..ㅡㅡ;;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8:04
그렇게까지 보면 오히려 색깔론에 말려들게 될 위험이 큰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토르끼 at 2008/08/20 14:03
참고로 당시 선거 때 한민당 후보들 중 오늘날 와서 친일행적이 보이는 사람한테 당시 친일 행적 가지고 태클 건 사람 없었던걸로 기억하지 말임다. 'ㅅ'

심지허 조병옥 박사는 한일 관계 개선을 주장하지 않았나염
Commented by impetuous at 2008/08/20 14:10
근데 좀 중학생스럽긴 한데, 노덕술씨 이야기를 보고 모 소설의 바그다슈씨가 생각나 버렸다면 학창 시절에 편향된 독서를 한 탓일까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8/20 14:14
바그다슈랑은 또 다르죠. 바그다슈는 펜과 스피커로 일을 하는 사람이지 자기 손으로 고추가루물이나 몽둥이를 쓰는 사람은 아니라서...^^

더 비슷한 사람이라면 하이드리히 랭 아닐까요?
Commented by impetuous at 2008/08/20 14:16
작업방식(...)은 다릅니다만 처세라든지 거기에 대한 주위의 처리 방식에 대한
다툼이 조금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8/20 14:27
음 확실히 그런 면은 그렇군요. 하지만 "도구로서의 중립성"을 스스로나 주변 인물들이 강조하는 면에서는 하이드리히 랭도 마찬가지인 듯 싶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8:15
은하영웅전설인가 보군요.
Commented by 산왕 at 2008/08/20 14:12
책을 읽었는데도 이런 내용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다시 읽어봐야겠군요^^;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8:07
워낙 두꺼운 책이잖습니까. 2권만 해도 천페이지에 육박하니.
Commented by 아이스맨 at 2008/08/20 18:22
대외적으로는 [강도질], 대내적으로는 [기술자]기용...은영전의 오벨슈타인이 오버랩된달까...하는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8:33
사실 2공의 장면 총리가 신사라는 인물평을 널리 듣는데, 버텨내질 못하잖아요. 그 앞이나 뒤나 다 아주 독종들이고... 시대가 신사를 원하지 않는 난세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8/08/20 18:42
한동안 다른 데에 미쳐 블로그스피어도 돌아보지 않았는데... sonnet님께서 전례없는 융단폭격을 맞고 계시더군요. 저 또한 카바신전에 돌 던지러 왔습니다.

역시 그 '속죄'라는 표현이 많은 분들의 역린을 건드렸나 봅니다. 속죄할 기회를 가졌다라는 말이 따져보면 틀린 건 아니지마는 그 어감이 좀 더럽죠. 속죄란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거라는 일반인들의 관념에도 꽤 거슬리고.
제 생각엔 그건 기회주의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에 더 가깝다고 여기는 편입니다(그것도 어쩌면 '속죄할 기회'의 동전의 양면 같지만서도). 특히 반민특위를 뒤엎은 부분에서 그렇죠. 아무래도 최소한 악질 몇몇을 본보기로 처형이라도 하는 선례를 남겼어야 하지 않았나 싶은데 결국은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그리고 그 때 당시로서는 친일파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고는 하는데, 그 뒤처리가 아쉽긴 합니다. 장개석의 사례(http://blog.daum.net/shanghaicrab/14649891)를 보면 기회주의자들에게 가장 화끈한 처벌은 토사구팽이 아닌가 싶네요. 이승만이 그럴 생각이 있었는지는 정말 의문이지만... 역시 지나간 일에는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8:55
예. 그 표현에 관한 지적은 많이 받았고, 인정하겠습니다.

쓰고 버리기는 한 가지 선택이긴 합니다. 그런데 이용가치가 없어지거나 위험해져서 버리게 되는 것인지, 벌을 주기 위해서 버리는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겠지요. 토사구팽은 전자인 셈이고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실제로는 후자가 아닐까요?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8/08/20 23:16
당연히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후자겠죠. 그게 설령 단순히 용도폐기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라도 대개는 인과응보라고 받아들이며, '꼴 좋다'라는 한 마디와 함께 침을 탁 뱉고 발길을 돌릴 겁니다.

모든 논의의 감상 : 정치가는 자기 이름이 후대에 어떻게 남게 될 것인지 고민을 좀 많이 해야 할 것 같네요.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08/20 18:53
1. 뭐, 이승만을 절대 악이나 절대 선으로 생각할 정도로 순진하진 않습니다. :) 설마, 이승만이 반공을 절대 선이나 진리로서 택했다고 생각하진 않으시겠지요?

2. 원문의 정확한 인용은 글의 앞부분에 이미 있습니다. 단순히 반복하기 싫어서 요약했는데, 그 문장에 대한 제 해석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버렸군요.

3. 친일파의 정권 참여가, 결과적으로 속죄-가 되었다면, 거기에는 앞서 증명할 것이 필요합니다. "친일파의 역할이 대한민국의 정부의 성립이나 유지,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즈명이. ... 친일파의 역할이 이승만 정권의 성립및 유지에 대한 기여였다면, 그건 이승만에게나 도움되는 일이겠지요?

4. 원문에 '반공으로 친일을 덮는다'는 우파의 논리라고 말했고, 그것이 이승만의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이미 적혀있습니다. 이승만이 반공으로 친일을 덮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5. 해방시기 정치 엘리트들에게는 (제가 보기엔) 두가지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권력의 중심에 서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했다는 점, 외교적 흐름에 무지했다는 점. 김구, 이승만, 여운형, 송진우를 비롯한 대부분의 정치가들에게 비슷하게 보여집니다.

독촉을 결성하기 위해 이승만이 활동할 때(임정 귀국 전)까지만 해도, 이승만이 공산당에 우호적인 말까지 했음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반공이 아니라, 자신이 권력을 잡는 거였으니까요.

...이에 대해선 나중에 자세하게 이야기할 때가 있겠지요. 아무튼,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0 19:54
1. 묘사하신 상황은 당시 반민특위 문제를 둘러싼 어느 한 쪽의 시각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제가 볼 때는 이승만에게만 불리한 상황묘사라고 봅니다. 저는 이 글에서 이승만이 그렇게 무리수를 두게 된 상황을 덧붙여 보여주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양 시각을 조합함으로서 독자들은 좀 더 나은 상황인식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2. 그 해석에는 앞선 글에 따른 많은 논평에 답하면서 제가 부연한 내용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3. 그 증명은 반대편에서 제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한참 대공작전을 수행중인 경찰 조직의 지휘부 및 중간간부들을 여럿 체포, 처벌하였을 때 조직에 단기적인 혼란도 안 올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듬해에는 20만 북한군이 밀고 내려오는데요?
한국전쟁 직전이나 한국전쟁 중에 이승만 정부가 붕괴할 경우, 대한민국이 더 이상 존속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것은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만.

4. '반공으로 친일을 덮는다'는 우파의 비판자들이 우파를 지칭해 묘사할 때 쓰는 논리이지 우파의 논리는 아니죠. 본문 중에 예시한 반공을 위해서는 토지개혁도 수용한다는 김성수의 입장은 반공이 우파 진영의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들의 핵심이익도 양보할 수 있는 중대사안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5. 정치가에게는 그런 자질이 필요한 겁니다. 권력감각이 떨어지는 김규식 박사 같은 사람의 행보를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기본적으로 해방전후의 민족지도자들은 오늘날 우리의 기준으로는 많은 약점이 있습니다. 그 점은 분명히 인식해야 하고 오늘날 우리의 과대한 욕심을 투영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중엽 제3세계 정치가들의 수준을 생각해 보면, 우리 지도자들이 특별히 떨어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마지막 말씀에 대해서는 김구의 귀국 후 행보와 비교해 그것이 특별한 것인지 평가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다음은 트랙백해 주신 글의 코멘트에 답한 것을 다시 옮긴 것입니다.

김구선생이 귀국해서 자리잡은 경교장은 일제시대 조선 제일의 거부라던 금광재벌 최창학이 제공한 것입니다. 또한 1945년 12월 16일에 김연수의 경성방직은 임정에 거금 700만원을 헌금하고, 그 외 중경임정 재무부장 조완구의 요청으로 송진우 김성수 김동원 장택상 등이 후원금 모금회를 결성합니다.
1945년 11월 24일의 귀국 첫 기자회견에서 김구는 통일전선에 먼저 민족반역자와 친일파를 제외하자는 여론이 높은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우선 통일하고 불량분자를 배제하는 것과 배제해놓고 통일하는 것의 두 가지가 있을 것이나 결과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이라고 어물쩍 대답합니다.
즉 이 이야기는 민족반역자와 친일파 배제를 확답하지 않음으로서 향후 운신의 폭을 넓히려는 김구의 계산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8/20 22:01
결과적으로 '극약처방' 그 자체였던 셈이군요. 장단점 모든 면에서...
어떻게 보면, 당시 정국에서 조금만 더 머리좋게 움직였다면 정말로 '국부' 소릴
들었을 가능성도 없진 않겠네요. 물론, 그래선 우리 리박사가 아니지만... ^^

태조 전하께서 원하신 포지션은 '국부'였지만,
현실은 마지막에 '짬뽕 3그릇 먹고도(개헌) 한 그릇 더 먹으려다 퍼진 찐따'... 끌끌.
(아, 이것도 나름 시대와 사회가 리박사에게 행한 '토사구팽'일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2 13:15
그게 그 사람의 한계인 거지요.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8/20 23:54
그야 뭐 리태조의 세줄요약 자체가 "나라에는 충신 외교에는 귀신 내치에는 등신" 이니까요. (저 충신이란게 "자신이 왕인 나라의" 라는 전제가 붙긴 합니다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2 13:17
그게 좀 구분이 안 되지요. 대신 그런 마인드가 먹튀를 줄여주는 효과는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국 지도자들은 다른 제3세계에 비하면 처음부터 먹튀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준비하는 타입은 아니거든요.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08/21 01:39
상황을 뒤에서 부터 맞춰들어가는 계속 얘기들이 어긋나는거 같네요
일단 개같이 번다음에 정승처럼 써야....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2 13:18
그럴 수 있으면 좋긴 하겠죠.
Commented by umberto at 2008/08/21 08:59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위험천만한 부분은 잘 넘기시더니....

"당장 대공수사에 투입할 경험있는 인력이 광복 후 건설한 우리나라의 생존에 일조하지 못했다고 볼 이유가 있는지" 라는 쓰신 부분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른바 당장 대공수사에 투입할 경험있는 인력들이 우리나라 생존에 일조했다고 한 행위 중에 하나가 고문, 살인, 누명 씌우기, 조작 등의 행위 아닙니까?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한국전 초반의 요주의 인물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이나 용공조작 행위 등이 다 용서가 될 수밖에 없지요. 김창용이 왜 죽었는지 아시는 분이 이런 표현을 쓰신 다는 것이 좀 거시기 합니다.

그리고 과연 이승만 정권=우리나라의 구도가 성립할 수 있는 걸까요? 좌우익 대립시기의 급박함을 강조하다 보면 결국 수많은 야만행위에 대해서 면죄부를 줄 수밖에요.

박명림 선생의 저 책은 읽은지 몇년 되긴 했습니다만, 저 책이 저렇게 인용되는 것도 좀 뜻밖의 경험 입니다. 역시 독자에 따라 책의 효용도 달라지네요. ^^ 유진오와 김성수 일화는 저도 상당히 인상깊게 읽은 기억이 나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2 13:35
핵심적인 질문은 별도 포스팅으로 다루었는데, 여기서는 나머지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그게 사람들이 제가 결론을 강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시의 어떤 상황을 보여준 것이고, 판단은 각자 하면 되는 거지요. 제가 이렇게 쓴다고 사람들이 한 방에 설득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제가 원하는 것은 오히려 판단의 까다로움을 한번 느껴보라는 것입니다. 아, 이건 간단한 결론을 원하는 사람에겐 심술궂은 이야기일까요?

지금까지 한 이야기에서 저는 보기를 세 개 다룬 셈입니다.
1. 반민특위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것
2. 역사적으로 이승만이 걸은 길
3. 저의 가설적 제안: 반민특위가 이승만에게 부분적으로 양보했더라면

저는 이 글에서 1번은 언뜻 보기엔 좋지만 망국의 가능성이 꽤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다음 3번인데, 3번은 되면 좋았겠지만 "될 수 있었느냐", 즉 정치적 실현가능성은 미지수입니다. 저라는 후대인의 뇌내망상wishful thinking일 가능성이 큰 것이지요. 그래서 이 보기를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 겁니다. 이걸 강하게 주장하지 않으니 사실 이 길을 원하지 않는데 구색맞추기로 넣은 거 아니냐고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제가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잖습니까. 역사가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다음 남는 건 2번인데, 이건 역사적 결과이고, 이미 손댈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제가 능동적으로 죄가 없다거나 용서한다는 평가를 주진 않을 것입니다.
Commented by umberto at 2008/08/21 09:13
하나 더 덧붙이자면, "제가 말하는 것은 결과의 논리이지 동기의 논리는 아니거든요."라는 표현에 있어서도..... 너무 후대의 결과를 가지고 전대의 상황을 꿰어 맞추는 것은 아닌지요. 분명 혹도한 시기였고 최선의 결과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은 굶어 죽는 거지국가이고, 우리는 발전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아니 이승만이 무엇을 해도 옳았다." 식의 사고는 상당히 정치적으로 위험하게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을 '국부' 운운하는 한국의 보수세력이나 '건국절' 논쟁을 만들어낸 뉴라이트의 관점이 이런 생각을 극단으로 밀고 들어간 결과 아니겠습니까? 결과적으로 후대의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고 과거의 모든 잘못을 다 용서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2 13:36
이 점은 별도 포스팅에서 다룬 것으로 충분한 것으로 보이니 생략하겠습니다.
Commented by 백범 at 2009/01/29 12:47
그런데 사실 이승만은 지나치게 부정시, 경시되어온 측면이 있으니 그쪽 사람들도 그쪽 나름의 피해의식을 가질만도 할듯 싶군요.

여운형씨나 조봉암씨 쪽도 어느정도 그런것이 있는듯한데 이승만쪽도 만만치 않은듯... 버려지고 잊혀졌던 사람들이니 그럴수는 있을것이라 봅니다.

이런걸 이용해먹은 뉴라이트 놈들이 나쁜 놈들이죠.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08/08/21 09:31
정권의 안보와 국가의 안보를 구분하라는 것은 비교적 안정적인 정권교체 시스템이 갖춰진 지금에 와서나 할 수 있는 말이고, 정치 시스템이 극히 불안정했던 당시에는 개인적인 카리스마의 역할이 그렇게 쉽게 대체가능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2 13:38
이건 지금도 완전히 분리되진 않는 것 같습니다. 선거 등으로 제도적으로 물러나는 것 말고, 혁명 같은 방법으로 정권이 무너지게 되면 아무래도 국가 안보에 플러스이긴 힘들겠죠. 최소한 이행의 시기 동안, 그리고 실제로는 체제가 다시 안정될 동안은요.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08/08/21 09:45
그리고 국민의 평균적인 의식수준이 거의 봉건적인 수준에 가까웠던 당시의 정치지도자들을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어른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2 13:39
이승만은 실제로 자기가 왕에 가깝다는 느낌을 가졌던 듯 합니다. 주위에서 아부하는 품새나 본인의 연설 어조나 여러가지 면에서요.
Commented by 백범 at 2009/01/29 12:43
왕이라기 보단 의심많은 암군 정도가 잘어울릴듯...

실제 이승만은 자신의 밑에서 2인자를 하던 사람들... 윤치영, 여운형, 김구, 김규식, 김성수, 장면, 이범석, 장택상 등을 자신의 주변에서 배척하였지요. 단 이기붕이 남았는데 이기붕은 별다른 야심이나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서 살아남지 않았나...

윤치영 같을 경우에는 서서히 이승만에게서 멀어지는 법을 택하다가 나중에 세상이 바뀌자 공화당으로 가서 붙은 인물..
Commented by Ha-1 at 2008/08/21 10:27
이승만정부 != 대한민국 이건 듣기는 좋은 표현이지만 이런 프레임이 의미를 가지려면 우선

1. 당시 정부의 안위가 대한민국의 안위와 최소 독립 내지는 배치되는 것이어야 한다.

2. 다른 정부가 들어섰으면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으며 그러하였을 것이다. (박정희 논란에서 쓰이는 '대체가능성'에 대한 증명)


이 전제 되어야 할듯? '내가 인정하기 싫은 정부'이니 과거를 '선택적'으로 '취사선택'하겠다는 건 참으로 일본이 과거사를 보는 시각을 보는 듯 하네요.
Commented by 별과자 at 2008/08/21 14:33
그 듣기 좋은 표현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잘못된 과거는 확실히 잘못된 것으로 밝히고 들어가자'는거 라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거기에 과거를 선택적으로 취사선택하겠다는 뜻이 들어가는지는 의문이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22 13:40
1번은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었으니 넘어가기로 하고...

2번은 사실 그 뒤로 정권이 몇 번 교체되어도, 친일파는 면면히 이어져 왔다고 주장하잖습니까. 정권의 주류는 계속 바뀐게 확실한 데도요. 이게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주장하는 쪽에서 좀 보여주어야 이야기가 되는 것이고. 정말 그렇다면 다른 정부가 필요가 없는 거죠.
Commented by 백범 at 2009/01/29 12:20
김구씨나 김규식씨, 여운형씨가 과연 절대선일까요? 블로그들 돌아다녀 보니 셋 다, 혹 셋 중의 한두 사람은 절대선이라 착각하는 자들이 많은듯...

이승만을 숭배하는 것도 역겨운 짓이지만 이승만을 절대악으로 생각하는 순진하고 뇌없는 붕어들도 많은듯... 뭐 인터넷이 40대 이하 세대의 전유물이란걸 생각한다면야...

그래도 전부 어린아이들은 아닐텐데 어찌그리 생각들이 단순한지...
Commented by 백범 at 2009/01/29 12:22
그들은 반공주의자들의 이런 논리에 취약해집니다.

그럼 노덕술 같은 사람들 다 죽여서 공산당 못잡고 적화되면 어떻게 하냐?

이렇게 물었을 경우 순진하고 뇌없는 붕어들 왈...

사람이 다같이 잘사는게 중요하지 이념이 무슨 상관이냐 or 통일민족국가가 중요하지 공산주의면 어떠냐

이렇게 대답할 것임.. 그러면 반공주의자 왈...

너는 빨갱이에 종북 친북 좌익 주사파..

물론 순진하고 뇌없는 붕어들을 빨갱이에 종북 친북 좌익 주사파 로 몰아가는 답답한 인간들도 할말없는 구제불능이지만 현실이나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한 걱정이나 고민없이 제생각대로 판단하고 믿고싶은 대로만 믿는 철없는 몽상주의자들도 역겹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수까??


사족 : 그나저나 매일 다니던 진명행 블로그가 사라진다니 유감이군요.
Commented by ㄲㄲㄲ at 2011/09/02 23:41
진보당 사건으로 빨갱이로 몰려 사법살인 당하신

조봉암 선생 묘비 앞에 가서 물어보시길

정치적인 이유로 빨갱이로 몰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많냐

친일파로 몰려 억울하게 죽은 건전우익이 많냐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6 09:55
그런 거라면 빨갱이가 일으킨 전쟁(6.25)으로 인해서 죽은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남한 사회가 그렇게 뿌리까지 철저한 반공사회가 된 이유도 거기서 찾는 게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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