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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반일 정권
건국절 논란의 본질(이녁)에서 트랙백

"이승만, 박정희 정권이 가지고 있는 '친일' 이라는 원죄"라는 표현에서 글 쓴 이가 품고 있는 묘한 인식이 잘 드러나는 것 같아 약간 적어보기로 합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를 '친일'로 연결시키기 위한 가장 흔한 시도 중 하나가 그의 만주군 장교 경력을 거론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승만과 박정희를 한데 묶어 '친일' 딱지를 붙이는 것은 아주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들 잘 알고 있듯이 이승만은 한민족을 대표하는 가장 저명한 독립운동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개인적인 면 외에 정부의 정책 측면은 어떨까요.

한일국교정상화 협상은 1951년 10월에 시작되었지만 곧 중단됩니다. 일본의 비협조적 태도에 분노한 이승만은 1952년 1월 한반도 주변 60마일에 '평화선'(이승만 라인)을 긋고 그 안을 영해라고 독단적으로 선언합니다. 이러한 영해설정은 당시의 국제기준인 3마일을 훨씬 초과하는 것으로 국제법상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이었지요. 이 조치는 정치적으로 전쟁도발행위와 같은 것으로 간주되어 일본측을 격분하게 만듭니다. 물론 우리의 고집불통 이박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더 강수를 둡니다. 1952년 10월,한국 정부는 평화선을 침범했다는 이유를 들어 실력행사를 감행, 1천 명의 일본인 어부를 감금합니다. 이들은 1957년 12월이 되어서야 석방되므로 5년을 썩은 셈입니다.

또한 미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가 "아시아에서 반공을 위한 연합전선을 수립해야한다", 즉 한국과 일본이 제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자, "한국인들은 소련보다 일본에게 더 큰 불안감을 느낀다"라고 주장하며 그 제안을 일축한 것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 당시 한국은 사실상 미국이 먹여살리고 있는 나라였던 만큼 후원자의 요구를 이렇게 일축했다는 것은 그 반감의 강도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이승만은 한일관계 개선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그가 축출되고 나서야 한일국교정상화를 다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제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이승만 정부는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 중 최고로 그리고 일관되게 일본에 적대적인 정책을 취한 정부란 것입니다. 이후의 그 어떤 정부도 이정도로 완고한 반일정책을 취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승만 정권에게 친일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승만은 지도자의 개인적 측면에서도 확고한 반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끈 정부의 정책 측면에서도 확고한 반일이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즉 이승만 정권은 친일 논쟁에서 가장 자유로운 정권이어야 마땅한 것이죠.


물론 뭔가 불만스럽게 느끼는 분도 계실 겁니다. 제가 지금까지 다루지 않은 논점이 한 가지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이승만 정권이 과거의 친일 경력을 가진 사람들을 폭넓게 숙청하지 않았으며 종종 재기용하기도 하였다라는 쟁점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주의권의 맹주이자 전세계 무산계급의 첫번째 조국™의 지도자였던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동지께서 "변한 것은 시가"라고 명쾌하게 선언하신 바 있습니다.



- 이집트 언론인 무하마드 하이칼 모스크바에서 흐루쇼프와 면담하다, 1957년 -

흐루쇼프: 당신은 자본주의자요? 왜 시가를 피우는 거요?
하이칼: 거야 내 취향입니다.
흐루쇼프: (시가를 뺏아 잿떨이에 대고 끄며) 시가는 자본주의의 물건이오.
당신은 나세르의 친구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자일 수 없소!


- 6년 후, 다시 만난 두 사람 -

흐루쇼프: (최고급 시가 한 상자를 내밀며) 이건 내 선물이오.
하이칼: 놀랐습니다. 의장 각하. 지난번에 제 시가에 대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네까?
흐루쇼프: (미소지으며) 나는 변하지 않았소. 변한 것은 시가요.
쿠바 혁명 이후 이 시가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시가가 되었다오.


흐루쇼프 서기장에게 혁명 이후의 쿠바산 시가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시가라고 한다면, 철저한 반일노선을 걸었던 이승만 정권에 참여, 협력했던 舊친일파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더이상 친일행위를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지요. 원하든 원하지 않던 반일정권에 부역(?)한 것이니까요.

또 다른 저명한 사회주의권 지도자인 덩샤오핑 동지도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말씀을 남긴 바 있는데 이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친일파를 등용해서 썼기 때문에 이승만 정부=친일일 거라는 딱지붙이기는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그들을 썼든 안 썼든 간에 분명한 반일정부였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이승만의 반일 정부에 참여한 舊친일파가 있다면 자신의 친일 문제를 다소나마 속죄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by sonnet | 2008/08/17 00:05 | 정치 | 트랙백(6) | 핑백(7) | 덧글(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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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ellouin at 2008/08/18 02:50
글쎄요. 저는 법조인이 아니라서요.

단지 제가 아는 것은 정부는 법에 근거한 행동만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이 산을 깎으라면 국회에서 난리 피울 필요 없이 산을 깎으면 되는거거든요. 국회의 의미가 곧 법에 근거한 정부를 설명합니다.
Commented by 페이퍼 at 2008/08/18 03:02
정부가 법에 근거하여 행동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의사표현이나 생각, 사상에 대해 법에 근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보구요. 산을 깎는 것은 분명 법조문에 따라서 하겠지만 정부가 산을 깎아야 된다고 의사표현하거나 생각, 또는 주장하는 것까지 법에 근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 주장의 형태나 의사표현의 방식은 법조문에 근거하고 있겠지만요. 그렇게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그 주장을 관철시키는 법적 절차를 혼동하시면 곤란합니다.

따라서 일본에 대한 발언, 즉 의사표현이나 생각-물론 그 형식적인 것. 예를 들면 어떤 형태로 발언을 하느냐는 법조문대로 하겠지만-까지 법조문에 근거하고 있다고는 보기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 그런 법조문이 있다면 먼저 사실확인을 하여 법조문의 내용을 가져오신 다음에 주장해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정부는 이런이런 법조문에 근거하여 일본의 행위에 발언을 한다라는 법조문 말입니다.
Commented by ellouin at 2008/08/18 03:03
정부는 법상의 존재이지요.
허상의 존재를 법으로 규정해서 구성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의 "성명"이라는 것은 공식적 입장 표명인데, 그런 것이 자국 법에 없는 내용이라면 참 많은 쿠사리를 먹게 되겠지요.

좀 동떨어진 비유일수도 있겠지만, 기독교를 논하는데에 성경구절을 일일이 외워서 인용할 필요는 없겠지요?
Commented by ellouin at 2008/08/18 03:12
대략 착한어린이가 잠들어야 할시간은 아까 지났고, 착한어린이가 아니더라도 자야겠군요. 논의도 맴돌것 같구요.

Good Night
Commented by 페이퍼 at 2008/08/18 03:17
님 말대로 정부는 법상의 존재이며 허상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인간이 그것을 구성합니다.

성명이라는 것은 정부의 공식적 입장 맞습니다. 하지만 님이 말씀하셨듯이 법을 통한 허상의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의견이나 주장은 법에 근거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성명을 발표하는 행위는 법조문대로 하겠죠. 언제까지 어디서 발표해야 한다는 조항 같은 거 말입니다. 정부(물론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이 실체겠지만)가 산을 깎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에 무슨 법조항이 들어갑니까? 다만 산을 깎는 주장을 관철시키는데 있어 법적 절차가 필요한 것이죠. 이것이 바로 정부의 모든 행위는 법에 의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따라서 님 말대로 산을 깎는 것은 국회의 허락을 얻고 여러 법적 절차가 필요하지만 산을 깎아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여 그런 주장을 하는 것 자체는 법조문에 규정하여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입니다.

일본에 대한 발언 역시 같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기독교를 논하는데는 성경구절을 논할 필요가 없지만, 법을 적용할때는 일일이 법조문을 적용해야 합니다. 아니 기독교의 교리를 논할때도 일일이 성경구절을 논하지 않나요? 예를 들면 간음하지 말라는 기독교의 교리를 논하려면 성경구절에 대한 논의는 필수적이죠? 법조문에 근거하여 행동한다고 말씀하신다면 그 법조문이 뭔지 먼저 가져와야 하는 것 아닐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1:40
저도 "친일하던 인간들이 충성의 대상을 이박사로 바꿔탔을 뿐"이라는데 동의합니다. 그리고 저는 외면을 통제할 수 있는 한 내면은 (잘 알 수도 없고)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편입니다.
Commented by 스링 at 2008/08/18 00:13
이제는 이오지마도 아닌 이'수라장' 이군요. ;;; 자고로 남자란 수라의 바닥에서

어!!! 어.. 어이!!![ 어딘가의 검은 양복 입은 사람들에게 끌려가다]



수라장으로 변모한 검역소를 위해 묵념을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1:41
크 ;;;
Commented by 주코프 at 2008/08/18 01:55
진정한 친일파의 후예는 정권마다 등장하는 '낙하산'과 그 떡고물의 가루 한점이라도 먹으려 몰려드는 '일부'의 일반 국민들이 아닐까 합니다만..하다못해 '돌고도는' 평등한 군대의 사병세계에서조차 자대배치 받을 때 "빽"써서 편한 보직 받아 나갔던 무리도 광의의 '친일정신'의 후예로 볼 수 도 있구요..이제는 '인적청산'을 논하기에는 너무 시기를 벗어났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1:42
사실 연좌에 가까운 개념을 도입하지 않는 한 인적청산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당사자들이 살아있지 않을 텐데...
Commented by 야채 at 2008/08/18 02:02
제가 보기에, 이 논란의 근원은 사람들이 2중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친일파의 기준은 무엇인가?" 를 묻는다면 사람들은 일본에(혹은 구일본제국으로 한정해서) 얼마나 협력했는가 + 독립운동에 얼마나 반대되는 태도를 보였는가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즉 개개인의 태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지요. 입으로도 그렇게 말하고 머리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친일파를 하나의 '집단'으로 생각합니다. 즉 친일파인지 여부를 개개인의 '일본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그 개인이 '친일파'로 규정된 집단에 속하는가 아닌가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으로는 일본에 협력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시종일관 적대적이었던 이승만의 경우도 '친일파 집단'에 우호적이었으니 친일파로 분류해 버리는 것이지요.
"친일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물타기 정도로 생각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겁니다. 그들은 이미 '친일파'라는 분명한 '집단'이 있고, 친일에 대한 기준의 문제는 단지 그 집단의 소속원들을 적당히 빼내 주려는 술책 정도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문장은 좀 낚시스럽군요. '속죄' 여부의 판단은 '우리 민족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는가'를 기준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부의 반일적 성향의 정도가 아니고 말이지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8/18 02:11
마지막 문장의 의미는 야채님이 말씀하신 그대로로 보입니다만. "속죄할 기회"를 주었다는 말 자체가, "정부에 참여함으로서 해방된 우리 민족에게 도움이 될 기회"를 주었다는 의미니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2:09
저도 말씀하신 분석에 동의합니다. 이번 일련의 흐름을 보면서 저는 말이야 어쨌건 역시 '복수'를 원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 것 같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친일파 중에는 교육받은 자산이 많이 있고, 장기간의 총력전 체제 안에서 국내에서 일본에 협력하지 않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아주 악질 일부를 빼고는 대부분을 (이후로도 법적 추궁을 면제하는) 사면을 해 주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당시의 최선의 대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다른 논의도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을 발전시키는 형태로 이야길 하고 있지요.

이러니 "빼내주려는 술책"에 저항하는 사람들과 충돌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거지요.

그래서 반민특위 같은 경우에, 그것이 제한적인 악질분자에 대한 처벌로 끝날 수 있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동의하되, 친일파의 후손이 우리 사회 현 기득권층의 주류라고 생각하는 아주 폭넓은 정의에는 반대하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444★ at 2008/08/18 02:51
간만에 왔다가 쩔었습니다. 이것 참....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1:56
그러네요.
Commented by 광복63 at 2008/08/18 02:51
이승만정권이 언제 정권입니까 ? 일본 해방후의 첫정권입니다. 이승만의 가장 큰 죄악은
'반민특위'를 해산시키면서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주어 그들이 친미/반공주의자로 변신가능케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반민특위 해체로 살아남은 친일파들은 열혈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을 색출처단합니다. (자기들이 살기위해서) 그 결과 625가 일어났고요.
그후 이승만은 반민특위 특별법 폐기의 원죄때문에 더이상 국민정서상 더이상 친일정책을 펼래야 펴지못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걸가지고 '이승만 반일정권'이라 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Commented by Ladenijoa at 2008/08/18 04:34
어이가 없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군요.

1. 반민특위 폐기의 원죄때문에 친일정책을 펴지 못했다는 주장이 하실거면 반민특위 폐기 이전 이승만 정부가 친일정책을 폈어야 한다는 근거를 내놓으시기 바랍니다. 반민특위 폐기 이전부터 1공화국은 반일정권이었습니다. 당장 1949년부터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한 건 어디 사는 누구죠?

2. 친일파들이 반공주의자가 되어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해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뽀핫-_-;;; 한국전 발발 이유를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했군요.
Commented by 들쮜 at 2008/08/18 09:54
//친일파들은 열혈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을 색출처단합니다. (자기들이 살기위해서) 그 결과 625가 일어났고요.// -- 요건 대체 뭔소리인가효;;;
한국전 발발 이유를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했군요. 2人-_-;;;
Commented by 액시움 at 2008/08/18 10:33
한국전 발발 이유를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했다는 것에 동의하는 3人
Commented by rdta at 2008/08/18 10:39
오오 남반부의 혁명동지들이 탄압받는 것에 분노하신 수령동지께서 마침내 거국적인 결단을 내리셨으니 이로부터 곧 한국전쟁이 발발하니라!
한국전 발발 이유를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했다는 것에 동의하는 4人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전후 남로당 숙청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몹시 궁금해진다능 'ㅅ'
Commented by 미역 at 2008/08/18 03:52
흠.. 본문만 읽고 리플은 안읽었습니다만, 누가 이승만을 친일 정권이라고 하죠?
이승만이 친일정권이라..? 처음 듣는 소리인데..
이승만은 본문에 있다시피 이승만라인을 구축하고 독도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밝혔고 아마 그것을 기준으로 100년간 실효 지배를 했을경우 빼도박도
못하는 우리 영토가 되는 근거로 작용하는걸로 알고있습니다. (1952년 1월 5일<-제 기억상)
일본 위키페디아에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의 '대일관계'에 대한 내용을 보면
이승만은 역대 대통령중 가장 반일적인 인물이었다고 되어있습니다.
일본에서조차 '이사람이 제일 반일'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저사람 '친일'이라고 하는건
금시초문이네요...

반민족..에 대한 말에 대해선 할말을 잃네요.
국가의 이야기에서 민족의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우리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의 사람이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너무 좋아서
대한민국으로 국적을 바꾸고 '대한민국인'으로서 살아가지만 '한민족'이 아닌 사람들은
뭐 어쩌란것인지...
애국심은 있어도 애족심은 없어서요.. 자기 민족을 버리고 왔으니.
저또한 민족보다는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좀 거시기 하네요.
우리 민족이 아니지만, 우리와 같은 '대한민국인'인 로버트 할리의 팬으로서 ㅋㅋ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1:56
사실 한국이 민족국가(nation-state)라서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유대 민족을 위해 만들어진 나라이듯이, 대한민국은 한민족을 위한 나라로 건설된 것은 명백한 것이지요. 이것은 다른 민족의 이민을 많이 받거나 할 경우 국민이면서 민족은 아닌 것이, 영원한 왕따처럼 되면서 아주 골치아픈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숨은 폭탄 같은 문제이지요.
Commented by 무릉도원 at 2008/08/18 08:06
자기 기반이 약해서 친일파와 손을 잡았죠

반대세력을 숙청하는데 친일파가 앞장섰어요

반대파는 독립투쟁을 했던 사람들인데

이승만이 친일파라 불린다고 억울할까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8/18 10:03
영국은 힘이 부족해서 소련과 손을 잡았죠.

나치 독일과 싸우는데 소련군이 앞장섰어요.

나치들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는데

처칠이 공산주의자라 불린다고 억울할까요?
Commented by ... at 2008/08/18 10:56
슈타인호프//처칠을 공산주의자라 할 수는 없지만, 영국과 소련은 당시의 진보 진영(적어도 이성에 의한 진보를 인정하는)에 속하는 공통점이 있지요.
Commented by 바닷돌 at 2008/08/18 11:13
...//처칠이 진보주의자에 속한다니요...; 오히려 보수적인 제국주의자에 가까웠죠.

무너져가는 대영제국을 어떻게든 유지해 보려고 발버둥쳤거든요. 식민지도 어떻게든 놓아주지 않으려 했죠. 물론 2차대전에서 다 털리고 폭삭 주저앉았지만.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8/18 11:28
한 사람이 무조건 친일과 반일 둘 중 하나로 나뉜다고 보는 흑백논리에 대한 풍자로 단어만 바꾼 겁니다만-_-;;

반일주의자라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친일세력과 손을 잡을 수 있는 거고, 이미 수없이 거론되었듯 이승만만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친일세력을 정치적으로 기용했다고 해서 반일인사가 절로 친일인사로 바뀐다는 논리는 웃기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국제여단 at 2008/09/15 22:32
슈타인호프 / 님의 비유는 명가 공손률의 궤변처럼 들리는군요.
처칠의 영국은 공산주의자에게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죠. 왜냐하면 영국과 소련은 별개의 나라이었기 때문입니다.
빨갱이가 아닌데도 헌병보조원 출신 경찰에게 개인적 원한을 사서 어느 야산 골짜기에서 총살당하거나 바다 한복판에서 산채로 수장되어 일본 큐수 해변에 퉁퉁 부은 사체로 발견되는 일이 흔한 한국의 해방공간에서는 님의 비유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신생 대한민국의 주류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사법 공권력을 행사하는 친일파로부터 처참한 국가폭력을 당한 한국인들에게 있어 그런 친일 세력의 발호를 자신의 정치적 이익때문에 옹호하고 방조한 전직 독립투사 이승만은 같은 친일파로 비쳐질 수 밖에 없는거죠.

흑백논리를 경계한다고 해서 시시비비를 흐리는 쓸데없는 궤변론에 빠져서는 곤란합니다.
정명(正名)은 분명히 해야죠.
Commented by 바닷돌 at 2008/08/18 10:23
'속죄'라는 단어 하나만 없었어도 리플 수가 반으로 줄었을 듯 하네요 ..





sonnet님은 '속죄'를 어쨌든 대한민국 건립에 구 친일파 세력(그들을 '세력'이라 부를수 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이 일조를 했고, 또 국가 안정화에도 일조를 했으니 그 일조한 부분을 '속죄'라 부를수 있지 않느냐는 말 그대로의 현실적인 입장이고,

다른분들은 '속죄'를 마음 속에서 죄를 뉘우치고 과거의 행적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식의 용법으로 쓰시는 걸로 보이네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약간 감정적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속죄'의 용법이 후자라는 겁니다. '속죄'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에 감정적인 부분이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공개되어 있는 글에 지나치게 학술적/현실적 용법으로 '속죄'라는 단어를 썼으니, 굳이 주석을 달아서 설명을 해 주지 않는 한 오해가 생기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여기는 학술 토론장이 아니라 블로그니까요.


sonnet님은 토론을 할 때에는 먼저 용어의 정의부터 통일시키고 해야 한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다수의'사람들과는 다른 용어선택을 하신 덕분에 이렇게 된 것 같네요. 물론 글 자체는 평소의 sonnet님 다운 글이었지만 말입니다.
Commented by rdta at 2008/08/18 10:42
속죄랑, 친일파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친일정권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식으로 글을 쓰셨다면 검역소가 평온했으리라 여겨집니다. -_;;;
Commented by 바닷돌 at 2008/08/18 10:52
그러고보니 면갤에는 누가 검역소 게이트를 열었던데요. 그리로 면갤러들이 들어온듯. 'ㅅ'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1:52
동감입니다. 사실 일을 간단하게 하기 위해 그 마지막 줄 한 줄은 그냥 취소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제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그리 핵심적인 문장도 아니구요.
Commented by wizmusa at 2008/08/18 11:07
이승만 전대통령에게 독립운동에 대한 보상을 기대했다면 지나친 걸까요? 흑묘백묘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지나치게 한 쪽 색깔의 고양이만 쓰게 된 셈인데 그냥 이 전대통령의 능력 부족으로 인식하면 되는 걸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1:53
그건 분야마다 많이 다른데, 교육계처럼 전후 미국유학파가 일본유학파를 제압하고 신주류로 떠오른 분야도 있습니다.
Commented by wizmusa at 2008/08/19 09:18
사학 쪽에는 친일파가 많았던 걸로 압니다만. 물려 받은 후손들의 성향도 그렇고요.
Commented by wizmusa at 2008/08/18 11:13
참, 경찰까지 친일파를 대거 기용한 것도 불가피한 일이었을까요? 고위직에 얼마나 친일파를 기용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반민특위 건을 생각해도 좀 지나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반민특위가 절대선이었다고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Commented by 바닷돌 at 2008/08/18 11:28
다른건 몰라도 경찰은 어쩔 수 없지 않았나 싶네요. 이승만 자신이 투철한 반공주의자이기도 했지만, 신생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지하에서 체제 전복을 시도하는 공산주의자는 엄청난 위협이었거든요.(물론 엄한 사람을 빨갱이로 몬 사례도 엄청나게 많지만) 게다가 갓 독립한 상황에서 사회 전체가 혼란에 휩싸여 치안도 좋지 않았다는것도 문제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신생 대한민국의 안정을 신참 경찰들에게 맡긴다는건... 정말 많이 불안했겠죠.

(생각해보니 '친일파'와 이승만은 '반공'이라는 면에서도 통하는 점이 있군요. '';)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8/18 11:30
일본 경찰 경력자를 모조리 해임한다면 경찰 조직 자체가 생 초보자들만으로 성립되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미국에서 고문을 왕창 데려다가 하나하나 자문을 받아가면서 새로 바닥부터 만들던가요.
Commented by wizmusa at 2008/08/18 11:47
제가 염두에 두는 쪽은 고위직이긴 한데요. 조선인 출신 고위직 경찰이 많지는 않았겠지요? 그리고 북한이 친일파 척결에 모범적인 사례로 꼽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들었습니다만 당시 북한은 경찰력(?)을 어떻게 확보했을까요? 또 하나 이 전대통령에게 아쉬운 건 경찰 내에 친일 출신들을 견제할 세력을 두지 않았다는 건데요. 정말 불가능했을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1:48
해방 후 정국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인물의 우익 대 조직의 좌익"입니다.
대중적으로 제일 저명한 좌익 지도자는 여운형인데, 여운형도 이승만, 김구가 환국하자 지명도나 경력 면에서 상대가 안됩니다. 대신 우익의 거물들은 해외파가 많고 국내 조직이 빈약하다는 약점을 드러내지요.
따라서 남로당과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된 시점에서 대공수사를 많이 해 본 경험있는 경찰 없이 우익 출신 지도자들이 정권을 유지하기는 무척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여순반란사건에서 보듯이 군에는 남로당 계열의 침투가 상당히 많이 이루어진 상태였구요.
Commented by Ha-1 at 2008/08/18 11:13
sonnet 님은 '일본'을 말하고 있고 여론(?)은 '배신자'를 말하고 있으니 시끄러운듯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1:49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배신자는 다 죽었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18 12:28
이승만은 역대 가장 반일 노선을 취했습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다만 일제시대 독립운동하던 사람들이 이승만 휘하에서 일제시대 고문했던 사람과 똑같은 취조를 받게 되었던 사례 - 정정화, 김원봉의 케이스 - 가 존재했던 것을 어떤 식으로 좋게 봐야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뭐 소넷님은 김원봉을 고문한 노덕술이 '속죄'를 위해 조국 건설의 과업에 참여했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요.

소넷님이 엄청난 본좌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생전 듣도보도 못한 자료를 어디서 많이 줏어오시는 지 늘 감탄했는 데, '정권의 기조가 반일이다 -> 따라서 그 휘하에 친일 부역자들을 기반으로 정권을 다져도 역시 반일이다 -> 오히려 친일 부역자들은 반일정권에 참여했으니 반성하고 했을 것이다.' 이런 순진하기까지 한 삼단논법은 정말 놀랍기만 하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2:33
세 번째 문장의 "반성했을 것이다"는 제가 주장하는 바가 아닙니다. 저는 노덕술이 반성을 했건 안했건 대한민국 정부에 유용했으면 그 점(에 한해서는)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마지막 문장은 상당히 약한 표현(차라리 ~ 기회를 가졌다고)이라는 점을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18 12:36
소넷님의 생각은 친일부역자들도 어쨌든 해방 이후의 정국에 '잘 써먹었으니' 유용했다 이런 마인드 같습니다. 소넷님다운 '청결한' 마인드네요.

하지만 일제 하에 독립운동한다고 뭐도 모르게 뛰어다니느니 일제의 커리큘럼 대로 머리에 꾸역꾸역 지식을 집어 넣은 상태로 있는 것이 더 소넷님이나 이승만이나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에 더 필요한 상태였는 지는, 솔직히 감정적으로 수긍이 안되네요.

그리고 이승만의 반일기조는, 노덕술같은 자의 '보복' - 저걸 보복이라고 아니 부를 수 있나요? - 을 피할 수 없었다면 그 의미가 도대체 얼마나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솔직히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2:51
바로 "잘 써먹었다면 유용했다고 해야 한다." 이런 마인드 입니다. 위에 그 이야길 대여섯 번은 한 것같군요.

이미 이 시기가 되면 민족지도자들(대부분은 과거의 독립운동가)끼리 서로 편먹고 쳐죽이는 사태가 빈발합니다. 독립운동가들끼리 모두 다같이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손잡고 한마음 한 뜻으로 뭉치는 환상의 시대가 아니란 겁니다.
(사실 독립운동 한참 할 때도 독립운동가들은 다들 고집이 쎄서 잘 뭉치지 않았거니와, 해방 후엔 권력 문제가 여기 더해져서 훨씬 심해집니다.)

이승만을 따르는 독립운동가도 없는 게 아니었구요. 총리겸 국방장관이였던 이범석을 보지요. 청산리전투 주요지휘관에 광복군 참모장이면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18 12:57
누가 독립운동가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대동단결했다고 하나요?

그리고 "잘써먹으니 되는 거 아니냐"는 님의 말은 님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이 포스팅의 핵심이지요. 저는 좀 다른 생각인거고요. 이거는 가치관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반일정권 이승만이 눈물을 머금고 친일 부역자를 등용했는가? 아니면 임시정부 시절부터 분란의 주 원인이기도 했던 그의 심대한 권력욕이 곧 취약한 국내기반을 다지기 위해 머리 좀 들은 애들을 이용한 건가? 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거죠.


그리고 이범석 이야기 하셨는데, 그래 한두명 머리수 올려놨다고 그 정권이 민족정권 되나요? 이범석의 라인이 어떻게 숙청되었죠? 뭐 그것도 의미있다고 보시면 북조선도 조만식 선생과 함께 좌우 협력 정부였나보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3:00
그건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반발해서 쟁점이 된 것 뿐이지, 이 글의 핵심은 아닙니다. 저는 이 토론을 간단히 마무리짓기 위해 사실 그 줄을 취소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중입니다.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18 13:02
님의 핵심은 '잘 써먹으니 되는 거 아니냐?' 이거 아닌가요? 제가 무슨 '속죄' 논리에만 달라붙어서 글을 올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친일부역의 등용이 해방 정국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컸나, 이박사의 권력욕이 컸나 이거에 대해서는 좀 더 토론이 필요하다고 보는 데요. 그리고 이범석의 사례를 들어서 이승만 정권에서 독립 진영이 구색맞췄다고 주장하시지만, 저는 그 숙청 사례에 대해서 소넷님이 모르시거나, 아니면 상관없다고 보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3:04
쓰고 버린 케이스죠 뭐.
이범석은 이승만에게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내밀 만한 인물이라는 평을 들었고, 짤린 후에도 이박사가 다시 불러주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고 하는데, 이박사는 그래도 족청 같은 게 있는 부하는 위험하다고 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3:07
저의 핵심은 이승만이라는 개인이나 이승만이 운영한 정부가 舊친일파청산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해서 친일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점은 사실 분명한 것이어서 제대로 반론이 들어오지도 않았지요.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18 13:09
즉, 친일 정권은 아니었다. 예 맞습니다. 역대 가장 반일 노선을 취했지요.


근데 그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거죠?


제가 뭘 묻고 있는 건지는 소넷님은 아실겁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3:14
그게 저한테는 유의미한 것이거든요? 제 말 뜻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18 13:17
소넷님의 의미를 저의 곡해에 의하면 이렇군요.

일단 대외적으로 반일 성향을 보이면, 그 정부는 반일정부가 된다.


그 유의미라는 것은 흑묘백묘론을 드셨으니 하는 말이지만, 일단 사람이 쓸 수만 있으면 껌씹듯이 단물 빨아먹고 버리듯이 해도 상관은 없다 이거군요.

그리고 그의 권력욕에서 기인했다 하더라도, 내부적으로 친일부역자를 얼마든지 활용했다 하더라도, 일단 그 정부가 일본한테 싫은 소리 좀 해주면 그 정부는 반일 정부라는 거군요.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18 13:18
그냥 '친일파를 등용했다고 해도 일본한테 싫은 소리 좀 해주면 친일정부 딱지는 붙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이 수백플 대전을 하신건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3:24
저는 기본적으로 이승만과 그의 정부에 '친일' 딱지붙이기가 상당히 진행되어서, 그가 당대에 갖고 있던 독립운동가로서의 명망이나, 그의 당대 정책이 "묻혀버렸다"고 보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감정"을 이야기하시는데, 그런 감정에 따르게 되면 어떤 인물이나 시대는 "좋은 놈", 아니면 "나쁜 것" 같은 식으로 단색으로 칠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 때문에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하기 위한 작은 한 축을 제시한 것에 불과합니다.
Commented by .... at 2008/08/18 13:38
합성의 오류네요.
친일파를 등용한 것과 친일정부인 것은 별개죠.

그럼 독립투사들을 대대적으로 등용했는데 정책은 친일이었어도
반일정부가 되는 건가요?

갤라예프님은 친일에 대한 감정적인 신화에 사로잡히신 것으로 보입니다.

Commented by wizmusa at 2008/08/18 14:44
상식적으로 친일파 청산을 그때 안 하면 언제 할 수 있었을까요? 건전하다 할 만한 우익끼리도 단합이 안 된 것 같은데... 아무래도 개인적인 욕심때문에 친일파 청산이 우선순위 저 아래로 간 것 같다는 의구심이 지워지지 않네요. 이 전대통령부터 이 대통령까지 민족 자체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일종의 세계시민들이 대통령직을 수행해 온 건 아닐까 싶어요. (대충 농담.)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18 16:09
누가 합성의 오류를 말하시면서 '친일파 채용과 친일 정부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하셨는 데,


어떤 정부를 평가하면서 그 정부의 기조 만큼이나 중시되는 것이 인적 성분이거든요.


왜 '강부자'니 '고소영'이니 하는 말이 그렇게 올초를 뜨겁게 달궜을까요?


이승만이 반일기조가 가장 뚜렷한 정부였다고 해도, 속으로는 친일 부역자들과 함께 손발을 맞췄다는 것을 결코 스리슬쩍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거기에 이승만을 변호하면서 나오는 대일 강경 외교가 친일 부역자들에게 속죄의 기회가 됬는 지 어땠는 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참여도 정도는 자료를 올리는 성의가 필요하겠죠.
Commented by ... at 2008/08/18 16:15
인적 성분이라 글쎄올시다.

이명박 정권과 이승만 정권은 차이가 있을텐데요.

이명박 정권은 국가가 세워진 뒤 어느정도 인적 인프라가 구비되어서
정부에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자들의 인적구성이 다양하므로
선택의 여지가 있었죠.
그러나 이승만 정권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넓었던지요?
이명박 정권은 그런 선택의 여지가 넓은데도 엽관인사기조로 나갔기 때문에 욕먹는
겁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안정된 국가를 물려받은 이명박 정권과는
다르죠.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라를 세웠으니까요.

그리고 친일부역자들과 어떤 손발을 함께 맞추었는지 그 예나
좀 들어주셨으면 좋겠네요.

정말 친일부역자들이 친일을 하려고 했다면 반일정책을 취하는 정부를
전복시키거나 일본에게 유리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해야하는데 그런
객관적 근거를 들어주시든지 해야죠.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18 16:17
일제하 친일 부역자들이 '반드시' 친일에 대한 신념을 갖고 움직였다고 착각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그들은 해방 이후에는 누구보다도 미군정의 정책에 협조를 하였죠. 왜냐면 그들이 당대의 실권자거든요.

흔히 말하는 '부역'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잘 생각해보시면, 왜 그들이 친일을 노골적으로 안했다고 옹호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18 16:19
그리고 이승만이 '어쩔 수 없이' 친일 인사들을 등용했느냐, 아니면 자기의 취약한 기반을 다지기 위해 그들을 이용했느냐에 대해서는, 소넷님의 경우에도 이승만의 권력욕에 더 빙점을 두는 것 같으니 참고하시고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8/18 12:37
그놈의 '속죄할 기회'를 '속죄' 자체로 받아들이는 난독커들 때문에 꼬이는군요. 로또를 산 사람이 전부 당첨되는 게 아닌데. 속죄할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도 당사자가 그 기회를 잡느냐 마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18 12:41
애초에 이승만이 '조국 건설을 위해 너희들의 부역의 죄를 씻어라' 하고 묻고 친일부역자들이 '네' 하고 들어가기라도 했나요?

그냥 현존 권력의 정부에 들어가서 한자리 해먹은 것을 '우왕 속죄할 기회를 잘 살려보자'고 했으리라고 보는 것은 정말 순진하다고 밖에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8/18 13:29
이승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상황과 환경은 그것을 살릴 만한 기회였음이 맞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전원 삽질로 끝난 거지만.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18 12:40
차라리 이승만은 과거 임시정부 시절부터 번번히 드러났던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약한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친일 부역자들을 기용한 것이 아니라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해방 이후의 무지몽매한 남한 사회에서 그나마 기틀을 세우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친일부역자들과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훨씬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었을 겁니다.


뭐 저는 이것도 사실 미심쩍지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2:54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수긍하기 쉽게 하기 위해 스스로는 믿지도 않는 미담을 만들어 블로그에 올려야만 하겠습니까?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18 12:58
후자의 생각이 '스스로도 믿지 않는 미담'이라면, 님의 생각은 전자에 해당된다고 봐도 되나요?


뭐 이건 저의 어거지일지 모르지만, 이박사가 무슨 사명감을 갖고 친일부역자를 해방정국에 기용했다는 것으로 생각치 않으시는 거 같아서 말이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3:02
그럴 것 같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입증할 방법이 없으니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다만 이박사가 권력욕이 강하고 권력투쟁에 일가견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줄 정도의 증거는 많이 있긴 하지요.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18 13:03
그럼 소넷님도 인정하듯이 이박사의 권력욕이 심대했다면, 설령 그 정권이 반일정부라는 것이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부역자 처벌 미흡에 대한 유감'에 큰 의미가 있는 지 의문이군요.

애초에 소넷님 정도의 내공이면 이 정도 수백플이 논쟁이 생기지 않도록 깔끔하게 포스팅할 수 있었겠지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13:08
그렇게 말씀하시면 글을 깔끔하게 쓰지 못한 저의 잘못이 맞습니다.
Commented by 정통고품격찌질찌질 at 2008/08/18 14:54
본진방어는 걱정치 않으나 소넷님의 주화입마가 쪼끔 우려되는군요. 이지메란 당하는 쪽에선 무서운 것이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8 23:32
네. 저도 뻘짓 않게 조심해야지요. 충고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rainkeeper at 2008/08/18 15:13
역사는 잘 모르지만, 남에게 함부로 딱지 붙이지 맙시다.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저도 종종하는 실수라서 하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의 주장이 좌/우/친일/반일파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부분을 정확히 지적하고 증거를 들어 논증하면 그만이지, 왜 그 사람이 좌/우/친일/반일파니까 그의 주장도 좌/우/친일/반일파적일 것이라는 희한한 맥락의존적 증명이 필요합니까.

그 인신공격성을 따지기 이전에, 그 증명방식이 정당한가, 유효한가 따지기 이전에(어떤 경향성은 있을 겁니다.), 그건 꽤 비효율적인 일이잖아요. 그 사안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증명보다 훨씬 더 큰 증명을 필요로 하는데. 혹시 주장자에게 좌/우/친일/반일파라는 낙인을 일단 찍어 놓으면, 다음 번엔 그 낙인에 대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비판을 그냥 가져오면 되니까, 일종의 장기투자 차원에서?
Commented by 서산돼지 at 2008/08/18 15:49
sonnet님께서 욕많이 보고 계시는군요. 몇년전에 김용식장관의 자서전을 읽은 일이 있는데 여기에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것과 조금 다른 이야기들이 써있었읍니다.


1. 이승만대통령은 일본에 대해서 배상을 요구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고 한다. 청구권은 전적으로 재정(일본정부가 총독부에게 빌려간 돈 반환)과 민사분야로 한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1공화국시절 대일청구권 규모에 대해서 정부에서 계산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57년 이승만대통령이 군산을 방문하였을때 불과 4년 동안 일제하에 있었던 필리핀이 8억불을 요구하는데 40년(아마도 을사조약이후부터 친듯) 강점하에 있었던 우리는 그 10배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2. 이승만대통령이 친일파를 많이 등용했고, 친일파라는 비난이 있다. 그런데 대통령선거전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유석 조병옥선생이 이승만의 개인적인 반일감정 때문에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이 안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고 한다. 유석은 선거전 도중 돌아가셨지만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장면도 같은 주장을 하였기에 장면이 부통령에 당선되자 일본은 한국의 협상자세가 달라질 것이라고 신문에서 대서특필하는등 많은 기대를 가졌다고 한다.

3. 당시 한국의 협상자세와 지금 북한의 협상자세를 비교해보니 정말로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협상 도중에 평화선 선포, 일본어선은 물론 심지어 순시선도 나포했고, 잡아온 일본인은 징역을 살렸는데 출소후에도 일본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돌려줄때도 합의문서에 "평화선을 침범하여"......"형기를 마치고"라는 문구를 넣기 위해서(간접적으로라도 일본이 평화선을 인정하게 하려고) 몇달간 싸웠다. 수상이나 외상과 사전합의하고 관료들이 말을 안들으면 호통치고, 협상결렬도 마다하지 않고... 타협은 절대 없고 우리의 요구는 다 들어 주여야 하고 일본주장은 절대로 안받아 들이고... 이런 과정을 십여년하면서 1공화국 안에서 사전에 합의가 있은 기반이 있은 후에 3공화국에서 타결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4. 우리나라의 평화선(일본은 이승만라인이라 불렀다)선언은 당시 국제법의 한계를 넘은 것이었다. 당시는 영해 3해리가 국제적으로 공인되어 있었고 12해리를 주장한 나라도 드믈었다. 우리가 평화선을 선포하자 일본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비난의 소리가 높았고, 미국과 영국은 공식으로 항의하기 까지 하였다. 그런데 이런 평화선을 선포하는데 당시 외교부에는 국제법을 공부한 사람도 드믈었고, 더구나 해양문제를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당시 총인원이 30여명밖에 안되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 발효되어 맥아더라인이 철폐되면 일본의 어선이 물밀듯이 들어올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평화선을 선포하자는 아이디어는 국제법을 검토하기 위해 대학에 다니는 사람한테 받은 국제법에 대한 자료에 중남미 일부국가가 경제수역을 선포하였다는 한 적이 있다는 글을 보고서였다고 한다.

5. 한일간의 협상과정에서 미국이 중재를 하였는데 당시 러스크(협상초기에는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 케네디시절에는 국무장관)를 비롯하여 대다수 관리들이 친일파여서 일본편을 드는 바람에 곤란한 적이 엄청 많았다고 한다. 우리 협상대표가 일본측 협상대표를 자극해서 망언과 반미발언을 유도한 뒤, 이를 문제삼아서 협상을 결렬시키거나 지연시켜서 미국이 개입할 여지를 주지않는 작전을 여러번 썼다고 한다.


나라가 좀 작고 약해서 저 정도 였지, 만약 이승만대통령이 좀 더 센 나라-당시에 중공같은-의 권좌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제3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두고두고 칭송하는 대인배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았겠군 하면서 속으로 웃습니다.

한마디 만 덧붙이면 이승만대통령이 독도에 병력을 보내서 차지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냉전이 치열한 와중에 일본 해자대가 블라디보스톡 함대를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독도에 눌러앉아 관측소/레이더 기지 같은 것을 설치했다면, 내각총사퇴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겠지요.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08/08/18 20:33
그런 일들도 있었군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9 17:16
와우, 이정도 장문이면 따로 포스팅 해 주셨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주코프 at 2008/08/18 17:45
서산돼지님//그러게나 말입니다..대외적 정책에서만 보았을 때, 이승만 정권이 없었다면, 독도는 말할 것도 없고 '울릉도의 분할선' 설정 문제로 일본과 대치, 아니 합의하고 있을 것이 거의 불보듯 한데..

늘 유리한 현재의 '이론'으로서 불리한 과거의 '현실'을 인민재판, 부관참시하는 아큐식
'정신승리' 의 청산이야말로 중요하며 또한 요원한 일이라 사료됩니다..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8/18 18:02
이승만이 독도를 수호했다는 것이 모든 것을 매끄럽게 한다고는 보기 어렵지 않나요?

인민재판이니 아큐식 부관참시가 무엇을 지칭하는 지 모르지만, 독도 수호만으로 그의 정부 성향이나 인적 성분에 대한 결론을 낸다면은 상당히 핀트가 어긋난다고 봐지네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8/18 18:24
독도 수호 하나만이 아니지요. 이제까지 이곳의 덧글만으로도 밝혀진 이승만의 반일적 행동이 수북하게 쌓였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 at 2008/08/18 18:46
인적성분만 가지고 '친일'일 것이다라고 억지를 피우는 게 더 문제라봅니다만.

Commented by gibril at 2008/08/18 20:37
친일파의 줏대에 대한 언급을 보고 생각난겁니다만, 묘하게도 당시 조선에서 대일본제국과 천황에 대한 충절과 지조를 지킨 사람에 대한 얘기를 들을수가 없군요.

일제시대 36년은 한 세대가 통째로 교체될 수 있는 시간이고, 또 당시 이른바 친일파중에는 유학자들도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불사이군 하겠다는 사람도 있었을법 한데 말입니다. 의병까지는 무리라고 치더라도.

실은 해방후 배갈라 충성을 표한 열사들은 많이 있었는데, 후손들이 쉬쉬하고 덮어서 알려지지 않은것 뿐일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9 16:21
모르겠습니다. ;;;
Commented by gibril at 2008/08/18 20:38
친일 청산에 대해서는 이런걸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2차례에 걸친 군부의 쿠데타와 성공적인 정권 탈취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과연 일본에 의한 국권 탈취와 비교해서 경중이 어떻게 될지는 일단 별도로 치고, 어쨌든 이것이 현대의 관점으로 볼때 용납할 수 없는 폭거였던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당시 군부 독재에 봉사한 ‘반민주 부역자’를 청산(숙청)하겠다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일단 노태우는 뺀다고 치고, 박정희-전두환을 합산하면 기간으로 25년입니다. 일제 시대의 3분의 2밖에 안되죠. 현재 이야기되는 친일 청산과 비슷한 기준을 세워서 이 기간동안의 반민주 부역자를 색출해서 청산한다고 하면 과연 그 난이도가 어느정도일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듯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9 16:20
늘 그렇지만 통찰력있는 지적이십니다. ;-)
사실 그건 우리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최소한으로 끝난 셈이네요. 87년이 타협에 의한 민주화이고, 그 후 노태우 정권이 일종의 완충작용을 해서 더 그렇게 된게 아닌가 합니다.
Commented by umberto at 2008/08/19 02:47
저는 노덕술이 반성을 했건 안했건 대한민국 정부에 유용했으면 그 점(에 한해서는)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라고 하셨는데 약간의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에 유용했다기 보다 이승만 개인 혹은 이승만 정권에 유용했다고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만. 그나저나 저처럼 약간의 이의(^^)를 제기하려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이니 정말 엄청나군요.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9 16:03
그 점은 다음 글의 끝에서 두 번째 문단이 답변이 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umberto at 2008/08/19 03:40
논지에 전반적으로는 동의합니다. 요즘의 친일파 구분을 보면 오히려 '반민특위'시절 보다 더 포괄적으로 된 것 같아 좀 걱정이 든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몇가지 덧붙일 말과 반론을 약간 달자면, 경찰 문제에 있어서 그래도 역시 친일경찰들은 정리 했어야 옳았다고 봅니다. 물론 친일경찰의 분류기준에는 업무나 계급이 고려되야 하겠지요. 최소한 노덕술 같은 인물들이라도 정리해야 김원봉이나 홍명희가 월북하는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대략 친일파를 상, 중, 하로 나눠서 상은 중형을 선고하고 중은 공직기용 금지, 재산몰수 하는 공개적인 사과와 반성 정도가 적당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촌 김성수는 좀 아깝다고 생각하는데 동아일보 집안에서 "우리 할아버지 절대 친일 아니다."라는 반응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협조였다고 해도 정색하고 부정할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이해를 바란다. 물론 그래도 잘못은 잘못이다.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제가 대신 사과한다." 정도의 정치적 센스는 발휘할 필요가 있었는데 말이죠. 직접적인 형벌이나 재산몰수는 아닌 비교적 가벼운 친일이라도 공개적인 반성이 이뤄지는 것과 안이뤄지는 것은 큰 차이죠.

그런데 이 친일논쟁 못지않게 골치아프고 비슷한 문제가 하나 더 기다리고 있습니다. 통일 이후에 벌어질 북한 권력층, 관료조직의 처리 문제 입니다. 통일을 하면 북한 관료집단을 인수해야 하는데 과연 어떻게 해야 될까요? 탈북자들을 감금하고 고문하고 총을 쏜 사람들, 북한 경제난의 책임자들 기타. 아주 생각만 해도 골이 지끈지끈 합니다. 그 엄청난 공범들을 어디까지 처벌할 것이며, 어디까지 용서할지. 보나마나 반성조차 거부하고 정당화하려는 자들과 감추려는 자들. 뭐 이미 5공청문회에서 비슷한 꼴을 보긴 했습니다만.

처벌하고 나서도 문제죠. 형벌대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해 탈북자들이 사적인 복수를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또 상당수의 북한 관료층을 그대로 써야 할텐데 그들을 과연 믿을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오늘의 북한소식>을 보고 있으면 북한 관료들이나 경찰들의 수준이란게 어디 아프리카 무법천지 수준이니..... 상대적으로 군대는 정리하기 쉽겠지만 사실상의 도둑질에 아무 죄책감이 없는 관료들이나 고문, 인권유린에 아무 생각이 없는 경찰조직을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의 일반적인 관료조직으로 길들이려면;;;;;;;;

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9 16:09
노덕술 정리 안해도 결국 김일성이 쳐들어오고 나면 홍명희가 남아있을래야 남아있을 수 있겠습니까 (쓴웃음) 결국 6.25로 인해서 그 전 시대의 논란이 어느 정도 정리된 면은 있습니다. 그게 찍어서 맞춘 운빨이라 하더라도요.
제국주의가 곧 쳐들어온다고 협박하며 만든 스탈린의 중공업화도 그렇게 욕먹을 소지가 많지만, 히틀러가 쳐들어와서 졸지에 위대한 예언이 되어버린 것처럼요. ;;;;

통일 이후 북한 문제는 위 댓글 중에도 있고, 예전에 잠깐 토론한 적도 있지만, 최상층 약간만 정리하고 나머지는 그냥 덮는게 상수라고 봅니다. 너무 많고 너무 길어요. 게다가 그걸 덮어준다는 일괄사면 선언을 안하면 신분이 불안해서 계속 딴 생각을 품게 될겁니다.
Commented by 炎帝 at 2008/08/19 11:30
-친일했던 사람은 기용했지만, 친일정권은 아니라구요.(.....)


이승만이 친일정권이라는 말을 하는 분들중엔
이승만의 과거 행적을 근거로 삼는 분도 있더군요.

일제에 넘어가기 직전이었던가,
어느 친일 미국인이 일본에 조선이 넘어가는건 당연하다 말하다가
젊은이 둘에게 총맞아 죽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 변호사로 있던 이승만이 변호를 거부한 적이 있다 합니다.

어떤 분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승만은 다른 나라 이용해 먹기는 기막히게 잘한 편이라 하더군요.
미군의 개입 정도를 늘리려고 미국인 대표가 오는 공항에 어린이들을 깔아놓고 눈물바다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들은 기억이 있고...;;

다만 그외의 것에 욕심을 너무 많이 부리는 탓에 더 욕을 먹은 것도 있고요...

이승만은 외교부 장관 정도가 딱 적당했다는 주장도 듣곤 합니다.
이승만 말고 대통령 할 사람이 있었냐는 질문엔 딱히 답변을 못하겠지만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8/19 12:45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스티븐슨 저격 사건이군요. 각자 따로 따로 기획한 게 운명적으로 마주친 기묘한 케이스였죠. 죽은 놈은 그런 거 따질 겨를이 없었을테지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9 16:12
더이상 친일한 적이 없으니 친일정권은 아니죠.

이승만에 대한 인물평은 커밍스가 요약한 것(http://sonnet.egloos.com/3839978)이 볼만합니다. 상당히 터프한 인물이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8/19 16:48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재판 당시 교포들이 부탁한 것은 통역이었습니다. 이승만은 변호사 자격도 없는 사람이었는걸요.

이승만이 통역을 거절한 이유는 첫째, 학업 진도상의 문제였고 둘째, 기독교인으로서 살인자의 재판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Commented by Ya펭귄 at 2008/08/19 19:59
공산당이었던 넘들이 연이어 대통령이었지만 공산정권은 아니지요... by 대인배국.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8/19 20:06
'당'으로 따지자면 한국 역대 대통령중에 '일진회' 출신은 한 명도 없습니다...
Commented by 섭동 at 2010/01/02 06:56
혹시 이명박이 갑자기 정신이 나가서 김대중,노무현 시절 인사를 등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능력을 이유로요. 아마 보수(?)파들이 빨갱이 등용했다고 난리칠 겁니다. 그런데 이 보수(?)파들은 능력을 이유로 친일파를 썩먹은 이승만은 열심히 감싸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02 11:40
그 인사가 어떤 성격의 인사인가요. 관료? 측근? 관료는 어청수 경찰청장이나 유명환 외무장관이 노무현 정부에서 넘어온 인사니까 그 정도는 쓰는 것 같고. 측근은 실제 사례가 없긴 하지만, 전 대통령들의 비리혐의 같은 것을 쥐고 전향하면 보수파들이 광명을 찾아왔다고 좋아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섭동 at 2010/01/05 04:50
하지만, 다음에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고 이명박 측근이 비리정보 쥐고 돌아서면 빨갱이 배신자입니다.
Commented by 섭동 at 2010/01/06 17:14
측근은 실제 사례가 없긴 하지만, 전 대통령들의 비리혐의 같은 것을 쥐고 전향하면 보수파들이 광명을 찾아왔다고 좋아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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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럴 겁니다.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범죄 터뜨리니 좌빨에 배신자에 죽일놈에 역시 전라도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역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입니다.
Commented by ㅡㅡ at 2012/05/06 12:14
그냥 일한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탄압에 압장선 문제있는 인물은 처리했어야겟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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