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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주도정책으로의 전환
이승만 정부 시절 환율수준과 원조 규모에 대한 갈등(Crete) 에서 트랙백


1. 들어가면서

이런 견해가 나오는 것은 앞서 제시한 50년대의 상황들과 또한 당시 정부가 추진했던 ‘자립경제’ 원칙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오는 표현입니다. 당시 우리 정부의 입장은

국내소비를 기본적으로 국내생산으로 충족
아직 부족한 초과수요는 물자의 해외 수입으로 해결
수입 대금은 수출의 확대를 통해 자력 조달

으로 대표되는 ‘자립경제’ 건설이 목표였는데, 이 당시는 전쟁으로 국내 산업 시설 대부분이 파괴되는 절대 생산 부족의 상황이었죠. 따라서 뭔가를 생산해서 수출하는 것이 우선이기 보다는 국내 소비를 충족시킬 국내 생산 시설 확충이 급선무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출의 필요성은 국내 부족 물자의 수입 대금 마련 창구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이었죠. (Crete)

빙고! 이런 결론을 토론 상대방으로부터 이끌어내기 위해서 지금까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모릅니다. 앞으로는 토론이 한결 쉬워질 것 같군요. 저기다 한 줄만 덧붙이면 완벽할 것 같습니다.

원조를 많이 받아 ‘자립경제’ 건설이 목표



2. 전환의 중요성

제가 이 토론의 서두에서 "남한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은 무상원조를 받아서라기 보다도 무상원조를 끊어나간 데 요점이 있다"(sonnet)란 주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무상원조가 줄어듦과 동시에 "원조경제에서 수출경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이지요.

한국의 경제성장은 주로 성공적인 수출주도형 산업화 전략의 결과물이라는데 폭넓은 합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승만 정권기의 원조의존적 수입대체 산업화가 왜 수출주도 산업화로 바뀌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왜?

그림 1. 이승만 정권기에는 내수지향 수입대체 전략이 주로 채택되었으나 박정희 정권이 안정을 찾는 시점이 되면 이미 수출주도 성장전략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과연 전환기(빗금 친 부분)에는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정책전환이 이루어졌던 것일까?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위 그림은 이승만 경제정책을 매우 높게 평가하는 토론 상대자의 입장을 배려하기 위해 검토 대상이 될 전환기의 범위를 최대한 넓혀 잡은 것이라는 점입니다. 보다 전통적인 학계 주류의 시각은 다음 그림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림 2. 전환기를 보다 좁게 잡는 전통적인 학계의 시각.
이 해석대로라면 역사적인 정책 전환에 있어 이승만의 가능성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3. 인물 중심의 세 가지 "도식적" 설명

우리가 지금까지 진행해 온 토론이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 시작한 점도 있고, 사람들이 보통 인물과 그의 정책, 실적 등을 구분해 판단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후광효과) 때문에, 짧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기로 한다면 세 가지 구도가 떠오르게 됩니다.


그림3-1. 이승만 주도 전환 가설

우선 첫 번째 가설은 이승만이 수입대체전략을 주로 취하긴 했지만 그것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그런 것 뿐이고, 전후복구 등 당장 아쉬운 것만 극복하고 나면 수출주도전략으로 전환을 진행할 예정이었거나 실제로 진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가설이 입증될 수 있다면 4.19로 이승만이 물러나지 않더라도 수출주도성장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 그 결과 한국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공로는 이승만이 독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림3-2. 장면 주도 전환 가설

두 번째 가설은 이승만은 수입대체전략을 추구했던 것이고, 4.19로 이승만을 몰아내고 나서야 기존의 수입대체전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이승만이 정권을 더 오래 잡고 있었더라면 (결과적으로 20세기 후반에 별 재미를 못본 것으로 입증된) 수입대체전략이 더 오래 추진(보라색 점선)되어 우리의 경제성장은 방해를 받았을거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제2공화국기에 기본적인 노선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고 박정희는 이것을 이어받아 충실히 집행했다는 해석도 내려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결론을 입증할 수 있다면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경제성장에 대한 공로를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두 독재자에게 최소한만 돌려도 되는 것입니다. 장면의 경제정책을 발굴해 가능한 높게 평가하려는 시도에는 이런 숨은 의도가 종종 발견됩니다.


그림3-3. 박정희 주도 전환 가설

세 번째 가설은 이승만은 수입대체전략을 추구했던 것이 분명하거니와, 제2공화국의 장면 정권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기는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이승만이 계속 집권했을 경우는 물론이요, 5.16으로 장면 정권이 전복되지 않았을 경우에도 (결과적으로 20세기 후반에 별 재미를 못본 것으로 입증된) 수입대체전략이 더 오래 추진(보라색 점선)되어 우리의 경제성장은 방해를 받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집권 초기 박정희에 대한 가장 주요한 대안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이승만과 장면은 박정희를 대신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필수불가결성이 강력히 뒷받침되는 것이지요. 박정희는 기본적으로 쿠데타로 집권했기 때문에 정권의 정통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러한 결함을 경제성장 등 다른 업적으로 합리화하려고 했습니다. 대안적 지도자들도 비슷한 경제성장을 보일 수 있다면 민주정치를 후퇴시킨 쿠데타를 역사적으로 용인해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경제성장에 대한 박정희란 인물의 필수불가결성이 박정희와 그의 지지자들에게 그처럼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 가설은 주로 불세출의 지도자 박정희가 나타나 수출주도전략으로의 주요한 정책전환을 단호히 이루어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틀로서 사용되곤 합니다.


4. 내용의 검토(1): 이승만 정권기

자 이제 앞서 설명한 세 가지 "도식적" 설명을 염두에 두고 검토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련의 토론을 읽어 오신 분들은 이승만의 경제정책에서 수출의 위상이란 것이 치열한 쟁점이었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쟁점이었던 이유는 이승만이 수출을 확실히 밀어주었거나 앞으로 그럴 예정이었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수출주도성장으로의 전환에 있어 그의 입지는 아주 큰 것이고 첫 번째 가설(그림 3-1)이 가장 유력한 설로 등극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때 이 쟁점은 일단락이 난 것 같습니다. 이승만 정권기 경제정책의 기조가 "국내소비를 기본적으로 국내생산으로 충족 … 으로 대표되는 ‘자립경제’"(Crete)라는 점을 확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결론에 대해서도 이렇다할 반론이 제시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시기의 대외 수출은 제자리 걸음이었으며 이렇다 할 적극적인 수출 정책이 시행된 것도 아닙니다. 1957년부터 시행된 수출5개년계획은 구체적인 수출 증대 방안도 없이 만들어 졌으며 결과적으로 목표액의 30% 수준을 달성하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길 잃은 어린 양)


이어 이 시대에 대해 저지르기 쉬운 실수를 하나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이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아이디어란 것입니다.

1980년대 이전에는 개발도상국가에서 공업화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대체로 수입대체중심의 공업화전략을 채택해 온 사례가 많았고, 수출에 중점을 둔 공업화전략은 오히려 예외적인 몇몇 나라에서만 실시해 왔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오면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신생공업국가들의 수출주도형 공업화전략에 의한 경제발전 성공사례가 널리 인식됨에 따라, 최근에는 과거에 수입대체중심의 공업화전략을 채택했던 나라들도 정책개혁을 통해서 수출주도형 공업화전략으로 방향전환을 한 나라들이 많다. 따라서 최근에는 공업화전략의 유형이 수입대체중심에서 수출주도형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앞에서 시사한 바와 같이 이런[수입대체] 전략은 19세기 이후 당시의 많은 후진국가들이 선진공업국가로부터의 공산품수입을 막고 그것을 국산품으로 대체해 가는 과정을 통해서 공업화하려는 방식으로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김광석, 『한국의 수출과 공업화』, KDI, 1995, pp.22-23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수출주도형 공업화가 유력한 개발전략이 되었지만, 한국이 수출주도형 공업화에 나선 1960년대 전반에는 그것은 아주 이례적인 전략이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전반적으로 다루는 학술문헌은 거의 모두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수출주도형 공업화의 특이성을 짚고 넘어갑니다. 따라서 기본적인 전후복구와 소비재 공업 재건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수출주도형 공업화로 넘어갈 예정이었다는 가정은 근거가 지극히 박약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장면, 그리고 이승만의 경제개발계획이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을 노골적으로 베꼈다"(foog)라고 생각하게 되면 더 큰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그것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중공업화[경제계획]는 근본적으로 국가 자체의 자기완결적 경제체제를 만드는 것이 목표"(길 잃은 어린 양)인 만큼 필연적으로 자급자족형 자립경제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랬다면 도대체 왜 수출주도로 방향을 튼단 말입니까?

따라서 어느 쪽이든지 간에 수입대체전략이 진행되고 있었다면 다른 명시적인 근거가 없는 한 그것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위 가설에서 보라색 점선 화살표)고 추론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기에 후대의 수출주도전략으로 연결될 만한 접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 원조의 점진적 감소(1958년부터)
* 미국과의 협의 하에 부흥부 「3개년 계획」의 준비 => 후의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위한 연습
* 긴축정책을 통한 재정안정화와 인플레이션의 감소(1958~60년). 대신 생산이 침체됨

그러나 앞서 다룬 수입대체와 자립경제에 비하면 그 위상은 미미한 것입니다. 또한 균형성장전략, 원화의 과대평가와 복수환율제, 무력한 수출지원책도 수출주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5. 내용의 검토(2): 장면 정권기

이 점은 앞선 글의 4절과 5절에서 자세히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어떤 분은 제가 장면을 높게 평가한다고 하시던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홉 달 치고는 그럭저럭 잘했네"란 것이지, 진짜 대단히 잘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 정권의 정책이 좋고 나쁘고를 따지기엔 너무 짧은 기간이라 깊이있는 평가를 하기란 어렵습니다.

다만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가 자기정당화의 일환으로 이 정권을 부당히 공격한 면은 있습니다. 이 시기에 준비되던 정책을 이어받고는 자신의 공적으로 삼는다든가, 앞 시대를 과도하게 무능과 혼란의 시대로 규정(그래야 쿠데타의 명분이 서니까)한 측면은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일부 명예회복을 시켜준다 정도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정도가 온당한 시도가 아닌가 합니다.


6. 내용의 검토(3): 박정희 정권 초기

앞서도 한 번 언급했지만, 박정희 지지자들에게서는 "불세출의 지도자 박정희가 나타나 수출주도전략으로의 주요한 정책전환을 단호히 이루어냈다"는 명제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얼마나 믿을만한 것일까요?


1962년 1월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시행할 때에는 혁명공약에서 표방한 바와 같이 자주경제 재건을 위해 ‘자립화정책’을 추구했다. 5·16군사정변 세력이 국회를 해산하고 만든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유원식 최고위원(쿠데타 당시 대령, 1961년 8월10일 준장 진급)이 최고회의 의장 자문위원이던 민간 경제학자 박희범 서울대 상대 교수와 함께 ‘내포적 공업화 전략’을 마련했다. 이들 자력갱생파이자 ‘급진파’의 경제 살리기 방안은 ‘자립경제를 지향하는 자주적 공업화 전략’이었다.

박희범식 내포적 공업화 전략은 외향적이며 개방적인 수출지향적산업화전략과는 대비되는 개념이다. 그렇지만 자본이 부족했던 한국 정부가 이러한 내포적 산업화 발전 전략을 추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으며 기업가와 관료가 반대한 탓에 계속 추진하는 것이 불투명해졌다.

이완범, 한국경제 도약의 지렛대, 박정희의 수출 드라이브, 신동아, 2007년 2월

이처럼 군사정부는 우선 장면 정부의 「5개년계획」을 가져와 거의 그대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출범시키는 한편, 당시까지 시대의 대세(?)이자 상식이던 ‘자립화정책’을 추구합니다. 이대근도 1,2차 5개년계획은 사실 수출지향적이라기 보다 수입대체적인 성격으로 보아야 한다(『한국무역론』 3장)고 지적한 바 있는데,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1차 5개년계획」이 수출지향적이지 않았다는 또 다른 증거는 「1차 5개년계획」의 수출목표는 매우 낮아서 목표를 너무 쉽게 초과할 수 있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경제성장에 대한 수입대체와 수출확대의 기여도를 분석한 것을 보면, 수출확대의 우월성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세간에 나도는 족보와 실제는 반대였던 것이지요.
Krueger, Anne., "무역·외원과 경제발전", p.124


그렇다고 중화학공업부문으로 수입대체를 확대하는 정책도 국내시장의 협소와 그런 수입대체사업에 있어서의 방대한 자본소요를 감안할 때 실현가능성이 없었다. 여기에 더하여 당시의 미국 원조가 급속히 감축되어 갔기 때문에 국제수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외환을 벌어야 할 여건에 있었다. …

군사정부는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위해서 처음에 환율을 단일화하기 위한 개혁을 시도하고, 또한 외환제도, 정부예산제도 및 조세제도 등의 개혁뿐만 아니라 통화개혁도 단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시도는 처음부터 입안이 잘못되었거나, 또는 다른 정책과의 일관성결여로 인해서 실패 하거나, 오히려 유해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도 있었다. 정부는 외국원조의 급감에 따르는 외환부족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수출증대와 수입규제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도 폈다. 그러나 당시의 수출진흥대책의 대부분은 1963년에 실시한 수출입링크제도를 포함해서 원화의 과대평가는 그대로 둔 채 수출에 미치는 그 부정적 효과를 상쇄시키고자 하는 임시방편적인 성격의 것에 불과했다. 수입규제도 1963년에 수출입링크제와 수량규제를 통해서 더욱 강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김광석, 같은 책, p.31

군사정부는 원조축소와 외환보유고 감소에 쫓기고 있었기에, 수입대체라는 족보에 교조적으로 매달릴 틈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일단 외화획득을 위한 수출증대를 위한 많은 개혁을 감행했지만 위에서 지적된 것처럼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습니다.
개혁이 한 시기나마 분명한 퇴행을 보인 경우도 있습니다. 61년 1,2월의 평가절하(장면정부)에 기반해 61년 6월에 환율단일화를 단행했는데, 63년 1월에는 이를 도로 이승만 정부 시절의 복수환율제로 돌아가 버립니다. 외환수급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전환기의 거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64년 5월에 재차 대규모 평가절하를 단행하고 나서, 65년 3월에 환율단일화를 다시 실행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특징은 군사정부가 열심히 하려는 노력은 보이는 것 같은데, 분명한 방향성이 없고 좌충우돌형 시행착오와 임시방편적 대책이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대신 어떤 원칙에 교조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시기의 정책은 한마디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식입니다. 이 점이 "결코 중공업 우선노선의 뜻은 꺾지 않았"던 김일성(길 잃은 어린 양) 과의 분명한 차이점입니다. 박정희 자신도 정권 말기로 가면 점차 교조적으로 변하게 되지만, 적어도 이 시기에는 그러지 않습니다.

이 시기에는 여러가지 혼란에도 불구하고 수출 자체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보면 순서대로 1)이승만 정권기에 오랫동안 수출이 비정상적으로 작아서, 2)환율문제가 개선되어서, 3)적극적인 수출지원책이 강화되어서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상황은 궁하기 짝이 없는데, 족보의 정답인 수입대체는 난항을 겪고 있고, 반면 기대를 적게 가졌던 수출이 생각보다 더 잘 늘어났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왜 정책전환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경험적으로 성적이 좋은 선수에게 점점 더 많은 배팅을 해 나간 결과가 수입대체에서 수출주도로의 전환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선 세 가지 인물 중심의 도식에 대한 대안으로 제가 제시하고 싶은 가설은 이렇습니다.

그림 4. 시행착오 후 정립 가설.
수출주도경제로의 전환은 박정희 집권기에 이루어진 것이나 이는 매우 혼란스러운 수 년 간의 시행착오 끝에 경험적으로 정립된 것이다.



7. 마무리지으며

박정희가 좀 더 뒤에 수출주도전략을 자신의 대표적 정책으로 내걸면서,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 정책이 집권 직후부터 박정희 고유의 것이었던 듯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분명히 사실이 아닙니다. 또한 그것이 쿠데타의 정당화 명분이 될 수도 없습니다. 반면 이승만이나 장면 같은 그 앞의 지도자들이 수출주도전략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냐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 것이 있었다면 박정희가 그것을 물려받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그렇게 했던 것처럼 꿀꺽해서 신속히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처럼 시행착오가 많았던 이유는 물려받은 것 자체가 그다지 좋은 계획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지적해야 할 점은 이 시기 박정희의 주요 성공 요인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단호함이 아니라 유연함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의 박정희가 말기의 이승만 혹은 말기의 박정희, 또는 전 시기에 걸친 김일성처럼 경직된 인물이었다면 그도 실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by sonnet | 2008/08/04 14:57 | 정치 | 트랙백(3) | 핑백(2) | 덧글(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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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irhina at 2008/08/04 15:04
오오, 이거이거... 시원한 물로 눈을 씻은 것 같습니다. 단호함이 아니라 유연함이라...!!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1:23
하하. 이승만과 박정희의 나이 차이만 생각해 봐도 어느 정도 에너제틱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지도요. 80대 중반에게 유연함이나 노선의 변화를 기대하긴 좀 어렵지 않겠습니까.
Commented by uriel at 2008/08/04 15:09
너무나도 정리를 잘하셨네요. 웹 상에서 이슈 정리의 교조적인 예로 들고 싶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1:23
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8/04 15:14
결국 대원수 각하의 영도력의 비결은 그 재빠른 변신(?)에 있던 셈이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1:26
저 때는 아무래도 경험부족이나 미숙함이 많이 드러나는데 본인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국가통치에 자신이 붙자 고집도 많이 부리고, 점차 변질되어 가지요.
Commented by 어부 at 2008/08/06 09:06
역시 성공한 사람의 완고함은 일을 말아먹는 근본 동력인가 보군요.
Commented by IEATTA at 2008/08/04 15:23
역시 중후하신 내공에 늅이는 버로우 해야하는건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1:27
크, 초식으로 내공을 제압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Commented by joyce at 2008/08/04 15:39
논쟁의 발단을 생각하면 이렇게 길게 끌고 나갈 필요가 있나 사실 의문이었는데^^
초기 박정희의 유연함이라... 역시 많은 배움 얻고 갑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1:27
하하, 어쩌다 보니 길어졌네요. 저도 수습 국면으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Commented by marlowe at 2008/08/04 16:16
예전에 닉슨, 김대중에 대해서도 언급하셨지만, 사람들은 지도자의 정책이 개인의 대외 이미지와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분명 있나봐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1:21
동감입니다. 특히 박정희나 이승만, 김일성 같은 이들의 이미지는 자신들이 세심히 신경을 써서 구축한 것이라 자유언론 하에서 형성된 것과 같을 수는 없지요.
Commented by 키치너 at 2008/08/04 16:30
시각자료덕분에 글의 요지가 눈에 쏙쏙 들어오는군요. 직접 강연을 하신다고 해도, 강연시간내내 청중들이 눈을 떼지 못할 것 같습니다. :)
- 역사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원칙 하나만 생각해도,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이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은 조금쯤 의심해 볼만 할텐데 말이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1:29
말씀 감사합니다.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이 별로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2차대전 전까지는 시대가 제국주의 시대라 선진국 아니면 식민지라 저런 전략을 쓸만한 후진국 자체가 적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기껏해야 남미 정도.. 거기가 수입대체전략을 많이 썼던 나라들이죠.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8/04 18:09
저도 동일하게 생각합니다. 박정희에게 공을 돌리자면 그가 '유연'했다는 점에 돌려야 하겠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1:31
그가 유연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정리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8/05 11:36
아마도 북한과 경쟁하는데 달러가 필요했을테니까 그 가망성이 높은거 같구요...

그리고 이미 그시절쯤 되면 경제학적으로 '자립경제'는 무의미 하다는 것이 증명이 되어 있었을 겁니다. 당시 관료들의 일부는 유학도 다녀오고 한 사람들인데,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 유학을 다녀왔던 관료들은 이승만의 '남한을 동아시아의 알프스로 만들자'같은 생각에 학을 떼고는 했다고 하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6 09:12
그건 자립경제가 "완전"자급자족경제란 강한 의미에서만 그런 거죠. 자력으로 "수출입 균형이 맞는" 자립경제라는 온건한 이야기가 되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5개년 계획에 수입대체적 성격이 강하게 있었다는 증거가 많기 때문에 관료들이 실제로 수출지향적 전략을 지지했는지는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8/04 18:53
박정희의 초기 성공 비결은 "그때 그때 달라요"군요. 일이 제대로 되려면 실행과 평가의 기간을 되도록 짧게 해서, 다음 단계에 피드백을 잘 반영하는 게 필요할 듯 합니다.
뜬금 없을 수도 있지만, 박정희가 70년대 후반에 암살 당하지 않고 큰 유혈사태 없이 그럭저럭 잘 넘겨서, 80년대에 한 10년 정도 더 집권했으면 지금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행정수도는 진작에 옮긴지 20년이 넘었을 거고, 주한미군은 80년대 초에 전면 철수했고, 핵 탄두 보유 의혹으로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보고, 영남대 교주 박정희는 이광요와 말동무 하며 놀고, 박정희에 이어 박지만 종신 대통령 치하에서 살고 있지 않을까요 -_-;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1:19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지도자에게 어떤 유효수명이 있다면, 암살시점은 이미 유효수명을 넘긴 때가 아닌가 합니다.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8/05 14:16
그 점에는 적극 동의합니다. 3선 때 이미 그의 유효기간은 끝났다고 보는데, 총 들고 오른 자리라서 총 맞고서야 내려올 수 있었나 싶습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8/04 20:15
삐딱한 소리 같지만, '각하' 자신이 박쥐처럼 '변화무쌍한 일생'을 살아오셨으니만큼,
확실히 뭔가에 얽매이지 않고 '뻔뻔하게' 정책을 실험해볼 수 있었을 만하군요.

...디씨스럽지만, 정말 "☆★대제님을 찬양하라☆★" 소리가 나옵니다. 눈이 뜨입니다.
(다만, 여기에 지나치게 경도되면 그게 곧 '교조'겠지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1:17
에고, 별로 대단한 이야기도 아닌데 말입니다. ;;;
어쨌든 저 시기를 잘 보면 좌충우돌에 3~4년 걸렸단 이야기인데, 사실 경제적으로 쉬운 시기는 아니었거든요. 장면처럼 내각제 총리였으면 그 정도 기다려주지도 않고 목이 날아갔을 수도 있습니다. 민주화 시대의 대통령들처럼 임기가 5년밖에 안되면 1년 남는단 소리구요.
Commented by 그람 at 2008/08/04 20:30
포전인옥 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논쟁입니다. 이렇게 수준있는 논쟁을 볼 수 있다것 자체가 즐겁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1:13
감사합니다. 사실 이번 글은 구도에 대한 이야기만 많고 사실관계는 간단히 적은 데 불과해서 쟁점을 여럿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진행은 두고 봐야할 듯.
Commented by Ya펭귄 at 2008/08/04 20:48
오옷...

쓰리쿠션 후에도 시네로가 그대로 살아서 빨간다마가 오른쪽으로 휘어가는군요....


무엇이 옳은지를 논쟁하기보다는 무엇이 '작동'되는지를 찾아나섰던 것이로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1:12
아직 저때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양과알 at 2008/08/04 21:37
초기 박정희의 유연함이라니 전혀 생각도 못해봤군요. 유연함이라는게 경제에서 필요한 덕목이라고 인식하면서 그런 생각을 못하다니. 아직까지 색안경을 여려개 끼고 있는가 봅니다.
그 전에 저 도식이라면 발전한 한국이란 미래를 전제로 두면 박정희가 아니더라고 누군가가 더 나가서라도 턴 했을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1:10
박정희는 확실히 통치기간이 길어서 시기를 몇 구간으로 나눠서 보면 앞과 뒤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사 같은 데도 보면 젊어서 명군 소리 듣다가 늙어서 나라 말아먹은 황제가 많잖습니까.
그리고 전 개인적으로 이승만은 전환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장애물이 되는 인물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8/05 11:12
저는 1965년 이후의 수출 드라이브가 오히려 문제를 꼰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1:36
질적으로는 여전히 문제가 많은 시기인데, 그게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굴러갈 정도는 되거든요. 개도국들끼리 수평 비교를 해가면서 보면 그게 또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가 않게 됩니다. 다들 문제가 많아서리. 이정도쯤 하는 기분이 되어버리지요. ;-)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8/05 15:46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문제가 많았다는 것만 지적할 수는 없겠죠.
Commented by 리스 at 2008/08/04 22:41
도식이 매우 탁월하십니다!^^
다만 일단 방향이 올바르다는 확신이 생기면 단호하고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면에서, 유연함의 의미에 '현실에 대한 정확한 감각'이라는 의미가 상당부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1:01
67년 정도까지 수출드라이브의 기본구도가 완성이 되는데, 이때부터는 65년 이전처럼 마구 바꾸진 않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는 의미겠지요.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8/08/05 00:31
그러고 보니 군사정권 초기 수출지향형 공업화로 나가는 과정을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이 하나 있었는데 이걸 한번 다시 봐야 겠습니다. 군사정권이 수출지향 정책으로 나가게 된 원인 중 하나를 장면 정권 하에서 수립된 경제 계획의 한계를 타개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논문으로 기억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1:00
네, 간단히라도 소개를 해주시면 많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monsa at 2008/08/05 03:59
호구털듯이 미국의 원조를 타내던 이승만과, 울면서 차관보증문제로 광부와 간호사를 독일에 보내던 박정희가 외화 내지 달러에 대해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이상한것이겠지요. 유연성도 유연성이지만, 실제로 외화를 벌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거기에 중공업은 공헌을 할 수 없었던 부분도 크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5 10:59
예. 쓰던 씀씀이가 있는데, 이제부터 원조를 줄인다니 눈알 튀어나올 사태인 거지요. 그래서 제가 "무상원조를 줄여나간 과정"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거기 등떠밀려서 수출을 늘려야 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고, 그게 전환에 기본적인 동력을 제공했다고 보기 때문에 말입니다.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8/05 14:19
제약 조건이 주어져야 사람들이 머리를 굴리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바닷돌 at 2008/08/05 15:07
근데 저 시기에 내각제든 대통령제든 '민주적'으로 대통령이나 수상이 된 사람이었다면 저때 제대로 방향을 잡기도 전에 다른(아마도 경험이 없는)사람에게 자리를 내 주어야 했겠네요. 물론 그 경험이 없는 사람은 다시 엉뚱한 쪽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무진장 크고,(특히 민주제 경험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는 욕먹는 전임자와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해 전임자의 업적이나 경험은 무조건 깔아뭉개려 드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보니)

결론적으로 독재가 경제발전에 효율적일수도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셈이 되네요. 웬지 인정하기 싫은 결론이긴 하지만. 쩝.. 인정할건 인정해야겠죠. orz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8/05 17:48
혹시나 놓치셨을까봐 부언하자면, 1960년대 쿠데타 즈음에 이미 관료집단들은 수입대체를 더이상 찬성하지 않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기업가들이 싫어했습니다. 이게 위에 신동아 링크에 걸린 내용이지요.
Commented by 행인3 at 2008/08/06 01:46
1. 박정희 체제에 대한 평가 (김수행, 박승호, <<박정희 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몰락: 국제적․국내적 계급관계의 관점>>, 2007, 서울대출판부)

박정희 체제(특히 개발과 독재의 공생관계)가 어떻게 성립되어 전개되었는가? 냉전체제와 남북분단체제에서 미국은 남한을 ‘자유세계’(사실은 자본주의 세계)의 본보기(show-window)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었고, 군부쿠데타 정권은 고도경제성장을 통해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할 과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 두 과제를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급속한 자본주의적 발달을 통해 자본주의적 계급관계(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확대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차관의 제공, 미국 시장의 개방, 한일 국교정상화와 청구권 자금의 도입, 베트남전쟁에 국군의 파견과 이에 따른 경제적 보상 등으로 경제개발의 핵심적인 기초를 놓는 데 기여했다.

다른 한편으로 박정희 정권은 정치적 독재를 통해 자본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계급관계를 재구축․강화함으로써, 자본가들로 하여금 직접적 생산자들(농민과 노동자)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게 하고, 소수의 대자본(재벌)으로 하여금 중소자본을 수탈해 모든 잉여가치를 자기에게 집중시킬 수 있도록 하며, 모든 이용가능한 대내외 자원을 특정의 성장산업에 투자하도록 대자본에 특혜를 주었다. 이리하여 고도성장이 달성된 것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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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학교에서 들은 강의자료 중 일부입니다.

님의 "orz"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 줄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혹은... 아무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능..;;)

전문 자료는 여기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http://green.skhu.ac.kr/~cis/bbs/view.php?id=data&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98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6 17:34
바닷돌/ 독재까진 모르겠지만, 내각제가 안정적으로 동작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상당히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자유로운 at 2008/08/05 20:04
흐음, 김일영 교수님 수업 때 비슷한 내용이 나오더군요. 거의 포스팅과 비슷한 내용으로 말이지요. 결국 어찌되던 저런 방향 전환 덕에 엄청난 성장을 거두었다는게 여러 생각 들게 합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먹고 사는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한 건 분명하니...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6 10:28
사실 당시 국민 쪽도 이승만이건 박정희건 쥐만 잡는다면 ok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ohnemich at 2008/08/05 23:52
이런 문제를 명쾌하게 풀어주시다니, 멋지십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마냥 정치적으로 꼬인 문제라 저 같은 미천한 중생은 논의할 엄두도 못내는 녀석인데^^)

PS : 마지막 부분에서 많은 생각이 들게 되네요.

어떤 방식이든지 교조적으로 추종하면 뒷 맛이 좋지 못 한 것을..

이오시프나, 마오의 시대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교훈인 듯 싶습니다.

(인간이란 동물이 잔머리는 비상한데, 반면교사는 너무나 서투르기 때문일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6 09:16
사실 저는 '수출주도로의 전환' 문제를 몇 가지 유형의 가설로 정리하긴 했지만, 입증이나 반증을 그렇게 열심히 해놓은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마지막에 제시한 가설도 뒷받침하려면 상당한 추가적 노력이 들어야 할 듯...
Commented by 행인3 at 2008/08/06 04:31
"한국의 경제성장은 주로 성공적인 수출주도형 산업화 전략의 결과물이라는데 폭넓은 합의가 있습니다"

->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이 있어 소개해드립니다.

자료는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2001) '한국자본주의 발전모델의 형성과 해체'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지원과제 연구보고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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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릭(Rodrik, 1997; 1995c)은 한국과 대만의 수출 붐을 칠레와 터키의 80년대 수출 붐과 비교하면서, 한국과 대만의 수출 붐은 수출의 상대적 이윤율이나 수출에 대한 인센티브가 강화되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수출 붐은 상대 가격의 변화가 아니라 투자 붐의 결과로 파악하고 있다.

(...중략...)

수출 붐은 원인이라기보다는 투자 증가의 결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즉, 무역 주도의 성장이 아니라 성장 주도의 무역이 동아시아 성장의 특징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원문(한글파일 다운받으시면 됩니다)

http://green.skhu.ac.kr/~cis/bbs/view.php?id=data&page=6&sn1=&divpage=1&category=9&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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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장과정에서 나타난 수출급증 및 생산(GDP)에 대한 수출 비중의 지속적인 증가는 투자주도성장전략의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Rodrik, 1994)

자본재에 비교 열위를 가진 한국이 경제적 기반을 갖추기 위한 투자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자본재의 수입이 필요했으며, 해외여신의 제약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투자를 위한 수입에 필요한 외환확보수단으로 수출독려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경제성장은 근대적 산업화에 요구되는 투자가 수입증가를 유발하고, 수입증가가 수출증가를 요구하는 인과관계를 가지면서 투자주도의 성장경로를 밟게 되는 것이다.

1960년대 정부는 산업화를 추진함에 있어 기존의 공기업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공기업을 설립하는 수단을 자주 활용했다.

죤스(Jones, 1975)는 이에 대해 한국의 공기업이 거의 대부분 수입대체산업, 특히 전방효과가 매우 높은 산업에 집중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전방효과가 높다는 것은 최종수요를 고려치 않고 오직 다른 생산자들의 생산을 유도하기 위한 투입재를 생산하는 수입대체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한국의 산업화는 자립경제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수입대체산업화의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입대체와 수출지향의 성격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고,

대외지향적 전략을 추구한 나라와 달리 수입대체산업화가 현저하게 진행되었다.

한국의 전략은 “국내유치산업 보호정책이 수출진흥정책과 동시에 진행”되었으며, “일단 국내유치산업들이 정착되면 정책보조와 신용 및 환율정책의 지원에 의해 수출산업으로 전환”(Dornbusch and Park, 1987)하는 것이었다.

수출 지향적 산업화 전략은 필연적으로 경제의 개방화와 시장의 자율성 보장을 수반한다. 이론적으로 국제비교우위에 따라 산업구조를 형성시키고, 자율적 시장균형가격에 따라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이론에 따르면 수출 지향적 산업화에 의한 성장의 관건은 단순히 수출의 증가가 아니라 자유시장의 존재여부이다. 역으로 수입대체 산업화의 문제는 국내산업보호를 위한 가격왜곡이며, 자유시장 기제의 관리 혹은 통제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고도성장과정에서 수출이 수행한 역할은 설명되지 못한다. 산업화 초기단계에 자유시장은 기능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정부는 거시적 투자부터 미시적 가격결정까지 개입을 했으며, 정부의 재량권은 거의 무제한적이었다.

그러므로 한국경제성장의 원인은 시장기능에서 찾기보다 의도적 자본축적 또는 투자에서 찾아야 한다.

정부의 지원하에 경쟁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기업들은 안정적인 기업활동과 수익률을 보장받으면서,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상관없이 놀랄만한 속도로 자본축적을 진행시켰으며, 축적과정이 교란되는 경우에는 투자를 강요하거나 정부가 직접 투자자로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경제성장은 근대적 산업화에 요구되는 투자가 수입증가를 유발하고, 수입증가가 수출증가를 요구하는 인과관계를 가지면서 투자주도의 성장경로를 밟게 되는 것이다.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한국의 경제체제는 투자를 최대한 촉진시키는 시스템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원문(한글파일 다운받으시면 됩니다)

http://green.skhu.ac.kr/~cis/bbs/view.php?id=data&page=4&sn1=&divpage=1&category=9&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3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8/06 07:18
역시 이런 관점도 이미 존재했군요. 저는 이것이 '경제성장'을 가져왔다는 개념을 제외하면 대략 비슷하게 생각은 합니다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6 17:28
뭐가 "다른 관점"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지적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Dani Rodrik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면 인용하신 글 대부분은 저의 글과 별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1.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설명은 저의 글과 잘 일치하는 것입니다.

"많은 동아시아 연구자들이 동일하게 지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외지향이 국가 개입의 규율 메커니즘으로 작용하였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에서의 산업정책은 기본적으로 선별적이었으며, 이 선택성이 초래하는 규율의 문제를 대외지향으로 해결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국가에 의한 시장과 개방 체제 활용의 목적은 시장 가격의 자원 배분 기능이었다기보다는 시장의 경쟁 규율 기능이었다."

2. [Rodrik1994]란 "Getting Interventions Right: How South Korea and Taiwan Grew Rich"을 말하는 것인지도 확인 부탁드립니다.

3. "한국의 경제성장은 근대적 산업화에 요구되는 투자가 수입증가를 유발하고, 수입증가가 수출증가를 요구하는 인과관계" 이건 제가 다루는 시대에서는 분명히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Krueger가 제시하는 1950년대의 수입구조를 보면 잘 드러납니다.
http://pds8.egloos.com/pds/200807/26/40/b0009940_488a54e3df895.png
수입증가는 원조에 의해 지탱된 것이지 투자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08/06 15:36
so good. 상당히 명쾌하게 결론이십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6 17:37
대개 결론이 명쾌할수록 뒤가 구린 법인데 (쓴웃음)
Commented by 긁적 at 2008/08/06 21:08
제가 이 방면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습니다만..;;
세상은 허명을 전하는 법이 없군요. (........)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을 조금 가볍게 봤었는데, 많이 반성해야겠습니다..;;
자료수집이라는 방법이 제 전공분야에서도 통하는지는 별문제이지만요 ^^;;

음... 궁금한게 있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서 글을 쓰고, 토론을 하시는 이유를
여쭈어보아도 될까요? ^^;;;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8 17:24
글쎄요...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동기는 개인적인 생각이나 관찰을 정리한다는 점에서 다른 분들과 별 차이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다만 저는 시간을 통제하기 위해 가능한 하루 한 개 이상의 포스팅은 하지 않는다는 내규를 정해놓고 있기는 합니다.
Commented by foog at 2008/08/07 13:33
따로 이 대화와 관련해 제 블로그에 글을 올리진 않기로 마음먹었으나 sonnet님 글에 제 멘트가 언급되어 있으니 여기에다 간단히 제 의견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길 잃은 어린 양'님의 의견이 어떠한 객관성을 가지는가 하는 문제는 둘째치고 일단 그 짧은 댓글에서의 저의 멘트에 대해 반대의견을 주신 것 관련하여 말씀드리자면

첫째.

저의 멘트와 sonnet 님의 멘트가 틀립니다.

저는

“특히 박정희 시대에 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누가 봐도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을 노골적으로 베낀 것이었다.”( http://www.foog.com/468 )

라고 말했는데 sonnet님은

“게다가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장면, 그리고 이승만의 경제개발계획이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을 노골적으로 베꼈다"(foog)라고 생각하게 되면 더 큰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라고 하셔 사실관계가 뒤틀리게 되었습니다. 즉 제가 언급하지도 않은 “이승만의 경제개발계획”이 등장합니다.

둘째.

sonnet 님이 저의 그 짧은 멘트에 왜 그런 발언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이러저러한 궁리를 하셔서 ‘길잃은 어린 양’님의 글을 반박글이라고 추천해주셨을텐데요. 요는 제가 어떠한 관점에서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이 북한 및 사회주의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하는지에 대해 그럼 먼저 질문을 하고 거기서부터 논점을 확대하시는 것이 옳았다고 봅니다. 그런데 sonnet 님은 그렇게 하시기보다는 저의 관점을 sonnet님이 나름대로 가늠하신 후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개발계획은 ‘필연적으로 자급자족형 자립경제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예측으로 나의 주장이 틀렸다고 하십니다. 저는 그것은 바람직한 대화가 안된다고 봅니다.

무릇 두 가지 사물이 유사하다고 하는 것은 어느 면에서 보면 닮았겠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틀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느 쪽에 방점을 두느냐가 물론 주관성의 차이겠지만 상당한 정도로 유사성에 대해서 부인하고 차이만을 강조하기 시작하면 논의는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죠. 지난 번 말씀하셨듯이 서로간에 ‘재해석’만 하고 있는 꼴이겠죠. :)

아래 링크는 이정우 교수가 생각하는 소련의 계획경제와 박정희의 계획경제의 유사성에 대한 언급이니 참고바랍니다.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71010142519

날 더운데 건강조심하시고요.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8/07 14:46
이정우 교수의 얘기는 박정희 모델과 스탈린 모델의 유사성을 언급한 거지,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북한 등의 사회주의 국가에 저작권이 있다는 게 아닌데요. 공통점으로 든 높은 투자율, 중공업 우선, 대기업 중심 등은 sonnet님의 논의에서 다 나온 얘기인데, "so what?" 소리 밖에 안 나오는군요. 투자율이 높다고 유사하다면 일본과 대만도 스탈린 모델입니까, 스탈린 시대에 러시아 땅값이 폭등하기라도 했답니까. foog님은 아직도 핀트를 잘못 맞추고 계신 듯 합니다.
Commented by foog at 2008/08/07 15:14
누렁별/요점은 두 가지입니다. 다시 정리해드리죠. 첫째, sonnet님이 내 이름을 호명하고 따옴표로 따오실 때에 제대로 인용을 하지 않았다는 점, 이는 의도 여하에도 불문하고 옳지 않다는 것, 둘째, 내 짧은 멘트에 대해 반론을 하실 요량이면 보다 구체적으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어야 한다는 점. 등입니다. 이정우 교수의 글은 원글에 쓴 바와 같이 제 의견이 아니라 이정우 교수 자신의 의견이고 참고용입니다.

그러니 누렁별님의 '저작권', 'so what?', '핀트를 잘못 맞추고' 등의 발언은 저에게 좀 의아하게 들립니다. 더불어 날도 더운데 약간 감정적으로 느껴지는 뉘앙스의 멘트는 삼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8/07 15:56
저야 시원한 데서 놀고 있긴 한데, 제 언사에 더운 데서 짜증나신다면야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어쨌든, 인용 문제야 sonnet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고, “특히 박정희 시대에 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누가 봐도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을 노골적으로 베낀 것이었다.” 라고 주장하셨으면 그 주장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근거를 한 번은 대셔야 했을텐데요. 주장에 걸맞는 근거를 보여 주셔야 씨알이 먹히지 않겠습니까. sonnet님이 foog님의 의견을 듣지 않겠다고 하신 적은 없는 듯 하고, 적절한 근거가 있는 자신의 의견이 있으시면 진작에 밝히셔야 했습니다. 뭐, 더 이상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겠다고 본인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신 마당에 제가 뒷북치는 소리를 할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Commented by foog at 2008/08/07 17:13
누렁별/
"sonnet님이 foog님의 의견을 듣지 않겠다고 하신 적은 없는 듯 하고, 적절한 근거가 있는 자신의 의견이 있으시면 진작에 밝히셔야 했습니다."

요구받은 적이 없기에 진작에 밝혔어야 한다는 누렁별님의 말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런 요청을 받았더라면 '선은 이렇고 후는 이래서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생각을 밝히고 그에 대해 sonnet님이 '너의 관점은 이런데 사실을 이래서 너의 주장이 잘못 되었다'라고 되었어야 순서가 맞죠. 단 한문장에 대해 '길잃은 어린양'님이나 'sonnet'님의 장문의 글로 반박을 하신 일에 대해, 그리고 요청받지도 않은 부연설명을 하지도 않았다는 것때문에 이제 와서 제3자분이 "진작에 밝히셔야"라고 저에게 책임을 지우시는 발언을 하시는 것은 약간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추.
온라인대화는 과장될 정도로 공손하게 말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이기에 따라 충분히 오해를 살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여 평소에 저는 글을 그렇게 적는 편입니다. 제가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으니 구태여 사과하실 필요는 없고 시원한 여름 건강한 여름 보내시기 바랍니다. :)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7 19:00
1. "사실관계가 뒤틀리게 되었습니다. 즉 제가 언급하지도 않은 “이승만의 경제개발계획”이 등장합니다."

http://pds6.egloos.com/pds/200808/07/40/b0009940_489ac4d96d36d.png 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브라우저에서 http://www.foog.com/475를 띄운 후, 찾기(ctrl-F)로 "거슬러"를 찾으면 쉽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2. "상당한 정도로 유사성에 대해서 부인하고 차이만을 강조하기 시작" 이 구절에서 유사와 차이를 바꾸면, foog씨께서 처음 내놓은 주장이 됩니다. ;-)
어쨌든 간에 제가 볼 때 이런 토론은 기본적인 쟁점사안들이 대부분 드러날 정도로 논쟁을 진행해 본 후에야, 양쪽 입장에서 서로 수용할 만한 부분이 무엇이 있는지를 정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토론은 아직 전반전인데 벌써부터 평행선을 그린다고 생각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Commented by foog at 2008/08/07 21:15
sonnet/

1. 제가 처음에 적었던 글만 기억했다가 실수를 했군요. 그 점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적어도 저는 이승만의 경제개발계획은 사회주의의 그것과 큰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자체적으로 실언 정도로 처리하겠습니다.

2. 제 말이 그 말입니다. :)

즉 제 생각에는 일단 계획경제에 대한 (특히 사회주의와 박정희의 그것이겠죠) 문제를 논의할 바에는 판을 모두 펼쳐놓고 유사성과 차이점, 그리고 역사적 맥락을 조목조목 짚어보고 접근하여도 서로의 주장에 대한 수렴이 어려울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한데 적어도 이 글에서 보는 sonnet님이 주장하는 박정희식 경제개발계획(엄밀히 말해 경제개발계획 그 자체가 아니라 수출주도형 공업전략)과 사회주의의 그것과의 차별성은 - 그리고 제 주장이 틀렸다는 근거는 - "사회주의 국가들의 중공업화[경제계획]는 근본적으로 국가 자체의 자기완결적 경제체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바람이 있다면 그것이 다른 모든 유사성이나 역사적 맥락을 버로우해버리는 엑기스인지 아닌지가 향후에라도 증명이 되어야겠죠. 향후 다른 좋은 글을 기대하겠습니다. :)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11 11:32
그러니까 "그것이 다른 모든 유사성이나 역사적 맥락을 버로우해버리는 엑기스인지 아닌지"라는 말씀이 바로 제가 품고 있는 의문의 핵심인 겁니다. ;-)
Commented by sanister at 2008/08/07 23:34
남미처럼 수입대체전략을 밀고 나갔으면 현재의 한국이 아닐거라는 내적 가정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갑자기 드는 의문이 하나 있는데, 한국이, 특히 박정희가 경제전략에서 일본을 상당히 모방했다는 세간의 입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주장이 실제와는 조금 괴리가 있을수도 있지 않는가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괴리가 모방 단계에서 '능력부족'과 '환경차이'로 인한 결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Commented by sanister at 2008/08/07 23:56
일본과 달리 한국의 비이상적인 외수 집중현상에 먼저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경우 외수로 벌어들인 자본의 상당수가 일본 국내에서 순환한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에 한국의 경우는 '외화벌이 사이클'로 대부분이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대답은 역시 기술격차와 산업화의 경험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한국이 경제발전 모델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논조가 신뢰할 만한 것인지, 그리고 만약 그것이 타당하다면 내수의 비중으로 대표되는 일본과 한국의 경제특이성(딱히 맞는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의 차이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면 들어보고 싶습니다.
Commented by 번동아제 at 2008/08/10 22:52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백당시기 at 2008/08/19 16:51
박정희의 가장 큰 성공요인은 집권기간이 길고 비교적 안정적 시기였던 것이다.

다른 이승만이 박정희대통령과 비견되는 집권기간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수립의 혼란기, 6.25 전쟁과 복구등의 혼란기를 겪은 반면 박정희는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에서 정부를 이끌었고 초기의 실수들을 만회할 충분한 기간동안 집권하였기 때문에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판단된다.

현재 박정희가 가정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데 이와 비교당하는 대통령들은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7년(전두환), 5년(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등은 비교대상이 될 수없다. 같은 잣대로 비교한다는 자체가 불공정한 것이다.

이것은 초기의 혼란과 전쟁을 겪은 이승만도 마찬가지이다.

박정희가 성과를 낸 점을 부정하거나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교당하는 대통령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8/19 16:53
자신이 세운 정책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권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유리한 점이죠. 뭐, 그렇다고 해서 다시 한 사람이 20년씩 집권하는 체제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Commented by boreas4 at 2008/08/20 23:17
좋은 내용잘 봤습니다. 보수논객이신 이상돈 교수님의 사이트에 위글을 퍼고 싶습니다. 허락 부탁드릴꼐요. http://www.leesangdon.com/ 이곳입니다.
Commented by 깊은우주 at 2009/09/26 20:05
56년부터 '수출장려 보조금제도'를 도입하는 등 수출에 관심을 갖고 산업이나 경제에 대해서 장기적으로 정책을 세운다 57년부터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한다 폐허 속에서 4년만에 경제가 성장을 해서 그때부터 빛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한다. 그때 경제 지표를 보면 성장률이 57년 7.6%, 58년 5.5%, 59년 3.9% 매년 50% 안팎으로 오르던 물가도 57년부터는 한 자리수로 안정되고. 이승만 쫓아낸 60년에는 성장률이 1.2%에 그쳤지만, 61년에는 다시 5.9%로 뛰어오르고 물가도 안정세를 유지한다..

이미 57년 4월에 '전원개발 5개년계획'이 수립됐고 '탄전종합개발 10개년계획' '재정금융안정계획' 등 정책으로 계속 이어졌고 중장기 경제개발계획도 이미 58년에 수립, 60년에는 '경제개발 3개년계획'을 세운다 또한 이승만시절에는 수출증가율이 48%에 달하기도 한다 민주당 장면정권은 이를 토대로 61년에 <5개년 개발계획 (62∼66년)>을 수립하게되는 데 이것이 박정희가 내놓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9/27 11:43
http://sonnet.egloos.com/4243573 에 간단히 답해 두었습니다.
Commented by 깊은우주 at 2009/09/26 20:18
근데 한국이 1인당 gdp는 낮았지만 그렇다고 국가 전체를 놓고보면 최빈국이라고 할수만은 없다고 본다..
1인당 gdp가 낮은 원인도 전쟁 후유증 그리고 40년대 50년대의 급속한 인구 팽창덕이기도 하고 그 인구 팽창은 경제 성장의 기반이였고..
50년전에도 한국은 세계 중위권의 볼륨을 유지하고 있엇거든.

박정희는 독재자였을뿐 특별한것 없다..
한국인들이 3번에 걸쳐서 독재자를 끌어내렸다.
4 19로. 부마항쟁으로. 5 18.6 10으로 독재자들을 끌어내렸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가 중단없이 발전했다고 보기도 한다.

박정희 독재가 더 갔다면 그때 경제는 폭삭 망했고..박정희 말기에 경제는 이미 막장선을 타고 있었고.. 이 경제를 일본에서 40억달러 차관으로 살렸지.
또한..
전두환 독재가 더 갔다면 경제는 정체후 퇴보했을거다.
경제 성장 자체도 독재자 덕이 아니라 국민 역량덕이다.

북한 국민들이 김일성 독재권력을 무너뜨렸다면 북한이 저렇게 살까?
70년대까지 남북의 경제가 그렇게 크게 차이도 없었는데..
한국 국민들이 일하면서 또한 독재자와 싸웠기에 자유 민주주의와 경제를 다 쟁취한거다.

한국 경제가 깡통 경제에서 명품 경제로 탈바꿈하게 된것은 김대중 정부 이후부터 경제가 똑바로 되기 시작하였지..

1960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
29위 한국 GDP 3십 9억달러.

1965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
39위 한국 GDP 3십억달러.

1970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32위 한국 GDP 8십 9억달러.

1975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
31위 한국 GDP 2백 1십억달러.

1980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
28위 한국 GDP 6백 3십억달러.

1987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
18위 한국 GDP 1천 4백억달러.

1992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
14위 한국 GDP 3천 3백억달러.

1998년 세계 GDP 순위중에서 .
15위 한국 GDP 3천 4백억달러.

2002년 세계 GDP 순위 중에서 .
11위 한국 GDP 5천 4백억달러.

2006년 세계 GDP 순위 중에서 .
13위 한국 GDP 8천 9백억달러.

자료출처
http://www.nationmaster.com/time.php?stat=eco_gdp-economy-gdp&country=ks-korea-south
이 주소의 사이트로 가서 해당년도..즉 1960년도를 클릭하면 그해의 세계 GDP순위가 쭉 나옴..
Commented by 페이비언™ at 2010/07/13 12:58
요새 이오공감에서 잠깐 벌어진 박정희 논쟁 때문에 이 글이 생각나서 다시 읽어봤는데, 정말 다시 봐도 재밌고 훌륭한 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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