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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농산물원조와 삼백산업의 발달
앞선 글에서 저는 "기본적으로 미국은 한국에 대해 확고한 구상이 없고 자주 오락가락했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1950년대의 대표적 산업 발달 과정을 통해 이 점을 좀 묘사해 볼까 합니다.


광복 직후의 미군정이나, 한국전쟁 직후의 상황을 둘러본 많은 미국 관계자들은 산업생산량이며 취업인구의 절대다수가 농업이고, 공업이나 수출은 전멸인 상황으로 볼 때, 농업국가로 가는 수밖에 없다든가 공업화는 어렵겠다 같은 의견을 종종 표출하곤 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한국의 공업화에 반대했는데, 한국이 싸워서 이를 쟁취했다' 같은 주장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건 미국의 확고한 의지라기보다는 피상적인 인상에 더 가까운 것이었고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가지도 않습니다.


우선 원조를 주는 쪽도 나름의 사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예산을 심의하는 의회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의 대외전략목표에 따른 필요라고 해도 남의 나라에 생돈을 퍼주는 걸 좋아할 리가 없지요. 의회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미국 대외원조의 중요한 부분이 MSA402와 PL480이라고 불리는 잉여농산물로 처리됩니다. 즉 원조물자를 조달하는 과정에 미국 농민들을 돕는다는 명분을 끼워넣어 의회의 반대를 달랜 것이지요.


1950년대를 대표하는 공업이 소비재를 생산하는 소위 3白산업 -면직물, 밀가루, 설탕-입니다. 제일제당의 이병철(삼성)이나 금성방직의 김성곤(쌍용) 등 3白산업의 실력자들의 면면을 보면 이들의 중요성을 익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업들은 하나같이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 공업의 원료인 원면, 원맥, 원당이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로 공급되고 있던 것이죠.

이중 일제시대부터 대표적인 산업 중 하나였던 면방산업을 보겠습니다. 원조로 들어온 면화의 배정은 특혜적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시장환율보다 훨씬 싼 공정환율에 배정되었기 때문에, 기업은 일단 한국정부의 배정만 받으면 당장 떼돈을 긁어들일 수 있었지요. 그럼 그 손해는 누가 본거냐. 한국 정부가 본 것이죠. 정부가 시장가격에 가깝게 경매를 했으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을 기업에게 쥐어준 격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만 하면 모든 사람이 능력이 되든 안되든 원면 배정을 받으려고 달려들 게 너무 뻔한지라, 한국 정부는 실수요자 원칙을 표방하게 됩니다. 즉 면방공장을 가진 사람에게만, 그리고 그 생산시설규모에 따라 차등적으로 할당하겠다는 겁니다.
따라서 면방업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시설용량 확장에 나섭니다. 이 경쟁에서 밀리면 원조물자 배정에 따른 환율따먹기에서 큰 손해를 보기 때문이죠. 이 결과 면방산업은 한국전쟁 중에 제일 큰 피해를 본 산업인데도 불구하고 1955년이 되면 벌써 전쟁 전 규모를 회복하는데 성공하고, 1957년이 되면 시설과잉에 빠져 수출을 모색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까지 내몰립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것은 정부가 산업보조금을 준 것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설령 한국 정부가 깊게 의도한 바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강력한 인센티브가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즉 이박사가 말로는 '중공업 당장 갖고 싶다!'고 골백번 노래를 불렀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뭉칫돈 지원을 타먹은 분야는 바로 이런 원조물자를 받은 소비재공업 분야란 겁니다. 그리고 이런 특혜가 계속되는데 상당한 뇌물과 정치헌금이 오갔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죠.

그럼 이제 이런 과정의 어두운 측면을 보겠습니다. 1955년경이 되면 면방업계는 원료의 97%를 외국산 원면에 의존하게 되고 국산원면은 시장에서 완전히 구축됩니다. 앞서 보았듯이 받기만 해도 커다란 이익일 정도로 헐값에 배정되고 있었기 때문에 경쟁이 될래야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제분업의 원료인 소맥에서도 동일한 일이 벌어집니다. 결과적으로 1950년대에 국내의 원료농업은 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양곡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 시기에 한국 정부는 필요량보다 많은 양곡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공급초과를 통해 식량가격을 낮게 유지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1951~58년간 식량의 수입의존도는 평균 15%이고 높았던 해(1953)는 30%를 초과한 적도 있습니다. 이는 결국 사회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한 결과 원조가 없었더라면 존재했을 높은 농산물가격과 그로 인한 농민의 돈벌이 기회를 뺏은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원조 농산물은 농촌에 타격을 입히고 반대로 도시와 공업, 유통과 상업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상업의 성장에 대해서도 다루어 보지요. GNP중 1차산업의 비중은 1952년의 50.8%에서 1955년에는 35.0%로 격감합니다. 반면 3차산업의 비중은 같은 기간 중 38.5%에서 51.9%로 늘어나 그 빈자리를 메웁니다. 3차산업이 성장하는 주된 원인은 원조물자의 유통과 소비에 따른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원조물자 때문에 국내에는 한국 자신의 실력으로 가능한 것 보다 훨씬 많은 물자가 유통되면서 그에 관련된 부문이 급성장한 것입니다.


이제 원조가 없었을 경우의 상황을 몇 가지 가정해 보기로 합시다.

1) 원조가 전혀 없었더라고 가정한다면, 일차적으로 전국민이 다같이 고통스러웠을 것이지만, 국내적으로는 농업이 제일 큰 이익을 보았을 것입니다. 수출 능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는 제 돈내고는 수입도 거의 못했을 거고, 국내 농산물들을 사먹는데 거의 모든 소득을 지출하는 방향으로 갔겠지요.

2) 그리고 이 상황에서 원조 없이 자력갱생식 공업화를 시도했다면, 공산권에서 많이 보던 방식으로 그나마 좀 생산이 되는 1차 산업들을 다시 쥐어짰을 것이 뻔합니다. 국민은 굶어죽는데도 출혈적인 가격으로 식량을 수출하고 있다든가, 식량은 농촌에서 생산되는데도 불구하고 먹고살만큼도 남겨주지 않고 몽땅 수탈해 가서 아사자는 주로 농촌에서 나온다든가 하는 식이지요. 공업발전을 위해서는 도시 노동자부터 먼저 먹여야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막대한 원조가 들어왔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고, 앞서 살펴본 것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조란 것은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 또한 비정상적인 것이었습니다. 국내적 노력이 산업화를 이끈 것이 아니라, 일단 주어진 원조가 압도적인 인센티브를 만들고 국내적인 노력이 거기에 반응하는 식으로 산업화가 진행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원조는 남한 전체로 보면 확실한 이익이었습니다. 없는 것 보다야 있는 게 확실히 좋은 거죠. 하지만 국내적으로 보면 그 혜택을 골고루 받은 것이 아니라 큰 이익을 본 부문(도시)과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부문(농촌)이 분명히 갈리게 됩니다. 즉 1차산업의 의존도를 줄이고, 2,3차산업이 발달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농촌이 타격을 받았다 한들, 자력갱생 공업화 때 발생할 무시무시한 결과에 비하면 새발에 피에 분명합니다. 그런 면에서 공업화로 가는 험난한 길을 완화시켜준 것이 원조의 역할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서두에 말했던 미국의 목표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지요.
미국은 한국을 농업국가로 몰고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본 대로 실제로는 농업에 타격을 주었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 농업을 작살내고 대신 우선 3白산업부터 키워주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운 후 원조 물자를 원면, 원맥, 원당으로 채운 것도 아닙니다. 미국 정부는 한국에 대해 면밀한 대책을 세우기 보다는 주로 그때그때의 자국 농업생산 사정, 그리고 그런 지역구의 입장을 대변하는 호랑이같은 상원의원들의 질타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적당히 남는 품목을 골라서 넘겼습니다.

이런 식으로 반공의 방파제로서의 후진국 사회안정이라든가, 잉여농산물 처리 같은 그때그때의 단기적인 필요성에 반응해 행동하다 보니까, 미국은 결과적으로 처음에 피상적으로 세운 구상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한국이 나아가게 만듭니다.

즉 미국이 원조라는 거대한 원동력을 제공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눈먼 원동력에 가까웠습니다.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은 주로 원조와 프리미엄 따먹기에 열을 올리고 있던 한국 정재계의 이기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엮어나간 예기치 않았던 결과들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by sonnet | 2008/07/28 08:49 | 정치 | 트랙백(2) | 핑백(1) | 덧글(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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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행인1 at 2008/07/28 09:01
미국은 당대의 남한이라는 듣보잡 국가에 관심이 없었고 남한은 막대한 원조를 받아내다 보이 어찌어찌하여 공업화의 기반을 이루게 된거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0:46
음... 다만 여기서 언급한 것은 주로 3백산업에 해당되는 이야기라서 1950년대를 넘어가면 유효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Commented by 로리 at 2008/07/28 09:01
어떤면에서는 놀랍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0:47
그런데 저 반응은 매우 한국적이라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7/28 09:19
뭐 본문과는 상관없는 잡플입니다만......

70년대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농촌에서 원면 재배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물론 상업적인 용도가 아니라 자가소비용으로요. 저희 어머님이 시집오실 때 혼수로 가져오신 이불이 전부 외가집에서 직접 재배한 목화로 자가제조한 물건이었거든요. 실, 천, 이불채 속에 든 솜까지 전부요. 지금도 본가 이불장 속에 고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솜틀집에도 절대 안 보내시더군요.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08/07/28 20:16
저도 80년대 중반에 시골에서 목화를 재배하는 걸 보았습니다. 팔았는지 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0:48
음 그렇군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Commented by 그람 at 2008/07/28 09:23
시장경제에서 인센티브가 잘 작동한 운 좋은 경우였군요. 확실히 전체적으로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0:50
업자 입장에서는 저런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기회가 있는데,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7/28 09:24
같은 원조라도 '원료' 위주로 구성되었다는게 재미있는것 같습니다. 가령 지금 서방세계에서 아프리카등으로 들어가는 원조는 '곡물'과 '의복'인데, 하나같이 '완성품'이죠. 더군다나 원조의 유통을 구호단체가 직접 관장하다보니 '유통 회사 및 유통 망'이 발생할 여지조차 없는게 현실입니다.

어쩌면 현재처럼 '직접적인 도움'을 목표로 하는 '잘 조정된 원조'보다 '원료를 던져주는' 원조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0:53
그게 원조를 통으로 주면 통으로 해쳐드시는 분이 많다 보니 그렇게 된거죠. 원조 주는 입장에서도 배분만 잘 된다면 왜 그렇게 손이 가는 방법을 택하겠습니까.
대개 긴급구조성 원조만 아니면, 점차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원조를 주는게 좋은데 받는 쪽의 수용능력도 어느 정도 필요하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07/28 09:50
보이지 않는손!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0:50
하하.
Commented at 2008/07/28 10:2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0:56
네. 트루먼이 맥아더를 해임하게 되는 과정 같은 것도 보면 그런 구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안모군 at 2008/07/28 10:45
음. 일제시대때 일본 내지가 겪은 길을 비슷하게 겪은 셈이군요. 물론, 일본이야 대만과 한국으로부터 후려쳐 사간 농산물을 공급한 것이라 약간 류는 다르지만, 폭락한 농산물 가격 덕에 농촌에서 잉여인구가 대량으로 발생, 도시화와 공업화 동력이 생겼다는 점은 유사한 듯 합니다. 다만, 자력갱생이었다면 단순히 농촌의 궁핍화로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게 지주체제의 고착화로 이어진다거나, 아니면 정치력을 낳아 사회전복을 초래했다거나 하는 문제도 생기겠죠.

다만, 원료 공급을 하더라도 이게 잘 돌아갈 거란 보장을 하기 힘든게, 내정 자체가 불안하거나 했다면(종족간 분쟁같은) 저런 식의 우연한 인센티브가 발생하긴 힘들었을 것이라는 거죠. 또 과거에 비교해서 지금은 원자재의 환금성이 좋다는 점이나, 또 이런 환금 후의 유출(송금 등등)도 매우 용이하다는 점도 과제가 되겠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1:01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전전 일본 우익과 군부 청년장교들도 농촌의 비참한 생활상에 대한 울분을 토했다는 이야길 본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농촌을 수탈해 공업화란 건 사실 철권에 자신이 없으면 감히 하기 힘든 일이긴 하지요.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7/28 11:05
눈먼 돈을 뿌리는 근시안적인 땜빵 정책의 승리군요.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한국에서와 같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양귀비 재배보다 더 벌이가 괜찮은 일거리를 주민들에게 제공할 수만 있다면 열렬한 친미파들을 양성할 수 있을텐데요.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7/28 11:07
국제 곡물가격의 상승이 아프간에서 양귀비 재배를 몰아내고 있습죠;;; 요즘 곡물 가격이 뛰니까 양귀비 밭을 갈아 엎고 밀을 키운다고 하더군요.-_-; 미군도 못한 일을 국제 곡물 가격의 상승이 해내고 있습니다. OTL;;;
Commented by 액시움 at 2008/07/28 15:16
그것도 보이지 않는 손의 승리군요. -_-;;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1:33
치안과 경제 두 가지를 동시에 잡을 필요가 있겠지요. 한국은 적어도 그런 식의 치안 문제는 처음부터 없었잖습니까.
Commented by 고어핀드 at 2008/07/28 11:28
운도 좋을 뿐더러 "소 발에 쥐가 잡히는" 횡재를 연상케 하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1:31
일단 원조가 들어오고 나서의 과정은 횡재라기 보다는 합리적인 행동자들에 의한 귀결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다만 저런 것은 지나고 나서는 잘 보여도 당대에 한 눈에 척 꿰뚫어 보긴 쉽지 않겠지요.
Commented by Ha-1 at 2008/07/28 12:29
그런데 어떤 문명이나 기업 심지어는 '한 사람'의 성장 조차 그러한 우연의 산물이 아닌 것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미국'조차도 그렇게 생성된 나라였던 것을.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1:29
운도 잡으려면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원조를 따온 것 자체도 죽도록 악다구니 써서 따온 것인 만큼 그것도 운빨만은 아닌 거죠.
Commented by Crete at 2008/07/28 14:03
sonnet님께/ 반론이 좀 늦었습니다. 트랙백으로 보내려는데 뭐가 문제인지 자꾸 글이 깨지네요. 그냥 링크를 달아 올립니다.

이승만 정부 시절 환율수준과 원조 규모에 대한 한미 갈등
http://crete.pe.kr/2374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1:05
네 잘 보았습니다.
Commented by 애독자 at 2008/07/28 15:28
야 이거 흥미진진한 논쟁인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1:06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다행입니다. ;-)
Commented by 개발부장 at 2008/07/28 16:36
예전에 그쪽을 잠깐 알아본 일이 있는데, 빈곤국가에 원조를 하려면 '돈을 주라'고 하더군요. 사실 그 나라 안에만도 한쪽에서는 굶어죽고 한쪽에서는 식량이 썩어나가는 일이 많다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1:06
그런 건 거의 case by case입니다. 현지 사정이 워낙 천차만별이어서요.
Commented by 어부 at 2008/07/28 21:06
결국 한국이라는 신흥 공업 강국(!)을 만든 것은 천조국이라는 '눈먼 시계공'이었군요.

이런 정책 집행 결과를 보니 다른 나라에서 그리 실패율이 높은 것도 이해가 갑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1:25
성공한 데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이긴 하지요.
어쨌든 한국은 이후로도 저런 과정을 5~10년에 한 번씩 한 너댓번은 더 하니까, 그런 걸 보아도 운빨만은 아닌거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7/28 21:18
오오, 생각없이 던진 것 치고는 멋진(?) 결과가 나왔군요.
어쩌면, '한강의 기적'이 진정으로 놀라운 이유는 이런 것? (...)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1:03
한강의 기적은 주로 60년대 후반~을 말하는 거라서 이 이야기하곤 또 좀 다른 맥락이 있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양과알 at 2008/07/29 00:30
대한민국도 대한민국이지만 미국도 생각보단 무식하게 예산을 때려 박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1:04
그게 당시 대한민국 경제 규모가 워낙 작아서, 미국 입장에서는 그게 그렇게까지 크게 느껴지지 않은 탓도 있지요. 한국 경제규모가 요즘같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요.
Commented by Belphegor at 2008/07/29 00:58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사실 개도국 원조의 가장 큰 걸림돌은 화물의 운송이라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우리나라는 그나마 운이 좋아서(?)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항만시설을 경유하는 편을 수정하는 방법을 쓸 수 있는데 아프리카를 비롯한 남아시아등 개도국이 밀집한 지역에는 쓸만한 항만 시설은 고사하고 해적의 위험까지 도사리고 있으니 그리로 배를 몰겠다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라고들 하더군요.

덕분에 70~80년대에는 개도국에서 기아로 죽어가는데 미국등지에서는 잉여 농산물을 바다에 수장(!)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게 그냥 항구 괴담이냐 아니면 어느정도 팩트가 있는 얘기냐 하는건데 그 이상을 찾을 수가 없네요...40년 짬밥을 자랑하는 선장님과 소주 한잔하면서 들었던 이야기라;;;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01:05
사실 항구까지 가도 그 다음이 더 골치지요. 항구조차 위험한 나라는 대개 육로는 더 심한 경우가 많아서 말이지요.
Commented by H-Modeler at 2008/07/29 08:42
보이지 않는 손보다 '검은 손' 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너무 시니컬한 걸까요?-_-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11:58
보이지 않는 손이 희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도 없는 걸 ;-)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7/29 11:48
덧글을 보다보니 콜롬비아에서 코카인 재배를 예방하기 위해 커피 재배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이야기가 퍼뜩 떠오르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9 11:59
콜롬비아의 마약퇴치 사업도 정말 영원히 가는 사업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미국이 다년간 원조를 주는 동안은 성과를 자랑하다가 원조 마지막 해에 갑자기 성과가 떨어지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요.
Commented by umberto at 2008/07/29 23:31
미국이 한국의 공업화에 확고한 반대입장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의 공업화에는 부정적 인상(정책이 아니고 인상이죠!)을 표하지 않았습니까? 미국이 격렬하게 반대했던 것도 아니고 확고불변의 농업개발정책만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싸워서 쟁취했다'는 표현도 맞지 않을까요?

조금 후대의 일입니다만 박정희의 군수산업 국산화 노력때도 미국측이 아무런 기술을 제공하지 않아서 대포를 분해해서 역설계하는 방식으로 제조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대충 시제품을 만들고 났더니 미국측에서 "그 제품은 부품의 오차가 얼마가 나고 어쩌고 그러므로 우리가 쓰고 버리는 무기나 갖다 써라."라고 했더니 박정희가 "그럼 왜 부품의 제원에 대해 자세하게 가르쳐주지 않았나? 가르쳐 줬으면 완벽했을 것"이라고 응수한 일화를 알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한국군의 무기생산에 반대하고 자기네 무기나 가져다 써라는 입장이던 그들도 박정권의 완강한 의지에 따라 자신들의 입장을 수정했죠.

물론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나 NL계열의 '자주경제'류에서 강조하는 현대사 인식이 좀 과장되어 있고 거기에 대한 교정이라는 측면에서 sonnet님의 글에 동의합니다만, 우리쪽 입장에서는 어쨌든 '싸워서' 까지는 아니라도 '부정적 태도를 견지하던 미국을 우리 입장으로 끌고 간 것'은 사실이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30 12:24
일단 원조를 따오는 과정부터가 싸워서(우겨서?) 쟁취한거니깐요. 어쨌든 이 시기의 한국의 요구는 억지스러운게 많고, 미국을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것 보다는 일단 우기고 나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미국과 거래하려면 종종 실력의 입증, 즉 "너 아니라도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걸 보여주는 과정이 필요한 듯 합니다. 미국과 전통의 특수관계라는 영국의 애틀리 수상도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인들과 협력을 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맥마흔법은 우리가 그들과 협력하는 것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은 어른이고 우리는 어린아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그들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좀 더 자세한 것은 http://sonnet.egloos.com/2661072 참조)
최근 영국이 미국과 공동으로 JSF라는 전투기를 만들 때도 비슷한 소리를 하는 거로 봐서 미국 스타일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미국이 다른 강대국들보다는 이런 방식으로 가능성을 증명해 보인 후에는 합리적으로 반응하는 편입니다. 소련 같으면 이렇게는 어렵죠.
Commented by reske at 2008/07/30 07:56
이런 부분은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정책에서 따라서 모든 사람이 이익을 보기는 힘들고 누구는 이익을 보고 누구는 손해를 보는데, 대개의 경우 이런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정치적인 논리에 따라 피해쪽만 강조하거나 이익을 본 쪽만 강조하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가령 뭐 삼백산업이 발달하면서 농민들이 손해를 봤지만, 농민이 아닌 사람들은 저렴한 곡물가격으로 이익을 봤다던가 이런식으로 양면적인 사고가 가능해야 하는데, 삼백산업으로 농촌이 망했으니 원조경제는 쓰레기다..라는식의 사고도 좀 안타까운듯.; 동전의 양면이라는 속성은 정책에 대한 논의에서 꼭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인 듯합니다. 다만 이익이 조금이라도 더 큰쪽을 택해야 하는 거겠지만..

그리고 최근 소넷님의 몇몇 포스팅에서 한 지적-미국의 對韓정책은 어떤 장기적은 로드맵을 갖고 이뤄진게 아니라 그때그때 임시변통식으로 이뤄졌다-는 부분 굉장히 공감이 갑니다. 저같은경우도 좌파까지는 아니어도 어느정도 미국의 장기적 플랜은 있지않았나 하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장기적 계획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쪽이 사실에 더 부합하는것 같습니다.

위에도 그런글이 있지만 참, 상국의 씀씀이는 소국의 연작들로서는 도저히 헤아릴 길이 없군요. (굽신굽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30 12:05
네, 대개의 정책이 그렇듯이 양면성이 있지요. 그런데 제가 아는 한 공업화 과정에서 농촌이 동시에 재미를 본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 '농촌'이 주로 식민지에 있다거나 하는 경우는 가끔 있었지만요.

이 글과 앞선 글들에서 다루는 미국의 정책이란 '경제'에 대한 것입니다. 안보 측면에서 말한다면 한국전쟁 이후에는 남한의 공산화를 저지하고, 미국의 우호국가로 유지한다 라거나 남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는다 같은 정책은 일관성이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MoGo at 2008/07/31 17:30
본문하고는 좀 상관없는 감상적인 리플이긴 합니다만..^^; 저희 외조부님께서 젊으실 적엔 밀밭이란 게 실제로 흔한 거였었나 보더군요. 제가 어렸을 땐 막연히 밀이라는 건 외국에서 나는 곡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밀밭이 어땠다..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걸 선뜻 이해를 못했더랬습니다. 생뚱맞지만,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라는 싯구도 생각나고 말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31 18:52
위에 다른 분들이 면화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씀을 해 주셨는데, 과거에는 내수지향적으로 다양한 작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도로 니치마켓용 농작물들이 등장하는 느낌이긴 하던데, 그쪽에 큰 관심이 없어 현황은 잘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8/08/01 22:00
"근대화나 도시화 같은 것은 필연적으로 농촌에 대한 수탈을 동반한다" 라는 학교 교수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전 학과가 학과인지라 중국에 관한 것, 그것도 약간밖에는 잘 모르는데 과연.

그리고 "너 아니라도 우리는 할 수 있다" ...요새 sonnet님의 군사 관련 포스팅이 뜸해서 그런지... 일본의 심신 기술실증기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1 22:08
저도 그 교수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안 그런 걸 본 일이 없는 듯.
일본의 기술 프로젝트로는 역시 MRJ가 눈길을 끄는 것 같습니다. YS-11 관련 책들을 몇 권 본 적이 있어서 그런가...
Commented by catch22 at 2008/09/13 02:56
잉여 농산물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sonnet 님의 글을 보니 전문적인 소양은 없으나 나도 한마디 하고 싶어 올립니다^^ 님도 어쨌든 잉여 농산물이 한국의 공업화의 힘이 되었다고 인정을 하면서 "원조가 없었더라면 존재했을 높은 농산물가격과 그로 인한 농민의 돈벌이 기회를 뺏은 것"이라길래 이사람 전교존가 햇는데 전교조건 아니건 사실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님도 말했듯 우리 농산물만 먹고 말 그대로 자력갱생하자 했다면...
기술 원조가 없어도 선진국과의 교류가 있어 뭘 좀 봐야 뭐가 이뤄지지 그렇지 않으면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 이북짝이 났을게 뻔합니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면밀한 계획을 세워 원조하지 않았다고 불평?하시는데 shanghai 를납치하다의 뜻으로 쓰고 있는 것이 미국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도 개입하지 않으려다 일본때문에 끼어 들었는데 극동의 미개국에 콧방귀나 뀌었겠습니까? 단 일본에 대한 전승을 거뒀으므로 한국을 완전 미국의 관리하에 두었으면 미국도 지금까지 혼란을 겪지 않았을텐데 똥친 막대기 같은 한국에 말하신대로 그때 그때 눈먼 원조를 하다 보니 지금같은 지경에 오지 않았나 하는군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14/10/25 03:09
뭔가 '다들 달 얘기를 하는데, 혼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얘길 하는' 느낌의 댓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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