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달라, 그것도 내일 당장 달라
50년대 미국의 극동 정책 변화와 이승만 정부의 수출진흥 정책(Crete)에서 트랙백

들어가면서

트랙백해온 글의 주된 논조 하나를 꼽는다면 "일본 산업 부흥을 위해 한국이 일본 공산품의 판매 시장이 되기를 희망했고 따라서 한국의 공업화는 억제"하자는 것이 미국의 대한정책의 핵심이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이야길 이런 바탕 위에서 풀어가고 있다. 내 입장은 다른데, 미국이 그런 생각을 좀 한 적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은 한국에 대해 확고한 구상이 없고 자주 오락가락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미국은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지 못한 채 억지를 쓰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이승만에게 종종 휘둘렸고, 또 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미국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이승만을 개XX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승만 스타일

브루스 커밍스는 논란이 많은 역사학자이고 나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편이지만, 가끔 탄복할만한 통찰력을 보여줄 때가 있어서 완전히 버리기엔 또 아쉬운 구석이 있다. 이승만에 대한 그의 인물평 또한 그런 것 중 하나이다.

이 이야기는 가슴아프기는 해도 1950년대의 남한이 창의적인 사업 -이 사업이 미국의 젖을 최대한 빨아먹는데 있음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에 적합한 장소였음을 시사한다.

이승만의 정치경제학은 어떤 것이었을까? 한 마디로 그것은 “일본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달라, 그것도 내일 당장 달라”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만개한 산업경제를 원했고, 신생산업들은 방어벽 -무엇보다도 일본으로부터의 방어벽- 안에서 보육되기를 원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결코 이승만 혼자만은 아니었다. 한 학술회의가 기억나는데, 누군가가 미시건 대학 출신의 훌륭한 학자인 린다 림(linda Lim)한테 말레이시아가 한국형 모델을 따를 것인가 하는 질문을 했다. 그녀는 천만에요 하고 극구 부인하면서 한국인들은 “맑스주의자들이에요. 모든 것을 다 원해요.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수출공간을 찾고 있을 따름이에요”하고 외쳤다. 그 말은 이승만과 그의 후계자들은 스딸린과 같이 만개한 자립적 산업기지와 이를 운영할 강철·화학·공작기계·전력을 원했다는 뜻이었다. 1930년대의 일본의 투자와 1950년대의 스딸린의 투자가 결합되어 김일성에게도 똑같은 것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승만의 욕망은 완전히 중층결정되었다. 남한은 또 하나의 일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이런 일에 노련한 대가였고, 미국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무상원조를 받아내어 195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이런 돈이 한국의 총수입 가운데 6분의 5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것도 ‘합법적’이거나 기록된 총액만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태가 자유주의와 자유시장을 미덕으로 여기는 미국인들한테 얼마나 모욕적이었을까! 이승만은 “동양의 흥정꾼” “회피의 명수”였다고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 1953~59년에 국무장관을 지낸 미국의 정치가 - 옮긴이)는 품평했으며,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의 “협박”에 대해 불평했다. 리처드 닉슨은 그를 도박꾼 아니면 공산주의자이거나 혹은 양자를 겸한 사람이라고 부른 적이 있으며, 엄포와 극단 정책의 면에서 공화당원들한테 교훈을 가르쳐주었다고 했다. 이승만은 미국이 의지할 데는 자기 밖에 없음을 알고는, 냉전으로 인해 주어진 대한민국의 엄청난 지정학적인 영향력과 판돈 모두를 싹쓸이하려는 강인한 포커꾼으로서의 타고난 기술을 이용하여 “전세계의 패자로부터 최대의 ‘자릿세’”를 뽑아냈다. 코미디언인 리처드 프라이어(Richard Pryor)처럼 이승만은 현세에서 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즉 자기 호주머니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우연하게 미국 납세자의 돈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조금도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이것이 비합리성이었을까 아니면 우정은의 말대로 “광기 속의 책략”이었을까? 그런 상상할 수도 없는 현금이 유입되는 마당에, 이승만이 아이젠하워한테 돈을 빼내는 여러 방법을 궁리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무엇 때문에 했겠는가?

Cumings, Bruce, Korea's Place in the Sun: A Modern History, W. W. Norton, 1997
(김동노 이교선 이진준 한기욱 역, 『브루스커밍스의 한국현대사』, 창작과비평사, 2001, pp.426-430)


자 이제 논란이 된 사안들 별로 이승만 스타일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정부 수립 초기인 1949년 4월 15일 한국 정부는 ‘5개년 물동 계획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킵니다. 이는 농업, 광업, 금속기계기구, 섬유, 화학 등 전 분야에 걸쳐 생산 및 수급 계획 그리고 수출입 계획 등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기계, 제철, 제강, 화학, 조선, 시멘트, 비료 등 중공업 육성도 동시에 추진한다는 내용이죠. 관련 자금은 ECA(Economic Cooperation Administration Mission on Korea) 원조 금액과 대외무역으로 조달할 계획이었고요. (Crete)

이는 커밍스가 말하는 이승만 스타일 “일본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달라, 그것도 내일 당장 달라”를 아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아무리 한국의 개발에 대해 호의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저 많은 일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들이댄다면 누가 납득을 하겠는가?

자금조달 또한 마찬가지이다. 1949년 시점에서 수출규모는 아주 작았기 때문에 대규모 개발에 필요한 거액의 외환을 이것으로 조달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럼 ECA원조가 남는데 한국전쟁 이전까지 미국은 남한에 깊게 빠져들거나, 커다란 재정적 부담을 질 생각이 없었다. ECA가 처음에 미국 의회에 요구한 원조금액은 3년 간 3억5천만불(실제로는 한국전쟁 때문에 1년치인 1억 1천만불만 집행이 됨)이었다. 미 의회에 제출된 ECA원조안이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하더라도 이정도를 가지고 저런 오만가지 사업을 동시에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ECA는 당시 미국에서 한국의 발전에 가장 낙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그룹이었지만 석탄, 화력발전, 비료 3가지 부문에서 제한적인 성과만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설령 이 시기에 어떤 호의적인 개발원조가 이루어졌다 가정 하더라도 한국전쟁으로 무위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전쟁이 없었다고 가정한다면 이번에는 실제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규모의 원조를 받았을 가능성이 없다는 게 문제이다.

이승만은 임기 말까지 모든 분야를 동시에 발전시키겠다는 균형성장론을 버리지 못하는데, 이 점은 그의 임기 중 기획된 경제개발계획의 현실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게 하는 한 가지 근거가 된다.



하지만 당시 이승만 정부가 간절히 바라던 자본재 70%, 소비재 30%의 원조 내용은 미국의 반대에 묻히고 결국 자본재 30%, 소비재 70%로 미국의 주장이 관철되죠. 전주가 우기는데 별 도리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Crete)

이 역시 전형적인 이승만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뭔가 미국이 한국의 정당한 요구를 꺾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지만, 이 때는 한국전쟁 직후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

소련이나 중국의 공업화 과정을 보면 지도자의 야심 때문에 농촌을 쥐어짜서 자본을 염출하느라 국민들이 굶어죽고 있는데도 곡물을 수출한다거나 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참혹한 전쟁 직후의 한국인들에게 소비재의 공급이란 없으면 좀 참고 살아도 되는 일상적인 수준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생존의 문제였을까? 이승만이 원하는 대로 주었으면 산업은 좀 더 빨리 발전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한국인들은 몇 배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미국이 한국전쟁 기간 동안 제공한 원조 중에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CRIK원조이다. 이것은 주로 한국민의 「생존유지」에 초점을 맞춘, 당장 먹고 입을 것을 대주는 유형의 원조였는데, 전쟁 다음 해인 1954년에도 전쟁중인 51년과 거의 맞먹는 양을 주어야 했고, 그 다음 해인 1955년에야 종료될 수 있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는 1950년대 한국의 수입대체공업화 결과이다. 한국의 수입대체공업이 생산량을 늘리면, 그만큼 수입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수입은 거의 그대로이고 소비가 늘어나 생산분을 먹어치우는 경향이 관찰된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공급이 부족해 실현되지 못한 잠재수요가 늘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문제는 저 판매용 소비재란 것을 국내시장에 매각하면 그게 대충자금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 세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바로 그 자금 말이다. 한국정부는 실제로 이것을 받은 다음에도 세출이 세입을 50%정도 초과하고 있었다. 다들 먹고살기에도 허덕거리는 당시 한국 국내 사정상 (앞서 본 것처럼 이승만이 꿈꾸던) 중공업 설비 같은 생산재를 충분히 매입해 줄 민간자본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정부가 국영기업을 차려 운영해볼 수도 있겠지만, 가장 잘 풀릴 경우에도 수 년 간은 원금회수가 힘들다고 봐야 한다. 그럼 결국 죽던 살던 방치할 게 아니라면 한국 정부의 운영자금은 미국이 또 따로 대주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게 그들이 일본만 배려한 탓일까 이승만이 욕심을 부린 탓일까?



이번에는 묘한 퍼센티지 그래프를 검토해 보기로 하겠다.

국제적 환경 변화와 미국의 한국공업화 억제 정책의 약화에 더해 이런 이승만 정부의 수출 진흥 노력 덕분에 이승만 정부 말기 3년간의 수출 실적은 상당히 인상적인 변화를 보입니다.

1958년 1400만 달러
1959년 2000만 달러
1960년 3200만 달러

59년도와 60년도의 전년도 대비 수출 증가율은 42.9%와 60.0%의 놀라운 신장을 보입니다.


위의 자료는 WTO 홈페이지에 가서 통계를 다운로드 받아서 직접 작성한 것입니다. 위의 도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미 이승만 정부 시절인 59년과 60년에 전년 대비 수출 증가율은 박정희 정부의 60년대 수출 증가율에 비해 결코 떨어지는 수치가 아닙니다. (Crete)


음,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저 그래프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이승만 임기의 마지막 2년만 들어 있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승만 임기 대부분이 들어가도록 표를 고쳐서 그려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그림은 아래 표와 동일하게 KDI에서 발간된 홍원탁의 자료를 갖고 그린 것임)



문제는 이렇다. 성장률(%)만 표시한 그래프는 착시의 소지가 크다.

(1) 수출규모가 매우 작을 때는 약간의 수출변동으로도 수십 퍼센트의 성장률이 관측될 수 있다.
(2) 전년도의 수출 실적이 매우 좋지 않았을 경우, 평균으로의 회복조차도 성장률로 잡힐 수 있다.

위 1959,60 양 연도의 통계는 그런 문제가 모두 해당된다. 바로 전 해인 1958년이 10년래 최저였던 것이다. 게다가 성적이 그저 그런 다른 해들을 몽땅 빼버린 관계로 착시가능성을 더 높게 만들었다.

저 그래프는 이렇게 해석해야 옳지 않을까?

이승만 집권 기간 동안의 수출은 일단 절대 규모가 매우 작았고, 상대적으로도 수입 대비 약 20% 정도에 불과했다. 수출 성장은 미미했으며 약 10년 동안 한국전쟁 마지막 해인 1953년을 고점으로, 1958년을 저점으로 한 박스권에서 움직였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3년이 고점이라는 것도 무척 기묘한 이야기이다. 보통 자국 영토 내에서 전쟁을 하고 있으면 파괴와 생산활동 혼란으로 생산능력이 위축되기 마련이므로 수출에도 그만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 표의 수출품 품목을 살펴보면 1953년의 수출은 거의 전적으로(전체의 3/4) 광산물, 특히 중석 수출에 의지한 것임이 드러난다. 뒤이은 54-55년에는 광산물 수출이 1/3까지 줄어들면서 수출총액이 폭락하게 되는데, 이는 전반적인 수출진흥책의 문제가 아니라 중석에만 관련되는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같은 기간 동안 농산물과 직물 수출은 대략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에는 어떤 나라든 상당히 무리한 정책을 펼 수 있기 마련이어서 이 시기의 결과들을 갖고 이승만 집권기의 정책을 대표하는 듯이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1953년의 주요수출품인 광산물의 경우, 1947~49년간 광산물 수출은 10% 미만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저정도 하락은 정상상황으로 돌아간다고 보아도 이상하지 않다.


이승만의 수출진흥책이 대단한 효과가 없었다는 것은 사실 미국 측의 시각이 아니라 한국 측 연구자들부터가 인정하는 것이다. 민간의 관심은 여하히 달러를 배정받아 수입을 할 수 있느냐에 집중되었지 수출에 모인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한국 수입소요량은 외원에 이해 자금이 조달되었으므로 이 기간중에 수출을 증가시키려는 노력은 많지 않았다. … 비록 정부는 수출진흥책을 통해서 수출장애요소를 제거하려고 했으나 수출은 별로 증가하지 않았다. 한국의 생산능력은 아직도 대단히 적었고 기업부문에서는 미국원조불 배정과정에서 보다 나은 영리적 기회를 추구하게 되었다. … 이 기간 전체를 통해서 대외무역정책상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미국원조불과 국제연합사령부에서 나오는 외환수입을 어떻게 배정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 이 기간[1953~60] 중에 수출은 신장되지 못했지만 약간의 수출진흥책은 있었다. 그러나 이 수출진흥책은 적극적으로 수출을 진흥하기 보다는 수출에 대한 불리한 요소를 방지하는데 그 중요성이 있었다. (김광석&Westpal, 『한국의 외환,무역연구』, p.52, 59)



이 표는 1인당 GNP가 한국 정도인 나라는 대략 어떤 경제통계를 보여주는가에 대한 것이다. 맨 오른쪽이 비교대상이 되는 평균적인 국가 모델이고 왼쪽과 가운데는 1955년과 1960년의 한국의 실제인데, 다른 것은 대충 비슷한데 반해 수출의 비율만큼은 놀랄만큼 작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 이 표는 수입품을 그 성격에 따라 나눈 것인데, 공작기계 같은 생산재를 자력으로 생산할 능력이 없는 후진경제인 한국 치고는 1950년대 내내 투자재 수입 비중이 굉장히 낮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이 표의 중간재/원료재는 주로 연료와 비료로 국내 가공이 되는 품목들은 아닌데 주의하자.

투자재 비율이 이처럼 낮다는 사실은 앞서 비판받았던 "자본재 30%, 소비재 70%로 미국의 주장이 관철"이란 논점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는 미국이 공적원조에 자본재 30% 약속을 지켰다고 간주한다면, 한국(정부+민간기업) 자신의 자본재 수입 비율은 그것보다도 훨씬 낮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엔 달러만 배정받아 소비재를 수입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시대로 유명하고 그에 관련된 수많은 비리사건을 당시 신문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민간부문의 자본재 수입 비율은 극히 낮았을 것이라고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도 자기 돈으론 안 하는 것을 미국이 원조로 대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긴 어렵지 않을까?


sonnet님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경제개발5개년 계획 같은 계획 경제안이 장면 정부에서 비롯해서 박정희 정부에서 꽃 피운 정책으로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Crete)

이 지적은 내가 앞선 글에서 묘사한 상황을 조금 잘못 이해하고 있다. 앞선 글에서는 이승만 정부 말기인 1958년에 부흥부 산하에 산업개발위원회가 설립되면서 시작된다고 밝혀둔 바 있다. 이 위원회 위원 중 상당수는 제2공화국에도 유임된다. 이들은 조직과 인력, 결과물 면에서 최종적인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직접적인 연결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다만 연속성이 있는 이 위원회에서도 정권이 바뀌자 앞서 이승만 스타일이라고 묘사한 특유의 억지스러움이 계획에서 제거되어, 후대에 실제로 실시된 계획에 가까운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다는 점이 특기할만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이승만 정권의 어떤 정체성이 이 계획의 병목이었을 가능성을 추측케 한다.


결론

어느 나라에도 경제성장을 반대하는 대통령은 없다. 특히 다른 대가 없이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 그렇다. 문제는 정책목표들이 상충될 때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에 있는 것이다.

이승만에게서 인정해줄 점은 경제성장을 준비한 대통령이라는데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웠던 시기에 미국을 후려쳐 원조를 최대한 짜내 국민들과 나눠먹으면서 위기를 넘겼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때 원조밀가루 나눠먹은 사람들의 후손이 바로 우리인 만큼 그런 점은 인정해줄 수 있다. 반면 1950년대의 원조는 받으면 받을수록 후대의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수출을 구축하는 측면이 있었다. 원조와 수출이라는 목표가 충돌할 때 이승만 정부는 언제나 원조를 선택했다. 이 점을 부인할 수 있는가?


부기. 논평자의 의견에 대한 간단한 논평

앞서 내 글이 극도로 편파적이라는 평가를 보고 사실 좀 놀랐다. (사실 누가 자기 글을 편파적이라고 생각하겠냐마는...)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런 평가가 내려진 진짜 이유는 아래와 같은 구절에 있는 것 같다.

a) 박정희 전 대통령을 무에서 유를 창조한 영웅으로 평가하는 요소로 삼는 것은 합리적인 해석은 아니라고 봅니다.
b) 즉 자신이 선호하는 지도자의 업적을 강조하기 위해 전임자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희화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Crete)

필자는 박정희를 무에서 유를 창조한 영웅으로 평가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밝혀 둔다. 아울러 자신이 선호하는 지도자의 업적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다는 해석은 더더욱 부당하다는 점을 지적해 두겠다.

사실 앞선 글에서 1964년에서 이야기를 끊은 것은 그 뒤로 가면 박정희 시대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를 해야 해서 일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글은 박정희를 영웅으로 평가한 것이 아니고, 일부러 다루지 않은 것이다. 아울러 한국현대경제사에서 1964년을 경계로 해서 시대를 나누는 연구는 산처럼 있다. 그걸 내가 어떤 의도를 갖고 택했다는 생각은 버려주시기 바란다.
by sonnet | 2008/07/26 09:45 | 정치 | 트랙백(3) | 핑백(1) | 덧글(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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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길 잃은 어린양의 놀이터 at 2008/07/26 23:38

제목 : 이승만 시기 수출정책에 대한 잡상
지난번에 sonnet님이 올리신 「미국의 대한원조와 경제성장의 시작」이라는 포스팅에 반론이 하나 달렸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sonnet님이 「일본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달라, 그것도 내일 당장 달라」라는 포스팅으로 다시 반론을 제기해 주셨으니 저는 사족을 잽.....more

Tracked from umberto의 집: .. at 2008/07/30 00:59

제목 : 2mb는 이승만을 본받아라.
미국 말로만 '중립' 실제론 일본 두둔미국의 괘씸한 .....more

Tracked from theimpetuous at 2008/08/18 23:02

제목 : 대인배 이승만
Sonnet님의 블로그에서 트랙백: 일본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달라, 그것도 내일 당장 달라본 블로그에서도 포스팅한 '친일'의 문제 때문에 順命大帝님의 블로그가 시끄럽다. 덧글의 행진을 보면 친일 자체에 대한 말도 많지만 이승만이라는 정치인, 이승만 정권에 대한 말도 상당히 많았다.이승만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일전에 읽은 냉전에 관한 책에서 이승만에 대한 기술을 생각해냈다. 초강대국의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07/28 08:49

... 앞선 글에서 저는 "기본적으로 미국은 한국에 대해 확고한 구상이 없고 자주 오락가락했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1950년대의 대표적 산업 발달 과정을 통해 이 점을 좀 묘사해 ... more

Commented by 이름없는괴물 at 2008/07/26 10:02
이승만도 당시의 다른 동기(?)나 후배들(?) 못잖게 대인배道를 지향한 양반이었군요.
만약 당초 플랜대로 되었더라면... 으하하하하...ㅡ.ㅡ;;;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6 13:15
될 수만 있으면 좋겠지만, 그걸 진짜 시도하면 국민 입장에서 녹록한 과정은 아니었을 겁니다. 공산권에서 그런 걸 확 밀어붙였을 때 어떻게 되는지 많은 사례가 있거든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7/26 15:52
공산권 이외 지역에서의 대표적인 사례로 팔레비 치하의 이란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돈을 퍼붓고는 결국 회교혁명을 일으켰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7 16:11
백색혁명™ 한글판을 읽던 기억이 새록새록 ;;;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7/26 10:03
브루스 커밍스의 글을 읽으니 우리의 위대한 국부 리박사의 진면목에 전율할 따름입니다. 뭐 그 시절에는 그것도 나름 방편이었겠지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6 13:13
이박사는 근성가이라고 할 수 있지요. 독립운동을 아무나 했겠습니까.
Commented by 마나™ at 2008/07/26 10:33
사회과학을 하려면 확실히 통계를 제대로 해석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물씬 드는군요=_=;;;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7/26 10:46
종종 여기저기에 통계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나 사기술의 일종으로 여기는 자들이 보이더군요. 뭘 하든 뻘소리를 안 하려면 통계를 "제대로" 해석해야 겠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6 11:43
저 퍼센트 그래프의 추세는 의미가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출성장은 59년부터 시작된거라고 볼 수도 있는데, 제가 본문에 언급한 것처럼 부분적으로 이를 반대하는 근거도 있다는 거죠.
원래 역사를 어떤 기점을 중심으로 몇 개의 시대로 끊는다는 게 인위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Commented by Alias at 2008/07/26 10:39
좀 뜬금없는 리플이지만, 이번 논쟁은 뭔가 슬슬 패가 만들어지는데도 누구도 드랍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 포커판을 구경하는 느낌입니다....-_-; 좌우지간 뽀찌(개평) 좀 굽신굽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6 11:43
또 적당히 둥그스럼하게 마무리하는 스킬도 필요한 것이겠죠. 조언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7/26 10:41
앵벌이 능력도 독점적 위치에 있어야 제대로 발휘되는군요. 미국이 대안만 있었으면 이승만을 당장 갈아 치우고 싶었겠습니다.
미국이 그동안 집중적으로 원조해 준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닐텐데 그나마 성공사례라고 할 만한 곳이 한국 정도 밖에 없을까요. 예전 사례 연구만 제대로 해서 뭔가 교훈을 얻었다면 가령 요즘 이라크에서 밑빠진 독에 물 붓는다는 소리는 안 들을 만도 한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6 13:17
미국도 워낙 짜증이 나니까 에버레디 계획 같은 이박사 축출 계획을 다 세웠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 이박사를 몰아냈으면 남베트남 같은 파국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아프간 전 직후에 미국서 나온 nation building 연구들을 보면 독일/일본 사례가 많아서 전 황당했습니다. 앞으로 상대할 나라들이 선진국인줄 아나...
Commented by Empiric at 2008/07/26 10:48
좁은 해동에서도 상국이나 로서아에 범접할 대인배가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여 그저 감개무량할 뿐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6 13:19
누가 뭐래도 만만치 않은 인물임엔 틀림이 없죠.
Commented by 양과알 at 2008/07/26 10:53
이승만 이분이 외교술은 정말 대단한듯. 전주에게 떼쓰기도 쉬운 일은 아닐텐데 말이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6 13:18
사실 독립운동이란 게 아무것도 없이 전주들에게 서포트해달라고 돌아다니는 그런 유형의 작업 아닐까요? 특히 이승만은 외교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을 주장햇으니까 더더욱.
Commented by 무시무시 at 2008/07/26 10:57
솔직히 어떤 의미로서는 김구 대신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된것은 다행스런 일이라고 할수도 있을껍니다. 어쨌든 그는 돈을 끌어오는데에는 선수였으니깐요. 6.25때에도 수많은 군수물자를 무상 무보고 획득...하는데 성공한 사람이라고도 하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6 13:21
이승만에 비하면 김구는 국제적인 시각이나 그런 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골라 대통령을 맡겨야 한다면 다시 뽑으라 해도 김구보다는 이승만일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무시무시 at 2008/07/26 11:02
결국 미국의 무상 지원 한계점까지 끌어왔다는데 있어서 대통령 되길 잘했고 이어서 시간이 흐른후 대통령에서 잘 쫒겨났다라고 볼수밖에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6 13:22
뭐라고 해야 하나.. 효용을 다하고 물러났다는 느낌이 있지요.
Commented by 하이얼레인 at 2008/07/26 11:44
최근에 저 당시 관련 개략사를 좀 보고 있는데에- 정말 안드로메다급 협박 및 블러프의 달인( --); 이쯤 되면 예술이라능 ㄱ-;;

...하지만 그 아래에서 피어난 온갖 시꺼먼 것들은 매우 안습 ㅡㅜ (특히 철판정신 ㄱ-)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6 13:26
소위 제3세계식이잖아.. 시대나 상황을 감안해 이해는 하는데, 별로 정서적으로 동류가 되고 싶진 않지.
Commented by 그람 at 2008/07/26 12:20
맑스주의자에서 웃었습니다. 이박사가 맑스주의자라니 ㅜ.ㅜ

아무것도 모르고 외교에 귀신, 내정은 x신 평가를 들었을 때는 의아했는데 세상에 듣보잡 중에 듣보잡 국가원수 주제에 상국 승상과 대미천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여 입에 오르내렸다니 ㅠ.ㅠb
미국에서 딴 박사 학위는 거져 얻은게 아니었군요! 그 좋은 머리를 저렇게 쓸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내정은 진짜로 영 아니었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6 13:25
미 국무부는 해방 전에도 이박사를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눈치를 보이는데, 아마 그 전부터 엄청 괴롭혔지 않나 싶을 정도입니다.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07/26 12:40
이글들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 두가지.

1.사람들은 사물을 볼때 자기가 보고싶어하는것만 골라본다
2.통계는 숫자만 조금 바꾸면 뭐든지 되는 사기라고 불쾌한듯 말했던 영국사람.

글을 제대로 읽고 통계를 끊어치기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지말입니다.
sonnet님의 글 잘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6 13:36
여기를 보시면 왜 그 연도부터 시작했는지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http://sonnet.egloos.com/3836641#11724814.02

그런데 제 의견은 저 점을 감안해도 집계가격 차이는 제가 그린 그래프의 추세를 틀리게 만들 정도로 크지는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ohnemich at 2008/07/26 15:35
예전에 이승만 정부가 대미원조구성을 소비재 3할, 자본재 7할을 요구했었을 때, 미국의 반대로 소비재 7할, 자본재 3할로 관철되었다는 기록을 읽으면서

"한국경제의 부흥을 포기하고 일본경제에 종속시키려고 한단 말인가!" 라고 생각했었는데, sonnet 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게 그게 아니었던 것이었군요.

진짜로 한국측 요구대로 실행되었으면, '고난의 행군' 뺨치는 시절을 겪었겠습니다.OTL

PS1. 이런면에서 리박사께서는 제 2 세계의 지도자에 더 어울리시는 분이라 생각됩니다. 언행만 하시더라도 특유의 공갈이 들어나지 아니하시겠습니까?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7 16:13
사실 이대근 같은 학자는 농산물 원조를 잔뜩 받은 게 공업화에 도움이 된 요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이게 좀 야릇한 메커니즘인데, 다음 글 정도에 다뤄 보겠습니다.
Commented by monsa at 2008/07/26 18:10
정전협상 사인 안 할때 알아 보긴 했습니다만, 옆 때국의 인물에도 뒤지지 않는 대인배시군요. 똘끼로만 따지면 처칠에게도 안 밀릴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7 16:12
네, 정전협상에 서명하지 않은 탓에 지금도 손해를 보고 있으니...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08/07/26 19:51
글 잘 읽고 갑니다.
북한을 보면서 쟤들은 뭔 별종인가 싶었는데... 소넷님의 글을 보니 역시 우린 한 핏줄이었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6 20:54
요즘 생각하면 닮은 구석이 많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7/26 20:11
저, 저, 뻥카 저거!!!

...미국 입장에선 개XX를 넘어서 에일리언 유충 급의 골칫거리였음엔 분명하군요.
그래도 이승만이 당시 지도자여서 좋은 점이 있었다는 건 정말 신선한 충격.
(아니, 진짜로...)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7 16:23
역사적으로 볼 때, 강대국이 자기가 뒤봐주는 약소국에 너무 말 잘듣는 지도자를 세우면 뒤끝이 안좋은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강대국이 피상적으로 볼 때 말을 잘듣는다는게, 자국민이 보면 외세의 주구이고, 객관적으로 보면 다른거 없이 무능한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어서 말이죠.
오히려 잘 개기는게 권력본능도 충실하고, 자생력 있는 후보의 기본자질이랄까요.
Commented by joyce at 2008/07/26 20:31
일본이 가진 모든 것을 달라!
가 외교 정책도 아닌 무려 '정치경제학'이라는 데 ㄷㄷㄷ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6 20:54
으흐흐...
Commented by 키치너 at 2008/07/26 21:07
저정도 능구렁이 스킬을 장착못했으면 미국에서 학위따기도 아무래도 힘들었겠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7 16:24
학위 정도의 문제를 뛰어넘는 듯합니다.
Commented by nishi at 2008/07/26 21:42
상국의 하해와 같은 은혜와 태조의 찰거머리같은 근성을 동시에 확인하게 되는군요.;
하지만 제가 종전후 미국의 납세자도 아니고 태조를 나쁘게 볼 이유는 전혀 없는 거겠죠;;
전후세대가 혜택을 보았으면 보았지..(나쁜짓도 많이 했지만요.. 가령 방위군 같은...)

그나저나 상국은 정말 대인배군요. 태평양 건너서 피 흘려주고 젖도 주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7 16:26
네 그런 것이죠.
Commented by あさぎり at 2008/07/26 22:47
세상에 있는 3가지 거짓말중의 하나가 통계라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ㄷㄷ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7 16:27
사실 통계란 건 자신을 속일 때도 많잖습니까. ;;
Commented by BigTrain at 2008/07/26 23:23
해방 직후~제1공화국 시절의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새롭고 놀랍습니다. 역시 한국이 제3세계(어떤 면에서는 아직도) 출신이라는 걸 확인시켜준다고 해야할 지...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7 16:28
한국현대사야 워낙 빠르게 변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umberto at 2008/07/27 03:26
이승만에게서 인정해줄 점은 경제성장을 준비한 대통령이라는데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웠던 시기에 미국을 후려쳐 원조를 최대한 짜내 국민들과 나눠먹으면서 위기를 넘겼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
북쪽에 있는 뽀글머리 누구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가끔 이승만의 외교를 칭찬하는 사람에겐 김정일의 외교도 맘에 드냐고, 김정일의 외교를 칭찬하는 사람에겐 이승만의 외교도 좋더냐고 묻고 싶어 집니다. 물론 그 두부류의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는데다 저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도 싫어하겠지만.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07/27 09:46
이승만이 미국과 대결하면서, 또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면서 미국의 원조를 받으려 했던가요? 비교 대상이 될 걸 비교하시길.
Commented by 액시움 at 2008/07/27 12:52
북측의 왕고님도 알고 보면 모에합니다.
http://www.munpia.com/bbs/data/pds_4_1/1143881329_kim_ksw3108.jpg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7/27 16:12
죄송한데 이거 포비든 뜹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7 16:30
김정일이 중국에서 삥을 뜯는 과정은 이승만과 확실히 흡사한 데가 있어 보입니다. 어쨌든 전통의 후견국이니깐요.
Commented by umberto at 2008/07/27 17:07
산마로//장기적인 산업발전계획을 세워놓고 그것을 실행한 능력과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 입니다. 그게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의 차이지요. 제가 박정희는 좋아하지 않지만 그점은 확실하게 인정합니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산업발전계획이 없이 남의 나라에서 삥이나 뜯는 방식의 원조로 때운다는 측면에서 뽀글머리와 승만옹의 차이가 있습니까?

미국과 대결, 자본주의 근본적으로 부정. 크흐. 세상 단순하게 보시니 참 좋으시겠습니다.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07/27 22:12
단순하게 보는 건 님이신 건 같군요. 원조 받았다, 그러니 미국의 폭격을 걱정하느냐 마느냐 테러 국가로 지정되느냐 마느냐는 상관없이 오십보 백보다? 뭔가 공통점이 하나만 있으면 다 똑같다고 볼 정도로 단순하게 사셔서 참 좋으시겠습니다.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07/27 22:23
주인장 글에도 나와 있듯이 김일성이나 이승만이나 계획은 다 있었지요. 심지어 우리가 북쪽 애들한테서 베껴왔다는 말까지 나도는데요? 계획을 실행할 국가 체제가 달랐을 뿐이죠. 원조를 받았으니 국가 체제 차이가 의미가 없다면 우리가 공산주의 체제라도 장기 계획만 있었으면 박정희와 같은 성과를 거뒀을 것이라는 말? 이승만은 남한의 체제 자체를 결정하는 데 한몫을 한 사람이고 그것만으로도 뽀글머리와는 전혀 다릅니다.
Commented by umberto at 2008/07/28 12:17
낄낄낄... 그래서 이승만 정권 당시의 한국 상황이 시장질서와 자유주의가 지켜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였습니까? 조선일보 같은 올드라이트나 안병직 같은 뉴라이트나 이승만을 무슨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아버지 정도로 삼으려는 일종의 주자학적 정통론을 세우려는 짓을 하던데 말이죠. 당신 발언도 그런 부류 같습니다. 남의 블로그에서 길게 논쟁하기 싫고 도대체 이승만의 국내정책에서 어디가 자유주의적이고 어디가 민주주의적이고 어디가 시장주의자 든가요? 낄낄낄. 그 놈의 도통론은 수꼴들의 족보 만들기에 불과해 보이는데 말이죠.
Commented by 액시움 at 2008/07/27 12:50
결국 빨갱이니 파랭이니 하고 나누는 것은 의미없는 짓이군요.
어차피 근본은 다 그 족속이 그 족속이니 -┏;;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7 16:29
아니 또 그 안에 차이도 있는거니깐요 흐...
Commented by 아이스맨 at 2008/07/27 18:14
리박사는 한마디로 [강도]였다....네요....
그 강도질로 먹고산 민중의 후예가 우리고....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7/27 22:37
[ 리박사는 '임꺽정'이었다 파문 ] 입니까... ( 오오, 민중영웅 리박사 오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30 12:30
밑천이 없는데 먹고는 살아야겠고...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08/07/27 19:07
농업, 광업, 금속기계기구, 섬유, 화학 등 전 분야에 걸쳐 생산 및 수급 계획 그리고 수출입 계획 등을 망라...

가히 한국판 "대약진 운동"이로군요!

다만 모택동과는 달리 "자력"이 아닌 "미국의 원조"로 달성하려고 했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p.s 미국에 대한 비판자나 예찬자나,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과대평가하기는 똑같다는 생각입니다. 정확히 미국의 정책은 "한국? 잘 몰라~"가 정답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o-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30 12:35
저게 또 고스쁠란이 했듯이 공장 하나하나의 생산량을 할당하고 통제할 수 있는 그런 행정력을 등에 업은 계획이 전혀 아니거니와, 당시 한국 정부의 능력으로 그런 일을 할 수도 없었겠지요. 하여간 욕심이 앞섰다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한국이 볼 때 미국은 엄청난 힘과 부와 실력을 가진 나라이니까, 계속 모든 걸 다 알 것 같다는 환상을 갖기 쉬워지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Ⅱ at 2008/07/27 22:37
우남박사께서 아니 계셨다면, 우리가 어찌 이리 살고 있겠습니까.
과연 창업주다운 위용이십니다. 홍무제에 비길만 합니다. 낄낄낄.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30 12:36
그런 의미에서 장면 총리 같은 사람은 저런 난세(?)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옌데처럼 근성을 과시하는 최후도 아니고...
Commented by sanister at 2008/07/28 02:46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도 의외로 대인배가 많을지도요.
외교상으로 떼쓰는 전략이 확실히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되는것 같습니다. 뒷처리가 곤란해지는 경우가 가끔 생기는 것 같긴 합니다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30 12:37
뒷처리가 곤란해질 때는.... 얼굴마담을 교체한 후.
"안녕하십니까. 이번부터 새로 담당하게 된 아무개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꾸벅"
Commented by umberto at 2008/07/29 23:33
트랙백 좀 해가겠습니다. 꾸벅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30 12:37
네, 트랙백은 자유롭게 하시면 됩니다.
Commented by 알렉세이 at 2008/07/31 01:52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위에 어떤 분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승만은 국제 정세를 이해하고, 자신의 위치에게 가장 유리한 옵션을 선택하는
정채력의 소유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친일세력을 등용한 것도 어느 정도 현실론적 입장에서 불가피한 면이 있었지요.

이런 대담한 포카의 최고봉은 바로 반공포로 석방사건이었겠지요.

그에 비해 김구는 정치력 및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가 아쉬운 것이 우리 현대사이고
지, 덕, 체를 겸비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31 09:11
네, 전반적으로 동의합니다.
Commented by 키시야스 at 2009/01/10 15:22
전 이 글을 읽어도, 별로 이승만이 김구보다 대통령이 되었어야 할 이유를 찾기는 힘드네요, 이명박이 경제를 살려줄꺼라 생각하면 그를 재경부 장관으로 앉힐 대통령을 뽑아야지 그 본인을 대통령으로 뽑는것이 아니듯, 어찌되었건 독립운동의 주축이었던 김구를 구심점으로 이승만이 외교부 장관을 맡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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