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by sonnet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rss

skin by 이글루스
로버트 포겔의 철도 논쟁, 그리고.
이왕 말이 나왔으니, 6,7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한 박정희의 기여도 같은 종류의 논쟁을 근본적으로 뒷받침해줄 근거나 연구는 대략 어떠한 형태여야 하는지에 대해 내 생각을 좀 적어 보기로 하겠다.

흔히 역사에는 가정이 의미가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학계에는 가끔 기인이 있기 마련이다. 의미가 없다던 what if를 철저하게 추구해 레전드의 반열에 오른 사나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Robert W. Fogel이다. 1960년대 초에 미국 경제발전사에 관해 그가 내놓은 연구는 지금 논쟁이 된 주제, "한국 경제발전에 있어서 박정희의 기여도"를 평가하는 방법론을 개척하는데 있어 귀감이 될 만하다.

Fogel, R. Railroads and American Economic Growth,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64


우선 이 책의 내용에 대한 간단한 요약에서 출발하도록 하자.

1840년부터 1960년까지 신문기자들, 경제인들, 전문역사가들은 철도가 19세기 미국에서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만든 유일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결정요인이라는 데 동의했다. 철도혁명은 서부개척에 이은 농업의 발달, 근대적 기업의 형성과 발달, 산업발전과 정착, 도시화 패턴의 확립, 국가의 주요 지역 사이의 무역구조의 수립 등을 가져왔다. 1891년에 유니온 퍼시픽(Union Pacific) 철도회사의 사장인 시드니 딜론은 미국인의 복지가 국가 철도 시스템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철도가 파괴된다면 즉시 전국의 미국인들에게 닥칠 엄청난 고통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3]라고 말했다. 70년 후 경제사학자인 로버트 W. 포겔은 감히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연구를 했다. 그는 19세기의 미국에서 철도를 제거한 후 그 결과를 평가했다. 그는 철도의 부재가 1840년에서 1890년까지의 경제성장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그 이유로 그는 운하와 강에서 운행하는 배가 마차의 도움으로 철도로 운반하던 물건을 운송할 수 있으며, 상품을 판매하는 시장에서 철도는 그다지 필수적이지 않으며, 철도가 기술혁신을 자극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포겔의 주장을 다시 반복하기 전에, 우리는 그의 주장이 담고 있는 가정과 의도를 조심스럽게 이해해야 한다. 계량경제학의 입장에 선 경제사가인 포겔은 역사가는 과거의 사건뿐만 아니라 그 대체 가능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 그는 철도가 없는 19세기 미국 경제의 모델을 만들었으며, 그 기간의 경제적 실체에 대한 반(反)사실적 모델을 비교했다. 철도의 효과를 판단하는 그의 유일한 기준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철도가 경제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는 일반적인 생각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포겔은 다른 대체 운송수단이 철도 시스템을 대신할 수 있는지 판단했다.
철도혁명의 지지자들이 자주 제기하는 주장 중의 하나는 농산물의 경우 장거리 철도운송에 의해서만 여러 지역으로 농산물을 분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철도가 식료품을 농장에서 도시 중심부로 운반함으로써 산업화에 도움을 주었고 이민자들이 중서부에 정착할 수 있도록 고무시켰다고 주장했다. 간단히 말해서, 철도에 의해서 여러 지역 사이의 상호 경제교류가 가능하게 되었고 전국적인 규모의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겔은 서부로의 인구이동이, 적어도 초기 단계에는 철도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1840년까지 약 40퍼센트의 미국인이 뉴욕 서부와 펜실베이니아 그리고 남부 해안의 여러 주(州)에 살았지만, 당시까지 철도는 동부에서 이들 새로운 인구밀집 지역으로 확장되지 않은 상태였다. 서부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주로 자연 수로와 운하에 의존했다. 게다가 그들은 비록 동부의 시장으로 그들의 생산품을 운반해주는 철도는 없었지만, 대규모 농사를 시작했다. 1840년, 미시간 주, 오하이오 주, 켄터키 주, 테네시 주, 인디애나 주, 일리노이 주, 미주리 주를 합쳐서 전체 국가 농작물 수확량의 50퍼센트를 생산했으며, 이 시기에 이들 주에는 겨우 228마일의 분산적인 철도만이 운행 중이었다. 곡물은 목화와 마찬가지로 수로를 통해서 아일랜드 주에서 남부로 운반되었다. 1860년에 뉴올리언스로 운송된 목화의 90퍼센트가 거룻배나 일반 선박을 이용해 운반되었다.
19세기 초에는 항해가 가능한 수로와 짐마차가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날랐으나, 그 후 교통량이 증가하자 그런 수단으로는 더 이상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인구는 계속 증가했고, 그에 따라 더 먼 곳의 농토까지 경작해야 했다. 따라서 철도와 같은 운송수단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포겔은 당시에 사용될 수 있었던 수로를 찾아내기 위해서 모든 농장의 지형적 구조를 세심하게 조사했다. 그는 대부분의 토지가 강이나 운하에서 직선거리로 평균 40마일 이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만약 일리노이 주, 아이오와 주, 캔자스 주에 추가로 5,000마일 길이의 운하가 건설된다면 철도를 이용하는 농지의 93퍼센트가 운하나 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게다가 기존의 공공도로를 개량한다면, 운하나 강을 이용할 수 있는 면적은 더 늘어날 것이다. 포겔이 주장한 운하 확장과 도로 개발 계획은 19세기 미국의 기술적, 경제적 능력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포겔의 분석이 옳다고 해도, 그가 제안한 대체 기술방법을 실행에 옮겼을 경우에는 많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포겔은 철도와 수로의 운송비용을 비교 계산하고 겨울에 북부지방의 운하가 얼어붙는다는 사실과 운하용 선박을 이용한 운반이 더 느리고 운하 수송시에는 물건을 자주 다른 배에 옮겨실어야 하는 불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농작물의 지역간 운반에 운하보다는 철도가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그 차이 - 1890년 국민총생산의 1퍼센트 이하(0.6퍼센트) - 는 19세기 중반 이후 미국의 철도가 혁명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이론을 지지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미국의 농장은 모든 주(州)에 걸쳐 분포되어 있었고, 그 대부분은 마차의 도움을 받아 수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반면 철광석과 석탄은 비교적 좁은 지역에 매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철도는 이런 광물의 채굴지역에서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요 채굴지역을 대상으로 한 포겔의 조사 결과, 주요 광산들이 수로 가까이에 위치했기 때문에 석탄과 광석을 실어나르는 데에 철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까지 간략히 언급한 포겔의 연구는 그의 주장이 가지고 있는 정교함과 정확함,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수집한 방대한 양의 자료 등을 감안한다면 지나치게 짧은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그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소개하지 않았다. 비록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포겔은 철도의 발명이 필연적이며 19세기의 진보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에게 강력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운하야말로 최초의 값싸고 효율적인 운송수단이라고 강조한다. 운하에서 이용된 거룻배는 당시 가장 많이 사용된 마차에 의한 운반율을 90퍼센트 감소시켰고, 철도보다 조금 낮은 대체율을 보였다. 비록 운하가 모든 시대, 모든 지역에서 철도와 경쟁상대가 될 수는 없었겠지만, 19세기의 농작물과 천연자원을 운반하는 대체 운송수단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Basalla, George., The Evolution of Technolog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
(김동광 역, 『기술의 진화』, 까치, 1996, pp.290-293)


로버트 포겔의 이 도발적인 연구는 1960년대에 격렬한 논쟁을 야기했다. 말할 것도 없이 당대의 상식에 정면도전했기 때문이다. 포겔 이전에 모든 사람들은 19세기 미국의 경제발전에 있어 철도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믿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대중들 뿐 아니라 조셉 슘페터나 발터 로스토우 같은 학계의 절정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찌되었든 그의 연구에 대한 동료 학자의 논평을 좀 더 들어보기로 하자.

바로 이러한 점은 19세기 미국의 경제성장에서 철도가 공헌한 바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의 핵심이었다. 이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수송비용의 절감이 담당했던 근본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했으나, 수송에서 하나의 특이한 혁신이었던 철도가 수행했던 역할에 대한 의견은 날카롭게 갈라졌다. 이전에는 19세기 미국의 경제성장에서 철도는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즉 철도는 수송서비스를 제공하는 효율적인 메커니즘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외에는 효과적인 대안이 존재 하지도 않았고 생산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로버트 포겔은 이러한 견해를 <필수불가결성의 공리 the axiom of indispensability>라고 부르면서 그것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필수불가결성의 공리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철도가 수행했던 것뿐만 아니라 철도의 대체물이 수행할 수 있었던 역할을 검토해야 한다. 철도는, 19세기 동안 미국 경제가 산출한 많은 부분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다른 최상의 대안을 능가하여 공헌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는 한에서만, 필수불가결성이라는 칭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그 공리를 지지하는 데 사용되어 온 역사적 증거는 거의 전적으로 철도가 수행했던 것에 대한 서술로만 한정되어 있다. 철도가 한 것과 같은 동일한 효과를 가진 다른 경쟁적인 수송기술의 능력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증거는 거의 없다. 그 결과 대안적인 가능성이 공급할 수 있는 범위와 잠재력은 실제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철도에 대한 대체물의 발전 가능성이 매우 적었다는 결론은 알려진 사실보다는 일련의 의심스러운 가정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Fogel, 1964 : 10)

포겔의 필수불가결성의 공리에 대한 공격은, 철도의 광범위한 채택에 대한 증거에서 암묵적으로 이끌어낸 추론인, 본질적으로 철도가 운하보다 크게 뛰어나지 않았다는 명제를 이끌어냈다. 그는 많은 노력과 통찰력을 기울여서 철도가 출현하지 않았다면 1890년경 미국의 경제가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하는 문제를 고찰하였다. 포겔의 계산에 따르면, 철도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미국의 국민총생산은 그 해에 실제로 성취되었던 수준을 밑돌기는 하지만, 그 하락 정도는 5% 미만이었다. 그러므로 포겔은 19세기의 급속한 경제발전이 수송비용의 절감에 크게 의존하였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가 부정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경제 발전이 철도에 크게 의존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도출될 수 있는 기본적인 결론은, 하나의 혁신이 가진 경제적 효과는 그 혁신에 의해서 가능해지는 비용절감의 크기에 의해서 검토되어야 하며, 그러한 비용절감의 크기는 대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른 기술의 비용구조와 비교함으로써만 정확하게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혁신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관찰만으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충분한 답을 도출할 수 없다.

철도의 역할에 관한 포겔의 하향평가에 의해 촉발된 일련의 논쟁과 관련하여 발생한 한 가지 역설적인 현상은, 그의 핵심적 생각, 즉 어떤 단일한 기술혁신도 경제성장에 필수적이지 않다는 것이 별로 논쟁의 소지가 없다는 점이다.

이 연구의 가장 중요한 함의는 어떤 단일한 기술혁신도 19세기 동안의 경제성장에 필수적이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만약에 그러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어떤 단일한 혁신이 존재했다면, 그것은 확실히 철도일 것이다. 그러나 철도가 5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 급속하고 대규모로 성장해 왔고, 내륙 수송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모든 지역에 확산될 수 있었으며, 자본을 엄청나게 잡아먹었고, 상업적(때때로는 정치적) 경쟁의 성과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철도는 미국 경제의 생산 잠재력에 압도적으로 공헌하지는 못했다. (Fogel, 1964: 10)

여기서는 포겔이 제안하고 있는 논점에 약간의 변화를 가하여 기술진보에 대한 역사 서술적 고찰을 결론짓는 것이 아마도 적절할 것이다. 급속한 기술진보를 창출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어느 하나의 혁신도 필수 불가결한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 이유는, 개별적 혁신이 어떤 절대적인 의미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회는 대체 혁신substitute innovation을 쉽게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특정한 혁신의 효과를 소진시킬 수 있는 것은, 가능한 혁신들을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다.

Rosenberg, Nathan, Inside the Black Box : Technology and Econom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3
(이근 외 역, 『인사이드 더 블랙박스: 기술혁신과 경제적 분석』, 아카넷, 2001, pp.51-53)

그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여전히 다양하다. 하지만 그의 연구를 직접 평가하기 힘든 비전문가라면 그가 이 연구에 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1993년, Douglass North와 공동)했다는 점을 참고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자 이제 위의 논점들을 우리의 주제에 맞춰 옮겨 써 보도록 하자.

이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20세기 후반 한국이 고도성장을 달성했다는데 대해서는 모두 동의했으나, 그 과정에서 쿠데타로 집권한 지도자 박정희가 수행했던 역할에 대한 의견은 날카롭게 갈라졌다. 박정희는 과연 이 경제성장에 그 이외에는 효과적인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인가 아닌가?

포겔 식의 답변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박정희는 1960~70년대 동안 한국 경제가 산출한 많은 부분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다른 최상의 대안을 능가하여 공헌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는 한에서만, 필수불가결성이라는 칭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그 공리를 지지하는 데 사용되어 온 역사적 증거는 거의 전적으로 박정희가 수행했던 것에 대한 서술로만 한정되어 있다. 박정희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경쟁적인 인물의 능력을 체계적으로 평가하여 제시하는 증거는 거의 없다.

그러니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국가지도자나 국민이 경제성장에 어느 정도씩의 역할을 분담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못해 진부한 이야기이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한 백가쟁명의 설득력은 "어느정도 기여"가 과연 어느 정도냐, 즉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느냐, 그리고 그 평가방법론이 얼마나 그럴듯하느냐에 달려 있다. (sonnet)

즉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를 닦았다든가 중공업 육성정책을 폈다든가 하는 서술적인 이야기는 대조군이 없기 때문에 별 도움이 안된다. 우리가 진정한 평가를 위해 따져봐야 하는 것은 예를 들어 박정희의 첫 9개월은 장면의 9개월 대비 몇 %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가? 혹은 박정희의 마지막 7년은 전두환의 7년과 대비해 어떠한가? 박정희가 1년 더 살거나 1년 일찍 죽었으면 경제는 더 좋아졌겠는가 나빠졌겠는가? 박정희가 임기 중에 사망해 예를 들어 김종필이 그 자리를 승계했다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인 것이다.

이 중 몇 가지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세워 비교해 볼 수 있는 것도 있고, 어디까지나 추측 이상을 적용하기 힘든 것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박정희의 필수불가결성을 주장하는 쪽이건 부정하는 쪽이건 그렇게 해 보고 나서 조사결과에 입각한 결론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란 거다.

포겔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적당한 이론이 없는게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적당한 데이터가 없는 거지요."

인물과 그의 정책에 대한 정량적 평가는 철도 같은 기술에 대한 평가보단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잘 개발된 정량적 측정방법을 갖춘 경제성장이라는 주제에 한정된 것이라면 불가능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게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누가 누구보다 낫네 아니네 주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여담이지만 포겔의 연구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흔히 듣게 되는 박정희의 기여도에 대한 평가는 어떤 정교한 모델이 있다기 보다 사람들 개개인의 감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 점을 일단 받아들이기로 하고 생각해 보자. 통속적인 지식에 따르면 19세기 미국 경제발전에서 철도의 위상은 거의 절대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모델을 세워 평가해 보니 그 차이란 것은 생각보다 훨씬 작게 측정되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렇다면 통속적인 지식이나 감으로 볼 때 한국 경제에서 박정희의 위상은 19세기 미국에서 철도보다도 큰가? 다른 말로 한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1960년에 박정희를 암살해 버린다면, 마법을 부려 19세기 미국 경제에서 철도를 지워버린 것보다도 더 큰 타격을 한국 경제에 주게 될 것인가?
큰 부담 없이 한번 감으로 찍어들 보시기 바란다.
by sonnet | 2008/07/21 10:21 | 정치 | 트랙백(1) | 핑백(2) | 덧글(96)
트랙백 주소 : http://sonnet.egloos.com/tb/383334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Crete의나라사랑_2.. at 2008/07/22 09:08

제목 : 지도자의 업적 평가-논쟁의 발자취를 따라
사실 세상은 이런 저런 중요 이슈로 들끓고 있는데 한가하게 이런 주제로 글을 쓰는 게 적당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유야 어찌되었건 한 명의 논객이 써 올린 블로그글 하나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다양한 논객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과정이 제 눈길을 끕니다. 아마 이런 과정이 인터넷을 바탕으로 하는 집단 이성의 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한번 이 과정들......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07/29 11:42

... 다음은 이전 글 로버트 포겔의 철도 논쟁, 그리고.</a>에 붙은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3833344#11718433">코멘트인데, 짧게 답하기가 어려워서 별도의 포스팅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제 의 ... more

Linked at 一期一會 : 팟캐스트 신과함께.. at 2020/09/18 01:10

... 중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을 더해서 각종 참고 자료를 여기에 활자화 해본다. 1. 로버트 포겔의 미국 철도 건설에 대한 반사실(counter-factual) 연구는 순명대제님의 글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팟캐스트에서는 19세기라고 뭉뚱그려서 이야기 했기 때문에 진행자 분들이 태평양 연안 개발에 대한 반문을 하셨는데 포겔의 연구는 1 ... more

Commented by 흐음 at 2008/07/21 10:43
이영훈 교수같은 낙성대연구소 사람들이 잘 하겠지요. 근데 결과를 내어놔도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으려나 모르겠군요. ^^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18:20
그쪽이 수량경제사를 주무기로 삼고 있지요. 사실 그쪽이 지금 하고 있는 식민지근대화론이나 이거나 정치적으로 구린 데가 있는 정권기의 경제적 성과에 대한 평가가 동시대에 대한 종합적 평가에 피드백된다는 점에서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냥.. at 2008/07/21 10:43
반론아닌 반론이라고 트랙백을 걸어놓았던데, 아무래도 글쓴 분은 sonnet님의 지적을 이해하지 못한듯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18:22
네. 실체가 없는 데 반론을 하느니 그냥 제가 생각하는 점을 정리해 쓰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nishi at 2008/07/21 10:49
20세기 말의 남한경제에 있어서 박정희가 차지하는 위상이란 19세기 미국의
철도 보다는 산업혁명 혹은 근대화 그 자체(.....)라는 것이 어쩌면 많은 사람들
의 통속적인 감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18:28
하하. 동감입니다.
그게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근대화=대통령이 머릿속에 박히도록 강력히 프로파간다를 한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BigTrain at 2008/07/21 10:55
이런 연구를 한 사람이 있었군요. 그것도 엄청난 수준으로... 존경스럽습니다.

감으로 찍어보자면, 철도는 운하라는 대체 수송 수단이 있었지만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정치 등 모든)에 있어서의 박정희는 대체불가능한 자원이었으니 아마 타격의 정도가 더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철도의 역할이 생각보다 더 작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내리는 사후적 평가라 저도 좀 그렇습니다만...)

1960년대~1970년대의 한국에 없는 거라곤 '예비 대통령과 예비 대한민국'인 체제가 아니었나 싶어서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18:32
음, 사실 제가 본문에는 1960년이라고 적어 두었는데 말입니다. 그럼 5.16 전이니까 전 국민은 그런 사람 있는지도 모르고 넘어갔겠죠. 쿠데타 세력은 아마 딴 지도자를 찾지 않았을까 싶구요.
Commented by BigTrain at 2008/07/21 19:17
애초에 '박정희'가 없었더라면 펼쳐질 가상의 미래라...

쿠데타 세력의 우두머리가 될 만한 장성들의 정보가 필요한데 제겐 그런게 부족해서 뭐라 얘기하기가 어렵네요. 그래도 그 '가상의' 우두머리가 박정희만큼 지도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WORST=미얀마 준타 정권, BEST=현재의 태국'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경제발전도 그다지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구요.

사실 대충 찍은거라... ^^: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8/07/21 20:42
그들이 선택했을 다른 지도자의 지도력이 반드시 박정희보다 떨어지리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미 언급되었듯이 박정희는 집권기간과 소유한 권력면에서 적절한 대조군이 사실상 없기에 그를 수량적으로 어떠어떠하다고 말할 순 있어도 이를 다른 이와 대조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고 봅니다만.
Commented by 아이우에오 at 2008/07/21 10:58
저는 개인적으로 포겔의 방법론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 방대한 분석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문제는 '최선'의 대안과 현실을 비교하기 때문이죠. 적어도 현실성이 있으려면 다른 많은 대안들과 현실을 비교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겠지요. 분명한 건 현실정치와 경제가 최선으로는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 아니겠습니까?

특히 문제는 경제와 정치의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드신 미국 철도의 경우 운하 파다가 노동파업을 한다던지, 사회적 반대운동이 일어난다든지의 반대하는 여론으로 인한 국회의원들의 법적 허용 등의 문제, 운하의 사적소유가 가능한가의 문제(철도는 인프라지만 사적소유가 가능했죠) 등의 정치적 이슈가 이러한 경제적 사항에 끼어들어 일어나는 비합리성에 대한 분석은 희미합니다. 더욱이 상징성 등을 무시 할 수도 없는 이야기죠.

게다가 회계쪽 즉 '경제적 측정'에 대해서 제가 알기 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포겔의 분석은 맞을지는 모르곘지만 '그 데이터가 옳은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수없이 많은 방법과 평가기준 중에서 어떠한 일괄적인 평가를 내릴 수가 있다는 말인지 단순히 데이터 만으로 그런 결과를 내릴수가 있는지... 국가경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조그마한 기업의 재무제표조차 측정방법과 툴에 따라서 극단적으로는 천문학적으로 가치가 달라지는데 그러한 데이터의 오차가 수십년에 달하는 '가상적' 경제분석에 쓰여서 정확한 데이터를 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뭐 어쨌던 인물에 대한 평가가 감으로 이뤄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sonnet님의 말대로 '가정'해본다면... 저는 적어도 절대규모가 아닌 상대규모로서는 미국의 철도보다 크다고 말하고 싶군요. 단순히 경부고속도로가 아니라 '국민 마인드'를 바꿔놓은 사람이니까요. 단 한사람의 마인드도 바꾸지 못하는 저로서는 그 부분을 매우 높이 삽니다. 더욱이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빈곤 그 자체에서 당시 상황에서 현재까지도 통용되는 기간의 시스템을 만들어 내었다는 점도 빠트릴 수는 없겠지요.

특히 그 당시의 자료와 증언 등을 들어 볼 때마다. 노름과 가정 폭력과 빈곤과 절망과 부패로 얼룩진 마인드를 최소한 '노력하면 잘 산다'라는 마인드로 바꿔놓은 것을 높이 삽니다. 현대의 기준으로는 많은 이견들이 있으시겠지만 말입니다.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7/21 11:54
방법론이 맞는데 데이터가 없다면, 평가는 '불가능'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정치적 부분은 평가가 가능하니, 결과는 X가 뜰듯.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7/21 12:25
제가 포겔의 연구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으니 '그 데이터가 옳은가'에 대한 평가는 유보합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경우 초기 조건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지겠죠.

포겔의 결론은 최선의 대안과 현실을 비교해도 현실이 낫다는 건데, 굳이 다른 많은 대안을 고려한다고 자전거나 지게꾼만으로 구성된 운송체계 같은 경우도 고려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연구비와 연구기간의 제약을 생각해야죠.

경제와 정치의 조합을 고려한다고 해도, 철도에서 가능한 일은 운하에서도 일어나고, 그 반대이기도 합니다. 철도 놓다가도 파업하기도 하고, 매연뿜고 시끄럽다고 사회적 반대운동이 일어나기도 하고, 정부 투자 없이 개인이 투자해서 운하를 팔 수도 있습니다.

근본적인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기독교도 공산주의도 실패했는데, 박정희라고 별 수 있는지 모르겠군요. 박정희가 국민 마인드를 바꿨다는 주장에는 지극히 회의적입니다.
Commented by 아이우에오 at 2008/07/21 12:30
sprinter // 정치적 부분이 경제적으로 평가 및 환산이 가능하다니... 대단하군요 어떤 평가방법인가요?

누렁별 // 대안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계시는 군요. 현실은 이미 이루어져있는 상황이고 대안은 이루어 질 것을 가정해야하는 상황입니다. 경제적 예측방식에서 두 차이는 전자는 확정되어 있다는 점이고 뒤의 것은 불확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결국 전자는 정치적 효과를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반영되어 있으니까요. 이 차이를 이해하고 쓴 글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군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7/21 12:35
정치적 부분이 평가가 가능하다고 하셨지 정치적 부분을 경제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는 안하셨는데.... 심각한 오독이군요.
Commented by 아이우에오 at 2008/07/21 12:55
행인1 // 박정희 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난리들이신 모양인데 지금 이 부분은 '경제적 평가' 아니었습니까? 왜 갑자기 정치적 이야기가 나오죠? 정치적 간섭이 '외부작용'으로 작용한다고 말했을 뿐 그것을 계상할 수가 없다는게 제 이야긴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7/21 12:58
이미 이루어진 상황은 정치적 효과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니 이해가 안 가는군요.'현실'이 여러 '대안' 중에서 선택한 결과이고, 그 선택을 위해 고려하는 사항 중에 정치적 효과도 들어가는데요. 이미 철도를 깔아서 잘 쓰고 있는데 대안을 실험한답시고 누가 다 뜯어 내고 운하를 파기라도 한답니까. 그쪽이야 말로 현실과 대안에 대해서 오해하시는 듯 합니다.

sprinter님이 바로 경제적으로 평가 및 환산하시는 쪽에 일하시는 듯 한데, 어떤 평가방법이 있는지 저도 궁금하군요.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7/21 13:04
저는 '정치적'으로 평가가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썼습니다만 (일단 정치는 정치영역에서 평가 해야 한다는 개념때문에) 그것을 '경제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요. 그 점에 대해서는 아이우에오님이 얼마든지 이상하게 받아들일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는 평가가 불가능하고 정치적으로는 평가가 가능하며, 경제학적인 부분>>>>>>정치적인 부분이 아니라면, 현재까지의 평가는 X가 맞겠죠. 그의 '경제적 성과'를 '증명'하거나 '반대'하는 일은 '반대파'들만 할 일이 아니라 '찬성파'들도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평가 방법은 저게 맞는 방법론이기는 하지요.
Commented by teferi at 2008/07/21 13:06
간단하게 현실 자본주의와 "최선의 사회주의"와의 비교를 생각해보면 아실 수 있을 듯 합니다. 포겔 식 논리라면 자본주의는 "최선의 사회주의"에 비해서 경제발전에 기여한 것이 별로 없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으나, "최선의 사회주의"라는 것은 예전도 지금도 미래에도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거든요. 애초에 운하가 최선의 효과를 나타내리라는 가정은 말도 안 된다는 겁니다. 현실의 철도가 최선의 효과를 나타내지 않듯이 말이죠.
Commented by 아이우에오 at 2008/07/21 13:11
철도 자체는 이미 현실적으로 놓아진 상황이고 그 상황에 대해선 이미 결과가 나와있습니다. 이미 '현재'의 선택이 아니고 결과가 나와있는 상황으로 결국 정치적 과정 역시 이 종료된 과정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치적 과정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 운하의 예의 경우에는 what if 로서 가정하는 것입니다. 이 가정상에는 과정간에 일어날 정치적 영향력을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엄청나게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나쁜방향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흔히 경제적 수치를 측정할 때의 보수적 방식을 따른다면 나쁜 방향으로 이루어질 확율이 매우 높게 되겠지요. 하지만 수치자체는 어디까지나 예측치를 적용하였을 뿐입니다. 결국 이 과정에는 정치적 방식이 딱히 적용되어있지 않은 경제상의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 문제를 누렁별 님은 현재의 관점에서 잘못보시고 계신듯합니다.


예를 들어서 건물을 짓는다고 할때 이미 지어진 건물은 그 가격이 명명백백합니다. 들어간 돈만큼을 계산하면 그를 통해서 이루어진 공사중의 사고나 지연등이 모두 계산되게 되지요.

하지만 건물을 짓고 설계를 한 상태에서 건물을 지을 것이라고 가정을 하고 예산을 짤 경우에는 공기가 지연되거나 법적인 소송이 발생하거나 하는 측면을 예측하지 못하므로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는 확정되어 있지 않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전자는 정치적 영향을 고려할 필요가 없으나 후자는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고려를 해야한다는 것이 저의 이야기이죠.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7/21 17:38
미국에 운하가 전무했었습니까. 19세기에 미국의 운하와 내륙수운은 철도 건설 이전부터 장거리 운송체계로 작동하고 있었고, 이후 철도와 병행적으로 발달하다가 철도보다 경제성에서 경쟁력이 떨어져서 쇠퇴했습니다. 당시 운하가 철도와 경쟁하고 있던 상황을 고려해서, 기존에 존재하던 운하의 확장과 도로 건설을 철도의 대안으로 놓고 분석해 보는데 왜 정치적 고려 같은 게 필요한지 모르겠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20:37
아이우에오/ 저도 사실 surrogate를 많이 쓰는 복잡한 모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평가에서는 대조군을 적절히 설정하지 않는 것은 지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뛰어드는 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현실에 있었던 일과 가설적인 것을 비교하는 문제는 "박정희가 암살당하지 않고 오래 살아 전두환의 임기를 대신 채웠을 경우"처럼 뒤집어서 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양 쪽 가설을 모두 검토해서 비교해보면 그러한 bias는 상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7/21 11:17
저는 박정희의 영향이 철도보다 크지 않다는데 한표를 겁니다.
Commented by 自重自愛 at 2008/07/21 11:34
막연하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서 답답하긴 한데, 장면 정권이 어느 정도 청사진을 마련한 상태 아니었던가요? (물론 청사진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박정희보다 더 효율적이냐 덜 효율적이냐라는 문제가 있겠지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20:18
맨 처음에는 그렇습니다. 집권기간이 워낙 기니까 나중엔 자기들이 만들어 쓰게 되지요.
Commented at 2008/07/21 11:4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20:18
그날 봅시다. 질문하신 것은 알아보겠음.
Commented by Crete at 2008/07/21 11:45
지난 번 글도 참 좋은 문제 제기였고, 실제로 진영 논리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좀 진지하게 우리에게 만연한 이중잣대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해 주는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글도 참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정말 자료의 방대함에 솔직이 기가 죽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에 알려 주신 노하우는 아주 잘 써 먹고 있습니다. 요즘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모두 디지탈 카메라로 찍어 보관하고 있습니다. 따로 OCR을 돌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예전 보다는 자료 정리가 훨씬 용이하더군요. 특히나 제가 사는 동네는 인터넷으로 전체 도서관에서 책을 찾은 뒤 온라인신청을 하면 저희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으로 2-3일 만에 배달을 해 줍니다. 그럼 집어 오기만 하면 되죠. 집에서 디지탈 카메라로 찍으니 충분히 잘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접사대가 없어도... 그럼.. 또...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20:32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일전 글이 도움이 되셨다니 기쁩니다.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7/21 12:01
"한국 경제에서 박정희의 위상은 19세기 미국에서 철도보다도 큰가?"라고 한다면, "아니다"쪽에 걸고 싶군요. 1970년대에 박정희의 유고가 빨리 왔거나 그가 3선을 포기해서 김종필이 뒤를 이었어도 그럭저럭 했을 듯 합니다. 김종필이야 최근까지 정치적 생명을 이어온 사람이 아닙니까. 대단한 선임자의 대를 이은 땜빵 후임자가 예상 외로 잘 해 나가는 예가 꽤 있을텐데요. 가령 이집트에서 나세르의 뒤를 이은 사다트 같은 경우는 어떨까요. 좀 더 나가면, 1980년대 한국의 경제 성장은 박정희를 전두환으로 대체한 결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박정희를 김종필이나 전두환으로 대체하는 경우 외에도, "1960년대에 윤보선이 대통령이었다면?",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승리했다면?" 등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김대중이야 이후에 대통령을 역임하기는 했지만, 과연 1970년대 초의 김대중과 1990년대 말의 김대중이 같은 경제관을 가진 사람인가 라는 의문 등이 남으니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죠.

한편, 포겔의 연구에서 "경제 발전 기여도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없을 수도 있었지만, 이미 19세기에 철도가 운하 보다는 그래도 나았다"라는 교훈을 지금 청와대에 계신 운하 오타쿠 이명박씨께서 새겨 주시길 바랍니다 :)
Commented by 自重自愛 at 2008/07/21 16:06
(이것도 감이긴 하지만) 윤보선보다는 박정희가 더 나은 지도자였을 것 같다는 생각도..... -_-a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7/21 16:49
다시 말하지만 감만 가지고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김대중의 경우 "대중경제론"이나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 걸쳐 얻어진 데이터가 있으니 그나마 유추해 볼 수 있겠지만, 윤보선의 경제관이나 그의 경제정책 수행능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그다지 없는 듯 한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20:06
앤 크루거가 한국의 정권교체가 경제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본다는 이야길 한 적이 있는데, 저도 그런 점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박정희는 집권기간이 20년 가까워서 전 기간에 대해 하나의 이미지로 다루는 게 꼭 맞는 것 같지 않습니다. 초기, 중기, 후기 정도로 3분해서 시기별로 평가하는게 좋지 않나 싶습니다. 뭐니뭐니해도 남들 3명분 임기다 보니까요.
Commented by 배둘레햄 at 2009/08/19 20:08
1970년대 초의 김대중과 1990년대 말의 김대중은 경제면에서 있어서는 확연히 다른 사람입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7/21 12:33
아무래도 20세기 한국경제에서 박정희의 위상은 19세기 미국경제에서 철도가 차지하는 위상보다 훨씬 작을듯 하군요. 신회도 그렇고 그가 차지한 절대권력의 부작용도 고려한다면 말이죠.
Commented by 마나™ at 2008/07/21 13:32
데이터에 대한 "(주관적) 가중치"라고 쓰고 "감"이라고 부르는 그거군요.
개인적으로는 What if에 대한 One Best Scenario를 토대로 과거를 재단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 현실성이 조선 말기에 대한민국 군인들이 떼거지로 타임슬립해서 펼쳐지는 소설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정치지도자들의 영향력은 광범위한 경로의존성적인 측면에서 무시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는 물론이고 노무현의 영향력도 19세기 철도보다 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20:02
처음부터 대조군과 비교해야 하는 것은 아닌데, "누군가가 필요불가결성을 주장함으로 인해서" 그런 비교의 필요성이 생기는 게 아닐까 합니다. 다른 방법으로 그 주장을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지요.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7/21 13:34
장준하라는 (불완전한) 대체재가 있었을 것 같긴 합니다. 어디선가 박정희가 자신의 반대쪽 저울추로 장준하를 찍은 적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습니다. (비록 그 이야기가 신민당의 YS-DJ 연합을 평가절하하는 의도로 나왔다고 기억한다는 점에서, 진의는 좀 떨어지지만요).

본문의 요지와 전혀 상관없는 감상이라면 - 21세기 한국에서는 더더욱 생소한 인프라인 운하를 파면 안되고 철도에 몰빵해야 하는 것이로군요(.....)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7/21 13:39
1970년에는 또한 김대중이나 김영삼같은 정치적 경쟁자들이 있지요. 박정희의 치세가 길다보니 경쟁자도 매우 다양하다능.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7/21 16:49
기억에 의존하는 거라 출처가 불완전한 감은 있지만 제가 어디서 듣기로는 바로 그 김영삼-김대중 연합을 보고 "젠장 장준하면 차라리 낫지 저 꼬꼬마들..." 박정희 본인이었는지 당시 정부측 인사쪽이었는지 하여튼 누군가가 뭐 이랬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19:54
운하는 걍 안됩니다... 21세기에 배가 산으로 가는 소릴...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7/21 13:38
철도와 고속도로를 비교한다면 모를까, 사람과 비교한다는 것은 좀...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19:52
하하. 경제적인 영향만 보는 거죠. 그게 대통령의 경제적 영향력을 어떻게든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럼 한번 해보면 재미있겠다 싶은 ;-)
Commented by nokarma at 2008/07/21 14:14
순전히 개인적인 감에 의하자면 박정희의 성취를 가능하게 했던 요인은 다음과 같은 의사결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일본과 파트너쉽
선택과 집중 전략: 경부 산업 라인 개발, 재벌 육성
월남전 참전
반공반북

장기 독재를 통한 지극히 효율적인 의사결정 및 집행 역시 성취를 가능하게한 요소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리스크가 높은 베팅이었는데 성공한 케이스라고 봅니다.


대체제라면 김영삼을 누른 김대중이라고 봐야될것 같은데...

선택과 집중보다는 대중 경제론, 지역균형개발,
미.일 진영에 확실히 서기보다는 영세중립국 주장등...

별 밑천도 없는 상태에서 주제 파악이 부실한 전략에...

가장 가까운 파트너이자 경쟁자로부터 "입만 열면 거짓말" 이라는 말을 들을만한 행태를 실제로 몸소 보인바 있으며...

개인 재산 축적이나 자식 및 아랫 사람들 줄줄이 잡혀들어가는걸 봐서는, 박정희 세력보다 별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내세울것도 없는것 같고...

순전히 감에 의하면 이 양반이 그때 잡았으면 다 말아먹고 아마 지금쯤 영명하신 지도자 동지 모시고 살고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19:50
예를 들어 저는 장면 총리의 임기와 박 최고회의 의장의 같은기간 임기를 비교해본 적 있는데, 이 정도 기간으로는 경제정책상 박이 나은 점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박의 경우 대략 2년 정도는 시행착오의 기간이었는데, 그동안 쫓겨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무장한 예언자이기 때문이겠지요.
임기 초의 전두환은 역시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것보다는 덜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umberto at 2008/07/22 03:33
'별 밑천도 없는 상태에서 주제 파악이 부실한 전략'으로 평가한 근거는 무엇 입니까?

'입만 열면 거짓말'. 이건 정치가라면 전부 해당되는 것 아닙니까?

개인재산 축적, 아랫사람, 자식 문제를 고려해도 dj정권이 이전 정권에 비해 더 부패했다는 증거는 없지요. 오히려 민주주의의 진전이 부패를 감소 시키므로 독재정권이었던 박정희 정권은 구조적으로 부패의 위험이 훨씬 더 컸지요.

'순전히 감에 의하면'- 본문 글 자체가 순전히 감에 의한 판단을 지양하고 수치와 정교한 논거로 이야기 하자는 내용인데요? 그리고 nokarma님의 감이란 것도 옛날 옛날 한옛날 참 질리게 듣던 내용이었죠. 색깔론 이라고도 하지요.
Commented by nokarma at 2008/07/22 14:50
sonnet/
플랜이 비슷하더라도 반대쪽에서 흔들때 일관성있게 집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지요.
대략 보니 장면 정부때도 데모가 아주 일일 이벤트이었던것 같고, 대처하는게 현 이명박 정부보다 더 비실비실한것 같던데, 플랜을 실행이나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더군요.

umberto/
바로 위에 있잖습니까?
테이블 머니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경부 산업 라인 인프라 구축하고, 미, 일 진영에 밀착하는 대신, 전국 국도 개보수, 영세중립국 주장.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잘하기는 한데, 그래도 그 분 만큼 독보적인 경지를 보여주시고, "숨쉬는거 빼고는 다 거짓말"이란 명성까지 얻으신 정치인은 보기 드문것 같더군요.

부패했다는 증거는 2002년에 노무현대신 이회창이 되었으면 지금쯤 비교 가능한 데이타가 있을것 같군요.
마침 스위스 은행계좌도 오픈되는 분위기로 가는것 같고, 이명박이 얼만큼 밝혀낼수 있나 지켜보도록 하죠.

내가 누구보고 빨갱이라고 그랬나요?
그쪽으로 컴플렉스가 있으신것 같아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2 19:18
nokarma/ 앞서도 지적했지만 그는 반대쪽에서 흔들 수 없게 하는 능력을 불법적인 수단으로 입수 유지했다는 것도 고려에 넣어야지요. 이게 제가 처음부터 말하고 있는 그의 공과 과는 분리할 수 없다는 명제인 겁니다.
Commented by nokarma at 2008/07/23 09:56
sonnet/
"과"부분에 피해본게 있으면 과가 더 커보이겠고, 별 피해본거 없이 "공"부분에 덕 본게 있으면 공이 더 커 보이겠죠.
"과"란것도 반대파에 권력을 빼앗겼을때나 "과"로 취급되는거겠죠.
이성계나 조지워싱턴은 뭐 합법적인 수단으로 권력을 입수,유지했겠습니까?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7/23 15:40
이성계, 조지 워싱턴은 또 왜 나오는지.... 이성계처럼 새 왕조를 세운 것도 아니고, 조지 워싱턴처럼 새 나라를 세우는데 일조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nokarma at 2008/07/23 16:28
행인1/ 김일성같이 반대 세력 싸그리 청소하고, 막 나가서 성공하면 왕 되는거지, 왕되는게 뭐 별거 있습니까? :)
Commented by 내모선장 at 2008/07/23 21:20
하아, 황당하군요.

조지 워싱턴은 같은 대통령이긴 하지만 저 사람은 미국을 세운 창업자로써의 대통령이고, 이성계는 말할 필요도 없이 봉건시대의 군주입니다. 민주화 시대인 현대의 대통령과 비교할 대상은 절대 아니지 싶습니다만? 예시라는 게 극단적일 수록 이해는 더 쉬워진다곤 해도 말이죠.

거기다 왕이 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의 대상이 지금과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할당받은 임기를 얻기 위해서 국민 전체(비록 다수를 따라가게 되긴 하지만)를 상대해야 하는 현대의 대통령과, 지역의 실력자들을 주로 상대하면 되는 왕과의 비교는 더더욱 걸맞지 않다 보는데요? 조지 워싱턴은 영국이란 강력한 적을 물리친 것 때문에 국민을 설득하는 데 큰 힘이 들지도 않았고 말이죠. 오죽하면 국회에서 종신대통령 자리까지 내주려고 했을지...

저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만,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좀 아니다 봅니다.
Commented by nokarma at 2008/07/24 16:01
내모선장/
그 당시의 남한이 현대 아프리카 어느 곳에서 총들고 대통령 잡는 나라하고 크게 다르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군요.
저기 윗 동네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무력을 장악하고 정적들 싸그리 잡아죽이거나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고, 국민의 1/3정도 정치범 수용소에 넣는것 정도 개의치 않으면 아직도 왕 될수 있는 시대라고 봐야되지 않을까요.

현대의 대통령은 국민 전체를 상대해야고 하셨는데, 국민의 권리란걸 너무 과신하는거 아닌가 싶군요.
저는 현재 한국 국민의 권리란게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고, 어떻게 하다보니 미국 진영에 붙게되고, 정말 독한 독재자를 만나지 않았고, 일이 되려다 보니 먹고 살만해지고,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얼떨결에 가지게 된것에 불과하고,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날라갈 수 있는거라고 봅니다.

2차 대전때 유럽 각국의 유태계 시민, 일본계 미국 시민이 어떤 상황에 쳐해졌는지 위키피디어를 한번 찾아보세요.
쉽게 말해 어떻게 하다보니 뽀글이가 남한을 먹게됐다고 가정할때, 국가 원수가 국민을 설득해야된다거나 국민의 권리 뭐 이런거 찾아먹을수 있다고 보세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7/24 17:44
아무래도 제2세계의 사고구조를 착실히 따르는 사람의 예를 또 한번 보는것 같군요.
Commented by nokarma at 2008/07/26 11:41
행인1/
그럼 제1세계나 제3세계 둘 중 하나일것같은 댁 사고 구조는 어떤지 한번 봅시다.
Commented by 안모군 at 2008/07/21 14:22
법령이나 정책에 따른 파급효과 추정 수준이란게 아직 상당히 피상적이고, 복수의 정책을 연결해서 효과를 분석하는 것도 잘 안되어 있으니(패키지로 묶어놓은 거면 모르지만) 한 인물의 업적을 B/C같은 걸로 분석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요. 지금도 이런거 하면 야바위라고 까이는 경우가 많은데요. 더욱이 '버르장머리'니 하는 것을 고쳐서 어쩌고 하는 수준쯤 되면 계량적인 분석은 회수만 건너는게 아니라 황하와 역수까지 건너겠죠.

철도부재연구 같은 걸 보고 일본애들은 신간선부재같은 이야기도 가끔 하죠. 이걸 정말 진지하게 한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저런 본좌급 인사의 연구에 토 달기는 어렵긴 하지만서도... 대개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미국의 철도는 물자와 "사람"을 기계력에 의해서 "방대한 중서부 내륙"으로 유동할 수 있게 했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국가를 성립케 했다고 하죠. 운하는 물자를 효율적으로 수송할 수 있고, 기계화의 여지도 19세기엔 남아있는 만큼 대체재의 역할을 하기야 하겠지만, 사람이라는 부분에서 만큼은 좀 답이 안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디에서 말하는 거 처럼 추석연휴 3일간 배타고 놀면서 내려가서, 마지막날 KTX 타고 귀경한다는 시나리오는 아닐거고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19:07
현실을 잘 지적한 아픈 이야기(쿨럭!) 그래도 저 주제로 지금 당장 저에게 과제를 던져주면 이렇게 하겠다는 정도랄까요. 이건 결국 실제는 어떻든 간에 사람들이 정치지도자의 업적을 쉽게 평가하고 서로 비교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주어지는 과제 같습니다. 업적이 OO하다 아니다를 놓고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사람들 사이에서 설전이 벌어지는 상황이 실제로 목격되니까요.

그리고 분석을 위해 철도가 증발했다는 가설적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그렇지, 실제로는 내륙수운이 철도에게 캐발렸잖습니까. Louis Hunter의 Steamboats on the Weatern Rivers를 보면 남북전쟁 이후의 상황을 요약해 Virtually all the advantages in this struggle lay with the railroad. It offered service that in speed, regularity, frequency, and reliability could not be equaled either by steamboats or barge. 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 시기의 증기선은 내륙수운이래도 우리 생각 이상으로 위험했던 모양입니다. 1848-1852년간에 50건의 폭발사고가 나서 1,155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더군요. 기관폭발로 굉침이라도 하고 그러나...
Commented by 안모군 at 2008/07/23 01:17
아무래도, 정치지도자의 업적이라는게 계량적이기 보다는 정성적인 면이 꽤 있는데, 말로는 혹세무민 하기 어려우니, 야바위가 판치는거 아니겠습니까. 좀 안되는 건 안된다는 걸 알아주고, 사건을 좀 잘라서 볼 줄 알아야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안되니까요. 그래서 정치인이 밥벌이를 하는걸까나요.

안전사고 쪽이야 뭐... 이때만 해도 도심에서 스팀 더미(증기식 시가전차)나 증기 버스 폭발 사고는 유럽에서는 그런대로 볼 수 있는 사고였고, 철도도 안전한 탈 것이 아니었는데요. 이때만 해도 객차마다 한 사람씩 브레이크 조작수가 타서 기적에 맞춰서 수동 제동기를 당기던 시절이라, 탈선이나 돌파, 추돌 사고는 종종 났었죠. 그 외에도 안전설비 미비로 여럿 잡기도 하고, 또 영화로도 잘 알려진 강도사건도 종종 일어났었죠.

증기선의 경우도 한참 증기압 올라가 있을 때(과열증기식 증기기관이면 증기 압도 대단하죠-_-) 배가 침수되면 말 그대로 허접한 주철보일러야 종잇장이죠. 육상에서는 비산파편과 고열 증기의 압박이지만, 배는 여기에 화재도 더하니까요.
Commented by Ha-1 at 2008/07/21 14:37
포겔의 텍스트는 '박정희'보다는 종종 까이는 중화학공업이나 (나름 이분야 종사자로서 저는 이 '중화학공업'이라는 분류 방식을 싫어 합니다만 ^^) 아니면 '경부 고속도로', '핸드폰' 혹은 '정액 인터넷요금제' 심지어는 '공공 수도 체제'에 비교하는 게 낫지않았을까 싶습니다.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7/21 14:58
박정희라는 컨셉도 잡으면 평가가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이 경우에는 전제는 '리더가 경제발전에 영향을 기칠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가 일단 있어야 하고, 그리고 박정희가 이것을 얼마나 잘 수행하였느냐, 이렇게 접근을 해야 맞겠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18:42
사실 포겔은 원래 기술발전론 관련 글을 쓰려고 따로 뽑아둔 것인데, 그냥 전용해 쓴 거라 그렇습니다. 이번 글 같은 경우는 테마가 주어져 있고, 이 테마를 다루는데 기본적인 분석의 틀은 이래야 하지 않겠느냐 정도로 받아들여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안모군 at 2008/07/21 14:38
운하가 주력이 된다면 막대한 철강제품 수요도 좀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철강이 안되면 광업도 비실할 거고. 스탠포드니 밴더빌트니 하는 거부가 안생기지야 않겠지만, 대신 농업 경제 위주의 미국이 생겨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연구의 방향이 그쪽이 아닌가 싶긴 한데요.

미국 철도사에서 자주 다루는 부분이 정치적 통합인데, 이것 역시 저런 방법론으로는 말하긴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실제로, 전통적 시각에서 산업을 다루는 경우(우편, 철도), 결론은 "이게 다 합중국을 위해서 필요한겨"라는 관점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죠. 논란이 되었다면, 아마 이 "합중국"에 대해서 좀 삐딱한 소리를 한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뭐 직접 읽기 전에는 모르겠스빈다.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7/21 14:59
철강제품 수요야 없었겠습니다만, 대신 그 자본이 다른데 투입이 되어서 다른 수요가 생겼을 수도 있겠지요. 따라서 별 수 없이 평가를 매우 한정적인 영역에 좁혀서 평가할 수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19:09
흐흐, 연구가 결국 "이가 없으면 잇몸과 틀니로도 여기까지 씹을 수 있다!"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입니다.
Commented by 키치너 at 2008/07/21 14:41
이번 건은 상당히 찍기 어려운 문제네요. :) 사실 운송수단에서는 여러 운송수단이 병행적으로 존재하고, 여러 경쟁자들이 서로 다른 수단의 이용을 완전히 배타적으로 배제하지 못하지만, 정치권력에서는 여러 경쟁자들이 존재하더라도 결국엔 'winner all takes'가 될테니까 말이죠.

그리고 정치권력자의 대체가능성과 경제 성장과의 상관 관계를 논의하기 전에, 경제성장의 다양한 원인 인자중에서 '정치권력자'라는 구성요소의 위상과 중요성에 대해 합의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논의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포스팅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철도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수송비용의 절감이 담당했던 근본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했"지만 현재 한국 경제 성장에서 이런 동의가 광범위 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는, 앞서 포스팅하신 것만 봐도 조금 의심스러우니까요. :) )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19:14
지난번 글에도 언급했지만 정치권력자의 권력의 크기가 같지 않다는 게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시대의 대통령들이나 장면 총리 같은 사람은 이 점에서 박대통령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권력의 크기 면에서 박정희의 진정한 대조군은 전두환 뿐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Ya펭귄 at 2008/07/21 15:26
그렇다면 시드 메이어의 시빌리지에이션에다가 철도부설에 운하건설까지 추가해야 겠군요... (그리고나서는 배가 육지 가운데로 왕복하는...)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7/21 15:45
CIV에서는 철도와 도로보다 강이 '경제발전'에는 더 도움이 되기는 합니다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19:14
다음은 비공정...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07/21 15:28
이건 단순한 what if가 아니잖습니까![웃음]

대체제에 관한 엄청날 데이터 수집... 굉장한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19:21
그렇죠. 처음에 저걸 도전할 생각을 했다는 거 자체가 후덜덜...
Commented by 천마 at 2008/07/21 17:32
제대로 하려면 엄청난 자료수집과 장기간의 연구가 필요한 일을 "감"으로 해보라고 하시다니^^;;; 미국 철도보다 영향력이 크다, 작다로 단순화시키시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엄청난 과제인데요.

뭐 어디까지나 "감"에 의한 억지 답을 하자면 "한국 경제에서 박정희의 위상은 19세기 미국에서 철도보다 작다"인데 말 그대로 감일뿐이라 자신은 없습니다.

그리고 어려운게 이 방법론에 따른 박정희 "대체제"라는게 "정치체제"인지 "인물"인지가 분명치 않군요. 지도자의 리더십이 경제발전에 주는 영향이니까 둘다 포함이라고 봐야 할까요.

박정희대통령 시기의 경제성장을 이야기할때 자주 언급되는게 아시아의 4용(한국, 홍콩, 싱가폴, 대만)입니다. 홍콩을 제외하면 모두 독재국가들이라 박정희 옹호측은 독재체제의 리더십을 중시하는 증거로 언급하고 반대측은 이들 국가들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수준의 성장을 했음을 들어 당시 환경이 성장에 유리했던거지 반드시 박정희의 리더십 덕분이 아니라는 말을 하더군요.

사실 당시 아시아의 독재국가가 많았는데 대부분 성장에 실패했고 독재 리더십이라면 공산국가가 가장 효율적인데 (실제로 1930년대 공황기의 소련이나 1960년대 북한의 경제성장을 보면 그렇죠) 결국 성장이 정체됐다는 것을 생각하면 독재리더십이 반드시 효과적이라고 말하기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독재리더십이 반드시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보장한다고 보기 어려우니 독재덕분이라고 말하긴 어렵다는 건 알겠는데 지식이 짧아 그 이상으로 생각을 발전시키기가 어렵네요.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7/21 18:01
"정치체제"보다는 "인물"로 한정해 봐야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박정희"를 "김일성"으로 바꿔 보면 결국 정치체제까지 건드리게 되니 논의가 안드로메다로 갈 듯 합니다만, 이 경우 같은 정치권 내의 인물이 아니니 반칙이겠죠.

독재권력과 경제성장의 관계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론에는 결정적으로 이렇다할 답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하긴 뚜렷한 답을 알아서 그걸 적용시키면 어떤 나라든 경제성장을 할테니, 이미 세상 모든 나라가 잘 먹고 잘 살고 있겠죠. "왜 대부분의 나라는 고도성장에 실패하고, 소수의 나라만이 고도성장을 하는가"는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19:34
독재체제가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가설은 꽤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Joseph Stiglitz의 책에서도 그 비슷한 이야길 본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라면 10년쯤 전에 Alwyn Young이 TFP분석을 통해 겉보기와는 달리 그 나라들의 내실은 상당히 차이가 난다는 주장을 했는데, 후속 연구가 좀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1 19:28
all/ 저는 미국 철도 쪽이 더 크다는 쪽에 걸겠습니다. 근데 뭐 저도 감으로 찍은 거니까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7/21 23:26
과연 노벨경제학상 감... (부들)

...그런데, 어째 (대중의 눈으로 보기엔) 편향된 방향으로 수량을 무기삼는
낙성대 사람들은 이런 걸 시도하기보다는 그냥 '신화'로 남겨둘 것 같은 편견이...
Commented by Alias at 2008/07/21 23:50
트랙백 (하려고 했는데 링크를 다른 데서 또 걸어버리니 핑백이 되네요...-_-) 신고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2 10:20
글 잘 봤습니다. 저도 쓰신 내용에 동의합니다.
Commented by Crete at 2008/07/22 09:11
sonnet님께/ 평소 생각을 정리해서 트랙백으로 올렸습니다.

지도자의 업적 평가-논쟁의 발자취를 따라
http://crete.pe.kr/1966

foog님의 글과 sonnet님의 글,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분들의 글과 제 생각을 모아서 이중 잣대와 남북 문제, 지도자의 평가에 대해 정리를 해 봤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2 10:19
다룰 것이 좀 되는데, 순차적으로 다뤄 보도록 하지요.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08/07/22 10:33
임기기간의 비교대조라고해도...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을 하던 상황에서 경제를 좌우하는 것은 거의 외부요소라고 생각하기에 어려워보입니다.
"박정희의 마지막 7년은 전두환의 7년과 대비해 어떠한가?"
이 경우만 해도 70년대의 오일쇼크와 80년대의 3저 호황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2 10:39
그건 마지막 1년과 첫 1년 같은 식으로 조정하면 해결될 수 있는데, 대신 정책의 time lag 문제가 생기죠. 그런 걸 중시하게 되면 사과와 배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도 비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 이 문제를 다루는 가장 성공적인 방법은 한 가지 비교를 너무 맹신하지 말고, 다양한 비교를 해가면서 전체상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그람 at 2008/07/22 18:00
이 연구 제대로만 한다면 엄청난 물건이 나올텐데, 인물 비교를 하려면 관련자들도 하나하나 인터뷰도 해야하고 정책자료 수집해야하고.......으으, 누군가 해줬으면 좋겠지만 해줄 사람은 별로 없군요.
Commented by Eraser at 2008/07/22 20:15
이래저래 봐도 생각나는건 영화 '데자뷰' 밖에 생각이 안 나는군요 orz

어떻게 보면 미래학 계통이랑 연관이 있는 주장인것 같고..
Commented by 저련 at 2008/07/23 02:12
박정희의 경제발전에 대한 기여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일단 박정희가 뭘 한거냐는 것 부터 합의를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긴 합니다. 그가 한 것은 두 가지 질문 위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구요. 3공 및 4공의 대통령이라는 제도, 넓게 보아서는 3공의 헌법과 4공의 유신헌법이라는 제도가 어떤 효과를 끼쳤느냐는 제도주의적 질문이 그 첫번째고, 제도로 환원되지 않는 박정희 개인의 결단이 어떤 효과를 끼쳤느냐는 질문이 두 번째겠습니다. 이어서 제도주의적 질문에 대해서는 가능한 다른 제도가 어떤 효과를 내느냐는 점에서 비교 연구가 가능할 것이고, 개인의 결단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은 무슨 결단을 했을지에 대해 비교 연구가 가능하겠죠. 다만 제도주의적 질문의 경우는 다른 제도와 비교하기가 비교적 수월한 반면, 개인의 결단에 대한 질문은 이거 정말 추정하기 막막하다는 점에서 큰 한계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일단 어느정도까지 답이 가능한지를 알기 위해서는, 제도 및 개인의 결단이 각각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친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우선 이뤄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Commented by 저련 at 2008/07/23 03:02
이 가운데, 철도라는 이미 존재하는 하나의 패키지로서 선택받을 수 있는 대상의 영향과 동일한 대상으로 취급될 수 있는 것은 역시 하나의 패키지로 취급 가능한, 다른 선택가능한 패키지와 명확히 구별 가능한 제도 뿐이겠습니다. 결단을 내리는 인격은 아무래도 다른 것과 명확히 구별되는 하나의 패키지라고는 하기 힘듭니다.

이러한 인격의 특성은 영미 심리철학에서 행동주의-물리주의자(카르납)들과 지향주의자(치섬)들이 싸웠던 쟁점, 즉 정신은 행동으로 환원될 수 있느냐는 쟁점(예를 들어 '믿다'동사의 성격이 무엇인지에 따라 이 쟁점에 대한 관점이 결정되죠)에 대한 논의에서 일부분 드러날 듯 합니다. 유토피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이 쟁점이라면 카르납은 유토피아를 언급하는 말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한다는 행동이라고 할 것이고, 치섬이라면 유토피아라는 말에 대한 (외면적) 태도는 신념과 무관할 수 있다는 논증으로 신념을 (외면적) 행동으로 환원하는 카르납의 태도에 반대합니다. 다만 양자 모두는 행동이 어떠한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는 동의를 하고 있는데, 앞선 식의 쟁점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인격이므로 특정 행동이 의도하고 있는 것 또는 그 이면에 있는 것이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것입니다.
다른 지점에서는 역시 문제상황이 무엇인지를 선택하는 특수한 지위에 인격이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왜 그러한 프레임을 짠 것인지, 그러한 지점에 대한 질문이 인격의 결단에 대한 질문일텐데, 이러한 지성사적 또는 지식사회학적 접근 대상에는 정량적 접근이 불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Commented by 야채 at 2008/07/23 05:30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가능한 최상의 대안'과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전혀 다른 것이고, 현실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들 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해서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뉴튼이나 아인슈타인의 업적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뉴튼이나 아인슈타인이 무엇을 했는가만을 평가하면 됩니다. 뉴튼이나 아인슈타인이 없었더라면 다른 학자들이 같은 업적을 이루는데 몇 년이 더 걸렸을 것인가를 계산하고, 그런 업적이 몇 년 늦게 나왔을 때 현대 사회에서 무엇이 달라져 있을 것인가를 계산해서 그 차이만큼만을 업적으로 인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상식에 배치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또다른 문제는, 박정희의 예를 들어보자면, 박정희 이외의 지도자들이 나와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면 그들 역시 존경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가상의 지도자들의 업적과의 차이'만큼만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지도자들이 받았을 평가' + '업적과의 차이'만큼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본다면 결국 '가상의 지도자'의 업적이 크면 클수록 '가상의 지도자들이 받는 평가'도 좋아질 것이므로, 결국 최종적으로 박정희가 받는 '좋은 평가'의 정도에는 차이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박정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 글의 논리를 그대로 긍정하고 나면 일본의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지 않았다면 다른 제국주의 국가에게 지배당했을 것이다." 라는 논리에 대해서 "다른 제국주의 국가에 의해 지배당했을 경우의 결과"와의 차이 만큼만 일본을 비난할 수 있다는 결론을 대체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7 17:07
이건 따로 답을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Crete at 2008/07/23 08:58
야채님... 이 글 한번 읽어 보시죠. 말씀하신 내용에 대한 해답이 다 들어 있는 듯 합니다.

http://crete.pe.kr/Recommendation/1963
Commented by 야채 at 2008/07/23 09:10
'권한이 없습니다' 밖에 못 읽었습니다. -_-a
Commented by Crete at 2008/07/23 13:19
야채님 죄송합니다. 방금 권한 설정을 해지했습니다. 다시 한번만 더 시도해 봐주세요.
Commented by 야채 at 2008/07/23 20:20
덕분에 지금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만, 해답이 들어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군요. 그 글은 "일본이 조선에서 그다지 좋은 일을 많이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 경우 "조선은 어느 나라의 식민지도 되지 않았을 것이고" "일본의 식민지로서의 경험이 있는 상황인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식민화되지 않은 조선에서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라는 가정 없이는 별 의미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정에 대해서는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본이 없었다면 조선은 다른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다른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가 되었다면 과연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보다 나았을까? 일제는 단지 '다른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경우와의 차이 만큼만 비난할 수 있지 않을까?" Crete님은 이런 의문에 대해서 그 글이 어떤 해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Commented by reske at 2008/07/27 00:19
일단 역시 박통떡밥은-_-;; 덧글이 90개나 되는군요. 아무튼 소넷님의 논지에는 동의합니다. 박정희의 성과를 계량하기 위해 다른 대안들과의 비교를 통해 평가해볼 필요는 있다고요. 뭐, 박통이라는 인물이 워낙 많은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는지라.. 감정개입을 최대한 자제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을것 같네요.

아직 양민(쿨럭..)이라 뭐라 대단한 말은 못하겠지만, 박정희라는 인물이 가진 리더십이라는 요소는 참 평가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이런 부분이 박정희의 업적을 계량하는데 가장 큰 난관이 될 듯합니다. 분명 박정희가 국민들에게 불어넣은 어떤 정신이라던가, 아니면 정책결정과정에서 보여준 결단력(?) 이런 부분은 경제성장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한데, 문제는 이걸 평가하기가 참 곤란할 것 같습니다. 역시 사회과학이라는 것이 데이터로 연구하거나 아니면 개인의 심리를 추론해서 연구해야 하는데, 데이터를 연구한다 할지라도 뭐 리더쉽을 통계로 뽑아내는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그렇다고 그의 일기나 측근의 회고같은 부분에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도 신뢰도가 없어보이고..

좀 두서없었지만 요는, 정량화할 수 없는 요소가 사회과학 분야의 이슈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큼에도 불구하고 이를 연구과정에 반영하기가 참 골치아프다는 부분입니다. 지난번에 다른 포스팅에서 말씀하신대로 역시 아직 사회과학은 치료를 위해 환자에게서 피를 뽑아내는 근대 의학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듯하기도..;;

아참, 굳이 감으로 찍자면 저같은 경우에는 박정희가 철도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데 한표. 뭐 별다른 근거가 없이 그냥 감일 뿐이지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27 17:07
네. 그게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게임의 캐릭터 스탯도 아니고... 그런데 비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많습니다. 특히 자신이 잘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도 어떤 식으로 비교하는게 그럴듯한지에 대한 논의는 비교 그 자체보단 훨씬 쉬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lesis at 2016/04/11 20:45
오래된 포스트에 댓글을 남기게 되네요.

저로서는 당시 시대적으로 철도산업 이상의 자본효율성을 가지는 대체산업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만철이 일본제국에서 가장 거대한 기업체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죠. 그런 기업체가, 하나의 새로운 산업이 탄생하지도 않게 되는 겁니다.

거기다 철도에 사용되는 막대한 철강재를 생산하기 위하여 형성되는 후방산업인 거대 제철소는 철제품의 가격을 극적으로 떨어뜨릴 수밖에 없죠. 이는 또 철근콘크리트 공법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건설 패러다임을 불러오게 됩니다. 그러나 철도산업의 부재로 철강재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러한 패러다임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곤 보이지 않죠. 건설부문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하니 두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봅니다.
에디슨 하면 떠오르는 것도 있군요. 어린 시절 기차에서 신문을 팔았다죠? 철도의 신속성과 정시성 없이는 전국적인 신문산업도 별로 발전하지 못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 하에서 신문 이상의 마케팅 수단은 없는데, 결국 궁극적으로 전체 상업시장 또한 위축될 수밖에 없겠네요.

...당장 떠오르는 것만도 저 정도이니 그밖에도 파급효과란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겠죠. 결국 단순히 수송산업 자체의 효율성만 놓고서 비교하여 철도 자체의 수송비용 감소효과만이 경제적 효과의 전부라고 주장하는 포겔의 연구는, 그 대단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산업의 쌀이라 불리우는 철강의 광범위한 경제적 파급효과, 아니 그 이상으로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세계의 연관관계를 전연 무시한, 의미없는 노력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런 다양한 파급효과까지 포함해서 포겔의 주장대로 고작 5%밖에 차이가 안 난다면 그거야말로 대단한 일이겠지요. 신문산업의 미비한 발달로 전체 상업시장이 둔화되고 철근콘크리트 공법으로의 이행이 늦어져 건설산업의 성장이 지체되는 등의 수많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겨우 그 정도 차이밖에 안 날 수 있다면 말입니다.
Commented by WAR at 2019/04/25 12:45
하나의 혁신이 가진 경제적 효과는 그 혁신에 의해서 가능해지는 비용절감의 크기에 의해서 검토되어야 하며, 그러한 비용절감의 크기는 대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른 기술의 비용구조와 비교함으로써만 정확하게 평가될 수 있다.

박정희는 1960~70년대 동안 한국 경제가 산출한 많은 부분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다른 최상의 대안을 능가하여 공헌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는 한에서만, 필수불가결성이라는 칭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

야구에서 WAR (Win Above Average) 라는 지표가 이런 방식입니다. 선수의 가치를 나타낼 때, 대신할 평균적인 땜빵 선수에 비해 1년에 몇 승을 더 얻을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겁니다. 즉, 이 선수가 갑자기 경기에 못 나서게 되면, 급하게 구할 수 있는 포지션 땜빵 선수의 평균과 비교하는 겁니다.

https://namu.wiki/w/WAR
https://namu.wiki/w/%EB%8C%80%EC%B2%B4%20%EC%84%A0%EC%88%98

:         :

:

비공개 덧글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