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촛불시위와 이명박 정부의 반응개인적으로 지난 100여일 남짓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배후세력' 설이었었다.
여권 관계자는 "쇠고기 협상 직후 관계장관 회의에서 '광우병에 대한 선전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청와대 정무라인과 해당 정부 부처 모두 흘려 넘겨 버렸다"고 했다. 민정수석실은 쇠고기 대책회의에서 "어제 촛불집회가 열렸고 1만 명이 참석했다"고 보고했다가 혼쭐이 났다. 이 대통령은 "
신문만 봐도 나오는 걸 왜 보고하느냐.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배성규,
"촛불집회 몇 명 참석" 하나마나한 보고, 조선일보, 2008년 5월 31일
많은 사람들이 이 보도를 보고 이명박에게 크게 화를 냈고, 또한 촛불시위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는데 일조한 것이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발언을 일종의 색깔론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은데, 내 생각은 다르다. 어쨌든 본론에서 벗어나게 되므로 이 이야긴
다음 기회에...)
그러나 이렇게 상황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청와대도 민감하게 반응할 때가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재보선 참패에 대해 공식논평을 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핵심 관계자들은 "
몇만 명이 촛불집회하는 것보다 더 구체적으로 민심이 드러났다"며 자성과 충격이 뒤섞인 모습이었고, 조속히 국정을 쇄신하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2008년 6월 5일
즉 정치권은 촛불시위 같은 비제도권 행동보다는 별 것 아닌 재보선이라도
객관적으로 측정되는 표와 관직의 향배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이 선거가 재보선이 아니고 총선이었다면 그 파괴력은 수십 배였을 것이었다. 또한 같은 여권이라도 재선에 나서야하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그런 거 없는 청와대 간의 온도 차는 확연히 감지된다.
이러한 결과는
대의민주정 제도가 설정한 인센티브 구조는 잘 동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제는 대선과 총선이 끝난지 겨우 반 년밖에 되지 않은 지금
주요한 선거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는 민주당 등 야당 뿐 아니라 한나라당의 행동에도 제약을 두고 있다. 대선이 한 1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한나라당 안에 웅거하고 있는 차기대선을 노리는 야심가들이 공공연히 반기를 들기는 훨씬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대선이 4년반이나 남은 현재, 섣부른 봉기는 당사자의 자멸로 귀결될 공산이 높다.
마찬가지 현상은 총선이 막 끝난 국회에서도 발견된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번 사태의 낙진을 피하기 위해 급급해하면서, 청와대가 벌인 일이니 너희가 알아서 총알받이를 하라는 식의 소극적 반응을 보이고 있고, 지난번 선거 패배로 지리멸렬한 민주당 의원들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해임결의안도 통과시키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보이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이러한 현상은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은 다 해 보았는데도, 정치권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는 광범위한 인식을 낳았다. 이에 좌절감을 느낀 급진그룹에서는 (평소라면 씨알도 안먹힐 주장을 재포장해) 갑작스럽게 직접민주주의를 찬양하는 논리를 양산하였고, 이보다 현실적인 그룹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주민소환 등
기존 제도의 인센티브를 활용한 우회전술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전략적 관점에서 청와대보다 한나라당을 압박해야 한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도 인센티브 구조의 차이에 주목한다는 데서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반응을 보면서 나는 약 18개월 전에 정치권에서 발생했던 한 사건을 떠올리게 되었다.
2. '원포인트 개헌'을 돌이켜보며약 1년 반 전인 2007년 초,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소위 '원포인트 개헌'이라고 불리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였다.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임기 4년에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게 개정한다면 국정의 책임성과 안정성을 제고하고, 국가적 전략과제에 대한 일관성과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임제로 조정하면서, 현행 4년의 국회의원과 임기를 맞출 것을 제안합니다. 현행 5년의 대통령제 아래서는 임기 4년의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수시로 치러지면서, 정치적 대결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여 국정의 안정성을 약화시킵니다.
노 대통령 대국민담화, 2007년 1월 9일
워싱턴에는 "
어떤 정책을 지지할지는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달려 있다"란 유명한 속담이 있는데, 이 개헌 제안도 여기에 잘 들어맞는 사례라고 하겠다.
당시 노무현 자신은 이 개헌은 성사되어도 자신이 퇴임한 후부터 적용될 것이므로 당리당략과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에는
재임중인 대통령이 자기 임기 중의 선거를 보게 되는 전형적인 시각이 그대로 담겨 있다. 즉 (대통령이 진정성을 갖고 뭔가 일을 해보려고 노력하는데)
"선거가 수시로 치러지면서, 정치적 대결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여 국정의 안정성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그 이전의 발언에서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대통령 임기가 5년이 긴 것 같다. 제도적으로도 긴 것 같다. 지금 제도로는 임기 중간에 선거를 자꾸 하는 것이 국정운영에 합리적이지 않고 일하기에 아주 곤란하다.
하던 일이나 하려는 일들을 선거 때문에 중지해야 하고 바꿔야 한다. 선거 변수가 끊임없이 국정운영에 끼어든다. 국정이 굉장히 흔들리게 된다" (2006년)
"임기가 10년이든, 100년이든 자기 선거가 아닌 다른 선거를 계속하면 임기가 긴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2006년)
노대통령 개헌관련 발언록, 연합뉴스, 2007년 1월 19일
물론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치인들이 여론 동향에 평소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기 때문에,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책을 일관성있게 밀고 나가기가 힘들어진다. 그런 현상이 때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때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단점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자연스럽게 견제라는 순기능을 약화시키게 된다. 당시에도 개헌론이 터져나오자 마자 그러한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었다.
노 대통령의 논리는 대선은 5년, 총선과 지방선거는 4년마다 치르고, 총선과 지방선거도 각기 다른 해에 치르는 바람에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고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실제 1987년 이후 20년 동안 선거가 없었던 해는 8년에 불과했을 만큼 선거 홍수를 이뤘다.
그러나 대선과 총선 주기를 일치시키면, 대통령 및 정부 여당의 독주 및 이에 대한 견제 기능이 약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실시하면 대통령을 당선시킨 당이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세대 박명림(정치학) 교수는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과 의회 지배 정당이 일치하는 ‘단점(單占) 정부’의 경우
의회의 대통령에 대한 견제 기능은 미약할 수 있다”며 “국회의원의 일정한 비율을 임기 중간에 선출하는 등의 중간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용관, 민동용,
임기만 바꾸는 개헌 ‘새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나, 동아일보, 2007년 1월 19일
당시 노무현이 주장한 주요 논거 중 하나는 2007년 말-2008년 초는 대선과 총선이 붙어있는
20년 만의 호기이므로 이 기회에 이것을 영구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다들 경험해 봤으니 느꼈겠지만, 이것은 호기가 아니고 악재이다. 이렇게 되면 일단 선출된 대통령이 독선적인 정책을 밀어붙이기 시작할 경우, 정상적인 정치제도를 통해 이를 견제하는 것이 엄청나게 힘들어진다. 당시 노무현이 하자는 대로 개헌을 해서 대통령-국회의원 선거를 일치시켜 놓았다면 이런 상황은 우리 정치의 일상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대통령 임기 내내 주요 선거가 하나도 없다면 여론 반영 능력이 얼마나 더 떨어질지 짐작이나 가는가?
대표적인 대통령중심제 국가인 미국을 살펴보자. 미국은 하원의원은 2년, 대통령은 4년, 상원의원은 6년(매 2년마다 1/3씩 선출)의 임기를 갖고 있어서 대통령 임기 딱 절반 시점에 하원의원 전부와 상원의원 1/3을 뽑는 전국적인 선거가 있게 되고 이것이 중간선거라고 불리며 자연스럽게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을 겸하고 있다.
이처럼 어떤 제도가 예기치 못한 문제를 일으킬 때 그런 문제가 없는 다른 나라의 제도를 곰곰히 뜯어보면, 역사가 오래되고 잘 굴러가는 제도는 얼핏 보기엔 낡고 쓸데없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도, 실은 피상적인 관찰자들이 놓치고 있는 장점이 많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형태는 다양한데 견제 메커니즘이 잘 내장되어 있어서일수도 있고, 오랜 경험을 통해 버그가 많이 잡혀서일수도, 운영경험이 길어 정치인과 국민이 이 제도를 활용하는 데 있어 노우하우가 많이 축적되어 있어서일 수도 있다.
3. 대통령중심제를 다시 생각하며대의민주정 체제는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라면 효율을 상당부분 희생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 아래서 만들어진 체제이다. 대통령이 되어서 그 자리에 앉아보면, 당시 노무현처럼, 그리고 지금의 이명박처럼
내가 생각하던 것처럼 강력하지 않고, 실은 내 마음대로 잘 안되는 자리라고 느껴지겠지만, 그 제도를 만든 사람들이 노린 것이 바로 그런 정도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예전에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었던 미국의 대통령학 연구자
리처드 노이스타트(Richard Neustadt)의 말을 재탕하면서 글을 끝맺고자 한다.
형식에 있어 모든 대통령은 지도자다.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 이것은 그에게 서기(clerk)로서의 직책 이상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은 백악관의 주인이 모든 일에 대해 무엇인가 하기를 기대한다. …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의 발밑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단지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려면 대통령의 재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는 뜻일 뿐이다. … 그들이 보기에 대통령의 재가는 자신들의 일에 매우 유용하다. … 대통령은 없으면 안 될 서기이다. 워싱턴의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는 서기이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이와 전혀 별개의 이야기이다.
가죽장화를 신고 말 위에 높이 걸터앉아 모든 결정을 주도하는 대통령(President-in-Boots)이라는 이미지는 겉보기만 그럴 뿐이다. 실상에서 대통령은 고무신을 신고 고삐를 말아 쥔 채 마부석에 앉아 각 채 각 부처의 장관이며, 하원의원이나 상원의원과 같은 정치인들에게 마차에 오를 것을 권하는 마부에 가깝다(President-in-Sneakers).
대통령이 영향력을 구축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들은 공공정책의 생존능력, 즉 정부정책이 끝까지 실행될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여러 요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 이는 곧 정치적, 행정적, 심리적, 개인적 실현가능성의 균형이다. … 대통령이 어떤 일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맡은 부서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하고, 지지자로 하여금 지지할만하다고 여기게 만들어야 하며, 그 결과로 영향을 입을 사람들이 참을만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 이처럼 대통령의 권력을 결정하는 요인들은 곧 정부정책이 끝까지 실행될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들과 흡사한 것이다.
대통령의 권력은 설득하는 권력(power to persuad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