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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적 지혜의 함정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는 일련의 토론의 일부이다.


이번 글에서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트랙백해온 글에 반박하는 논점 몇 가지를 다룬 후, 이번 논쟁이 더 진행될 수 있기 위해 해결되어야 할 근거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1. 정황유추의 한계

하지만 영국의 단호한 결의의 근거로 처칠의 회고록을 인용한 것은 좀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처칠의 역사가적 양심을 굳이 의심해서라기보다는, 처칠 입장에서는 내각과 영국 국민의 단호한 결의를 믿고 싶었을 것이고 또 그런 영국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을 거라는 점이지요... 굳이 (소수의) 화평론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가장 위대했던 시절"에 대한 기록에서 말이지요. (파파라치)

여기서는 내가 제시한 근거에 대해 직접적인 반증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별 근거가 없으면서도 이미 제시된 자료를 최대한 자신의 기존 주장에 맞추어 유리하게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저런 식의 창작을 시도하면 정반대의 논리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상상해 보자.

"이제 와서 말하자면 누구라고 지목은 않겠으나 당시 우리 대영제국 지도부에는 프랑스에서의 패배에 자신감을 잃고 과도한 비관주의에 빠진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히틀러가 제시한 굴복요구를 받아들이자는 쪽에 이끌리고 있었다. 이에 나는 ……한 이유를 들어가며 이들을 설득한 끝에 종내는 모두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는 데 동의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줄거리를 미사여구로 포장해 내놓을 수 있다면 어려웠던 시기를 이겨내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처칠 수상 자신의 위대함과 식견은 더한층 빛나 보일 것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 있었다면 더 자랑스럽게 공개하지 굳이 감출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 물론 이러한 나의 정황유추도 파파라치씨가 내놓은 유추과 마찬가지로 이 자체로는 아무 근거가 없다. 결국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 없이 순수한 유추만 갖고 자료가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게다. 저런 식의 정황설명은 몇 개의 상충되는 근거가 있어 일관성을 위해 그 중 모순되는 일부를 배제하는 설명을 수립하고자 할 때라면 몰라도,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는 전혀 설득력이 없는 접근법이다.

이런 식의 주장은 최소한 당시 처칠의 비서가 후에 저런 유추에 해당하는 증언을 남겼다거나 하는 정도는 되어야 간접적인 증거로라도 채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 히틀러의 의도 때려맞추기

하지만 히틀러의 목적이 "동방 정복"에 있었다는 걸 꿰뚫어 본 사람이라면, 뮌헨 협정이 종이조각에 불과하다는 것 못지않게 영국이 히틀러의 주된 공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도 있었겠지요. 그리고 그 사실은 "나의 투쟁"을 비롯한 히틀러의 여러 언급에서 이미 공공연하게 언급된 것이고요.

히틀러의 주 관심사가 동방이라면 영국은 잠정적으로라도 히틀러와 화해하고 제국의 보존을 추구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파파라치)

『나의 투쟁Mein Kampf』과 같은 히틀러의 저술에서 공공연히 혹은 은연중에 드러나는 생각을 토대로 히틀러의 행동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널리 이루어져 왔다. 여기에는 히틀러가 세계정복을 노렸는가 아니면 유럽정복만 노렸는가(Globalists vs. Continentists) 또는 유태인 학살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는가 아닌가(Functionalism vs. Intentionalism) 같은 논쟁들이 있고, 각각의 진영 안에서도 주장의 강도에 따라 더 세밀한 분류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들은 대개 히틀러가 죽고 제3제국이 멸망함으로서, 히틀러가 더이상의 사건을 벌이지 못하게 된 후 확정된 결과를 갖고 그간의 언동을 평가함으로서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히틀러가 승승장구하며 그 야망을 한참 펼쳐나가던 1940년 여름 시점, 즉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망상으로만 보이던 히틀러의 야망의 실현이 현실로 다가오고 수많은 선택의 길이 열려있던 시점에도 가능한 평가라고 볼 수는 없다.
즉 이러한 종류의 평가는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얻을 수 있는 사후적 지혜의 성격이 강하다.

게다가 아무리 국가지도자라곤 해도 독재국가도 아닌데 수상 개인이 개인적으로 『나의 투쟁』을 읽고 받은 개인적인 인상 하나만 갖고 국가의 진로를 180도 돌려놓을 수 있었을 거라고 간단히 가정하는 것도 무리한 발상이다.
당시 체임벌린이 물러나고 처칠이 수상에 취임하게 된 데는 체임벌린이 수상 직을 고집하는 한 거국일치내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야당의 입장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점은 당시 노동당 같은 야당이 거국일치내각 수립을 지렛대로 하여 중대사안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비토권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처칠은 체임벌린에게 당의 관리를 여전히 맡기는 등 보수당의 주류를 확고히 장악하는 입장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따라서 처칠이 당시 흔하지 않던 소수의 선각자적 시각에 입각해 급진적 돌출행동을 시도했을 경우, 그러한 시도가 별다른 저항 없이 성사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히틀러는 영국상륙작전인 Seelöwe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후에 이 계획을 무기연기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보면 앞서 언급된 것 같은 영국과 싸우는데 큰 흥미가 없었던 히틀러의 사고방식과 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투쟁』에 드러난 히틀러의 세계관에 입각해 영국의 해안방어에 과도한 투자를 할 필요는 없다고 수상이 독단적인 주장을 펴면 그게 당시의 거국일치내각에서 지지받을 수 있었겠는가?



3. 역사·전통적 배경과 원칙적인 이유?

ps2. 인용하신 힐그루버의 글에서도 "결국 영국은 역사·전통적 배경과 원칙적인 이유로 인해 전자의 해법을 선택할 수 없었다"라고 적혀 있는데, 과연 "역사·전통적 배경"과 "원칙적인 이유"란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셨는지? (파파라치)

이건 본인의 논지였던 "윈스턴 처칠이 히틀러에 대한 결사 항전을 다짐한 것도, 우파의 "가치"와 관련된 것"을 연결시킬 구석이 있는지 스스로 생각을 좀 해보셨는지 반문하고 싶다.

힐그루버가 말하는 바는 어디까지나 영국의 "역사·전통적 배경과 원칙적인 이유"이지, 처칠 개인의 혹은 영국 우파 특유의 "역사·전통적 배경과 원칙적인 이유"라는 이야긴 아니다.



4. 결론

결국 지금까지 살펴본 문제들을 종합하면 문제점은 한 가지로 요약된다.

이 논쟁의 시발점이 된 명제 "윈스턴 처칠이 히틀러에 대한 결사 항전을 다짐한 것도, 우파의 "가치"와 관련된 것"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가 하나도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러셀의 찻잔 등에서 잘 묘사되듯이,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입증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정상적인 논쟁에서는 존재를 주장하는 쪽에서 직접적인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그러한 근거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1. 히틀러의 "관대한" 제안을 수락하는 것과 관련된 유의미한 논의가 영국 전시내각 혹은 의회에서 이루어졌어야 함.
  2. 그러한 논의를 통해 영국의 국가전략이 '계속 항전'으로 귀결되는 과정에서, 처칠이라는 개인이 유의미한 개입(예를 들자면 반대파를 논파)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함.
  3. 그러한 개입에 있어서 처칠이 보인 입장은 우파 고유의 가치에서 출발한 것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함. 예를 들어 영국 좌파 정당이라고 해서 별달리 반대할 이유가 없는 입장 같은 것이라면 그것을 굳이 우파의 가치라고 구별해 논할 필요가 없음.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어떤 근거가 제시될 수 있는지 한번 기대해 보도록 하자.
by sonnet | 2008/06/14 21:50 | flame! | 트랙백 | 덧글(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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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윤민혁 at 2008/06/14 21:57
근본적으로 처칠이 대안으로 제시된 건 영국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게 됐기 때문에 거기에 가장 알맞은 수상으로 보인 것이었다는 것부터 생각해야 할 문제인데... 영국이 물러설 수 있는데 처칠이어서 안 물러났다는 것으로 오해하는 게 저분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6 22:59
저도 동의합니다. 무엇보다도 전시용 거국일치 내각이니까요.
5월 28일에 처칠-애틀리 : 레이노-페탕 회담이 열리는데, 이 회담의 제일 큰 목적은 프랑스를 계속 싸우게 힘을 북돋우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이 때 애틀리가 처칠과 입장이 많이 달랐다면, 처칠은 애틀리를 동반해 프랑스 지도자들을 만나러 가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06/14 22:06
와우 완전 정론적인 공격이네요
토론은 이래야 제맛이죠

추이를 기대해보겠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6 23:00
보시는 대로 일단락 난 것 같습니다. 물론 나중에 어떤 증거가 확보되면 재개할 수도 있을 것이구요.
Commented by Ya펭귄 at 2008/06/14 23:02
예전에 어디에서 본 글인지 모르겠지만 처칠이 했다는 독백을 본 기억이 있지요...

"공산주의자 넘들은 구제불능이야... 어제까지만 해도 소비에뜨의 맹방 독일과의 전쟁을 반대하던 넘들이 휘투라가 서탈린한테로 쳐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하루만에 '유럽에 제2전선을!!!' 이라고 간판을 바꿔달더군..."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6 23:01
사실 그러다보니 서유럽의 공산당들이 늘 매국노로 몰려 고생을 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shaind at 2008/06/14 23:03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해질녘에야 날개를 편다는 거......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6 23:01
예...
Commented by 마나™ at 2008/06/14 23:53
저는 sonnet님의 타깃이 된 분이 불쌍하다는 생각밖에........(먼산)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6 23:22
...... (꾸벅)
Commented by 이네스 at 2008/06/15 00:11
애궁. 글의 수준이 점점 이해하기 힘들어 지고있어..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6 23:24
네, 별로 재미있는 이야긴 아니게 되었죠. 하여간 이 건은 이번 글로 끝을 냈습니다.
Commented by 액시움 at 2008/06/15 02:09
정말 멋진 토론이군요.
혼자서 영국 전체의 뜻을 일치하게 할 만큼 처칠이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었던가요……. 2차대전사를 잘 모르니 꾸엑. 역시 아내를 일곱 명이나 둔 분답게(퍽)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6 23:25
처칠이 고집불통이긴 해도 어려운 전시를 맡길 만한 인물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1930년대에 보인 처칠의 예언들은 사실 질이 좋았다고 하기 어려운데, 시대가 한 바퀴 돌아서 처칠에게 기회를 주는 걸 보면 확실히 관운은 있는 사나이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建武 at 2008/06/15 11:25
sonnet님께서 제 의견에 반대입장을 보이시며 글을 올리신다면 전 십중팔구 그냥 깨갱하면서 "님하가 옳아여!" 라고 해버릴것만 같군요. 껄껄껄.
Commented by 어부 at 2008/06/15 11:47
건무님 물론 저도 그럴 듯함....... (밑천 딸려서) -.-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6 23:27
'_';;;
두 분 다 평소에 좋은 글을 선보이시면서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흐.
Commented by Claudius at 2008/06/15 13:24
멋진 토론 잘 봤습니다. 아마도 반대측에서는 더이상의 반론을 내지 못할듯..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6 23:38
어찌 되었던 끝난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Alias at 2008/06/15 16:57
자기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만 썰을 푼다면 굳이 꿀릴 건 없죠. 어부님 같은 경우에는 진화생물학 쪽에서 전투가 벌어질 경우 가용화력이 충분하지 않은가요? 사실 수학, 과학,공학 같은 종류가 아닌 분야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만연해 있는 게 저런 식의 논쟁이 흔히 벌어지는 이유처럼 보입니다.
Commented by 어부 at 2008/06/15 22:14
감사합니다. 굽신굽신!!

그런데 저도 얼마 전 전투에서 fact하나 착각하는 큰 실수를 저지른지라..... -.-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닌 곳에서는 뭐 말할 때 극도로 조심해야 하죠. 뭐 하나 만만한 것은 없지 말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6 23:59
예. 당연한 말씀입니다. 저 같은 무명지배를 지레 피할 필요가...

사실 전통적인 인문교양교육이란 것이 지식을 머리 속에 미리 쌓아 놓지는 않더라도, 필요할 때 그런 광범위한 주제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과정이었던 것 같은데, 오늘날의 사회에는 그런 식의 교양이 (학문의 분화 등이 심각하게 진행되는 등의 이유로) 더이상 오늘날의 사회에 맞지 않아 잘 동작하지 않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즉 사람들이 "지나치게 만만하게" 보는 이유는 "나도 남들 정도의 교양교육을 받았으니까" 당연히 할 능력이 된다는 인식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8/06/15 17:5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지적하신 대로 "직접적인 근거"가 적은 문제에 대해 결과를 놓고 사후적으로 해석하는 태도는 사실 어떻게든 답이 필요할 때나 나오는 고육지책에 불과한데 이런 태도를 아무 문제에나 적용하는 사람이 많다는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유혹에 잘 빠지는 편인데 이번 토론이 아주 유익한 시사점이 되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6 23:17
사실 그 유혹은 너무 강렬해서 왠만한 사람은 흔히 빠지게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고 말입니다.
하버드의 어니스트 메이는 이런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루려면, 언제나 자신의 수중에 있는 카드 패를 알려진 것(known), 불분명한 것(unclear), 추정되는 것(presumed)으로 분류해서 어떤 것이 알려진 것이고, 어떤 것이 불분명하며, 어떤 것이 추정한 것인지를 따지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지적하더군요. 저도 이 패턴을 몸에 익히려고 노력은 하는데 생각보다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GARAHAD at 2008/06/16 02:05
뭐 그 대목에서 처칠 회고록을 끄집어낸 건 그리 세련된 인용은 아니었다고는 생각...

근데 가끔 이곳에서 벌어지는 이런 스타일의 트랙백의 연쇄를 보고 있으면... '조사에 노력을 들일 생각이 없으면 대응을 말지...'란 말이 절로 흘러나옴. 나아가 가끔 자신이 조사해야할 부분까지 상대에게 묻는 걸 보면... -_-;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6 23:07
세련되지 못하다는 점은 인정. 그 때 간편히 찾아볼 수 있는 자료집이 수중에 그것 밖에 없어서 말이지. 그래도 그게 당사자가 말하는 사건 개요이긴 하지.
Commented by GARAHAD at 2008/06/19 17:14
자서전 하니까... 얼마 전에 나카소네가 대략 20년 동안 낸 3종의 자서전을 비교해 봤는데... 타나카에 대한 입장 변화가 현격하더군... 처음엔 역시 다나카 최고... 그 다음엔 공과가 다 있다... 가장 최근에 낸 것에선 아니 실은 내가 타나카보다 낫다... -_-;

자서전까지 냈으면 빨리 무덤으로 가는게 맞다고 봄...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08/06/16 02:57
직접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데 동의합니다. 예전에 읽은 책들(폴 존슨 "현대사" 등등...)에서 읽은 기억들을 바탕으로 쓴 글인데, 정확한 사료의 뒷받침이 없이 썼네요.

재반박을 하려면 관련 사료들을 찾아보아야 할 터인데, 제 주 관심 분야가 아니라서 찾아보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습니다(책도 없고...). 현 시점에서는 제가 부족함을 인정해야 겠네요.

꼼꼼한 반론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공부가 됐네요. 좀더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글을 쓰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Commented by 하이얼레인 at 2008/06/16 15:24
멋지십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6 23:02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토론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기로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_- at 2008/06/16 21:42
이렇게 시원하게 인정하는 용기가 멋집니다.
이글루스에서 이렇게 깔끔하게 끝나는 논쟁을 본게 처음인듯=_=;
Commented by 섭동 at 2009/12/24 07:01
히틀러는 영국상륙작전인 Seelöwe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후에 이 계획을 무기연기한다. ... 영국의 해안방어에 과도한 투자를 할 필요는 없다고 수상이 독단적인 주장을 펴면 그게 당시의 거국일치내각에서 지지받을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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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해안방어에 돈지랄을 했기에, 히틀러가 Seelöwe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라고 보는 사람도 있나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12/26 07:57
그게 그런 이야기가 아닌데요?
Commented by 섭동 at 2009/12/26 09:41
당연히 그런 이야기는 아니지요. 혹시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서 적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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