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by sonnet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rss

skin by 이글루스
re: 꼭 그럴까요?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는 토론의 일부이다.


이번 글에서는 트랙백해온 글에 반박하는 논점 세 가지를 지적하기로 한다.


하지만 sonnet님의 미국 아니면 독일이라는 단순화는,
미국과 손을 잡는 것은 독일과의 전면전을 뜻하지만, 독일과 손을 잡는 것이 미국과의 전쟁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근본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있지요. (파파라치)

이 주장은 사실관계에 문제가 있다.
미국과 손을 잡는 것은 독일과의 전면전을 뜻하는 게 아니다. 영국은 독일과 이미 총력전에 휘말려 있는 상태에서 진행 중인 전쟁에 이기기 위해 미국의 도움에 의존하려 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누구랑 손을 잡는게 더 유리한가를 따지는 것처럼 묘사하면 곤란하다. 전쟁은 시작보다 끝내기가 훨씬 어려운 법이다.



반면, 히틀러와 전쟁을 계속할 경우 영국의 허약한 경제력으로는 파산을 맞으리라는 것은
조금만 재정에 대한 이해가 있는 이들에게는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실제로 파산했고요).
재정적으로 파산한 제국이 유지될 수 있을리 없죠.
즉, 처칠의 전쟁 지속 결정은 대영제국의 해체를 의미했던 겁니다. (파파라치)

내가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독일과 전쟁을 한다는 결정은 체임벌린 내각에서 내려진 것이다. 이 점을 억지로 외면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자꾸 이런 이상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가한 시점에서 연합군의 지도부와 대중은 모두 이번 전쟁도 길고 피비린내나는 소모전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 시점에서 기계화 부대나 공군 때문에 소위 '전격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즉 체임벌린은 노쇠한 대영제국에 가해질 부담을 통감하면서도 전쟁에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 내키는 결정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설마 동맹국으로서 프랑스가 경제적 측면에서 대영제국의 붕괴를 저지해줄 만한 든든한 실력자라고 믿고 전쟁에 나섰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또한 처칠이라는 사람의 이념적 지향성이 그 시점에서 계속 싸운다라는 결정을 내리는데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결론을 내려면 최소한 영국 내부에서 히틀러가 내건 조건에 따르는 종전협상을 강하게 주장한 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미 결성되어 있던 거국일치내각 하에서 참여 정당 지도자들은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고, 주요 언론들도 항전을 지지하였다.

나의 마음속에 떠오른 최초의 생각은 상하양원에 있어서 이 일이 엄숙하게 정식으로 토론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보수당수] 체임벌린과 [노동당수] 애틀리에게 동시에 다음의 서한을 보냈다.

히틀러의 연설에 대하여 양원에서 결의를 갖고 토론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동의는 관직에 있지 않은 귀족과 의원들에 의하여 제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을 하면 우리의 일은 불어날 것이다.
귀견 여하.


두 사람은, 우리는 이에 관해서는 모두 동일 의견이므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사실을 너무 중시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외상의 방송 연설로써 히틀러의 의사 표시를 거부하게 할 것으로 결정했고, 22일 밤에 외상은 히틀러의 「자기 의사에 머리 숙이라는 초청」을 깨끗이 일축했다.
……
그러나 사실 히틀러의 연설이 방송됨과 동시에 도이치와 타협하고자 하는 것 같은 생각은 영국의 신문과 방송국에 의해 하등 정부로부터의 시사없이 이미 거부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외상] 치아노는 … 히틀러를 만났을 때의 일을 이렇게 쓰고 있다.
「어제의 연설에 대한 영국 여러 신문의 반발은 양해할 여지를 없게 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히틀러는 영국에 무력적 타격을 가할 준비를 하고 있다. …」

Churchill, Winston S, The Second World War, 1948-54
(윈스턴 처칠, 『제2차 세계대전』 , 현문사, 1974, 제3권 pp.315-316)

영국 사회에서 이런 결론이 날 수 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영국은 1938년 뮌헨 협정을 맺었다가 히틀러에게 고스란히 사기당한 기억이 생생했다. 당시 영국에게 가용했던 정보에 비추어 볼 때, 히틀러의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을 줄 근거는 아무 데도 없었다. 그때까지 히틀러의 요구사항은 끊임없이 늘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1년 후 히틀러의 피해자 명단에 스탈린이 추가됨으로서 이러한 견해는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이 역시 미국이 참전하기 전의 이야기이다.)

앞선 글에서 히틀러가 거래가 불가능한 상대라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지적했는데 이러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히틀러의 제안을 꿀꺽 삼키자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골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by sonnet | 2008/06/12 20:45 | flame! | 트랙백(2) | 핑백(1) | 덧글(29)
트랙백 주소 : http://sonnet.egloos.com/tb/378238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파파라치님의 이글루 at 2008/06/12 23:11

제목 : re:re: 꼭 그럴까요?
re: 꼭 그럴까요?처칠이 집권할 당시, 영국이 이미 전쟁에 휘말려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한 적 없습니다.하긴, 문자 그대로만 읽으면 처칠이 독일에 선전포고한 것처럼 읽을 수도 있겠네요.하지만 님도 저도 그런 초보적 역사적 사실을 모르지는 않으니 제가 그런 의도로 쓴 것은 아니란 것 정도는 아시겠지요.말씀대로 처칠이 수상으로 선출될 당시 이미 독일군은 프랑스로 진격하고 있었습니다.그리고 불과 6주만의 파리 점령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끝났지요.제가......more

Tracked from Periskop ove.. at 2008/06/14 09:11

제목 : 뷰캐넌, 처칠을 들어 부시를 내리치다
같은 역사를 두고서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교훈을 끌어내느냐는 사람마다 제각각인 법이다. 한 주 내내 시국분석 관련 업무에 치여있다 순명大帝 검역소에서 영국의 대독항전 결정을 두고 일어난 작은 논쟁을 보고 다시 한 번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감상을 짧게만 언급하면, 홈지기 또한 처칠이 괴이한(?) "우파의 가치" 수호를 위해 전쟁을 계속했다는 주장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여긴다. 그건 대다수의 어떤 시각에서 보나 처칠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다......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06/14 21:50

...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는 일련의 토론의 일부이다. 한국의 우파에 대한 단상 (파파라치)영국의 유화정책 (sonnet)꼭 그럴까요? (파파라치)re: 꼭 그럴까요? (sonnet)re:re: 꼭 그럴까요? (파파라치)이 글(sonnet) 이번 글에서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트랙백해온 글에 반박하는 논점 몇 가지를 다룬 후, ... more

Commented by 뇌광청춘 at 2008/06/12 20:48
... 언제나 느끼는거지만 소넷님께서는 책을 어떻게 읽으시기에 반박문에 적당한 지문을 이렇게 맛깔나게 발췌하실 수 있는건가요; 아무튼 이번에도 잘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74년도 책이라니-_-;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1:37
저의 책 읽는 방법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00% 지켜지는 규칙은 아니지만 시간이 허용하는 한 저런 식으로 합니다.
http://sonnet.egloos.com/3156573

저 책은 국민학생 시절에 사촌형에게 물려받았던 것인데, 당시엔 제가 구해 볼 수 있는 전쟁사 관련 서적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여러 번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편지로 부하들에게 여러 가지를 묻거나 독촉하는 편지가 많이 실려 있는데, "아, 높은 사람들은 이렇게 부하들을 부리는구나"라고 생각했었지요.
Commented by 산왕 at 2008/06/12 20:49
우리나라 역사교육(대학을 포함해서)에서 체임벌린을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지도자로, 처칠을 유능한 전시지휘관으로 묘사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체임벌린은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경시되는 것이 일반적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생각해보니 대학에서 박지향 선생께 영국사를 들을 때에도..아니 여기까지;;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1:39
사실 체임벌린이 까이는 것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적 현상 아니겠습니까. 하긴 등창이 도져 바로 죽어버리는 바람에 자기 변명도 못해서 더더욱 일방적으로 까였던 건지도요.
Commented by PolarEast at 2008/06/12 20:53
일본과 한국의 처칠 위인전이 체임벌린을 무능하게 만든듯 한데...
체임벌린 역시 강경파였다는 사실은 소네트 님에게 처음 듣는듯 합니다.

Commented by 윤민혁 at 2008/06/12 20:55
체임벌린은 강경파라기보다는 "전쟁만은 피하고자 했으나", 그 전쟁을 피하는 수단으로 단순한 양보만이 아닌 "국제 협력을 통한 압박"을 선호한 케이스였습니다.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하겠지만 가급적이면 싸우고 싶지 않은, 그럭저럭 합리적인 정치가였다는 얘기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2 20:56
아니 체임벌린이 강경파였던 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데요. 그건 사실도 아니고...
다만 이 사안은 논의의 여지가 거의 없는 만장일치형 사안이었단 겁니다. 히틀러가 "좋은 말 할 때 항복해라"고 해서 "싫어"라고 한 건데요.
Commented by 윤민혁 at 2008/06/12 20:59
사실상 영국은 1939년 1월에 이르러 더 이상 독일과의 협상을 통한 평화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독일의 억제를 위한 국제공조는 무력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거의 밝혀졌고, 협력 가능한 국가로 부상한 것은 소련과 "폴란드"였지요. 그리고 영국은 "폴란드에 올인하는" 에러를 범함으로서, 결국 1939년 9월의 개전에 있어서 중대한 공헌을 부분적으로 하게 됩니다.
Commented by 고어핀드 at 2008/06/13 09:55
위에 sonnet 님이 한줄짜리 요약을 하셨네요. "상황을 정리하자면, 히틀러가 좋은 말 할 때 항복해라고 해서 싫어라고 한 것이다."
Commented by PolarEast at 2008/06/13 17:49
아하. 그렇게 되는거군요.
Commented by 지나가던이 at 2008/06/12 20:56
확실히 체임벌린이 이미 시작한 전쟁이니 이미 쉽게 끝낼 수 없는 상황이군요. 논리를 시작하기 전에 전제를 검토해보지 않으면 낭패군요.. 쩝.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1:52
예. 그 점이 간과되어 있습니다.
Commented by Ya펭귄 at 2008/06/12 21:50
소설 '지하왕국'에서 나온 영국군 스핏파이어 조종사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누가 히틀러가 처음부터 그런 놈일 줄 알았나... 교양있고, 사려깊으며, 전쟁을 직접 경험해 봤기 때문에 전쟁질만은 안할 줄 알았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강타당하지 않았나?"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1:54
그래도 독가스를 맞아 고생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가스만은 쓰지 않았다고라...
Commented by shaind at 2008/06/12 22:06
듣기로는 외무장관인 할리팍스 경이 히틀러와 강화하자고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국 내에서 강화쪽 여론은 실제로 어느정도였는지 궁금하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1:57
제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본격적인 논의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샅샅이 뒤지면 뭐 좀 나오려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Commented by 윤민혁 at 2008/06/14 02:07
증거가 전혀 없고, 핼리팩스는 이후 본격적으로 반 히틀러 노선을 명확히 했기 때문에 확인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6/12 22:51
생각해 보면 그렇죠. 당장 지나쳐가곤 하는 행간에서도
체임벌린 내각이 무너진 건 2차대전 '이후'이지, 이전이 아니니...
(그러나, 대부분의 2차 다이제스트성 사서에서는 오직 처칠만이 부각될 뿐...
뒤늦게 떠올려보니, 이거야말로 '승자에 대한 아부'인 듯...)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2:00
사실 체임벌린이 전쟁에 대해 한 게 별로 없는 건 또 사실이라 통속적인 사서는 그렇게 다뤄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2차대전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같은 것을 따져보기로 한다면 그런 식의 이해는 문제를 일으키겠지요.
Commented by joyce at 2008/06/13 00:00
뮌헨 협정도 1년 뒤의 개전도 여론의 지지를 얻은 점은 같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2:01
예.
Commented by 지구는 하나 at 2008/06/13 09:59
우리의 지구는 하나~~

두개도 세개도 아닌 단 하나인데

않 붙을리 있나요~


우리의 지구는 하나밖에 없는 초 유닉크

다들 원한다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2:01
?
Commented by ... at 2008/06/13 13:29
체임벌린 부분은 약간 허수아비 치기로 흘러간 것 같고...

다만 현실주의 부분이 문제되는 것 같군요. 키신저나 메테르니히 류의 힘의 균형으로 해석한다면 영국은 미국과 독일간의 조정자 역할을 충분히 했을것 같은데 말이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2:06
제가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전임자의 결정을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간다"는 것은 "전례없는 결정을 누군가가 새로 내렸다"는 것하고는 다르며, 훨씬 쉬운 일이라는 점입니다. 토론 상대방이 그 점을 몰라서 경시하는 것인지, 알면서도 토론의 전술적 이익을 위해 무시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8/06/13 19:03
뭐랄까 적어도 국제관계에서 이념이니 하는 것들은 때로는 이해타산적 거래나 협박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데 쓰이거나, 혹은 후대 사람들이 자기 주장을 위해 그럴싸하게 포장해 끌어들이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사례가 종종 보이는 것 같긴 하지만... 이래저래 어떤 이념이나 그에 따른 당위성에 고착되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피곤해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2:04
동감입니다. 의사결정에 이념이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요소가 어느 정도인지,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명분과 내부적 의사결정과정의 관계가 어느 정도 충실한지 등은 하나하나 따져보지 않으면 무척 틀리기 쉬운 듯 합니다.
Commented at 2008/06/14 01:0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4 21:53
알았네, 요구에 응해 수정했어 ;-)

:         :

:

비공개 덧글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