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는 토론의 일부이다.
이번 글에서는
트랙백해온 글에 반박하는 논점 세 가지를 지적하기로 한다.
하지만 sonnet님의 미국 아니면 독일이라는 단순화는,
미국과 손을 잡는 것은 독일과의 전면전을 뜻하지만, 독일과 손을 잡는 것이 미국과의 전쟁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근본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있지요. (파파라치)
이 주장은 사실관계에 문제가 있다.
미국과 손을 잡는 것은 독일과의 전면전을 뜻하는 게 아니다. 영국은
독일과 이미 총력전에 휘말려 있는 상태에서 진행 중인 전쟁에 이기기 위해 미국의 도움에 의존하려 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누구랑 손을 잡는게 더 유리한가를 따지는 것처럼 묘사하면 곤란하다. 전쟁은 시작보다 끝내기가 훨씬 어려운 법이다.
반면, 히틀러와 전쟁을 계속할 경우 영국의 허약한 경제력으로는 파산을 맞으리라는 것은
조금만 재정에 대한 이해가 있는 이들에게는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실제로 파산했고요).
재정적으로 파산한 제국이 유지될 수 있을리 없죠.
즉, 처칠의 전쟁 지속 결정은 대영제국의 해체를 의미했던 겁니다. (파파라치)
내가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독일과 전쟁을 한다는
결정은 체임벌린 내각에서 내려진 것이다. 이 점을 억지로 외면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자꾸 이런 이상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가한 시점에서 연합군의 지도부와 대중은 모두 이번 전쟁도 길고 피비린내나는 소모전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 시점에서 기계화 부대나 공군 때문에 소위 '전격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즉 체임벌린은 노쇠한 대영제국에 가해질 부담을 통감하면서도 전쟁에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 내키는 결정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설마 동맹국으로서 프랑스가 경제적 측면에서 대영제국의 붕괴를 저지해줄 만한 든든한 실력자라고 믿고 전쟁에 나섰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또한 처칠이라는 사람의 이념적 지향성이 그 시점에서 계속 싸운다라는 결정을 내리는데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결론을 내려면 최소한 영국 내부에서 히틀러가 내건 조건에 따르는 종전협상을 강하게 주장한 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미 결성되어 있던 거국일치내각 하에서 참여 정당 지도자들은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고, 주요 언론들도 항전을 지지하였다.
나의 마음속에 떠오른 최초의 생각은 상하양원에 있어서 이 일이 엄숙하게 정식으로 토론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보수당수] 체임벌린과 [노동당수] 애틀리에게 동시에 다음의 서한을 보냈다.
히틀러의 연설에 대하여 양원에서 결의를 갖고 토론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동의는 관직에 있지 않은 귀족과 의원들에 의하여 제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을 하면 우리의 일은 불어날 것이다.
귀견 여하.
두 사람은, 우리는 이에 관해서는 모두 동일 의견이므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사실을 너무 중시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외상의 방송 연설로써 히틀러의 의사 표시를 거부하게 할 것으로 결정했고, 22일 밤에 외상은 히틀러의 「자기 의사에 머리 숙이라는 초청」을 깨끗이 일축했다.
……
그러나 사실 히틀러의 연설이 방송됨과 동시에 도이치와 타협하고자 하는 것 같은 생각은 영국의 신문과 방송국에 의해 하등 정부로부터의 시사없이 이미 거부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외상] 치아노는 … 히틀러를 만났을 때의 일을 이렇게 쓰고 있다.
「어제의 연설에 대한 영국 여러 신문의 반발은 양해할 여지를 없게 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히틀러는 영국에 무력적 타격을 가할 준비를 하고 있다. …」
Churchill, Winston S, The Second World War, 1948-54
(윈스턴 처칠, 『제2차 세계대전』 , 현문사, 1974, 제3권 pp.315-316)
영국 사회에서 이런 결론이 날 수 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영국은 1938년 뮌헨 협정을 맺었다가 히틀러에게 고스란히 사기당한 기억이 생생했다.
당시 영국에게 가용했던 정보에 비추어 볼 때, 히틀러의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을 줄 근거는 아무 데도 없었다. 그때까지 히틀러의 요구사항은 끊임없이 늘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1년 후 히틀러의 피해자 명단에 스탈린이 추가됨으로서 이러한 견해는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이 역시 미국이 참전하기 전의 이야기이다.)
앞선 글에서
히틀러가 거래가 불가능한 상대라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지적했는데 이러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히틀러의 제안을 꿀꺽 삼키자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골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