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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화정책
한국의 우파에 대한 단상 (파파라치)에서 트랙백.

1940년 윈스턴 처칠이 히틀러에 대한 결사 항전을 다짐한 것도, 우파의 "가치"와 관련된 것이었다. 순수한 영국의 국익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영국은 히틀러와 전쟁을 지속할 이유가 없었다. 히틀러는 영국의 기득권을 존중했으며, 숙적인 소련과의 전쟁을 위해서 영국과의 동맹을 희망했다. 히틀러의 관심사는 유럽 내에서 "레벤스라움"을 획득하는데 있었지, 영국과 식민지 쟁탈전을 벌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찌의 부총통 헤스가 혼자 비행기를 몰고 영국으로 날아온 것도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촌극이었다.

그러나 처칠은 서구의 전통에 반하는 히틀러와 나찌를 용납할 수 없었다. 처칠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 유럽은 "크리스트교 문명이 존속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이를 위해 처칠은 독일에 항전을 계속했고, 그 결과 2차 대전후 영국은 파산했으며 대영제국은 해체되었다. 처칠의 각료 대부분은 북아프리카에서 별 이익이 없는 전투를 계속하는 대신 제국의 핵심인 인도를 보호하기 위해 동남아의 방위를 공고히 할 것을 진언했지만 처칠은 듣지 않았다(그 결과가 태평양전쟁 초기 일본의 파죽지세의 승리와 싱가포르 함락이었다). 결코 처칠이 천박한 "국익"만을 위해 히틀러와 싸운 것은 아니었다. (파파라치)


이 글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주로 윈스턴 처칠이 견지한 우파의 이념적 가치 때문에 히틀러와 싸웠다는 주장을 내 놓고 있는데, 황당한 이야기인지라 간단히 반박해 두고자 한다.

히틀러에게 폴란드를 침공하면 전쟁임을 선언하고 2차세계대전에 뛰어든 것은 1940년의 처칠이 아니라 1939년의 체임벌린이다. 유화정책으로 이미지를 구긴 체임벌린임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은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히틀러의 관심사는 유럽 내에서 "레벤스라움"을 획득하는데 있었지, 영국과 식민지 쟁탈전을 벌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전쟁을 지속할 이유가 없었다"라는 식의 생각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그럼 왜 영국이 폴란드 때문에 독일과의 세계대전에 뛰어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유화론자라는 체임벌린이 말이다. 영국에게 유럽대륙을 제패한 초강대국이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것이 용납가능했다면 나폴레옹 전쟁도 계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대에 영국이 처해 있던 전략적 딜레마에 대해서는 독일의 역사학자 안드레아스 힐그루버가 잘 설명하고 있어서 소개해 보기로 한다.


영국 수상 네빌 쳄버린(Neville Chamberlain)의 ‘유화정책(宥和政策, Appeasement Politik)’으로 인해 독일은 이러한 위험부담을 피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끝까지 버리지 못하였다. 당시 영국정부의 유화정책은 기세등등한 독재자 히틀러의 위세에 눌린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수립된 것이 아니라, 현실 국제정치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수립되고 추진된 것이었다. 영국은 쇠퇴일로에 접어든 대영제국(영국 본토와 식민지)의 지배권과 평화를 유지하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었으니, 지구상의 3개 긴장지역(동아시아, 지중해, 유럽)에서 받는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 적절한 정치·군사적 대책을 독자적으로 강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영국이 당면한 가장 거북스런 문제는 인도와 아랍세계에서 비등하는 독립요구였다. 이러한 곤혹스런 상황에서 새로운 대규모 전쟁이 발발한다면, 1914/18년 제1차 세계대전 이래 진행된 대영제국의 붕괴는 가속될 것이 명확관화하였다. 대영제국의 국제적 지위는 ‘3대 자본주의 후발국가들’의 ‘수정정책’과 ‘팽창정책’에 의해 위협을 당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 식민지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격렬하게 확산되고 있던 소련의 세계적화혁명운동으로 인해 약화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막강한 경제력과 잠재력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보다 더욱 심각하게 직접·간접적으로 대영제국의 해체를 촉진시키고 있었다. 따라서 1938년 초부터 급성장하는 히틀러-독일의 존재를 감안하여 볼 때, 쳄버린이 이끄는 영국정부는 미국 아니면 독일에게 의지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의존적인 정책을 피하고 독자적인 정책을 구상하고자 하였다. 만일 영국정부가 미국 또는 독일에 의존하는 정책을 추진한다면, 영국은 ‘하위동반자’의 지위를 강요당할 것이 분명하였다. 영국정부의 독자적인 정책은 ‘독일이 무력을 행사하여 동방생활공간을 강점하지 않을 것이고 유럽의 4대 강국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협력관계에 바탕을 두고 소련이 배제된 유럽의 질서에 순응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수립되었으며, 그 근본 목적은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탄생된 세계질서를 재편하려는 독일의 전략의도(오스트리아, 수데덴, 단찌히)에 대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독일이 동방생활공간을 강점하게 되면 이는 곧 유럽의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을 주도해 온 영국의 지위가 무너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외교정치면에서의 기습행동을 즐겨 사용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가정 하에 구상된 영국전략은 성공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유화정책이 완전히 실패할 경우에는 전쟁을 피할 수 없었으므로, 챔버린은 1936년부터 군비증강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영국은 ‘이중전략(Doppelstrategie)’을 구사하였다. 하나의 전략은 유럽 4대 강국의 협력관계를 기조로 하는 협상을 준비하는 것이요, 또 다른 하나의 전략은 영국민족과 나아가 세계의 정당한 이익을 군사력을 수단으로 하여 수호하는 것이었다.


1940년 11월 5일 선거에서 루스벨트가 대통령으로 세 번째 당선되면서 1940년 6월/7월 이래 동맹국과 다름없는 관계를 유지해 오던 영국과 미국의 양국관계는 한층 더 밀착되었다. 처칠은 루스벨트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독일과의 전쟁으로 인해 영국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사실상 영국의 ‘하위동반자(Junior-Partnerschft)’ 역할과 위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격이 되었다. 지난 1938년/39년, 전영국수상 쳄버린은 미국의 이러한 제의를 거부한 바 있었다. 이에 따라 루스벨트는 1940년 12월 29일 미국 여론의 지지를 받는 정칙(定則), 즉 ‘미국이 민주주의의 병기창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표명과 함께 영국에게 대량의 물적 지원을 약속하였다. 미국의회와 여론은 약 일주일 간의 논의 끝에 ‘임대차 법안’을 제정하여 1941년 3월 11일 의회에서 통과시킴으로써, 영국에 대한 물적 자원의 대량지원은 본격화되었다.


영국의 쇠퇴현상은 이미 1939년 전쟁을 결심한 시점부터 확연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1815년부터 1960년까지의 기간, 그리고 이어서 내부개혁과정을 거쳐 ‘고전적’ 제국주의 시대로 분류되는 19세기 종반까지의 기간 동안 범세계적 권력지위(machtstellung)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영국의 막강한 지위도 이미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면 국제관계에서 영국의 역할이 퇴조된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요인이 중대하게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이 항상 같은 결과를 가져왔듯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하는 경우나 소련의 지원을 받아(아니면 소련이 독자적인 결심 하에 전쟁에 개입하여) 영국이 승리하는 경우 중 어떤 상황이 도래되었다고 할지라도, 영국이 동중부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스스로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지난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영국이 영향력을 되찾을 수 있었던 까닭과 그 후 약 20여 년 간 유럽대륙에서 ‘세력균형’의 ‘후기 르네상스’가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소련이 전쟁과 사회주의 혁명으로 인해 쇠약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영국은 ‘세력균형’ 원칙을 세계정치를 적극적으로 펼치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영국 세계정치의 ‘세력균형’ 원칙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이미 그 적용이 곤란한 시대적 환경에 처하였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대륙의 세력균형이 영국의 간접주도하에 성립되지 못한 것은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30년대에 영국은 ‘유화정책(Appeasement-Politik)’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이 유화정책은 영국이 당시 국제정치상황 속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전략으로 평가된다. 당시 영국은 대외적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쓸모없게 된 수단과 방법으로 대영제국을 보존하는 데 급급하였고, 대내적으로는 사회변혁을 요구하는 도전적 상황에 대처해 나가는 데 절치부심하지 않음 수 없었던 것이다. 1815년부터 오랜 전통으로 자리 잡은 영국의 ‘힘에 의한 정치(Machtpolitik)’는 도덕적 요구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며, 영국이 1930년대에 추진한 ‘유화정책’은 유럽과 세계의 평화를 지향하고 있었다.

다음은 두 번째 변화요인이다. 1914년/18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이미 영국은 유럽대륙에서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백인 자치령과 식민지 피지배민족들에 대한(제한된 범위이긴 하지만 저항에 직면하였음) 영국의 세계지배체제를 이완 또는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후 피지배 민족의 독립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이미 예고되었던 바대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세계지배적 지위를 거듭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1941년/42년 위기국면에서 적어도 인도 국민의 봉기는 물론 인도가 ‘삼국동맹’ 진영으로 돌아서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영국 정부는 전후 인도의 독립을 인도국민에게 약속해야만 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영국은 전쟁수행을 위하여 영국연방(Common wealth)과 식민지의 잠재력을 포기해야 했으며, 그 결과로 영국연방의 해체로 치닫게 되는 원심(遠心)적인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즉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가 국가운영을 독자적으로 해나가기 시작하였고, 이 국가들은 일본의 정복 위협이 가중되던 1942년과 같이 외부위협이 있을 경우에는 영국이 아닌 미국에 의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영국의 세계지배체제의 해체가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처칠을 정점으로 한 영국의 보수세력은 안간힘을 다하기도 하였다.

영국의 변화에 세 번째 영향을 준 결정적인 전기가 있었다. 1940년 유럽 대륙에서 독일의 성공이 절정에 달하였을 때, 영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되었던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영국은 세계 초강대국을 지향하는 독일의 ‘하위동반자(Juniorpartner)’가 되느냐, 아니면 미국의 주도권에 영국을 의탁하느냐를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후자의 경우도 전자와는 다른 형태이지만, 역시 ‘하위동반자’ 관계임은 분명하였다. 결국 영국은 역사·전통적 배경과 원칙적인 이유로 인해 전자의 해법을 선택할 수 없었다. 챔버린 정부는 히틀러 독일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오랜 심사숙고 끝에 독일을 상대로 한 전쟁수행을 결정하였다(폴란드를 구하기 위한 전쟁 결정이 결코 아니었다). 그리하여 영국은 1940년 여름 미국에 의지하는 전략을 선택하였으며, 이러한 전략기조는 챔버린에서 처칠까지 계속 이어졌다. 영국 수상 챔버린은 1939년 여름까지 수행한 ‘유화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미국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고 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실제로 영국은 1938년 11월 체결된 미국과 영국의 통상협약에도 불구하고 ‘유화정책’이 독자적으로 추진되는 기간만큼은 행동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까지 영국은 미국과 대등한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광대한 대서양지역 안전보장 역할을 단독으로 수행할 정도로 세계차원의 전략수행 면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였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영국은 가중되는 전쟁수행 부담을 이기지 못하게 되어 결국 영국의 전략은 미국의 세계정치 전략과 그 목표에 종속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영국은 이러한 미국과의 종속관계를 원치 않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1945년 7월 선거에서 옛 대영제국 전통의 수호자로서 선봉적 역할을 담당했던 처칠이 패한 것은 예상을 뒤엎는 결과였다. 히틀러와의 전쟁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칠은 퇴진해야만 했고, 정권을 인수한 영국 노동당(Labour Party)이 대내적으로 사회개혁을 추진하고, 대외적으로는 중용을 지키는 외교정치(여전히 제국주의적 개념은 남아있었음)를 펼쳐 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결과는 영국 국민의 대다수가 영국이 제2선의 강대국 대열로 전락한 것을 현실로 인정함과 동시에, 영국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내부개혁을 통해 새로운 시대상황에의 적응을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Hillgruber, Andreas, Der Zweite Weltkrieg, 1939-1945: Kriegsziele und Strategie der großen Mächte, COBU, 1982
(류제승 역, 『국제정치와 전쟁전략』, 한울 아카데미, 1996, pp.20-22, 72-73, 194-196)


당시 영국이 처한 전략적 입장에 대한 힐그루버의 주장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1. 영국은 새로운 세계대전은 지면 당연히 망하는 것이고, 이겨도 제국이 공중분해될 것이 뻔해서 가능하면 전쟁을 피해보려고 노력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틀러가 거래가 불가능한 상대라는 것이 분명해지자, 영국은 나치독일의 꼬붕이 되느냐 미국의 꼬붕이 되느냐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3. 아무리 생각해봐도 히틀러와 나치 밑에 들어가는 건 견적이 안나오는 문제였고, 사정이 궁한 영국은 자연스럽게 미국에게 머리를 숙이게 되었다.

즉 이 당시 영국이 취한 정책은 결국 국익추구를 위해 실현가능한 보기 중에서 최선의 길을 택해 나간 과정이지, 한 지도자의 우파 이념적 열정의 결과물은 아니란 것이다. 그런 이념이 주도했으면 스탈린과 손 잡을 건 또 뭔가...

by sonnet | 2008/06/12 13:26 | flame! | 트랙백(1) | 핑백(2) | 덧글(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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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파파라치님의 이글루 at 2008/06/12 16:06

제목 : 꼭 그럴까요?
영국의 유화정책sonnet님의 글은 영국의 전쟁수행의 동기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이라고 봅니다.하지만 역사에 대한 해석은 이것 아니면 저것의 문제가 아니고, 여러가지 해석이가능한 것이니까요...2차 대전 당시, 영국은 분명 독일 아니면 미국 양자 택일의 딜레마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어느 쪽을 택하든 영국은 지난 세기와 같은 독자적 초강대국으로서 행세하기는 불가능했지요.하지만 sonnet님의 미국 아니면 독일이라는 단순화는,&nbsp......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06/12 20:45

...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는 토론의 일부이다. 한국의 우파에 대한 단상 (파파라치)영국의 유화정책 (sonnet)꼭 그럴까요? (파파라치)이 글(sonnet) 이번 글에서는 트랙백해온 글에 반박하는 논점 세 가지를 지적하기로 한다. 하지만 sonnet님의 미국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06/14 21:50

...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는 일련의 토론의 일부이다. 한국의 우파에 대한 단상 (파파라치)영국의 유화정책 (sonnet)꼭 그럴까요? (파파라치)re: 꼭 그럴까요? (sonnet)re:re: 꼭 그럴까요? (파파라치)이 글(sonnet) 이번 글에서도 지난번과 마찬 ... more

Commented by 아이우에오 at 2008/06/12 13:32
우리의 우파를 까기위해 타국의 우파를 치켜세울 필요가 있어서 슬그머니 편한대로 해석해버린걸 또 뭘 이리 정성스럽게 포스팅으로 반박씩이나 하시는지?... 저런건 보고 아아 역시 하면서 같은 생각끼리 모인사람들끼리 서로 핥아주기위한 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거늘...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2:08
뭐, 블로그 포스팅이 한번 써보고 싶어지는 이야기가 있을 때, 쓰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hkmade at 2008/06/12 13:36
저같은 사람은 정성스럽게 포스팅한 글을 보며 무럭무럭 자라는 새싹과 같죠. ㅎㅎ.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별표 꾸욱.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2:07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maxi at 2008/06/12 14:16
국가정책이 이념에 의해서 결정되는 일이 있을까요.
Commented by maxi at 2008/06/12 14:17
"지도자 동지의 취향" 에 의해서 결정되는건 많이 생각나는데..(데꿀멍)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2:13
그건 실제로는 많이 있습니다. 경제정책 같은 경우에 특히 많이 발견되지요. 공산권에서 농업집단화나 중공업 우선 정책 같은 걸 밀어붙여서 엄청난 일들을 만들어 낸 것은 그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대외개입이나 전쟁의 경우에도 전적으로 이념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사결정의 어느 일각을 뒷받침하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나 합니다. 베트남이나 아프간, 이라크 등에서 "우리가 현지에 가서 해방을 주면 그 뒤는 감격한 현지 인민들이......"라고 할 때, 이것은 안 그럴 줄 알면서 순수히 모략적인 이유로 그렇게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그런 이념에 깊게 물들어 있다 보니 자연스레 생각이 그런 쪽으로 흘러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나 할까요.
Commented by marlowe at 2008/06/12 14:19
늘 배우고 가서 미안할 정도입니다. *_*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2:13
별 말씀을 다 ;-)
Commented by 뇌광청춘 at 2008/06/12 14:32
저 책 양장에다 싸기까지 하네요. 한권 사야겠다 (...)
Commented by young026 at 2008/06/12 15:50
거기다 얇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2:14
요즘은 책 값이 놀랄정도로 비싸져서... 사실 나온지 4-5년 넘고 절판되기 좀 전의 책들을 사면, "우와, 옛날 가격표. 싸다?!"라고 생각될 때가 많더군요.
Commented by lee at 2008/06/12 14:36
저게바로 우파끼리 서로서로 애XX킹 이러군요.
Commented by 아이우에오 at 2008/06/12 17:30
하아? 난독증이심? 영국의 우파를 칭송하면서 은근슬쩍 우리나라 우파를 까는게 우파끼리 핥아주는 걸로 보다니 님도 좀 답이 없음... 우리나라 국어교과과정은 도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거람 에효...
Commented by lee at 2008/06/12 21:44
제가 문맥을 잘못 이해했군요. 통렬하게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아이우에오 at 2008/06/12 22:18
말이 좀 심했군요. 최근 난독증에 걸린 분과 지겨운 난타전때문에 예민해져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2:16
으음.. 분란으로 발전하지 않아 다행입니다.
가능한 공격적인 어조는 자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6/12 14:37
이번에도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2:16
;-)
Commented by 윤민혁 at 2008/06/12 14:54
근데 힐그루버의 주장도 그다지... -_-;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2 16:54
힐그루버는 옛날 사람이니까 지금 기준으로 보면 틀린 데도 적지 않지요. 그러나 여기서 인용한 영국이 처한 전략적 포지션 문제에 대한 지적은 괜찮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윤민혁 at 2008/06/12 18:18
포지션상으로는 그런데, 실제의 움직임도 그 포지션과는 생각보다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견해가 은근히 강한 편이니까요. 사실은 이쪽이 더 고전적인 견해지만 말입니다. -_-;;;
Commented by joyce at 2008/06/12 14:55
'간단한 반박'이었겠으나 역시 많은 배움이.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4 21:57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6/12 15:02
오늘도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국내에서는 유화정책 까는 글은 엄청나게 많이 보았는데(모종의 국내정치적 이유로) 막상 그 배경은 오늘 처음 본듯하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4 22:39
사실 유화정책을 까는 것은 전세계적 주류 학설이긴 하니까, 꼭 국내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화정책이 나쁜 이유를 '유약한 지도자'에게 귀결시키는 방식은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Ladenijoa at 2008/06/12 15:04
언제나 대제폐하의 내공이 실린 글 감사히 잘 읽습니다 꾸벅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4 22:39
하하.
Commented by 마나™ at 2008/06/12 15:18
재미있게 봤습니다. 역시 국제관계나 정치라는 건 후세에 평가하는 입장과 당시 판단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격차가 크네요. 지금 현재의 난국도 후세 사람들은 단순하게 평가할지 모를 일이겠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4 22:43
그런 것 같습니다. 역사를 이해하려는 게 참 어려운 일인 듯...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8/06/12 15:52
힐그루버의 저서는 독일편에서는 레벤스라움의 확보가 나치독일과 히틀러의 '궁극적목표'라고 단정짓고 있는 점에서 독일사 전공자들로부터 열심히 까이고, 반면 소련의 태도에 대해선 추측까지 불명확하게[..]한 느낌을 주어서 개인적으로는 참 난감하게 읽었는데-_-

돈없어서 읽을 책도 못사는만큼 복습겸해서 한번 더 읽어봐야겠습니다[멍]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4 22:35
힐그루버의 그런 입장은 A.J.P 테일러같은 사람과 동시대에 활동하면서 대립했다는 것과도 좀 관계가 있지 않나 합니다.

어쨌든 영국이 처해있던 입장에 대한 해설은 취할만한 점이 많다고 봅니다.
영국의 대중적 역사인식은 뮌헨협정 때까진 다들 유화에 찬성하다가 일이 꼬이니까 변명할 기회도 없이 곧 죽어버린 체임벌린에게 거의 모든 죄를 다 떠넘기고 손털기에 나선 듯한 느낌이 있지요.
그런 점에서 영국은 영국 나름대로 유화로 기울만한 충분한 동기가 있었다는 분석을 (영국인이 하면 자기 변명 같으니까) 독일인이 제시해주면 금상첨화라고나 ;-)
Commented by 하늘선물 at 2008/06/12 15:56
으악. 힐그루버당.....읽지 말라는 선배말 때문에 한번도 못읽어본....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4 22:47
읽지 말라는 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A.J.P Taylor는 좀 경계심을 갖고 보라고 권하긴 하는데 아예 읽지 말아야 할 정도의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bz at 2008/06/12 15:59
[간단한] 반박이 이 정도군요 ㄷㄷㄷ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4 22:44
사실 제 자신의 이야긴 짧잖습니까 ;-)
Commented by 이네스 at 2008/06/12 16:10
언제나 좋은글이 많아서 좋습니다. 뭐 전공은 기계공학이다만서도.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4 22:48
네,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8/06/12 16:10
'체임벌린은 겁쟁이가 아니다." 이걸로 요약될 수 있을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2 16:42
통상적으로 까이는 수준은 좀 심하지요.
독소불가침협정으로 이권을 나눠받은 스탈린은 침공당하는 그날까지 독일과의 협력관계를 충실히 지켰는데, 히틀러가 뮌헨 협정 이후 이런 식으로 행동했다면 체임벌린은 아마 역사의 승리자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결국 체임벌린의 가장 큰 문제는 전략적 구도를 잘못 읽은 게 아니고 히틀러란 사람을 잘못 읽은 것인데, "그때까지의" 히틀러를 보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똘끼어린 히틀러에 대한 견해를 가져야 당연하다고 요구하는 건 역시 좀 과도한 희망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나츠메 at 2008/06/12 18:48
sonnet님/
1. 좋은 포스팅 잘 보았습니다. 많이 배웠네요. ^^

2. 20세기의 대영제국의 해체는 예정된 일이었던 것인가..... 서기장 동무의 세계적화운동은 무섭군요.-_-;; 역시 하면 하시는 그 분.....

3. 반박은 간단한데, 참고 자료가 엄청나네요. OTL

4. 흥미가 생겨서 <국제정치와 전쟁전략>을 사 볼 생각인데, 책 괜찮나요? 평가와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4 22:53
2. 양차 세계대전이 모두 없었으면 세계경제의 주도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그렇게 넘어가진 않았을 거고... 세계대공황도 아마 없었겠지요. 워낙 역사가 크게 달라지는 거라 그 뒤는 몽땅 추측에 부로가하지만요.
4. 저는 책값은 한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08/06/12 19:51
글 잘 읽고 갑니다. 낚시인줄도 모르고 있다가 좋은 공부 하고 갑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4 22:49
늘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하얀까마귀 at 2008/06/12 20:05
하지만 영국 내부의 의사 결정의 갈등이 작았던 것이 아니라서, 힐그루버의 단언처럼 영국의 선택이 정말 필연적이었는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4 22:57
만약 영국에겐 다른 선택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독소불가침협정 전에 히틀러보다 더 높은 몸값을 불러서 스탈린을 매수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협상은 실패했지만 실제로 진행된 적은 있습니다.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8/06/12 20:18
트랙백한 글을 쓰신 분은 독일이 왜 '레벤스라움'을 추구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독일에게 있어 '레벤스라움'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에 불과했다고 보는게 타당한데 말이죠.
Commented by 윤민혁 at 2008/06/12 20:54
레벤스라움은 수단조차 아니지 않을까요? 저는 사실상 단순한 핑계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8/06/12 21:29
윤민혁님 // Adam Tooze의 경우 히틀러는 미국 중심의 경제 체제에 독일(을 포함한 유럽)이 복속될 것을 가장 우려했다고 설명하더군요. 그래서 히틀러가 미국의 경제에 대항해 독자적인 유럽경제권을 만들기 위해 레벤스라움 건설에 집착했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더군요. 제 개인적으로는 레벤스라움에 대해서 Tooze의 설명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4 23:21
사실 저런 해석은 모두 사후적 지혜라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히틀러처럼 좌충우돌하는 캐릭터를 상대로 당시에 가능한 종류의 판단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거든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6/12 22:44
아아, 이래서 구조사 구조사 하는군요.
특정 사실에만 집중해서 보면 비뚤어진 시각에 의한 오답 아닌 편견이 정설인 양 되니...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4 23:21
구조에 너무 집중하는 것은 또 각론을 무시하게 되는 문제가.... 어디까지나 밸런스를 잃지 말아야 할 듯 합니다.
Commented by あさぎり at 2008/06/12 22:59
정말 아는것이 힘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2:41
사실 들어가 보면 끝없이 모르던 사실이 드러나는 게 역사인 듯 합니다.
Commented by 애독자 at 2008/06/13 00:59
음냐..... 근데 손넷님과 달리 저는 "안드레아스 힐그루버" 의 다른 책은 한권도 못 보고
이렇게 적는데....솔직히, "국제정치와 전쟁전략" 은 많이 실망했습니다.
무릇 책이라 함(아니, 책뿐만 아니라 음식, 음반등)은 질과 양을 꽉꽉 채워야 한다는게
제 생각이였습니다. 책이 우선 얇다는 것부터 깍아먹고 갔지요. 덕분에 제가 산 그 "국
제정치와 전쟁전략" 은 어딘가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메모하는 동안 1.5배로 뚱
땡이가 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게.. 일본이 처해 있던 심각한 자원상황을 아무 언급하지 않고 '미국과의
길고 지루했던 외교적 노력'을 '이례적이다' <---요렇게 설명한게 끝이였습니다. 덕분
에 뒷 배경(일본의 당시 자원 상황, 국내사정, 수뇌부의 고민, 미국의 제시조건)을 메모
하느라 힘들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4 08:47
이건 여담이지만 힐그루버는 어째 한국에는 그 자신의 책 보다도 역사가 논쟁(Historikerstreit)을 통해 간접적으로 더 많이 알려진 듯한 느낌입니다.
Commented by 애독자 at 2008/06/13 01:12
그렇지만 얇아도 그 두께만큼만 내용에 충실하면 실망감이 덜하고, 책 한권을 읽었을때
느끼는 뿌듯함이 오래 남았겠지만.... 아니였습니다. 그래도 결론만은 명쾌하더군요.

"국제무대에서 좌지우지 하고 싶은가? 그럼.... 국력부터 키우라."

위의 말은 "힐그루버"의 결론이 아니라 제가 "힐그루버"의 그 책을 읽고 내린 결론입니
다. "힐그루버"는 이런식에 가깝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국제무대에서 주도권을 잡고 흔든 나라들은 언제나 그 당시의 강대국이였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3 22:41
말씀하신 대로 이 책은 역사학자가 썼지만, 실제로는 그 정도 분량의 책이 다룰 개괄적인 역사서라기 보다는 국제정치학자가 쓴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06/14 22:16
전에 적었던 질문이 너무 두서가 없어서 다시 정리 해봤습니다.
1. 파파라치님의 글에 따르면 히틀러가 처음부터 소련을 노린것처럼 묘사되어있는데
제가 알기론 서유럽이 영국밖에 남지 않고 영국이 곧 떨어질것 처럼 보여서 마침 눈을 돌린곳이 소련으로 알고 있습니다 틀린가요?

2.제가 어디서 본 2차세계대전사 다큐멘터리에선 히틀러가 이상하리만치 고집스럽게 영국과의 협상 주장해서 어딘가의 프랑스와 패잔병을 쓸어버리지 않은걸로 알고있습니다.
히틀러가 그렇게 까지 한 이유가 뭔가 드러나는게 있나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6/14 22:28
1. 히틀러와 스탈린은 장기적으로 보면 오래 전부터 상대를 (언젠가는 싸우게 될) 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서로를 이용해 먹겠다는 심산으로 일시적인 제휴를 했다가, 결국 성질 급한 히틀러가 먼저 배신으로 치고 나왔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 합니다.

2. 그건 독일군부대를 왜 정지시켜서 덩케르크 탈출을 가능하게 했느냐는 논의인데, 수많은 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http://blog.periskop.info/19?category=6 이나 최근 나온 번역서인 "전격전의 전설"을 한번 보시면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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