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사주간지 Time에 이명박
인터뷰와
관련기사가 났다. 여기에는 이명박의 대북정책 핵심이 몇 마디로 잘 표현되어 있어서 약간 소개해 보기로 한다.
북한의 식량 상황이 매우 악화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이에 대해 아는 바를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심각성의 정도에 대해 누구도 100% 확실한 평가를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 주민이 식량 부족으로 인해 그와 같이 비참한 상황을 겪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원칙이다. 우리는 인도적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6자회담은 현재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는) 검증 단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매우 힘들다는 게 미국 측의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해서 중국, 미국과 매우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일례로
6자회담을 놔두고 남북 관계만을 진전시키는 두개의 별도의 접근(track)을 지향할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계속해서
핵을 포기하는 것이 정권을 지키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기는 등 북한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북한에) 설득하려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큰 진정성을 가지고 한반도의 화해 및 평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도움이 되고 좋은 결과를 낳는다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한번뿐만 아니라 두 번, 세 번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
(
번역은 청와대 홈페이지 제공)
일부 재야의 급진반북 운동가들은 북한 정권은 "사악한" 존재이므로 도덕적인 이유에서 붕괴시키는 것 외에 해결책이 없다고 목청높여 주장한다. 또한 많은 대북유화론자들은 이들의 주장을 침소봉대해서 자신들의 유화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북한 붕괴를 적극적으로 획책하고 있는 위험한 자들이란 쪽으로 페인트칠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 같은 구호가 바로 그것이다.
그 결과 북핵문제가 불거져 나온 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다섯 정부에 의해 꾸준히 계승된 기본적인 공감대 하나가 눈에 띄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것은 북한이 부도덕하든 잔인하든 자국민을 굶기든
그건 두 번째 문제고 핵폭탄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일단 먼저 상당한 거래를 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이 자기 입으로 언급하듯이 북핵협상의 핵심은 "핵을 포기하는 것이 정권을 지키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기는 등 북한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다. 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것이 6자회담에 참여하는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의 공통된 입장이다.
그런데 김정일 정권의 성격상 주민의 민생고 해결보다는
정권의 서바이벌이 월등히 중요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제안은 결국
핵무기와 북한정권의 존속을 맞바꾸자는 거래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진정한 차이는
두 개의 별도의 접근(two separate tracks)을 두느냐 마느냐이다.
남한은 북핵문제가 터져나오기 이전부터 긴장완화와 평화통일 기반조성을 위한 남북협상 등을 추진해 온 오랜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북핵문제가 터져나오자, 북핵문제와 남북문제를 병렬적으로 다루는 것을 선호하였다.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도 북핵협상은 외무부, 남북협상은 통일부 같은 식으로 분리된 조직에 맡겼다.
이런 의미에서 김대중-노무현 정권기 대북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북핵문제는 중요한 것이긴 해도 대북정책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인식이었다. 즉 북핵문제가 답보상태라고 해서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남북정상회담 등을 몽땅 홀드해 놓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주로 핵문제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핵문제에 초점을 집중한 단일트랙 협상을 원한다. 북한에게 줄 수 있는 많은 혜택들을 한 데 모아서,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양보가 있을 때에만 제공함으로서
협상력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혹자는 미국이 남한의 특수한 사정을 이해못하고 자기 관심사만 앞세우려고 강요한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남한도 다른 나라의 두 번째 트랙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일본은 국내정치사정상 납북자 문제를 아주아주 중요한 문제로 받아들여서 이 문제를 반드시 주요의제로 올려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는데, 남한은 이 주장에 대해 핵문제에 비하면 지엽적인 문제를 갖고 판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한 미국이 고농축우라늄 문제나 북한의 핵기술거래(UF6사건 혹은 시리아 원자로 의혹) 등을 거론하면서 문제의 외연을 넓혔을 때도, 남한은 이들 문제를 평가절하하면서 급한 불부터 하나씩 꺼나가자는 "플루토늄 먼저, 기타 나중"이란 노선을 옹호하였다.
결국 한 미 일 러 중 다섯 나라는 모두 북한에 대한 조금씩 다른 자기 입장이 있다. 이런 식으로 모두 자기의 특수이익을 반영한 사이드트랙을 하나씩 깔겠다고 나서면 북한은 여러 공급자들을 경쟁입찰붙여서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양보는 피할 수 있게 된다. 북한의 협상전략은 기본적으로 미국이 6자회담 참가국을 단결시켜 공동의 대오를 갖추기 힘들거라는 가능성에 배팅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뷰 이야기로 돌아와보면, 이명박은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 식량지원을 보낼 용의가 있다고 분명하게 언급했다. 하지만 아울러 단일트랙을 고수할 것이라고 확언하였다. 이 말은 북핵협상에서
북한의 전향적인 행동이 식량지원과 연계된다는 의미이며, 더 크게 보면 북한관련 모든 사안은 최우선과제인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종속된다는 뜻이다.
즉 이명박은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두 마리 토끼를 쫓은 끝에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전략은 다 좋지만 한 가지 눈에 띄는 약점이 있다.
미국과 북한이 모두 타협에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김정일이 버티기 전략을 쓸 경우 그 동안은 북한 주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여기엔 말은 안해도 숨은 논리가 하나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북한이 이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아 북한에 인명손실이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은 북한 주민들의 안녕을 책임져야 할 통치자인 김정일에게 있는 것일 뿐이다. 즉 저 놈 잘못이니 내 잘못은 아니란 것이다.
1) 북한이 핵문제에서 크던 작던 어떤 양보를 하고 식량지원을 받아가면 핵문제 해결이란 실리를 챙기고 업적으로 삼는다.
2) 북한이 버티면 김정일을 욕하면 된다.
3) 북한인들이 대거 굶어죽으면 그만큼 김정일의 나라가 약화될 뿐이다.
4) 고로 난 기다린다고 아쉬울 거 없다.
정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이명박이 아닐까?
이 주제에 관심있는 분은
이명박 대북공약 재검토도 참고하시기 바란다. 이 글에서 다루는 비핵개방3000은 주로 (장기적인 경제발전을 돕기 위한) 개발지원이고, 이번 글에서 언급된 식량지원 문제는 단기적인 땜질을 위한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