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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의 선택

한창 영화가 상영중인 극장. 빈 자리 하나 없이 관객들이 빼곡히 앉아있고 영화는 중반을 향해 달려간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게 알싸하게 코끝을 찌르는 묘한 냄새가 코끝을 살짝 스쳐지나가고, 관객들은 기분탓일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계속 영화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그 때 갑자기 영화가 끊기고 극장은 칠흑같은 어둠에 빠진 채 출구를 표시하는 몇 개의 비상등만 빛난다. 관객들은 일제히 웅성거리고, 몇 초의 사이를 두고 멀리서 들리는 외침 소리.

불이야!

누군가 벌떡 일어나 사람들 속을 헤치며 출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고, 모든 사람이 찬 물을 뒤집어쓴 듯한 아찔함에서 벗어나 미친듯이 출구를 향해 몰려간다. 그 와중에 어둠 속에 발을 헛디뎠는지 누군가가 넘어지고, 이어지는 비명 소리…

이 때 관객 개개인이 나 먼저 빠져나가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이 상황에서 생존자 수를 늘려주지 못한다. 모두가 이 사실을 알지만 아무도 생존경쟁을 포기하지 못한다. 공황 상황에서 경쟁을 포기하는 것은 확실한 나의 파멸로 직결된다. 직관적으로 이 사실을 깨닫고 있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은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어 기를 쓰고 출구를 빠져나가려고 버둥거리고 그 와중에 희생자는 늘어만 간다.


여기서 살펴본 불난 극장 같은 상황에서 권장되는 가장 표준적인 해결책은 외부에서 투입된 안전요원들이 공황상태에 빠진 관객들을 통제해 장내 질서를 회복시키고, 최대한 질서를 지켜 순서대로 빠져나오게 강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모든 사람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고, 가장 늦게 나오는 사람 일부는 희생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해낸다는 사회적으로는 최적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극장 안의 관객들은 너무나 큰 자신의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에, 상호 협력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일부 관객들이 협력하고자 시도하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한 기회를 배신자들이 차지해 버리기 때문에, 곧 협력 시도는 붕괴되어 소멸한다. 이러한 과정은 죄수의 딜레마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죄수의 딜레마 이야기에서는 그나마 두 명의 죄수가 입을 맞추면 끝나는 문제이지만, 극장 안의 관객들은 숫자가 많기 때문에 모두의 배신을 방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외부에서 투입된 안전요원들은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일단 강제력을 동원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다. 그리고 지금 일시적으로 회복된 질서가 계속 유지될 것임을 관객들에게 설득하고, 개인적 이익을 위해 질서를 무시하려는 배신자들을 무력으로 처벌함으로서 관객들의 협력을 촉진하는 한편, 질서가 앞으로도 유지될 것임을 계속 재확인시켜준다.

이 때 안전요원들은 관객들이 품고 있는 무슨 수가 있어도 나만큼은 빠져나가야 한다는 절박한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기에 이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다. 만약 무장한 안전요원들 조차 관객들과 동등한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면 이 시스템은 다시 통채로 붕괴해버릴 수 있다.


이것이 말 많은 한국의 대입경쟁을 분석하기 위해 내가 채택해 본 모델이다. 이것을 불난 극장 모델이라고 부르자. 이 모델은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는데, 하여간 좀 더 살펴보자.

이 모델에서는 경쟁이 효율을 낳지 못하며, 경쟁의 강화는 노력의 낭비와 사회적 손실만 증가시킨다. 이는 흔히 사람들이 품고 있는 상식과 반대되는 결론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경우에도) 경쟁은 더 나은 효율을 낳는다는 단순한 명제를 지지하거나 적어도 반대하지 않는다. 이 때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완전)경쟁시장 모델™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혹은 예전에 완전경쟁시장 모델에서 도출된 결론을 외운 다음, 자신이 어떤 모델에서 도출된 결론을 외웠던 건지 까맣게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사실 정상적인 교육과정에서라면 경쟁은 더 나은 효율을 낳는 경우가 많다. 이 점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특수한 상황, 즉 모든 사람이 불난 극장에 앉아있는 것 같은 상황에 처할 경우 경쟁은 더이상 효율을 낳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불난 극장 모델이 말해주는 중요한 교훈이다.

예를 들어 그럭저럭 우수한 자질을 가진 어떤 학생이 3수를 거쳐 일류대를 들어가 졸업한 경우와, 현역으로 그보다 조금 낮은 대학에 들어가 졸업 후 대학원을 마친 경우를 비교해 보자.

이 학생 개인의 입장에서는 취직 등에서 유리하다든가 하는 이유로 전자가 후자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지만.) 하지만 전자를 선택할 경우 사회적으로는 거의 확실히 손해가 발생하게 된다. 이 학생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조금 더 완벽하게 숙달하기 위해 보통의 3년 대신 5년을 투자한 것인데, 사회적으로 볼 때 대학교육 이후의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희생시켜가며 고교교육을 더 완벽히 숙달하기 위해 2년을 추가로 투자하는 것을 정당화하기란 어렵다. 이 때 이 학생이 취직 등에서 확보한 유리한 입지는 누군가 다른 학생과 자리를 바꾼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아무런 추가적 이익을 발생시키지 못한다. 즉 zero-sum 게임인 것이다.

이 모델에서 도출되는 결론은 공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가며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모두의 이익이 되는 경우가 있다란 것이다. 즉 불난 극장 모델은 공리주의 원칙과 개인의 자유가 충돌하는 전형적인 경우를 보여준다.

따라서 개인의 선택이나 행동의 자유에 높은 가치를 두는 사람은 이 모델을 극히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우리가 다루려는 문제가 불난 극장에 비유될 만큼 치명적인 상황은 아님을 설득하기 위해 커다란 노력을 기울인다. 반면 공리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많은 사회문제에 불난 극장 모델을 적용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런 판단은 주관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결론은 쉽게 나지 않지만, 한 가지 점만큼은 생각해볼만하다.

사람이 어떤 사태를 분석하기 위해 특정한 모델을 선택한다는 것은 암묵적으로 어느 정도 결론도 같이 결정한다는 의미일 경우가 많으며, 종종 그 배후에는 개인의 가치관이 존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내가 도출해 낸 결론은 아까 내가 몰래 모자 속에 넣어 둔 토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앞서 살펴본 불난 극장 모델이 말해주지 않았던 요소 하나를 생각해 보자.

불난 극장의 질서를 장악한 안전요원들은 아마 출구에서 가장 가까운 쪽부터 차례로 사람들을 대피시킬 것이다. 이 말은 상황이 통제된 시점에서 출구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살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 때 초기 좌석배치가 어떤 의미있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형태를 상정해 볼 수 있다.

공권력이 대학입시에 관련된 많은 경쟁을 억압해 과당경쟁을 줄인다 하더라도 통제불가능한 부분은 분명히 남을 것이고, 그 부분에 있어서도 상류층이 유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 경우 상류층은 체계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갖고 있으며, 안전요원들이 제공한 질서 하에서 더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불난 극장 모델의 지지자들은 안전요원들이 없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서도 출구에 가까운 쪽은 원래 유리했으며 그 상황이 크게 더 나빠진다고 볼 이유는 없다고 반박할 것이다.

이런 점은 모델이란 것에는 언제나 생략된 요소가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이 점은 지도를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그 누구도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표시된 1:1 크기의 지도를 들고다니지는 않는다. 지도는 언제나 그 지도를 선택한 사람이 관심을 기울이는 요소들을 중점적으로 남기고, 덜 중요한 요소들을 생략한 후 과감히 현실을 축소함으로서 비로소 가치를 갖게 된다.


정리해 보자면 이 문제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지만 덜 틀리기 위한 일종의 지침 같은 것은 존재한다.

1) 대개의 모델은 현실을 단순화시킨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하지만 또한 현실의 어떤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이해에 도움을 준다.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델을 갖고 놀아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2) 자신이 어떤 결론 같은 것을 믿는다면 그 결론이 어떤 모델에서 도출된 것인지 기억하고, 필요할 때마다 그 모델로 되돌아가 변수를 바꾸어가면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정교한 연구를 통해 얻어낸 결론이라도 결론에서 모델이 떨어져나가버리면 결론은 곧 낡고 틀리게 된다.

3) 늘 가능한 복수의 모델을 갖고 놀아야 한다. 서로 다른 모델은 현실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면 복수의 모델을 비교검토하는 한편, (크게 잘못된 모델이 아니라면) 각 모델들이 어느 정도 상보적인 역할을 해 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4) 모델을 갖고 충분히 놀았다면 모델이 현실을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생략했던 부분들을 끄집어내어 우리의 결론이 얼마나 적실성이 있는 것인지를 다시 맞추어 보아야 한다. 사실 많은 모델은 그 모델에 잘 맞지 않는 사례들을 따로 빼내 골방에 쳐넣어 감춰두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곤 한다. 따라서 단순화 과정에서 생략된 사례들이야말로 결론의 적실성을 검증할 진정한 시험대가 된다.


교육 문제는 나의 주 관심사가 아니어서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검토해 보았을 때 얼마나 적실성이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과거 한국의 공교육과정을 같이 밟아본 정도의 경험에서 말하자면 불난 극장 모델은 반드시 검토해야 하는 복수의 모델들 중 하나에는 들어있어야 한다고 본다.
by sonnet | 2008/04/17 17:54 | 정치 | 트랙백(1) | 핑백(3) | 덧글(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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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Periskop ove.. at 2008/04/17 22:15

제목 : 치열해지는 교육 경쟁구도에 창조적 해결책이 존재할까?
슬슬 직장이 다시 바빠지기 시작해서 오늘도 논제를 먼저 세우기 보다는 순명大帝(sonnet) 님의 글을 이어 쓰게 됨을 양해 바란다. 순명大帝 님은 '모델의 선택'이라는 블로그 글을 통해 '불난 극장 모델'을 한국의 대입경쟁을 설명하는데 도입해보자는 의미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해주셨다. 여기서는 과도한 경쟁이 오히려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며, 때로는 공권력이 이를 제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모델을 통해 설명하셨다. 그리고 막장으로......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04/20 23:56

... 앞선 글 모델의 선택에 붙어있던 그림에 대해 많은 분들께서 "출입구를 더 뚫으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을 제시해주셨기 때문에 간단히 보충해 보기로 한다. 하나의 출구만 있는 것처럼 그려진 ... more

Linked at 漁夫의 이것저것; Juveni.. at 2008/04/26 22:29

... 식하우스. - 마지막으로 인용하자면, 漁夫가 이글루스 멤버 중 (漁夫와 주된 관심사는 다르지만) 가장 과학적인 판단력을 존중하는 분 중 한 분이신 sonnet님의 글에서 꼽겠다. ... 이런 점은 모델이란 것에는 언제나 생략된 요소가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이 점은 지도를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 more

Linked at 누구의 것도 아닌 집—푸른 문.. at 2008/05/12 20:57

... 만큼 완전경쟁시장도 이상이다.   “늘 가능한 복수의 모델을 갖고 놀아야 한다. 서로 다른 모델은 현실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면 복수의 모델을 비교검토하는 한편, (크게 잘못된 모델이 아니라면) 각 모델들이 어느 정도 상보적인 역할을 해 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주와의 연쇄를 잃어버 ... more

Commented by 케인 at 2008/04/17 18:01
재밌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Ha-1 at 2008/04/17 18:03
n person 게임 이론 모델이 생각나는군요 ^^. 좋은 예시 감사합니다.

이러한 botteneck모델은 Traffic flow 에서의 shockwave 현상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 교육 현장과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통합된 룰이 갖는 '줄세우기 시험'은 그 자체로 보면 '보안 요원이 잘 sorting한 행렬'에 가깝지 않을지...
Commented by kirhina at 2008/04/17 18:04
불난 극장 모델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말씀에는 절대 공감입니다... 만,
그 동안 우리나라의 '교육정책' 이라는 놈의 수준을 고려해보면 기껏 극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자기가 더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는 3류 안전요원 수준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답답하네요. ㅜ_ㅜ;
Commented by Ha-1 at 2008/04/17 18:05
우리 나라 교육 체계가, '협력'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유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내신을 없애고, 수능에서 모두 잘 보도록 학교 단위 내에서 으샤으샤 하는 모델을 선호합니다만.. -_-;
Commented by 444★ at 2008/04/17 18:07
그런데 어째 현실은 "미래는 너희들의 손으로 붙잡아라. 애도 아니니 응석 부리지 말고"라며 미리 빠져나간 요원들이 확성기로 방송을 때리는 느낌이라 참 거식하더군요....OTL
Commented by 개구리 at 2008/04/17 18:09
보안요원이 분명 존재하되, 그들에게 항구적인 권위도 원칙도 없다는 게 이 경우 문제일 것 같네요. (게다가 보안요원들은 관객들이랑 알고보면 직, 간접 인맥으로 얽혀 있고)

더 이상 보안요원을 믿을 수 없고, '보안요원이 시키는 거랑 정반대로 해야 살아남는다더라!' 풍문이 도는 사회. 역무원 안내따라 차안에서 구조 기다리던 사람들은 다 타죽고, 막무가내 뛰어나간 사람들은 간혹 살아남았다던 대구 지하철 사고현장처럼요.
Commented by 로리 at 2008/04/17 18:09
문제는 보안 요원들이 진짜 "세상은 약육강식!! 앞의 친구를 밟고 가라!!!!" 라고 외치는 것 같은.....
Commented by nishi at 2008/04/17 18:20
결국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는 질서가 반드시 요구되는데 그 질서라는 것이
생존을 구하는 개개인들에게 모두 공평하지는 않다는 것이군요.

상기 모델에 대한 총괄적인 의미(?)라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만 아무튼 중요한
포인트 중의 하나라고 생각되는군요.
Commented by あさぎり at 2008/04/17 18:48
보안요원은 없고 비상전력으로 작동하는 스피커에서 '알아서 잘 탈출하3'만 외치는 것 같아 무섭기 그지 없습니다.
Commented by 됴취네뷔 at 2008/04/17 18:50
사실 저 불난극장의 다른 해결책은 '출구를 더만든다'겟지만.

우리의 정책결정권자들은 선진국보고 뭘배워왔는지 출구하나 더낼생각은 없고 기존출구의 문틀과 경첩을 더 튼튼하게 수리하기만 하는듯한 느낌이 든다랄까요
Commented by 됴취네뷔 at 2008/04/17 18:51
아, 괜히 이상한 방향으로 발언을 한듯한..
Commented by Ya펭귄 at 2008/04/17 18:56
...


어떠한 보안규칙을 세우더라도 보안요원들은 항상 군중들에게 압도당하고 말았지요...


그건 그렇다고 쳐도 리커버리가 불가능한 '불~태우자' 극장 모델이 현 교육체계를 설명하는 모델로서 부합되려면 부모의 지위와 자녀들의 학습성취도가 강체커플링 수준으로 묶여져 있어야 할 듯 합니다...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8/04/17 18:58
잘 읽었습니다. 일단 저 모델을 찬성하는 입장에 선다고 해도, 사전에 탈출구와 가까운 위치에 있기 위해선 많은 준비가 필요하겠군요[..]
Commented by 홍안촌닭 at 2008/04/17 19:08
이 모델로 아파트를 향한 집착도 설명 가능하겠네요. 막차를 타기 위한 대중의 욕망은 스스로가 결코 유리하지 않은 위치에 서 있음에도 안전요원의 개입을 달가와하지 않을테니.
Commented by Quency at 2008/04/17 19:08
사교육비가 각 가정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급박한' 이유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애독자 at 2008/04/17 19:09
손넷님의 글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사라지는 날까지 경쟁은 없어지지 않을겁니다.
'올림픽 100m달리기' 에서 2일만에 골인지점에 온다해도 첫번째로 들어오면 금메
달을 따는 거고, 0.1초만에 들어와도 4~5번째로 골인지점에 들어온다면 메달은 물
건너 가는게 경쟁의 본질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애독자 at 2008/04/17 19:15
다음번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
Commented by lee at 2008/04/17 19:16
확실히 무조건 '경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전한다'는 것에만 끌려다니느니, 저렇게 공권력이 개입을 하면서 조정을 하는게 더 좋을 듯 합니다. 더구나 그 경쟁에 '부정'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더욱 그렇구요.
Commented by 대건 at 2008/04/17 19:40
왠지 마음에 와닿는 모델이군요.
비상구를 더 늘리는게 좋겠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아보이고요.
불났을때를 대비해서 뒤에 앉을지, 아니면 좀더 앞에서 영화를 즐길지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면 좀 낫겠지만, 위에서 정해준 순서대로 앉아야 한다면 그것도 변수겠군요.

이런 저런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결국 누구나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살고 싶은 욕망은
버릴 수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위험한 생각입니다만, SKY대학을 나오건, 중학교 중퇴를 하건 똑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입시지옥은 없어지겠지요. 거꾸로 생각해보면, SKY를 나오건 중학교 중퇴를 하건 똑같이 불행하게 산다면 역시 입시지옥은 사라질겁니다.
다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Commented by 마무리 at 2008/04/17 19:54
개념글 도장 꽝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4/17 19:56
꼭 정해진 문으로 나가야 하나요. 사방의 벽을 다 허물고 출구로 만들 수도 있겠죠.
하류층과 중류층과 상류층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마무리 at 2008/04/17 19:59
누렁별// 그게 말처럼 안 되니까 문제인듯
Commented by JOHN_DOE at 2008/04/17 20:06
역시 대협의 글은 다릅니다 굽신굽신
Commented by 레이 at 2008/04/17 20:18
죄수의 딜레마는 두 죄수가 입을 맞출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기에 딜레마인거죠 :D
글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의 상류 중류 하류 구분에서는 좀 소름이 (...)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08/04/17 20:21
아... 그냥 성배를 찾고 싶어요 ㅠ.ㅠ 다행히 교육부에서 '전 국민이 환영할' 성배를 찾았다고...
.
.
.
어?!
Commented by 하늘선물 at 2008/04/17 20:26
아..오늘 이상한 기사 하나 해석가지고 서로 싸우는 글만 보다가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는 글을 읽으니 기분이 좋네요 ^^
Commented by 목장별 at 2008/04/17 20:44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정답은 불이 나더라도 모든 관객이 빠른 시간안에 대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한다.. 가 되겠군요.
Commented by 琳☆ at 2008/04/17 21:12
잘 읽었습니다.

즐거운 글이고 눈이 번쩍 뜨이는 글이네요.
Commented by 토우 at 2008/04/17 21:18
오옹... 재밌게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우연과 필연 at 2008/04/17 21:38
끝까지 못읽었서 결론이 뭔질 모르겠지만.
쫌 확장된 생각일 수도 있는데 불은 왜 났나요?

통로는 하나지만 나가면 더 많은 통로와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잖아요.

희생자가 밟혀서 죽을지 타서 죽을지, 남 죽이고 사는 것에 관한 가치 등의
교육을 미리 받았다면 좋을 텐데요...
그런 아주 기본적인 개념이 먹히지 않는 사회가 문제인듯합니다.
Commented by ZBNIC at 2008/04/17 21:44
우연과 필연님, 우선 [끝까지 글을 읽어주세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4/17 22:05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교육 외에도 한국사회 전반에 통용되는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8/04/17 22:23
그렇다면 각하를 다시 청와대로 모신뒤 강력한 과외 금지령을 내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온푸님 at 2008/04/17 22:23
아아, 머릿속에 뭔가가 번뜩이네요^^
그런데 이번 정책에서 불만인건, 관객면보다는 스프링쿨러 설치 의무를 줄인거랄까요~~
Commented by 우연과 필연 at 2008/04/17 22:36
끝까지 읽었습니다.
모델을 복수로 가지고 접근하여야 한다는 점까지가 결론인 듯 합니다.
우리는 너무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서 등한시 해오지 않았나 싶어요. 복잡한 세상이라...
어떤 해답을 정할 수는 없지만 결국 개개인의 가치와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의식과 정책이 전체 사회를 경쟁력과 생명력이 있게 지속시키는 시작이라는 원론적 얘기였습니다.
Commented by 스카이호크 at 2008/04/17 22:45
대책이 정책을 엿먹여온 아주 성공적인 케이스죠.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04/17 22:46
잘읽었습니다. 꾸벅
Commented by marlowe at 2008/04/17 22:48
글을 읽으면서 영화 [타워링 인페르노]에서 혼자 살려다 죽은 회장 사위가 떠올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에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네요.)
공리주의에 투철한 사람들을 안전요원으로 뽑아야 하는 데, 그게 쉽지 않군요.
되도록 비상구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으려고 노력할 수 밖에요.
Commented by monsa at 2008/04/17 23:24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공권력을 강요하면, 노예화의 정당화가 일어날 수 있지요. 그 결과 하류층은 죽을 수도 있고, 그걸 깨달은 이들이 무장봉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4/17 23:36
'복수의 모델'... 그렇군요.
'교토삼굴'까진 아니어도, 특정한 상황만을 전제로 한 가정에선
최선의 답이 나오긴 힘들지요. 곧바로 '자기 자신에게 낚이는' 상황이 도래하기 쉽상이니...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4/17 23:51
그런데 보통 극장에서의 로얄석은 감상에는 최적이지만 대피하기엔 불편한 곳이죠.
Commented by 흐흠 at 2008/04/17 23:53
아, 잘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결론들이 마음에 와닿는군요. 아마 알면서도 분명히 의식하지 않았던, 혹은 일부러 무시하던 것을 일깨워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죠. 복수의 모델을, 편견없이 갖고 <놀 수> 있어야 할 텐데... 너무 어렵군요.
Commented by 머스타드 at 2008/04/18 00:29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글이군요...
Commented by 찰리024 at 2008/04/18 00:34
대제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주시는 가르침을 한번 더 씹어보려고 노력중입니다.
Commented by 방문객 at 2008/04/18 03:38
진짜 가슴에 확 와닫는 글이네요~ ㅎㅎ
Commented by DK紅炎卿 at 2008/04/18 04:47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경쟁이 항상 우위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공감이 가는 군요.

문득 Beautiful Mind의 John Nash가 떠올랐습니다. (그러고보니 그의 "금발 미녀 이론"도 거의 같은 내용이었던 것 같군요. =])
Commented by 建武 at 2008/04/18 07:27
상당히 흥미있는 모델입니다. 특히나 요즘같이 뒤쳐지면 죽는다!라는 절박함이 만연한 때에 적절한 모델처럼 보이는군요. 보완해야할 부분들이 있겠습니다만, 그건 차차 나아질 수 있겠지요. 저도 곰곰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Crete at 2008/04/18 07:42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 봤습니다.

홍순명님의 견해처럼 특정 모델의 경우 경쟁이 최선의 방책이 아니며 적절한 공권력의 도입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말씀도 유익한 지적이며, 또한 채승병님의 견해처럼 문 앞에 적당한 크기의 기둥을 설치하는 시도처럼 역발상의 창조적 해결책 역시 충분히 고려해 봐야 할 요소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저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극장 안에 남아 있는 경우와 극장 밖으로 탈출했을 경우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즉 불이 난 극장처럼 안(죽음)과 밖(삶)의 수준이 극단적인 차이가 난다면, 공권력의 도입이던 문 앞의 기둥이던 관객들이 탈출을 하고자 하는 욕구 자체, 즉 경쟁 압력 자체가 줄어들기를 바라기는 난망한 노릇입니다.

서울대를 포함한 일류대 졸업생과 지방대 졸업생, 아니면 고줄 출신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지위와 신분 상승의 기회가 현재 대한민국처럼 현격히 차이가 난다면 (단순히 경제적 수입 차이에 더해 직업의 서열화와 이에 따른 차별적 시선 같은 보이지 않는 social hierarchy 에 의한 압력) 공권력에 의한 통제가 되었건 문 앞의 기둥 같은 역발상의 창조적 해결책이 되었건 압력 자체가 주는 경쟁 과열은 계속 될 것이라고 보는 거죠.

결국 극장 밖으로 탈출한 관객들(= 일류대 졸업 후 고액 연봉의 사회 지도층)에게Noblesse oblige가 이벤트성의 행사가 아닌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또한 고액 수입에 걸 맞는 충분한 세금 납부와 기부 활동 등이 정착이 되고, 반대로 극장 안에 남겨진 관객들(=고졸이나 지방대 졸업 후 사회의 중하위권을 차지하는 서민들: 이런 표현 자체가 좀 차별적 시각이 내포되어 있기는 하지만 선명한 비교를 위해 일단은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에게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과 노후 생활 보장 그리고 실직 시 실업수당 지급 같은 사회안전망 체계가 충분히 갖춰진다면 극장을 탈출하고자 하는 경쟁 자체가 조금은 약화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늘 염려하는 것은 극장 안과 밖의 수준차이를 얼마로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수준차이가 아주 미미하다면 극장 탈출을 위한 노력, 즉 사회 구성원들의 자기 개발 의욕 저하와 궁극적으로 사회가 외부에 대해 갖는 상대적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야 하겠지만 계층간 위화감 문제와 이에 따른 사회적 불안정 문제는 약화되겠죠. 하지만 반대 경우라면 일정 수준 정도의 사회적 긴장감이 전반적인 경쟁력 강화를 부추기는 한편 계층간에 벌어진 차이가 사회의 안정을 해치게 되겠죠.

이런 양 극단 사이에서 어느 포지션에 우리 사회가 자리를 잡는 것이 바람직할까 하는 고민을 해 봤습니다만, 적어도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은 조금은 더 극장 밖과 안의 차이를 줄이는 방향이 더 바람직해 보이기는 합니다.

홍순명님과 채승병님의 수준 높은 발제글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두분 모두 건필 하시기 바랍니다.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8/04/18 09:20
채승병님의 트랙백 말미에서 제시하신 해결책과 그 해결책을 시행하는데 우리 사회에 실제 존재하는 걸림돌 부분이 상당히 와닿습니다.
정부는 "일단 무조건 규제 없앰!"고함만 질러대고 그 반대진영에서는 무조건 "그딴거는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니 절대 불가!"만을 외칠 뿐입니다. 100분토론이니 시사 매거진이니 하면서 대화할 기회를 줘도 일단 "쟤의견은 들으면 안돼! 내 의견만이 옳아!"하면서 서로 짖어대기만 할 뿐이니 더 이상 토론이 진행될 수가 없죠. 양쪽 모두 조금만 생각을 여유있게 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이런 글 올리셨다고 수구는 "이런 빨갱이!" 진보는 "이런 수구꼴통!!"하고 와서 글도 제대로 안 읽고 악플달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Commented at 2008/04/18 12:0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무민 at 2008/04/18 12:41
엉뚱하게도 차라리 벽을 부수는게 어때? 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저 건물이 실용성을 중시하는 튼실한 건축에 기반한다면 어림도 없지만
차라리 정리할 안전요원들이 해머로 입구를 몇 군데 더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Commented by 오토군 at 2008/04/18 12:43
…뭐 그냥 잘난척 하고 싶어서 댓글을 달아보고는 싶은데 포스팅부터 다른 분들이 여러가지 심도있고 깊은 생각의 글들을 쓰셔서 제가 낄 자리는 없군요.

그냥 다만... 저 출구만이 능사인 사회 자체의 문제도 고려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양한 계층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출구가 확보되는 것도 중요하겠지요.(그러니까 고학력 위주 직업 문제를 해결해 직업, 진로 선택의 확대라거나…아, 논점이 삼천포에서 캐터펄트로 사출되는군요. 게다가 지극히 이상적인 이론...-_-;;;)
Commented by vvin85 at 2008/04/18 13:15
안전요원의 잘못을 지적하는 댓글들이 많은데 저는 사실 안전요원들의 수준은 꽤 높은 편이라고 봅니다. 대책에 맞춰 정책또한 변하다 보니 나타난 결과로요. SAT 시험을 사실은 알바생들을 고용해서 출제한다는 사실을 잘 모르더군요.
교육 문제는 이미 교육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난지 오래라고 봅니다.
Commented by 가루 at 2008/04/18 14:55
이제 상류층은 특별히 걱정할 것 없는 것이
돈만 더 내면 앉아만 있어도 불나면 출구로 1순위로 데려다주는
새로운 정책이 시작되려고 폼잡고 있습니다 (..)

대학교가 돈이 없고 기여입학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머리를 들고 있죠
Commented by youknow at 2008/04/18 14:55
제가 모델로 밥먹고 사는 사람이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심히 공감가는 글입니다. 잘 읽고 많이 깨닫고 갑니다. ^^
Commented by 백성주 at 2008/04/18 22:32
서프라이즈에 Crete 님이 이곳을 링크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대입제도를 이 모델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극장의 좌석은 고정되어 있지만, 대입경쟁에서는 좌석이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성적순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좌석이 이동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다른 모델을 구상해 보는 것이 더 좋을 겁니다.

이 모델은 단지 '경쟁'이 최선 최고의 결과만을 가져 오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것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제 블로그에 오시면, 한국 대입제도가 경쟁으로 인해서 고비용 대입제도가 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입제도에서 경쟁을 제거하면 저비용 대입제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비용 대입제도와 저비용 대입제도로 이원화하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사교육비문제 등은 해결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방법이 이미 있는데도 여러분이 그 방법을 모르는 것 뿐입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4/18 23:47
백성주 님의 글을 보았습니다만, 글쎄요...
오히려, 현 입시제도의 상황을 단견적으로 보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개개인 간의 성적순이야 물론 다소 변동하겠습니다만, 각각의 큰 집단으로 보면
분명 어느 정도의 '덩어리'들이 나뉘어져 있는 게 보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무시험 또는 자격시험 뒤 추첨제도는 오히려 '평등'에 치우쳐서
'기회'를 박탈하는 획일적인 방안으로 보입니다.
특히, '일부 학과의 특수성을 감안한, 쌍방의 이원화'를 말씀하시는데...
이래가지고서야, 오히려 일부 상위권 대학과 대다수의 지방 및 하위권 대학 간의
터울만 더 키우는 결과가 될 뿐으로밖에 안 보입니다만...
(덧으로, 사실 서구의 여러 나라들이 무시험 진학을 하고는 있습니다만,
그 뒤에는 '대학 과정 중에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고
또한 '졸업자격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피흘리고 있지요. '이상향'은 없달까...)

...하지만, 분명 지금의 교육정책이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만큼은
모두가 공감하는 일이고, 이 또한 하나의 '제안'으로서는 참고할 만하다고는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백성주 at 2008/04/19 06:02
paro1923 님/

제 블로그의 글을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블로그의 글은 제가 말하고 싶은 내용의 4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고등학교 커리큘럼 리엔지니어링, 대학 커리큘럼 리엔지니어링에 대해서는 아직 쓰지도 못했습니다.

고비용 대입제도와 저비용 대입제도를 둘 다 운영하고, 학생들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제 글의 제안입니다. 그러니 평등이라는 개념은 나오지도 않을 뿐더러,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고비용 저비용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음미해 주셨으면 합니다.
Commented by H-Modeler at 2008/04/19 13:26
좀 극단적으로 본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느낌으로는 극장에 불을 지른게 바로 안전요원들이 아닌가 합니다.-_-
Commented by 아텐보로 at 2008/04/19 16:10
백성주님// 아직 쓰지 않은 글은 상대방의 얘기에 대한 논박을 할때 꺼낼만한게 아닌듯 싶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4/19 18:21
all/ 코멘트가 너무 많아서 좀 나눠 쓰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4/19 18:22
케인, 마무리, JOHN_DOE, 하늘선물, 琳☆, 토우, 三天포/ 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a-1/ 전체 교육 과정 중에서 대입이라는 구간이 병목이라는 것은 그 구간에서만 재수가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볼 때 충분히 확인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kirhina/ 이렇게 모든 사람이 다 불만을 갖는 제도도 드문 것 같습니다. --;

444★, 로리/ 그건 경쟁이 너무 부족할 때는 그게 좋은 대안이지요. 하지만 이미 경쟁이 과열인 상태에서 그러면 희생자만 늘어나고 효율은 개선되지 않는다는 게 여기서 거론해 본 '불 난 극장' 모델의 중요한 교훈입니다. 요는 그런 식의 접근은 현재 상황에 대한 평가가 잘못된 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구리/ 저도 동감합니다.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면 보안요원들의 힘이 미약해서 관객들을 제압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위에는 정책이 있다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식으로 정책을 농락해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주식시장 같은 경우 개미는 큰 손들에게 늘 당한다는 게 상식처럼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럼 개미가 파는 걸 사고 개미가 사는 걸 팔면 돈을 벌 수 있는가라는 가설을 과거 자료를 갖고 실험해 보았더니 그렇지 않더라라는 결론을 얻었다는 내용을 본 적 있습니다. 개미가 가는 대로 가도 안되고, 반대로 가도 안된다니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nishi/ 음, 어떤 한 가지 그럴듯한 기준으로 따졌을 때 공평한 것이 또 다른 그럴듯한 기준으로는 불공평하게 될 가능성은 늘 있으니까 말입니다.

あさぎり/ 그야 말로 로봇 애니메이션인데요. "본 기지는 3분 후 폭파됩니다. 다시 한 번 안내합니다..."

됴취네뷔, 누렁별, 무민/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여러 차선으로 된 톨게이트가 있는데 톨게이트 앞에 온 모든 차들은 "가능한" 1차선으로 나가려고 기를 쓰고 머리를 들이미는데 여념이 없기 때문에 그 앞이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고. 여기서 각 차선이 커트라인 순서대로 배열된 대학 서열이라고 생각하면 꽤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보면 출구가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편에 덜 붐비는 차선은 늘 있으니까요. 여기서는 모든 운전자가 어떤 차선은 다른 차선보다 훨씬 좋기 때문에 이 아수라장에 뛰어들어서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로 나가야겠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게 문제가 되겠지요.

Ya펭귄/ 원래 패닉 상황에서는 어설픈 해결책은 통하지가 않잖습니까.
말씀하신 두 번째 그림은 '그렇다'는게 아니고 "예를 들어 ... 상정해보면 ... 있을 것이다"입니다. 이 모델이 생략한 부분(혹은 잘 못 설명하는 부분)에도 어떤 함의가 있을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지, 꼭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라피에사쥬/ 이게 전형적인 공리주의적 모델인데, 이건 정부가 뭘 해야 할지는 말해주지만 개개인이 뭘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 종류의 모델이지요. 이런 식으로 어떤 모델이란 것은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지"를 규정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런 특징은 토마스 쿤이 주장했던 패러다임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홍안촌닭/ 역시... 집값 폭등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내 집값만큼은 오르길 바라는 것처럼, 대학서열을 달가와하지 않는 사람도 내자식은 좋은 대학 가고 싶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Quency/ 그렇죠. 이미 모두가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경쟁이 심한 상태죠.

애독자/ 예. 동의합니다. 저도 경쟁이 없어질 거란 건 아닙니다. 제가 예시한 모델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현재는 경쟁이 너무 극심해서 모두가 제살깎아먹기식 과당경쟁에 빠져든 상황 아니냐는 것입니다. 만약 이 문제의식에 찬성한다면 "교육계에 자율성을 더 많이 주면 경쟁을 통해 상황이 개선될거다" 같은 주장에 동의하기는 힘들어지겠지요.

lee/ 사실 여기서 진짜 어려운 것은 "어떻게 개입하면 성공하냐"인데, 이 글은 그런 어려운 것은 그냥 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만 남겨놓은 것이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4/19 18:54
대건/ 비상구를 넓히는 방향은 여러 분들께서 지적해 주셨는데, 앞서 들었던 톨게이트 비유가 어느 정도 답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말씀해 주신 "SKY대학을 나오건, 중학교 중퇴를 하건 똑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입시지옥은 없어지지 않을까란 의견에 대해 제 생각을 조금 말해 보기로 하지요. 저는 이 문제는 사실 두 개의 문제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사람들이 어떤 학교를 나오건 똑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미래에 일어날 사건)
2) 사람들이 어떤 학교를 나오건 똑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미래에 대한 현재의 예상)

현재 그 어떤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1)처럼 만들겠다고 주장하더라도 대중은 2)처럼은 생각하지 않는다는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사실 대중은 좋은 학교를 나와야 잘 살 수 있다고 굳게 믿지요. 1)과 2)는 어느 정도 서로 연계되고 상호 영향을 주지만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대중들 개개인이 품고 있는 미래에 대한 예상(expectation)이 큰 힘을 발휘하는 사례가 은행예금인출사태입니다. 어떤 은행이 간당간당할 때 모든 사람이 이 은행은 망할거라고 예상하고 망하기 전에 돈을 찾겠다고 달려가면 그 은행은 확실히 망하게 되죠. 그걸 본 다른 사람들도 역시 불길한 예상이 맞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거래하는 다른 은행으로 달려가 각자 돈을 찾기 시작하면 은행이 줄줄이 무너지고 이러한 예상의 연쇄반응은 현실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좋은 학교를 나와야 잘 살 수 있다"는 대중의 기대 내지는 확신이 견고하다면, 자기강화의 피드백을 통해 "어떤 학교를 나오건 똑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미래를 만들 가능성은 그런 확신이 없을 때보다 훨씬 낮아지게 될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레이/ 예. 그게 교훈이지요. 마지막의 상/중/하류 문제는 사실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런 초기조건이 있을 수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정책에는 늘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 같은게 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런 것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랄까요.

하이버니안/ 하하, 저도 빨리 외계인을 강제수용소에 넣고 달달볶아서 초학습법을 뽑아내고 싶습니다.

목장별/ 예. 사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어떻게"가 진짜 어려운 거지요.

우연과 필연/ 이게 교육으로 해결될 문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본문에서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무리 교육을 잘 받은 사람도 '불 난 극장'의 아비규환 속에서는 한 마리 짐승으로 돌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니까 말이지요.
Commented by 육식팬더 at 2008/04/19 19:56
모델에서, '극장 안의 사람들'에 대한 변수도 있지 싶습니다. 교육과 교양의 문제인데...
'협조와 질서가 모두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정도의' 교양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

실제 예가 있지 않던가요. 불시착한 비행기(였던가)에서, 누군가 외치기 시작했고 곧 모두가 따라 외친 '질서! 질서!' 구호에 따라 모두가 침착하게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고, 마지막 사람이 탈출하고 곧 비행기가 폭발했더라는. (아아 소스가 기억나지 않는다)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4/20 03:21
육식펜더/ 언급하신 예와 딱 맞는 것은 아닌데, 작년 8월 20일 대만 중화항공의 여객기가 일본 오키나와 현 나하 공항에 착륙한 뒤 화재로 전소했지만, 탑승자 165명은 3분만에 모두 무사히 대피한 사례가 있습니다. 다른 탑승자들이 탈출한 뒤 마지막으로 조종사는 2층 높이 조종석 창문에서 뛰어내렸고, 몇 초 후 사고기가 폭발했습니다.
이 예에서 볼 때, 관객/승객들에게 일정 수준의 교양을 요구하기 보다는 안전요원들이 유사시에 제대로 행동하는 쪽이 낫지 않나 싶습니다.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04/20 19:14
출구가 하나밖에 없는 상황 자체가 안전요원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생각은 하지들 못하나 보군요. 한국의 대학서열화는 규제의 직접적인 결과입니다. 규제로 인해 생긴 문제를 규제로 풀 수는 없습니다. 교육에 대한 강한 정부 규제는 학생들을 모두 극장 안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 왔죠. 획일적인 커리큘럼에 국가 차원의 단일한 시험, 특색없이 서열화된 대학이라는 현실은 국가 규제의 산물이며, 이는 국가가 안전 요원의 권력을 끊임없이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안전 요원은 위의 모델에서와는 달리 중립적이지 않으며, 탈출하려는 관객들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4/20 19:34
행인1/ 한국 사회 전체가 공황상태이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길 잃은 어린양/ 각하가 갖고 계시던 그런 철권 없이는 좀처럼 달성하기 힘든 정책인 건 맞는 듯 합니다.

온푸님/ 현 상황에서 규제를 줄이거나 권한을 하부조직에 분권적으로 이양하는 것은 경쟁을 더 격화시킬 가능성이 커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스카이호크/ 그렇습니다. 딱 그런 거죠. 군중의 힘이나 집념이 엄청나서 어지간한 정책으로는 꿈쩍도 않는 상황.

marlowe/ 모델에서 등장하는 안전요원의 특별한 역할은 역시 이들이 관객들과 입장을 공유하지 않는다는데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에 투철한 사람도 관객의 위치에 있으면 그렇게 행동하기 무척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그건 그렇고 [우주전쟁]이나 [레지던트 이블] 등 군경이 출동해 피난하려는 군중을 통제하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는 무척 흔한 것 같습니다. 스크린샷이라도 한 장 잡아 두어야 할 듯.

monsa/ 어떤 가치기준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 대개 탈이 나지요. 극단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이 국가의 붕괴로 연결될 수 있듯이 말입니다.

paro1923/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한 토론법으로 devil's advocate라는 것이 있을 정도니까요.

rumic71/ 예. 하지만 이건 그냥 이해를 돕기 위해 구성한 이야기니까요.

흐흠/ 원래 "잘 하기"가 그만큼 어려운 것 아니겠습니까.

머스타드, 찰리024, 방문객/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DK紅炎卿/ 예. 게임이론 쪽에서 이런 상황을 집중적으로 다루다 보니 재미있는 비유를 많이 개발해놓은 것 같습니다.

建武/ 모두가 느끼듯이 '뒤쳐지면 죽는다!라는 절박함'이 역시 관객들을 뒤에서 강하게 밀어붙이는 동기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croydon at 2008/04/21 13:04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제 평소 생각과 똑같네요. 저는 입시교육 뿐만 아니라 지방 균형 발전 문제도 이와 비슷한 구도라고 생각합니다. 다같이 수도권 밖으로 조금씩 흩어지면 결국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아는데도 당장 내가 먼저 밖으로 나가면 큰 손해를 입으니까요. 결국 이런 류의 문제는 사회적 합의(의견이나 사상의 일치가 아닌 방법론적 타협)를 이뤄야 가능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신뢰가 담보되어야 합니다. 저 사람이 배신하지 않겠지, 정부가 내놓은 정책의 연속성이 보장되겠지 같은 신뢰 말이죠. 총대 매고 행정수도 이전하겠다는 계획만 해도 합의/신뢰 둘 다 잡기 힘들었던 것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4/23 12:56
Crete, 오토군/ 기본적으로 말씀하신 문제의식에 동감합니다. 문제는 정책으로 교정 가능한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고, 지금 말씀하신 것 같은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사회의 현 특성을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원시적인 과학에 불과한) 사회과학이 말해주는 것이 너무나 적다는 것이 아닐까요.
예를 들어 사회안전망 같은 간접적인 체계의 보강이 대학입시에 참여하는 참가자들의 행태를 바꿔놓는데까지는 길고 예측불가능한 지연이 있을텐데, 이게 과연 맞게 가는 건지, 아니면 역효과를 내고 있는 건지, 이도저도 아니면 인과관계가 별로 없는 것인지조차 확인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위장효과/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모델을 세워 문제를 많이 생각해 볼 수록 문제의 복잡함과 다면성을 깨닫게 되면서 점점 더 주장을 외치는 목소리의 톤은 낮아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목청이 크다는 건 그만큼 문제를 깊게 보지 않고 우기기만 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징후가 아닐까요?

비공개/ ok.

vvin85/ 사실 이 문제는 적어도 50년은 된 문제 아니겠습니까. 이게 예를 들어 명석한 교육부 장관 한 명의 개입으로 해결될 수준의 문제는 아니라는 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가루/ 하하. 그럴 때는 그런만큼 정부가 사립대들을 불난집 가격에 인수해 몽땅 국유화해버리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맞불을 놓는 게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youknow/ 좋게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08/04/23 23:3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4/26 23: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4/27 20:28
백성주/ "이 모델은 단지 '경쟁'이 최선 최고의 결과만을 가져 오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것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 바로 그 정도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울러 밝혀 두면 "대입경쟁에서는 좌석이 고정"되어 있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H-Modeler/ 아니, 안전요원에게 그 정도 큰 힘이 있었을리가. 그들이 의도와는 다르게 혼란을 조장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불을 질렀다까지 가는 것은 과격한 해석인 듯.

육식팬더/ 이런 문제는 초기상황이 그 이후의 결과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이 나면 잘 탈 물건으로 가득 찬 창고라 하더라도 아직 불이 나지 않았으면 계속 불이 안 난 상태로 남아있고, 그러다가 일단 불이 붙고 나면 활활 타서 다 타버릴때까지 계속된다거나 하는 식이지요. 말씀하신 사례는 초기상황을 통제하는데 성공한 경우인데, 현재가 이미 공황상태라면 그런 가정이 무의미해진 길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마로/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면, 정부는 수능같은 공통시험을 폐지하고, 모든 대학이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본고사로 학생을 뽑도록 한 다음 서열화가 소멸되어가는 경향이 관찰되는지 보면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croydon/ 예. 동감입니다. 이 글에서 살펴본 대로 우리가 필요한 대책은 강력한 지속력을 갖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어야만 하는데, 그것은 기존 흐름이 갖는 거대한 힘의 반동을 이겨낼 수 있을만큼 강력하거나, 점진적인 대책이라도 좋으니 실패에 대한 기대를 좌절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기대를 좌절시킨다는 것이 뒤집어 말하면 성공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공개1/ 하하. 요즘 내 글은 영 이상한 주제만 다루나 보오. 그건 그렇고 m여사의 교육관은 아가와 열심히 놀아주는 것 아냐? 팔자소관이라는 말에는 뭔가 방치된 느낌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비공개2/ 상세한 의견 감사드립니다. 저는 학력고사 세대라 사실 지금 상황에 대해 직접적인 경험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시험이 바뀌고 모집방법이 좀 바뀌어도 경쟁의 기본구도는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것 같지가 않다는 인상입니다.
맥나마라의 In Retrospect 관련 글도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기쁩니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지만 사실 미국의 대외정책은 이념적인 부분이 상당히 강하다는게 제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시면 마이클 헌트의 "이데올로기와 미국 외교" 같은 책도 재미있지 않을까 합니다.
Commented by Pelican at 2008/07/03 17:25
글은 읽었지만, 엄청난 수의 댓글과 트랙백에 다 읽은 엄두가 나지 않네요.
기둥이론은 정말 환상이었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을 차치하고 부분적으로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3수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zero-sum이라고 하셨는데,

경제학에서 "교환"이 zero-sum이 아닌 이유는 각각의 재화에 대한 개개인이
부여하는 가치, 선호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말 특정대학을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그 대학을 들어갔을 때와,
그렇지 않은 경우 개인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단지 재화의 생산이나 생산성의 입장에서는 똑같을 수 있으나,
개인의 행복, 직업 추구권 등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05 23:41
이 모델에서는 "특정대학을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A)이 그 대학을 들어갔을 때" 그 사람에게 밀려 그 대학 못 간 사람(B)가 있기 마련이고 A가 얻은 행복과 B가 잃은 행복의 크기는 같다고 간주해 상쇄한 것입니다.
실제로 개별 사례는 A>B일 수도 있고, B>A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알긴 어렵고, 두 경우가 대략 비슷하게 분포한다고 보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개별 사례를 몽땅 더해 사회적인 합계를 낼 경우 0이 될것이라는 논리입니다.
Commented by Pelican at 2008/07/06 22:37

답변 감사합니다. ^^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전체의 이익 관점(output이 같음)에서, 3수는 정당화 될 수 없다."

-> "공권력 투입(자유 억압, 질서 유지)으로 모두의 이익이 된다."

라는 논리적 구조에서,

output이 같고(zero-sum), 비용이 적어서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었는데,

극단적으로 적성 검사를 해서 진로를 결정하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비용은 좀 더 적어지고(적성이 있으니까 좀 더 빨리 배운다면), output이 같으므로,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근데, 사람들이(합리적 주체라고 가정) 3수를 하는 이유는,

3수를 안 하고 다른 일을 할 때 보다 3수를 하는 것이 이익(물질적, 정신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즉, 비교 대상은 불합격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따라서, 3수를 하는 사람들이 특정 대학의 입학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으리라는

것은 그리 비약이 있는 가정은 아닐 듯 합니다.


근데, output이 같다는 가정에도 문제가 있어봅니다.

대학 입시에서 경쟁의 수혜자는 대학입니다.

즉, 경쟁을 통해서 좀 더 뛰어난 학생이 대학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output이 같다고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과연 시험 성적이 우수한 것이 뛰어난 것이냐?

어떤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3수 하는 것이 생각만큼 가치 있느냐?는

불분명하며, 그런 것들에 대해 정확히 판단하고 제시해 줄 수 있을 때,

좀 더 낭비가 적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좀 더 정교한 테스트를 고안하거나,

3수하고 특정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의 진로를 공개하거나.. 등등


중요한 것은,

대학 입장에서도 단순히 점수 높은 학생이 아니라,

정말로 우수한 학생을 뽑을 수 있어야 하고,

학생 입장에서도 3수를 한다면, 그것의 가치에 대해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재수나 3수를 한 사람들도 단지 매몰 비용 때문에 포기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교육도 필요할 것 같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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