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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거제도의 고질적인 문제
다음은 약 8년쯤 전에 한 독일인 정치학자가 한국의 선거제도와 독일 선거제도를 비교할 때 발견되는 특징을 지적한 글이다. 당시 읽을 때도 얼굴이 붉어졌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봐도 별 차이가 없다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민주주의에 있어서 선거제도와 정치 정당은 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선거란 민중의 대표기관을 선정하는 민주주의적 방법이다. 또한 정치 정당은 대표 민주주의 제도에 있어서 ― 대중사회와 영토국가에서의 모든 근대적 민주주의는 대표 민주주의 제도를 표방한다 ― 헌법을 실현하는 "주연 배우"이다. 정치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충성심을 민주주의에 결속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중개 기관이다. 또한 정부를 구성하고 상이한 사회 집단과 정치적 이익들을 대표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위한 중요한 합법성 기능을 수행한다. 선거제도와 정치 정당은 상호 영향을 끼친다. 선거제도는 정당과 정당제도에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선거제도의 규정(특히 선거법, 후보자 규정, 선거전에 관한 규정, 유권자의 표에 따라 의회 의석을 정하는 규정)에는 정치 정당들이 어떤 조건 하에서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떤 정당이 얼마 만큼의 정치 의석을 얻을 수 있는가 등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선거제도와 정당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선거제도는 게임의 법칙이고, 정치정당은 게임을 하는 게이머이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정당도 선거제도에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의회에서 선거법을 제정하는 주체가 바로 정치정당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선거제도를 "게임의 법칙", 정치정당을 "게이머"라고 말할 때 우리는 원칙적인 딜렘마에 부딪히게 된다. 따라서 선거제도를 만들고 개혁할 때에는 이 딜렘마, 즉 선거제도는 정치정당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딜렘마를 해결해야 한다. 정치정당이 선거제도를 만든다는 의미는 정당들이 게이머로써 자신들이 차후에 민주주의라는 게임을 행할 때 따라야 할 법칙을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중략)

3. 초당적 게임법칙으로서의 독일 선거제도 및 효용의 극대화 도구로서의 한국의 선거제도

그 당시 지배적인 정당들의 주창 하에 서독 의회에서 결의된 연방 선거법 개혁(동서독 전역에 5% 제한조항을 두는 개혁)은 정당들을 위한 "결과의 논리"를 분명하게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는 이미 자리잡은 서독 정당들이 자신들의 효용을 계산하여 제안한 것이며, 따라서 바로 있을 선거에서 이들 정당에 유리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규정이 적용되었더라면 PDS가 의회에 진입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PDS는 구 동독지역에서만 선거에 임했기 때문이다. 5% 제한조항이 독일 전역에 걸쳐 적용된다면 PDS가 5% 선을 절대 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모두 예측하였었다. 연방헌법재판소가 입법자에게 정당의 사회적 포함과 기회균등이라는 초당적 기준에 따라 선거법을 개혁하라고 판결함으로써 독일선거법이 통일 이후에 서독의 자리잡은 정당에게 지나치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2가지 논리로부터 적절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합의는 이후 모든 정당이 잘 준수하고 있다.

한국에서 1988년에 도입된 다수대표제는 도입 이후에 약간씩만 수정된 대신, 여러 차례 수정되었다. 올 해 초에 보완 또는 개혁된 것은 선거구 구분, 직접 의석과 명부에 의한 의석의 비율 및 명부에 의한 의석의 분배코드 이다. 다수대표제에서 비례대표제로의 근본적인 변화는 아직까지 없었다. 이러한 "만성적" 안정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독일연방의 선거제도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선거제도는 초당적 게임의 법칙으로 자리잡지 못하였다. 한국에서는 여러 측에서 다양한 입장으로 (수정) 비례대표 선거제, 순수한 다수대표 선거제 또는 일본을 모델로 한 Single Non-Transferable Vote (SNTV)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를 보면 선거제도라는 중심적 정치 제도가 단지 한시적으로 유효하며 그때 그때 변화하는 정치 권력과 힘의 판도에 따라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정치적 경쟁의 조건이라고 여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거제도의 논의에 있어서 정당들의 입장과 전략은 제도의 효율, 포함성 및 효과라는 객관적 기준에 의해 정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정치적인 계산과 각 정당의 자기 이해에 따라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정치가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수용하는 것이 민주제도가 약속해주는 직접적인 효용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 제도들은 단기적 효용 극대화의 도구가 되고 있다.

Croissant, Aurel, 선거법 개혁과 정당: 단기적 효용 극대화를 위한 도구 또는 초당적 게임법칙으로서의 선거제도 -한국과 독일의 비교-, 공법연구 2000년 03월



한 줄 요약
한국 정당과 정치인들은 생선가게를 맡은 고양이처럼 행동하고 있으며, 그것도 도가 지나치게 그렇다.
by sonnet | 2008/04/08 14:28 | 정치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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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됴취네뷔 at 2008/04/08 14:31
그리고 그게 상식인냥 용인된다는것. 아 상식이지
Commented by marlowe at 2008/04/08 14:34
그래도 투표는 해야겠죠?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4/08 15:23
조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직도 넘치는 듯 합니다. 여전히 내각제냐 아니냐가 도마에 오르고 있고, 전국 정당이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도 실질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양당제를 안정화 시킬지, 아니면 다당제를 갈지 - 이건 대통령중심제냐 내각제냐의 문제이기도 해서 - 도 결정이 안되어 있고, 흐음.
Commented by 耿君 at 2008/04/08 16:25
(딴소리지만) 저자명에 눈길이 갔습니다. Croissant???
Commented by Ya펭귄 at 2008/04/08 16:40
정당도 행위주체라기 보다는 도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당적이고 상시적인 합의에 의해 도출될 법제도장치의 구성은 일단 '정당'부터 안정화시킨다음에 가능할 듯 하네요....
Commented by 호반새 at 2008/04/08 17:07
혹시 하버마스일까 싶었는데, Croissant, Aurel이라는 학자였군요. 멋진 한줄 요약에 탄복했습니다. 이래서야 어느 천년에 선거 제도가 개선될지 모르겠고, 결국 권력의 중추를 생선집 고양이가 가져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총선 지역구 재편성이나 공천제 개편은 아직 힘들다 치더라도 제발 결선 투표제좀 도입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소한 선거제도가 단기적 '이벤트'로서 지배 정치 세력을 공고히 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게끔 말이지요.
Commented by PolarEast at 2008/04/08 19:51
독일 헌재와 한국 헌재의 역할은 다르니... 국회가 법을 개정하겠다는데, 솔직히 막을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ㅅ-a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4/08 21:50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맡았다에... 두표 입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4/09 00:33
으음, 안 그래도 요번 정부에 들어서 너무 노골적이 된 선거 풍토를 생각해 보면
너무나 통렬한 촌철살인입니다...;;;; (어쨌거나, 선거는 해야죠... 후우......)
Commented by bearstone at 2008/04/09 01:08
생선가게를 차지한 고양이들이 다른 고양이들의 접근을 막기위해서 진입장벽을
계속 높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쨌든 선택받은 고양이들은 행복하니까요.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8/04/09 08:26
한국 정치판의 법칙은 군대스리가의 룰과 유사하군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8/04/09 09:56
8년전과 비교해보면 전국적으로 어떤 '위기 의식'이 다시 한번 크게 고조되고 있다는 느낌인데 이번 선거의 풍토는 지난 대선때보다 더욱 그것을 잘 이용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措大 at 2008/04/09 10:34
그래도 저 논문이 2000년에 소개되었다는게 조금 위안이 됩니다. 그럭저럭 요 몇 년간 '게임룰'에 대한 사법통제가 이뤄졌으니까요. (...인데 어째 요즘은 막 헌재도 못믿을거 같은 기분) 아직 턱없이 부족하고, 통제를 해놓으면 끊임없이 우회하고 또 우회하는 입법자들의 창의력은 따라가기 버겁습니다만.
Commented by ZBNIC at 2008/04/09 16:26
별로 관심을 두지않고 있다가 근래에 뜬 지역신문의 기사를 보고서 찾아본
국회의원에 뒤따라 붙는 각종 혜택을 뒤늦게 알고선
'고양이한테 생선 맡긴격 아냐?'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조정이 가능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른지요
Commented by 오토군 at 2008/04/09 17:05
…그러니까 이것이 바로 '사기도박단'인 겁니까? -_-?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08/04/09 20:40
저 분의 글을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뭐 아는게 있어야 까죠.

그런데 개인적으로 국제기구/외국인이 우리나라 법제도에 대해 비판할 때 항상 드는 생각은 좀 못 미덥다입니다.

최소한 우리나라 살면서 사회분위기를 파악함과 동시에 한국법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할텐데, 우리나라 말도 하고 우리나라 법도 어느정도 파악한 외국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싶거든요. 제프리존스씨 같은 분이 비판한다면 수긍을 하겠지만, 우리나라가 어디 붙었는지 알기나 할까 싶은 사람들의 말은 좀 못미덥습니다.

독일같은 경우, 우리나라가 걔들 것 열심히 베꼈고, 유학생이 워낙 많이 가서 우리나라 법제도에 대한 논문을 써대니까 덜하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저는 Croissant, Aurel이란 분에 대해 전혀 모르니, 저 분 글에 이런 소릴 할 수도 없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나저나 소넷님께선 공법연구도 보십니까? 법대(물론 학부과정) 다니는/나온 사람 중 대부분은 저 잡지 읽어 본 적 없고, 상당수는 저게 있는지도 모른다에 한표 던집니다. 물론 저도 읽어본 적 없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4/10 12:12
됴취네뷔/ 그렇죠.

marlowe/ 물론입니다.

sprinter/ 사실 국민은 확고히 대통령중심제를 지지하기 때문에, 저는 출발을 거기서부터 잡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은 내각제가 아무리 장점이 많다고 해도, 최고지도자를 직접 뽑는 권리를 포기할거냐고 물어보면 결코 응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耿君/ 하하하

Ya펭귄/ 정당도 급조되고 매번 개편되어 정치의 주체로 잘 동작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선거제도는 정당의 성격을 결정하는 주요요소이기 때문에 둘은 co-evolution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호반새/ 의회가 정치적 프로세스를 통해 선거제도를 결정하는 것은 민주정에서 당연한 것이긴 한데, 자신들의 단기적 이해관계를 철저하게 추구하느라 공익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통령 결선투표제는 지금처럼 투표율이 낮을 경우, 과반의 지지라는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신설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제 의견은 결선투표제는 "지배 정치 세력을 공고히 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필요하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점은 생각하시는 바와는 정반대일지도 모르겠군요.

PolarEast/ 국회가 선거법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데, 지금처럼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이번 한번 해먹는데" 최적화된 전략만 계속 세우는 건 피곤하다는 것이지요.

행인1/ "뜨내기" 고양이인 듯한.

paro1923/ 예. 늘 그렇지만 공학적 고려를 따라...

bearstone/ 사실 정당명부제 비례대표제를 만들어 민노당을 원내 3당으로 만들었던 전력을 보면 이게 단순히 진입장벽이 높아지고만 있는 거라고 보긴 힘듭니다. 제도를 설계한 사람들이 제도의 효과에 대해 심도깊게 생각해본 게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길 잃은 어린양/ 으하하, 그것도 그렇군요.

라피에사쥬/ 이슈만 놓고 보면 저는 노무현 심판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이더군요.

措大/ 대신 사법부의 결정이 정치적 적합성을 잘 반영하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ZBNIC/ 사실 누군가를 부려먹기 위해 권력이나 이권을 좀 나눠주는 건 필요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대신 그들도 받은 값은 해야 하는데...

오토군/ 사기도박단까지는 아니지만, 공복으로서 제가 바라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구들장군/ 일반론으로는 말씀하신 것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동아의 듣보잡국에 대해 정말 피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요. 다만 저 글은 한국인인 제가 생각할 때 한국의 선거제도가 확고한 게임의 규칙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표류하는 경향과 이유를 정확히 지적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소개한 것입니다. 오히려 저는 필자가 소개한 독일의 경향이 실제로 그렇고 중립적으로 잘 묘사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공법연구는 예전에 선거제도 관련 아티클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본 것이고 평소에 정기적으로 보는 잡지는 아닙니다. 저의 관심사는 주로 정치학 쪽에서 출발하는 거지 법학이 아니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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