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환율제를 설명할 때, 고등학교 수준 정도로 설명하면 보통 이렇게 하는 것 같다.
A, B, 두 나라의 환율이 현재 이상적인 지점에 위치해 있다면, 두 나라의 교역은 균형을 이루어 무역흑자나 적자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A국의 화폐가치가 그것보다 낮게 평가되어 있다면, B국이 볼 때 A의 물건값이 싸기 때문에 A→B로의 수출이 늘어나게 된다. 이제 B국은 늘어난 수입품 값을 치르기 위해 A국의 화폐를 추가로 필요로 하게 되고, 이러한 A국화폐 수요의 증가가 공급부족을 일으켜 A국 화폐의 가격을 끌어올리고 B국 화폐의 가격을 떨어뜨린다. 이런 과정을 통해 환율은 두 나라간의 교역이 균형을 이루게 하는 이상적인 지점을 향해 되돌아가게 되어 환율은 자동적으로 적정지점을 크게 벗어나지 않게 된다.
이글루스에서만도 변동환율제 지지자들이 이런 설명을 펴는 것을 몇 번이나 본 기억이 난다.
그럼 이 모델은 얼마나 현실에 부합할까?
다음 그림은 흔히 쓰는 국제경제학 교과서 중 하나에서 뽑아 온 것으로,
붉은 선은 환율, 중심축 근처의
푸른 선은 양국의 물가 비율이다.
달러/엔 환율과 미국/일본 물가의 월별 변동률, 1974-2004년 (클릭하면 커짐.)
이 그림을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듯이 단기에 환율은 물가보다 훨씬 크게 변해서
미친듯이 올랐다 미친듯이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한 10배쯤 변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결과는 우리의 모델과 전혀 맞지 않는다.
달러-마르크 환율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단기는 그렇다치고 그럼 장기는 어떨까?
엔/달러 환율과 일본/미국의 상대가격추이, 1980-2003년 (클릭하면 커짐.)
장기 역시 잘 맞지 않는다. 이 글 처음에 언급한 모델이 잘 맞는 것이었으면 이 그래프에서 환율(
붉은색)과 물가(
푸른색)는 나란히 내지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나란히 움직여야 마땅하다.
참고로 달러-마르크 환율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조건은 초장기(한 10년+)쯤 되어야 얼추맞는다. 참고로 경험적으로 보면 조정가능한 고정환율제(adjustable peg)였던 브레턴우즈 체제 하에서는 그 전이나 그 이후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 추이가 더 잘 맞는 편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저 모델이 엉터리라고 주장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맨 처음에 소개한 모델이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저 모델은 충분히 단순하면서도 탄탄한 기본 논리를 전달하기 때문에, 경제학자처럼 생각하는 법을 기초 훈련시킬 때 딱 좋고 그래서 저런 식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대부분의 다른 과학도 학습 과정에서 이런 단순하고 이상화된 모델을 이용한다.
문제는 단지 저 모델 하나만 덜렁 들고 변동환율제가
진짜 그 설명처럼 움직일거라고 주장하거나 믿는 건 엄청나게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위 모델은 암묵적으로 상품거래가 주이고 외환거래는 상품거래에 따르는
결재를 청산하기 위해 필요할 때만 이루어진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 말대로라면 국제거래는 직불카드로 물건사는 것과 흡사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만약 오늘날 이루어지는 국제거래가 그런 것이었다면, 우리는 환율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실제 국제거래에서 가장 큰 규모로 거래되는 것은 돈이지 상품이 아니며, 그 규모도
압도적으로 크다. 사실은 주객이 반대인 셈이다.
실제 세계에서의 경험은 변동환율제가 일물일가의 법칙이 지배하는 이상적인 환율로 안정되기 힘들다는 것을 강력히 지지한다. 누가 또라이처럼 일물일가의 법칙을 믿느냐고? 예를 들면 아서 래퍼가 있다.
사실 현실세계에서 위에서 말한 직불카드 거래에 가장 가까운 것은 변동환율제라기 보다는 청산협정(Clearing Agreement)이 아닐까?
그림 출처: Krugman, Paul., Obstfeld, Maurice.,
International Economics: Theory And Policy(7th Ed), Addison Wesley, 2005, p.357, p.380, and 6th ed. p.379, p.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