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경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간단히.
산해경(山海經)은 사기 대완열전에 처음 등장한다. 그 외 왕충의 『논형』, 조엽의 『오월춘추』 등에도 잠깐 언급되고, 한서 예문지에도 올라 있다. 즉 이 책은 적어도 기원전 1세기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후 후한 말에 소실되었다가 동진의 곽박이 복원(4세기 중반)해 오늘에 이른다.
이 책은 각 지역을 차례로 이동하면서 그곳의 기이한 동식물과 광물, 풍토에 대해 묘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까놓고 말해서 이 책에 대한 공통적인 평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황당하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余不敢言之, 반고는 放哉라고 평한 것이 이를 잘 반영한다.
전형적인 산해경의 기술 방식은 이렇다.
又南三百里 曰卢其之山 无草木 多沙石 沙水出焉 南流注于涔水 其中多鵹鹕 其状如鴛鴦而人足 其名自訆 見則其国多土功 (東次二經 9)
| 又南三百里 | 또 다시 남쪽으로 3백리를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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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曰卢其之山 | 卢其之山이란 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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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无草木 | 풀과 나무는 자라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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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多沙石 | 모래와 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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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沙水出焉 | 沙水(라는 강)가 흘러나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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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南流注于涔水 | 남쪽으로 흘러가 涔水(라는 강)로 들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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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其中 多鵹鹕 | 거기엔 鵹鹕(라는 동물)가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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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其状 如鴛鴦 而人足 | 그 생김새는 원앙새같으나 사람의 발이 달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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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其名自訆 (*) | 자기 이름을 자기가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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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見則 其国多土功 | 이것을 보게 되면 그 나라에 토목공사가 많아진다. |
(*) 산해경에는 其名自訆니 其名自咬, 其名自號같은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자기 이름을 스스로 외치는 것, 즉
멍멍이는 멍멍 하고 외치고
야옹이는 야옹 하고 외친다는 말이다. 산해경의 저자들은 동물의 이름은 이런 식으로 붙이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이처럼 황당무계하다는 생각이 대부분의 사람의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 오래된 책 치고는 연구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었는데 20세기 들어 중요한 발견이 이루어진다. 갑골문 연구를 하던 왕궈웨이(王國維)가 갑골문에만 나오고 정통 사서인 사기 은본기(殷本記)에는 나오지 않아 사람들이 모르고 있던 帝의 이름이 산해경에 실려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적어도 후대의 위작이나 쌩구라일 수는 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러나 뭐 그렇다고는 해도 내용이 황당무계한 것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해석이나 배경연구에는 많은 애를 먹고 있다. 이 책을 쓴 사람이 남방계인지 북방계인지, 어떤 사회계급이나 직종에 소속된 인물인지, 이 책에 묘사된 지역이 도대체 어디에 해당하는지, 등의 연구에 별 진척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 같다. (사마천의 언급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미 전한 시대부터 이런 책이 왜 만들어졌는지 이해를 못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 책을 읽어보면 이 책을 썼던 사람들은
스스로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며 사실이라고 생각한 것을 진지하게 적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산해경의 첫 부분에 해당하는 「五藏山經」에는 여러 동물이 나오는데 그 분류나 기술 패턴 등이 엄격하게 규칙적이다. 갑골문과의 연계도 그렇고, 이런 식의 지식은 붓가는 대로 지어내서는 나오기 힘든 만큼, 체계적으로 연구되거나 전승된 흔적처럼 보인다. 어찌되었든 이 시대는
개나 소나 글을 알고 책을 쓸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다만 이런 특수한 유형의 지식이나 전승을 보유하던 집단(예를 들면 학맥이나 교단, 길드 등)이 (아마도 전국시대 말에) 빠르게 소멸해버린 탓에, 후대 사람들은 보고도 멀뚱멀뚱 반응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 아닐까. 제자백가 중에 이런 책을 쓰던 집단이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