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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연구1. 빠른 기술진보는 기술도입을 늦춘다?
앞선 글 보수적 변화는 왜 우월한 진보전략인가에 달린 논평,
Commented by 야채 at 2008/03/03 17:38에 대한 의견.

이 코멘트는 몇 가지 논점을 다루고 있는데, 좀 생각해본 결과 그러한 생각을 끌어낸 핵심은 (IT산업처럼) 발전이 빠른 분야에서는 "단지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방향도 잘 모르지만" "일단 달려야 하는" 상황이 있다란 문장에 함축되어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즉 쫓겨서라도 변화를 빨리 수용해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내 답은 빠른 기술진보가 곧 빠른 기술도입을 촉진한다는 주장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많은 경우 선입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 점을 몇 가지 예시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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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이성에 대한 낙관적 견해보다는 현재에 대한 문제의식 쪽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현재의 상황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이들을 급진주의자라고 분류하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우리나라가 또다시 외환위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을 참을 수 없을 것이고 대개 "어떻게든 해야지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 심한 불만을 품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불만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더구나 극단적인 대안이나 폭력적인 수단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는 정치보다는 IT 업계 쪽에 잘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방향도 잘 모르지만" "일단 달려야 하는" 상황은 IT 업계에서는 그다지 드문 것이 아니지요.

저는 IT업계가 별로 특별한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IT업계의 기술 수용속도는 가전업계와 비슷한 정도에 불과합니다. 우선 간단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봅시다.

1960년대에 garbage collector가 이미 등장했지만(lisp), 실제로 GC가 업계에 받아들여진 것은 java의 대중화 이후입니다. 거의 30년이 걸린 것이죠. 인터넷도 마찬가지입니다. ARPANET이 시작된 것이 1969년이지만, 오늘날의 인터넷의 토대가 굳혀진 것은 웹과 그래픽 브라우저가 대중화된 1990년대 중반 이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한 30년쯤 걸린 셈입니다.

이런 것을 TV나 VCR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TV는 1928년 GE가 처음 개발했지만, 30년이 지난 196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각광받는 대중매체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VCR도 1956년 미국의 앰펙스라는 회사가 처음 개발했지만 30년이 지난 1980년대가 되어서야 가전 시장에 확산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과연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는 쪽입니다. 그것이 IT든 원자력, 철도, 자동차, 항공이든 한창 때는 다 빠른 발전을 보이는 시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즉 어떤 산업에나 상대적인 차이는 좀 있을지언정 기술 발전이 빠른 성장기와 느린 성숙기가 있는 만큼 IT가 특별한 종류의 산업이라고 볼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각 산업이 빠르게 발전할 때에는 백가쟁명식으로 기술이 튀어나오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이 빠른 기술도입으로 연결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하 발전, 항공, 조선, 철강, IT 등 다양한 산업의 사례를 들어 이 문제를 좀 더 깊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혁신은 대개 초기 단계에서 매우 불완전하며, 또 실제 그러하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수많은 <오류(bug)>들을 해결해야 한다. 중요한 기술개선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하고서도 당장 혁신을 수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특히 많은 자금을 동원해야 하는 경우나 관련된 장비의 수명이 길 경우에는 특히 어리석은 일이다. 슘페터적인 의미에서 혁신가는 <모방자>가 자신을 따라잡을 때까지 비정상적으로 높은 이윤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성급한 혁신가는 아직 성숙되지 않은 발명품에 투자함으로서 파산할 수 있다. 이러한 분명한 차이는 앞서 논의한 슘페터의 혁신개념, 즉 불연속성에 대한 강조와 새로운 제품이나 공정을 도입하는 데 있어서의 모든 문제는 이미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함의를 갖는 혁신개념상의 난점에서 비롯된다. 나아가 맨스필드(E. Mansfield)가 지적한 바대로 <새로운 종류의 장비가 발명될 경우, 그 장비를 최초로 판매하는 기업과 최초로 사용하는 기업은 모두 혁신가로 간주될 수 있다. 최초의 사용자는 최초의 공급자와 마찬가지로, 대개 상당한 위험을 감수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Rosenberg, Nathan, Inside the Black Box : Technology and Econom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3
(이근 외 역, 『인사이드 더 블랙박스: 기술혁신과 경제적 분석』, 아카넷, 2001, pp.162-163)

혁신은 만들어내는 것도 큰 리스크를 지는 일이지만, 혁신을 채택하는 소비자가 되는 것도 만만찮은 리스크입니다. 돈내고 엉성한 신제품을 받아 베타테스터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언제나 상존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중요한 문제점이 발견되는데는 대개 시간이 걸립니다.

새로운 장비의 사용과 관련된 수많은 생산의 문제는 오류에 포함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항공기 금속의 피로(metal fatigue)처럼, 이러한 문제는 광범위한 사용이 이루어져야 명확하게 나타난다. 윌리엄 휴즈(William Hughes)는 이러한 점을 발전(發電)에 있어서의 규모 경계(scale frontier)에 대한 연구에서 잘 지적하였다. <(발전소의) 규모 경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들이 주어졌다고 해도, 비용 때문에 경제적인 확장 속도에는 매우 엄격한 상한선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억지로 확장속도를 높이려는 것은 개발비용을 크게 증가시키는 것이다. 규모 경계를 더욱 밖으로 확장하는 데 필요한 경험은 시간이 지나야 얻을 수 있는 것이지, 단순히 유사한 신형 발전소의 수를 늘린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발전소와 관련된 가장 큰 불확실성은 발전소들이 수년 동안 작동되고 나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여러 가지 문제로부터 기인한다. 규모, 설계 또는 증기의 조건(steam condition) 등에 대한 주요한 혁신이 일어난 후 2-3년 동안 산업 전체에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설비의 최적 개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대개의 경우 그 개수는 아마도 두 개에서 여섯 개 정도이다>(William Hughes, "Scale Frontiers in Electric Power" in William Capron [ed.], Technological Change in Regulated Industries[The Brookings Institution, Washington D.C., 1971], 52쪽). 휴즈의 논문이 갖는 또 다른 중요한 점은 기술진보와 규모의 경제 사이에 종종 존재하게 되는 밀접한 관계를 강하게 상기시켰다는 것이다. <잠재적인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 공익산업에서 특히 중요한 기술진보의 유형이다>(같은 책, 45쪽)

Rosenberg, 같은 책, p.175


그렇기 때문에 뒤쳐지는 게 오히려 유리한 경우가 있기 마련입니다.

민간용 제트항공기의 도입과 관련된 문제를 생각해 보자. 미국이 대형 제트항공기를 개발하기 2년 전에 영국은 코메트(Comet) I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결국 미국이 승리하였다. 돌이켜보면 미국이 뒤처진 것은 비용으로서 작용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유익하였고, 보잉(Boeing)과 더글러스(Douglas)가 드 하빌랜드(de Havilland)보다 더 적절한 개발시점을 선택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개발시점이 늦어짐으로서, 코메트 IV가 100명의 승객을 싣고 시속 480마일로 비행할 수 있었을 때, 시속 550마일의 속도로 180명의 승객을 실을 수 있는 항공기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보다 최신의 그리고 보다 강력한 엔진을 설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점으로서 이로 인해 사업상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미국의 기업들은 코메트가 금속의 피로로 인한 사고를 경험한 후 코메트를 안전하게 만드는 4년 동안 생산을 미룬 것으로부터도 이득을 얻었다.>

Rosenberg, 같은 책, p.164


사실 많은 경우 일부러 기다리기도 합니다.

전쟁과 전쟁 사이에 조선기술이 급속하지만 불확실한 방식으로 변화하여서, 매우 경쟁이 치열했던 조선업체들은 낡은 고비용 엔진을 새로운 저비용 엔진으로 교체하는 것을 뒤로 미루었다. 1920년대 중반에 왕복증기기관(reciprocating steam-engine), 변속증기터빈(geared steam turbine) 및 디젤 모터의 세 가지 추진 방식 모두에서 급속한 기술진보가 이루어졌다. 세부적인 변종까지 고려하면, 거의 백 가지에 이르는 조합이 가능하였다. 몇몇 종류의 선박의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몇 가지 조합 중에서 선택의 여지가 매우 적어서, 선주들은 좀 더 많은 경험과 이후의 발명을 통해 어떤 종류의 기술이 향후 10년 동안 유지될 것인가가 분명해질 때까지 주문을 미루게 되었다. 경제학적인 용어로 선주의 입장을 말하자면, 비록 새로운 엔진의 총비용이 이미 낡은 엔진의 운영비용 이하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1923년형 엔진으로부터 나오는 이윤은 1924년형 엔진의 등장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그 이유는 1924년형 엔진의 운영비용이 1923년형 엔진의 그것보다 적어서 구매를 늦추어 1924년형 엔진을 구입한 경쟁자가 운임을 더 인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두 가지 종류의 1923년형 엔진 중 어떤 것이 더 낮은 비용을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도 있다. 선주 A는 엔진 X를 장착하고 선주 B는 엔진 Y를 장착하였는데, 1923년에는 두 엔진이 동일한 비용이 들었으나, 일년이 지나고 보니 엔진 Y가 엔진 X에 비해 훨씬 더 적은 비용이 들었다고 해보자. 이 경우 선주 A는 새로운 엔진을 장착하지 않고 1924년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23)

Rosenberg, 같은 책, p.167


그러나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으면 기다린다고 해서 꼭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훨씬 최근의 사례로는 월터 에덤스(Walter Adams)와 조엘 딜람(Joel Dirlam)의 미국철강주식회사(US Steel Corporation; USSC)에 대한 연구를 들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USSC가 산화처리 강철제조공정(Oxygen steel-making process)의 도입을 늦춘 이유로 당시에 기술개선이 임박했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USSC는 <몇몇 종류의 산화처리 강철제조공정은 틀림없이 미국 철강업의 중요한 특징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USSC는 새로운 혁신을 언제 도입할 것인지, 또는 스스로 이 새로운 혁신의 도입에 나설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 후에 『포춘(fortune)』지는 여전히 USSC가 <경쟁하는 대안들 중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난제, 예를 들면 비용절감을 위해 거액의 자금을 ‘지금’(1960년) 퍼부어 회사가 ‘현재의’ 기술에 전념하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몇 년 후 이용 가능하게 될 수 있는 새롭고 아마도 보다 우월한 기술을 이용하기 위하여 시간을 벌 것인지 하는 난제>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하였다.(24)

Rosenberg, 같은 책, p.168

이런 경우, 이번 한번 지나쳐볼 것인지, 가볍게 소규모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경험을 쌓으면서 가능성을 타진할 것인지, 이번 변화에 배팅하고 따라갈 것인지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선택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이 사업상 위험으로 나타나는 것에 불과합니다.


자 이제 우리가 처음에 문제의 발단으로 삼았던 IT 산업으로 돌아가 봅시다.

속도가 빠른 모뎀이 천천히 도입되는 것은 전에도 있던 현상이다. 모뎀 속도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런 현상은 계속 되풀이되어 왔다.
초당 56킬로비트의 속도로 정보를 내려 받을 수 있는 56K모뎀은 1996년 가을 출시되어, 당시 상황에서 인터넷 접속 속도를 두 배로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이 신형 모뎀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에서 금방 시장에 도입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첫째, 더 빠른 모뎀에 대한 수요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하고 있었다. 둘째, 56K모뎀의 가격은 이전의 느려터진 모뎀에 비해 그리 높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더 빠른 모뎀이 PC 사용자에게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는 이미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하지만 예측과 달리 출시 1년이 지났을 때까지도 56K모뎀의 시장 침투율은 20퍼센트에 불과했다. 1998년 1월에 실시된 조사를 보아도 고속으로 분류 가능한 모뎀이 차지하는 비중은 채 50퍼센트가 되지 않았다.
이러한 확산 속도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신제품 도입에 늘 나타나는 지체 현상을 감안한다 해도 말이다. 이러한 지체 현상은 오래 지속되었다. 21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도 가정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컴퓨터는 여전히 56K모뎀의 절반에 불과한 속도로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빚어진 것일까?
그 해답은 모뎀 시장의 상호 연결 상태에서 찾아야 한다. 56K모뎀 도입에 관련된 세 요소, 즉 소비자, 상호적합성, 그리고 경쟁에 대해 살펴보자.
모뎀의 주된 고객은 휴렛팩커드, 델(Dell), IBM 같은 PC 생산업체이다. 대부분의 모뎀은 PC 생산 과정에서 부착된다. 결국 개별 소비자는 PC 생산업체가 이미 달아둔 모뎀을 컴퓨터와 함께 구입하는 셈이 된다. 물론 직접 개별 부품을 구입해 조립하는 사용자도 있지만, 이는 전체 소비자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PC의 56K모뎀은 네트워크의 사령부에 56K모뎀이 함께 설치된 경우에만 초당 56킬로비트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터넷 접속 서비스 업체(ISP)의 서버가 56K모뎀과 같은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연결된 두 모뎀의 처리 수준이 서로 다르다면 접속 속도는 낡고 느린 모뎀 수준으로 떨어져버린다.
56K모뎀 시장에는 처음부터 치열하게 경쟁하는 두 제품이 존재했다. 하나는 US로보틱스(US Robotics)의 X2였고 다른 하나는 록웰반도체(Rockwell Semiconductor)의 K56Flex였다. 두 제품 모두 시장 장악을 꿈꾸었다.
56K모뎀 시장은 고도로 상호 연결된 시장의 좋은 예였다. 상호 연결된 시장에서 혁신의 광범위한 도입과 관련된 참여자들의 결정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상호 의존한다. 더 나아가 새로운 모뎀으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선택은 다양한 집단에 흩어져 있다. 각각의 집단마다 나름의 이해관계와 제약이 존재한다.
56K모뎀의 경우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집단은 PC 제조업체, 사용자, 인터넷 접속 서비스 업체, 서로 경쟁하는 두 모뎀 진영, 그리고 PC 판매업자들이었다. 두 종류의 56K모뎀이 경쟁을 벌인 덕분에 각 참여자에게는 두 가지 선택 가능성이 있었다. PC 제조업체는 PC 사용자들이 빠른 모뎀을 원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어느 한 회사의 56K모뎀을 선택할 것이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모뎀이 고속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경우에만 신형 모뎀을 원할 터였다. 사용자가 56K모뎀의 속도를 제대로 누릴 것인지의 여부는 인터넷 접속 서비스 업체가 어떤 표준을 선호하는지에 달려 있었다. 인터넷 접속 서비스 업체가 입장에서는 반대로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표준을 선택해야 했다. 다시 말해 더 많은 PC 제조 기업과 더 많은 PC 판매자들이 장착하는 모뎀을 따라가는 것이다. 결국 시장은 상호 연결된 결정이 뒤엉켜 돌아가는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모뎀 생산자들은 자기 표준을 우세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1997년 내내 모뎀 시장은 자기 쪽으로 판세를 굳히려는 US 로보틱스와 록웰의 치열한 경쟁을 지켜보았다. 양측 모두 굴지의 PC 제조업체 및 인터넷 접속 서비스 업체와 제휴했다고 발표했다. 관련 참여자들에게 누가 승자인가를 알려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고 결국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기 위해 내놓은 공개 발표였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그 어느 쪽도 확실한 승자가 되지 못했다. 따라서 의사결정권자들은 결정을 미루고 결과를 기다림으로써 균형 상태가 유지되었고, 진작 대체되었어야 할 낡은 기술이 계속 사용되었다. 소비자들의 경험도 현상유지 상태에 머물렀다. 한 차원 높은 가능성이 이미 존재했지만 접속 속도는 초당 56킬로비트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남았다(오늘날까지도 이런 상태인 소비자가 많다). 기술은 진보에 대한 기대를 낳았지만 이는 결국 현실화되지 못했다.(*)
결국 56K모뎀은 제대로 팔려보지도 못한 채 폐품이 되어버렸다. 50배나 더 빠른 속도를 약속하는 새로운 디지털 모뎀 기술인 디지털 가입자 회선(DSL: digital subscriber loop)과 케이블 모뎀 때문이었다. 모뎀 시장이 정지 상태에 놓인 것은 이 신기술 때문이기도 했다. 참여자들은 또 다른 혁신이 곧 다가온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빠른 모뎀의 느린 도입은 상호연결성이 낳는 비효율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 1998년 2월, 마침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56K모뎀의 공동 표준을 발표하여 경쟁을 공식적으로 종결시켰다. 다소 뒤늦은 감은 있지만 ITU가 권위 있는 조정자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드디어 선택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ITU 발표 이후, US로보틱스(Robotics)를 합병한 3Com과 록웰 반도체의 주가는 상승했다.
(인용자 주: 편의상 번역자의 오류를 일부 교정하였다.)

Chakravorti, Bhaskar., The Slow Pace of Fast Change: Bringing Innovations to Market in a Connected World,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2003
(이상원 역, 『혁신의 느린 걸음』, 푸른숲, 2005, pp.62-66)

기술은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는데 공급자들은 표준을 거머쥐기 위해 물러서지 않고 싸우고, 소비자는 대세가 정해질 때까지 버티며 기다리면서 교착상태가 발생하는 이런 현상은 VCR, CD, DVD, 차세대DVD 등 오만가지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일화적인 예가 아니고, 복잡한 수요공급의 상호연계를 가진 산업에서는 끊임없이 벌어지는 전형적인 상황입니다. 게다가 앞서 거론했던 것처럼 소비자들이 차차세대 기술이 곧 실용화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차세대의 기술은 그대로 사장될 위험조차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일견 의외로 보이는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이상의 논의로부터 몇몇 종요한 (그리고 피상적으로는 모순적인) 함의가 도출될 수 있다. 특히 기술변화율과 기술혁신(채택)율 사이의 관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직관적인 예상과 정반대일 수 있다. 급속한 기술 변화가 잠재적 구매자들로 하여금 추론에 의해 미래의 기술진보가 지속적이고 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게 한다면, 이 급속한 기술변화는 표면적으로는 채택과 확산의 속도를 늦추거나 혹은 <가장 발달된> 기술을 채택하고 있지 않은 기계의 도입으로 귀결될 수 있다. 지금 구매한다고 하는 결정이 결과적으로 곧 구식이 될 기술을 선택하는 결정이 될 수도 있다. 역으로 기술변화율이 낮고 제품이 안정화되면 잠재적 구매자는 생산물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안에 보다 나은 생산물로 대체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생기기 때문에, 채택의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따라서 기술변화가 급속할 때보다는 기술변화율이 낮고, 그 속도가 줄어갈 때, <현재 이용 가능한 최상의(best available)> 방식의 채택을 미루는 시차는 짧아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주장을 이용하여 <최상의 실행방식(best practice)> 기술의 영역에서 운영되는 기업의 실패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한 실패는 미래의 기술개선의 진행속도에 대한 기업가의 예상이 빗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Rosenberg, 같은 책, pp.171-172


현재 가용한 최고의(best available) 기술을 이용할 때 직면하는 이러한 위험에 대해서는 마르크스 영감이 진작에 경고한 바 있는데 이번 글의 결론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새로운 발명을 도입한 기업의 운영비는 이 기업의 폐허 위에서 뒤이어 나타나는 기업의 운영비에 비하면 훨씬 많다. 이리하여 최초의 혁신적인 기업가들은 대체로 파산하고, 건물, 기계 등을 값싸게 매수하는 나중의 기업가들이 비로소 번창하게 된다.

- Marx, Karl (김수행 역), 『자본론III(상)』, 비봉출판사, 서울, 1990, 119-120쪽 -







부록. 나머지 부차적인 논점들에 대한 간단한 답변들


1.

기본적으로 sonnet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만,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가정이 항상 성립하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거대한 돌연변이를 '강요하는' 상황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겠습니까. 인류 사회 전체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특정 부분(분야건 지역이건 간에)이 항상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야기한 것은 작은 변화를 이용하는 것이 유리한 경향이 있다는 거지, 그게 성립하는 법칙이라는 정도로 강한 주장은 아닙니다.

특수한 상황, 즉 제2차세계대전 같은 총력전 상황에서 사실상 무제한의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아주 거대한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단시간 내에 원자폭탄 같은 일상적인 상황에서 개발되기 힘든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례는 좋은 예외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군사적 필요성과 그에 수반되는 엄청난 자본투자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원자력 산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끔찍한 에너지 부족사태와 같은 환경적 요소가 1941년에 미국 정부로 하여금 막대한 자원과 노동력 그리고 자본을 투자하여 물리학자들의 연쇄반응 실험을 원자폭탄과 원자로 제작으로 바꾸도록 강제했다고 상상하기는 힘들다. 원자력 혁명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전쟁 후 원자력이 강력한 힘을 얻기 전까지는 원자물리학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했다. 원자력 에너지 연구에 대한 지지자들과 후원자들이 있었지만, 불과 4년 동안 원자력 에너지 연구에 민간 산업체나 연방 정부가 20억 달러를 투자하도록 강요하지는 않았다.
전쟁과 정부자금이 원자력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는 했지만 맨해튼 프로젝트 종사자들도 그들의 목표가 달성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에 차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만약 평화시였다면 한정된 자본과 인원, 그리고 종종 연구자들을 낙담시킨 기술적 어려움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Basalla, George., The Evolution of Technolog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
(김동광 역, 『기술의 진화』, 까치, 1996, pp.250-251)



2.

이 부분이 산업혁명의 '혁명적 변화'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차이가 생기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업혁명의 주요한 원동력 중 하나인 증기기관의 발전과정은 점진적 발전의 총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점진적 발전의 총합'이 한 분야에서 쌓아올려지고 나면, 다른 산업들은 높은 효율의 증기기관이라는, '거대한 변화'에 갑작스럽게 직면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변화가 올바른 방향인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어쨌든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경쟁자들이 이 엄청난 가능성을 낚아채는 사이에 어물어물하다가는 순식간에 폐기처분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산업혁명이 '혁명'으로 불리는 것 역시 증기기관이 나타난 과정 자체가 '혁명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점진적인 변화 끝에 완성되어 나온 증기기관 등이 산업 전체에 준 충격과 그에 따른 급격한 변화 때문일 것이며, 그러한 급격한 변화들은 그 변화를 선도한 몇몇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강요된'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물론 '강요'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꼭 그 변화를 싫어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좋건 싫건 저항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앞선 글의 본문에서 이미 다룬 내용이지만, 초기의 조잡한 증기기관이 다른 산업과 단절된 상태에서 점진적인 개량을 거친 후 높은 수준에 이르러서야 다른 산업에 충격을 준 것이 아닙니다. 조잡한 증기기관일 때부터 다른 산업들과 관련을 맺고 작은 변화를 서로 피드백 하면서 발전해 온 것이지요.

산업혁명의 한 가지 중요한 본질은 성공적인 기술이전의 가능성과도 상당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즉 야금술이나 동력생산 그리고 수송기관 등 독립적인 개별 혁신들이 아주 의미 있는 방법으로 상호관련을 맺으면서 서로를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종종 하나의 혁신은 다른 종류의 혁신이 없으면 그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었거나 아니면 새로운 혁신을 도입하면 다른 종류의 혁신이 보다 효율적으로 기능을 하게 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서 효율이 높은 증기엔진을 만들기 위해 보다 개량된 야금술이 반드시 필요했다. 역으로, 풍로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는 데 증기엔진이 활용됐다.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으면 보다 효율적인 연소가 가능하므로 연료소모량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서 철의 가격도 하락했다. 그러므로 저렴한 금속가격은 저렴한 동력을 낳고 저렴한 동력은 더욱 저렴한 금속을 낳았다. 마찬가지로, 저렴한 철이야말로 철도건설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런데, 철도가 일단 건설되자 석탄과 철광석의 수송비용이 상당히 절감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철도는 철의 생산비용을 인하시켰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렴한 철이 저렴한 철도를 가능하게 하고, 이는 수송비용을 더욱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것이 다시 철의 생산비용을 낮추게 되었다. 따라서 당시의 새로운 산업기술과 관련된 엄청난 생산성 증대는 바로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혁신들이 종종 상호관련을 맺으면서 서로를 강화해 주었다는 데 그 비밀의 일단(一端)이 있다.

Rosenberg, 같은 책, pp.366-367)



3.

비슷한 성격의 구체적인 사회적 상황이라면, 아편전쟁 이후의 동아시아가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체제가 오랜 세월 동안 잘 작동해 왔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면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잘 작동할 것이라고 가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요. 서양을 얼마나, 어떻게 모방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게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충분히 경험을 쌓은 선도자를 추격하는 입장에서 모방이 가능한 경우의 변화는 선도자 입장에서 신기술을 도입하는 것과는 불확실성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위험의 정도가 다른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한 논의는 제한된 시공간에서의 진보주의 : 추격자의 입장에서 (sprinter) 가 재미있는 읽을거리일 듯 합니다. 이 경우에도 처음에 현미경 초점의 비유를 사용하면서 다루었던 스케일 문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만.
by sonnet | 2008/03/10 23:15 | 과학기술 | 트랙백 | 핑백(1)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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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03/27 09:53

... 평소 기술론(내지는 기술발전론)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짐작하시리라고 생각한다. 내 평소 생각은 예를 들어 보수적 변화는 왜 우월한 진보전략인가, 사례연구1. 빠른 기술진보는 기술도입을 늦춘다? 등의 글에 잘 드러나 있다. 다음 책은 출간 직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인데 마침 이글루스 렛츠리뷰 프로그램을 통해 읽어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 more

Commented by 고어핀드 at 2008/03/10 23:25
음? 마지막의 칼 마르크스의 말은 정말 정곡을 찌르고 있는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두 번째 매입자" 들 아니겠습니까. 닷컴 버블이 터지고 난 뒤 헐값에 인도 - 미국간 광통신 케이블을 구입하여 미국의 IT 산업을 인도로 아웃소싱하는 방법을 찾아낸 사람들처럼 말이죠.

항상 느끼는 건데, 칼 마르크스 이 양반은 정말 천기를 누설하고 다닌 것 같아요. 전 뼛속까지 자본주의자이지만 말입니다.
Commented by 됴취네뷔 at 2008/03/10 23:40
현재 가용한 최고의 기술이 의외의 빠른접목속도와 강력한효과를 보는건 전쟁같은 상황에서 가끔 일어나는 거에 한정되어있나... 라는 식으로 코멘을 쓸려다가

부록을 보고 깜짝
Commented by PolarEast at 2008/03/10 23:41
포즈너의 기술격차 이론을 따르자면, 2인자 '기업'이 돈을 가장 많이 벌고, 1인자 '기업'은 계속 갈아치울수 있겠지만, 시장을 선도하는 '국가'는 결국 항상 1인자죠. 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뒤의 후발국가가 항상 돈을 버는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의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다면, 개인적으로는 보몰, 윌리그의 경합시장 이론을 인용해도 무난할거 같습니다. 선도기업이 시장을 만들면, 후발주자들이 이윤을 약탈하는 그런 모델말입니다.
Commented by nishi at 2008/03/10 23:54
전혀 딴 소리를 하자면.. F1 경기인가 그런 대에서도 선두에 서는 앞차를 결승점을
조금 남겨둘 때까지 추월하지 않고 바짝 뒤쫒기만 하는 전법도 있다죠. 얼마 안
남았다 싶을 때 남겨둔 여력으로 추월한다는...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3/11 00:04
그러고 보니, 게임업계 쪽도 그렇고 선두주자 노릇하다 피박쓰는 건
자본주의 하에서 의외로 자주 보는 현상 맞군요.

니시 님// 딱 그겁니다. '슬립 스트림 현상'이라던가,
앞차가 맞바람을 다 맞아주고 뒷차는 뒤에서 그걸 피할 수 있다던가요...
저기에서 맞바람이 바로 '리스크' 그 자체이니...
Commented by 됴취네뷔 at 2008/03/11 00:07
PolarEast / 그건 국가가 규모가 있는 복합체이기때문에 가능한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의 경우도 현최신기술도입에 후발업체보다 앞서는것에대한 우위를점하는데사용한 역량이 기전전체의 역량에 얼마되지도않을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가진다면 2인자가 소량의 상대이득을 본들 1인자기업이 절대이들을 크게 챙겨 2인자기업을 더욱 짓누르려 할수 있다고 봅니다.
그게 요즘 잘나가는 다국적기업들의 각분야 생존법 같은데 말이죠

Commented by 됴취네뷔 at 2008/03/11 00:09
1인자기업이 추월당하지않는경우에는 2인자기업이 한심하거나 1인자기업이 치사하기 때문일듯
2인자기업시점에서는 자신들의 역량을 훨씬뛰어넘는 올인성 투자를 1인자기업입장에서 큰부담없이 할수 있는 경우라던가.
Commented by あさぎり at 2008/03/11 00:13
역시 매몰비용의 힘은 무섭군요.
Commented by 아이우에오 at 2008/03/11 00:23
경영학쪽 이슈에서는 1인자의 전술과 2인자의 전술은 큰 차이를 보이게 되죠. 선발주자라고 무조건 리스크를 뒤집어 쓰는 것도 아니고 후발주자라고 막대한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다 일장일단이 있는 것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윤을 남기느냐는 이슈가 남아있을 뿐이죠.

물론 과거부터 후발주자가 유리한 방식의 산업이 많았습니다. 특히 쉽게 후발주자가 모방할 수 있고 기술적 격차가 크지 않은 분야에서는 더 많이 일어났죠.

하지만 M. Poter가 제기했듯이 진입장벽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죠 - 규모의 경제,막대한 소요자본, 제품의 차별화, 막대한 교체비용, 견고한 판매망, 기존업체의 저렴한 제조비용, 정부의 규제 등등등... 1인자는 그러한 진입장벽을 이용해서 자신의 산업을 보호하는 전략을 취할 수 있고 그렇기에 무조건 2인자가 유리하진 않습니다. 특히 판매망과 교체비용을 이용한 전략을 통해서 2인자를 고사시키는 전법은 고전적으로 효과를 입증해왔을 뿐만 아니라 강력하죠. 코카콜라의 마케팅 전법이라던가 삼성전자의 지연투자 전법같은것들 말입니다.

특히 삼전의 지연투자전법의 경우 위에서 말한 보수적 결정론을 뒷받침하는 전술이기도 합니다. 기술은 이미 훨씬 전에 확보되어 있더라도 기술적 우위만을 유지한채 후발주자들이 따라오도록 만들 뿐. 실제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후발주자들이 이익을 보기시작한 1~3년 후가 되어서야 자본과 기술을 엄청나게 투입해서 상대를 말려죽여버리는 전술로 엄청짭짤하게 재미를 봤죠. 더 중요한 점은 최첨단의 기술은 아직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시장지배자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바로바로 적용시킨다는 것은 환상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점을 포기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이죠.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8/03/11 00:35
잘 읽었습니다. 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은 그 기술이 미치는 사회적 파동을 보고 감지 하니 급격한 변화로 느끼지만 업계의 사람들한텐 전혀 그렇지 않은거로군요
Commented by 야채 at 2008/03/11 04:32
sonnet님 글을 읽고 제가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간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첫 번째는 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것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나와도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기존의 기술이 계속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시장 전체가 갑자기 새로운 기술 쪽으로 옮겨가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그 점을 염두에 둔 것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어느 순간'이라는 것이 바로 '새로운 기술이 이제부터 대세가 된다는 점이 확실해졌을 때'라는 것을 간과한 듯 합니다. 즉 외견상 급격한 변화라고 해도 실상은 보수적 전략의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다소 개인적인 것입니다. 트랙백된 글에서 언급된 것처럼, 엔지니어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일단 대응해야 합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적어도 IT 업계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확실하게 우세해진 것을 확인한 후'에 그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기로 결정한 경우, 필요한 엔지니어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미 준비된 상태가 아니면 심각하게 곤란한 것이지요. 하지만 역시 이것은 개인적인 입장에 편향된 관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답변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3/11 09:07
1등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군요.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08/03/11 10:12
아아, 컴퓨터 구입 경험을 생각해보면 너무나 와닫는군요.

돈 팍팍 써서 최신 기종을 샀는데, 서너 달 후엔 보급형 모델이 되어버렸다? 우아아앙? ㅠ.ㅠ
Commented by marlowe at 2008/03/11 14:36
결국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Commented by vvin85 at 2008/03/11 16:21
제가 노트북 구입을 1년 가까이 미루기만 하는 이유군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8/03/11 17:20
가용 가능한 최고의 군사기혁신이 3제국을 살릴 것이라 믿은 사람들은 저승에서 미국과 소련이 후퇴익 제트기를 날리면서 힘을 겨루는 꼴을 보게 되었지요;;(그 과정에서 가시적으로 눈에 띄는 기술영역은 빠르게 이전되었지만 한편으로 다소 눈에 띄지 않고 도입시 이를 운용해야할 일선이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은 매우 느릿느릿 전달되었다는 점도 재밌습니다.)
Commented by 액시움 at 2008/03/13 14:17
익스플로러7이 나왔을 때 바로 쓰지 않고 아직껏 6를 사용하는 저로서는 꽤나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겔겔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3/13 17:22
고어핀드/ 마르크스 영감이 보통내기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한 세기 넘게 생명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죠.
특히 현재 기준으로 보면 여러 분과학문에 걸친 거대 학문을 했기 때문에, 특히 학제간 범위에 걸치는 주제에 대해 그 통찰력이 돋보이는 부분이 많은 듯 합니다. 20세기의 주요 분과학문들이 각자 자기 수비범위에 집중하는 동안 각 분과학문의 접점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한 주제들이 충분히 연구되지 못한 채 잠들어 있었던 듯 싶습니다.

됴취네뷔/ 하하, 딱 그런 거죠.

PolarEast/ 사실 국가는 기업과는 성격이 많이 달라서 단순하게 비교하는 건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예를 들어 국가를 매각하거나 청산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도 되고, 기술에서 앞서는 국가가 전쟁에서 이기냐를 생각해봐도 마찬가지일 듯.
덧붙여 말하면 저는 contestable market에 대해선 극히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스굽타와 스티글리츠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nishi/ 사실 몇 가지 유력한 '2등 전략'이란 게 있잖습니까.

paro1923/ 게임기도 소비자 입장에서 위에 예시한 것 같은 선택은 많은 것 같습니다.
1) 신제품 출시가 임박하거나, 대규모 가격인하가 예정되어 있을 때
2) 신제품 출시는 되나 관련 소프트가 충분치 않을 때
등은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가 아닐까요?

됴취네뷔/ 사실 단순하게 이야기하긴 힘든 문제입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기술선도기업이 꼭 돈 많은 1등 공룡기업이 아니란 것입니다. 많은 기술선도기업은 자신이 가진 신기술이 자기 회사의 성공을 가져다 줄 황금열쇠라고 믿고 주류시장을 넘보면서 얼리어댑터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고 있는 소기업이곤 합니다.

あさぎり/ 매몰비용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느냐에 따라 기존기업의 장점으로도 단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데, 좀 더 세밀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긴 합니다.

아이우에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전반적인 논지에 공감합니다. 개별 사안으로 내려가면 여러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승리를 보장하는 규칙 같은 것은 없지요. 그야말로 상대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해서 이길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기술의 최적도입시기가 언제인가 하는 문제는 사실 정답을 말하긴 힘들지만, 적어도 무조건 빠른게 최선이라는 가정은 맞을 때보다 틀릴 때가 더 많다고 주장해도 별 무리없다고 생각합니다.

三天포/ 사실 업계 사람들도 변화에 민감한 사람부터 둔감한 사람들까지 골고루 있기는 업계 내부나 외부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야채/ 사실 말씀하시는 IT업계는 제가 아는 IT업계와 상당히 다릅니다. 제가 경험해본 IT업계에서는 이번 프로젝트에 새 기술을 도입하기를 갈망하는 얼리어댑터 성향의 젊은 엔지니어 대 (자신이 잘 모르는) 새 기술에 의혹을 품고 있는 보수적인 관리자 간의 갈등이 대부분이었고 그 반대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행인1/ 물론입니다. 이걸 또 꼭 나쁘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겠지만 말입니다.

하이버니안/ 예. 정확한 예시입니다. 사실 현실 속에서 우리 모두 그런 식으로 행동하고 있죠.
신제품이 곧 나오거나 대규모 가격인하가 임박했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으면 누가 지금 쇼핑을 하겠습니까? 열받게시리.

marlowe/ 사실 선구자도 잘만 하면 돈 벌 기회는 있습니다. 그러나 각다귀처럼 몰려드는 카피전략, 2등전략 추구자들과 싸워 이기려면 비상한 재능이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다룬 책으로는 Geoffrey Moore의 "Crossing the Chasm"이 무척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vvin85/ 사실 또 무한정 미룰 수도 없는 게 이 게임의 어려운 점이죠.

라피에사쥬/ 사실 어떤 종류의 지식은 다른 종류의 지식보다 더 전달이 어렵습니다. 이런 매뉴얼화되기 힘든 지식, 노우하우 같은 것을 암묵지라고 부르고, 이것이 지식의 중요한 요소라는 건 다들 인정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암묵지를 잘 다루느냐인데,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합니다.

액시움/ 예 그런 것이죠. 저도 7로 넘어오기 전에 한동안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이전 결정을 했었더랬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3/13 17:41
all/ 이 글을 읽으신 분들 중에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가정을 염두에 두시는 분이 적지 않게 계신 것 같습니다.

1) 가장 앞선 기술을 채택하는 선구자 기업= (매출기준)업계 1위
2) 업계 1위 = 가장 큰 규모의 기업

하지만 저는 본문에서 그런 가정을 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꼭 그래야 할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1)은 사실 어느 정도 자명한 일입니다.
마차회사가 자동차 업계의 선도자라거나, 타자기업체가 워드프로세서의 강자로 떠오르는 일이 일반적이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겠지요. 제록스나 애플처럼 대기업에서 자기 아이디어를 채용해 주지 않아서 자체사업에 뛰어든 사례도 있으며, 많은 기술선도기업은 자신이 가진 신기술이 자기 회사의 성공을 가져다 줄 황금열쇠라고 믿고 주류시장을 넘보면서 얼리어댑터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고 있는 소기업이곤 합니다.

2)의 사례로는 PC시장을 둔 애플과 IBM의 경쟁이 대표적일 듯 합니다.
애플이 PC시장의 선도기업일 때 이 시장을 뺏기 위해 IBM이 새롭게 뛰어들어 경쟁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IBM은 애플보다 훨씬 큰 기업이었죠. 이미 공룡기업이 업계 1위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상황도 종종 있겠지만, 그게 꼭 그래야만 할 이유는 없습니다.
Commented by netics at 2008/07/30 19:57
실려있는 구체적 사례중 일부는 "일단은 무조건 달려야 하는 상황" 을 설명하는데에 잘못사용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술은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는데 공급자들은 표준을 거머쥐기 위해 물러서지 않고 싸우고, 소비자는 대세가 정해질 때까지 버티며 기다리면서 교착상태가 발생하는 이런 현상은 VCR, CD, DVD, 차세대DVD 등 오만가지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위 부분에서 언급된 상황을 소비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경우, 분명 느긋하게 대세가 판가름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합리적 선택입니다만,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차세대 DVD 를 예로 들면 그 방면에서 성공적으로 한몫 잡기 위해서는 HD-DVD 든 Blueray 든 한쪽에 걸었어야 하지 않않을까요?

알고 계시는 사례중에 현재 가장 유망해 보이는 기술에 안주하며 대규모 투자를 피하다가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사례가 있지는 않을지 궁금합니다.

"새로운 발명을 도입한 기업의 운영비는 이 기업의 폐허 위에서 뒤이어 나타나는 기업의 운영비에 비하면 훨씬 많다. 이리하여 최초의 혁신적인 기업가들은 대체로 파산하고, 건물, 기계 등을 값싸게 매수하는 나중의 기업가들이 비로소 번창하게 된다."

위 말과 사람들이 달아놓은 많은 공감 코멘트에서는 초기 시장개척기업이 결국 망하는 사례에만 집중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꼭 초기개척기업이 그 이름을 유지한채 시장을 최후까지 지키고 있어야만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의 많은 개척형 벤쳐기업들은 후발 거대기업에 인수됨으로서 그 사업을 일으킨 사람에게 큰 성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31 09:18
1. 이 글은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정도로 강한 주장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술의 역사에서 이런 사례는 여기 소개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찾을 수 있다는 점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2. "현재 가장 유망해 보이는 기술에 안주하며 대규모 투자를 피하다가" ==> 이런 딜레마를 본문 중 US Steel 사례에서 다루었습니다.

3.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 HD-DVD 든 Blueray 든 한쪽에 걸었어야" ==> 여러 생산자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는데도 교착상태가 발생했던 거지요. 그 생산자들이 시장의 대세를 주도할만큼 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4. "많은 개척형 벤쳐기업들은 후발 거대기업에 인수됨으로서" ==> 그런 사례도 종종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netics at 2008/07/31 13:51
3번 답변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위의 사례들은 "일단 무조건 달려야 하는 상황" 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시되었는데 그 중에서 "표준화되지 않은 기술을 받아들이는 소비자의 상황" 은 전혀 아귀가 맞지 않는 예를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소비자는 달려야 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요. 반면에 "표준화 되지 않은 기술이지만 최후에는 표준의 승자가 독식하는 경우, 기술을 선택해야만 하는 생산자의 상황" 이 이 논의에 적합한데 이때 차세대 DVD 의 예처럼 교착상태가 발생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하고 대세가 판가름 날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훌륭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교착상태는 투자의 비용을 늘리고, 투자가 회수되기까지의 기간을 늘리겠지만, 결국 차세대DVD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이쪽이던 저쪽이던 택해야 하며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그저 포기하겠다는 의사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4번 답변에서는 '종종' 이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구글만 해도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려는 경우 YouTube 말고도 많은 작은 벤쳐기업을 인수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모르겠으나 현 IT 분야에서는 새로운 영역, 기회가 보일때 그곳으로 빨리 뛰어들어가서 입지를 다지는 것은 주요한 전략에 속합니다. 이런 작은 기업들의 이야기는 큰 기업간의 싸움과 다르게 주목을 받지 못해서 알려지지 않은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3 10:04
5. "위의 사례들은 "일단 무조건 달려야 하는 상황" 을 설명하기 위해서" ==> 위 사례들은 그런 상황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제시된 것입니다.

6. "소비자는 달려야 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요" ==> 사실 생산자도 늘 달려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US Steel의 고민은 그런 점을 잘 보여줍니다.

7. 그 예에서 완제품PC제조업체는 '생산자'이지만 기다려도 되는 생산자입니다. 인터넷 서비스 업체도 '생산자'('공급자'라고 읽는 게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이지만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이것은 모뎀 칩을 만드는 록웰과 USR만 발을 구른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은 전체 생산자와 소비자의 네트워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아서 그들 혼자 도박을 벌인다고 해서 판세를 뒤집기란 어렵습니다.

8. 사실 저 예에서 록웰과 USR은 머리를 쓰지 않고 판돈만 올려가며 "일단 무조건 달리다가" 공멸한 사례입니다. 단독승리를 노리며 지지세력을 규합하며 판돈을 키운 것이 결국 소모적인 치킨게임으로 귀결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했어야 하는 선택은 두 업체간의 타협으로 단일표준을 만드는 것이고 결국 끝에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9. 구글의 예를 드셨는데, 구글 이전에 명멸했던 수많은 검색엔진 업체들에 대해서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비슷한 식으로 웹 브라우저나 워드프로세서 시장의 기술지향적 중소기업들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더 큰 기업으로부터의 호의적인 조건의 인수합병으로 성공해 시장을 빠져나가는 기술신기업은 정말 적습니다. 그렇게 스러져간 수많은 기업들의 잔해들이야말로 "주목을 받지 못해서 알려지지 않은" 쪽에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기업들은 망하면서 어떤 기술을 특수한 것에서 commodity로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이상 그렇게 신기하지 않은 기술이 된다는 것이죠.
Commented by netics at 2008/08/03 15:46
"사실 생산자도 늘 달려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늘 달려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달려야 하는 상황이 자꾸 닥쳐온다고 하는 표현이 어떨까 싶습니다.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에서는 큰 기술적 발전이 다가오며 이때 그 방향이 2가지 이상일 경우 분명 어느쪽으로든 달려야 합니다. 둘다 적당히 투자하는 방법은 실행이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어느한쪽에 올인한 것보다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요.
장래를 위한 기술개발을 하는데 큰 방향이 갈려 있고 그 중에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차세대 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해 양자컴퓨터나 생화학컴퓨터등의 방향을 결정한다던가...) 어느방향인줄 모르고 열심히 개발해 놨는데, 경쟁회사에서는 다른 방향의 기술을 개발해 놓았을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연구개발을 안할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혹은 거대기업이 큰 방향을 잡아놓고 지지세력을 규합하고 있어서 어느쪽이든 선택을 해야 할 수 있습니다.
모뎀 칩셋의 경우와는 다르게 VCR, CD, DVD, 차세대DVD 는 위의 경우에 속한다고 보입니다. 모뎀은 새로운 기술발전을 관망할 수 있도록 구식기술이 충분히 잘 동작하고 있었는데 반해 VCR, CD 는 어느쪽이던 선택하지 않으면 시작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DVD 는 어느 진영이던 선택해야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경우입니다. 삼성처럼 양다리를 걸치는 전략은 기업의 크기가 굉장히 크고 직접 기술개발을 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특별한 경우라고 봅니다.

"구글 이전에 명멸했던 수많은 검색엔진 업체들에 대해서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

구글이전의 수많은 검색엔진이 사라진 것은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이긴 현상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봅니다. 작은 변화를 택한 업체들은 검색을 인터넷 전화번호부나 현재 자신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조금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정도, 웹사이트별에 개별로 판매할 검색 모듈 솔루션 정도로 간주한 업체들이라고 봐야겠습니다. 큰 변화를 택해서 적극적으로 뛰어든 검색엔진이 많이 망했지만 작은 변화를 택했던 업체들은 전부 망했습니다.

검색엔진 이야기가 나와서 이야기인데 좋은 예로 야후가 또 있습니다. 디렉토리형 검색이라는, 기술적인 관점에서는 형편없는 방식을 가지고도 순전히 선점했다는 이유로 초기의 검색엔진대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웹브라우저의 경우 넷스케이프의 실패는 MS 와 싸웠던데에 있지 웹브라우저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어간 데에 있지 않습니다. 넷스케이프 역시 인수될 기회가 많았습니다.

사실 이미 벤쳐라는 이름이 다 나타내고 있지만, 작은 변화를 택한 업체는 100% 망하고 큰 변화를 택한 업체는 99% 망하는 것이 IT 세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7 17:48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에서는 … 어느쪽으로든 달려야 합니다." => 그러니까 사고를 자꾸 "달려야 한다"쪽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직면하는 상황은 '달려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달려야할지 말아야할지' 망설여지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 점은 본문에서 언급한 US Steel사례나 1920년대의 선박엔진 사례에서 잘 드러납니다.
19세기 후반에 당대의 첨단기술 시장이던 조명산업에서 시장을 주도하던 가스(등) 업체들이 주로 어디로 갔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백열전등 사업으로 뛰어들기 보다는, 성숙된 기술인 가스등 기술을 개량해서 아직 조잡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백열등과 40년간 경쟁해 시간을 벌면서 조리,난방,온수 등 다른 분야에서 살 길을 찾아 나갑니다. 과거의 가스등 업체들은 오늘날의 도시가스 업체로 변신해 성공을 거두었던 겁니다.
남들이 뛴다고 같이 부화뇌동해서 뛰는 전략이 확실히 우수한 전략이란 근거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골드러쉬 때 금광을 찾아 가는 대신 한 걸음 물러나 청바지를 파는 전략이 성공했듯이 대안적 전략에도 다양한 적용가능성이 존재하는 겁니다.

"구글이전의 수많은 검색엔진이 사라진 것은" => 이것은 말씀하신 피인수전략이 그리 확률이 높은 전략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예시입니다.
Commented by netics at 2008/07/30 20:14
위 댓글의 논지를 보충하려는 근거자료가 아니라 그냥 갑자기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습니다.

국가가 취할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정책수단으로 전쟁을 꼽을 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급진적인 전략을 상당히 자주 사용해서 큰 성공을 거둔 나라를 이스라엘로 보는 것은 타당할까요? 중동쪽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적어서 질문이 타당한지도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8/07/31 09:20
이스라엘도 더이상 전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 수십년간 이스라엘의 기본 흐름은 일부 땅을 양보해 평화를 사려는 것입니다. 이는 실력으로 볼 때 전쟁을 더 해 땅을 더 넓히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런 전략의 효용성이 더이상 크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인 듯 합니다.
Commented by netics at 2008/07/31 11:42
위 글을 원글인 "보수적 변화는 왜 우월한 진보전략인가" 와 연관해서 읽고 있었는데, 이 글에서는 기술부문만을 주제로 잡고 있었던 것을 놓치고 댓글을 붙일 위치를 잘못 잡은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작했으니 계속 여기서 가겠습니다.

"보수적 변화는 왜 우월한 진보전략인가" 에서 주장하는 것은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두가지 변화가 있는 경우 '일반적'으로 보폭이 작은 쪽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으로 요약될것 같습니다.

질문을 하면서도 무엇이 궁금한것인지 잘 몰랐는데 답변을 듣고 다시 정리해보니 궁금점이 무엇이었는지 정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 논의를 국가의 대외정책에 적용해 보았을 때도 타당한가?" 가 그 의문입니다.

역사에 존재하는 대부분, 아니 모든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국가가 부흥하는데에는 전쟁이라는 급진적이고 도박적이기까지 한 수단이 사용되었습니다.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정도만이 예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도 그런 점을 말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현재는 땅을 양보해서 평화를 사려고 할지 모르나, 50년 사이에 중동의 강국이 탄생하는 역사는 완전히 모험적인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 현재의 땅을 양보하는 전략도 전쟁으로 벌어놓은 재산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면 역시 큰 변화에 따른 산물이라고도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급진적인 전략이 '항상' 유효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단지 작은 변화는 자주 성공하지만 작은 성공일 뿐이며, 큰 변화는 드물게 성공하지만 큰 성공을 한다는 점을 다시금 짚고 싶었습니다.
즉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보수적 변화는 왜 우월한 진보전략인가" 에서 큰 변화와 작은 변화사이에서 택해야 할 중심점을 작은 변화에 가깝게 옮겨 놓으셨는데, 그것이 다시 정 중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큰 변화를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기본 관점을 "만일 기술적 문제들이 인간의 이성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도 똑같이 해결될 수 있으리라" 고 기대하는 것이라 하셨는데 그것을 전부로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 작은 변화를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이유인 '현미경 모델' 은 모델의 선택에 따른 오류를 보이고 있습니다. 생물은 생존하는 것만으로 목적이 달성되기 때문에 생존해 있는 현재 상태가 초점이 굉장히 잘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인간은 생물이면서도 그와 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생존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년을 노예로 살기보다는 하루라도 주인으로 살기를 바란다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따라서 현미경 대신 산중턱쯤에 위치한 모습이 적절하고, 더 큰 보폭으로 움직일 이유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8/03 10:22
a. "보수적 변화는 왜 우월한 진보전략인가" 에서 주장하는 것은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두가지 변화가 있는 경우 '일반적'으로 보폭이 작은 쪽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으로 요약될것 같습니다. ==> 그렇습니다. 같은 변화를 할 것이라면 작은 보폭으로 여러번 움직여가는 것이 큰 보폭으로 한 번에 가는 것 보다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피드백의 측면에서 생각해도 그런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작은 변화를 여러번 거듭하면 피드백을 여러번 받을 수 있습니다. 큰 변화 한번은 피드백을 한 번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옳은 결론에 도달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큰 변화를 정확히 하려면 다루는 주제에 대해 아주아주 잘 알아서 피드백이 없어도 큰 문제가 안 되어야 하겠지만 대부분의 정책문제는 그정도의 정밀성을 가질 수 없지요.

b. "생물은 생존하는 것만으로 목적이 달성되기 때문에 ... 인간은 생물이면서도 그와 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 국가 이야길 하다가 왜 인간으로 돌아가는지 알기 힘들군요. 예를 들어 '무정부상태인 현 국제체제 하에서 모든 국가들은 생존을 제일의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은 현재 국가에 대해 가장 널리 지지받는 이론입니다.
냉전시대 말기에 소련이 수십년간 구축한 거대한 핵전력을 앞세워 일발 역전극을 노려보지 않고 스스로 패권국 경쟁에서 물러났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c.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보수적 변화는 왜 우월한 진보전략인가" 에서 큰 변화와 작은 변화사이에서 택해야 할 중심점을 작은 변화에 가깝게 옮겨 놓으셨는데, 그것이 다시 정 중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렇게 논한다면 큰 변화-작은 변화-무변화 중 작은 변화는 중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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