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정부 산하의 종교성은 앙카라 대학의 신학자들을 동원해 하디스(예언자 무함마드 언행록)의 근본적인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터키 관리들은 전통주의 무슬림들 사이에서 이것이 큰 논란이 될 것을 알고 지금껏 하디스의 개정작업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왔으나, BBC에게 이 프로젝트와 그들의 야심적인 계획에 대해 언급하였다.
(예를 들어) 이 프로젝트의 조언자 중 하나인 Felix Koerner에 따르면, 일부 "하디스"로 알려진 것 중에는 당시 사회에 맞추기 위해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수백 년이 지난 후에 만들어진 것도 있다는 것이다.
런던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터키 전문가 Fadi Hakura에 따르면, 터키는
종교의 통치에 복종해야만 하는 것에서 근대 세속 민주주의를 사는 사람들의 필요성에 봉사하는 것으로 이슬람을 재창조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기독교의 종교개혁과 유사한 것입니다. 완전히 똑같진 않아도 그 종교의 신학적 근거를 바꾸는 일이지요."
Fadi Hakura는 지금까지 세속 터키가 이슬람을 위한 새 정치체제를 만들려 해왔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들이 새로운 이슬람을 만들려 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앙카라 학파" 신학자들은 서구의 비판 철학과 기법을 이용해 새로운 하디스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오래 전에 확립된 무슬림 학자들의 규칙을 거부한다는 더욱 과감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것들은 초기 문헌들을 대체한, 후대에 형성되고(더 보수적인) 문헌들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게 얼마나 근본적인 변화인지 말로 다 표현을 못하겠군요"
(이상은 발췌역)
Robert Pigott,
Turkey in radical revision of Islamic texts, BBC, 2008년 2월 26일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하디스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이슬람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 생애 말기 몇 년 전부터 두 무슬림이 만나면 한 사람이 새로운 소식(Hadith)을 묻고 다른 무슬림이 예언자의 말씀이나 예언자에 대한 일화를 주고받는 경건한 전통이 확립되어 있었다. 이러한 전통과 관습은 예언자가 사망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예언자가 남긴 말씀과 일화는 더 이상 새로운 소식이 아닌
예언자의 어록(Hadith)과 전통(Sunnah)이 되었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남긴 말씀, 행위, 인정, 품성에 관한 사료는 그의 제자들이 수집하여 전집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하디스는 이슬람법을 판결할 때 꾸란 다음으로 중요한 법원이 된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무아즈 빈 자발을 까디(qadi: 판관)로 예멘에 보낼 때에 그와 대화한 하디스를 보자.
예언자: 의문이 일어날 때 너는 어떻게 결정을 내리겠느냐?
무아즈: 알라의 책에 따라 결정하겠습니다.
예언자: 그런데 만약 알라의 책에서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무아즈: 그 때는 알라의 사자의 순나에 따라 결정하겠습니다.
예언자: 만약 꾸란에서도 순나에서도 그 답을 찾지 못하면 어찌 하겠느냐.
무아즈: 그 때는 주저 없이 제 자신의 이성에 따라 결정하겠습니다.
이 대답을 듣고 예언자 무함마드는 크게 기꺼워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알라를 기쁘게 하는 대답이로다. 알라의 사자(무함마드)의 사자(무아즈)를 이끌어 주시는 알라께 찬양을 드릴 지어다.”
이 하디스는 이슬람법의 우선순위를 말해준다.
1. 알라의 책(꾸란)
2. 예언자의 언행과 전통(하디스/순나)
3. 1&2에서 이성을 이용해 유도된 결론.(이즈티하드)
1번과 2번, 즉 법 해석에 관해 꾸란이나 순나 구절에서 직접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경우는 결론이 확고부동하지만, 실제 이슬람법 전체에서 보면 이런 부분은 매우 작다. 그래서 이슬람법의 대부분은
이즈티하드라고 불리는 일련의 유추, 해석 과정을 통해서 유도된다.
정확한 비교는 아니지만 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중요성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꾸란과 순나는 헌법, 이즈티하드는 법률쯤 되는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하위법은 상위법을 건드릴 수 없다. 즉 “남녀 간음자에게는 그 둘 각각에게 100대의 채찍질을 하라”(꾸란 24:2)라고 못박혀 있으면 이에 대해서는 다르게 해석해볼 도리가 없다.
이슬람 법체제에서 이처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다보니, 하디스는 단순히 기록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시대에 고증을 거쳐 여러 유형으로 분류되었다. 그 유형은 다수의 하디스, 유명한 하디스, 소수의 하디스 등이다. 예를 들어 다수의 하디스는 예언자에게 여러 사람이 듣고 그 사람들이 다시 여러 사람에게 전한 것으로 교차 검증이 가장 잘 되는 유형이다. 그 다음 유명한 하디스는 예언자에게 한 사람이 들었지만, 그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전해 부분적으로 검증이 되는 유형이고, 소수의 하디스는 모든 전달단계가 소수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올바른 하디스, 좋은 하디스, 약한 하디스 같은 분류도 있다. 이것은 그 이야길 전한 사람들의 사슬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전달자들의 신뢰도가 높은지 낮은지 등을 따진 것이다. 물론 이런 각 하디스간의 신뢰도의 차이는 이즈티하드나, 개별 판결 과정에 중요하게 반영된다.
그런데 이슬람의 다수파인 순니파의 경우 10세기 이후 "대가들에 의해 이미 충분히 연구가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즈티하드를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즉 이즈티하드의 문은 닫힌 것이다. 이즈티하드를 더 하지 않는 대신 4대 전통 법학파(하나피, 말리키, 샤피이, 한발리)가 완성해 놓은 가르침을 확실히 모방 재현(taqlid)하는데 주력하는 것이 정통신앙생활의 기본이다.
이렇게 헌법도 법률도 바꿀 수 없는 상태에서 더 하위 레벨인 법해석과 개별 판결만 갖고 소극적으로 사회 변화에 대응해야 되다 보니 정통 순니 무슬림 사회는 필연적으로 매우 보수적이 되는 경향을 나타내게 된다. 사실 이때문에 자유주의적이건 원리주의적이건 간에 이슬람 개혁세력은 대부분 이즈티하드를 다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늘 소수파의 의견이었지만 고증학적으로 하디스 중 상당부분이 후대의 위작일 가능성은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예를 들어 이런 학설을 취한 저명인사로는 19세기 후반의 이슬람 부흥운동가
무함마드 압두가 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하디스의 개정 재편집은 이슬람법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하디스가 꽤 변하면 하디스에 입각해 만들어진 기존의 이즈티하드를 전반적으로 새로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내가 제일 궁금하게 생각하는 점은 순니파 국가에서 천년만에 처음으로
이즈티하드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인가란 것이다.
아마도 기사에서도 언급되듯이 일부 하디스가 후대의 위작이라는 고증학적 증거에 입각해 제외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실 아무리 터키 정부가 배후에서 조종한다 하더라도 1,400년 전에 죽은 무함마드의 언행록을 새로 "발굴했다"고 주장하긴 힘들지 않을까?
오스만투르크 제국 붕괴 이후 성립한 근대 터키는 이슬람 통치를 거부한 세속체제를 고수해 왔을 뿐 아니라, 민족적으로도 아랍족이 아니어서 이 측면에서는 전형적인 비주류라고 할 수 있다. 천년 동안 확립되어 있던 하디스에 다른 생각을 품고 손을 대려는 터키의 이와 같은 행동이 다른 순니파 국가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 대부분의 주류 성직자들이라면 격렬히 반대할 것이다.
사실 이슬람에는
비드아(bid'a)란 말이 있다. 이것은 모든 종류의 혁신(innovation)을 가리키는 동시에 이단(heresy) 내지는 미신이란 뜻을 갖고 있다. 전통주의자는 물론이고 변화를 추구하는 이슬람 부흥운동도 대개 비드아 척결을 극기복례하기 위한 기본 요건으로 본다.
서양에서도 종교개혁이 진행되는 동안 몇 세기에 걸쳐 수많은 전쟁과 많은 유혈이 필요하였다. 이슬람권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쉬운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