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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태도의 스펙트럼
앞선 글,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론: 혹은 진보의 성배를 찾아서에 대한 논평에 답하기 위한 포스팅.

그리고 어느 정도 유사한 다른 질문

가끔 질문은 간단명료한데 답변은 상당히 까다로운 경우가 있다. 이번 경우가 전형적으로 그런 편.
예를 들어 "정치적 태도로서 진보주의나 보수주의는 모두 진보를 수용한다. 보수주의자들조차 진보적이다"라고 덜렁 말했을 때 그 뜻이 정확히 전해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불친절한 답변

레온 바라다트의 『현대정치사상』(Political Ideologies: their origins and impact) 2장을 보면 잘 나옵니다. 거기 묘사되는 보수주의가 바로 제 입장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친절한 답변

서점이나 도서관 가면 책이 있기야 하겠지만 블로그 독자들에게 찾아 읽어보라고 요구하는 것도 무리가 있고, 또 이 쟁점에 관심이 있는 분이 적어도 세 분은 계시는 것 같아서 이하에 이 책의 해당 부분을 적당히 요약편집하였다.
여기 쓰인 바라다트의 책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Baradat, Leon P., Political Ideologies: their origins and impact, Prentice Hall
(신복룡 외 역, 『현대정치사상』, 평민사, 1995)



정치적 태도의 스펙트럼


서론

급진주의자(radical), 진보주의자(liberal), 온건주의자(moderate), 보수주의자(conservative), 반동주의자(reactionary) 등의 용어는 정치적 담론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단어들에 속한다. 이러한 단어들이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가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다섯 가지 용어와 정치적 변화 및 정치적 가치의 개념을 연관하여 논의를 진전해야 한다. 가장 좌측으로 치우친 급진주의자들은 현상(status quo)에 대해 극단적으로 불만스러운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현존하는 질서의 즉각적이고도 근본적인 변화를 원하며, 무엇인가 새롭고 다른 것을 요구한다.

급진주의자들보다는 훨씬 덜 불만스러워 하지만 여전히 상당한 정도로 체제를 변화시키기를 원하고 있는 이들이 진보주의자들이다. 진보주의의 철학적 기반은 전통적인 시기의 것과 현대의 것으로 나눠진다. 전통적 진보주의자들이 개인과 재산권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던 데 반해, 현대의 진보주의자들은 사회를 공동의 것으로서 이해하며 인권을 강조한다. 그러나 두 집단 모두 평등, 지성, 경쟁과 사람들의 선량함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온건주의자들은 현 사회에서 나쁜 점을 별로 발견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들보다 더 변화를 내켜하지 않는 것은 오직 보수주의자들뿐이다. 그들이 변화를 싫어하는 정도는 오직 보수주의자들에 의해서만 초과될 뿐이다. 진보주의자들과는 거의 모든 점에서 다른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의 도덕이나 지성에 대한 확신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비록 세상이 보수주의자들의 희망하는 만큼 유쾌한 것이 못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부적절한 참견이 실로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위에서 말한 스펙트럼 상의 각 입장들이 변화의 속도와 깊이, 그리고 방법에 있어 다르지만 그들 모두는 사회의 진보적인 변화를 옹호하고 있다. 오직 반동주의자들만이 이전 시대의 제도로 복귀할 것을 제안한다. 반동주의자들은 현대적 가치를 거부함으로써 사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이전의 정치 체제를 채택하려 한다.



기본적으로, 정치적 스펙트럼의 우측에 위치하는 사람들은 권위와 엘리트주의, 재산권 등을 존중한다. 반면에 좌측에 위치하는 사람들은 자유와 인간의 평등, 인권 등을 강조한다.
이러한 철학적 확신 이외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게 하는 몇 가지 다른 동기들이 존재한다. 변화의 필요성에 관한 심리적 요소들은 중요하다. 경제적 환경 또한 일익을 담당한다. 연령은 또 다른 요소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에 관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견해는 아마도 그들 각자에게 스펙트럼 상의 어느 쪽에 위치할 것인가를 결정짓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변화

정치적 변화란 복합적인 주제이며, 우리는 현재 그에 관해 네 가지를 알아야만 한다.

첫째, 우리는 제안된 변화가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바꿔 말해서 그 변화라는 것이 진보적인 것인가 아니면 퇴보적인 것인가 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점을 조심해야만 한다. 우리 사회는 대개 진보에 대하여 호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들의 이데올로기적 기원의 뿌리가 18세기 영국 자유주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진보라는 것이 반드시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본질적인 가치도 가지고 있지 않다. … 진보적 변화와 퇴보적 변화 사이의 분기점은 보수적 부문과 반동적 부문들 사이에 존재하며, 이들 두 부문 사이의 선은 어떠한 변화도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현상이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될 수 있다(그림 참조). 바꿔 말하면, 반동의 왼쪽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보수주의자들조차도 진보적이다. 오직 반동주의자들만이 현상으로부터 이전에 존재하였던 어떤 것으로의 복귀를 원한다.

우리가 결정해야 할 두 번째 사실은 제안된 변동의 ‘깊이’(depth)이다. 바람직한 변동이 사회에서의 주요한 조절인가 아니면 주요하지 않은 조절인가? 변동이 현 사회에 근본이 되는 제도를 수정하는 것인가 아니면 교체시키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제안된 변동이 시행되었을 경우에 야기되는 비가시적이고 비통제적인 효과는 무엇인가? … 비록 그러한 정책 변화에 따른 어떤 결과를 예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러한 행동이 초래하게 될 변화, 문제점, 이익들의 전부 혹은 대부분을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체로 변화가 보다 근본적일수록 그 영향에 대해서는 더욱 예측이 불가능하며 분열적이고 통제하기 어렵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변화의 세 번째 측면은 사람들이 바라고 있는 변화의 ‘속도’(speed)이다. 확실히 사람들이 현상과 불화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들은 현재를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현존 질서가 급격히 수정되는 것을 더욱 보고 싶어 할 것이며, 따라서 사람들이 원하는 변화의 폭과 원하는 수정이 일어나는 속도 사이에 어떤 ‘절대적’인 연관이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지라도 가끔 그 둘 사이에 ‘일반적’인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것은 두 가지의 태도가 모두 현상 유지라는 공통된 인자와 관계가 있고 사람들이 현존 체제로부터 소외를 느끼는 강도는 대체로 그들이 원하는 변화의 깊이나 속도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개념에 관해 우리가 고려해야 할 마지막 요인은 변화가 일어나는 ‘방법’(method)이다. 정치적 변화는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합법적 비합법적으로 또는 초법률적으로, 평화적 폭력적 방법으로 발생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얻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극단주의자라고 부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폭력은 어떤 극단적인 정치 집단의 주요한 도구이다. 그러나 ‘실제로 폭력은 정치적 스펙트럼의 각 점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사용될 수 있다.’ 사형 언도, 재산 몰수, 전쟁 - 이 모든 것이 정치적 연속선상에 따라 모든 사람들에 의해 지지되는 폭력 형태의 예들이다. 따라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이 쓰는 방법에 관해 섣불리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그러나 정치적 변화를 위해 사용되는 방법을 약간 일반화한다는 것은 가능하다. 예를 들면 정치적 스펙트럼 상의 현상에서 우리가 멀어질수록 더욱 더 사회 법규들의 반대편에 있는 우리를 발견하기 쉽다. 이것은 법률이란 그 사회의 목적(purposes), 목표(goals). 구조(structure)를 밝혀주는 일종의 전달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목적, 목표, 구조에 반대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법률과 잘 맞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대체로 보수주의자들이 법률을 잘 준수하고 더욱 애국적이기 쉽다. 왜냐하면 그들은 체제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급진주의자, 진보주의자, 혹은 반동주의자들은 모든 법률을 기꺼이 준수하거나 보수주의자들처럼 열정적으로 깃발을 흔들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안락한 교외 근처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도시 빈민가나 농촌의 빈곤 지대에서 살고 있는 사람보다 왜 자본주의 체제가 사회 개혁을 통해 수정되어야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1) 급진주의자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급진주의자는 현재의 사회에 극도로 불만족스러워 그것의 변화를 위한 덜 극단적인 제안들에 대하여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급진주의자들은 사회의 즉각적이고도 근본적인 변화를 좋아한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급진주의자들은 혁명적 변화를 좋아한다. 한 급진주의자를 다른 급진주의자와 가장 분명하게 구별하는 기준은 특별한 변화를 야기하는 데 있어서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폭력의 선호여부; 인용자 주]들이다. …

폭력에 의거하지 않고도 사람들이 과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들은 명백한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 혁명에 있어서 폭력이 고유한 것은 아니다. 많은 혁명들이 폭력에 뒤따라 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혁명도 많았다. ‘혁명’이란 용어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사회, 경제, 문화 혹은 체계에서의 중대한 혹은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폭력은 흔히 혁명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짧은 시간 동안에 발생하는 근본적인 변화는 뿌리 깊은 불안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갈등을 폭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모든 급진주의자들이 폭력적인 것은 아니고 또 모든 혁명들이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급진주의자들은 그들의 반대자들에 의해 과도하게 심한 반발을 받는 경향이 있다. 루소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아서, 현대의 급진주의자들은 기존 사회를 극심하게 불안정한 것으로 만든다. … 가장 소중히 여겨온 사회의 가치와 가정에 도전한다. 그들은 기존 사회의 제도들을 거부하고, 보다 더 인정적이고 평등적이며 이상적인 사회 정치 체제를 요구한다. 사실, 그들은 우리들 중 다수가 이상에 있어서는 원하고 있으나 실제적인 이유나 형편상의 이유 또는 헌신의 결핍으로 인하여 만들 수 없었거나 어쩌면 만들 의지가 없었던 그런 사회를 요구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급진주의자들은 만약 우리가 그것이 단지 더 편하다는 이유로 결코 완전하지 않은 세상에 만족하고 있다면, 우리가 진실로 실패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사회의 가치에 대한 급진주의자들의 경멸은 매우 철저하고, 그들의 치료법은 매우 비정통적이며, 또 아마도 실패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인한 기존 사회의 죄의식이 너무나도 위협적이어서, 급진주의자들은 흔히 자신이 제기한 도전을 적절히 다루는 데 필요한 정도를 훨씬 넘어서 심한 두려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따라서 그들의 숫자와 영향력이 그토록 심한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급진주의 운동은 대개 비참하고도 완전하게 분쇄된다.


2) 진보주의자

진보주의 영역이 급진주의보다 연속선상에서 현상 유지에 보다 가깝기 때문에 진보주의자는 급진주의자보다 현존 사회에 불만을 훨씬 더 적게 느낀다. 참으로 진보주의자는 그 사회의 근본적인 특성들을 지지한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그 사회의 근본적인 특성들을 지지한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그 사회의 약점을 인식하는데 빠르다. 따라서 체제를 개혁하기를 열망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진보주의자들은 급진주의자들처럼 거의 그렇게 좌절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의 결함에 대해 참지 못한다. 그들은 결점을 보고는 ‘신속하고도’ 상대적으로 ‘멀리 영향을 미치는’ 진보적 사회 변화를 좋아한다.
급진주의자와 진보주의자 사이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 중의 하나는 법에 대한 태도이다. 급진주의자는 근본적으로 자기들을 통제하는 정치 체제를 반대하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를 통치하는 자들이야말로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법을 이해하기 쉽다. 따라서 급진주의자들이 법을 존중하기는 어렵다. 한편 진보주의자는 일반적으로 법의 개념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들은 법의 어떤 특성들은 바꾸기를 원할지라도 대체로 법을 어기지는 않는다. 그 대신에 그들은 그 법을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바꿔 보려고 할 것이다. 진보주의자는 몇 가지 중요한 수단에 의해 체제 안에서 변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체제의 핵심적인 것들을 지지하기 때문에 체제를 혁명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어떤 시도도 거부한다.
진보주의는 계몽 운동의 지적 부산물 중의 하나이고, 과학적 방법의 지적 부산물 중의 하나이며, 궁극적으로는 산업혁명의 지적 부산물들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중세의 사람들은 그들의 비참한 세속의 존재로부터 신의 구원을 위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일반적으로 인류에 대한 존중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신념은 대단히 낮았다. 그러나 점차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베이컨과 같은 탐구적인 사람들이 우리 자신과 삶에 있어서의 우리의 역할에 대한 태도를 혁명화시킬 만한 발견을 했다. 과학적 방법을 통하여 사람들은 그들의 물질적 실존에 있어서의 개선을 이룩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전에는 거의 불평 없이 견디어 오던 많은 문제점을 해결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사람들은 만일 기술적 문제들이 인간의 이성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도 똑같이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결론짓게 되었다.
이런 사유는 진보주의 철학으로 발전되었다.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에 대한 낙관주의가 진보주의자의 기조이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근본적인 신념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진보주의는 모든 문제에 이성을 적용하려 하며 이것이 구체적인 해결로 인도해주리라 확신하기 쉽다.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에 대해 그토록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이제까지 그들이 ‘노력해 왔던 그 진실한’ 사회 제도를 저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진보주의자에게 신성불가침한 것은 없다. 어떠한 것도 보다 좋게 변모될 수 있다. 변하는 진보주의의 긴 역사를 통해 진보주의의 주요한 도구로 남아 있다.


3) 온건주의자

온건주의자들에 관하여 서술하는 것은 다소 주의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정치적 스펙트럼 상의 다른 입장들과는 달리 온건주의자들의 범주에 들어맞는 어떠한 철학적 기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중용을 추구하라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조언을 인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태도조차 철학보다는 기질에 더 가까운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온건한 우파이든 혹은 온건한 좌파이든 간에 분명히 온건함에는 틀림없다. 즉 온건하게 진보적일 수도 있고 온건하게 보수적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내가 이 책에 온건의 범주를 소개하는 것은 정치적인 논의에서 어떤 문제에 대하여 자신들을 진보적 혹은 보수적이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스펙트럼의 어느 쪽에도 강하게 속해 있지 않은 그런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온건이라는 말이 매우 빈번히 사용되기 때문이다.
온건주의자들은 사회에 개선의 여지가 있고 또 수정될 필요가 있는 몇몇 구체적 분야를 인정하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사회에 만족한다. 그러나 그들은 체제의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어떤 변화도 사회를 분열시킬 정도로 극단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
온건주의를 연구하다 보면 우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에 이성이 아니고 감정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개의 급진주의자, 진보주의자, 보수주의자, 반동주의자들은 쟁점에 관한 정보와 대안적인 정책에 관한 지식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가능한 선택들을 고려하고 체제가 파괴될지, 수정될지, 지속될지, 아니면 이전 질서로 돌아가야 할지를 결정했을 것이다. … 그러나 표면적으로 합리적이고 분별이 있어도 결코 어떤 입장도 진정으로 취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만일 한 사람이 명확하게 진보주의적이거나 보수주의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그것을 변호하거나 적어도 그것을 설명하도록 요청받기 쉽다. 그러나 자신을 온건주의자라 부르는 사람들은 ‘각 입장은 나름대로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얘기를 듣는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다.


4) 보수주의자

보수주의자들은 현상을 가장 강력히 지지한다. 그러나 사물의 있는 그대로에 만족한다는 것이 보수주의자들이 필연적으로 현 체제에 만족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주의자들은 흔히 미래에 대한 안목이 결핍되어 있다는 비난을 받지만, 이는 불공정한 평가이다.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 간의 상이점은 전자가 현상이야말로 가장 실현 가능한 존재물이라고 생각하는 반면에, 후자는 보다 나은 세상을 이룩하길 꿈꾼다는 사실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보수주의자들도 진보주의자들 못지않게 좋은 미래, 즉 인간이 갈등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그런 미래를 소망한다. 두 관점의 본질적 상이점은 그 이상이 언제 달성될 수 있는가에 대한 각자의 확신에 달려 있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들이 현상을 지지하는 것은 그들이 그것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그 순간에 있어서는 그것이 성취 가능한 가장 좋은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서 보수주의자들이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그들이 그 변화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 의심스러워하기 때문이지, 그들이 개선을 원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사회가 강력한 정책 발의(initiative)를 통해 개선할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하지 못함으로써,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단지 그 체제에 대한 매우 느리고 피상적인 변경만을 지지한다. 그들 중 가장 주의 깊은 이들은 사소한 변화로 보여지는 것조차 반대한다. 그들은 현존하는 제도의 본질적 가치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들을 함부로 변경하는 것은 전통이 완성시켜 놓은 것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꺼려한다. 보수주의자들이 있는 그대로의 것들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것은 확실히 그들이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좌파적인 그들 상대자들과 같이 변화를 추구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고, 체제를 위협한다고 그들이 믿는 자들로부터 체제를 방어하는 데 적극적이다.
물론 모든 보수주의자들이 한결같이 변화에 저항하는 것은 아니다. …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매우 미미한 것이라면, 현상으로부터의 약간의 일탈은 받아들일 것이며, 그들이 받아들일 변화는 진보적인 것이다.
근본적으로 보수주의는 이성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개선하는 우리들의 능력에 관해 비관적이다. 그들은 이성의 중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으나 인간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이성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데는 조심한다.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사람들이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 또는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의 복합적인 충동으로 구성된 인간성을 지녔다는 데 다 같이 동의한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속성이 보다 우위를 차지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한다. 여러분들도 기억하겠지만, 진보주의자들은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선량하며 혼자 내버려두었을 때는 대체로 올바른 일을 할 것이며 믿을 만하다고 확신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보다 사람들이 이성으로 그들의 동물적 충동과 감정을 억제한다는 데 믿음을 덜 가지고 있다. 즉 그들은 인간성을 불신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을 비교적 비열하며 약간은 사악하기까지 한 존재라고 본다. 따라서 보수주의자의 견해는 사회에서의 각 개인들에 대한 권위주의적인 통제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5) 반동주의자

여기에서 논의된 모든 정치적 입장들 중에서 오직 반동주의자들만이 퇴보적인 변화를 제안하고 있다. 즉 반동주의자들은 사회를 이전의 상태 혹은 예전의 가치 체계로까지 되돌릴 정책을 선호하는 것이다. [중요하지 않아 생략; 인용자 주]


동기: 개인이 정치적 스펙트럼상의 특정한 입장을 취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

대개의 사람들은 거의 즉각적으로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취함에 있어 경제적 압력이 첫째 동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요인처럼 보인다. 부자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의 쟁점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 반면에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보다 근본적인 진보적 변화에 덜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기존 사회에서 비교적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체제를 분열시키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반면에 가난한 자들은 진보적 변화로부터 잃을 것이 거의 없고 얻을 것은 많다. 이러한 현상은 부유한 보수주의자들이 재산권을 방어하는 것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이 무엇인가 얻을 수 있도록 재산의 재분배를 지지하는 것은 이기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정치적 철학을 선택을 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가난한 보수주의자도 많고 부유한 자유주의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부자들은 보통 인종적 무차별, 소비자 보호, 삼림 보호, 낙태의 합법화 그리고 마리화나 사용의 범죄화를 막는 것과 같은 논란에서 앞장선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개혁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자의 제안에 가끔 무관심하거나 저항하기도 한다. 사실상 사람들의 정치적 태도에 단일한 동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동기의 목록은 아마 정치적 태도와 더불어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다음 절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들 중의 단지 몇 가지만을 논의할 것이다.
연령’은 중요한 요소인 듯 보인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젊은이들은 나이든 사람들보다 진보적이기 쉽다. 이는 아마도 젊은 세대들은 아직 획득하지 못한 방대한 이익을 나이든 세대들이 현실 속에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이들은 재산을 가지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헌신감과 소속감도 부족하다. 50세가 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사회에 어떤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그들이 그것에 익숙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창출해 내는데 그들이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은 그 체제에 헌신해야 할 이러한 이유들 중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모든 그러한 일반화들의 경우에서처럼, 예외가 법칙을 증명한다. 많은 수의 젊은 보수주의자들이 존재하며, 몇몇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진보적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또한 ‘심리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에 보다 더 ‘적합하다.’ 진보주의자가 되려면 무질서에 대해 제법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이 체제로부터 물질적으로 이득을 보지 못할지라도 그들은 무질서를 싫어하므로 변화에 저항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거의 고정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상은 단지 그것이 ‘현상이기’ 때문에 결코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누군가가 좌측으로 향할 것인가 우측으로 향할 것인가를 결정해주는 가장 중요한 단일 결정 요소는 아마도 각자가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인간은 본질적으로 나쁘고, 이기적이며, 공격적이라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스펙트럼의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범법자들에 대하여 엄격한 법과 단호한 처벌에 의존하는 경향을 가지게 될 것인바, 이는 잘못된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도덕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믿는 이들은 왼쪽으로 기울어질 것이다. 그들은 심한 법으로써 인간의 자유를 불필요하리만큼 방해하는 것을 거부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또 범죄자들을 설득하고자 할 것이다. 따라서 오른쪽에 위치한 사람들은 감옥이 죄인들에게 행동하는 방법을 강력히 가르치는 벌을 주기 위한 기관이 되어야만 한다고 믿는 반면에, 좌파들은 감옥은 사회 복귀를 위한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를 제한당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벌이라고 믿음으로써, 좌파들은 형벌을 주는 기관이 범죄자들에게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행동을 가르치고, 그들이 삶을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을 가능케 할 기술을 가르쳐 줌으로써 범죄적 삶을 거부하도록 만드는 곳이 되기를 희망한다. 문제의 핵심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가정에 있다.



이제 전체 맥락을 한번 훑어보았으니 강조했던 부분을 중심으로 요약을 한번 해 보자.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데올로기적 기원의 뿌리가 (근대화가 한창이던) 18세기 영국 자유주의에 있기 때문에 진보에 대해 호의적이며, 보수주의자들조차도 그렇다.

우선 진보주의는 계몽 운동의 지적 부산물 중의 하나이고, 과학적 방법의 지적 부산물 중의 하나이며, 궁극적으로는 산업혁명의 지적 부산물들 중의 하나이다. 이들은 만일 기술적 문제들이 인간의 이성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도 똑같이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결론짓는다.

여기엔 중대한 유추 내지는 비약이 있다. 진보주의란 산업과 기술의 진보를 보고 사회정치적 문제도 비슷한 방법이 적용가능하다는 유추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근본적인 신념으로부터 도출된 것이고,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에 대한 낙관주의가 진보주의자의 기조이다.

그들은 사회의 결함에 대해 참지 못한다. 그들은 결점을 보고는 ‘신속하고도’ 상대적으로 ‘멀리 영향을 미치는’ 진보적 사회 변화를 좋아한다. 좀 더 강하게 말한다면 만약 우리가 그것이 단지 더 편하다는 이유로 결코 완전하지 않은 세상에 만족하고 있다면, 우리가 진실로 실패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경험적 사실로서 (사회의) 변화가 보다 근본적일수록 그 영향에 대해서는 더욱 예측이 불가능하며 분열적이고 통제하기 어렵다는 골치아픈 문제가 있다. 예측불가능한 변화는 긍정적인 것 대신 부정적인 결과물을 쏟아낼 수도 있기에, 우리가 사는 사회를 대상으로 미지의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정체불명의 약품을 들이키는 것 만큼이나 위험한 일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보수주의가 반격을 시작하는 지점이다. 이들은 진보주의자들의 이상이 금방 실현될 수 있다는 확신에 공감하지 못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사회가 강력한 정책 발의(initiative)를 통해 개선할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심스러워하고 부적절한 참견이 실로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에, 그 결과 매우 느리고 피상적인 변경만을 지지한다.
[예를 들어 앞선 글에서 한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자의 아젠다인) 영어공용화에 맞서 싸우고 그들을 격퇴해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주요 동기가 바로 이런 것이다.]

근본적으로 보수주의는 이성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개선하는 우리들의 능력에 관해 비관적이며, 인간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이성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데는 조심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속도가 이들이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완만하다면, 보수주의자가 받아들일 변화는 반동적인 것이 아니라 진보적인 것이기는 하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진보주의의 배후에는 낙관론과 성선설, 보수주의의 배후에는 회의주의와 성악설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반드시 과학적인 결과물은 아니며, 무엇을 지지하는가는 각 개인의 태도, 신조, 성향에 가까운 부분이 많이 작용한다.

그렇다면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선택은 순전히 취향의 문제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재 인류가 처한 상황에서 보수주의가 더 우월한 선택임을 보여주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말하자면 길어지므로 내일 이맘 때쯤 이어서 포스팅하겠다.


by sonnet | 2008/02/26 02:00 | 정치 | 트랙백 | 핑백(4) | 덧글(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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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2/26 04:0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建武 at 2008/02/26 07:47
오늘 밤의 포스팅이 기대되는군요 :)
Commented by 루시앨 at 2008/02/26 09:27
이렇게 긴 글로 답변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
내일 포스팅도 기대하겠습니다. ^^
Commented by 瑞菜 at 2008/02/26 09:51
가끔가다 이런 식의 분류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사람은 궁극적으로는 "내맘대로 파" 이고, 여기에 다른 사람이 스팩트럼을 부여한 것 아닙니까.
하물며 자기 입으로 무슨 이념주의자라 함은 더더욱 앞뒤가 안 맞고요.
사실 극우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극좌적 정책을 할 수도 있고,
극좌라 해도 극우틱한 움직임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특정 이념주의자를 자칭함은 오히려 "자기가 만든 환상속에서 자기가 놀아나는" 꼴이라 생각하고요.

혹자가 물으면, 아니 그 이전에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난 내 멋대로 파다."
차라리 이게 가장 확실하더군요. 무소속이 역설적으로 가장 확실한 자리 매김 같습니다.
Commented by umberto at 2008/02/26 11:39
이것 참 이상한데요. 저는 인간의 도덕이나 지성에 대한 확신이 없지만, 세상이 제가 희망하는 만큼 유쾌한 것이 못되는 것에 대한 참을성을 보수주의자들만큼 갖고 있지 못합니다. 진보 70%, 온건 30%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제 경우에는 동기에 있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느낌 보다는 경제적 압력과 연령이 더 중요한 변수인가 봅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느낌이 정치적 입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글쎄요. 저자의 견행에 좀 회의적인 생각이.......
Commented by vvin85 at 2008/02/26 15:40
변화에대한 태도만큼 중요한 변화의 방향이 다뤄지지 않은게 아쉽네요. 노무현과 이명박은 같은 본질이 다른 방향으로 표출된게 아닌가 싶은데요.
Commented by rgc83 at 2008/02/26 18:53
(1) 우선 이렇게 긴 글로 답변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2) 그건 그렇고 위에서 umberto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다소 이상하다 느껴지는 점이 있군요.
저 역시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 그다지 긍정적인 생각은 갖고 있지 않으며 더불어 급진적인 변화와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진보와 변화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성향은 진보주의자와 온건주의자 사이의 어디께쯤인가에 해당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3)
"그렇다면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선택은 순전히 취향의 문제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재 인류가 처한 상황에서 보수주의가 더 우월한 선택임을 보여주는 몇 가지 증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송구스럽습니다만 이 문장에서 '우월한' 이라는 표현은 다소 문제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다섯 가지 성향들 중 급진주의자와 반동주의자를 제외한 나머지 세 개의 성향들에 대해서는 어느 쪽은 우월하고 어느 쪽은 열등하다는 식으로 평가를 내리기는 어려운 것이 아닐련지요. 그런데 저 문장 대로라면 보수주의는 좋은 것이고 진보주의는 좋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lee at 2008/02/26 20:54
저는 반동이 체재에 반항하는 급진적인 진보로 생각했는데, 오히려 극단적인 보수에 가깝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2/27 00:02
비공개/ 예. 이건 "예전에" 손으로 쳐 놓았던 것입니다. 저는 고전적인 공부습관을 가진 사람이어서 복습의 필요성이 있다고 강하게 느끼는 내용은 옮겨 타이핑해두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눈으로 읽고 손으로 타이핑하는 동안 머리로 생각할 수 있어서 읽은 내용이 머리에 잘 남게 되지요. 아마 전통시대에 태어났다면 고전 필사에 상당한 공을 들이지 않았을까 싶군요. 저의 독서습관에 대해서는 예전에 포스팅(http://sonnet.egloos.com/3156573)한 적이 있는데 이 쪽을 참고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최근에 한 것은 (분량이 너무 많으므로) 다시 한번 읽으면서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맥락에서 벗어나는 내용은 임의로 지워 축약본을 만든 정도이지요. 이런 것도 기회있을 때 한 번씩 해 두면 확실히 복습이 된다고 느낍니다. 덧붙이면 중간의 도해 한 장은 작년의 포스팅(http://sonnet.egloos.com/3191964) 때 그려 두었던 것을 재활용한 것입니다.

建武, 루시앨/ 예. 관심 감사합니다.

瑞菜/ 이 포스팅의 원래 목적은 몇몇 분이 저라는 사람의 생각에 대해 추가적인 해설을 요청하였고, 그런 요청에 답하기 위한 것입니다. "난 내멋대로 파"라고 대답할 바에는 그냥 질문을 묵살하는게 더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블랙박스에 쓸어담는 이론은 어떤 것도 설명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론의 유용성은 그 설명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분석틀은 별 쓸모가 없지요. 제가 볼 때 "난 내멋대로 파"라는 식의 설명은 설명을 포기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사시는 거야 개인의 자유이니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들의 행동과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적절한 범주를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 자신에 대해서도 알고 싶고, 남들을 분석할 때와 비슷한 분석적 도구들을 사용합니다. 이것이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일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우선 저는 '이렇게 살아야' 편리하다고 느끼거든요.

umberto/ 사실 그 부분은 개인차가 심한 쪽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렇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견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 자신은 경제적 요소보다는 본성론이나 인간관에 관한 부분이 크게 작용하는 사람이어서 저자의 의견에 크게 공감했었다고 밝혀두고 싶습니다. 변화에 대한 취향이나 연령도 제게는 경제적 요소보다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 요소들입니다. 저 역시 개인적인 경험에 입각해서 경제결정론자들, 예를 들면 맑시스트들의 견해에 심한 회의를 느낀 적이 많습니다.
그 외, 이것(대중의 정치적 성향 결정 요소)과는 약간 다를 수도 있지만 저명한 보수주의자나 그들의 이론에 성악설적 배경이 있다는 것은 몇 가지 근거가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vvin85/ 사실 변화의 방향은 가장 큰 분석의 틀인 "진보(적 변화) 대 퇴보(적 변화)"라는 구도에 들어 있습니다. 분명히 이 분석틀은 1차원적입니다. 좀 더 풍부한 설명력을 가지려면 여러 방향을 갖는 벡터합 같은 모델이 있으면 더 좋겠지요. 하지만, 이론적 모델이란 것은 이론의 명쾌함을 위해 현실을 어느 정도 단순화시켜야만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상기체모델이나 흑체복사 같은 모델들은 전형적으로 그러한 예입니다. 이 모델이 실감이 되지 않으면 지도를 생각하면 됩니다. 지도는 현실을 1:1로 옮기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의 지형을 축소하면서 어떤 것을 생략하고 어떤 것을 남길지 지도제작자가 임의로 판단합니다.

rgc83/ (2) "인간은 진보와 변화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형적인 normative statement입니다. "있어야 한다"란 "있을 수 있나?"와 관계가 없이 당위적으로 펼칠 수 있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죽음은 슬픈 일이다 그러니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어떻습니까? 보수주의자라면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겠나? 나는 회의적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보수주의자도 미래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언젠가" 영원히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요. 당위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당위에 큰 중요성을 부여하면 현실이 당위에 맞추어야 한다는 식의 결론이 나오기 쉽습니다. 그게 진보를 꿈꾸던 사람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입니다.
(3) 그런 것입니다. 그게 여러 가지 고려 끝에 현재 제가 도달해 있는 입장입니다. 그 입장은 최종적인 것은 아니므로 반론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lee/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왕당파 이런게 대표적인 반동세력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2/27 00:14
으음, 예전에 재미로 보았던 '정치 성향 테스트'가 생각나는군요.

...일단, 제 경우는 인용된 본문 내의 내용에 공감하는 편입니다.
특히, 연령과 경제력이 성향을 결정짓는 잣대가 되긴 힘들다는 점에...
(저도,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걸 간간히 보고 느꼈기에...)
Commented by sonnet at 2008/02/27 01:08
paro1923/ 예전 기억으로 저는 y축의 하단 2/3지점 쯤에 위치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것도 나름 기묘한 경험이었죠.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2/27 01:44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불가능한 꿈을 꾸자'

저는 체게바라의 실제 행적에 대하여는 냉소적인 편이지만, 저 말의 의미 자체에는 십분 동감합니다.

지극히 현실주의자로서 냉철하게 현상을 직관하고 이에 대처하지만, 마음 속에는 멀고먼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간직한 채 한발자국씩 접근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보수주의인가, 진보주의인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과거의 절대군주 아래의 노예들보다는 현재의 인류가 조금이라도 진보했으며, 현시대의 우리도 조금이라도 더 진보된 뭔가를 후세의 사람들에게 넘겨줄 수 있다고는 믿고 있습니다.

제가 지나치게 오독한 것이 아니라면, 소넷님이 언급하는 보수주의자는 대충 이와 흡사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나츠메 at 2008/02/27 01:55
sonnet 님/
개인적으론, 홉스, 존 로크, A, 토크빌 등등의 저서를 통해 정치적 보수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정치적 성향을 나눌 때에는 <북한에 대한 입장>을 중요 잣대로 사용합니다.

약화되었긴 하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선 <북한>에 대한 평가 및 대응이 정치적 스펙트럼을 나누는 일단의 준거기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Commented by 瑞菜 at 2008/02/27 09:23
저는 그 정의에 의해 스스로가 오히려 틀에 맞춰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무슨 붕어빵처럼 틀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지 아닙니까.
붕어빵조차도 반죽이 서로 다르게 삐져나오곤 합니다. 하물며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인데요.
그리고 역설적으로 자기도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법인데 타인의 정의에 의한 정의란 오죽하겠습니까.
말했지요. "자기가 만든 환상에 자기가 놀아나는 경우"라고요.
설령 특정 정의에 의해 정의되어 분류되었다 해도 그 분류된 사람들의 생각까지도 아니고
행동조차도 다릅니다. 사람이 각양각색인데 그리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난 내멋대로 파"라는 식의 설명은 설명을 포기한 것에 불과하다 하셨는데
역설적으로는 그게 가장 확실한 설명 아니겠습니까.
자신에 대해 타인의 시각이 객관적일 수는 있습니다만 얼마나 정확할 수 있느냐는 회의적입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2/27 09:27
한국에서의 정치적 입장 분석은 쉬우면서도 어려운듯 합니다. 모두가 "중도"랑 "실용"을 입에 다는데 실상은 다들 네오콘이나 탈레반 뺨치는 극단주의자들이니...
Commented by 瑞菜 at 2008/02/27 10:12
아니아니, 천천히 생각해보니 소네트 님 의견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더 배우고 갑니다.
Commented by rgc83 at 2008/02/27 16:41
(1) 으흠, 그렇다면 sonnet님께선 보수주의가 가장 '좋은' 또는 '옳은' 것이고, 보수주의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것은 '좋지 못한' 또는 '옳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인지요? 저는 급진주의와 반동주의를 제외하고는 진보주의/온건주의/보수주의 중 어느 쪽도 결코 '좋지 못한' 또는 '옳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여기서 저와 sonnet님의 성향이 엇갈리는 것 같군요.

(2) "인간은 진보와 변화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문장이 아무래도 문제가 된 것 같군요. 저는 '어차피 세상은 계속 변화하는 법이니만큼, 그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보다는 능동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쪽이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겪게 될지도 모르는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하나의 방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말이죠.
참고로 제가 생각하는 능동적인 대응이라는 것은 단순히 진보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 못한 변화에 대해서는 (설령 그 방향이 진보적이라 해도) 반대한다던지 하는 것도 포함해서 하는 얘기입니다. 저는 여러 사회적인 사안들에 대해서 기계적으로 한 종류의 관점에서만 바라봐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많은 사안에 대해서 진보주의적이거나 온건주의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몇몇 사안에 대해서는 보수주의적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는 (영어공용화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주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복거일의 한국어폐지론에 대해서는 반발하고 있지요. 한 마디로 전 이른바 '회색분자'적인 성향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저는 비정상인 걸까요?

(3) 앞에서도 말하였지만 저는 여러 사회적인 사안들에 대해서 기계적으로 한 종류의 관점에서만 바라봐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급진주의와 반동주의를 제외하고는 진보주의/온건주의/보수주의의 세 가지 중 어느 쪽의 관점도 '좋지 못한' 또는 '옳지 못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물론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을 확률 면에서 보수주의가 상대적으로 어드밴티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보수주의가 킹왕짱이고 다른 건 듣보잡'이라는 식의 가치평가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진보주의가 킹왕짱'이라던지 혹은 더 나아가서 '급진주의 만세'를 부르짖는, 자신이 추구하는 주의에 몰입되어 사고가 경직된(그리고 여러 사회적 사안들에 대해서 한 가지 관점으로밖에는 볼 수 없게 된) 이들의 행동과 별반 차이가 없는 행동이 아닐까요?
(저는 진보주의에 많은 관심과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진보주의에 너무 몰입하게 되어서 보수주의나 온건주의의 가치를 무시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고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성 진보좌파는 되지 못했고 회색분자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죠. 한 가지 관점이 아닌 여러 가지 관점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저는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인 것일까요?)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2/27 16:58
바라다트의 분류 대로라면 저의 경우 지난 5년 동안 진보주의자에서 온건주의자로 한 클릭 이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5년이 지나면 또 어떻게 변할 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2/27 18:44
겔라예프/ 해설 감사드립니다.

나츠메/ 고전에 정통하신 모양입니다. 부럽습니다. 요즘 세상에 고전부터 완독하고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지요. 대개는 대학용 교과서 등에서 현대적 해석들을 접하고 한참 후에 그 사상의 원류를 찾아나가는 게 보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고 북한에 대한 입장에 따른 분류가 유용할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이 글이 다루는 내용의 논점 외라고 생각합니다.

瑞菜/ 예, 잘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어떤 개념이나 말이 사람의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는 한 쪽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일곱빛깔 무지개'같은 것을 예로 들어보면 연속된 가시광선 스펙트럼인 무지개를 일곱 구간으로 나누는 데 특별한 합당함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걸 넷 혹은 열셋으로 나눈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일상 언어가 많은 부분에서 우리 사고방식을 틀짓고 있죠. 그렇다고 언어를 통으로 버리게 되면 남들과 소통이 불가능해져서 목욕물과 함께 아이를 버리는 식의 손해를 자초할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말씀드리면 소통을 위한 공통의 언어를 견지하면서도, 용어가 규정하는 한계에 대해 보론으로 논의할 수 있는 방법을 병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행인1/ 사실 정치인들의 수사법이야.

rgc83/ 왜 비정상인가를 고민하시는지 이해하기 힘들군요.
(1) 제가 처음에 "보수주의가 더 우월한 선택"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건 좋고 좋지 못하고와는 좀 다릅니다. 그건 다양한 상황에서 보수주의적 정책과 진보주의적 정책이 여러 번 경합하게 되면 승률이 5:5가 아닐 거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저라면 전반적으로 보수주의적 정책의 승리 쪽에 배팅하겠다는 말입니다.
(2) 리스크가 문제라면 진보주의적 정책은 본질적으로 변화가 큰 만큼 거의 확실히 리스크가 크게 됩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상대하는 상황에서 능동적인게 어떻게 더 유리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개별 사안에 대해 충분히 판단할 만한 근거가 있다면 그것은 거기 맞춰 판단하시면 됩니다. 그런 걸 갖고 비정상일까 고민하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3) (1)에서 설명한 것과 같습니다.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을 확률 면에서 보수주의가 상대적으로 어드밴티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 제가 주장하고 싶은 바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는 승률(혹은 기대값)이 다른 것보다 높으므로 우월한 전략이라 말할 수 있다"가 되겠습니다.

누렁별/ 저도 15년 전까지는 진보주의적 성향이 강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5년 정도로는 쉽게 변할 것 같지 않지만 한 20년이면 잘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Quency at 2008/02/29 09:48
보수도 진보를 수용하기는 하는 것이었군요. 저런 틀에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링크해갑니다.
Commented by 세상 at 2008/03/02 15:18
이건 가려고 하는 방향, 그러니까 초점이 잘 맞은 현미경에 대한 공통된 동의가 있을때는 괜찮은 설명인것 같은데, 현대사회에서 그런게 있는지 좀 의문이네요.

예를들어 미국 낙태 문제와 같은경우에, 설명한 진보/보수의 특징들은 대체로 부합하는데 반해 정의는 전혀 맞지 않는것 같은데 말이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3/03 00:06
Quency/ 예 반갑습니다.

세상/ 현미경 비유를 이용하시는 것으로 보아 저의 다음 글도 염두에 두고 쓰신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 경우, 사실 진화 자체도 무슨 동의가 있어서 진행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살아남아 있으니 자연도태를 피했나보다 간주될 뿐이죠. 거기에 어떤 제3의 객관적 기준에 의한 적응진화도 평가랄 만한 건 없는 것이니까요.
Commented by 세상 at 2008/03/03 05:05
하지만 진화란 결국 결과일 뿐이지, 목표가 될수는 없는것 아니겠습니까? 예를들어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사회적 진화의 높은 단계라고 하더라도 그걸 목표로 하느냐 다른 모색을 하며 그 세계를 늦추느냐의 선택이 있을수 있겠죠.

거기다 진화란 가위바위보 게임과 같아서, 아니 더 복잡해서 우월성이 1차원적으로 설명되는것도 아니고요. 인간이 바이러스보다 더 진화했느냐 같은 간단한 질문도 쉽게 대답할수 있는 문제가 아닌만큼, 우리가 인간의 삶을 선택할지 바이러스의 삶을 선택할지의 문제는 계속 남게 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3/04 23:14
세상/ 저는 여전히 이번 논의에서 동의 같은게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다수결에 의한 결정 같은 것도 꼭 동의를 내포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투표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지만 일단은 어쩔 수 없다. 이런 입장은 무척 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목표도 목표까지 가는 방법에 대해 잘 모를 경우, 의미가 크게 퇴색하게 될 겁니다. 예를 들어 "다른 모색을 하며 그 세계를 늦추느냐의 선택"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모색과 목표 간의 관계가 정의 관계인지 알 수 없는 경우(대개 이 점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으며, 목표가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더 그러함)나 잘못 알고 있을 경우(충분히 이럴 가능성이 존재함)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결국 목표, 과정, 선택 이 세 가지는 미래에 대해 완전한 정보와 예측을 할 수 있을 경우에는 합리적이지만, 미래에 대해 전혀 정보도 없고 예측할 수 없을 경우엔 무의미한 행동이 됩니다.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 이상적 모델의 중간, 즉 가까운 미래와 작은 변화의 결과는 예측이 쉽고, 먼 미래와 큰 변화의 결과는 예측이 어렵습니다. 이런 현실은 추구하는 변화의 크기를 기준으로 한 분류가 유의미해지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세상 at 2008/03/04 23:51
제가 설명을 너무 불충분하게 한것 같습니다. 정리해주신, 변화의 크기에 대한 분류가 유의미하다는데는 동의합니다.

단지 똑같이 작은 변화를 통해 '진보'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한명은 '상에서 멀어졌다' 한명은 '상에 가까워졌'다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고, 그 차이가 가치지향점의 차이에서 올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의 일반적인 특징은 단지 실행방법론에서만 연관성을 보이는게 아니라 가치지향에서도 (더)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방법론만으로의 단순 해석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보수/진보를 단지 방법론에 대한 용어만으로 재정의하면 되긴 하지만, 기존 이미지와 상충하거나 본의아닌 상징조작을 하게되거나 할듯 싶어서 권장할만한 방법은 아닌것 같습니다.

수구라는 카테고리가 있으니까 서로 다른 가치지향을 가진 사람은 다 수구로 분류하는것도 가능할것 같긴한데....이러면 서로 수구라고 몰아버리는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줘야 할듯 싶고요.
Commented by 세상 at 2008/03/05 00:32
제 설명이 추상적이서 이해가 잘 안가시면, 수구부터 급진주의자까지 되어있는 그림에서 Y자를 그려놓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Y자의 분기점이 현재가 될테고 윗부분이 진보의 방향이 되고요.

그러면 "정치적 스펙트럼의 우측에 위치하는 사람들은 권위와 엘리트주의, 재산권 등을 존중한다. 반면에 좌측에 위치하는 사람들은 자유와 인간의 평등, 인권 등을 강조한다. " 라고 하신 그 스펙트럼이 진보의 방법론과 상관없이 몰려있는걸 발견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보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사회 변화에 대한 방법론에서뿐만 아니라 가치지향에서도 공통점을 보인다면, 그 부분에 대한 분석이 빠지면 안될것 같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논리를, " 보수란 이러이러한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인데 이런가치관을 지향하는 사람은 이러이러한 특성 때문에 역사의 진보를 인정은 하지만 수동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라는 식으로 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sonnet님이 인용하신 글들이 틀렸다는건 아닙니다. 단지 현재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진보/보수 개념을 포괄하기엔 좀 불충분하거나 치우쳐 보인다는 것이죠.
Commented at 2008/09/29 15:3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미스트 at 2010/05/05 17:36
음. 이 글을 읽어보니 전 보수주의자 성향에 가까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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