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의 영어공용화론: 혹은 진보의 성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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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론이란 무엇인가

우선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론의 실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무엇이 진정한 대책이 될 수 있을까? 앞으로 몇 세기 안에 하나의 국제어가 등장하고 다른 민족어들은 모두 소멸하리라는 전망, 실질적으로 국제어가 된 영어가 지금 누리는 거대한 망 경제, 영어를 잘 쓰지 못해서 우리 시민과 사회가 보는 엄청난 손해, 사람의 뇌에서 첫 언어를 배우는 부분과 차후 언어를 배우는 부분이 다르므로 국제어를 모국어로 갖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국제어를 모국어처럼 능숙하게 쓸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한 사람의 모국어는 그가 태어날 때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결정된다는 사정 따위를 고려하면, 우리가 고를 수 있는 단 하나의 대책은 우리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버리고 영어를 우리말로 삼는 것이다. 다른 조치들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충분한 대책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인 결론이다. 아무리 영어가 중요하더라도 모국어를 버리다니!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사실들과 엄격한 논리는 한국어를 쓰는 한 우리는 국제어를 제대로 쓸 수 없고, 그래서 큰 핸디캡을 안고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국제어인 영어를 우리말로 삼는 일은 큰 투자와 긴 시간이 소요되는 사업이다. 언어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서 우리 삶을 규정한다. 따라서 그것을 바꾸는 것은 우리 삶을 뿌리부터 바꾸는 혁명이 될 것이고, 자연히 큰 비용과 혼란이 따를 것이다. 그리고 당장 영어를 우리말로 삼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시민은 모두 한국어를 모국어로 가졌으므로, 실제로 영어를 모국어로 가진 우리 후손들이 나타나는 데에는 적어도 세 세대는 걸릴 것이다. 게다가 영어를 우리말로 삼는 것에 거세게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따라서 영어의 채택은 힘들고 더딘 사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우리가 고를 수 있는 가장 현실적 방안은 영어를 우리말과 함께 공용어로 삼는 것이다. 이 방안은 국제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삼는 일의 첫단계이면서도, 한국어 습득에 큰 투자를 했고 한국어에 큰 애착을 지닌 우리 시민의 심리적 저항을 크게 받지 않을 것이다. 지금 ‘영어 공용화’라는 이름 아래 논의되는 방안은 바로 이것을 뜻한다.

복거일, “소위 민족주의자들이여! 당신네 자식이 선택하게 하라”, 신동아, 2000년 3월

복거일은 "우리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버리고 영어를 우리말로 삼는 것"이 "우리가 고를 수 있는 단 하나의 대책"인데, "우리 시민의 심리적 저항을 크게 받지 않"기 위해 그 "첫단계"로서 우선 "영어를 우리말과 함께 공용어로 삼"자고 주장한다.

즉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론은 전적으로 한국어 폐지, 영어전용화를 위한 전술적 행보에 불과한 셈이다.

이 분야에는 지금까지 살펴본 모리 아리노리나 복거일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궁극적으로 현재의 자국어 폐지를 목표로 한 캠페인을 추진한 사례가 적지 않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복거일을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거나 영어공용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국어 폐지를 소리내어 주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속으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금물이다. 그들은 내심을 숨기고 기만행위를 통해 반대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공작을 추진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2. 바바 타츠이와 복거일

복거일의 영어공용화 논지는 제가 알기로는 바바의 논지와는 반대입니다. 엘리트와 대중 간의 괴리를 막기 위해서라도 영어교육을 더 강화하고 나아가 영어공용화까지 나아가자는 것이지요. (mahlerian)

mahlerian씨의 주장과는 달리, 사실 복거일에게는 영어전용화가 궁극적 목표이며 영어공용화는 전술적인 눈속임 내지는 영어전용화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함은 앞서 밝힌 바와 같다. 즉 영어전용화로 갈 수만 있다면, 복거일에게 있어 영어공용화 기간은 짧은 편이 오히려 좋은 것이다.

그런데 바바 타츠이와 복거일의 논지는 반대라고 할 수가 없다. 이 둘은 단순히 강조점이 달라서 결론이 달라진 것이다.

역사상, 어떤 민족이 타민족의 말을 쓰게 된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복민족이 강제로 쓰게 한 것이지 결코 타민족의 언어를 자진해서 채용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어떤 민족이 정복자의 강력한 힘에 못 견뎌 타민족의 말을 어쩔 수 없이 쓰게 되었다 해도 그 민족이 몇 백 년 소중하게 써 왔던 민족언어를 버린 경우는 결코 없었다」. 따라서 한 민족의 언어를 바꾸려는 모리의 시도는 실행불가능하다고 바바는 생각했다.
그러나 바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무리 민족어가 존속한다 할지라도 2언어병용체제는 반드시 비극적인 종말을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거기에는 언어장벽에 의한 사회 계급의 분열이 생기게 마련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국민 중의 유복한 계급은 빈곤한 계급이 끊임없이 얽매여야 할 노동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전자는 후자에 비해 언어학습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만약, 국정을 비롯해 사회교류 전반에 영어가 사용된다면 하층 계급은 국민 전체에 관계되는 중요한 문제를 알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마치 고대 로마의 귀족이 jus sacrum(神法), Comita(民法) 등에서 평민을 배제했던 것과 같다. 그 결과 상층계급과 하층계급이 완전히 분리되어 양 계급 사이에 공감대가 없어지고 만다. 이렇게 해서 그들이 함께 행동할 수 없게 되고 통일된 행동에서 생길 이익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것은 가공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바바는 이 같은 상황이 실제로 식민지 인도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기 자신의 언어로 보편적인 국민교육을 하지 않는 한, 이같은 폐해는 필연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이연숙, 『「國語」以前의 日本語: 森有禮와 馬場辰猪論』, 일본학보 Vol24, No.0, 한국일본학회, 1990, pp.93-94

즉 바바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1) 한 민족의 언어를 통채로 바꾸려는 사회공학적 시도는 실행 불가능하다.
2) 2언어병용체제는 언어장벽에 의한 사회 계급의 분열이 생기게 마련이기에 비극적인 종말을 초래한다.
3) 그러니 자기 자신의 언어로 보편적인 국민교육을 하는 것 이외에 대안이 없다.


반면 복거일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영어가 현재의 국제어로서 지배적인 지위를 갖고 있기에 배워두면 매우 유리하다.
2) 한 사람이 두 번째 배우는 언어를 모국어처럼 잘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3) 그러니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전국민이 영어를 모국어로 갈아타야 한다.

심지어 복거일은 "언어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서 우리 삶을 규정한다. 따라서 그것을 바꾸는 것은 우리 삶을 뿌리부터 바꾸는 혁명이 될 것이고, 자연히 큰 비용과 혼란이 따를 것"이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복거일이나 바바 모두 모국어-영어 병용체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바는 그것이 현실적 장애가 많아 사회문제만 만들고 실패해 버릴 것이라고 보는 반면, 복거일은 그것이 영어를 모국어처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없는 반쪽짜리 대안이기에 빨리 지나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바바가 현실론이라면 복거일은 당위론이지만 모두 최종적 결과물로서 영어공용화는 반대한 것이다.


3. 진보에 대한 신념: 변화를 설파하는 선지자들

우리는 무슨 실시간 번역이라는 수단을 취하려고 해도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수요층이 넓지 못해서 번역이라는 또다른 비용까지 들이면 양서들이 잘 출판이 안됩니다(일본은 언어든 뭐든 독자표준 기술을 만들어도 될 정도 한국은 언제나 일본이건 영미건 유럽이건 따라가야 함). 더구나 시대가 바뀐 것까지 고려해야지요. 지식경제시대, 프로슈머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지는 마당에 영어가 정말 일부 위정자만 알면 충분한 시대인지 생각해볼 일. (mahlerian)

이 주장의 핵심은 시대가 바뀌었으니 우리도 그에 맞춰 과거와는 다르게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이것이 근대화라는 구호로 상징되었고, 이제는 세계화라는 구호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모리 아리노리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모리아리노리는 「일본은 상업민족이다(Japan is a commercial nation)」는 것, 「우리가 급속히 확대하고 있는 세계 전체와의 교류」를 생각하며, 일본어가 「일본열도 밖에서 결코 통하지 않는 빈약한 언어」이고, 「커뮤니케이션으로서도 취약하고 불확실한 매체」임이 일본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영어하는 종족의 상업력(the commercial power of the English speaking race)」를 스스로 획득하는 것만이 「상업민족」인 「일본의 독립유지의 필수조건」이라고 모리는 거듭 강조했다.

이연숙, 같은 글, p.86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같지 않은가?

돌이켜 보건대 근대화는 아주 중요하고 우리가 반드시 이뤄내야만 했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목표를 위한 열정이 지나치면 변화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내지는 신앙으로 변질되기도 쉬운 법이다.
예를 들어 복거일이 주장하듯이 한국사회가 한국어폐지 영어전용을 강행하는 것이 세계화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선택인지는 입증하기 매우 힘든, 논쟁적인 주제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지금의 세계화보다도 더 절박한, 먹느냐 먹히느냐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도 (비서구권) 근대화의 모범사례였던 일본이 이를 포기하였음을 살펴본 바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빠른 변화를 선전하고 촉구하는 선지자들은 근본적으로 진보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가 발전/진보하지 않고 퇴보할 것이라고 예측한다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변화, 그것도 빠르고 급격한 변화를 촉구할 수 있겠는가?


4. 세계화와 영어교육: 진보는 어디에?

1988년 처음 PC통신을 시작했을 때, 필자는 1200bps 모뎀을 이용하여야 했다. 20년이 지난 현재는 100Mbps 이더넷 접속을 이용하고 있으니 통신용량은 10만 배가 된 셈이다. 램은 3천2백 배(640KB→2GB), HDD는 7만5천 배(20MB→1.5TB)로 증가하였고 컴퓨터의 속도 또한 엄격하게 측정하긴 어려우나 이에 준하는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이러한 경향을 대표하는 것이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다. 인텔의 창업자 고든 무어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이 경험법칙은 전자업계에서 집적회로의 트랜지스터 수가 2년마다 대략 2배로 증가하는 경향을 예측하였다. 이에 따르면 30년 동안 IC의 집적도는 약 3만2천 배 정도 증가한 셈이 된다.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힘이야말로 세계화의 주요한 추동력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세계는 날로 좁아지고 있다. 메이플라워호가 대서양을 건너는 데는 3개월, 1924년 찰스 린드버그가 비행기로 횡단하는 데는 24시간이 걸렸다. 그 거리조차 지금의 콩코드로는 3시간, 탄도미사일은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1990년의 대서양 횡단비용은 1950년의 3분의 1에 불과하며, 뉴욕과 런던 간의 통화비용은 20세기 중반 같은 거리의 통화비용과 비교하면 6%대로 떨어졌다. 전지구적 인터넷 통신은 거의 동시적이고, 그 전송비용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아시아에 있는 환경운동가 또는 아프리카에 있는 인권운동가는 지금, 한때 정부나 초국가적 기업들 같은 거대한 조직만이 누릴 수 있었던 커뮤니케이션의 귄력을 가진다.

Nye, Joseph S., 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 An Introduction to Theory and History, 3rd Ed., Longman, 2000
(양준희 역, 『국제분쟁의 이해: 이론과 역사』, 서울:한울 아카데미, 2001, p.15)

이와 같은 급속한 발전은 근대의 시작 이래 각 산업부문에서 차례차례 일어났다. 섬유와 직물산업, 석탄/석유와 같은 에너지, 철강생산량, 철도와 선박의 수송량, 가정에 대한 전기와 전화, 자동차의 보급 등등 그러한 변화들의 사례는 이루 다 셀 수가 없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과 생산력의 폭증이 발생한 현상을 우리는 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진보에 대한 신념은 이러한 산업혁명 이후의 빠르고 지속적인 기술과 생산력 발전을 경험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몇만 년에 달하는 인류 역사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야 등장한 새로운 개념이다. 근대 이전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 사회는 지속적이고 확실히 발전하게 된다는 진보사관은 무척 생소한 것이었다. 진보사관이 등장하기 전에는 그리스 신화의 황금시대나 중국의 요순시대처럼 과거가 더 좋았다거나 미래 어느 순간에는 심판의 날이 온다는 식, 또는 정치체제가 돌고 돌것이라는 순환사관, 혹은 인간세상은 별다른 변화가 없이 계속된다는 것 같은 사고방식이 판을 쳤던 것이다.

자 그건 그렇고, 세계화 시대이기 때문에, 정보통신이나 항공운송 등의 비약적 발전을 통해 외국과의 접촉이 빈번해졌기에 사회구성원의 전반적인 영어구사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 보자.
좋다. 그러한 수요가 늘어났다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이다. 그럼 공급측면은 어떠한가?

우리는 1988년에도 중고등학교 과정 6년 동안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2008년 현재 우리 교육과정은 연간 같은 수업시간을 이수하고 평균적으로 동등한 학력을 가진 졸업생을 중학 3년에 배출할 수 있게 되었는가? 만약 가능하다면 20년에 2배 발전한 것으로 간주해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이러한 진보는 지속가능한가? 예를 들어 2028년엔 18개월만에 그런 학력을 갖추게 할 수 있는가? 그럼 2048년엔 9개월?

1세대가 약 25~30년인 인간이 유전적 진화를 통해 2년에 2배씩 발전하는 전자/정보통신기술을 따라잡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학습법이나 교수법의 발전 또한 발전이 미미하거나 느려서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사실 우리가 객관적으로 교육환경의 개선과 발전이라고 생각해 온 것들은 실제로는 교육기술의 퇴보나 적어도 정체를 의미하고 있는 것일 공산이 크다.

대표적인 것이 학급 당 인원수의 축소이다. 콩나물 교실의 해소는 모든 사람이 바람직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더 많은 교사를 동원해 더 적은 학생을 가르치게 된 것이 기술의 발전인가? 그럼 더 많은 직공을 동원해 더 적은 수의 자동차를 조립하면 그것도 기술의 발전이란 말인가?
학급 당 인원수의 지속적인 감축은 교육기술의 발전이 미미하기 짝이 없는 상태에서 교육의 질을 개선하라는 압력을 강하게 받다 보니, 노동 투입을 늘려 해결한다는 식의 고육지책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1)학습하는 인간의 능력, 2)인간에게 어떤 내용을 가르치는 교육기술 양 측면에서 우리는 거의 전혀 진보를 이루고 있지 못하다. 공급능력이 사실상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진보는 무조건 가능하고 또 달성해야만 한다는 선지자적 신념을 품은 채 영어(혹은 다른 어떤 과목이라도)의 필요성(수요)이 늘었으니 거기 맞추어 영어교육의 질과 양을 획기적으로 개선해내야만 한다라고 막무가내로 주장하면 무척 난감하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영어학습강화나 영어공용화를 원하는 사람이 먼저 찾아내야 하는 것은 현재보다 월등히 학습효율이 높은 초학습법 내지는 잘 때 끼고 자면 몇 주 만에 영어를 술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수면학습기 같은 SF적인 발명품이다. 그런 초기술을 값싸게 대량생산할 수 있다면 부자든 가난뱅이든 평등하게 순식간에 영어를 마스터할 수 있을 테니 바바 타츠이가 걱정한 것 같은 사회계급의 분열같은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게 된다. 따라서 그 기술이 가져올 사회적 파급력 만큼 진보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자, 다들 뭐하나? 어서 성배를 찾아야지!!


by sonnet | 2008/02/19 23:39 | 문화 | 트랙백 | 핑백(1) | 덧글(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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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선 글,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론: 혹은 진보의 성배를 찾아서에 대한 논평에 답하기 위한 포스팅. 그리고 어느 정도 유사한 다른 질문 가끔 질문은 간단명료한데 답변은 상당히 까다로운 경우가 있다. 이번 경우가 ... more

Commented by lee at 2008/02/19 23:47
sonnet님의 글이 아니었으면 크게 오해하고 지나갈 뻔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사람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알 수 있다더니...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2/20 00:28
오오, 순면대제님을 청와대로!!! (응?)

이미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권에선 깨진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화 떡밥을 드리운 채 되살아나곤 하는
그 '무한한 진보에의 신념'은 처치 곤란하지요.
아니, 그 이전에 그게 '진보'인지부터가 모호한데야...

* ...이렇게 되면, 차라리 인간의 영혼의 정체를 규명하고
그걸 하드나 플로피마냥 자유자재로 백업하고 교체할 수 있는
8, 90년대에 공상하던 사이버펑크 시대가 도래해야 가능할려나...
물론 그래도 무리겠지만...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8/02/20 01:19
그 친구들은 영어몰입교육이니 영어학습강화니(아마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영어공용화, 그리고 그 뒤에 말씀하신 것처럼 영어전용화) 하는 것들을 성배라 여기고 있잖아요.

아우아우. 차라리 모든 한국인을 죄다 얼음감옥에 가뒀다가 꺼낼 수 있다면...
Commented by CAL50 at 2008/02/20 08:44
성배를 찾기는 찾았는데 '몬티 파이슨의 성배'라면....
Commented by sprinter at 2008/02/20 09:25
저랑 비슷한 결론이시기는 한데^^;; 너무 사회의 진보를 꿈꾸는 사람을 비꼬는건 좋지 않아요^^;;

더군다나, 이 꿈은 '성배'가 발견이 되면 이룰수 있는 꿈이지요. 다르게 말하면 나쁜 꿈은 아니기도 하고^^ 그러니 '실행 레벨에서의 불가능' 정도만 까셔도 될텐데, 너무 심하게 까삼. ㅋㅋㅋ. 물론 현실주의자라면 당연히 이렇게 까야 합니다만, 저로서는 진보적 사고 자체에 대한 어떤 비꼼으로 읽혀서, 쉬이 동의하기는 어렵군요. ㅋㅋㅋ

Executrix / 여기서의 성배는, 영어 학습능력을 올릴 수 있는 '학습 기법'을 말하는 겁니다. 당연히 이명박 당선위원회도 성배를 '영어 몰입 교육'에서 찾고 있구요. '영어 공용화'가 성배인건 아닙니다.^^;; sonnet님이 너무 과도하게 비유를 사용하신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8/02/20 09:33
복거일 선생의 대표작 "비명을 찾아서"의 내용이 일본 식민지가 지속되어 결국 자신들이 '조선'이라는 별개의 민족이었단 것도 잊어버린 1980년대의 "일본제국 조선반도"의 지식인이, 이미 사라져 버린 조선어를 다시 찾으려다 고초를 겪는 내용이란 점과, "시간 속의 나그네"에서는 16세기 조선을 그리면서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당시 한국어를 복원하여 쓰려고 노력했던 점에 비춰볼 때, 현재의 복선생의 행보를 보면 참 아이러니지요.
어쩌면 복선생이 "비명을 찾아서"에서 그린 "조선어 없는 조선"은 겉으로는 디스토피아지만, 복선생의 무의식 속에서는 유토피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보니 그 소설 주인공도 "회사 내에서 영어의 1인자"였었군요^^;)
Commented by 모튼 at 2008/02/20 10:14
'더 많은 교사를 동원해 더 적은 학생을 가르치게 된 것이 기술의 발전인가?'

이 말에 충격 받았습니다. 과연, 학습에 대한 진보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군요.
Commented by 개멍 at 2008/02/20 10:38
킬러 토끼가 무서워서 성배는 안 찾을래요. *후다닥*
Commented by 루시앨 at 2008/02/20 11:44
프랑스혁명 이래 좌파나 우파 둘다 (약간의 오해를 무릅쓰고 말한다면) 진보에 대한 신념을 공유한만큼, 2MB와 mahlerian님의 결론이 비슷한것도 이해가 갑니다.

궁금한 것은, 현실주의자에겐 진보가 어떤의미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답은 현실주의자에게 현재로 불리는 시간대에 발전하는 것은 발전하는 것으로, 그렇지 않은 것은 일정한 것으로 보고 그에 맞춰서 자신에게 주어진 욕구를 달성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실주의자이신 sonnet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이상주의자(+레비스트로스주의자?! 혹은 파르메니데스주의자(?))쪽에 가까운듯 해서 진보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입니다.^^;
Commented by sugar at 2008/02/20 12:39
대제님의 말씀에 토를 달기에는 제 깜냥이 한없이 부족하기도 하고, 주제와 관계없는 짧은 단견을 툭 던지는 것 같아 외람되긴 합니다만,
1. 기술의 발전 속도가 시간의 급수함수로 표현된다고 해서 그 기술의 활용에 따른 인간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속도역시 그에 정비례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2. 학습과 교육에 관한 인간 능력과 방법론에 대한 연구와 이해는 꾸준히 발전되어 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엘리트가 아닌 보통 교육의 양과 질, 대중이 가지고 있으리라고 기대되는 지식 의 질과 양, 특히 양의 측면에서 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물론 이것이 기술의 발전속도와 비교해서 어떠냐 하면 잘 모르겠습니다만 ^^

그나저나 그놈의 성배... 찾았다고 속이고 프라스틱 컵이라도 팔아치우면 크게 한 탕 칠 수 있을 텐데요...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8/02/20 13:06
sprinter / 아마 괄호 안에 딱 하나의 단어, '궁극적으로' 라는 말을 쓰지 않아 생긴 오해인 듯하군요. 하지만 sprinter님의 논리로도 영어공용화 = 성배라는 공식이 성립합니다. 무슨 세뇌 장치라도 존재하지 않는 한, 영어공용화 혹은 영어전용화만큼 영어를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나요? 몰입교육도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전 이명박 쪽이 당장은 영어몰입교육같은 것을 성배라 여기고 있다고 보지만(월등히 효율이 높은 초학습법이라면), sprinter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니 방법 측면에서만은 영어공용화야말로 성배라는 타이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비록 전 극력 반대입니다만.
※그러고 보니 영어공용화를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그대로 영어공용화로 귀결되어 버리는군요. 이건 뭐 답이 없고... 우와아아앙
Commented by at 2008/02/20 14:05
엉뚱한 얘기지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떠오릅니다.
물고기를 귀에 살짝 넣으면 전 은하계 어느 행성의 말로도 다 통역이 되는데요.
그런 게 발명된다면 진짜 성배 하나 찾은 게 될 터인데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2/20 14:14
영어공용화론이란 실은 전용화론의 가면이었군요...

그나저나 복거일이나 그 일당(?)들은 보통 자신들이 '현실','실용'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는듯 한데 실상은 이상주의자의 극단적인 사례가 아닐까요?
Commented by Eraser at 2008/02/20 15:50
뭐더라... 타국의 입말을 실시간으로 그것도 안면이랑 목에 살짝 붙여서 아주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번역기'를 만들려고 한다는데 (시제품까지 있더군요) 이제는 글말이 문제라고 해야하는건지 (...)

아마도 제가 성배를 찾는다면 '글말을 실시간으로 번역해주는 킹왕짱 선글라스'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기 두르는 번역기랑 반띵이나...우와앙)
Commented by rgc83 at 2008/02/20 21:28
이미 위에서 몇몇 분들이 제기하신 이야기이긴 하지만, 저 역시 sonnet님께서 진보라는 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시는 건지 궁금해지는군요.

인간 사회가 퇴보나 정체 없이 계속 진보만 할 것이라는 식의 진보사관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솔직히 그리 수긍하기가 어렵습니다만, 그렇다고는 해도 진보사관에 대한 대안이랍시고 지금보단 옛날이 나았다느니 하는 식의 복고주의적 사관이나 역사는 돌고 돈다는 식의 순환사관 같은 것을 우리가 살아나가는 이 세상에 곧이 곧대로 적용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진보적 사고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부정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은 일이라 봅니다. 물론 2MB의 영어몰입교육론이나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론(을 가장한 한국어폐지론) 같은 극단적인 경우는 (그게 과연 올바른 진보인지 조차 의문스러우니만큼) 역시 좀 까일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8/02/21 10:09
rgc83님// 일전에 대제께서 모 블로거와의 논쟁에 현실주의 정치이론을 소개하시면서 이미 이상주의쪽 이론을 현실상에서 적용한 사례를 포스팅하신 바가 있지요. 한번 찾아 보시면 도움이 되실듯.


복거일의 주장을 듣다보면 오늘의 처지는 단칸 셋방인데 내일이면 베르사유 궁전을 거닐 수 있을것이다!! 같은 과대망상증을 갖고 있는게 아닐까 의심스러워집니다.

최소한 '로또에 당첨된다면'이란 조건이라도 붙어준다면 일말의 가망이라도 있겠지만 지금 그네들이 성배라고 생각하고 붙잡은 '영어집중교육정책'은 성배가 아니라 로또의 경지에도 들 수 없는 것이니 말입니다;;
Commented by 어부 at 2008/02/21 13:15
해결책 하나; '총몽'의 자렘 시민.
해결책 둘; 의무적으로 20세까지 영어를 유창하게 하도록 하고 거기 못 미치는 사람은 모두 제거(!)

첫번째 해결책은 바로 해결이 가능합니다만 아직 기술이 거기 미치지 못했죠.
두번째 해결책은 기술이 받쳐주고 실현도 가능합니다만 얼마나 찬성들 하실지 ^^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8/02/21 21:52
20여년만에 학급당 학생수는 20여명 줄이는 데는 성공했지만(금년 맡은 학급은 40명...) 교육의 질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에 대해선 차마 그렇다는 답을 못하겠군요. -_-;;
Commented by 땅콩샌드 at 2008/02/22 01:42
복거일씨가 사상적으로 요단강 건너가는 분이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희화화될 수준은 아닙니다.
Commented by 나츠메 at 2008/02/22 09:57
sonnet님/
논리적이고 명확한 글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1. 학습법과 교수법의 개발이 느리긴 하지만, 인간의 학습능력을 끌어올리는 것 보단 좀 낫다고 생각합니다. 학습법과 교수법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하드웨어 기술 개발이 동시에 이루어 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2. 인간의 학습 능력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영어 공용화를 통해 어릴 때부터 지속적인 영어 학습을 도모하는 것과 동시에 영어 사용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는 않을런지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2/22 17:56
성배! 성배! 제가 성배를 쥔다면, 세계를 지배하겠습니다(응?)
Commented by sonnet at 2008/02/25 12:38
lee/ 어떤 걸 오해하실 뻔 하신 겁니까. 복거일의 그랜드 플랜?

paro1923/ 헉, 호수의 개구리들에게 또 무슨 괴물딱지가 필요한 겁니까.
그건 그렇고 진보에 대한 신념이란 건 사실 성선설의 현대화된 버전이라고 봐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단순한 비유가 아니고 실제로 교과서들에서 종종 언급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Executrix/ 진짜로 성배라고 믿어서인지, 성배가 필요해서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CAL50/ 깔깔깔

sprinter/ 그런 이야기는 성배가 발견되고 나서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들이 모두 성배를 찾으러 떠나서 원탁에서 보이지 않게 되면 그것도 우리 세대를 위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네비아찌/ 복거일은 대단한 연구가치가 있는 인물이 아니어서 그의 심리상태까지 따져볼 엄두는 나지 않습니다만, 하여간 아이러니는 아이러니입니다. 정말.

모튼/ 예를 들어 우리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에너지원을 몇 차례 바꾸었습니다. 목탄에서 석탄, 석탄에서 석유, 증기기관에서 전기모터 같은 식이죠. 이는 에너지 생산의 총량뿐 아니라 그 편리성이나 응용가능성에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왔습니다.
교육의 경우 우리는 사람을 바꿀 수는 없는데, 이것은 에너지원으로 나무에만 의존하면서 산업혁명을 달성하라는 것 만큼이나 가혹한 조건이 아닐까 합니다.

개멍/ 크.

루시앨/ 과거에 일어났던 진보는 이미 사실이 되었으니까 솔직히 인정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성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개선하는 우리들의 능력에 관해서는 비관적인 관점을 견지한다 쯤 될 것 같군요.

sugar/ 하하, 전대인께서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그래.
1. 동의합니다. 그런 것을 정식화한 것이 Amdahl's law가 아닌가 합니다.
2. 저는 대중이 가지고 있으리라고 기대되는 지식 수준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개인이 소유한 지식의 평균양/인류사회가 창조해낸 지식의 총량]은 어떻게 변해왔을까요. 그건 뭐 굳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지속적으로 급락하고 있을 게 뻔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지식은 다른 지식보다 더 중요하고 만인이 공통으로 알아야 하는 유형이어서 거기 가중치를 충분히 준다고 해도 이 경향은 역전될 것 같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교양이 파편화되는 현상은 그런 응집력있는 공통지식의 붕괴를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약장수 한두번 보는게 아니잖습니까.

펄/ 그렇죠. 그런 게 있으면 감히 성배라고 할 수 있지요.

행인1/ 저정도로 내심을 솔직하게 드러내는걸 보면 복거일도 정치인하긴 틀린 것 같습니다.

Eraser/ 뭔가 "내귀에 전파가!" 같지 않습니까?

rgc83/ 어떤 수준의 답변을 원하십니까? 짧은 버전으로 말하자면 저는 소위 보수주의라고 불리는 관점과 시각을 공유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런 문제에 대한 저의 포지셔닝은 http://sonnet.egloos.com/3026982 의 도해도 좀 참고가 될 것 같긴 하군요.

라피에사쥬/ 복거일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지지하고 싶은 "목표"를 정해놓고 나머지는 그 목표가 말이 되게 보이도록 적당히 짜맞추는 글을 써 놓았는데, 정말 가관입니다.
예를 들어 복거일은 자기 글에서 사람은 한 가지 언어만을 제대로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영어를 제1언어로 삼아야만 하며, 영어를 한글로 통-번역하는 것은 불완전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다음 반대론자들에게는 영어전용화가 완료된 다음에도 번역을 통해 한글로 된 우리의 문화유산을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고 해명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

어부/ 그정도 담대한 해결책을 채택할 바에는 모 SF처럼 60세 이상을 모두 전기의자로 보내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습니다. 보건문제에 관련해 획기적인 효율향상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늘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그 분야의 연구자나 실무자의 문제라기보다도 문제 자체의 본질이 원래 어려운 것이어서 발생하는 문제이니 누굴 탓할 일도 아닌 듯.

땅콩샌드/ 사실 생각하시는 것과 반대로, 복거일은 이정도로 진지하게 상대해 줄 가치가 있는 인물인지 무척 의심스럽습니다.

나츠메/ 1. 이루어지면 낫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루어지고 나서"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2. 그게 더 효율적이란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사실 복거일이 영어전용화를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어/영어 병용체제는 효율적이기 힘들다는 판단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거일이 제시한 논거 몇 가지, 예를 들면 querty는 필자 자신의 착각과는 반대로 그것이 비효율적일 것임을 주장하는 좋은 논거입니다.

슈타인호프/ 그래 그래, 하여간 롱기누스의 창을 조심하시구랴.
Commented by rgc83 at 2008/02/25 16:33
으흠, 저는 sonnet님께서 '진보적 사고를 하는 행위'나 '인류 사회의 향후의 진보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 또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진보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를 세상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의미 없는 행위로 여기고 부정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했었습니다만(더불어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철저하게 회의주의적 또는 염세주의적이고 철저하게 현상유지론적인 관점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만)... 제 추측은 잘못된 것이었던 것 같군요. 그 점에 대해서 사과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사실 제가 저런 덧글을 위에 남겼던 이유는, sonnet님의 글을 읽은 뒤 '나는 이메가바이트나 복거일과 동류의 인간인 것인가?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진보적 시각을 갖는 것은 비정상적인 행위인 것인가?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을 가져야 정상적인 것인가?'라는 당혹감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당혹감에 대해서는 결국 해답을 얻을 수 없을 것 같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2/25 16:57
rgc83/ 그렇다면 별도 포스팅으로 긴 버전의 답변을 해 보겠습니다. 정치적 스펙트럼 상에서 보수주의가 회의주의적이고 성악설에 기반을 둔 것은 맞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는 진보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진보가 존재할 것인가라기 보다, 진보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Commented at 2008/02/26 04:2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2/28 19:58
비공개/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 강의'(라디오나 TV강좌의 최종진화형)란 것이 교육기술발전의 한 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문제는 그게 현재까지는 일방적인 주입이라, 교육의 질적 측면은 여전히 형편없고, 총체적인 효율향상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인지 자신할 수 없더군요.
Commented by 코피루왁 at 2008/03/25 20:03
성배를 찾으면 세계를 지배하고 난 후 강압적으로 국어를 세계공용어로...... 각 나라마다 가서 창씨개명을 강요하는거죠. 칼 슈미트는 독일 갈씨의 성을 만들고 갈 대장장이 이렇게.....--;; 죄송합니다. 그 어륀지 총장님 때문에 모교가 쑥대밭 이런 소리 들어서...ㅠ.ㅠ 가슴이 아픕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3/26 19:12
코피루왁/ 흐흐... 국제적인 원한을 사는 것입니까.
사실 그 총장도 그렇고 대통령도 그렇고 왜 그렇게 "말하기"에 집착하는지 좀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이건 꼭 영어에 집착한다기 보다도, "말하기"의 중요성의 상대적 부각이 더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Claudius at 2008/05/29 22:37
음, 개인적으로 영어공용화에 반대한다는걸 먼저 짚고 넘어가면서..

다소 지엽적인 부분이긴 합니다만, '우리가 교육의 진보라고 믿어왔던 부분들이 실제는 정체나 퇴보일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인데요..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그 말이 맞습니다. 세상은 변하는데 교육수준이 그에 준하는 속도로 변하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는 퇴보이겠지요.

우리나라 공교육이 몰락한 이유를 들자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겠지요
1. 학급당 학생수의 과다: 제가 보기에는 학급당 학생수가 15명 안팎으로 줄어들지 않는이상 공교육 정상화는 불가능합니다. 지금과 같은 1반당40명 체제로는 주입식 수업 이외에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5쪽자리 페이퍼 40명분을 교사가 어떻게 채점하겠습니까...)

2. 후진적인 교육시스템: 교육의 쌍방향성이 전혀 없습니다. 학생들로서는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까지 책만 열심히 외우고 문제풀이만 잘하면 되는 이런 상황에서 뭔가 진보가 있길 기대하는건 무리죠. 책한권 안읽고도, 제대로 된 리포트도 안써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니까요. 뿐만 아니라 소넷님이 지적하신 학습방법의 개선도 전혀 없죠. 학생들에게 효율적인 공부방법을 가르치지보다는, "닥치고 밤새서 공부해" 식이니 효율이 있을리가 없죠.

3. 하향평준화: 효율적인 교수학습의 기본중의 기본은 수준별, 개인별 맞춤교육인데, 나눗셈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과 수능 모의고사 1등급을 찍는 아이들을 한 반에 때려넣어서 같이 가르치니 제대로 될 리가 없죠. 선생들은 학생들의 수준을 모르니 교과서만 읽고 나가는 수준이고...

p.s. 이명박의 영어공교육 강화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다수 학교들은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능력을 거의 상실했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기존의 과목도 제대로 못가르치는데, 갑자기 선생 몇명 더 뽑아 보낸다고 해서 안되던 영어가 될 리가 없죠.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명박 정책의 핵심인 말하기 중심의 영어평가에 대한 대비를 학교안에서 소화하기 위해서는 학교 수업시간에 영어 말하기와 작문을 가르쳐야 합니다만, 교실당 학생수가 40명이고, 주입식 교육만이 가능한 현실에서 그런 교육이 가능할 리가 없죠. 결국에는 학부모들의 돈으로 영어학원 배만 불려주는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높은듯...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악명높은 비효율성은 분명 해결되어야 하지만, MB정책은 흠좀무..

Commented by sonnet at 2008/05/30 23:47
1번은 과거 제가 학교다니던 시절에 학급 당 55~70명이었는데, 당시엔 40명만 되면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처럼 이야기들 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기루를 쫓는 느낌.

2, 3번은 사실 과거에도 이렇지 않았던 적이 없기 때문에 몰락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측면은 결국 질보다 양을 일단 채우기 위한 교육의 특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야 적은 수의 교사로 많은 학생에게 가르칠 수 있으니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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