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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근대화: 헌법과 국어

1. 모리 아리노리 대 이토 히로부미

1887년 6월, 일본은 메이지 천황의 참석 하에 추밀원에서 제국헌법초안(帝國憲法草案) 심의를 갖고 최초의 헌법을 제정하게 되는데, 이 때 모리 아리노리(森 有禮, 1847~89)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사이에 기묘한 논전이 벌어진다.

[헌법] 제2장의 「신민의 권리의무」 항목의 심의에 들어갔을 때, 모리 아리노리는 갑자기 원안(原案)에 대해 중대한 이의를 제기했다. 귄리의무라는 말을 헌법에 기재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신민이라는 것은 ‘서브젝트’(subject)이며, 따라서 신민은 천황에 대해서는 ‘분한’(分限)과 ‘책임’을 가질 뿐이며 권리는 아니다. 때문에 그것을 모두 ‘신민의 분수(分際)’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토는 즉시 모리를 반박하여 이렇게 말했다.
“모리 씨의 주장은 헌법학 및 국법학에 퇴거(退去)를 명한 학설이라 해야 할 것이다. 무릇 헌법을 창설하는 정신은 첫째로 군주의 권리를 제한하고, 둘째로 신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있다. 때문에 만약 헌법에서 신민의 권리(權理)를 열거해 놓지 않고 그저 책임만을 기재하게 되면, 헌법을 마련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신민에게는 무한한 책임만 있고 군주에게는 무한한 권리만 있는 나라, 이를 가리켜 군주전제국이라 한다. ……모름지기 헌법에서 권리의무를 제외하게 될 때, 헌법은 인민의 보호자일 수 없게 된다.”

丸山眞男, 『日本の思想』, 岩波書店, 1961
(김석근 역, 『일본의 사상』, 한길사, 1998, p.97)

오늘날의 우리가 보기에는 무려 헌법을 만들면서 모리 아리노리와 같이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다 있을까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헌법은 영국의 마그나카르타처럼 의회가 국왕을 굴복시킨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자유민권운동을 탄압하면서 전제군주인 천황과 주요 대신들이 모여앉아 어전회의를 펼쳐놓고 뚝딱뚝딱해서 만든 것인 만큼 그 내용이 왕권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 되기 쉬움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천황 앞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무엇을 믿고 "군주의 권리를 제한하고 신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헌법이라며 당당한 ‘진보주의자’처럼 굴었는지가 더 관심을 끈다. 도대체 이토는 왜 그랬을까?

이 의문의 답은 이날의 헌법초안 심의 벽두에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가 피력한 헌법 제정의 근본정신에 대한 소신에서 찾을 수 있다.

헌법정치는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일찍이 역사에 증거 삼을만한 것이 없어서, 그것을 우리 일본에 시행하는 것은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실시한 후 그 결과가 국가를 위해서 유익한 것이 될지, 아니면 반대가 될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20년 전에 이미 봉건정치를 폐하고 각국과 외교관계를 연 이상은, 그 결과로서 국가의 진보를 도모하는 데 이를 버리고는 달리 헤쳐나갈 좋은 길이 없음을 어찌하겠습니까. …… 유럽에서는 금세기에 들어 헌법정치를 시행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곧 역사상의 연혁에 따라 성립된 것이며, 그 싹은 멀리 오랜 옛날에 트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와는 달리 우리 일본의 사정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속합니다. 때문에 이번에 헌법이 제정됨에 이르러서는 먼저 일본의 기축(基軸)을 찾아서, 일본의 기축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확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축 없이 정치를 인민의 함부로 하는 논의에 맡겨둘 때 정치는 그 통기(統紀)를 잃어버리게 되고, 국가 역시 폐망(廢亡)하게 됩니다.

丸山眞男, 같은 책, pp,83-84

헌법이 좋은지 나쁜지는 모른다. 하지만 유럽 국가는 다들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도 반드시 헌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헌법제정의 이유이다.그리고 서양의 헌법이란 것은 "첫째 군주의 권리를 제한하고, 둘째로 신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라고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독을 먹을바에야 접시까지」(毒を食らわば皿まで)란 자세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철저함이야말로 일본이 비서구권으로는 유일하게 근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동 시기의 중국이 중국의 전통적 유교도덕을 바탕으로 서양의 과학기술과 그 성과를 선별적으로 덧붙이겠다는 중체서용론(中體西用論)에 입각한 근대화를 추진하였던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중국에서도 입헌운동이 여러 차례 전개되었지만, 결국 청조는 멸망할 때까지도 입헌군주제로 이행하지 못하였다. 즉 "무력이 강한 것이야 어차피 오랑캐니까"라는 정도의 안이한 생각으로는 왕권을 제약하는 헌법이라는 쓰디쓴 독약을 삼킬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일본의 그런 약간 엉뚱한 접근법이 서구와 완전히 동등한 결과물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일본에서 기축으로 삼아야 할 것은 오로지 황실(皇室)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헌법초안에서는 오로지 뜻을 그 점에 모아 군주의 권한을 존중하여 가능한 한 그것을 속박하지 않는데 힘썼습니다. …… 다시 말해서 이 초안에서는 군주의 권한을 기축으로 하고, 한결같이 그것을 훼손시키지 않을 것을 기약했으며, 감히 저 유럽의 주권분할의 정신에 의거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유럽 몇 나라의 제도에서 군주의 권한과 백성들의 권한을 같이 존중하는 것과는 그 취지를 달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丸山眞男, 같은 책, pp,85-86



2. 모리 아리노리 대 바바 다쓰이

그러나 헌법을 만들어 천황의 대권에 스스로 올가미를 거는 모험도 서슴지 않았던 일본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이번 사건에서도 앞서 헌법 제정 논쟁에서 보았던 일본 근대 교육의 아버지 모리 아리노리가 총대를 메고 등장한다.

가토: 그런데 메이지 시기의 일본에서는 왜 번역주의를 택했던 걸까요?

마루야마: 잘 아시다시피 자유민권운동의 투사인 바바 다쓰이(馬場辰猪, 1850~1888)는 영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는 영문으로 된 『기초 일본어 문법』(Elementary Grammar of the Japanese Language, with Easy Progressive Exercises)이라는 책을 펴냅니다. ……

가토: 1873년(메이지 6)이지요.
……
마루야마: 예, 1888년(메이지 21)에는 증보판도 나오는데, 이 판에서는 서문이 약간 바뀌어 있습니다. 원래의 서문은, 지금 가토 씨가 말한 ‘왜 번역주의인가’에 대해서 답하고 있지요. 사실 이 글은 모리 아리노리(森 有禮)에 대한 반박입니다.
모리는 모리대로 『일본의 교육』(Education in Japan)이라는 유명한 책을 출간했습니다. Series of Letters, 곧 그의 서간문 시리즈인데, 뉴욕 애플턴(D. Appleton) 출판사에서 1873년 1월에 나왔습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모리는 ‘영어를 국어로 삼자’고 하는 유명한 주장을 폈지요. 야마토 말에는 추상어가 없기 때문에, 야마토 말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서양문명을 일본 것으로 만들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기회에 차라리 영어를 국어로 채용하자는 주장이지요. 거기에 대한 반박이 이 바바의 서문인 겁니다. 이 글은 무척 재미있습니다. 만일 일본에서 영어를 채용한다면 어찌될 것인가. 상류계급과 하층계급 사이에 말이 전혀 통하지 않게 되고 말 것이다라는 의견을 바바는 개진합니다.

가토: 그거 대단하군요. 지금도 인도가 안고 있는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계급간의 깊은 골이지요. 그 첫 번째 요인은 경제적 격차이고, 두 번째 요인이 언어입니다.

마루야마: 굉장하지요. 바바는 인도의 예를 적확하게 증거로 삼아서 상층이든 하층이든 국민은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가토: 인도에서는 어떤 지역에도 통하고 어떤 계급에도 통하는 언어가 없었죠. 정치가가 전국 유세를 할 때 영어로 말하면 지역 차를 넘어서 어디든지 통하지만, 그것은 상층계급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특정지역의 언어로 말하면 그 지역 사람들에게는 계급을 초월해서 누구든 알아듣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였지요. 조건이 다른 일본에서 굳이 영어를 도입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라는 거지요.

마루야마: 모리처럼 영어를 국어로 삼자고 하는 주장도, 지금 가토씨가 말한 것과 같은 시대였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습니다. 바바는 언어가 달라져버리면 하나의 나라를 이룰 수 없을뿐더러, 하층계급의 대다수가 국사(國事)라는 중대문제로부터 배제당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지요. 결국 영어를 제것으로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니까요. 일반대중과 엘리트의 언어 두 개가 생겨나고, 중요한 일을 모두 영어로 처리하게 되면 영어를 쓰는 엘리트만이 국사를 담당하게 되고 만다, 결국 대중은 국사로부터 소외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내용의 긴 서문을 쓴 거지요.

가토: 사회를 상하의 계급적 구조로 보는 것, 그 계급을 각자의 문화와 결부시켜 생각하는 것 - 그건 당시에 그 누구도 명료하게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통찰입니다.

마루야마: 그런데 영어채용론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론 문제 밖이기 때문에 1888년판 서문에서는 그 구절을 삭제해 버립니다. 결국 모리에 대한 반박이었으니까 말이죠. 메이지 6년 단계에서는 아직 어찌될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혼돈상태에 있을 때니까요. 그렇지만 메이지 21년이 되면 이제 영어를 국어로 하자는 식의 주장은 나올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삭제해 버렸던 거죠.

丸山眞男, 加藤周一, 『翻訳と日本の近代』, 岩波書店, 1998
(임성모 역, 『번역과 일본의 근대』, 이산, 2000, pp.49-52)

여기서 야마토 말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서양문명을 일본 것으로 만들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기회에 차라리 영어를 국어로 채용하자는 모리의 주장은 이토가 말했던 헌법이 필요한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즉 이들을 몰아붙인 주요한 동기는 근대화에 대한 절박함이었던 것이다.

바바 다쓰이는 이에 대해 이런 식으로 접근하게 되면 엘리트와 대중의 언어가 괴리되면서 대중이 교육, 정치, 사회 전반에서 배제, 소외되고 말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관계는 중세 유럽에서 라틴어와 엘리트층, 혹은 조선에서 한문과 양반사대부들의 관계와 흡사한 것이며,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커다란 시사점을 갖는다.

어찌 되었든, 이번만큼은 그 지독하다던 일본도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영어공용화는 도저히 일본의 능력으로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바바의 지적도 통렬한 것이었지만, 이 제안은 그것이 아니더라도 현실의 높은 장벽 앞에서 빠르게 사그라져 갔다.

일본이 영어공용화 대신 (이라기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선택한 길은 바로 번역이었다. 그 후 130여 년에 걸쳐 일본은 성공적인 근대화를 거쳐 비서구권에서 서구 강대국들과 어께를 나란히 하는 유일한 비서구권 선진국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by sonnet | 2008/01/28 00:26 | 정치 | 트랙백(2) | 핑백(1) | 덧글(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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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Ha-1 at 2008/01/28 00:41
하나는 번역, 또 하나는 과학기술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열정이라고 봅니다. 언어가 달라도, 공용어(!)를 못해도, 과학기술은 통하는 수단이니까요. 이들은 적어도 자연과학에 있어서만은 한국에서 지배적인 '중심지주의' 혹은 변방 정서에 함몰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영어권국가에서조차 일본어를 배워서 그들의 논문을 찾아보게 하는 힘을 길렀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1/28 00:57
이 포스팅을 그 복거일인지 뭔지 하는 양반한테 보여주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해지는군요.
엘리트와 대중 간의 괴리...
저 영어 공용화 주장하는 '윗분'들이 노린 것도 실제론 저런 것이었던 걸까요,
아니면 맨 처음의 이등박문처럼 그냥 '선진국에서 그러니까' 따라해 보는 것 뿐일까요...
(차라리 후자였으면...;;;;)
Commented by mahlerian at 2008/01/28 01:43
복거일의 영어공용화 논지는 제가 알기로는 바바의 논지와는 반대입니다. 엘리트와 대중 간의 괴리를 막기 위해서라도 영어교육을 더 강화하고 나아가 영어공용화까지 나아가자는 것이지요(복거일은 우파라도 영어공영화 논지 자체는 좌파적임). 우리는 무슨 실시간 번역이라는 수단을 취하려고 해도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수요층이 넓지 못해서 번역이라는 또다른 비용까지 들이면 양서들이 잘 출판이 안됩니다(일본은 언어든 뭐든 독자표준 기술을 만들어도 될 정도 한국은 언제나 일본이건 영미건 유럽이건 따라가야 함). 더구나 시대가 바뀐 것까지 고려해야지요. 지식경제시대, 프로슈머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지는 마당에 영어가 정말 일부 위정자만 알면 충분한 시대인지 생각해볼 일.
Commented by 玄武 at 2008/01/28 01:50
Lisp 책을 찾는데, 국내에선 원서 밖에 없더군요. 결국 짜증이나 아마존 재팬에서 일본어판을주문. 빨리 영어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Commented by 게드 at 2008/01/28 10:03
전산쪽은 "전산영어"를 할줄 알아야하지요.. 일반영어는 잘 몰라도 됩니다 -ㅇ-;;
왠지 2mb의 나라는 외국이란 곳을 베끼기에 급급한 모양입니다..
Commented by 미친고양이 at 2008/01/28 11:12
아, 아주 통렬한 포스트였습니다.
Commented by joyce at 2008/01/28 11:24
결국 올바른 판단이 되고 만 것이지만 '하나의 나라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이 공통성에의 집착도 무시할 수 없죠.

'가토 슈이치에 의하면 일본 근대 문화의 특징은 모두가 같은 것을 읽고 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1984)에는 90% 이상의 일본인이 스스로 중류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이 긴 세월에 걸쳐 이어진 공통 문화의 흐름이 그 배경입니다.'
- 쓰루미 슌스케, 『전후 일본의 대중 문화』, 김문환 옮김(소화, 2001), 99페이지.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1/28 11:30
말을 영어로 바꾸자는건 어찌보면 더 이상 중하위계층이랑 '같은'국민이기 싫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mahlerian/ 영어공용어화가 어떻게 "엘리트와 대중의 괴리를 막기 위한 수단" 되는 건가요?
Commented by pseudo at 2008/01/28 12:07
복거일의 주장은 번역은 포기하고 모두 영어를 쓰자였지요. 세계의 1급 지식은 거의 영어로 나오니까 영어가 가능한 엘리트와 불가능한 대중 사이에 능력차가 발생합니다.엘리트는 아는 것을 대중은 모르게 되지요. 일본은 이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번역과 자생적인 학문 정립을 택했는데 복거일은 대중도 영어를 쓰게 하자가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건 둘째치고 실현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복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한국인은 우수한 민족이니까 하면 된다 수준의 주장이었습니다. 정말로 하고 싶다면 몇 십년의 계획을 잡고 교사 수급계획부터 차근차근 마련해야 될 텐데 학원 강사를 스카우트하자니 TESOL 따위 쓰잘데기 없는 자격증 소지자들을 교사로 충원하자니 심지어는 영어가 유창한 주부나 대학생을 쓰겠다는 정말 제정신인가 싶은 소리를 태연하게 하는 사람들을 보니 황당합니다.
Commented by 나지 at 2008/01/28 12:09
좋은 번역가 한명 나오는 것이 걸출한 글쟁이 하나 나오는 것보다 더 힘든것 같다고라
Commented by monsa at 2008/01/28 12:15
사실 인문학에서 일본덕을 많이 보고 있죠. 여러 인문학 한자용어는 일본인의 창작품이니.. 추상어의 부족문제는 국내 철학계라든지에서 많이 보았던 떡밥이라 데자뷰가 느껴집니다.

지인이 했던 말중에
"현대의 일본이라는 개념은 료마가 만들고, 설계는 히로부미가 하고, 완료는 맥아더가 했다. " 라는 말이 있는데 참으로 옳은말인듯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을 그런 스킴으로 묘사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Commented by 천마 at 2008/01/28 13:13
요즘 고교수업을 전부 영어로 하네 어쩌네 하는 인수위발표때문에 시끄럽기에 일본의 근대화시기에 나왔던 영어공용화론이 생각나던데 역시나 그 일을 주제로 글을 쓰시는군요.^^

사실 영어가 중요하다는데는 다들 동의하지만 중요도와 방법론에 있어서는 생각이 많이 다르죠. 다들 하는 말이지만 일본은 선진국이고 필리핀은 우리보다 후진국이거든요. 즉, 원래 영어를 써오던 사람들이 아닌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영어를 공영어로 채택한 나라중 우리를 능가하는 괄목할만한 경제적 성장을 이룬 나라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뭐 인도의 예를 드시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인도의 경제성장이 영어를 써서 더 유리한 면이 있었는가는 연구를 해볼 대상이지 그렇게 간단히 결론내릴 대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Commented by wizmusa at 2008/01/28 19:20
뭔가 답이 보이는 느낌입니다.
Commented by oldman at 2008/01/28 21:49
사실 일본의 급격한 발전의 이면에는 난학의 힘이 가장 컸습니다.
그 난학이란 서양의 학문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그들의 것으로 소화한 것이었지요.
Commented by teferi at 2008/01/28 22:42
저는 당시의 일본과 조선,청나라의 차이는 정신의 차이보다는 여건의 차이가 더 크다고 보여지는데요.

일본은 권위는 있었으나 실제 권력은 없었던 천황과 권력을 쥐고 있는 막부가 있었고 조선과 청나라에서는 왕과 그 주변의 사람들이 권위와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변화에 저항하는 지배세력을 교체하고 개혁을 수행하려고 할 때 일본은 예전부터 내려온 천황의 권위를 빌릴 수 있었으나 조선과 청나라에서는 그러한 권위를 빌릴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천황은 실제 지배를 한 적이 없으니 유신주도세력은 천황제외에는 백지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정치제도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왕과 의회가 공존하던 영국과 프로이센이라는 일본의 모범이 되는 국가가 유럽에 존재하기도 했구요.

그 때문에 일본에서는 개혁이 수월했던 반면 조선과 청나라에서는 옛 권위를 뿌리에서 부터 타도해야 했으니 개혁이 더디었던 것입니다.
Commented by 建武 at 2008/01/29 07:27
멋집니다.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8/01/29 07:55
한국의 영어 공용어화론 주장 역시 그에 대한 반대입장이 주로 '비현실성'으로 좁혀질 정도로 망상적인 성격이 강한 것 같습니다. 바바의 반박같은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영어공용화의 목표와 그 실행의 수단들이 모두 꿈같은 이야기다 보니 이 주제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진 않더군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1/29 11:16
진짜로 저걸 해버린 러시아 생각도 나는군요. (불어였지만)
Commented by 지나가던이 at 2008/01/29 14:50
한 사회에서 새로운 학문이나 개념을 배우려고 다른 언어의 어휘를 차용하는 경우는 많지만 아예 언어 자체를 도입하자는 건 매우 다른 얘기죠.
Commented by umberto at 2008/01/29 16:12
아주 중요한 주제를 다뤄 주셨군요. 아니나 다를까 요즘 영어수업 이야기 때문에 <번역과 일본의 근대>가 생각나던 상황 이었습니다. 아마 sonnet님도 인수위의 삽질을 염두에 두고 쓰셨겠지요.

일본이 영어공용화론 대신에 번역을 선택한 것은 참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지금도 일본어로 번역되어 축적된 엄청난 정보들을 생각하면 참;;;;;;; 다만 번역어의 선택이나 태도에 있어서는 좀 불만스러운게 많습니다. 예를 들면 존 로크의 <An Esasy Concernig human Understanding>을 <인간오성론>이라고 번역한 것은 정말 "뷁" 그냥 <인간의 이해력에 대한 논의> 정도로 번역해도 될텐데 말이죠. Understanding을 굳이 悟性이라고 번역한 것은 주자학의 그 세밀한 심성론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합니다만(격의불교 같은 형태랄까), 아무리 생각해도 삽질 같습니다.

그 외에도 Utility를 굳이 효용이라고 번역을 한다든지.(그냥 쓸모라고 해석하는게 더 와닿지 않습니까? 한계쓸모이론이 한계효용이론 보다야 알아먹기도 쉽고) economy는 경세제민 보다는 차라리 화식열전을 빌려서 '화식'이라고 번역을 하는게 나았겠다는 생각도 해본적이 있습니다. republic을 주나라 시대의 고사-려왕을 몰아내고 일시 귀족들의 합의정치가 있었는데 이걸 공화라고 한다죠-를 빌려서 공화라고 번역한 것은 맥락은 좀 다르지만 그래도 그럴 듯 해보입니다.

기존에 쓰이던 비슷한 개념의 한자어를 번역어로 선택한 것은 괜찮은 선택이지만, 효용이나 오성처럼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한자어를 굳이 새롭게 조합해가면서 번역어로 만든 것은 삽질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자어를 조합해서 만든 신조어-번역어들은 일반 대중에게 생소하기는 외래어나 마찬가지인데 말이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한국 학문의 진짜 문제는 이러한 일본식 한자번역어의 문제라고 봅니다. 이 일본식 한자번역어 때문에 한국번역본을 보느니 차라리 영어원서를 보는 것이 더 이해가 빠르다는;;;; 교육학 책이나 경제학은 특히 더 그렇더군요.
Commented by 나츠메 at 2008/01/30 01:58
umberto님/
1. 좋은 말씀이십니다. <human Understanding>을 '오성'이란 단어로 만든 것은 너무한 것이라 생각되나, 그 당시 일본 지식인들의 한자어를 고려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일본 번역자들이 번역할 당시에 '휴먼 언더스탠딩'을 <知性>으로 번역하기에도 좀 맞지 않고, 이해력이란 한자어도 그 당시에 없었기 때문에, 고전에서 쓰이던 오성을 따오지 않았나 하고 추측해 봅니다.

2. <효용>이란 단어를 <쓸모>라는 단어로 바뀌어 놓았을 떄 오는 혼란이 있겠지요. 경제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는, 개똥도 쓸모가 있다 없다라는 말을 씁니다. 그렇다면 경제학을 다루는 저서가 희소성의 유무를 가리지 못하는 단어를 채택한다면 그 역시 본래 어휘의 의미를 잃는 것이겠지요.

따라서 근대에 처음 접한 학문의 개념은 새로운 것으로 그 이전의 어휘가 그것을 표현치 못하므로, 새로 언어를 창조하는 한편 창조된 언어로 개념을 다시 정립시켜야 하지요. 그렇기에 근대 일본어 신조어를(사실 신조어도 아니지요 우리 일상에서도 널리 쓰이니까)단순히 삽질로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3. 자유, 권리, 등의 어휘가 그 당시에 없는 것은 확실하나, 그런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한자어를 조합해서 만든 단어이기 때문에, 한문을 능히 쓰고 읽을 줄 아는 일본인이었다면 아주 생소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또한 신조어와 신조어를 통해 재창조된 개념은 어차피 학술어가 많았으므로, 국가에서 채택하여 교육 과정에 도입하거나 널리 썼기에 최소한 공부하는 학생들은 생소하지 않았으라 추측합니다만....

4. 그리고 이렇게 창조된 어휘가 한반도와 중국으로 뻗어나가 이미 학술 및 생활에서 그 위치를 굳힌 상태에서는 동양의 공용어로서 인정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p.s: 틀리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또한 근대 일본어의 생성과 변화에 대해 아시는 분도 좀 가르침을 주세요.
Commented by umberto at 2008/01/30 19:50
나츠메// 당시 일본번역자가 어떤 고민을 거쳐서 understanding을 오성으로 번역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김용옥 선생 책이던가 어느 책에서 본 것 같은데.... 다만 서구언어에서 understanding이나 utility, economy 같은 단어들은 원래 일상용어에서 시작해서 학술용어로까지 정착을 한 단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더스탠딩을 '오성'으로 번역하고 유틸러티를 '효용'으로 번역하면 일상용어와 학술용어 사이에 괴리가 생기죠.

그렇게 때문에 정작 한국어 번역본을 읽는 것 보다 영어원서를 읽는 것이 더 이해가 쉬워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번역과정에서 일상용어와 학술용어의 분리는 일본 번역자들의 '한문식 사고' 내지는 엘리트주의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봤을때 한국학자들이 이 번역어의 문제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일상적인 언어로 다시 번역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엄복'의 <천연론>도 영어원서보다 엄복의 번역이 더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 사실 우리학문의 진짜 문제는 번역과정에서의 무임승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국, 일본은 어쨌든 번역과정에서 수많은 문제들을 고민했는데 우리는 편하게 빌려쓰기만 했죠. 사실 얼마전까지 서구고전이나 동양고전 번역물의 상당수가 일본 번역본을 무책임하게 베낀 것이었다는;;;;;;

학술용어를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교육학, 경제학 책은 더 쉬워지고 더 체계가 잡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코노미도 가계, 집안살림의 의미도 있으니 거창한 '경세제민' 보다는 '먹고사니즘'(^^)이 더 와닿는 번역이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효용이고 경제고 오성이고 원래 그렇게 거창한 단어들이 아닌데.

자유나 권리 같은 단어도 초반에는 굉장히 혼란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자유나 권리같은 단어는 효용, 오성 같은 단어 보다야 많이 쓰이니 이제는 익숙해졌지요. 일본의 '자유민권운동' 초반에 "지배를 받는 民에게 무슨 權이 있느냐? 단어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는 비판-즉 인권은 가능하지만, 민권은 개념상 불가능-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신조된 한자 번역어들이 동양삼국에서 많이 정착이 되긴 했습니다만, 몇몇 단어들은 좀 다릅니다. 공용하는 것도 있고 공용하지 않는 것도 있죠. 사실 정통 한문의 입장에서는 앞서 '민권'이란 단어처럼 어법상 성립이 안되는 신조어도 많이 있습니다. 정통 한학자 입장에서 약간 곤혹스런-개념상 성립이 안되거나 문법적으로 이상한-단어들도 좀 있었을 겁니다.

원래 번역이란 것이 개=dog처럼 일대일 대응이 되는 단어는 괜찮은데, republic 같은 기존에 없는 개념을 번역하려면 곤란해지죠. 결국 좀 다르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비슷한 것을 찾아서 갖다 붙이든지 아니면 외래어 형태로 통째로 수입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원래 공화는 주나라 시기에 폭군 려왕을 몰아내고 아주 잠시동안 제후들이 합의형식으로 정치를 한 시기를 의미합니다. 완성된 정치형태는 아니고 아주 임시적이고 예외적인 형태였고 정치형태라기 보다는 원래 특정시기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임금 몰아내고 귀족들이 정치한 거랑 좀 비슷해 보이니까 특정 시기를 의미하는 단어가 정치형태를 의미하는 단어로 선택되어 고정된 것이죠.

이코노미도 경세제민을 줄여서 경제로 번역을 했는데, 원래 경세제민은 다스린다는 의미로 요즘의 정치와 경제를 다 내포하는 의미입니다. 다만 경세제민에 포함된 경제란 국가적 차원에서의 경제운용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코노미가 갖고 있는 개인적 차원의 영리활동이나 집안살림은 世, 民이란 단어 때문에 포함이 될 수 없죠. 물론 經자 하나만 놓고 용례를 분석하면 개인적 차원의 '경영'활동에도 사용이 되긴 합니다만 ^^ 아마도 번역자가 너무 거창하게 이코노미의 개념을 국가경제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봤던 모양입니다. 차라리 사기 '화식열전'의 화식이란 단어가 번역어로 더 적당할지도(물론 저의 독단입니다. ^^)

오성의 경우는 분명히 性을 사용한 것을 봐서 주자학의 복잡한 심성론을 염두에 두었을 겁니다. 다만 오성과 관련된 서양철학사의 문제는 '인식론'-사물이 인식되는 구조나 과정에 대한 논의라면 주자학의 심성론은 윤리학의 측면-맹자에 의하면 사람이 선하다는데 그럼 왜 악이 생기는가-에서 생겨난 것이라 문제의식이 좀 다릅니다. 문제의식이 다른 것을 어쨌든 비슷한 것에다 갖다 붙여서 설명을 하려고 하니 '오성' 같은 억지가 나온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격의불교'처럼 불교의 생소한 개념을 비교적 비슷한 도가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방식도 있었으니까요. 당연히 불교의 개념과 도교의 개념이 뒤죽박죽 되는 부작용이;;; 물론 중국화 내지는 발전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일본에 의해 이뤄진 한자신조어에 의한 번역어 창조라는 방식은 한번 정도는 주체적이고 비판적 관점에서 재검토를 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미 익숙한 자유, 경제 같은 단어들을 억지로 바꾸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
Commented by 나츠메 at 2008/01/30 23:24
움베르토 (에코)님/
1.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오성론의 경우는 1학년 때 도서관에서 처음 읽어보고 작명센스에 대해 궁시렁 거린 적이 있습니다. 확실히 로크의 '인간 인식'에 대한 책이 제목 때문에 좀 꼬였다고 봅니다.

2. ['자유민권운동' 초반에 "지배를 받는 民에게 무슨 權이 있느냐? 단어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는 비판]라고 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본 자유민권운동派에서 '민권' 자체에 대해서 의심을 했다는 글은 아직 읽어 본 바가 없습니다. 소스를 아시면 공개를 부탁드립니다.

3. 개인적으로는, 19세기에 창조된 어휘 중 동양 3국에서 아직도 쓰이는 경우(1. 중국에서 창조 -> 한`일 전래, 2. 일본에서 창조 한`중 전래)가 많으니 그런 어휘를 쉬운 말로 바꾸는 데 자원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차라리 바꾸고자 한다면, <明渡>같은 굳이 일본식 한자로어 표기할 이유가 없는 것이나 바꾸었으면 합니다.
Commented by umberto at 2008/01/31 03:26
민권에 대한 소스는 불행히도 가물가물 --;;; <번역과 일본의 근대>에서 봤던가? 아니면 다른 책에서 봤던가? --;;; 출처는 증발하고 정보만 기억에 남아서 --;;; 아무래도 독서를 하고 나면 반드시 해당 도서의 중요 정보들은 따로 기록을 해놔야 되겠다능.

꼭 소스가 아니라도 사실 전통적인 한자의 용례로 봐도 문제의 소지는 있을 수 있습니다. <논어>를 봐도 人과 民이 다른 용례로 쓰이거든요. 주나라 시기에서 춘추시대까지는 인과 민이 신분적으로 구분이 되는 단어였습니다. 人은 지배층, 民은 피지배층을 의미합니다. (民의 경우 아예 갑골문의 용례에서는 노예를 의미한다는 학설도 본 적이 있습니다.)

봉건제의 특성상 신분제가 세밀하게 발달할 수밖에 없는데, 봉건제가 무너지면서 비교적 신분구분이 단순해진다고 할까요. 그러면서 서서히 人과 民의 신분적 의미가 쇠퇴하게 됩니다. <순자>왕제편에서는 人이 아예 일반 백성을 의미하는 용례로 쓰일 정도로 의미가 바뀌게 됩니다. 이후 人은 그냥 사람일반의 의미로 民은 백성, 피지배층의 의미로 고착됩니다. 물론 <순자>의 예에서 보듯 人이 백성을 의미할 때도 있지요. 따라서 권리(사실 權도 권력이 아닌 권리의 개념으로 쓰인 것도 right를 번역하면서 선택된 것이죠.)는 사람 일반을 의미하는 人에는 쓸 수 있어도 民에 쓴다는 것은 어법상 어색하다는 것이죠.

한자의 의미 변화와 관련해서는 비슷한 경우가 꽤 많습니다. 원래 刀와 劍은 엄격하게 구분이 되던 글자였는데 후대에 와서 도와 검이 구분없이 혼용이 되었죠. 君子란 단어도 원래는 도덕군자의 의미가 아니라 지배층을 의미하는 단어 였습니다. (춘추좌전에 보면 용례가 많이 나옵니다.) 공자가 지배층은 마땅히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가치를 부여하면서 "군자답다"-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니 지배층답다.-라는 논어의 어법이 후대에는 아예 '도덕적인 지식인'이라는 의미로 굳어져 버렸죠. 원래 군자는 도덕의 유무와 상관없이 지배층 일반을 의미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유틸리티는 효용 보다는 쓸모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능~ 최소한 한국어 번역본이 영어 원서보다는 쉬워야 하지 않을까요 ^^
Commented by GARAHAD at 2008/01/31 19:02
오성은 니시 아마네(西 周)의 번역어입니다. 철학, 사회, 과학, 기술, 이성... 모두 니시가 만들어낸 번역어이죠.
Commented by GARAHAD at 2008/01/31 19:07
근데 재미있는 게... 니시는 한자/가나 폐지론자였습니다. 알파벳을 쓰자는 쪽이었죠. 이러한 결론에 대한 논의는 접어놓고서라도, 여하튼 자신의 번역어가 갖는 한계는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던 게죠.
Commented by young026 at 2008/02/01 16:55
나츠메/ <번역과 일본의 근대>에서 나온 얘기가 맞는 걸로 기억합니다. civil rights(지금은 보통 '기본권'인 듯)의 번역어를 '민권'으로 했는데, '민권'이라는 말이 논리적으로 성립되느냐 하는 그런 논의였죠. civil rights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얘기는 아니고.
Commented by sonnet at 2008/02/04 18:25
Ha-1/ 사실 일본이 과학기술에 집착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또 다른 중체서용이란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저는 사실 일본의 성공은 과학기술뿐 아니라 그 과학기술을 낳은 사회 전반을 폭넓게 수입하려는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paro1923/ 복사마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mahlerian/ 이건 별도 포스팅으로 답하겠습니다.

玄武/ 사실 국내에서 워낙 하는 사람이 적지 않나요, lisp?

게드/ 2mb는 어디를 베끼고 있는지도 스스로는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미친고양이/ 하하. 감사합니다.

joyce/ 저도 그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일본인이 "모두 같은 것을 읽고 있다"면 마루야마가 지적했던 문어항아리 현상이 과연 발생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병립시킬 수 있는지, 혹은 어느 한 쪽이 틀린 것인지는 한번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학술적으로는 문어항아리이지만, 모두 같은 TV연속극을 본다든가 하는 차원에서는 공통의 화제를 찾을 수 있다든가 그런 식의 병립은 가능할 듯)

행인1/ 그렇게까지 "능동적인" 악의의 표현 같지는 않습니다.

pseudo/ 예. 저도 도대체가 이해가 안가는 이야기 투성이더군요. 제가 느끼기에 제일 어이없는 것은 복거일이 든 예시들은 종종 복거일 자신의 목을 조르는 절호의 역습의 소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거일이 이해능력이 떨어져 예시들이 뜻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지/ 그런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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