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세력의 '몰락' 에 대한 사변 (이녁)에 트랙백
인력양성과 수급면에서 개혁세력의 '몰락'이 진행되고 있다는 위 분석은 몇 번을 읽어 보아도 도대체가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다. 내가 볼 때는 정반대의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는 같은 분석틀을 한나라당에 적용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를 예시해 봄으로서 잘 알 수 있다.
한나라당을 포함한 보수 세력의 경우에는 이게 어느정도 확실하다. 박정희 시절부터 5공 6공을 걸처 현재까지 이어지는 일종의 '라인' 이 있고 그 외에도 전향 386이나 뉴라이트 등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이 영입된다. 즉 보수 세력은 인재의 자체 충원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일종의 '라인'의 실체가 무척 궁금하다.
현재 '박정희 시절'(516주체, 공화당, 유정회) 또는 '5공 6공'(신군부, 민정당)의 '라인'에서 새로 충원되는 인물이 누가 있는가? 공화당이나 민정당의 맥을 잇는다고 자처하는 무슨 씽크탱크가 있어 그곳에서 잔뼈가 굵은 소장인사들이 배출되고 있기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필자의 잣대를 갖고 따져 보자.
한 세력이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 세력 내에서의 세대교체가 필수적이다. 이를테면 개혁세력 내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얼굴을 발굴해내고 능력있는 신인들을 키워내는 것이다.
어떤 집단이든 자체적으로 신인들을 키워낼 수 없다면 그 세력은 이미 노화된 것이고 미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라인'이란 것은 없다. 박정희 지지세력 혹은 전두환 지지세력에서 끊임없이 새 얼굴과 능력있는 신인이 태어나고 있다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전향 386'이나 '뉴라이트'는 사실 운동권의 산물이지 '보수세력의 라인'이 키워낸 인물들은 전혀 아닌 것이다.
만약 한나라당을 잡탕정당이 아니라 보수의 본산이라고 간주한다면, 손학규라는 인물은 그 정치적 경력에서나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에 내놓은 공약들의 성격으로 보나 매우 이질적인 인물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가 느닷없이 민주신당에 들어가 대통령 경선의 주요주자 중 하나를 맡고 뒤이어 당대표를 지낼 수 있는 것은 그의 경력이나 평소 노선이 한나라당보다는 민주신당에 오히려 친화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5,6공 세력의 라인'을 제대로 밟은 정치인 하나를 예로 들어 비교해 보면 이 점은 잘 드러난다. 6공의 황태자 박철언이 정계은퇴를 깨고 컴백해 민주신당 대통령 경선에 뛰어들고 당대표에 취임했으면 그게 말이나 되었겠는가?
그런 식으로 간주한다면 오히려 심각한 문제는 한나라당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근래 한나라당은 노른자위 선출직 포스트들을 소위 '라인'에 가까운 인물로 메우지 못하고, 손학규나, 오세훈, 이명박 같은 수혈된 피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지난 한나라당의 서울시장후보 경선을 보자. 오세훈이 한나라당 주류에 가까운가, 아니면 홍준표나 맹형규가 가까운가? 전통적인 조직표가 홍준표와 맹형규로 분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맹형규는 선거인단의 조직표에서 오세훈을 꺾을 수 있었다. 오세훈의 승리는 전적으로 여론조사 반영분에 힘입은 것이었다.
이번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도 마찬가지이다. 이명박이 박근혜 보다 더 '보수세력의 라인'에 가까울까? 이 역시 당내세력의 열세를 여론조사 반영분으로 꺾은 비보수세력의 승리였다.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이 이명박을 보수세력에서 일탈했다고 비판하며 뛰어들었던 것 또한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할 수 있는 좋은 근거이다.
이런 식의 조롱 혹은 비판도 좋지만 조금 침착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손학규씨의 약진(?)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세력' 의 몰락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손학규씨의 약진(?)'이란 진정한 '개혁세력' 의 몰락이라기 보다는 보수세력의 본산이라는 한나라당 내부에, 소위 '개혁세력'이 얼마나
넓고 깊게 침투해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의미로 보는 것이 차라리 타당할 것이다.
만약 한나라당이 평범한 잡탕정당으로 정치인들의 개인적 필요성에 따라 이합집산할 수 있는 집단이라고 간주한다면, 이 당의 인력충원은 별 문제가 안 될 것이다. 새로이 집권하게 된 이상 권력의 향기에 이끌려서라도 향후 수 년간 한나라당은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어떤 보수이념의 본산이라고 간주한다면 한나라당의 위기는 심각하다. '인재를 자체충원하지 못하는' 한나라당에 제2, 제3의 손학규 같은 사람들이 일시적 정치적 피난처를 찾아 한나라당의 그늘에서 비를 피하면서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투표에 힘입어 자신들의 정치적 경력을 키운 후, 날이 개이면 친정인 소위 '개혁세력'의 품으로 돌아가 버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주의사항. 이상의 분석은 모두 트랙백해 온 글의 필자의 분석틀을 이용하였을 경우에만 타당하다. 이러한 분석틀을 공유하는 유명인사로는 조갑제 전 월간조선 사장이 있다. 나는 그 분석틀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이 글은 나의 현 정치적 견해와는 거리가 있음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