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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론: 미국 연방정부와 폭력의 독점
현대국가의 핵심 에서 자체 트랙백

앞선 글에 달린 코멘트들에서 미국의 사례가 막스 베버가 규정했던 현대 국가의 속성과 잘 맞는지 잘 맞지 않는지에 대한 논란이 조금 있었기에 약간의 보론을 덧붙이기로 하자. 여기서는 미국 헌법의 법리적 해석보다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미국의 연방(중앙)정부가 확보하고 행사한 폭력의 절대적 크기와 상대적 독점성 양 쪽의 변화가 미국 역사에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했는지를 살펴보겠다.


1. 리틀록 위기(1957년)

사실 대부분의 정상적인 국가가 그래야 마땅한 것처럼, 미국도 2차대전 이후 중앙정부가 무력까지 동원해 지방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한 사건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중 유명한 것을 하나 꼽아보자면 흑백교육통합 문제를 둘러싸고 아칸소 주 정부와 연방정부가 한판 대결을 벌인 끝에 이후 인종차별 문제에 있어 커다란 분수렁으로 손꼽히게 된 리틀록 위기를 들 수 있다.

1957년 4월에 연방항소법원은 리틀록의 학교 당국이 마련한 흑인 학교와 백인 학교의 통합교육안을 승인했고, 대법원은 1954년에 학교의 인종차별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리틀록 교육위원회는 9월에 센트럴 고등학교에서 흑백 통합 교육이 시작될 거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주민들이 여기에 익숙해지도록 노력을 강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1957년 8월에 한 주민이 지방법원에 흑백 통합 교육 중지 명령을 내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지방법원은 이 신청을 받아들였다. 연방 항소법원은 지방법원의 중지명령이 무효라고 선언했고, 법적으로는 9월 3일에 학교가 개학했을 때 흑백 통합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9월 2일에 아칸소 주지사인 오벌 포버스는 주 방위군을 파견하여 학교를 포위하게 했다. 이 군대는 주지사의 지시에 따라 시민들의 폭력적인 대응을 예방한다는 구실로 모든 흑인 학생의 등교를 막았다. 흑인 학생들이 학교 안에 들어가면 백인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주지사는 발표했다. 통합교육안을 실시할 수 없게 된 교육위원회는 연방법원 판사의 지시를 청했다. 연방 판사는 계획대로 추진하라고 교육위원회에 명령했다. 그러나 주 방위군은 연방 판사의 명령에 따르기를 거부했다. 9월 10일에 미국 법무장관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아칸소 주지사에 대해 직무정지 명령을 내려달라는 청원서를 연방 판사에게 제출했다. 이튿날, 포버스는 아이젠하워에게 회담을 요구했다. 대통령은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당시 대통령은 로드아일랜드의 뉴포트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회담은 9월 14일에 그곳에서 열렸다. 그러나 이 회담은 아무 성과도 없이 끝났다.
9월 20일, 연방 판사는 교육위원회의 계획을 더 이상 방해하지 말라고 주지사에게 명령했다. 주지사는 군대를 철수시켰고, 다음 월요일인 9월 23일에 학교가 문을 열자 떠들썩한 군중이 경찰저지선을 돌파하여 여러 명의 구경꾼들에게 위해를 가했다. 등교한 흑인 아이들은 집으로 끌려갔다. 그날 오후, 대통령은 리틀록 시민들에게 ‘어느 누구도’ 정의를 방해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그날 밤, 백악관과 리틀록 시장은 협의를 가졌다. 이튿날 아침, 아이젠하워는 아칸소 주 방위군을 연방군에 편입시켜 포버스의 손에서 군대를 빼앗는 한편, 정규군을 리틀록으로 파병했다. 명령은 회복되었고, 흑인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갔다. 1958년 6월에 한 학년이 끝날 때까지 그들은 학교에 다녔고, 연방군은 줄곧 가까운 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Neustadt, Richard E., Presidential Power and the Modern Presidents: The Politics of Leadership from Roosevelt to Reagan(Rev. Ed.), Free Press, 1991
(이병석 역, 『대통령과 권력』, 효형출판, 1995, pp.43-44)

101공수사단 병력의 호위 하에 등교하고 있는 리틀록 센트럴 고등학교의 흑인 학생들


사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폭도들로부터 학생들의 등교를 보호하는 이 정도 사건은 보통 경찰이 해결해야 할 일이지, 중앙정부군이 내려와서 해치워야 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주방위군과 연방군이 출동하고 군 지휘권을 다투는 사태가 발생한 것은 역시 중앙과 지방의 정치적 여론이 크게 달랐던 것에서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2. 남북전쟁 전후(1867년)

앞서 살펴본 리틀록 사건은 결국 실력이 떨어지는 한 쪽이 비교적 조용히 굴복하고 끝났지만, 늘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90년 전, 남부 주들이 보다 실력과 자신감이 있었던 시절, 이와 같은 중앙과 지방의 갈등은 결국 남북전쟁이라는 4년에 걸친 대규모 내전으로 비화하고 말았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중앙정부(북부)는 패전한 남부연맹 소속의 여러 주들을 다섯 지역으로 분할해 군정을 실시하면서 흑인의 보통선거권을 포함한 주 헌법 제정을 반대급부로 군정지역에서의 주 정부 수립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남북전쟁 이전 상황과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 남북전쟁 이전인 1800~1860년 사이에 미국연방하원은 노예제를 금지하는 8건의 법률을 통과시켰지만, 남부 주들은 인구비례를 적용하지 않는 상원을 이용해 이 시도를 모두 저지할 수 있었다.

즉 많은 의미에서 남북전쟁의 전후처리란 미국 헌법 하에서 정상적으로는 어려웠던 일들을 주먹의 힘을 빌어 정리한 사건이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3. 미국 헌법제정회의(1787년)

이제 다시 80년 전인 미국 헌법 제정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미국 헌법을 초안하던 당시 다수결원칙에 대항해 소수파의 지방권력을 보장하는 문제, 즉 헌법 안에서 연방정부나 의회가 남부 주들에게 노예제 개혁을 요구할 가능성을 차단한다거나, 유권자 수에 상관없이 큰 주나 작은 주나 같은 수의 대표들을 상원에 파견하게 하는 주들의 동등대표권 문제는 첨예한 분쟁거리였다.

당시 가장 탁월한 사상가들 -제임스 메디슨, 제임스 윌슨, 알렉산더 해밀턴- 등은 다들 주들의 동등대표권 문제에 비판적이었다.

제임스 윌슨은 헌법제정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정부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 정부는 인민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주(states)라고 일컬어지는 상상의 존재를 위한 것입니까?” 메디슨 역시 작은 주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는 “우리의 경험은 그러한 위험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 오히려 그 반대의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 주의 크기가 크고 작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각 주가 갖고 있는 상이한 조건 때문에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주의 동등대표를 둘러싼 갈등에 대해 알렉산더 해밀턴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주가 개인들의 집합체라 할 때, 우리가 가장 존중해야 할 것은 주를 구성하고 있는 인민의 권리입니까, 아니면 주라고 하는 인위적 존재입니까. 후자를 위해 전자를 희생하는 것보다 불합리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규모가 작은 주들은 자신들이 평등(equality)을 포기한다면, 이는 곧 자신들의 자유(liberty)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러한 주장이 자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추구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작은 주에 산다고 해서 큰 주에 사는 사람들보다 자유를 덜 누리게 될까요.”

Dahl, Robert A., How Democratic is the American Constitution 2nd. Ed., Yale University Press, 2003
(박상훈, 박수형 역,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p, 137, 93


이런 설득력있는 주장들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작은 주 대표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지키는데는 확고하였다.

작은 주들이 승리하기까지 토론이 고조되면서 나타난 분위기를 살펴보자. 아래의 인용은 6월 30일에 있었던 델라웨어 주의 대표 거닝 베드포드(Gunning Bedford)의 발언이다.

큰 주들이 감히 연방을 해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작은 주들은 보다 많은 신의와 선의를 가진 외부의 동맹을 발견할 것이며, 이들과 힘을 합해 큰 주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메사추세츠 주의 러퍼스 킹(Rufus King)은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친애하는 델라웨어 대표의 말에 몇 마디 논평을 하지 않고는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겠군요. …… 이 의사당에서 전례 없이 격렬하게 우리 공동의 국가에 대한 희망을 철회하고, 외국의 보호를 요청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한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 그가 마음 속으로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에 슬픔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 저로서는 그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결코 외부 세력에게 구원을 요청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Dahl, 같은 책, pp.93-94

이들은 미국 독립전쟁에서 함께 피를 흘리며 싸워온 동료들이었지만, 그런 것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작은 주 대표들은 수틀리면 나가서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외세를 끌어들여서라도 큰 주들이 주도하는 미합중국 연방정부를 묵사발내겠다고 선언했고, 나머지 주 대표들은 헌법제정시에 이들의 협박에 굴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수틀리면 연방 깨고 나가서 한판붙겠다는 정신이 제정당시의 미국 헌법에 담긴 정신이었고, 훗날 남부연맹 독립과 뒤이은 남북전쟁의 정서적 기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어찌 되었던 이런 헌법에 남은 유산이 과연 얼마나 현대적인 것인지는 여러분이 각자 판단할 몫인 듯하다.


4. 결론

독립직후 미국의 국력이 매우 약했을 때, 중앙정부는 외세를 끌여들여서라도 내 몫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지방의 강력한 반발을 극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마 그 당시 전쟁을 벌였더라도 중앙정부 지지파가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전쟁은 그러한 세력균형이 뒤집혔음이 확인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남북전쟁 이후에는 더이상 지방정부가 무력을 갖고 겨루어 중앙정부를 굴복시키겠다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리틀록 위기는 그런 현실을 재확인 시켜준 하나의 에피소드로 간주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에서 잘 드러나듯이, 미국은 건국 이래 미국 자체의 국력이 성장하고, 그에 따라 중앙정부가 확보한 무력도 절대적인 양과 상대적인 독점도 양 측면에서 모두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길을 걸었다. 이것은 베버가 말한 현대국가로 가는 길을 미국 또한 착실히 걸었음을 잘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by sonnet | 2008/01/25 07:36 | 정치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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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 quarantine.. at 2008/02/02 19:35

제목 : 베버가 본 미국정치
보론: 미국 연방정부와 폭력의 독점의 코멘트와 관련해. Commented by 나츠메 at 2008/01/26 22:03 # x 베버가 관찰하여 도출해 낸 결론이 주로 "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생각되므로, 미국을 베버의 개념과 일치시키는 것은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고 사료됩니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는 현대적 정당정치를 다루면서 영국, 미국, 독일 세 나라의 사례를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미국이 배제되었다고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05/25 21:45

... 과 관계없이, 즉 객관적인 근거와 별개로 "싫은건 그냥 싫은 거다"라고 반응할 때 그걸 그냥 그 이유만으로 받아들이면 안되는 경우 또한 수없이 많기 마련이다. 즉 리틀록 위기 당시의 아이젠하워처럼 싫은 건 싫은거다라고 날뛰는 대중과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한 판단에 있어 대중의 반응은 참고사항이기는 해도 정책결정자의 행동원 ... more

Commented by Madian at 2008/01/25 10:10
태그리스트에 오벌포버스와 리틀록사건이 떠올라도 해당 포스트가 없길래 혹시 했었는데 역시 기대했던 내용이 떠오르는 군요. 학부 미국사 수업 때 건국초 반 연방주의의 골깨는 주장들과 오늘날 미국 중앙정부의 어마무지함 사이의 빈 틈이 너무 많아 좀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Commented by 천마 at 2008/01/25 10:31
현대 국가의 역사를 보면 강력한 정부의 권력을 국민이 견제하고 통제하는 구조로 발달해온 반면 미국은 강력한 개인을 국가가 점차 통제하는 형태로 발달해왔다는 글을 이원복씨의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남북전쟁의 역사적 의미는 NATV에서 방송한 '세계의 지도자'의 '링컨'편에서 나오더군요. 이 전쟁이후로 '미국은 진정한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미국은 독립전쟁 당시부터 주정부와 중앙정부사이의 갈등은 예상된거였죠. 그 당시의 미국은 후에 등장하는 소련처럼 새시대의 이상적인 정치체계를 상징하는 국가였으니 말입니다. 예의 논쟁도 인구비례대로 하면 인구가 많은 주의 의사만 연방정부에 반영되고 인구가 적은 주의 의사는 사실상 무시된다는 문제점 때문에 일어난 논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공화정의 이상과 어긋나는 일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다수주는 자기들이 유리한부분을 양보하려 들지 않았고 소수주의 입장에선 그럴바엔 연방에 참여하는 의미가 뭐냐는 회의론이 나와 저런 극단적인 말까지 한 것으로 압니다.

역사라는게 다 그렇지만 미국역사도 알면 알수록 재미있더군요. 로마가 제정으로 변해버린 후 사실상 명맥이 끊겼던 공화정을 다시 시작한 첫 국가이다보니 여러가지 시행착오외 논쟁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1/25 13:01
남북전쟁은 미국역사에서 여러가지로 분기점이 되는 시기였군요.
Commented by shaind at 2008/01/26 00:19
"생각해 보시게, 대령. 자, 이제 우리가 어느 클럽, 신사들의 클럽에 들었다고 해보세. 그러고나서, 좀 지나자 회원들 중 일부가 음... 그들이 우리 생활, 개인적인 가정생활에 간섭하고, 우리에게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하면 안되는지 말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보게. 자, 그럼, 우리들 중 누구라도 거기에서 탈퇴할 권리가 있는 것 아니겠나?"

- Maj. Gen. G. E. Pickett, 영화 "Gettysburg" 中 -
Commented by paro1923 at 2008/01/26 20:09
허어... '미리견은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았다'가 되는군요.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서도...

...그래도, 여전히 '수정헌법 조항' 같은 건 마음에 걸리기는 합니다.
아직은 미국이란 나라가 나름대로 감당해낼 수 있는 정도의 문제일테지만...
Commented by 나츠메 at 2008/01/26 22:03
sonnet님/

1. 지난번 댓글에서 '조대님의 말씀이 옳다'고 한 표현은, <보론이 꼭 필요하다>는 취지였습니다.

조대 님의 덧글 중에 <오늘날 국가는 강제력을 사용할 '권리'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점에 끊임없이 당위적인 반론을 제기하는 현대국가 미국과 그 미국헌법의 이야기를 "보론">으로 언급되어야 함을 맞장구 친 것이지요.


2. 역사적 사실들을 취합하여 내리신 결론이 상당부분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무력 독점이 헌법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으로 '완만하게' 이루어 진 것이며, 베버가 관찰하여 도출해 낸 결론이 주로 "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생각되므로, 미국을 베버의 개념과 일치시키는 것은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고 사료됩니다.

3. 여러 일로 바쁘실 텐데, 제가 괜히 보론을 써달라고 떼를 쓴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던이 at 2008/01/26 22:53
옛날 미국에 살 때 고등학교 미국역사 선생님도 남북전쟁 이전에는 사람들이 "난 뉴욕커요 또는 버지니아 사람이오 라고 했으나 그 이후 "난 미국인이오"라는 의식이 싹 텄다고 했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1/27 07:16
Madian/ 사실 200년의 세월이 짧은 건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태그를 미리 붙여두니 확실히 정보가 새는 느낌입니다. 앞으로는 공개시에나 태그를 달아야 할 듯. ;-)

천마/ 이것은 개인(국민) 대 국가의 문제라기보다는, 주와 연방의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민 대 국가가 진짜 문제였다면 개인의 입장에서는 연방이 주(state)의 연합이든, 군(county)의 연합이건 그것은 사실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주가 그처럼 중요했던 이유는 주는 연방보다 먼저 존재했고, 국민들이 1차적인 소속감을 강하게 느끼던 변동불가능한 실체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주를 손볼 수 있었다면 이 문제에는 매우 쉬운 대안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민주적인 국가들 -예를 들어 한국이나 일본- 은 선거구민의 수에 맞추어 선거구를 적절히 조절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적당한 시기마다 합법적인 조정과정을 거쳐 작은 주를 합치거나 큰 주를 나누는 식으로 주의 크기를 조정할 수 있었다면, 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또는 국민들이 주에 소속감을 별로 느끼지 않아, 일단 모든 주를 다 해체한 상태에서 각 개인들이 중앙정부의 산하로 직접 합류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그 후에 주를 중앙의 명령으로 설치되는 단순행정구역으로 전락시킬 수 있었다면 이 또한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국민들의 1차적인 소속과 충성의 대상이 주이기 때문에 주를 함부로 합치거나 나눌 수 없는 상태에서 주의 의사가 연방에서 대표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발생하니까, 이처럼 골치아픈 문제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행인1/ 예. 그걸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shaind/ "피켓 장군님, 그럼 노포크도 버지니아 주에서 탈퇴할 권리가 있겠군요."

paro1923/ 사실 감당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우리가 책임질 일은 아니니까, 팔짱끼고 구경이나 해 주면 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객관적 관찰을 하고자 한다면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나츠메/ 1. 저에게는 이 문제는 자명한 것이어서, 사실 처음에는 굳이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 않았었습니다. 제가 보론을 쓰게 된 것은 만약 그런 당위론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 당위론을 격퇴해 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2-1. 남북전쟁과 그 후의 뒷처리는 헌법의 틀을 벗어나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들끼리 전쟁을 벌여 이긴 주가 진 주에게 그 의지를 강요한 것이 미국 헌법의 틀에 따라 '완만하게' 이루어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2-2. 그리고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는 현대적 정당정치를 다루며 세 나라의 사례를 분석하는데 그 중 하나가 미국입니다.(나머지 둘은 영국과 독일) 베버가 유럽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미국의 사례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지적으로 보입니다.

지나가던이/ 사실 비슷한 1차적 정체성의 문제를 오늘날의 유럽연합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슬로바키아 사람이나 프랑스 사람이 스스로를 "나는 유럽연합 사람이오"라고 말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8/01/27 10:00
스위스 연방 역시 프랑스의 몰락이후 칸톤들간의 분열-내전-중앙정부를 구성한 공화파군의 승리-연방재성립의 과정을 거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지방칸톤에게도 만만찮게 유리한 헌법과 보병병력만큼은 칸톤이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군사제도 등으로 보아선 역사적으로 각지방들이 오랫동안 제멋대로 살아왔고 산악지방이 많은 지리적 특성이 미국과는 다른 연방제의 특성을 이룬듯 싶습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1/27 14:27
웬지 워싱턴조약이 떠올라 버렸습니다. 제가 좀 비약해서 생각한건지 몰라도요.
Commented by turtle at 2008/01/27 18:10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 정부는 중앙 정부라기 보다 집합 정부(?)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고, 정말 늘 존경스럽습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을 내서 좋은 글들을 올리시나요. ㅠㅠ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1/29 03:05
'링컨의 진실' 이라는 책을 소장하고 있는 데 그 책에는 당시 남부측의 주장 '연방은 주들의 자발적인 합의에 의해 형성된 만큼, 각 주들은 필요시에는 연방정부를 탈퇴할 자유가 있다.' 는 것이 적어도 당대 헌법 상 합법적이었다고 나옵니다.

제가 생각해도 건국헌법의 조문 상으로는 각주들의 탈퇴권이 핵심이었을 듯 하지만, (영국의 통치에 벗어나면서 연방정부의 압제로 바뀔까 우려) 결국 연방이 하나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약간의 어거지를 써서라도 각주들을 힘으로 제압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며 이 불씨가 완전히 타오르고 사라진 것이 남북전쟁이라고 봅니다.

이 전쟁을 끝으로 미국은 여러의미에서 하나의 국가가 되었죠
Commented by 建武 at 2008/01/29 08:31
잘 읽었습니다. 국가와 폭력이라는 점을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는데, 좀 더 생각하며 책을 읽어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8/01/29 10:24
라피에사쥬/ 어느 나라나 국가조직은 역사적 산물이죠. 사실 국가가 폭력을 잘 독점하고 있느냐의

사실판단은 누군가 국가의 패권에 폭력으로 도전했을 때 확인되는 것이라, 평화가 잘 유지되는 한

은 제도적으로 지방이나 개인이 폭력을 좀 보유하고 있더라도 이것이 진짜 실력인지 중앙의 benign

neglect하에서만 존재가능한 형식적인 것인지 알기 힘든 것 같습니다.

rumic71/ 음, 워싱턴 해군조약 말씀이십니까? 관련점이 딱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turtle/ 하하, 아예 13부족 연맹체라고 할까요. 미국의 건국과정을 보면 중앙이 힘도 별로 없고,

또 처음부터 중앙의 대두를 두려워했던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어찌 되었든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늘 글 잘 읽고 있습니다요.

겔라예프/ 연방헌법 자체에 탈퇴권에 대한 명시 규정은 보지 못한 것 같은데, 거기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루고 있나요?

建武/ 예. 생각해보면 국가와 폭력의 관계는 매우 깊은데, 체제가 그것을 국민들에게 잘 말해주지는 않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뭔가 너무 노골적이면 불편한 그런 부분이어서일까요.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2/07 12:49
책을 어렵게 다시 구해서 확인해 보니, 헌법상의 '탈퇴권'의 명확한 조문은 없었네요. 다만 건국회의 당시의 여론상으로 보면 '각주들의 자발적인 합의'에 의해 연방을 구성하며 이념이 달라질 경우에는 각주들은 '스스로가 원하는 정부를 다시 설립할 권리'가 있다는 견해가 강했다고 하네요. 이는 분권을 강조하는 '헌법의 아버지' 제퍼슨이 특히 강조했다고 나옵니다.

또한 누구보다도 연방의 집중화를 강조한 해밀턴 조차도 '칼로써 연방이 유지되는 일은 없어야 하며, 주가 탈퇴하겠다면 그것을 놔둬야 한다' 라고 주를 강제로 연방에 잔류시키는 것을 '가정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은 명시된 조문은 아닌 해석상 탈퇴권은 - 적어도 건국회의 당시의 분위기상 - 인정된다는 것이 그 책의 주장이었습니다.
Commented by 해해성원짱 at 2008/06/20 02:43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사용한이미지는 http://pds8.egloos.com/pds/200801/23/40/b0009940_4796bfe3bb6da.jpg이며, http://www.angelhalo.org/wiki/index.php?url=angel&no=83에 사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1/06/24 21:58
리틀록에서 학교에 군대가 주둔한 것은 평가가 나쁘지 않지만, 한국에서 유신 시대에 대학에 군대가 주둔한 건 평가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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