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분야는 대부분의 국내정책과는 달리 의회가 대통령을 견제하기 훨씬 힘들고, 따라서 대통령이 확실한 주도권을 쥐는 영역이다. 따라서 새 대통령 선거 당선자가 탄생한 현 시점에서 그의 외교안보공약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적지 않은 의의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현 당선자) 홈페이지의
정책자료실 코너를 살펴볼 것 같으면 즉각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의 공약자료에는
외교안보정책이 한 건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시기 자료에는 외교안보 정책이 몇 건 있다. 즉 박근혜와 싸울 때 이후로는 이 문제를 업데이트 한 적이 없는 것이다.
이 점은 이번 대선이 정책, 특히 외교안보정책과
얼마나 거리가 멀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라고 생각한다. 정책논쟁은 거의 없기도 했지만 그나마 좀 다루어진 것은 운하나 경제관련 정책 같은 국내이슈이지 대외이슈는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든 예비후보 시절의 자료 중 중요한 것 두 건은 다음과 같다.
* 이명박 예비후보 "MB 남북관계 구상" 기자회견문
MB3000_1.hwp* MB의 남북관계구상「비핵·개방·3000」 5대 중점 프로젝트
mb3000.hwp(이 두 자료의 내용은 실제로 거의 같고 편집만 약간 다른데, 필요하신 분들이 직접 비교해 보실 수 있도록 같이 등록해 둔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가. 2·13 합의이후 대북정책 방향
(1) 한반도 비핵화 최우선 추구
* 6.15 공동선언은 한반도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인 북한 핵문제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공동선언문에 포함된 이산가족 문제조차도 지금까지 아무런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
* 2·13 합의의 1단계 조치의 조속한 이행을 북한에 촉구. 그러나 2·13 합의만 가지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결단을 내렸다고 볼 수 없으며, 9·19 공동성명의 완전한 이행까지는 많은 난관이 예상됨.
*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떠한 대북정책도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으므로 대북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한반도 비핵화에 두어져야 함.
나. 비핵·개방·3000 구상
* 비핵·개방·3000 구상은 ‘철저하고도 유연한 접근’의 일환으로서 북한이 핵폐기의 대결단을 내리면 국제사회도 그에 상응하는 대결단을 내리겠다는 것임.
* 9·19 공동성명이 완전히 이행되면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 및 북미/북일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져 비핵·개방·3000 구상 실현을 위한 5대 분야 (경제, 교육, 재정, 인프라, 복지)의 포괄적 패키지 지원이 본격화할 수 있는 국제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임.
※ 북한의 핵포기 대결단에 따라 비핵·개방・3000구상이 가동되면 북한경제가 수출주도형으로 전환되고 400억불 상당의 국제협력자금이 투입됨. 북한경제는 현재 1인당 소득 500불 기준(한국은행 발표는 914불)으로 매년 15-20%의 성장(평균17%)을 지속하여(한국은행 기준으로는 10% 성장으로도 가능) 10년 후 국민소득 3000불 경제로 도약할 수 있음.
이명박 예비후보 "MB 남북관계 구상" 기자회견문
그리고 이러한 로드맵은 이명박 캠프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요약) 북한의 핵포기 → 비핵·개방・3000 구상 가동 → 북한경제, 수출주도형으로 전환 → 400억불 상당의 국제협력자금 투입 → 북한경제는 현재 1인당 소득 500불 기준(한국은행 발표는 914불)으로 매년 15-20%의 성장(평균17%)을 지속(한국은행 기준으로는 10% 성장으로도 가능) → 10년 후 국민소득 3000불 경제로 도약
MB의 남북관계구상「비핵·개방·3000」 5대 중점 프로젝트
자 이제 요약을 한번 해 보자.
화두: 언제 이명박 대북전략이 시작되나북한의 핵포기 → 비핵·개방・3000 구상 가동 → ……
전제*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떠한 대북정책도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 따라서 대북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한반도 비핵화에 두어져야 함
* 2·13 합의만 가지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결단을 내렸다고 볼 수 없으며, 9·19 공동성명의 완전한 이행까지는 많은 난관이 예상
* 9·19 공동성명이 완전히 이행되면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 및 북미/북일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져 비핵·개방·3000 구상 실현을 위한 5대 분야 (경제, 교육, 재정, 인프라, 복지)의 포괄적 패키지 지원이 본격화할 수 있는 국제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
이렇게 보면 명백해지는 것인데, 이명박의 대북 지원 패키지인
비핵·개방・3000 구상은
9·19 공동성명이 완전히 이행되어 북한의 핵포기가 확인된 후에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지원이 본격화될 국제환경 중 하나로
북미/북일관계 정상화가 거론된다.
그럼 9.19 공동성명의 완전한 이행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자.
6자는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임을 만장일치로 재확인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하였다.
외교통상부,
9.19공동성명 국문 번역이는 북한이
1)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2)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하면
3) 북한이 자국의 핵개발 프로젝트 전체에 대해 신고하고 자료를 제출하면4)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것을 검증하고 현장조사를 해서5)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3), 4)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다가6) IAEA가 만족할만한 조사를 끝내고 모든 의혹이 해결되었으며 깨끗하다고 선언해 주면
끝난다.
여기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상하기 힘든 부분이 바로 3~5 항이다. 이건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이에 대해서는 미 국무부의 북한담당관을 오래 지내고, 영변에 파견되어 폐연료봉 보존계획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 케네스 퀴노네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합의된 틀」이 10여 년 전에 서명된 문서이기 때문에 우리는 의외로 북한이 IAEA에 전면적으로 협력하여 플루토늄 보유량을 IAEA에 신고만 하면 북한 핵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며,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이 보장되리라고 믿어버리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꼭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다. 설령 북한이 IAEA에 전면적으로 협력했다 하더라도 오늘날 가용한 기술력으로는 북한이 과거 추출한 플루토늄의 총량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낼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것은 미국의 대표적인 핵전문가들이 2000년과 2001년에 스텐포드 대학과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가 개최한 일련의 연구회에서 내린 결론이다. (마이클 메이 저, 『합의된 틀의 검증』, 2001년 로렌스 리버모어 연구소 간을 참조할 것)
결국 이 전문가들의 결론에 따르면 북한이 합의된 틀에서 규정된 「IAEA와의 안전조치협정을 완전히 이행」했는지의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정치적 결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Quinones, C. Kenneth., Beyond Negotiation: Implementation of the Agreed Framework
(山岡邦彦, 山口瑞彦, 『北朝鮮II: 核の秘密都市 寧邊を往く』, 中央公論新社, 2003, p.16)
IAEA는 2002년 초, 인내에도 한계가 있음을 표명했다. 2002년 1월 10일자 보도발표에서 IAEA는 「DPRK의 모든 핵물질을 검증하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에는 DPRK측의 전면적인 협력을 얻더라도 3년에서 4년의 시간이 필요하리라고 추측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전 해인 2001년 11월에 북한과의 기술협의가 열렸지만 「…DPRK는 (IAEA의 검증 프로세스에 관한) 제안 이행의 신속한 개시에 대해, 미북의 합의된 틀의 이행 지연을 주된 이유로 삼아 동의하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Quinones, 같은 책, p.22
북한이 전면적으로 협력하더라도
최소 3-4년이 걸린다. 그리고 이것은 최상의 경우를 가정한 것이고, 실제는 94년 합의 후 02년 말에 합의가 깨어질 때까지
8년간 샅바싸움을 하느라 실제 검증은 하지도 못했다는 것이 현실이다. 폐연료봉들을 금속용기에 담아 안전하게 임시보관하게 하는데만 6년 걸렸다는 사실이 북한과 협력해 무슨 일을 하나 하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일이 늘어나고 한층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위에서 3~4년이라고 한 것은 1994년의 미북핵합의(Agreed Framework)가 지켜져 영변 원자로는 가동중지이고, 8천개의 폐연료봉은 봉인된 상태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 이후 북한은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뽑아내고. 영변원자로를 돌려 폐연료봉을 더 만들고, 핵실험을 했다. 게다가 미국은 우라늄농축(HEU) 관련 물자도 찾아내야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걸 다 하는데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인가?
봉인된 폐연료봉을 생각해 보자. 손 대지 않은 채로 봉인된 폐연료봉은, 검사해서 손 댄 흔적이 없는지를 본 후, 폐연료봉에서 동위원소 시료 등을 추출해 원자로 가동 이력이나 연료봉 인출시기등을 추정하는 등의 작업을 할 예정이었다.
90년대 많이 논쟁이 되었던 것 중 하나가 북한이 연료봉 순서를 뒤섞어 놓아 검증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연료봉들을 재처리했을 경우, 연료봉을 3-4cm 길이로 잘라, 질산염에 녹인 후 유기용매 처리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분리하고, 다시 교반 등을 통해 금속플루토늄을 얻게 된다. IAEA가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을 이용해 검증을 수행할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과정을 다 거쳤을 경우 검증에 필요한 정보를 상당히 더 잃어버리게 될 거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게다가 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공정에는 효율의 차이가 있어 또 골치아픈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데이비드 올브라이트는 북한이 약 33~55kg 정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것으로 본다.(이 중 지난 핵실험에 쓴 5kg정도는 빼야 함) 이 엄청난 추정상의 편차는 심각한 정치적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만약 북한이 사용한 공정이 플루토늄을 비효율적으로 추출해 실제로는 30kg만 갖고 있는데, 미국이 최소한 40kg은 가지고 있을 거라고 주장하면서 10kg을 꿍쳐놓은 게 틀림없으니 사기라고 주장하면서 끝까지 북한을 몰아붙이면 어떻게 될까? 반대로 북한이 실제로는 플루토늄을 50kg쯤 갖고 있으면서 미국에게 40kg만 내놓고 10kg를 몰래 챙겨서 핵폭탄 2발을 만들어 꿍쳐쥐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기술적으로 북한이 실제로 뽑아낸 플루토늄의 양을 정확히 알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퀴노네스는 정치적 결단의 문제라고 하지만 그것은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지 한국 대통령의 결단은 아님)
북한이 핵실험에 쓴 플루토늄 양도 확정해야 한다. 그걸 하려면 북한 핵실험장을 사찰하고, 거기서 핵실험 측정에 사용된 장비와 데이터, 실험계획과 관련된 자료들, 관련자 인터뷰, 심지어는 사용한 핵폭발장치 설계도 같은 것도 필요하게 될 것이다. 혹시 북한에게 핵폭탄 설계도 내놔봐라 하면 순순히 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는가?
북미/북일관계 정상화는 이 모든 것에 대해 OK 사인이 난 다음에야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의 대북 지원 패키지는 그 다음에나 나가게 된다.
결론지금까지 살펴본 것으로 명백해지는 점이 두 가지 있다.
1. 이명박의 대북지원 패키지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그의 임기 내에 시작조차 될 수 없다.심지어 북한과 미국이 사심없이 100%협력해도 그렇다. 즉 이명박의 대북지원 공약은 내 임기내에 그런 거 안하겠다는 이야기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
2. 미국의 적극성으로 지금은 북핵문제 해결이 급물살을 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검증부분으로 넘어가면 해결 난망한 문제가 쏟아져 나와 기술적 혹은 정치적으로 좌초되어 버릴 가능성이 상당히 존재한다.북핵문제가 해결분위기를 타는 듯한 상황에서 급조된 이명박의 대북공약은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을 경우 그가 무슨 대응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 유권자에게 아무런 정보를 주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