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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와 니부어
현실주의의 요체 에서 셀프 트랙백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 생각하다가, 묵자와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hr)를 비교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자 非攻上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등장한다.

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을 불의라고 하며, 틀림없이 한 사람을 죽인 죄가 있다. 이렇게 볼 것 같으면 열 사람을 죽이면 불의가 열 배가 되고, 틀림없이 열 사람을 죽인 죄가 있는 법이다. 백 사람을 죽이면 불의가 백 배가 되고, 백 사람을 죽인 죄가 생긴다. 이에 대해 천하의 군자들이 모두 이를 알고 비난하며 이를 불의라 한다.

오늘날 누가 남의 나라를 크게 쳐들어가 [사람을 잔뜩 죽이며] 불의를 저지르는데, 이를 잘못인줄 모르고 그릇 쫓아 칭송하며 이를 의롭다 한다. 이는 실로 그것이 불의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말을 적어 후세에 전하기까지 한다. 만약 그것이 불의인지 알았더라면 감히 그것을 후세에 남길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리고 이 예를 일반화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지금 여기 한 사람이 있어 검은 것을 조금 보고 검다고 말하다가, 검은 것을 많이 보고 희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흰 것과 검은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쓴 것을 약간 맛보고는 쓰다고 말하다가, 쓴 것을 많이 보고는 달다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단 것과 쓴 것의 분별을 못한다고 할 것이다.

즉 묵자 논변의 요점은 개인 윤리의 원칙이란 게 있다면 그건 당연히 사회 윤리의 원칙이 되어야 하며, 그 원칙은 그대로 평탄하게 연장된다는 것이다.

이제 라인홀드 니부어를 보자.
니부어 목사는 1932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윤리와 정치에 대한 연구』(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A Study of Ethics and Politics)에서 묵자와 본질적으로 충돌하는 이론을 제기하였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이 그는 도덕적 인간이 모였다고 도덕적 사회가 나오는게 아니며 그렇게 접근해서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상당부분 2원적인 접근을 통해 풀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인간 사회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살펴보면, 사회의 요구와 예민한 양심의 명령 사이의 지속적이고 양립할 수 없어보이는 충돌이 드러난다. 이러한 충돌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윤리와 정치의 충돌이라 할 수 있는데 인간의 도덕적 삶에 두 개의 초점이 존재하도록 만든다. 하나는 개인의 내면적 삶의 초점이요.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의 사회적 삶의 초점이다.
……
이들 두 가지 도덕적 관점은 상호 배타적인 것도 아니고, 절대적으로 충돌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또한 쉽게 조화시킬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현실주의자들은 (개인의 행동원칙을 다루는) 미시 이론과 (사회집단의 행동원칙을 다루는) 거시 이론은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좀 다른 잣대로 다루어야 실용적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유력한 가설들이 있는데, 여기서는 어느 것이 그럴듯한지에 대해서는 생략) 현실주의자는 그 이유가 뭐든지 간에 경험적으로 볼 때 묵자처럼 미시이론을 거시이론으로 단순연장하면 현실과 맞지도 않고 성공할 수도 없다고 본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현실주의자들의 기본개념처럼 세상이 좋든 싫든 그런 것일 수밖에 없고 어지간해서는 바꿀 수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는 사실 2차적인 문제랄까 자연히 유도되는 측면이 있는 듯하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개인 윤리를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기 마련이고, 의식적으로 개인윤리와 충돌되는 제2의 기준을 마음 속에 받아들여 따르려면 늘 마음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조차도 현실주의 이론을 설파한 다음에는 또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겠구나란 생각에 씁쓸해지곤 하니까 말이다.
by sonnet | 2007/12/11 12:59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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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7/12/11 20:04

... 다. 한 발의 탄환에도 황도가 들어 있고, 총검 끝에서는 국덕이 타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 - 황도파 중진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 육군대장 - 개인윤리와 사회윤리가 밀접히 통합되어 있는 게 꼭 좋은 방향이냐를 의심케 하는 사례는 역시 전체주의에서 찾는 것이 쉬울 듯 싶다. 반대 방향으로서의 무정부주의도 골치아픈 문제들을 만드는 ... more

Commented by 지나가던이 at 2007/12/11 13:22
역시 어렵군요. 그렇지만 두가지 기준이 완전히 다른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나저나 목사님이 저런 글을 써주셨다는게 흥미롭네요.
Commented by marlowe at 2007/12/11 13:28
그 차이를 좁히는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그게 가능할 지 의문입니다.
Commented by 하이얼레인 at 2007/12/11 13:59
드디어 철학떡밥(?)이 나왔구만:) 개인적으로는 스피노자 입장에서 "도덕이 뭔가염? 먹는건가염?"을 읊고 싶지만(웃음)
Commented by 바닷돌 at 2007/12/11 14:01
문제는 저 차이가 너무 벌어지면 오히려 국가 차원의 비도덕성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개인 윤리와는 별개로 국가 전체의 안보 등을 내세우면서 국가 차원의 도덕에는 다른 잣대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자신들의 독재나 탄압 등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아서리.. 우리나라만 해도 그런 분들 많지 않습니까?;; 물론 현실주의자들은 그런 식으로 저 논리를 써먹는 것을 불쾌해 하겠지만, 어쨌든 저런 논리가 독재자들에게 편하게 써먹히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말입니다.... 어려운 문제네요 ㄱ-;
Commented by 단순한생각 at 2007/12/11 14:09
제가 그래서 라인홀드 니부어를 좋아합니다.
문제는 소햏의 보잘것없는 햏력은 그야말로 한마리 단세포 생물보다 못하다는거랄까요;;

바닷돌// 사실 독재가 무엇이고, 인권탄압이 무엇이냐. 라고 한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결과가 나옵니다. 결국은 시대상과 사회상, 그리고 문화의 영향을 상당히 받는다고나 할까요. -ㅅ-;;

링컨의 노예해방만 보더라도, 세부내용을 뜯어보면 우리가 아는것과 격차가 크지요.(...)
Commented by 바닷돌 at 2007/12/11 14:26
단순한생각//물론 독재나 인권같은 문제를 우리시대, 우리문화의 잣대로만 잴 수는 없겠지만..(그런 식으로 따지면 일단 고대의 군주들은 전부 독재자 딱지를 붙여야 하겠죠) 문제는 바로 몇십년전 우리나라에서만도 그런 일이 많았다는 거죠. 그런 일들은 우리 손에 들린 잣대로 재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잣대가 상당부분 20세기 서양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현 시대의 대부분의 독재, 인권 등의 문제를 따질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런 문제는 개인 윤리와 국가 윤리의 차이라는 여기서의 문제와는 좀 다른 이야기 같은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7/12/11 15:12
하이얼레인/ 철학은 뭔지 몰라도 윤리는 먹는거야. 소화가 잘 되는 메뉴일 것이 포인트
Commented by lee at 2007/12/11 15:20
커헉... 설마 제 질문이 주제로 나올 줄이야.
역시 현실과 이상의 격차는 크군요.
Commented by Executrix at 2007/12/11 15:27
진실은 미움받게 마련이죠.

비슷한 것으로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기분은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니 뭐 어쩌겠습니까.
뭔가가 옳고 그르다고 여기는 것과, 옳고 그름을 떠나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의 두 가지 잣대는 영원히 공존할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 두 가지 관점 중 한쪽을 배제하면 안 된다고 여기며, 그 가운데 중심을 잡아(비록 그 중심점이 어느 쪽으로 쏠려 있는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어느 한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전자는 맹신자 또는 광신자, 후자는 대인배→나즈굴 테크트리를 탈 위험성이 있으니까요.
후, 이런 맥빠진 소리나 하는 걸 보면, 대인배가 되긴 틀렸나 봅니다.

바닷돌 // 대표상영작 '한국적 민주주의' '정의사회구현' ...뭐든 악용될 소지가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Commented by 에르네스트 at 2007/12/11 18:52
좋은말씀가지고도 악용하는거야 종교가 최강일지도 모르죠~(톨스토이 단편집에 보니까 그런단편하나 있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7/12/11 19:46
지나가던이/ 예. 인용문에서도 드러나듯이 니부어도 완전히 다르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사실 경력을 대략 훑어보면 이 분은 좀 별난, 운동권 목사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marlowe/ 글쎄,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저 자신은 2원적인 시각에 익숙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런 성격의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어느 정도 건전한 현상이 아닐까 생각하는 쪽입니다.

바닷돌/ 아니, 제가 생각하기에 진짜 막장스러운 무리들은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의 대통합을 추구하는 쪽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적어도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의 거리가 멀수록 위험도가 커지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좀 단순한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단순한생각/ 시간이 좀 더 있으면 개신교 철학 내부에서 그가 갖는 위상이나 그러한 입장이 등장하게 된 학맥/도통에 대해서도 좀 알아보고 싶은데, 아직 아는 게 적어서 뭐라고 할 수가 없구료.

lee/ 어느 정도 답변이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Executrix/ 중심을 어떻게 잡느냐. 내가 적절한 중심을 잡고 있는 건지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느냐 같은 게 또 언제나의 고민거리인 것 같습니다.

에르네스트/ 사실 악용하기로 하면 이 세상에 악용 못할 게 또 어디 있겠습니까.
Commented by sonnet at 2007/12/11 20:00
all/ 이 글에서는 제가 평소 갖고 있는 입장 때문에라도 좀 니부어 쪽의 손을 들어준 감이 있는데, 묵자에게는 모든 것을 초월할만큼 아주 강력한 장점이 하나 있다는 것을 지적해 두고 싶습니다.

대의민주정을 운영중인 시민사회에서의 윤리는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의무교육 정도를 마친 평범한 사람이 그리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어렵지 않게 배워서, 자신이 생활 속에서 직면하는 상황에 쉽게 응용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워야 합니다.

묵자의 논리는 그런 면에서 배우기도 쉽고 응용도 직관적이란 엄청난 장점이 있는 반면, 니부어는 일단 개념부터 두리뭉실한데다가, 두 기준의 균형을 잡고자 할 때 어떤 균형이 좋은 것인지를 스스로 응용 판단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만약 니부어의 논리가 역사적 경험이나 이론적 정교성에서 더 우월하다고 하더라도 그걸 일반시민들이 받아들이게 만들기 힘들다면 우리는 매우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요? 이것이 우리가 사회적 문제를 다룰 때 대의제에 의존하게 되는 한 가지 원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shaind at 2007/12/11 20:16
그런데 역사에서 "현실"을 바꾸려는 동기는 대개 (윤리를 포함해서) 형이상학적 원칙이 현실과 빚는 마찰이었던 것 같군요. (대개 현실을 불변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이른바 "Status Quo" 수호를 지향하는) 현실주의의 입장에서는 그냥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7/12/11 20:30
shaind/ 우선 현실을 바꾸는 동력은 technology-driven처럼 개개인의 구체적 동기와는 무관한 것일 수 있겠고, 동기가 문제라 하여도 경제적 이익 같은 실리 문제일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볼 때 현실주의에서 status quo는 (죽음으로 직행하는) 대돌연변이를 피하자는 정도의 개념이지, 진화적 타임스케일로 이루어지는 작은 변화들을 다때려잡자는 개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냉전시대 현실주의자들이 지키려 했던 status quo는 다같이 골로 가게 될 전면핵전쟁은 어떻게 피해보자는 것이고, 세부적으로 자국과 자기 진영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작은 경쟁과 변화는 계속 있었다는 점이 한 가지 예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7/12/11 23:04
묵적과 니부어... 이렇게 대조해 놓고 보니 재미있군요.
확실히, 처음 주입시키는 '원칙'은 간단하게 - 그 다음은
세부에서 '차이'와 '구분' 등을 가르치는 게 맞겠지요.
Commented by monsa at 2007/12/12 00:22
현실주의의 장점은
개인의 양심에 완충제를 퍽퍽 채워넣지 않고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
이겠군요.
Commented by 建武 at 2007/12/12 07:08
한명을 죽이면 살인자, 백명을 죽이면 영웅, 만명을 죽이면 왕이라는 말과도 통하는 데가 있는것 같군요.

저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집합체가 되어갈 때, 자신의 도덕성이 가지는 한계보다 더한 일을 행하는 이유는 "because they can" 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현실주의자가 얘기하는 개인적 윤리와 사회적 윤리의 괴리를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무엇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을 찾기기 쉽지 않군요..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7/12/12 11:20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수십년 전에 강철의 대원수께서 천재적인 가르침을 주신 바 있습니다. 고민할 필요가 있겠습니까.(썰렁~)
Commented by 기린아 at 2007/12/12 11:56
길 잃은 어린양 / 한명이 죽으면 비극이지만 만명이 죽으면 통계라는 것 말씀이십니까?^^
Commented by 보리차 at 2007/12/12 13:02
오오 예시가 풍부하니 제 돌 같은 머리로도 뭔가 와 닿는군요.
Commented by shaind at 2007/12/12 15:14
기린아 // "사람이 없으면 문제도 없다"같은 것도 있지요.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7/12/12 23:59
기린아님 // 넵. 헤헤헤.
Commented by teferi at 2007/12/17 11:03
윤리라는 것을 sonnet님은 잘 모르시는 것 같군요. 어떤 판단을 할 때 그것이 좋다, 나쁘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바로 윤리입니다. 예를 들어 sonnet님이 제시한 '수로'라는 일화에서 나온 '북쪽 나라 사람들의 피를 수로로 끌어온다.'는 결정이나 '자원보유국의 국민이 고통을 받는 더러운 일을 하더라도 자원을 대한민국으로 가져올 자원외교에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sonnet님의 제안이나 모두 자국 국민의 안녕이 타국 국민의 안녕에 우선한다는 윤리적 가치판단이 있고 자국 국민의 안녕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하는 일인 것입니다.
Commented by teferi at 2007/12/17 11:32
sonnet님은 사회윤리와 개인윤리의 대통합이 막장이라고 하셨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개인윤리도 점차 논리적, 철학적인 뒷받침이 필요하게 되고 있으며 도그마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동성애 금기와 성 역할이 도그마가 도전받고 깨어진 예이며, '정치적인 공정함'이라는 새로운 윤리기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개인 윤리에서 존재한 도그마를 사회 윤리에서 실현하는 상황은 저도 문제라고 봅니다. 그러나, 엄정한 논리적 철학적 근거에 기반한 개인 윤리와 사회 윤리는 그 윤리를 실행하는 각 주체의 직접적인 이득이라는 같은 기준에 맞추어 같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Commented by 흠... at 2007/12/17 15:36
근데 현대로 올수록 저 두개의 사이가 가까워지고 있지 않나요?


1.2백년 전이었으면 전혀 욕먹을 이유가 없었을 부시의 이라크 침공이 지금 그렇게 욕먹고 있는거만 봐도 그렇구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7/12/22 20:28
paro1923/ 솔직히 대중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상세한 이론을 가르칠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계몽시대 철학자들의 윤리이론이 지금도 널리 인용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정도가 현재의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수용 가능한 수준의 한계여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monsa/ 그런 측면도 있는 듯 합니다. 더 자연스러운 것은 개인이 자기 개인 윤리로 감당 가능한 비교적 가까운 부분만 보고, 나머지 부분은 눈을 감아 외면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建武/ 자신이 가진 도덕성 한계를 넘는 일을 "하는" 것과 반대로 "하지않음"으로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대표적인 것은 '투표의 역설' ( http://outsider.egloos.com/1684579 ) 등.
그 외에 게임 이론에서 많이들 다루는 수인의 딜레마 라든가, 각종 정보비대칭 문제들, 자기조직(self-organizing) 같은 것들이 모두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에서 떠오르는 문제들과 관련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분야는 여전히 발전도상인 것 같긴 하지만 말이지요.

길 잃은 어린양/ 그 분의 해결책은 역시 '우'대한 지도자를 찾는 것과 맞물린 게 아니겠습니까. 오성이 뛰어난 기재가 아니면 그 분의 상승무공을 익히는 것은 무리...

보리차/ 늘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teferi/ "개인 윤리와 사회 윤리는 … 같은 기준에 맞추어 같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은 teferi씨의 wishful thinking에 불과합니다. 우리 살아생전에 그 결과가 나올 만큼 빠른 변화는 어디서도 관찰되고 있지 않지요. "엄정한 논리적 철학적 근거에 기반"도 마찬가지인데, 윤리학은 어느 분야건 발전이 빠르지도 않거니와 대중적 이해와 전문연구자들의 연구 사이의 괴리가 좁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번 글에서 시도하신 이해득실 판단과 윤리적 판단의 통합은, 그것은 공리주의자로 자처하는 저도 꺼릴 정도로 급진적인 것입니다. 벤담이 hedonistic calculus를 적용하는 과학적 입법부를 제안한 이래 22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분야에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뭘 보고 그런 통합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까?

흠.../ 그건 누가 어떤 방향에서 비판하느냐에 달렸죠. 저는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이지만, 개인윤리적인 측면과는 아무 관계도 없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란 부시가 말한대로 쉽게 이기고 이라크를 안정시키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면 그건 나쁜 일이 아니었겠지만, 그게 "어렵기" 때문에 침공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목적이 무엇이든 결과를 좋게 만들 수 없을 것이기에 잘못되었단 말이 되겠지요.

저와 비슷한 입장의 논객의 글 두 개를 덧붙여 추천해 둡니다.
http://sonnet.egloos.com/2917882
http://sonnet.egloos.com/2518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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