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지향성을 기준으로 부시 행정부의 공화당 지지 세력을 분석하면 크게 보아 서로 다른 주제에 관심이 있는 세 가지 그룹이 식별된다. 이들에게 공식적인 이름은 없지만 이 글에서는 각기
국가안보, 자유기업, 가치-종교 그룹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각 그룹이 관심있는 주요 주제를 약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국가안보파충분한 군비투자를 통한 군사력 우위 유지, 석유 등 전략자원의 통제, 반미연합저지, 테러와의 전쟁 등
자유기업파작은 정부와 정부규제철폐, 감세, 자유방임정책, 반노조 등
가치-종교파낙태-동성애 반대, 창조론 교육, 줄기세포연구 금지 등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점 한 가지는 공화당 지지 보수파들이란 이 세 가지 관심사들을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동질적 집단이라기 보다는 각기 자기 관심분야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한 세 그룹의 느슨한 연대란 것이다.
예를 들어 부시는 가신그룹의 일원인 해리엇 마이어스를 대법관 후보로 지명했다가 지지자들의 벌떼같은 반란에 직면해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받고서 이를 포기한 바 있는데, 이 사건에서는 가치-종교파의 반대가 치명적이었다. 종신직인 연방대법관 자리는 이들의 주요관심사인 낙태나 창조론 교육 같은 국내정책의 향방을 몇십 년간 좌우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자리기 때문에, 부시가 아무나 임명하도록 좌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반면 국가안보파들은 이 문제에 거의 신경쓰지 않았다. 대법관은 군대나 대외정책에 거의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례로는 터키의 아르메니아 학살 관련 결의안을 들 수 있다. 이 결의안이 미 하원 외교위원회를 통과하자 여야를 막론하고 국가안보파에 속하는 대부분의 정객들이 이에 격렬히 반대해 결국 결의안 통과는 좌초되고 말았다. 이 결의안은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커뮤니티의 로비로 추진된 것이지만 국가안보파 입장에서 볼 때는 한 줌의 아르메니아계 지역구 유권자를 신경쓰느라고 이라크 전쟁의 중요 변수를 쥐고 있는 지역강국 터키를 열받게 만드는 일은 완전히 미친 짓이었던 것이다. 이 때 가치-종교파는 이 문제에 약간 동정적이었지만 국가안보파와 정면충돌할 생각은 물론 없었다.
그럼 한국은 어떨까? 나는 이 세 가지 그룹 모델이 한국 정치에도 어느 정도 유의미한 틀이라고 느끼고 있다. 내가 관찰하기에 한나라당 지지자의 경우 국가안보파와 자유기업파는 예전부터 분명히 따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가치-종교파는 사실 한국에는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는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사학법 투쟁이나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시청 앞에 모여 성조기를 흔드는 대중집회를 갖는 걸 보고서 미국의
케빈 코플란드나
제리 폴웰 같은 또라이들을 직면하게 되더라도 놀라지 않기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건 그렇고 이번 이회창의 출마 선언을 읽어보고 내가 느낀 점은 이회창은 명백히 국가안보파를 분리된 세력으로 인식하고 집중 겨냥했다는 것이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가의 기반이 흔들리는데 경젠들 제대로 될 리가 있습니까?
기본을 경시하거나 원칙없이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자세로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수 없습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국가정체성에 대한 뚜렷한 신념과 철학입니다. 이것 없이는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점에 대해 한나라당과 후보의 태도는 매우 불분명했습니다.
북핵폐기와 무관하게 대북지원을 하겠다는 한나라당의 평화비전에 대해서는 제가 이미 비판한 바 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실패로 판명난 햇볕정책을 고수하겠다는 후보의 대북관도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모호한 태도로는 다가오는 북핵재앙을 막을 수도,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정착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출마를 결심하게 된 근본 이유입니다.
이회창,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전문] 두 차례나 당의 대선후보였던 인물이 권력욕에 눈이 멀어 당을 뛰쳐나갔다는 것, 그리고 보수세력 분열의 씨앗이 되어 정권교체를 좌절시킬 제2의 이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은 조직도 돈도 없는 이회창이 거의 극복하기 힘든 약점인데, 회창의 출마선언을 읽어보면 그런 약점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꼭 나와야 하는 이유를
이명박은 국가안보파를 결코 만족시킬 수 있는 후보가 못된다는 점 딱 한가지에만 걸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평생 관계에서만 구른 이회창이, 대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이명박을 상대로 자유기업파의 지지를 따내긴 힘들 것이다. 가치-종교파는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미 서울시를 봉헌하겠다고 해서 욕을 바가지로 먹었던 이명박을 따라잡기는 역시 어렵지 않을까.
그렇게 본다면 여론조사 등에서 이회창 지지율의 주축은 이명박 노선에서 노골적으로 소외된 국가안보파의 지지율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사실 이회창의 출마선언에는 외교안보관련 언급이 다른 후보들에 비해 월등히 많고 또 강도도 강렬하다.
지금 몇몇 언론에서는 이명박은 중도 보수, 이회창은 강경 보수 같은 식으로 같은 노선의 정도 차이 같은 식으로 해설하고 있는데 이건 말이 안된다고 본다. 이것은 그냥 관심청중 자체가 별개의 그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