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간 조갑제의 글을 보고 있으면 김대중-노무현을 악의 축으로 설정하고, 그에 대비되는 거의 모든 인물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 같은데, 그 극성스러움이 도를 지나쳐 오히려 부동층을 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월간조선에 연재했던 노태우 인터뷰를 모은 이 책도 그런 목적에 충실한 책 중 하나일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리고 사실 조갑제가 쓴 서문이 딱 그런 내용이기도 하다. 조의 한국현대사에 대한 인식은 이 서문 하나로 충분히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책의 본문에는 예상 외의 이야기가 있었으니... 조갑제: 그런데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 대사도 교환해야 하고,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 통일로 갈 때 우리가 독립된 주권국가에 개입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 헌법을 개정해야 하고, 전범이나 범죄단체 비슷한 조직에 국가라는 격을 갖춘 월계관을 씌워준다는,
정의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로 공인할 필요 없이 지금 식으로 실체만 인정하는 애매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노태우: 『그것은 대내적인 문제지.
대외적으로는 실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봐요.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라면 모르지만, 가입된 상태다 이 말이야. 국내적으로는, 나쁜 말로 하면 괴뢰집단이지요. 그러나 북한은 유엔가입국이 준수해야 할 사항도 서약하고 가입한 것이거든. 이걸 가지고 대외적으로 국가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어요. 김일성이가 내한테 초청장 보냈을 때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 각하」 이렇게 썼거든』
조갑제: 남북기본합의서에서는 나라 이름은 안 쓰고 남측, 북측 이렇게 썼습니다. 말하자면 양국간의 관계라는 말을 쓰지 않은 거죠. 북한은 절대 남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정하면 1민족 2국가가 되어 자기 노선에 위배되니까요.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노태우: 『앞으로 연구해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대통령 입장에서는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이렇게 할 수 없어요. 김정일도 마찬가지지요』
조갑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 우리의 민족사적 전통과 부딪칩니다. 우리는 통일신라 이후 1민족 1국가라는 자랑스런 전통을 지금까지 유지해 왔습니다. 만일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 한반도에 1민족 2국가가 생기니까
북한도 인정할 수 없고, 북한이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도 인정할 수 없는 겁니다.노태우: 『반국가단체가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중적이라고 볼 수 있지. 내적으로는 이중성을 유지할 수밖에 없어요』
조갑제: 북방정책이나 남북관계에 대한 노 대통령의 설명을 들으니까
6공의 통일정책은 결국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같다고 봅니다.
노태우:『지금 정부도 전에 내가 했을 때처럼 남북관계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겠지요. 하지만 한번 벗어난 것을 다시 잡기는 힘들지 않나 생각해요. 그게 참 안타까운 일이야. 또 한 가지 있죠. 당사자 해결원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상호주의 원칙입니다. 북한보다 유연하게 대응하고, 더 너그러울 수는 있지만, 남북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상호주의 원칙은 꼭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했습니다.』
조갑제, 『
노태우 육성회고록』, 조갑제닷컴, 2007, pp.125-127
조갑제가 처음에는 유도심문을 하다가 나중에는 삐져서 훈계를 하는데, 노태우가 이 점에 대해서는 아주 분명하게 자기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
그리고 다음 달에 이어진 인터뷰에서 조갑제는 똑같은 것을 다시 묻는데 노태우의 답변이 걸작이다.
조갑제: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논리적 근거로서 남북기본합의서대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하는 소위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태우: 『김대중 대통령도 근본적으로는 내가 했던 대로 남북관계 회복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전 정권에서 헤게모니를 빼앗기는 바람에 제대로 안 되어 입장이 어렵다고 봅니다. 햇볕정책이란 것이 따지고 보면 우리가 염려해야 할 부분은 없다고 봅니다. 어떤 기사를 보니까 내가 햇볕정책에 대해 상호주의를 내세우면서 비판했다는 식으로 썼는데, 그것은 내 의도를 잘못 표현한 겁니다.』
조갑제, 같은 책, p.258
어떤기사=조갑제 기사, 으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