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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국민의 독일과 소련에 대한 인식변화
프로이센의 징병제에 대한 미국의 시각 (길 잃은 어린양) 에서 트랙백

어린양 대인께서 재미있는 이야길 소개해 주셨기에 약간의 follow-up을 해볼까 합니다.

권력적 관점에서 행동하는 것이 자유주의적 원칙과 엇갈리는 경우, 보도담당 보좌관들(spin doctors)이 자유주의적 원칙과 합치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64] 예를 들어보자. 19세기 말엽 미국의 엘리트들은 독일을 진보주의적 헌정(憲政)국가로서 모방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은 미국과 독일의 관계악화로 말미암아 1차 세계대전 이전 약 10년 전쯤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1917년 4월 미국이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할 당시 미국은 독일을 유럽의 다른 적대국들보다 더 독재적이며 군국적인 국가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1930년대 많은 미국인들은 스탈린의 살인적인 국내정책과 더불어 1939년 8월 스탈린이 나치독일과 체결한 독소 불가침 조약에 영향을 받아 소련을 악마의 국가라고 생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1년 말 미국이 독일제국과 전쟁에 빠져들게 되자 미국은 새로운 동맹국이 된 소련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대대적인 선전을 전개했으며 소련을 자유주의의 이상과 양립할 수 있는 나라로 인식될 수 있게 하였다. 소련은 이제 민주주의의 한 전형으로 인식되었으며, 스탈린은 “조 아저씨”(Uncle Joe)가 되었다.

[64] 이 주제와 관련된 주요한 연구는 Ido Oren, "The Subjectivity of the 'Democratic' Peace: Changing U.S. Perceptions of Imperial Germany," International Security, 20, No.2 (Fall 1995), pp.147-84. 이 문장 및 다음 문장에서 논의된 사례들에 대한 더 많은 증거들을 위해서는 Konrad H. Jarausch, "Huns, Krauts, or Good German? The German Image in America, 1800~1980," in James F. Harris, ed., German-American Interrelations: Heritage and Challenge (Tubingen: Tubingen University Press, 1985), pp.145-59; Frank Trommler, "Inventing the Enemy: German-American Cultural Relations, 1900~1917," in Hans-Jurgen Schroder, ed., Confrontation and Cooperation: Germany and the United States in the Era of World War I, 1900~1924(Providence, RI: Berg Publishers, 1993), pp.99-125; and John L. Gaddis, The United States and the Origins of the Cold War, 1941~1947(New York: Columbia Univ. Press, 1972), 제2장. 양차대전 중 영국 정책결정자들이 어떻게 러시아에 대한 이미지를 정리했는지에 관한 논의는 Keith Neilson, Britain and the Last Tsar: British Policy and Russia, 1894~1917(Oxford: Clarendon, 1995), pp.343~43; P.M.H. Bell, John Bull and the Bear: British Public Opinion, Foreign Policy and the Soviet Union, 1941~1945 (London: Edward Arnold, 1990)을 보라.

John J. Mearsheimer,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 W. W. Norton, 2001
(이춘근 역,『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나남출판, 2004 p.78-79)


정치외교적 필요성에 의해 상대국가의 이미지가 꾸며지거나 변화한다는 이야기는 종종 듣게 되는데, 양차대전과 관련해 독일 및 소련의 이미지가 변화해온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연구가 있는 모양입니다. 저도 위 참고문헌 목록을 뽑아놓고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아직 손을 못 댔는데 생각난 김에 도전을 해 봐야겠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도 최근 한 20년 사이에 대중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무척 많이 바뀌었다는 점에 다들 동의하실 텐데, 실제 북한이 그만큼 변했냐 하면 그건 아닌지라 어디까지나 우리의 인식의 변화가 아닌가 합니다. 88년 이전의 인식과 현재의 인식 중 어느 쪽이 실체에 더 가깝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by sonnet | 2007/09/17 00:36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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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02/02 19:35

... 다. 왜냐면 1919년에 베버가 이 강연을 했던 당시 염두에 두었던 미국 정치란 아무래도 90년 전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당시는 19세기 말엽 미국의 엘리트들은 독일을 진보주의적 헌정(憲政)국가로서 모방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든가 하는 식으로 민주적 미국과 군국적 독일이라는 오늘날의 정형화된 이미지와는 좀 동떨어진 인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 more

Commented by paro1923 at 2007/09/17 00:39
강철의 대원수님에게 저런 귀여운 애칭이... (덜덜)
Commented by gforce at 2007/09/17 01:05
We've always been at war with Eastasia!!!
Commented by WARMASTER at 2007/09/17 01:05
U.J...?

맙소사 ㄱ-;;
Commented by 됴취네뷔 at 2007/09/17 01:09
Uncle.Joe라니..

인식의변화란것은 대단해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9/17 14:54
독일측도 19세기 내내 고립주의를 취하던 미국의 특성을 감안해서 현지 대사를 중심으로 1차대전 내내 미국의 전쟁불참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왔는데, 아무래도 대세는 그 이전에 조금씩 기울고 있었던 것 같군요.

(PS : 외교적인 노력과는 별도로 독일의 황당한 미국내 covert ops가 연이어 실패하고 영국에게 이용당하는 과정은 가히 안습. 2차대전 당시의 끝없는 실패까지 생각하면 독일인 입장에선 마르쿠스 볼프가 은근히 이 분야의 성공사례로 보일 법도 합니다.)
Commented by marlowe at 2007/09/17 15:16
2차 대전 당시 헐리우드 영화에는 실제로 이런 대사가 있더군요.

"여보게, 그들이 우리를 도청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하게 놔두세. 친구끼리 좀 더 깊이 이해하겠다는 데, 뭐가 문제인가?"
Commented by sonnet at 2007/09/18 08:29
paro1923/ 아니 좋지 않습니까.

gforce/ I told you that you knew the answer already. What was in Room 101.

WARMASTER, 됴취네뷔/ 그러고 보면 M.J. 같은 삘도 나는데요.

라피에사쥬/ 영국이 미국에 대한 참전공작을 죽어라 열심히 했다는 이야긴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 같습니다.

marlowe/ 아 그렇습니까. 위트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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