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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화 모델
어떤 문물이 원산지에서 해외로 전혀진 후, 오랜 시간이 흘러 본국에서는 변형되거나 소멸되었지만 그 문물을 받아들인 곳에서는 원형 그대로 잘 보존, 계승, 발전되어 세상 사람들의 찬탄을 금치 못하게 되는 일이 가끔 있다. 상국의 도가 쇠함에 편벽한 육왕을 따르는 무리들이 일어나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더란 말인가?


19세기 방식을 따르는 한국 기독교계(Koreans followed 19th-century model)

전반적으로 말하자면 아프가니스탄에 갔던 한국인들은 주로 미국에서 만들어진 19세기 선교 방식에 따라 활동했다고 시카고에서 발행되는 「크리스챤 센추리」의 편집장 데이비드 하임은 말한다. "미국 교회들은 전세계로 진출해서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키려고 하다가 한 세기 동안 비판을 받은 후 대부분 그러한 비판에서 교훈을 얻었습니다. … 남한 교회들은 독자적으로 일을 벌이는 오래된 독립 선교사 방식에 따라 활동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이런 식으로 일하는 미국의 주류 교회는 별로 없지요. 현지의 교회와 현지 신도들과 파트너쉽을 맺고 작은 팀을 파견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보다 협력적입니다."
50년대와 60년대에 서방의 주류 개신교계는 개발도상국의 다양한 독자적 운동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해외에서의 사회-정의란 대의명분 하에 활동했다. 그러나 오직 초청을 받고, 현지인들과 대등한 파트너쉽을 맺은 곳에서만이었다.

Robert Marquand, With Taliban's release of Korean Christian hostages, caution for missionaries, Christian Science Monitor, 2007년 8월 31일

사실 19세기식 미국 선교사업의 산물이 한국 교회들인지라 뭔가 배운 것을 소중하게 원형 그대로 잘 지켜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당금 천하의 형세를 보건데 우리를 제하고 소중화는 달리 없을진저.


그건 그렇고

요즘 보면 기독교 교단 측의 반응이라는 것은 일단 여론의 분위기가 심히 안 좋으니 비가 그칠 때까지 좀 수그리고 있자(일단모면파), 와 어려울 때일수록 기죽지 말고 더 가열차게 단합해 내적 단결 재고와 반격의 기회로 삼자(즉각역습파) 두 가지 견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번 기회에 외국 교회의 해외활동 기법을 벤치마킹해 실질적인 체질개선을 하려는 실용적인 움직임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실질적인 개선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개혁은 사건의 충격이 남아 있을 때 칼을 뽑아들고 달려들어도 될까말까한 일이다. 이 시점에도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위기의식과 움직임이 관찰되지 않으면 1,20년 정도로 뭔가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예컨대 이 정도 거국적으로 욕을 먹었으면 내부적으로 지금까지의 한국 기독교계의 선교활동의 장점과 단점을 솔직하게 재검토한 뒤, 향후 선교활동의 개선방안 로드맵 같은 것을 제시해 개선의지와 평가기준을 밝혀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래야 나중에 비슷한 문제가 다시 터졌을 때, 개선하겠다는 것 중 얼마나 변한 게 있고 어떤 게 미진한지, 또한 교회 입장에서는 어떤 게 바꾸기 쉽고 어떤 게 바꾸기 어려운 근본적인 요소인지를 당사자의 시각을 충분히 반영해 평가할 것 아닌가?

문제는 결국 또 터질 것이다. 다음에 문제가 터졌을 때, 아 조직이란게 쉽게 바뀌지 않는데 교회가 그나마 그동안 노력을 꽤 했구나라는 호의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기를 희망한다.

사실 한국 교회가 믿음을 강조하는 방식은 황군에서 정신력을 강조하는 유형과 흡사해 보인다. 예를 들어 황군에서는 항공어뢰 사정거리가 짧아 피해가 우려되니 무기를 개선해야 된다는 참모의 건의를 "천황이 하사하신 무기를 받았는데도" 감투정신이 부족해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질타하며 깔아뭉개는 식의 반응이 흔했다.
한국 교회가 모든 문제를 믿음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늘 부르짖는 것과 뭐가 다른가?

적어도 교회는 합리적으로 업무 기법과 기술을 개선한다고 해서 믿음이나 정신력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뭔가 근본주의적 도그마가 있어 19세기에 사부가 전수해준 기술을 손대면 사문난적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지금 문제의 핵심은 남한의 선교단체들이 최선의 조치를 취해왔는데도 불가피하게 희생이 난 것이 아니라, 그동안은 단지 운이 좋아서 넘어가다가 드디어 큰 사고가 한번 터진 것이라는 점이다.

어찌되었든 조잡한 일처리가 누적되다가 희생자가 난 것을 거룩한 순교로 포장한 다음 내부적 책임소재와 개선의 필요성을 덮으면 곤란하다. 이번에 죽은 사람들이 개죽음한 것인지 가치있는 순교를 한 것인지는 교회 외부에서 뭐라고 떠들건 향후 개신교 선교단체들의 자기개조 노력에 달렸다.

전에도 지적한 바 있지만, 교회의 선교활동 전반을 공격하는 것은 역효과만 난다고 본다. 그건 그 종교의 본질에 해당하는 문제라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해 세속사회가 종교단체에 압박을 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열어주고 몰아야 한다. 세속사회가 바래야 할 것은 상황의 개선이지 이때구나 하고 특정집단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다만 한국교회는 외국 교회들도 포기한 촌스럽고 시대착오적인 전술에 집착하고 있다는 세간의 비웃음은 내부의 개혁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데 조금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효과가 없다면 소중화가 달리 소중화가 아니라고 체념할 수밖에.


disclaimer. 이 글은 조직으로서의 남한 교회와 선교단체의 조직운영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공격하는 것이지만, 종교로서의 기독교나 신도로서의 기독교인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즉 니버 목사 말대로 도덕적인 개인들이 모여도 비도덕적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식의 관점이다. 그러나 독자가 교도로서 자신이 속한 교회의 무오류성과 한 배를 타겠다고 자발적으로 결정하면 그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by sonnet | 2007/08/31 18:16 | 정치 | 트랙백(3) | 핑백(2)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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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노는 사람 Play In at 2007/09/01 02:03

제목 : 19세기 방식을 따르는 한국 기독교계
전반적으로 말하자면 아프가니스탄에 갔던 한국인들은 주로 미국에서 만들어진 19세기 선교 방식에 따라 활동했 다고 시카고에서 발행되는 「크리스챤 센추리」의 편집장 데이비드 하임은 말한다. "미국 교회들은 전세계로 진출해서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키려고 하다가 한 세기 동안 비판을 받은 후 대부분 그러한 비판에서 교훈을 얻었습니다. … 남한 교회들은 독자적으로 일을 벌이는 오래된 독립 선교사 방식에 따라 활동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이런 식으로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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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프간 사건 담론 뒷처리2: 돈받아내기
!@#… 기린아님 포스트에서 트랙백이자, 담론의 뒷처리 이야기에 대한 약간의 보충. 정부가 납치당했다가 돌아온 이들에게 계산서 들이미는 것에 대한 판단 몇가지, 그리고 그것에서 시작......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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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이녁 at 2007/08/31 18:27
정말 이 땅의 교회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를 강하게 품게 만드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더 슬픈건 그 때문에 선량한 일반 교인들까지 같이 욕먹는 거지요.
Commented by Ha-1 at 2007/08/31 18:27
기독교와는 상관없이 우리나라가 정통성에 집착하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이를테면 한자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유일한 나라 아닙니까?

'유학파'를 칭송하는 것도, 대륙의 것이 곧 세계의 중심이라는 변두리 정서에 의거한 것은 아닐지 싶습니다.
Commented by marlowe at 2007/08/31 18:52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가 없으니, 외부에서 긍지를 찾는 것이겠죠.
Commented by IEATTA at 2007/08/31 19:35
한두번 희생가지고 끝날거 같지는 않습니다....

또 많은 피가 흐르고 흘러야 바뀌겠지요...
정녕 학습이란 충격과 공포가 있어야만 되는 걸까요...

(하지만 베트남에서의 충격과 공포를 잊어버리고 이라크에서 또 재현하는 미군들도 참..)
Commented by Luthien at 2007/08/31 20:16
무릇 소중화라 함은 주님의 재조지은에 물심양면으로 보답함이 마땅한즉...(하략)
Commented by shaind at 2007/08/31 20:36
이녁 // "선량한 일반 교인"이란 없습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7/08/31 21:08
그러고 보니, '소중화' 맞군요.
그럼, 한반도는 기독교 상층부의 머릿속에는 '현세의 에덴'? (...)
Commented by windxellos at 2007/08/31 21:48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이 '충격'으로 온 기회를 내부개혁의 계기로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가는 언젠가 한국의 개신교 교단은 지금보다 훨씬 강한 '충격'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겠죠. 모든 기회를 무시하고 소중화의 환상에 매달리다가 결국 '남의 손으로',
'거칠게' 현실의 마당으로 패대기쳐졌던 조선처럼 말입니다.(므음)
Commented by 스카이호크 at 2007/08/31 22:05
외부의 적을 만들면 골수분자가 결집하죠.

원래 예수쟁이들의 신앙의 시작은 회개에서부터인데, 우리 교계의 어르신들 생각은 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옳은 길과 편한 길 중 편한 쪽을 고른 것 같네요...
Commented by 아드소 at 2007/08/31 22:18
음... 그렇겠군요.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07/08/31 22:25
대국의 문화가 변방에서 발전을 거듭해 캠코더 미션 교회모금 광고가 되었으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러한 현지화의 사례는 선교방식 외에도 찾아보면 많을 터)
Commented by ghistory at 2007/08/31 22:55
Ha-1/ 타이완도 남북한처럼 번체자 씁니다.
Commented by ssn688 at 2007/08/31 23:02
소중화의식도 한 몫하지만, "(어릴 때) 선생을 잘 만나야"도 만만찮게 작용하지 않을까요. 복음주의 성향의 미국 선교사의 손길을 탔던 개신교와는 다른 '선생'을 만났던 가톨릭은 어떨까요. 가톨릭이나 개화기 때 가톨릭을 전한 외국 신부들도 구린 데는 많습니다만, 최소한 "광기에 가까운 선교 열풍"이란 측면에선 충분히 대조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p.s. 대만도 한자 번체 정자 계속 쓰고 있습니다. 아무리 대국에 눌려도, 듣보잡 취급하기엔 나름대로 '큰' 나라죠. :)
Commented by shaind at 2007/08/31 23:28
가만 생각해보니 미국 동부 영어가 영국 영어에 비해 더 옛스럽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영국 영어에서 생긴 음운, 어휘상의 변화를 미국 영어는 겪지 않았기 때문이라던가......

"소중화" 현상은 생각보다 상당히 보편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8/31 23:34
그나저나 저 19세기식 무대포 선교에다가 모모일보의 군사전문기자가 주장하던데로 선교사들을 구출하기 위한 파병까지 곁들여지면 완벽한 포함외교의 21세기 버전이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이 그짓거리 할 능력이 있는가는 둘째치고)
Commented by oldman at 2007/09/01 01:20
말씀하신 부분에 적극 동감합니다.
특히나 순교를 강조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제가 학도병 모집회라도 온 것같은 기분이 들었으니 말입니다.
Commented by 나즈 at 2007/09/01 01:46
Ha-1님/본문과 관계없는 리플 죄송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한자를 간소화하지 않는건 정통성에 대한 집착과는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중국과 일본에서 한자를 간략화하는 건 일상생활에서 복잡한 한자를 자주 써야하다보니 불편함을 느껴서가 아닐까요? 실제로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한자일수록 우선적인 간략화의 대상이 됩니다. 반면 우리말은 학술서나 법조문 정도가 아니면 굳이 한자를 병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한자를 자주 사용하는 식자 학자 전문가 입장에선 '빠르고 간편한'것보다 '뜻이 정확한' 것이 중요하고, 한자를 공부하고 사용할 능력과 여유가 충분하니 굳이 간략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그 외의 계층에서는 단순히 '한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니' 굳이 간략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포스팅 본문에는 대부분 동의합니다만, 그다지 맞지 않는 예가 나온 것 같아서 굳이 끼어들어보았습니다. 본문을 받아들인 후에는 현재 기독교계의 어떤 특성이 혁신을 방해하고 소중화주의를 고집하게 하는지 고민하여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순서이지, '우리나라는 소중화근성이 있어서..'란 일반화로 흐르는 것은 그리 발전적인 이해 방향이 아니라고 봅니다.
Commented by amish at 2007/09/01 01:51
소중화 현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일반적인 '식민지 현상' 이지요.

원래 식민지가 본국의 형태를 더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게 되는 법이라고 하더군요.

..
그리고 한국의 인문학계의 문제도 사실 '식민지적 지식인'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 셈이구요.

비 합리적 기제나 혹은 대책없다 싶은 행위들이 실제로 이를 자세히 관찰하면 위의
'식민지성'에 기초한 것들이 꽤 많지요.

Commented by umberto at 2007/09/01 03:23
문제는 결국 또 터질 것이다. 다음에 문제가 터졌을 때, 아 조직이란게 쉽게 바뀌지 않는데 교회가 그나마 그동안 노력을 꽤 했구나라는 호의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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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 세금으로 몸값을 메꿔야 한단 말 입니까? ㅠㅜ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9/01 08:22
제 출신 중학교의 경우 '사고로 익사한 학교 설립한 선교사'를 그저 칭송 또 칭송해 마지 않더군요. 죽음의 그 순간까지 신을 찬미해 마지 않았다는 둥 타인을 구하기 위해 제목숨 희생했다는 둥[..](증거는 없음)

그러한 교육내용이 아직도 '철자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후배들에게 전해지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도 기독교계의 미래엔 뉴 프론티어 정신이 영원토록 함께할것을 믿어 의심치 않겠나이다[..]
Commented by band at 2007/09/01 09:47
뭐......삐딱하개 보자면 해외선교에서 선교와 문선의 차이를 알수없개 하는 내용을 많이 볼수 있습니다. (몇년전 우리의 시위문화?를 주제로 한 다큐가 있었는대 파라과이와 파푸아뉴기니(스리랑카였던가?)에서 같은 율동을 하더군요..-;-.. 그걸 왜 아프간에서 볼수 있는것인지..) 뭐 그들만의 리그일뿐...이라고 치부하고 싶지만 10여년전 대학 한 귀퉁이에 있던 친구들이 전세계로 뻗어나간개 아닌가 하는 의문에 멍할뿐입니다.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7/09/01 17:49
이번 납치사건이 인질대부분의 무사귀환으로 끝난 만큼 보수 교단이 반성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당장 어제 나온 언론 보도만 보더라도 계속해서 my way를 가겠다고 당당히 선언할 지경이니. 그냥 말씀하신대로 소중화는 소중화이려니 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Commented by 지나가던사람 at 2007/09/01 23:35
위에서 소개한 현재 미국의 주류 선교방식은 이미 도입되었습니다. 대학선교동아리 같은 곳에서는 해외선교를 그런 방식으로 하더라구요. 아직 이런 방식이 보편화되지는 않았지만, 시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at 2007/09/02 16:23
인터콥은.. 아무래도 공격적 이슬람권 선교가 줄어들면 '여행사'이자 '선교사 양성 학원'으로서 돈벌이에 치명적 타격이 오기 때문에 정부의 여행금지국 지정을 '사단의 도전'이라고 하면서 난리를 치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지인 at 2007/09/02 21:56
관련글들 가운데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을 꼬집은 유일한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독교의 선교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알아보신것 같고요. 저 역시 기독교인으로서 선교에 대한 나름의 견해가 있지만 지나가던사람님의 덧글처럼 모든 교회가 과거의 행위를 답습하고 있는것은 아닙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기독교에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분들이 옳다구나 모든 기독교를 하나로 그러모아 비난하는 것은 영 견디기 힘들었는데 그런기분 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견해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천마 at 2007/09/04 13:11
박은조목사의 행태를 보고 제가 자주가는 어떤 블로그에 관련 덧글에 "2차대전 당시의 일본군 대본영"이 연상된다고 쓴적이 있습니다.

자신은 안전한 곳에 있으면서 문제점은 싹 외면하고 현장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찬양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불평말고(문제점을 제기하지 말고) 그들을 따라 희생해야 한다는 식의 행동이 딱 그들을 연상시켰거든요.

결국 일본은 핵폭탄 두발을 맞고서야 마지못해 패배를 인정하고 항복했지만 우리나라 기독교 단체는 어떨까요. sonnet님의 글을 보면 sonnet님은 가까운 시일내에 스스로를 개선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현재 그들의 행동을 보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덧글을 보니 대학 선교동아리의 예를 들어 희망적으로 보는 분도 계시지만 그렇다해도 동아리의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여론을 형성하고 기독교내부를 개선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테니 결국 마찬가지군요.(게다가 그들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Commented by sonnet at 2007/09/04 19:02
이녁/ 저의 의견은 http://authork.egloos.com/3747083 로 대신합니다.

Ha-1/ 번체자를 쓰는 경우는 다른 분들이 지적해 주신 대로입니다.
유학파의 경우는 좀 반대되는 것 같은데, 만약에 우리가 문명적/기술적 변방이어서 지속적으로 중앙과 교류함으로서 그 문제를 극복하고 있다면, 유학파가 계속 존중받는다는 것은 교류가 계속되는 증거가 아닐까요?
교류가 끊긴 채 옛 전통이 화물숭배의식(http://sonnet.egloos.com/2064627)화 되지 않는가를 늘 경계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marlowe/ 음, 제가 내부인(교도)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IEATTA/ 교회 뿐 아니라 이 세상의 어떤 조직도 한 번 실수로 고쳐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직의 학습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Luthien/ 우리가 루시엔 웨스텐라를 믿으니, 프로펫사 반 헬싱께 고난을 받으사 말뚝에 박혀 재가 되시고...

paro1923/ 사실 상층부라곤 하지만...
제가 한나라당을 늘 '전국 복덕방 업주 연합회'라고 비유하는데 신교 교파단체나 연합회들 카톨릭 같은 피라미드형 계서관계가 아닌지라 비슷한 성격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조직의 합의가 있다 하더라도 하부 구성원들을 잘 따르게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스카이호크/ 골수에 대한 문제를 꽤 오랫동안 생각해 봤는데, 유머의 힘을 빌려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 이상의 답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

아드소/ 사실 다른 분들이 지적해 주신 것처럼 소중화 비유는 딱 잘 맞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이버니안/ 전 이번 피랍자들은 일종의 교회 청년부 수련회 적인 성격이 강하지 않나 봅니다만, 교회 다니는 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ssn688/ 예. 초기조건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는 데 저도 공감합니다.

행인1/ 포함외교라... 방향이 반대인 것 같군요.
해양전략연구소가 발간하는 학회지를 보니까 북한의 푸에블로 호 피랍사건을 20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포함외교 사례로 분석하던데, 이번 아프간 피랍사건도 성격적으로 상당히 유사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oldman/ 종교가 물질적인 면에 경도되어 장사치처럼 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학도병 모집회 같이 되어도 참 난감할 것 같습니다. 뭐랄까 소탈하고 소박한 측면을 유지해 줄 필요가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shaind, amish/ 두 분의 지적이 모두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관련 있어 보이는 사례로 근대 이후의 일본 학계에서는 각 세대 별로 유학생들이 건너가 그 시대의 최신 서양 학문을 배워오지만 그 것이 다음 대에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대에는 다음 대에 유학갔다 온 후배들의 직수입품이 메워서 각 세대들은 자국의 선후배들보다 외국과 더 대화가 잘 되더라는 식의 현상이 있다고들 하는데, 이것은 이것대로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umberto/ 생각하기는 싫지만, 안 그렇게 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라피에사쥬/ 요즘 일반인 상대로 특정 주제의 역사에 대한 책이 유행인 것 같은데 '미담의 역사'같은 걸 한번 써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band/ 으흐흐흐....

길 잃은 어린양/ 그래도 인명은 귀한 것이니 어찌 기뻐하지 않겠니이까.

지나가던사람/ 위안이 되는 말씀이네요. 소개 감사합니다.

펄/ 그 단체는 이미 호랑이 등에 탄 상태라 노선의 전환은 곧 자기부정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지인/ 예. 이번에 인명 피해도 있었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합의의 여파로 아프간 지역에서 잘 활동하던 교인들까지 철수해야 하는 피해를 본 만큼 어떤 것이 장기적으로 교회와 사회의 공동 이익이 될 것인지를 궁리할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천마/ 저는 너무 큰 기대를 하지도 않지만 marginal한 변화라도 있기를 촉구하는 쪽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여론의 냄비근성을 생각하면 밥이 익을 때까지 압력솥이 동작해 줄지는 잘...
Commented by 比良坂初音 at 2007/09/06 06:58
지극히 합리적인 이야기로군요
아쉽습니다......그네들이 절대로 귀를 기울이긴 커녕 말하는 사람을
쫓아내거나 두드려 패기위해 광분할거라는 사실이 말이지요
Commented by 알비셀레스떼 at 2007/09/07 01:45
"하이버니안/ 전 이번 피랍자들은 일종의 교회 청년부 수련회 적인 성격이 강하지 않나 봅니다만, 교회 다니는 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 네, 그럴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다니고 있는 교회 목사님께서도 단기간을 단체로 다녀오는 방식은 방법론적으로 확실히 부적절하다고 개탄하시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이 이라크 못잖게 위험하다는 것을 피랍자들이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는지, 기획한 쪽에서 안전상 문제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기는 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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