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의 군사전문기자가 아프간 인질 사태를 놓고 한국군이 투입되는
소탕작전(인질구출작전이 아님) 구상을
기사화해 세간의 빈축을 사고 있다. 협상을 위한 것이든 군사작전을 위한 것이든, 이런 종류의 구체적인 작전을 지원할 수 있는 고도의 정보를 얻으려면 현지에 상당한 수준의 정보망이 필요하다. 그런 정보망은 어떻게 구축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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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단시간 내에 탈리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아프가니스탄에 친미정권을 세울 수 있었던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CIA사상 가장 크고 길었던 아프간 공작을 하면서 1979년에서 2001년 사이의 20여년간 이 지역에 막강한 정보망과 인맥, 지역전문가를 양성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관심은 아프간 공산정권이 붕괴한 뒤 한 때 빠르게 식었지만,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간에 거점을 구축하면서 점진적으로 되살아났다.
9/11 테러를 맞은 후 미국 정부는 신속한 반격을 해야 한다는 강한 압력을 받았지만, 펜타곤과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프간 작전의 주도권은 CIA에게 넘어갔다. CIA는 옛 친구들에게 돈다발을 살포하는 한편, 막강한 미 공군력으로 이들의 전력을 보강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탈리반이 대세를 장악했다고 판단해 탈리반에 붙었던 많은 지방 호족 세력들은 미국의 결의가 전례없이 단호한 것을 보고 동요했다. 이들 동요계층은 채찍과 당근, 즉 정밀유도폭탄의 위협과 돈다발의 유혹에 넘어가 탈리반을 배신했다.
현찰 1천만 달러(일련번호가 연속되지 않는 헌 100달러 지폐 10만장)를 짊어지고 아프간에 최초로 투입된 CIA 선발대의 회고담When things quieted down, Rick and I counted the $10 million. Because the boxes had been opened in Dushanbe, I wanted to verify the amount as quickly as possible. I expected there to be $2.5 million in each box, but for some reason the amount in each box was different. Still, the $10 million was all there, and after filling the black suitcase with $2 million, Rick and I carefully repacked each box. We labeled the amount inside each box across the duct tape we used to seal them.
The question was how to secure the money. The four boxes were large, and there was no place to hide them. After some false starts, I decided to hide them in plain sight. We cleaned out a corner of the workroom and stacked the boxes two high next to each other. They quickly became just a bench to sit on or a place to rest a coffee cup or water bottle. They also proved to be an ideal spot to stretch out for a nap or relax and read. The most expensive mattress any of us would ever sleep on.
About a week after the money arrived, we received a call from a finance officer in the CTC. When I got on the phone, he thanked me for the cable acknowledging the receipt of the $10 million. Then he asked if we were storing the money in a safe. I told him we didn't have a safe.
"Well," he asked, "where is the money being stored?"
"It's still in the shipping boxes, sitting in a corner of our office."
There was some blustering and sputtering at the other end of the line. When he caught his breath, he said he'd have a safe on the next supply flight out to the region.
"No thanks," I replied. "We have no way to move a thousand-pound safe around here. Besides, we'd probably need three four-drawer safes to hold all this cash."
There was more sputtering and some mention of regulations. I broke in and said, "Look, the cash is in our office space that is always manned by at least one CIA staff officer, day and night. No Afghans come into the office space without an escort. The money is therefore never out of the immediate control of a team member. It's as secure as possible, given the circumstances." I paused, then said, "Besides, the boxes make a great place to take a nap."
Schroen, Gary.,
First In: An Insider's Account of How the CIA Spearheaded the War on Terror in Afghanistan, Presidio Press, 2005, pp.178-179
이들이 고액권을 대량살포함에 따라 가난한 지역경제에 인플레이션과 혼란이 발생했다. 모든 이들이 100달러 지폐를 들고다니면서 1-2달러 짜리 물건을 사대니 돈을 거슬러 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현지에서는 "100달러 지폐만 주지 말고 저액권도 같이 공급해달라"고 요구했지만, 100달러 지폐만 갖고도 처치곤란으로 고민하던 소수의 CIA 인력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여서 끝까지 해결되지 못했다.
CIA의 사례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에 정보망을 갖춘다는 의미는 일본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에 정보망을 갖추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아프간 정치는 기본적으로 무장 호족들의 마피아 정치이며, 이들 아프간 국내의 크고 작은 깡패두목들에게 정기적으로 용돈과 무기, 향응을 제공하면서 친구로
묶어 두는 것이 바로 정보망이 된다.
지금처럼 선교를 표방하는 적지 않은 인력이 계속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고 그로 인한 인질극이 반복되며 괴롭힘을 당하는 사태가 이어진다면, 한국 정부는 예방적 보호와 사후 대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많든 적든 이와 같은 능력을 현지에 구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말은 한국 정부가 아프간의 비극에 일조하게 된다는 말과 같다.
설마 그정도까지 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유럽 정부들이 인질의 몸값으로 뿌려댄 금액을 생각해 볼 때, 이런 사태가 몇 차례 반복될 정도라면 차라리 현지의 실력자들에게 현찰박치기를 해두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는 판단이 설만하다.
한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전략적 이해관계가 없다. 아프가니스탄은 주요 무역상대국도 아니고, 석유 같은 전략자원의 공급처도 아니며, 영토를 다투지도, 국경을 맞대고 있지도 않다. 심지어는 우리와 적대적인 어느 강대국을 물먹이기 위한 게릴라전의 장소도 아니며, 물론 문화적, 종교적, 인종적으로도 연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 생각에는
선교도 봉사도 하지 않고 현지에 정보망도 두지 않는 쪽이 한국 정도의 국력을 가진 국가가 아프가니스탄을 진정 돕는 길이다. 전략적 이해관계가 없는데 효율이 떨어지는 단기선교의 뒤치닥거리를 지원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현지 깡패들에게 용돈을 쥐어주는 상황이 오면 아프간을 위해서나 우리를 위해서나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