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by sonnet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rss

skin by 이글루스
네오콘은 현실주의인가 이상주의인가? (3)
네오콘은 현실주의인가 이상주의인가? (2)에서 셀프트랙백

이글은 원래 앞선 글에 첨부할 보론으로 작성되었던 것인데, 원문이 좀 길어진 관계로 제외했던 것이다. 사실 독자들도 내 관점을 자명하다고 받아들인다면 사족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되기에 그에 맞추어 수정해서 공개하기로 한다.

님이 현실주의라고 하는 것이 그럼 린드블룸의 점진주의를 말하는 것이었습니까? 이름이야 붙이기 나름이지만 린드블룸류의 점진주의는 주로 행정학, 정책학에서 논의하는 것이고 국제정치학에서의 현실주의와는 큰 관련이 없지요. 저는 지금까지 님이 국제정치학에서의 이상주의/현실주의 논의를 가지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님이 말하는 이상주의란 저로서는 모험주의로 이해하면 되겠군요.

그렇다면 네오콘은 결코 점진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국제정치학에서의 현실주의 논의에 입각해서는 현실주의자입니다. 왜냐하면 국제정치에서의 현실주의는 국제관계를 국가의 이기적 국익추구행위와 그 상호관계로 이해하는 것이고, 네오콘이 추구하는 것은 미국의 권력을 증대하고자하는 것이니까요. (인형사)


앞선 글에서 나는 주로 이상주의를 먼저 특징짓고, 이에 현실주의를 이에 대조되는 개념으로 가볍게 위치지은 후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주요한 현실주의자와 네오콘 정객의 사례를 들어 실제로 이들을 분석할 때 이러한 특징에 따른 구분이 적절함을 보였다.

여기서 나는 일부러 「정의」라는 개념을 피하고 있으며, 기존에 널리 사용되는 「현실주의자」같은 용어들을 새로 정의하지 않고도 내가 지적한 특징들이 호환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취급하였다. 그러나 위 반론처럼 실은 내가 개념을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것과 상당히 다르게 「재정의」하고있기 때문에 설명력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해볼 수도 있다.
과연 그런지는 이제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내가 외부의 권위를 이용하는 편한 방법을 쓰지 않고 이런 식의 접근방법을 취하게 된 한 가지 이유는 이상주의의 실체에 대해서는 이상주의자 본인들에 의한 정교한 논의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주의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역사학자이자 외교관인 케난(George Kennan), 정치학자 모겐소(Hans Morgenthau) 등이 그때까지의 국제정치이론에 “이상주의(Idealism)”, “법률주의(Legalism)”, “이상향주의(Utopianism)”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에 대한 대안이론으로 현실주의를 주창한 것이다. 그 이래 이 이론적 입장은 학자들뿐만 아니라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도 오랫동안 지배적인 위치를 점해왔다. 이들은 미국인들에겐 순진한 낙관주의적 성향이 있다고 보고 인간본성의 악마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그와 같은 성향을 제어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이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본성의 하나다. 따라서 정치란 곧 권력투쟁이며, 이상이 아닌 현실에 기초한 정책(realpolitik policies)이야말로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Allison, Graham T., Zelikow, Philip D., Essence of Decision: Explaining the Cuban Missile Crisis (2nd Ed.), New York:Longman, 1999
(김태현 역, 『결정의 엣센스』, 모음북스, 2005, p.69)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상주의란 것은 초창기 현실주의자들이 물리치고자 했던 경쟁이념을 규정한 말이라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스스로를 이상주의 학파라고 주장하는 학자나 관료는 찾아보기 힘들고, 이에 따라 이러저러한 사람들에 적용해봐서 잘 들어맞으면 맞는 정의라는 식의 검증을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식의 경쟁자 성격 규정하기는 대개 대중적 동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인 만큼, 일반적인 어의가 상징하는 것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즉 내가 앞선 글 서두에 제시한 이상주의의 특징들은 이런 이상/이상향의 어의(목표지향성)나 낙관주의 성향 등을 반영한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러한 구분들은 어느 정도 상대적이다. 여기서부터 이상주의가 시작된다는 것 같은 명확한 경계선은 없다. 그것보다 현실세계에서는 위에서 본 용법처럼 보다 현실주의적인 그룹이 보다 이상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는 그룹을 지칭해 "저자들은 이상주의자요"라고 공격하며 쓰이는 일이 더 많다.


반면 현실주의자들은 우리가 왜 현실주의자라고 불리며 그것이 왜 옳은가에 대한 논의를 많이 했기 때문에 기존 논의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자유주의와는 반대로, 현실주의자들은 국제정치에 대해서는 비관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다. 현실주의자들은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일이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다만 그들은 국가들간의 안보경쟁(security competition)과 전쟁이라는 처절한 모습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쉬운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평화적 세상을 창조하는 일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지만 현실적인 일은 아니다. 카가 말하듯 현실주의는 국제정치를 움직이는 기존의 힘, 기왕의 국제질서가 나가는 방향에 대한 필연성, 그리고 이와 같은 힘과 경향을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하려는 것이다.

Mearsheimer, John J.,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 New York:W. W. Norton, 2001
(이춘근 역,『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나남출판, 2004, p.58)

이렇게 현실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을 바꾸기 어렵다고 본다. 그러니 주어진 세계와 그 동작 방식을 가능한 잘 이해해서 적응하자는 것이다. 즉 옷은 이거밖에 없으니까 옷에 몸을 맞춰 살자는 체제순응적 태도야 말로 현실주의자의 가장 기본적인 마인드이다.

내가 앞서 지적한 현실주의자의 특징인 "목표(이상)의 존재, 그 도달 가능성이나 도달 방법에 대한 확신부족"은 이런 설명과 잘 맞아들어간다. 위 설명의 경우 이상의 존재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지만, 그 점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어짜피 이상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칭 3세대 현실주의자인 미어셰이머는 1세대에 해당하는 카의 『20년 간의 위기』를 인용해 이러한 견해가 현실주의자 전반에 공통된 입장임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이런 세대 마다 좀 입장이 다를 텐데 내가 묘사하고 있는 현실주의자의 특징이란 그 모두에게 잘 들어맞는가?

우선 1세대 현실주의자의 대표격인 조지 케난을 보자. 그의 명성은 주로 냉전 초기 냉전의 설계사로서의 통찰력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냉전은 동유럽에서 소련이 이미 차지한 세력권을 인정하고 세월의 힘을 빌려 점진적 변화를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현상유지적이고 점진적이며 온건했다.

미국이 도움 없이 혼자서 공산주의 운동의 생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으며, 러시아에서 소련의 권력을 빨리 멸망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특정한 상황에서 소련의 정책 실행에 엄청난 긴장을 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최근에 크렘린이 보여준 행동보다 훨씬 많은 절제와 신중함을 강요할 수 있으며, 이런 방법으로 미국은 소련이 결국 권력의 붕괴로 나아가는 경향 또는 소련이 점진적인 성숙 쪽으로 그 배출구를 찾게 하는 경향을 촉진할 수 있다.

George Kennan, "The Sources of Soviet Conduct", Foreign Affairs, 1947년 7월

실제로도 그랬다.

그 시점에 국무성으로 다시 돌아온 조지 케넌은, 그(봉쇄) 정책이 너무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미국을 문제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외교정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공식화하는데 반대했다. … 봉쇄에 대한 케넌의 생각은 전통적인 외교의 사고와 유사했다. 그의 봉쇄정책은 더 적은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었고 좀더 선별적이었다. 그 좋은 예가 티토(Joseph Tito)하의 공산주의 전제정부를 갖고 있던 유고슬라비아였다. 1948년에 티토는 그리스 공산주의에 대한 소련의 지원을 포함하여 소련이 유고슬라비아의 외교정책을 지배하려는 노력에 반대하면서 스탈린과 결별했다. 봉쇄정책의 이데올로기적 면에서 보면 미국은 공산주의 국가인 유고슬라비아를 도울 수 없었다. 반면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은 소련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유고슬라비아를 도와야만 했다. 후자가 실제 미국이 취한 정책이었다. 트루먼 독트린이 세계의 모든 자유 국민을 방어한다는 목표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전제주의적 공산정부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했다. 미국은 세력균형을 이유로 원조를 했으며, 그 정책은 유럽에서의 소련 패권에 큰 상처를 남겼다.

Nye, Joseph S., 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 An Introduction to Theory and History, 3rd Ed., Longman, 2000
(양준희 역, 『국제분쟁의 이해: 이론과 역사』, 서울:한울 아카데미, 2001, p.180, 189)

케난의 견해를 막강한 소련을 상대로 한 냉전 초기라는 특수한 상황에 돌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케난은 100년 넘게 살았고, 냉전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도 역시 이러한 신중한 현상유지에 대한 관점은 일관된다.

1996년 케난은 애이브럴 해리먼의 미망인이자 당시 주프랑스 대사였던 파멜라 해리먼의 연설을 들으러 콜럼비아 대학에 갔다.

행사가 끝나고 케난의 열렬한 추종자 중 하나이자 국무부 부장관이던 스트로브 탈보트를 포함한 일군의 저명인사들이 콜럼비아대 총장의 저택에서 만찬을 가졌다. 디저트를 끝낸 후 사전 예고 없이 우리는 케난에게 연설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92세의 전설적 인물은 천천히 일어나 약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폴란드, 헝가리, 체크를 받아들여 NATO를 확장한다는 탈보트와 내가 무엇보다도 깊게 관여하고 있던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정책의 기둥 중 하나를 잘 짜여졌지만 거칠게 공격했다.
케난은 그 달변과 역사인식을 이용해 NATO를 확장한다는 것은 유럽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으며 "엄청난 역사적 전략적 과오" 임을 그 만찬에 모였던 인사에게 경고했다.
……
그는 냉전의 끝과 유고슬라비아 인종분쟁의 발발을 정확히 예측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이 그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과 발칸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혼자서라도 무력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우리가 오래묵은 인종적 증오를 멈추려고 시도해야 하나?" 내가 설명하려고 하자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 대사를 지낸 적이 있었고, 나는 그가 내 말을 이해하고 내게 동의해 줌으로서 발칸문제를 다루던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승인 도장을 찍어줄 것을 원했었다.

Richard Holbrooke, The Paradox of George F. Kennan, 워싱턴포스트, 2005년 3월 21일

클린턴 행정부의 국무부의 실세들, 스트로브 탈보트나 리처드 홀브룩 같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도 존경하고, 명성도 드높은 케난에게서 자신들의 동유럽/발칸 정책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려고 힘썼다. 전대의 절정 고수가 동의만 해 주면 국내적으로 반대가 적지 않았던 그들의 개입주의적 외교정책을 뒷받침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케난은 그들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묵사발냈고, 결국 홀브룩은 노선배의 죽음을 맞은 순간조차도 케난이 틀리고 자기가 맞았다며 그 섭섭함을 감추지 않은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결과적으로 홀브룩의 말이 맞은 셈이다. 현실주의자도 늘 맞는 게 아니라 틀릴 때도 있다. 아주 완고한 현실주의자라면 장기적으로 봐서 러시아가 힘을 회복하면 NATO의 동유럽 확장은 결국 재앙으로 판명될 것이라고 여전히 주장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현실주의자라면 누구나 케난이 무엇을 걱정했는지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그는 내가 현실주의자들의 특징 중 하나라고 지적해온 개입에 뒤따르는 의도치 않았던 귀결을 걱정하는 것이다.
유고 내전을 가리켜 "왜 우리가 오래묵은 인종적 증오를 멈추려고 시도해야 하나?"라고 했던 케난과 레바논 파병을 가리켜 "천년 묵은 말벌의 소굴에 손을 집어넣은 것"으로 규정한 콜린 파월의 생각의 유사성을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번엔 2세대 격인 신현실주의(neorealism) 혹은 구조적 현실주의(structural realism)의 대부인 케네스 월츠를 보자. 월츠는 자기 이전의 국제정치학엔 (체계적) 이론이랄 게 없다고 선언하면서, 국제사회의 무정부적 구조가 현실주의가 득세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그러나 월츠는 국제체제가 강대국이 힘을 얻기 위해 공격적 행동을 하도록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반대의 주장을 전개한다. 국제정치적 무정부 상태는 국가들이 세력균형을 깨는 일을 하도록 하기보다는 오히려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행동하도록 권장한다는 것이다. 월츠는 “국가들의 첫 번째 관심은 국제체제 속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일이다”고 쓰고 있다. 국제정치 이론가 랜달 슈벨러(Randall Schweller)가 말하는 것처럼 월츠의 이론에는 “현상유지적 편향성”(status quo)이 있는 것 같다.
월츠는 국가들은 상대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힘을 증가시키려는 동기가 있으며 상황이 좋을 경우 이런 동기에 의한 행동은 훌륭한 전략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월츠는 이 주장을 더 이상 정교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역으로 그는 강대국이 공격적으로 행동할 경우 잠재적 피해국들은 공격자들에 대항하여 균형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취하게 되며 그럼으로써 힘을 증대하려는 노력을 좌절시키게 된다고 말한다. 월츠는 균형을 위한 다른 나라들의 노력은 공격자를 좌절시킬 것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월츠는 강대국은 너무 많은 힘을 가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힘이 너무 강해지는 것은 다른 나라들이 이에 대항하는 연합을 형성하도록 하며, 그 결과 어느 정도 힘을 보유한 후 더 이상 힘을 추구하지 않고 자제하는 것보다 더 못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말한다.

Mearsheimer,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pp.65-66

이는 비판자에 의한 요약이지만 월츠 이론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월츠의 이론은 강대국이라고 너무 망나니 짓을 하다간 다굴을 맞을 위험이 있으니 가끔 기회주의적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방어적인 게 좋다는 것이다. 월츠가 방어적 내지는 현상유지를 선호한다는 것은 본인이나 비판자들 모두 인정하는 것이니 더 설명이 필요없으리라 본다.

이와 거의 비슷한 논리구조를 갖는데 단 한가지, 가끔씩 선택의 기회가 찾아올 때 공격적으로 구는게 좋은가 방어적으로 구는게 좋은가를 놓고 의견이 갈리는 것이 미어셰이머이다.

나의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도 국제정치학의 구조주의 이론이다. 방어적 현실주의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나의 이론도 ‘강대국이란 자신들의 안전을 다른 나라들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상부기관이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생존여부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라고 본다. 강대국들은 힘이야말로 그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핵심요인이라는 사실을 곧 알아차린다.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은 국가들이 얼마나 큰 힘을 요구하는가에 관해 방어적 현실주의와 의견을 달리한다. 방어적 현실주의자에게 국제정치구조는 국가들에게 어느 정도 이상 힘을 증가시키겠다는 자극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세력균형상태를 유지하는 데 힘쓰도록 국가들을 몰아간다. 국가들의 중요한 목표는 힘을 증강시키는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기왕의 힘을 유지하는 것이다.

반면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은 실제의 세계정치에서 현상유지를 목표로 하는 나라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국제체제는 국가들에게 남을 희생시키더라도 힘을 증가시킬 계기를 찾으라고 유혹하기 때문이며, 희생과 이득이 더 크다고 생각할 경우 국가들은 상황에서 오는 이익을 포착하는 것이다. 국가의 궁극적 목표는 국제체제에서의 패권국이 되는 일이다.

Mearsheimer,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p.68

앞서와 비슷한 식으로 요약하자면 미어셰이머의 이론은 이 세상에 다굴맞을까 두려워 조신하게 사는 강대국은 드물다. 강대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의 등을 치는 공격적 행동에 나서기 마련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인형사 씨의 해석은 이렇다.

국가는 결코 현재의 권력에 만족하지 않으며 항상 패권을 추구한다고 주장하며, 현상유지세력의 존재를 부정하는 입장이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네온콘이 취하고 있는 입장과 상당히 유사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미셰이머의 주장은 국가의 안전보장에 국가간의 합의나 양해가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부정하고 전적으로 자신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모든 국가가 무한권력을 추구한다는 이야기로 보이는군요. (인형사)

내가 볼 때 미어셰이머와 네오콘의 입장이 유사하다는 것은 미어셰이머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모종의 요약만 보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분명히 미어셰이머는 "국가의 궁극적 목표는 국제체제에서의 패권국이 되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결론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그는 자기 이론이 구조주의 이론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국제정치구조는… 국가들을 몰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정치 상황은 누가 의식적으로 고안한 것도 아니고 의도한 것도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비극적 상황이다. 서로 싸워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강대국이라 해도 -즉, 오직 자신의 생존에만 관심을 가지는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자신의 국력을 증강시키거나, 국제체제에 있는 다른 나라를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추구해야 한다는 대안 이외의 다른 것을 택할 수 없다.

Mearsheimer,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pp.34-35

이는 결국 상황의 논리, 즉 선한 사람도 악한 상황에 빠지면 악당이 된다는 식의 이야기이다. 그러니 책제목부터가 비극인 게다. 네오콘이 정말 미어셰이머 같은 입장을 갖고 있다면, "너희들도 우리를 욕하지만, 우리가 앉은 자리에 앉게 되면 우리와 똑같이 굴 수 밖에 없을걸"이라고 생각해야 된다.

정말 네오콘이 그렇게 생각할까? 지난번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네오콘의 특징은 당위의 논리이지 상황의 논리는 절대 아니다.


사실 이들 중 케난이나 키신저 같은 고전적 현실주의자 그룹과 케네스 월츠, 로버트 저비스, 잭 스나이더, 스티븐 반 에베라 같은 구조적 현실주의자 그룹은 모두 현상유지와 세력균형 내지는 점진주의를 지지한다.
구조적 현실주의자의 방계로 공격적 현실주의를 표방하는 미어셰이머는 현상유지와 세력균형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도 역시 변화는 점진적일 것으로 본다. (공격적 성향이 나타나는 이유가 기회있을 때마다 세력확장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기회주의의 유혹과 관계가 있으므로)
이렇게 보면 현실주의자 그룹은 전반적으로 봐서 내가 묘사한 특성들을 잘 가지고 있는 편이다. 이들 중 네오콘과 유사한 그룹은 하나도 없다.



님이 현실주의라고 하는 것이 그럼 린드블룸의 점진주의를 말하는 것이었습니까? 이름이야 붙이기 나름이지만 린드블룸류의 점진주의는 주로 행정학, 정책학에서 논의하는 것이고 국제정치학에서의 현실주의와는 큰 관련이 없지요. 저는 지금까지 님이 국제정치학에서의 이상주의/현실주의 논의를 가지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상당히 답답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국제문제를 다루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미국은 결정했다", "중국은 침공에 나섰다"처럼 국가를 의인화하여 그 나라의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위를 이야기한다. 국제정치학에서도 열에 아홉은 이런 식으로 국가나 그 정부의 행위를 설명한다.

즉 인간의 행동을 묘사할 때 뇌와 심장, 심장과 폐가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해 그 결과 인간의 행동이 결정되는 식으로 다루지는 않듯이, 대부분의 국제정치학 이론들도 뇌가 판단해 지시하면 몸이 그에 따라 움직이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부 내부에 네오콘이라는 분파와 현실주의자라는 분파가 있어서, 서로 미국이 이렇게 행동하는게 옳다며 상반된 의견을 내놓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싸우는 현상을 다루고 있다. 이들이 다투는 주제는 대외정책이라는 전형적인 국제정치학의 주제이다. 그러나 이들이 다투는 현상 자체는 국제정치가 아니라 국내정치 내지는 (정부 내) 정책결정과정이다.

국제정치이론 그 자체는 이런 문제를 직접은 잘 다루지 않는다. 다음을 보기 바란다.

현실주의자들은 강대국들의 행동은 주로 그들의 내적 속성보다는 그들이 처한 국제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믿는다. 모든 국가들이 대처해야만 하는 국제체제의 구조는 강대국 외교정책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현실주의자들은 나라들을 좋은 나라, 나쁜 나라로 분명히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강대국들은 그들의 문화, 정치체제, 지도자가 누구냐의 여부와 관계없이 똑같은 논리에 따라 행동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들은 힘의 세기라는 상대적 요인 이외의 다른 요인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다. 본질적으로 강대국들은 크기만 다를 뿐인 당구공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Mearsheimer,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pp.58-59

미국과 한국이 크기만 다른 당구공으로 내부구조가 똑같다면 미국 정부 내부에 네오콘이라는 특수한 집단이 뿌리박고 있는게 무슨 이론적 의미가 있으며, 무슨 설명을 줄 수 있겠는가? 즉 국제정치이론으로는 이런 문제를 다룰 수 없다.

Charles Lindblom을 안다면 이야기가 간단하다. 내가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보이려 했던 것은 외교안보정책에 대해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 즉 현실주의자는 정책의 적용에 대해서도 린드불룸이 말한 점진주의, 즉 속이 보이지 않는 진흙 속을 조심스럽게 헤쳐나가는 듯한 과정(Muddling Through)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즉 국제정치학 상의 현실주의자는 정책적으로 점진주의적 경향을 보이며, 그것은 경험적으로 볼 때 현실주의자의 속성이라고 할 만하다는 게 내 입장이다.

이는 꼭 점진주의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내가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라고 말한 것은, 보다 광범위한 관점에서 보면 정치적 스펙트럼 상에서 진보주의 대 보수주의라는 식으로 환원해 설명할 수도 있다.

급진주의자(radical), 진보주의자(liberal), 온건주의자(moderate), 보수주의자(conservative), 반동주의자(reactionary) 등의 용어는 정치적 담론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단어들에 속한다. 이러한 단어들이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가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다섯 가지 용어와 정치적 변화 및 정치적 가치의 개념을 연관하여 논의를 진전해야 한다. 가장 좌측으로 치우친 급진주의자들은 현상(status quo)에 대해 극단적으로 불만스러운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현존하는 질서의 즉각적이고도 근본적인 변화를 원하며, 무엇인가 새롭고 다른 것을 요구한다.

급진주의자들보다는 훨씬 덜 불만스러워 하지만 여전히 상당한 정도로 체제를 변화시키기를 원하고 있는 이들이 진보주의자들이다. 진보주의의 철학적 기반은 전통적인 시기의 것과 현대의 것으로 나눠진다. 전통적 진보주의자들이 개인과 재산권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던 데 반해, 현대의 진보주의자들은 사회를 공동의 것으로서 이해하며 인권을 강조한다. 그러나 두 집단 모두 평등, 지성, 경쟁과 사람들의 선량함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온건주의자들은 현 사회에서 나쁜 점을 별로 발견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들보다 더 변화를 내켜하지 않는 것은 오직 보수주의자들뿐이다. 그들이 변화를 싫어하는 정도는 오직 보수주의자들에 의해서만 초과될 뿐이다. 진보주의자들과는 거의 모든 점에서 다른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의 도덕이나 지성에 대한 확신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비록 세상이 보수주의자들의 희망하는 만큼 유쾌한 것이 못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부적절한 참견이 실로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위에서 말한 스펙트럼 상의 각 입장들이 변화의 속도와 깊이, 그리고 방법에 있어 다르지만 그들 모두는 사회의 진보적인 변화를 옹호하고 있다. 오직 반동주의자들만이 이전 시대의 제도로 복귀할 것을 제안한다. 반동주의자들은 현대적 가치를 거부함으로써 사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이전의 정치 체제를 채택하려 한다.

Baradat, Leon P., Political Ideologies: their origins and impact, Prentice Hall
(신복룡 외 역, 『현대정치사상(제5판)』, 평민사, 1995, pp.38-39)

by sonnet | 2007/07/29 10:27 | flame! | 트랙백 | 덧글(11)
트랙백 주소 : http://sonnet.egloos.com/tb/330658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7/29 12:27
네오콘을 급진반동으로 이해하면 아무래도 오류겠죠?

그나저나 저 인형사님은 여기에서 이해하는 현실주의가 다르고 저기에서 이해하는 현실주의가 다르다고 하시는것 같군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07/07/29 14:41
이렇게 긴 글을 또 쓰셨으니 제가 도망가기가 더 힘들어졌군요. 뭐 자업자득이겠지요.

대략 두 가지 논지를 제시하셨는데요.

첫 번째는 볼칸 책에서 인용된 후쿠야마와 월포위츠의 대화가 네오콘이 도덕적 원칙주의자라는 것에 대한 강력한 근거가 된다는 것이었고요.

두 번째는 린드블룸의 점진주의와 국제정치학에서의 현실주의가 같은 것이라는 말씀이군요.

일단 한 가지씩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님이 따오신 볼칸책의 부분은 자세히 읽어봤는데, 아무리 보아도 네오콘이 도덕적 원칙주의자라는 주장의 근거로 삼기에는 빈약해 보입니다.

일단 저기서 정확하게 월포위츠가 발언한 것은 다음 구절 밖에 없지 않습니까?

“역사의 영웅이 현실주의자인 메테르니히가 아니라, 도덕적, 종교적 원칙을 고수하며 나폴레옹에 맞서 강경한 정책을 추구했던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1세(Alexander I)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다음 구절들이 문제인데요.

“반면 월포위츠에게는 도덕적 원칙들이 안정이나 국익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었다.”
“월포위츠는 현존하는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보다 정치적 자유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월포위츠가 정확하게 저런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인가요? 아니면 알렉산더 1세에 대한 언급을 가지고 저 책의 저자가 유추 해석한 것인가요?

제가 보기에는 저런 언급을 했다는 명확한 지적이 없으므로, 저자가 유추해석을 한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저자가 그 당시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는 뜻일 겁니다.

저 당시 알렉산더 1세의 도덕적 원칙주의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을 악으로 보는 반혁명주의인데요. 그의 제안과 주도에 의해 신성동맹이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사이에 성립이 되지요. 이 신성동맹은 유럽 어디에서든 혁명운동이 발생하면 공동으로 진압할 것을 천명했고, 또 이런 협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들 간의 전쟁이 혁명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우려 때문에 자신들 간의 평화와 세력균형을 유지한 체제입니다. 이런 신성동맹에 의해 19세기 전반기의 유럽은 보수적인 안정과 평화를 반세기 정도 누립니다. 만약 신성동맹이 없었으면 독일의 패권을 둘러싼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투쟁이나, 발칸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대립도 훨씬 일찍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 당시의 상황에서 알렉산더 1세의 도덕적 원칙주의는 안정과 국익, 세력균형을 위협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기여한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월포위츠의 발언을 해석해보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요?

도덕적 원칙주의는 이용하기에 따라 현실주의적 정치목표에 기여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해석이 아닐까요?

물론 도덕적 원칙주의가 현상유지와 안정을 위해 이용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현상파괴를 위해서도 이용될 수 있겠지요.

볼칸책의 저 구절은 혹시 모든 것이 네오콘 탓이고 나머지는 잘못 없다는 면피성 발언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드는군요. 물론 책을 다 읽어봐야 내릴 수 있는 결론이기는 하겠지요.

네오콘이 도적적 원칙주의자라는 것에 대한 님의 근거가 더 있으시겠지만, 최소한 저 볼칸책의 구절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성동맹이야기가 나온 김에 생각난 것인데요. 911 직후 유럽에는 사상 최초로 나토의 집단방위권을 발동했고, 프랑스의 르 몽드지는 ‘우리가 모두 미국인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지요. 그 때 유럽이 원했던 것은 아마 신성동맹의 재건이었을 것입니다. 혁명의 위협이 유럽의 평화를 가져왔듯이, 테러의 위협이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전부터 일방주의적 경향을 강화해가던 미국을 다자주의의 틀로 끌어올 수 있는 계기로 생각했던 듯 합니다. 미국의 진정한 의도가 테러에 대한 대응이었다면 유럽의 제안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미국은 The Coalition of the Wiling을 내세우며 퇴짜를 놓았죠. 테러와의 전쟁이 테러와의 전쟁이 아닐 거라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증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상주의적 목표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타협적 목표와 비타협적 목표를 구분해보면 어떻습니까? 타협적 목표란 비용, 상황, 그리고 님이 말하시는 실현가능성 등의 조건에 따라 포기될 수도 있고 다른 목표로 대치될 수도 있는 목표겠지요. 그리고 비타협적 목표란 그런 조건에 상관없이 꼭 성취하여야하거나 지켜야하는 그런 것이겠지요. 사실 이렇게 하면 이상주의라기보다는 원칙주의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지요. 원칙주의가 다 이상주의는 아니겠지만 이상주의는 일정부분 원칙주의적 요소를 가지고 있겠지요. 사실 이런 원칙주의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요. 아무리 돈을 많이 주어도 자식을 팔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식에 대한 원칙주의자이겠지요
Commented by shaind at 2007/07/29 22:18
아마 sonnet님은 그저 "현실주의"의 대척점이라는 뜻에서 이상주의란 단어를 사용하신 것 같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7/08/01 11:07
인형사/ 첫번째는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실주의자란 원래 정책논쟁과 대외정책의 성안에 있어 윤리나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는 노선을 물리치려고 노력한 사람들에서 출발했다는 겁니다. 키신저나 스코우크로프트는 이런 전통을 잘 따르는 사람들로서 현실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고, 이와 반대되는 노선을 공개적으로 후원한 사람들은 현실주의자의 반대파, 즉 현실주의자들이 이상주의자라고 공격해서 제거하려고 했던 그룹에 속한다는 겁니다.

두번째는 그냥 잘못 이해하신 것이니 본문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덧붙이면, 제가 볼 때 월포위츠가 높게 평가한 것은 신성동맹 같은 전후체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사실상 메테르니히를 칭찬한 것과 별 차이가 없죠. 아마 월포위츠가 평가한 것은 알렉산더 1세가 불리해 보이는 조건에서도 나폴레옹과 싸우기로 결심하고 싸워 이겼다는 사실일 겁니다. 이는 직접 무력행동을 선호하는 네오콘 취향에 아주 잘 맞고, 정면대결을 회피한 채 외교와 간접적인 수법을 선호한 키신저에 대한 반감과도 조화를 이룹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07/08/01 16:58
이미 사석이에요! 사석이 된 건 포기할 줄도 아셔야지, 왜 그렇게 억지로 살리려고 하십니까?

“마지막으로 하나 더 덧붙이면, 제가 볼 때 월포위츠가 높게 평가한 것은 신성동맹 같은 전후체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사실상 메테르니히를 칭찬한 것과 별 차이가 없죠. 아마 월포위츠가 평가한 것은 알렉산더 1세가 불리해 보이는 조건에서도 나폴레옹과 싸우기로 결심하고 싸워 이겼다는 사실일 겁니다. 이는 직접 무력행동을 선호하는 네오콘 취향에 아주 잘 맞고, 정면대결을 회피한 채 외교와 간접적인 수법을 선호한 키신저에 대한 반감과도 조화를 이룹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렇다면 결국 볼칸책에서 월포위츠의 발언은 “역사의 영웅이 현실주의자인 메테르니히가 아니라, 도덕적, 종교적 원칙을 고수하며 나폴레옹에 맞서 강경한 정책을 추구했던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1세(Alexander I)라고 지적했다.”라는 것밖에 없으며, 결국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라는 저의 논지에 동의한 것으로 보면 되겠지요?

그런데 님의 해석이 타당할 근거로 그래야만 네오콘이 이상주의자라는 님의 논지와 일관된다는 것 말고는 제시하신 것이 있나요?

그래야만 키신저와 월포위츠가 차이가 난다고 하셨는데, 그럼 마찬가지로 그 둘 사이에 차이가 별로 없을 가능성은 검토해볼 필요가 없을까요? 저는 이미 둘 사이의 차이가 정도의 차이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논지를 제기하였습니다. 원래 정도의 차이에 불과한 것도 정책대결의 과정에서 질적인 차이로 포장되는 것이 드문 일도 아닐 텐데요. 사실 키신저도 신성동맹과 유럽의 평화에서 알렉산더 1세의 역할을 인정합니다.

저의 해석이 타당할 근거로 저는 저기서 언급하고 있는 키신저의 책, A World Restored가 바로 신성동맹의 시기를 다루는 책이라는 것을 제시합니다. 당연히 신성동맹시기의 알렉산더 1세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것일 가능성이 그 전사에 불과한 나폴레옹전쟁시기에 관한 이야기일 가능성보다는 클 것입니다.

그러나 맥락이 다 단절된 단 한귀절의 해석에 대해 100%의 확실성을 주장할 생각은 저는 전혀 없습니다.

제가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는 한계는, 저 문제의 구절은 월포위츠가 도덕적 원칙주의자라는 주장의 근거로 삼기에는 해석의 여지가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의 월포의츠 인용은 이미 사석입니다.


그리고 모르십니까? 현실주의자라고 자칭하는 자들은 많은 경우 현실을 재정의하려는 자라는 것을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는데요.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상주의란 것은 초창기 현실주의자들이 물리치고자 했던 경쟁이념을 규정한 말이라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스스로를 이상주의 학파라고 주장하는 학자나 관료는 찾아보기 힘들고, 이에 따라 이러저러한 사람들에 적용해봐서 잘 들어맞으면 맞는 정의라는 식의 검증을 하기는 어렵다.”

여기 한 단계만 논리를 더 전개시키면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 아닌가요?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상주의라는 개념이 경쟁이념과의 이념투쟁의 와중에 상대방을 비하하기 위해 동원된 개념이라는 것을 이해하신다면, 그런 이상주의의 개념을 그 개념이 지칭하는 대상에 대한 이해의 도구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당연히 도출되는 결론이 아니던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7/08/02 21:58
인형사/ 피식, 사석이라... 우물에 독풀기를 노리고 하셨던 '정치적 수사' 운운의 연장선입니까?

"님의 해석이 타당할 근거로 그래야만 네오콘이 이상주의자라는 님의 논지와 일관된다는 것 말고는 제시하신 것이 있나요?"

A World Restored를 읽어보았다면 자명한 일이지요. 예를 들어,

The dispute between the Tsar and Metternich, although in form usually concerned with peripheral questions, was therefore in substance a contest over the nature of a stable international system. Alexander sought to identify the new international order with his will; to create a structure safeguarded solely by the purity of his maxims. Metternich strove for a balance of forces which would not place too great a premium on self-restraint.
The Tsar proposed to sanctify the post-war period by transforming the war into a moral symbol; Metternich attempted to secure the peace by obtaining a definition of war aims expressing a physical equilibrium. As usual with Alexander, it was difficult to disentangle personal rancour and reason of state, moral claim and national ambition. (p.111)

이런 짜르와 메테르니히의 대립이 이 책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고, 키신저는 자기 책에서 메테르니히의 손을 들어줍니다. 그런데 짜르와 메테르니히의 대립은 제가 지금까지 누누히 지적해온 오래 된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의 대립의 한 전형이고, 키신저는 이런 대립을 분석함으로서 핵시대에도 적실성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요.
반면 월포위츠는 '좋은 책'이지만 키신저가 메테르니히의 손을 들어준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 말은 키신저가 짜 놓은 분석의 틀에서 반대편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뜻입니다.

귀하는 네오콘을 현실주의자라고 규정하지만, 저는 우리가 현실주의자라고 부르는 그룹 중 네오콘과 동질성이 있는 그룹은 하나도 없음을 충분히 많은 예를 들어 보여 드린 바 있습니다. 반면 현실주의자 그룹이 이상주의자라고 부르며 자신들과 구별짓기 위해 노력한 집단과 훨씬 유사성이 많지요.

이런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귀하가 갖고 있는 현실주의자에 대한 정의가, 실제의 저명한 현실주의자들에게서 관찰되고 그들이 직접 밝히기도 하는 노선을 '너무 넓지도 너무 좁지도 않게', 즉 적절히 포함하는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07/08/03 13:44
인용의 힘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으신 것 같군요.

“내가 볼 때 미어셰이머와 네오콘의 입장이 유사하다는 것은 미어셰이머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모종의 요약만 보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뭐 자수합니다. 저가 미셰이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위키에 근거합니다. 읽어보니 대략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짐작이 가더군요. 그리고 제가 미셰이머를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루시엘님과의 대화에서 간략히 밝혀 놓은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님의 글을 아무리 읽어 보아도 저의 미셰이머 이해의 어떤 부분이 잘못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적은 없군요. 그리고 님이 제시한 미셰이머 해석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저의 생각과 차이나는 점이 없군요.

그런데 제가 미셰이머와 네오콘이 유사하다고 본다는 것을 근거로 저의 미셰이머 이해가 오류라고 주장한다면 좀 어리둥절해지는군요. 이런 주장은 저와 님이 네오콘에 대한 이해를 공유한다는 전제하에서만 의미 있는 비판이 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님의 네오콘 해석에 동의한 적이 없으며 그것이 처음부터 논쟁점이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만약 저의 미셰이머 해석도 오류이고 네오콘 해석도 오류라면, 저의 네오콘과 미셰이머가 비슷하다고 한 언명은 이중부정에 의해 긍정이 되어버리므로, 그 실체적 내용에 있어서는 님의 의견과 일치하는 것이 되어버리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님이 싫어하실 이유가 없는데요.

사실 님과 저의 차이는 미셰이머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네오콘에 대한 해석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논의를 전개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미셰이머에 관한 논의가 아니라 네오콘에 관한 논의이지요. 아무리 미셰이머에 대한 인용을 많이 하셔도 적실성이 없는 불필요한 인용입니다.

그런데 미셰이머에 대한 인용이 만약 다독을 자랑하며 그 위세를 빌려 보시겠다는 것이라면 저로서는 상당히 실망입니다.

키신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처음 문제제기는 “역사의 영웅이 현실주의자인 메테르니히가 아니라, 도덕적, 종교적 원칙을 고수하며 나폴레옹에 맞서 강경한 정책을 추구했던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1세(Alexander I)라고 지적했다.”라는 단편적인 인용에서
“월포위츠에게는 도덕적 원칙들이 안정이나 국익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었다.”라든지,
“월포위츠는 현존하는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보다 정치적 자유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라는 해석을 끌어내기에는 한계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님도 알렉산더 1세에 대한 언급의 적용범위를 신성동맹기를 배제하고 나폴레옹 전쟁기로 제한함으로 해서 제 문제제기의 타당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여기서의 문제는 정확한 해석을 하기에는 문제의 인용이 너무 짧고 단편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키신저에 대한 인용을 아무리 많이 하여도 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님과 밤을 새며 키신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를 가지고 토론을 해볼 수는 있지만, 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적실성이 없습니다.

아마 적실성이 있는 접근은 키신저나 아니라 월포위츠와 네오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겠지요. 저기에 관련된 월포위츠의 다른 발언이 있다거나 하면 도움이 되겠지요.

그리고 점진주의와 국제정치에서의 현실주의는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아마 님이 점진주의를 먼저 접하셔서 그 프리즘을 가지고 국제정치의 현실주의를 바라보신 모양인데,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기회에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물에 독풀기를 노리고 하셨던 '정치적 수사' 운운의 연장선입니까?”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인지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요?

도대체 어떤 우물에 어떤 독울 풀었다는 이야기입니까? 설명해 주실 것을 요구합니다.

저는 앞에서 부담 없이 재미로 하실 거면 논의를 더 계속해보자고 했었는데, 그런 게 아니었던 모양이지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07/08/03 17:37
마침 재미있는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Beyond Incompetence: Washington's War in Iraq
by Jonathan Cutler
April 30, 2006

http://www.zmag.org/content/showarticle.cfm?ItemID=10185

여기서 님과 제가 다투고있는 문제. 즉 네오콘이 이상주의자인가 현실주의자인가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글입니다.

저자는 네오콘과 소위 현실주의자의 싸움을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싸움으로 보는 것은 오류이며, 실은 두 현실주의 진영간의 싸움으로 봅니다. 두 진영간의 차이는 중동에서 미국의 이익을 더 잘 보장해줄 것이 이스라엘과 동맹인지, 아니면 사우디와의 동맹인지에 대한 차이라고 하는군요.

이라크에서 시아파의 득세는 사우디를 약화시키고자하는 목적을 가지며, 정권을 획득한 시아파는 이란의 시아파와도 대립할 것이라는 전망을 네오콘이 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재미있는 이야깁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8/07 21:34
인형사/ 인용의 힘을 과신할 것까지나요. 그럼 음모론에 맞서 음모론으로라도 상대해드리길 바라십니까?


"그런데 제가 미셰이머와 네오콘이 유사하다고 본다는 것을 근거로 저의 미셰이머 이해가 오류라고 주장한다면 좀 어리둥절해지는군요. 이런 주장은 저와 님이 네오콘에 대한 이해를 공유한다는 전제하에서만 의미 있는 비판이 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저와 미어셰이머는 현실주의자와 네오콘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는 반면, 귀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미어셰이머 본인이 모겐소와 자신을 현실주의자로서 네오콘과 대립되는 학파로 규정함은 다음을 참조.
http://www.opendemocracy.net/democracy-americanpower/morgenthau_2522.jsp


"그리고 만약 저의 미셰이머 해석도 오류이고 네오콘 해석도 오류라면, 저의 네오콘과 미셰이머가 비슷하다고 한 언명은 이중부정에 의해 긍정이 되어버리므로,"

피식.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지금쯤은 며칠 지났으니 무슨 실수를 하고 있는지 깨달으셨기를 바랍니다.


"사실 님과 저의 차이는 미셰이머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네오콘에 대한 해석의 차이입니다."

네오콘이 현실주의자냐 아니냐에 대한 관점의 차이지요.
저는 기본적으로 귀하가 단순히 현실주의자들에 대해 잘 모르는 관계로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명한 현실주의자의 사례들을 따져 현실주의자와 네오콘과의 차이점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문제는 정확한 해석을 하기에는 문제의 인용이 너무 짧고 단편적이라는 것입니다. ... 저기에 관련된 월포위츠의 다른 발언이 있다거나 하면 도움이 되겠지요."

귀하는 이미 네오콘의 발언 대부분이 강한 기만술(deception)일 가능성을 제기했기 때문에, 그런 데 노력을 들여도 별 의미가 없을 겁니다. 무슨 예를 가져 와도 내 맘에 들지 않으면 기만술에 불과하다고 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이미 '정치적 수사'란 표현을 갖고 그런 시도를 하셨고 말입니다.

그러니 그런 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기만술의 가능성이 낮아보이는 현실주의자의 사례들을 이용해 네오콘과의 차이점을 확인하는게 간단하다는 겁니다.


"점진주의와 국제정치에서의 현실주의는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아니라고 한 적 없지요 (쓴웃음)
영업사원이 외근을 많이 하는 경향이 관찰된다고 해서 영업사원과 외근은 같은 개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나요?


"Beyond Incompetence: Washington's War in Iraq"

그 글은 읽어봤는데, realist를 "so called" realist라고 재정의해서 쓰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더군요. 그리고 "so called" realist와 neocon을 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친-이스라엘이냐 친-사우디냐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용감하긴 하지만, 자멸적인 시도로 보입니다. 그걸 그렇게 대체하면 이들이 그 이전에 대소정책을 놓고 벌인 더 큰 싸움과 그 연장을 전혀 다루지 못하니까요.

다만 '정권을 획득한 시아파는 이란의 시아파와도 대립할 것'이라는 전망은 사실 현실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있는 이야기이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련에 대한 유고나 중국의 노선이탈과 비슷한 현상이 여기서도 보일 거라는 생각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정권을 획득해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오른 후의 이야기이고, 지금처럼 국내적으로 반대파와 치열한 투쟁을 벌히는 단계에서 일어나기는 힘들 겁니다.
Commented by Tofu at 2011/02/20 03:37
무려 4년 전에 이런 논쟁이 있었군요.
네오콘이 이상주의자들인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겠지만
현실주의자와는 상당히 뚜렷이 구분을 지을 수 있는 집단일텐데...
격한 토론으로 발전했다는 것이 참 흥미롭네요.
Commented by mah0140 at 2011/05/17 02:22
근데 이 모든 논쟁은 제 사견으로는 아무래도 죠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에 나오는 사상과 이념의 근원, 핵에 대해 고찰한 부분을 들고오면 바로 끝나는 일인 거 같습니다.

그냥 네오콘은 " '극단적 가부장주의' 라는 이상을 품은 급진적 반동주의자" 라고 서술하면 그만인듯싶으니

:         :

:

비공개 덧글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