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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콘은 현실주의인가 이상주의인가? (2)
네오콘은 현실주의인가 이상주의인가?의 코멘트에 대한 답변

한 10일 전부터 방문해 주고 계신 인형사 씨께서 무려 도전자를 자처하시면서 답변을 촉구하고 계시는지라 이어서 얼마간 의견을 적어보기로 한다.

그런데 내 짐작으로 이 분은 다음 글의 필자가 아닐까 한다.
이라크 점령과 한국모델 (dcinside)
이 글의 코멘트에 내 글에 대한 링크가 달려 있고, 이곳의 리퍼러가 기록된 직후부터 이 분의 방문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논조도 비슷한 것 같고 말이다.

어쨌든 이번 글에서는 약간의 개념 정리를 하고 나서 네오콘의 활동을 경쟁자들과 비교해 이상주의적 속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도록 하겠다.


행위자의 의도는 일정하게 정의된 국가이익의 추구이며, ...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희생으로 그 희생을 훨씬 초과하는 이익을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현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할 때, 그런 현상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현실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형사)

이 질문은 합리적행동자모델(RAM) 상에서 국익 추구란 조건을 달아 현상변화 추구도 현실주의일 수 있다는 답을 유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숨겨진 조건들이 있다.

이 문제를 다루기 전에 이상주의자란 어떤 특징을 보이는 사람들일까 하는 점을 검토해 보자.

1) 목표
먼저 이상은 현재 완성된 형태로 구현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더 추구할 것이 없고 지키기만 하면 끝이므로)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이상, 이상을 성취할 시점을 미래의 언젠가에 두는 것도 당연하다. 완전한 이상에 도달할 수 없는 경우에도 미래에는 이상에 보다 다가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 행동
의미있는 이상주의자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이상추구를 향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상을 꿈꾸지만 실천이나 이념 전파의 노력은 없는 몽상적/칩거형 이상주의자도 있을 수 있겠지만 현실정치/정책 측면에서는 무의미하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3) 긍정적 편향
이상주의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상추구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향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또한 이상실현에 대한 긍정적 편향과 이상추구행위는 서로 positive feedback하는 관계이다. 이상실현의 가능성을 크게 볼 수록 이상추구행위를 할 동기가 커지는 것이고, 이상추구행위에 열심인 사람은 자신이 이상실현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만약 반대로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 미래로 갈수록 현실이 날이 갈수록 이상실현에서 멀어진다고 믿으면 현실변혁적 이상추구행위는 의미가 없으며, 현상유지가 최선의 전략이 될 터이다. 이 말은 첫번째 가정인 '이상은 미래시점에 있다'는 것과 공존하기 힘든 개념이다.

요약
1) 목표: 미래 시점에 목표로서의 이상 설정.
2) 행동: 구체적인 이상 추구의 경향성과 노력
3) 긍정적 편향: 이상추구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

즉 이상주의자는 이상이 실현되길 희망하고, 이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실현이 가능하며 반대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쉽다고 믿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정반대는 아닐지라도 주로 상호대립적인 개념으로 쓰이지 상호병립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이상주의자일수록 덜 현실주의자라는 식의 용법이 자연스럽지, 이상주의자이며 동시에 현실주의자라는 용법은 부자연스럽다는 말이다.

즉 현실주의자는 이상주의자의 여집합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1) 목표
앞서 이상주의자는 어떤 것이든 분명한 목표(이상)가 미래시점에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었다. 그럼 현실주의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목표가 과거 어느 시점에 있어서 과거를 재현하려는 복고주의자일까? 아니면 현재가 최고라고 생각해서 현상유지를 지상명제로 삼는 사람들일까? 이런 개념들은 실제로 현실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잘 맞지 않는다.
이상주의자와 확연히 구분되면서 실제의 현실주의자에게 잘 맞는 설명은 미래 시점에 존재하는 목표(이상)의 존재, 그 도달 가능성이나 도달 방법에 대해 상대적으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2) 행동
목표(이상)의 존재, 그 도달 가능성이나 도달 방법에 대한 확신부족은 현실주의자의 행동을 이상주의자에 비해 더 조심스럽고 보다 시행착오적 탐색에 의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산 꼭대기에 보물이 묻혀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상주의자)은 가능한 빠른 방법으로 산을 오르려 하겠지만, 이 산 어딘가에 보물이 묻혀있는 것까지는 들었지만 그게 어딘지 모르는 사람(현실주의자)이라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보물을 묻어놓을 만한 곳이 없나 관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부정적 편향
목표(이상)의 존재, 그 도달 가능성이나 도달 방법에 대한 확신부족은 자동적으로 부정적 편향을 낳는다. 이상은 허상일 수도 있고, 이상추구의 길이 험난할지도 모르며, 그 와중에 예기치않게 뭔가 긁어부스럼을 만들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상에 대한 신념의 부족은 자동적으로 리스크회피 성향을 증대시키게 된다.
즉 현실주의자가 현상유지를 선호한다 하더라도, 그 이유는 현재가 쏙 마음에 들어서라기 보다 미래가 더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약
1) 목표: 미래 시점에 존재하는 목표(이상)의 존재, 그 도달 가능성이나 도달 방법에 대한 확신부족
2) 행동: 조심스럽고 시행착오에 의존하는 탐색
3) 부정적 편향: 이상추구에 따른 리스크를 이상주의자보다 중시


이번에는 우리가 묵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분석틀인 합리적행동자모델을 살펴보자.

토마스 셸링은 자신의 합리적 행위란 (감정적 행위에 대비되는) "이성적 행위라는 의미만이 아니다. 의식적으로 득실을 따지는 계산과 그 계산의 기초가 되는 명시적이고 내부적 일관성이 있는 가치체계에 근거하는 행위라는 의미"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때 정책결정자들이 모든 상황과 그에 대응하는 모든 대안, 각 대안으로부터 초래될 모든 결과를 정확히 평가해서 최선의 정책을 정한다면, 사람이 다르더라도 동일한 결론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능력에 한계가 있어 제한된 시간 내에 부분적인 정보만 갖고 자신의 주관적 판단기준 -가치관, 신념, 이미지- 등을 반영해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정책을 정한다면, 결론은 매우 다양해질 것이다.
전자를 포괄적 합리성, 후자를 제한된 합리성이라고 하는데, 현실세계의 정책결정은 물론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따라 이루어진다.

앞서 지적한 편향들은 그러한 제한적 합리성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편향의 발생원인은 미래의 불확실함과 평가의 여러가지 주관적 요소에서 찾을 수 있다.

"컵에 물이 반 잔이나 남았다/반 잔 밖에 남지 않았다."

이와 같이 현재에 대한 평가도 사람마다 어느 정도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내일 저 컵의 물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는 훨씬 큰 불확실성이 있다. 이는 미래가 갖는 본질적인 특성이고, 이 불확실성에 대한 평가는 합리적 판단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갈리기 마련이다.

"내일 비가 와서 컵에 물이 가득 찰 것이다"
"내일 햇볓이 쨍쨍 내리쬐어 대부분 말라버릴 것이다."

두번째로 확률의 객관적 측면에 대해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 확률의 의미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같은 승률의 도박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평가는 같을 수가 없다. 위험회피적인 사람도 있는가 하면 위험선호형도 있는 법이다.

세번째로 이러한 평가는 서로 다른 가치들에 대한 주관적인 가치부여와 결부되어 있다. 예를 들어 90%의 유인로켓발사성공율과 (나머지) 10%의 인명손실가능성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과연 이 로켓을 발사할 것인지를 놓고 둘을 저울질하려면 주관적인 가중치와 공분모가 적용되어야 한다.


자 이제 앞서 받았던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행위자의 의도는 일정하게 정의된 국가이익의 추구이며, ...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희생으로 그 희생을 훨씬 초과하는 이익을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현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할 때, 그런 현상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현실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형사)

미래의 희생, 이익, 가능성은 모두 앞서 이야기한 불확실성에 대한 평가나 주관적인 가중치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다. 희생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이익은 "훨씬 초과", 가능성은 "존재". 이러한 전제들은 이미 긍정적 편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즉 이 질문 안에는 행위자의 강한 낙관적 판단 경향이 이미 들어 있다. 저런 경향을 강하게 보이는 행위자라면 이미 이상주의자일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물론 논리적으로만 보면 낙관론이 곧 이상주의는 아니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낙관적 현실주의자와 비관적 이상주의자가 맞붙는 정책논쟁이 있는지를 직접 찾아보면 그것은 실제로는 무척 드문 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추상적인 이야기를 길게 했기 때문에 현실에서 이것이 얼마나 맞아들어가는지 한번 살펴보자.

미국의 대외정책을 놓고 키신저/스코우크로프트 대 체니/럼스펠드/월포위츠 진영 간의 노선투쟁에는 이러한 현상과 전망에 대한 대립되는 편향이 잘 드러난다.

포드 행정부 기간 논쟁의 핵심은 … 미국의 힘에 대한 평가, 즉 베트남 전쟁이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이었다. 베트남전 패배 이후 미국은 과연 쇠퇴하고 있는가? 미국은 해외개입을 축소해야만 하는가? 미국민들은 공산주의에 맞서 싸워온 노력들을 포기하고 부득이 소련과의 새로운 관계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키신저의 대외정책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일련의 답변에 기초한 것이었다. 키신저는 베트남전 패배 이후 모스크바와의 타협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프레드 이클레는 “키신저는 미국이 베트남전으로 인해 약화됐으며, 국가적인 분위기가 군비 통제와 데탕트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키신저가 미국과 미국의 미래에 대해 너무 암울한 견해를 갖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일부는 키신저를 독일 염세주의 철학자인 오스왈드 슈펭글러(Oswald Spengler)와 비교하기도 했다. 카터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는 “키신저는 슈펭글러리안이었다. 그는 미국이 쇠퇴하고 소련이 우위에 서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은 이들과 거래를 함으로써 이들의 힘을 견제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인용자 주: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의 저자이다.]

키신저는 비록 이런 비난들을 거부했지만 어떤 의미에서 비판은 정당한 것이었다. 그는 소련이 실제 우위를 점해가고 있다고 믿지 않았을지는 모르지만 미국 쇠퇴의 불가피성을 수용한 것처럼 보였다. 키신저의 최측근 중 한 명인 윈스턴 로드(Winston Lord)는 1977년 한 인터뷰에서 “키신저는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인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에 따르면, 키신저는 미국이 독자적으로 국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미국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왔다고 생각했다. 키신저 자신은 미국민들이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 이후 소련과의 대결 정책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키신저의 이런 견해들은 1970년대 중반의 정치적인 분위기에 잘 맞는 것처럼 보였다. … 그러나 럼스펠드, 체니, 월포위츠, 그리고 공화당의 보수주의 우파들과 민주당의 신보수주의자들은 키신저의 암울한 비전을 거부했다. 이들은 점차 키신저나 민주당의 맥거번 추종자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해 나갔다. 이들의 시각에서 볼 때 미국은 결코 쇠퇴기에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이에 근거한 비전을 채택하거나 소련과 새로운 타협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포드 행정부 시절에 출현한 이 같은 철학적 분열상은 20세기 말을 지나 21세기 초까지 지속됐다. 2002년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대한 공격 여부를 결정하려고 했을 때, 일단의 공화당 내 비판론자들은 미국이 힘의 한계를 깨닫고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비판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사는 키신저의 직계였던 스코우크로프트였다. 반면 군사행동을 지지한 대표적인 인사들은 체니와 럼스펠드, 그리고 월포위츠였다.

Mann, James., Rise Of The Vulcans: The History of Bush's War Cabinet, New York:Viking Adult, 2004
(정인석 권택기 역, 『불칸집단의 패권형성사』, 박영률출판사, 2005, p.99~100)

즉 오늘날에 와서는 일방주의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미국이 독자적 행동으로 국제문제를 요리할 수 있으며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네오콘 진영의 생각은 베트남전의 패배와 달러의 금태환 폐지, 오일 쇼크, 스태그플레이션 등 전반적으로 어두웠던 70년대에도 포기된 적이 없으며, 어떤 한 시대에 주어진 현황에 대한 판단에서 도출된 전략이라기 보다는 이들의 신념과 이상, 세계관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독자적 행동으로 국제문제를 다룰 미국의 능력은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키신저의 70년대 관점은 네오콘 그룹을 열받게 만들고 치열한 정치투쟁을 벌이게 했던 것이다.
물론 키신저도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의 증대된 역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키신저의 논리는 상황이 변화했으니 나도 따라 변한다는 상황의 논리이지 네오콘과 같은 당위의 논리는 아니라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다른 차이점도 있다.

허버트 사이먼의 표현을 빌리자면 합리적 행위자는 그 의도에 있어 합리적(intendedly rational)이라고 한다. 즉 결과까지 합리적이라고 보장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실제로 제한적 합리성(현실) 하에서는 계획이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의도치 않은 귀결(unintended consequence)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구체적인 사안별로 이 의도치 않은 귀결의 규모와 파급력이 어느 정도일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 규모와 파급력이 너무 클 것으로 예상되면 계획을 변경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으며, 작을 경우에는 예비비 등을 미리 배당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등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현실주의자들의 업무처리방식과 이상주의자들의 업무처리방식은 이러한 의도치 않은 귀결에 대한 대비가 아주 대조적이다.

우선 걸프전에서 보여준 스코우크로프트의 입장을 살펴보자.

(아버지) 부시는 백악관 상황실에서 베이커, 체니, 스카우크로프트 및 파월과 회동했다.
“우리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라고 스카우크로프트가 운을 떼었다. “방어-억지 전략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공격 전략으로 넘어가야 하느냐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부시와 스카우크로프트가 가장 강경하게 공격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베이커는 훨씬 느긋하고 신중한 까닭에 의회 및 대중의 태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등 비판은 했으나, 그도 더 이상 소극적인 태도는 보이지 못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체니는 부시측이 대통령이 공언한 쿠웨이트 해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안중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체니는 성공이 확실하지 않은 한 어떠한 군사행동도 권고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공격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간다고만 말했다. 국제적인 제휴는 무한정 계속되기에는 너무나 약하고, 그 협정도 미묘한 것이다.
파월은 인내한다는 것이 대세가 아님을 알았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그는 제재전략을 옹호하지는 않았다. 파월은 다른 사람들이 이전에 자신의 폭넓은 정치적 조언을 묵인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미 대통령에게 제재전략을 옹호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더낫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실제로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파월에게 전반적인 정치적 조언을 요구하지 않고 있었다.

Woodward, Bob., The Commanders, Simon & Schuster, 1991
(이광식 역, 『사령관들』, 중앙출판사, 1991, p.353-354)

아들 부시의 이라크전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데서 연상되는 것과는 달리, 걸프전에 관한 한 스코우크로프트는 확고한 매파였다. 그러나 잘못되어 수렁에 빠질 가능성을 우려해 처음부터 강력히 한계선을 긋고 이긴 것이 확실해진 뒤에도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았다. 사실 2003년의 이라크전 반대는 이때의 한계선을 재천명한 것이나 다름없었고, 결국 그의 우려는 정확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의 운명은 이라크 민중에게 달렸다고 여러 차례 선언했었다. 종종 그는 사담의 제거가 환영받을 것임을 시사했지만 아주 실질적인 이유에서 봉기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민중 반란이나 쿠데타가 사담 정권을 전복시키길 기대했지만, 미국이나 현지 국가들은 모두 이라크란 국가가 쪼개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우리는 페르시아 만 지역 한복판의 장기적 세력균형에 대해 우려했던 것이다.
사담 제거를 시도하려고 지상전을 이라크 점령으로 확대하면, 일을 진행하는 도중에 목표를 변경하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정책지침을 어기고, 욕심을 부리다 수렁에 빠져들게 되어(mission creep), 예측 불가능한 인적 정치적 비용을 유발하게 될 것이었다.
그를 체포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파나마에서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던 노리에가도 찾아낼 수 없었다. 우리는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실질적으로 이라크를 통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연합군은 즉시 붕괴되고, 분노한 아랍 국가들이 전열에서 이탈하며 다른 동맹국들 또한 철군하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그러한 상황 하에서 우리는 냉전 이후 세계에서 침략행위를 다루는 패턴을 정착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 오던 중이었다. 그대로 밀고 들어가 이라크를 점령함으로서 일방적으로 UN 결의를 뛰어넘게 되면, 우리가 정착시키기를 희망했던 침략행위에 대한 국제적 대응 관례를 파괴하게 될 것이었다.
우리가 그러한 침공 코스를 밟는다면, 생각건대 미국은 아직도 극도로 적대적인 땅에서 점령세력으로 남아있을 것이며, 이는 극적으로 다른 -그리고 아마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부시&스코우크로프트, 왜 우리는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았는가, Time, 1998년 3월 2일


이어서 콜린 파월을 살펴보자. 파월은 레바논에 섣불리 파병했다가 폭탄 테러로 수백 명의 해병대원을 잃고 황황히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은 그저 우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말벌들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해서 천년 묵은 말벌의 소굴에 손을 집어넣은 것이다. … 적어도 부모나 부인, 혹은 자손들이 왜 자기 가족이 죽어야 했느냐고 물을 때 그들을 쳐다보고 분명한 대답을 줄 수 있을 때까지는 인명을 담보로 삼아서는 안된다.

Powell, Colin L., My American Journey, 1995
(류진 역, 『콜린 파월 자서전』, 샘터, 2001, pp.468)

레바논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후 당시 국방장관 와인버거는 새로운 군사정책 가이드라인을 밝히게 되는데, 이는 그의 군사보좌관 파월에게 전수되어 후에 파월 독트린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된다.

레이건이 재당선된 후 와인버거는 11월 28일,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연설했다. 나는 '언제 미국 전투 병력을 해외에서 활용할지를 고려할지'에 관해 그가 제안한 기준들을 직접 듣기 위해 동행했다.
(1) 우리[미국]나 우리[미국]의 동맹국의 중대한 이해가 위태로울 때 투입한다.
(2) 투입하게 될 경우 이기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3) 뚜렷한 정치적, 군사적 목표가 있을 때에만 투입한다
(4) 전쟁이란 가만히 있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목표가 바뀌면 병력 투입에도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
(5) 미국 국민과 의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경우에만 투입한다.
(6) 최후의 방편으로서만 미국 병력을 투입한다.
간단히 말해, 국가의 이해가 위태로운 지경인가 물어서 대답이 예라면 들어가서 이기고, 그렇지 않으면 바깥에 머문다는 것이다.

Powell, 『콜린 파월 자서전』, pp.412-413)

한번만 살펴보년 이 독트린이 별 국익이 걸리지도 않았는데 말려들어서 피를 본 레바논 파병이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도 장기전으로 치달은, 그러면서도 결국 승리하지 못한 베트남전 같은 전례를 극력 피하기 위해 설계된 원칙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슈워츠코프는 공격작전에는 자신의 휘하 병력의 대략 두 배 수준은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두 배의 공군기의 출격, 해군 항공모함은 3척에서 6척으로 두 배, 해병과 육군 지상군도 두 배,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제7군을 원한다.”고 그는 말했다.
제7군은 가장 훈련이 잘 되고 좋은 장비를 갖춘 3개 사단, 즉 2개의 최신 탱크사단과 1개의 기계화사단으로 구성된 미국의 유럽 지상방위의 중핵이었다. 제7군의 증파는 바르샤바 조약의 위협이 유럽에서 실질적으로 사라지기 전인 1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아찔한 요구였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와 바르샤바 조약의 붕괴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만약에 대통령이 공격 작전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제7군을 보내줘야 할 것이라고 슈워츠코프는 말했다.
파월은 자신이 그 요구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술 더 떠서, 병력 증강을 가능한 한 대규모로 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에는 제7군과 더불어 훈련된 1개 육군사단이 주둔하고 있다. 제1 기계화 보병사단을 보내주면 어떻겠냐고 파월은 제안했다. 슈워츠코프는 동의했다.

Woodward, 『사령관들』, p.344

여기서 합참의장 파월은 현지사령관이 좀 과도하게 병력을 요구하는 듯 싶은데도, 거기에 한층 더 넉넉하게 얹어주는 행동을 보여준다. 압도적인 병력으로 깨끗하게 처리하고 성공적으로 빠져나온다는 구호로 유명해진 파월 독트린의 적용인 셈이었다.

합참의장 파월은 부시 행정부 내에서 조속한 종전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닉슨과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했던 대외정책 전문가 프레드 이클레가 쓴 『모든 전쟁은 반드시 끝나야만 한다(Every War Must End)』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었다. 이클레는 장군들이 군사책략이나 전술뿐 아니라 어떻게 전투를 종결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일본군은 진주만 공격을 위한 훌륭한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어떻게 미국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 책을 너무나 좋아했던 파월은 ‘사막의 폭풍(Desert Storm)’ 작전을 전후해 이 책의 일부분을 스코우크로프트와 체니, 합동참모들에게 복사해 돌렸다. 파월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우리는 곧 달성될 제한된 목적을 위해, 제한된 권한으로, 제한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나는 책임 있는 사람들은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지를 생각하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걸프전 당시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Mann, 『불칸집단의 패권형성사』, p.243

이런 행동 또한 성공적으로 빠져나오기에 대한 파월의 엄청난 집착을 잘 보여준다.



이번에는 네오콘 진영의 이라크전 대응을 살펴보자.

1998년, 이들은 「미국의 신세기 프로젝트」(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 PNAC)란 단체를 통해 클린턴 정부에 공개서한을 내어 후세인 정권 붕괴를 촉구한 바 있다. 즉 집권 전부터 이라크를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가 강력했던 것이다.

이후 집권은 하였으나 9.11 테러가 발생하기 전의 미국 정치 지형에서 미군의 대규모 직접 침공 계획은 역시 지지를 받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그런 정치적 상황에 맞추어 이라크 공격을 후원하는 움직임은 존재했다.

2001년 초여름, 펜타곤의 기획부에 부임한 한 직업 관료에게 INC가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는 쿠데타에서 중대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가설을 평가하는 작업이 맡겨졌다. 울포위츠와 페이스를 중심으로 한 매파가 이미 승인한 가설이었다. 그 직업 관료는 쿠데타가 있은 후 찰라비가 이라크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환영받을 것이란 그들의 가설도 아울러 분석했다. 이 평가에 정통한 한 관리는 … “이런 분석은 ‘잘못될 수 있는 것’에 대한 연구였다. 만약 아흐마드 찰라비가 이라크 국민에게 예상처럼 환영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찰라비와 그 동료들이 사담을 전복시킬만한 역량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한 연구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책결정자들은 그다지 걱정하는 듯하지 않았다. 그 관리가 분석결과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한 동료를 통해 펜타곤의 새 지도부는 잘못될 가능성보다 긍정적인 방향에서 생각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또한 그 연구에 따른 대안의 모색은 실패를 전제로 한 계획이라며 무시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Hersh, Seymour M., Chain of Command: The Road from 9/11 to Abu Ghraib, New York: HarperCollins, 2004
(강주헌 역, 『지휘계통: 9.11테러에서 아부그라이브까지』, 세종연구원, 2004, pp.240-241)

그리고 9/11 테러 직후, 이들은 반사적으로 이라크를 겨냥했다.

(테러 다음날인) 9월 12일 아침, 국방부의 관심은 이미 알 카에다에서 멀어지기시작했다. CIA는 이번 테러가 알 카에다의 소행이라고 의사를 분명히 표명했지만, 럼즈펠드의 심복인 폴 울포위츠는 이 주장에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 9월 12일 오후가 되자 럼즈펠드 장관은 우리의 대응 조치 범위를 확대해 ‘이라크’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파월 국무 장관은 알 카에다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지원세력이 생기자 나는 조금 안심이 되며 콜린 파월과 차관인 리치 아미티지에게 감사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논의에서 뭔가 잘못된 점이 있습니다. 알 카에다의 공격을 받고 그 대응으로 이라크를 공격한다면 이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대응하려고 멕시코를 침공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나는 강력히 의견을 개진했다.
파월은 고개를 흔들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고 말했다.
정말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회의가 끝난 후 럼즈펠드 장관은 아프가니스탄에는 근사한 폭격 목표가 없고, 더 좋은 목표가 있는 이라크를 폭격해야 한다며 불평을 늘어 놓았다. 처음에 나는 럼즈펠드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Clarke, Richard A., Against All Enermies: Inside the White House's War, Free Press, 2004
(황해선 역, 『모든 적들에 맞서: 이라크 전쟁의 숨겨진 진실 』, 휴먼앤북스, 2004, pp.63-64)

이들이 아무리 대단한 음모가라 하더라도 그 혼란 속에서 여러 네오콘 멤버들 간에 조율된 활동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이 시기 이들의 행동은 평소 소신을 반영한 반사적인 행동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들) 부시 대통령 본인이 이런 흐름의 일원이었다.

12일 저녁에 비디오 회의 센터를 떠나 상황실에 오니 대통령이 와 있었다. 그는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듯했다. 그는 우리 중 몇 명을 붙잡고 회의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대통령은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능한 한 빨리 모든 상황이 정상으로 되돌아오도록 노력해주길 바랍니다. 모든 것을... 사담이 이 짓을 했는지 알아봐주십시오. 어떤 방식이로든 그가 이 일과 연관되었다는 점을 밝히십시오"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앞선 회의가 생각났다. 믿어지지 않지만 이라크를 공격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대통령 각하, 이번 공격은 알 카에다의 소행입니다."

"알아요. 알고 있지만 사담이 연관되었는지 밝혀보세요. 한번 찾아보세요. 사소한 단서라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나는 대통령의 견해를 존중해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동안 알 카에다를 후원하는 국가가 있는지 여러 차례 조사를 했지만 알 카에다는 이라크와 아무런 실질적 연계가 없었습니다. 이라크의 역할은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예멘처럼 미미합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이라크와 후세인을 조사해보세요." 대통령은 화난 듯 퉁명스럽게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리사 고든 해거티가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대통령이 나가는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Clarke, 『모든 적들에 맞서 』, p.65

조직에서 보스가 먼지가 나올 때까지 계속 털게 시키면, 없는 먼지라도 누가 만들어 오는 법이다. 물론 사담 후사인은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털어서 먼지 안 나올 부류는 아니었다.

2001년 12월, 찰라비는 부시 행정부에 새로운 전쟁계획안을 제시했다. 공중폭격만이 아니라 수천 명의 미군 특수부대원까지 동원되는 계획안이었다. 그 밖에도 이 계획안에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1980년대에 이라크와 지루한 전쟁을 벌였던 이란의 참여를 가정한 것이었다. …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INC는 이라크에 침투하는 즉시 중포(重砲) 기지를 확보하고 이라크 임시정부의 창설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이때 부시 행정부가 곧바로 임시정부를 인정하기로 약속되었다. 이라크 국민의 거의 3분의 2가 시아파다. 따라서 미국과 INC는 시아파를 잠재적 동맹자라 생각했다. 그 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랬던 것처럼 강력한 공습을 시작하고, 수천 명의 특수부대원을 이라크 남부에 공수시킨다. 그와 동시에 쿠르드족의 지배 하에 있는 지역들, 즉 북부의 INC 지지자들도 사담 후세인을 공격할 태세를 갖춘다. 그리고 반군은 이라크 군부를 신속히 공격한다. 그럼 사담 후세인은 정예군을 남부로 보내 미군을 상대해야 하는지, 아니면 모든 세력을 바그다드 인근에 집결시켜 북쪽에 내려오는 반군을 상대해야 할 것인지 진퇴양난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공격계획은 퇴역 육군 4성 장군인 웨인 다우닝(Wayne Downing)과 전(前) CIA 관리로 무보수로 INC의 고문역을 맡았던 두안(‘듀이’) 클래리지의 도움을 받아 작성된 것이었다.
……
찰라비의 새로운 전쟁계획안은 펜타곤 특별기획국의 조언에 따라 덧붙여지고 수정된 후 폴 울포위츠의 승인을 받아 연합참모본부에 평가를 의뢰했다. 일각에서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배운 교훈과 그 교훈을 사담 후세인에게 적용하는 방법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Hersh, 『지휘계통』, p.244-246

아프간 전쟁이 급박히 진행되고 있던 바로 그 때, 펜타곤 한 켠에서는 새로운 이라크 작전안이 연구되고 있었다. 9/11 이전의 쿠데타 유발 계획과는 달리 이번 계획은 아프간 전쟁계획을 거의 그대로 이라크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장기간의 투쟁으로 전투력이 입증된 약 1만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던 아프간과는 달리 찰라비의 망명자 단체 이라크 국민회의(INC)는 기껏해야 수백 명 정도의 병사 밖에 동원할 수 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문제였다. 미국의 공군력이 지렛대가 되어 주려 하더라도 기본 자본이 하나도 없으면 이야기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폴 울포위츠와 리처드 펄을 필두로 부시 행정부 안팎의 매파들은 미국이 무력시위를 벌이면 이라크 내에서 사담 후세인에 반대하는 반란이 즉각 일어나 불길처럼 확대될 것이라 주장했다. 2002년 초 내가 펄에게 이런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묻자, 펄은 이라크군이 저항하며 항전하면 내전과 혼돈이 장기화될 것이란 이라크 주변국의 우려를 일축하면서 “아랍인이라도 다른 민족과 다르지 않다. 그들도 승리자를 좋아하며 승리자와 기쁨을 함께 나누려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걸프전에서 특수부대를 지휘했던 다우닝 장군은 펜타곤의 중화기를 동원한 복잡한 전쟁계획을 비난하면서, INC의 동료들에게 5천명이면 해낼 수 있는 일에 펜타곤이 5배나 많은 병력을 동원하려 한다고 투덜거렸다.

Hersh, 『지휘계통』, p.244-258

그러나 이미 결론을 내린 사람들에겐 별 의미가 없었다. 이런 확신 앞에 옛 동료들도 당혹해 했다.

하지만 행정부 내에서 펄을 지지하는 관리들도 장기적인 전략을 찾아볼 수 없다고 불평했다. 예컨대 조프리 캠프(Geoffrey Kemp)는 2002년 초의 인터뷰에서 “이라크를 처리하면 다른 것은 저절로 해결된다! 이것이 미국 전략의 전부다”라고 투덜거렸다. … “이라크는 자부심이 강한 나라다. 그런데 패전의 굴욕을 뒤집어썼다. 이라크 국민이 사담을 증오하긴 하지만 미국을 사랑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잠재된 민족주의가 발호할 것이다. 감춰두었던 무기를 다시 꺼내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가능성이 아랍 세계의 다른 곳에서, 즉 소규모 군대로 치안을 유지하는 라들에서 돌출될 위험이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

Hersh, 『지휘계통』, p.263-264


대통령 또한 마음이 기울어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2002년 1월 3일 (CIA의) 사울은 테닛과 근동과 부과장 그리고 이라크 프로그램을 수행해온 두 명의 공작요원과 부통령에게 보고하러 갔다.

사울은 어조를 부드럽게 조절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비밀작전으로는 후세인을 제거할 수 없다'고 체니에게 말했다.

테닛과 사울 일행은 그 뒤 대통령에게도 동일한 브리핑을 했다. 부시가 물었다.
"우리는 은밀한 방법으로 그것을 할 수 있소?"
"없습니다."
부시는 그때 "젠장(darn)!"이란 말이 얼핏 떠오르더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Woodward, Bob., Plan of Attack, New York: Simon & Schuster, 2004
(김창영 역, 『공격 시나리오』, 따뜻한손, 2004, pp.108-111)

국방장관도 열심히 움직였다. 아프간 전쟁에서는 CIA에 주도권을 내주었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었다.

성격이 조급한 럼스펠드는 이라크 전쟁계획과 관련한 프랭크스의 첫 번째 공식 보고를 (2001년) 12월 4일 펜타곤에서 받으려고 했다.
……
프랭크스는 리뉴어트와 함께 펜타곤으로 가서 ‘짧은 시간동안 할 수 있었던 것은 작계 1003호를 땜질한 수준’이라는 말로 보고를 시작했다. 6개월에 걸쳐 40만 명을 동원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기존의 기본계획보다 병력은 10만, 기간은 1개월 단축된 것이다.
……
“나는 이 계획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요점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기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프랭크스와 럼스펠드의 눈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그들은 이미 이 계획은 그들이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그것은 장시간이 소요될 거요.”
“장관님,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을 수정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를 보면 그렇게 많은 병력이 소요될 것 같지는 않아.”
럼스펠드는 레이저 유도장치를 갖춘 첨단 정밀무기와 첩보·감시·정찰(ISR)의 향상에 따라 실제 파병 병력은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
“병력을 그렇게 많이 동원해야 된다고는 보지 않네.”
“이의는 달지 않겠습니다. 내 생각에도 우리가 그렇게까지 해야 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만, 실정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Woodward, 『공격 시나리오』, pp.68-70

중부군사령부가 오랫동안 갖고 있던 이라크 전쟁계획 OPLAN 1003-98은 원래 40만명의 병력을 투입하는 것을 전제로 짜여져 있었다. 2003년 이라크전을 지휘했던 중부군 사령관 프랭크스 장군이 처음 제시한 작전계획도 여기에 준한 것으로 그 계획에 필요한 병력은 38만5천명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들은 럼스펠드가 최종적으로 승인한 병력보다 무려 24만명이나 많은 것이었다.

(2003년) 1월 24일 금요일, 프랭크스 사령관은 최종 전쟁계획인 5-11-16-125 하이브리드 플랜을 럼스펠드 장관과 마이어스 합참의장에게 제출했다.
“이것이 바로 그 계획안입니다.”
앞으로 약간의 수정은 있을 수 있겠지만, 더 이상 계획을 짜는 일은 없을 것이다. … 2월 중순에 접어들면 총 14만 명 수준의 미군이 그 지역에 주둔하게 될 것이다. 이 가운데 7만 8천 명은 육군·해군·특수작전군으로 이루어진 지상군 병력이다.

Woodward, 『공격 시나리오』, pp.370

럼스펠드는 기술혁신이 방만한 규모의 구식 군대를 대체한다는 자신이 신봉하는 이론에 몰두해 있었다. 현지 사령관을 계속 압박하고 쥐어짜면 군살이 빠진 훌륭한 계획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었다. 덤을 얹어주는 파월의 방식과는 정반대의 노선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차이가 잘 드러난다.
키신저의 일화를 살펴보면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네오콘에게 있어 이라크를 타도한다거나 기술혁신 군대가 온갖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든가 하는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고 손댈 수 없는 것이었다. 상황에 따라 목표를 추구하는 전술은 바뀔 수 있었지만, 상황이 바뀌었다고 목표를 버리는 법은 결코 없었다.
반면 현실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결과가 중요했다. 높은 목표를 잡았다가 프로젝트가 망하느니 목표를 낮추고 투입을 늘려서라도 성공을 담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의도치 않았던 귀결을 다루는 방법에 심각한 차이를 만들었다. 현실주의자들은 의도치 않은 귀결이야말로 실패의 제일 큰 원인이라고 보고 이를 최소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반면 네오콘은 의도치 않았던 귀결에 대한 지적을 목표의 정당성에 대한 신념 부족이나 불충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 이 문제를 덮어버리고 외면하려 들었다. 이는 이상주의자들에게 보이는 전형적 자기강화의 과정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상주의나 도덕주의에 대한 네오콘의 발언을 좀 더 검토해 보자.

위의 월포위치의 언명들도 그런 당파적 정치적 수사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가능성을 충분히 부정하지 못한다면 저 언명들은 네오콘이 이상주의자라라는 것을 보이기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인형사)

일단 30여년 전에 했던 말과 그 이후의 행동에 상당한 일관성이 있다면 그것은 무시하기 힘든 이야기다.
그리고 해당 발언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전하는 것인데, 월포위츠가 자기 밑의 인턴 대학원생들과 가진 사적 토론, 즉 자기 편끼리 모인 자리에서 당파적 정치적 수사를 구사했다고 보기는 무리가 아닐까? 꼭 그렇게 해야 한다면 당파적 정치적 수사일 가능성을 제기한 사람이 입증해야 할 것이다.

사실 후쿠야마 또한 오랫동안 네오콘으로 분류된 인물로 PNAC의 멤버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인 "역사의 종말" 또한 이상주의 냄새가 물씬 나는 책으로, 전형적인 네오콘식 이념서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공개적으로 네오콘을 비판하며 전향하지만 않았다면 그는 지금도 틀림없이 네오콘으로 인정받고 있을 것이다.

이런 네오콘의 이상주의적 선호를 드러내는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Natan Sharansky is now allied with the neoconservative camp, and he cites the Chicken Kiev speech as a typical instance of realist policymaking. A book that he wrote last year, “The Case for Democracy,” came to national attention when George W. Bush told the Washington Times, “If you want a glimpse of how I think about foreign policy, read Natan Sharansky’s book ‘The Case for Democracy.’ . . . It’s a great book.”

Sharansky argues that the United States would best serve its own interests by choosing as allies only countries that grant their citizens broad freedoms, because only democracies are capable of living peacefully in the world. In Kiev, “America had missed a golden opportunity,” Sharansky wrote in a chapter criticizing the President’s father. George H. W. Bush’s Administration, he said, “was not the first nor will it be the last to try to stifle democracy for the sake of ‘stability.’ Stability is perhaps the most important word in the diplomat’s dictionary. In its name, autocrats are embraced, dictators are coddled and tyrants are courted.”

In September, Sharansky was in Washington at the invitation of Condoleezza Rice; he gave the closing speech at a State Department conference on democratization. “Can you believe it?” he said to me just before the session. “Rice gave the opening speech and I give the closing?” Of his complicated relations with the Bush family, he said, “A few days after my book comes out, I get a call from the White House. ‘The President wants to see you.’ So I go to the White House and I see my book on his desk. It is open to page 210. He is really reading it. And we talk about democracy. This President is very great on democracy. At the end of the conversation, I say, ‘Say hello to your mother and father.’ And he said, ‘My father?’ He looked very surprised I would say this.” Sharansky went on, “So I say to the President, ‘I like your father. He is very good to my wife when I am in prison.’ And President Bush says, ‘But what about Chicken Kiev?’ ” Sharansky smiled as he recounted this story. “The President looked around the room and said, ‘Who is responsible for that Chicken Kiev speech? Find out who wrote it. Who is responsible?’ Everyone laughed.” Sharansky paused, and looked at me intently. He had a broad grin. “I know who wrote Chicken Kiev speech,” he said. “It was Scowcroft!”

Jeffrey Goldberg, Breaking Ranks, New Yorker, 2005년 10월 31일호

부시의 아버지는 소련 붕괴 당시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에 가서 과도한 민족주의 열기를 앞세워 안정을 파괴하지 말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샤란스키는 아버지 부시와 같은 사람을 안정을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시킨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아들 부시는 그런 샤란스키의 책을 나오자마자 읽고, 극찬하고, 콘돌리자 라이스를 보내 상대하고, 백악관에 불러 직접 만났다. 아들 부시는 샤란스키가 자기 아버지를 강하게 비판할거라고 예상하면서도 그를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부시와 그 자리에 있던 측근들은 그런 현실주의적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던 (부시의 아버지와) 스코우크로프트를 다같이 비웃은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접대성 멘트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그들의 평소 생각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by sonnet | 2007/07/28 00:21 | flame! | 트랙백 | 핑백(2)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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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7/07/29 10:32

... 네오콘은 현실주의인가 이상주의인가? (2)에서 셀프트랙백 이글은 원래 앞선 글에 첨부할 보론으로 작성되었던 것인데, 원문이 좀 길어진 관계로 제외했던 것이다. 사실 독자들도 내 관점을 자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9/02/24 11:24

... , 408- 409, 412-414, 424 요즘 들어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고 있는 네오콘의 경우, 적어도 9.11 테러 이전부터 방법이야 어찌 되었든 이라크를 공격해서 사담 후사인을 몰아내야 한다는 구상만큼은 분명히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라크 침공 자체도 그들이 원하고 집요하게 추구해서 만들어낸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2001 ... more

Commented by 김치찌짐 at 2007/07/28 09:59
;; 제가 계기를 만들었네요... 죄송합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7/07/28 20:18
평소에는 별로 안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 아줌마하고 비슷한 의견이 나왔군요.
대규모의 병력에 '덤'을 얹어서 단시간에 해결을 본다라...
(다만, 그 아지매의 주장에선 '치고 빠진다'가 빠지기는 하지만...)
파월 독트린이라... 결과론일지 모르지만, 정말 공감이 가는군요.
Commented by 미친고양이 at 2007/07/28 20:45
수고하셨습니다.
Commented by 미카 at 2007/07/28 20:48
q(-.-)p
Commented by 인형사 at 2007/07/28 21:58
김치찌짐/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어쩔줄을 모르겠군요.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sonnet/ 호승지심도 한 때이지요. 더 이상 도전은 없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긴 글을 써 주셨으니 그에 대한 제 생각을 밝히는 것이 예의겠지요.

그리고 님이 지적한 그 글은 제가 쓴 것이 맞습니다.

님이 현실주의라고 하는 것이 그럼 린드블룸의 점진주의를 말하는 것이었습니까? 이름이야 붙이기 나름이지만 린드블룸류의 점진주의는 주로 행정학, 정책학에서 논의하는 것이고 국제정치학에서의 현실주의와는 큰 관련이 없지요. 저는 지금까지 님이 국제정치학에서의 이상주의/현실주의 논의를 가지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님이 말하는 이상주의란 저로서는 모험주의로 이해하면 되겠군요.

그렇다면 네오콘은 결코 점진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국제정치학에서의 현실주의 논의에 입각해서는 현실주의자입니다. 왜냐하면 국제정치에서의 현실주의는 국제관계를 국가의 이기적 국익추구행위와 그 상호관계로 이해하는 것이고, 네오콘이 추구하는 것은 미국의 권력을 증대하고자하는 것이니까요.

네오콘이 모험주의자란 의미에서 이상주의자라고 한다면 저도 동의하지만 그 언어의 선택이 혼란을 가져오기 쉽겠군요.

사실 님의 이상주의 규정에 애매한 점이 많습니다. 읽기에 따라서는 모든 합목적적 행동이 모험주의적/ 이상주의적이라는 말도 되는데 그러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주의적 목적과 그렇지 않은 목적을 구분할 필요는 없을까요? 그리고 현세거부적 이상주의의 가능성을 인정하였다면 그것과 모험주의적 이상주의 사이에 다양한 연쇄를 인정하는 것이 일관성이 있을 텐데, 현세거부와 모험주의 사이에 어떤 가능성도 주지 않는 이분법을 채택한 이유가 궁금하군요.

그리고 네오콘의 언명들이 당파적 정치적 수사일 근거를 제시하라고 하셨군요. 그럼 다음 글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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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레츠와 덱터는 이데올로기적 헤게머니를 장악하기 위한 중대한 투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이 세심한 분석에 의해 깨어지는 것에 신경 쓰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주창했으며 그들을 따르는 젊은 언론인과 학자들에게 가르친 토론의 방법은 코멘타리지 1984년 9월호에 나온 헤리티지 재단 연구원인 오웬 해리스가 쓴 글에 솔직히 밝혀져 있다. "논쟁가의 입문"이란 제목의 해리스의 글은 어빙 크리스톨이 신보수주의자에게 한 호소로 시작한다. "시대의 정신, 즉 가능한 것, 바람직한 것, 허용가능한 것, 말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함으로써 미래를 소유하라."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해리스는 몇 가지 규칙을 제시한다. 첫째는 "절대로 논쟁을 지적 토론과 혼돈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의 다른 지침들은 이 전제에서 도출된다. 자신의 가치관에 내재적으로 편향된 용어를 개발하라. (오웰은 이런 것을 "New-speak"라고 불렀다.) 자신의 지지자의 사기를 높이는데 집중하여 "그들의 목표에 대한 결속력을 강하게 하고 그 목표에 대한 더 효과적인 대변자가 되게 하라". "상식과 점잖음과 공평성"을 가장하여 중립세력을 포섭하라. 티내지 말고 있다가 "주장할 기회가 오면 계속 반복하라." 왜냐하면 "이데올로기적 논쟁의 성공은 상당부분 끈기와 의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논쟁이 끝날 때까지 상대방의 동기를 공격하기를 멈추지 말아라. (Wald, M. Alan, The New York Intellectuals, pp.358-359)

Phodhoretz and Dector seem unperturbed by the inability of their arguments to withstand careful scrutiny because, in fact, they are engaged in a serious fight for winning ideological hegemony. The method of debate they promote, and in which they train their following of young journalists and academics, is candidly revealed in a September 1984 Commentary essay by Owen Harris, a Fellow at the Heritage Foundation. Harris's "A Primer for Polemicists" begins by citing Irving Kristol's call for neoconservatives to "own" the future by "determining the spirits of the age, the prevailing notions concerning what is possible, inevitable, desirable, permissible, and unspeakable." Harris presents a set of "rules" for achieving this end, the first of which is never to "confuse polemical exchanges with genuine intellectual debate." His other "guidelines" flows from this premise: develop a vocabulary inherently biased toward one's own values. (Orwell call this "New-speak"); concentrate on building up the morale of one's own supporters "in order to bind them more securely to the cause and make them more effective exponents of it"; feign "good sense, decency and fairness" as a tactics to win over the uncommitted; keep one's presentation on low level and "when you have a good point to make, keep repeating it" because "success in ideological polemics is very much a matter of staying power and will"; and hold off on impugning the motives of your opponent until the end of the debates. (Wald, M. Alan, The New York Intellectuals, pp.358-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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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콘은 원래 타락한 수사학의 선수들입니다. 그들의 말을 어느 것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초기에는 냉전적 이념투쟁에서 용병으로 활약했고(실은 이때는 네오콘이 뉴욕 유태인 전트로츠키주의 지식인 집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오기 전이기는 합니다), 70년대 이후로는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뉴딜적 질서에 대한 공격에 당파적 수사를 제공하던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이념에 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논쟁의 책략에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런 책략에 집착하게 되면 더 이상 책략이 이념의 수단이 아니라 이념이 당파적 투쟁의 수단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들은 레이건 행정부에 참여했을 때 당파적 수사학이 이념투쟁의 도구일 뿐이 현실을 변화시키는 도구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소련을 악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그 위협을 과장하고 군비경쟁을 심화시켰더니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하였다는 것이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동일한 수법을 다시 써먹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요.

다음 글을 한번 참조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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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하면 미 행정부는 판을 뒤집으려고 한다. 중동지역 정권들의 비민주적 성격이 테러리즘의 온상이라는 이론 하에, 무력이나 무력사용의 위협으로 적인 시리아나 친구인 이집트를 막론하고 이 지역의 모든 정권을 바꾸거나 전복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헤즈볼라가 미국을 목표로 삼거나 미군이 시리아 공격을 준비한다는 그 자체로 부정적인 사태도, 미국 매파의 입장에서는 큰 계획의 일부일 뿐이다. 매번 위기는 미군을 이 지역에 더 깊이 개입하게 만들 것이며, 매번 대응책은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어 그 해결은 미국의 더 깊은 개입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은 결국 중동전체에 민주정부가 서거나 아니면 미군의 지배를 받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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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 신보수주의가 정가 등장한 이래, 그들의 운동은 도덕적 이상주의와 군사적 공격성, 그리고 기만의 결혼이었다. 1970년대 초에 아직 젊고 민주당을 지지하던 정치적 지식인이었던 이 집단은 월남전 후 민주당이 소련의 위협에 둔감해졌다고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소련과의 공존을 추구하는 키신저 같은 기성 공화당 세력의 비도덕적 세계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경악하였다. 전향한 사회주의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신보수주의자들은 공산주의의 악을 무시하거나 미화하기에는 공산주의의 책략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신보수주의자가 유태인이며 모스크바에 의한 유태인 박해에 분노하였으며, 그 결과 그런 박해를 방치한 멕거번이나 키신저를 모두 거부하게 하였다.

신보수주의자들은 로날드 레이건에서 그들이 지지할 수 있는 정치인을 발견하였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레이건은 공산주의의 악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며, 비록 냉전의 주변적 지역에서만이지만 공존보다는 반격을 선호하였다. 신보수주의자가 다수 레이건 행정부에 임용되었고, 폴 월포위츠, 리챠드 펄, 개프니 같은 사람들이 미국이 1981년에 대결정책으로 갑자기 방향을 바꾼 것에 지적 중심추와 도덕적 열정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도덕적 명확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가끔 현실을 숨기는 것을 요구한다. 처음부터 신보수주의자들은 소련의 능력과 의도에 대해 다른 전문가들에 비해 훨씬 위협적이라는 견해를 취했다. 1980년대 말까지 초-신보수주의자인 노르만 포도레츠는 임박한 미국의 핀란드화, 즉 우세한 소련의 힘에 의해 미국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종속될 것을 경고했으며, 미국의 선택은 항복이나 전쟁밖에 없다고 하였다. 다수의 신보수주의자들이 소련의 힘과 지속성을 과소평가 했다고 본 미국 정보기관의 분석이 실은 크게 과대평가된 것이라는 것은 이제 잘 알려졌다.

이렇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경향은 신보수주의자들이 권력의 맛을 알게되면서 더 심해졌다. 그들중 다수가 레이건 재임중 제삼세계에서 친소련 세력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지휘하면서, 범죄집단인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이나 뻔뻔한 살인자인 앙골라의 요나스 사빔비를 자유의 투사로 묘사하였다. 기만의 심연은 이란-콘트라 스캔들이었다. 여기서 포도레츠의 사위인 엘리오트 아브람스는 유죄를 자인하였다. 아브람스는 그 후 아버지 부시에 의해 사면되었으며, 지금은 아들 부시의 백악관 중동정책 책임자이다.

그러나 결국 소련은 붕괴하였다. 그리고 매파의 대결정책이 이에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다른 요인들도 기여하였다. 매파가 믿지 않았던 소련의 경제적 군사적 취약성과, 리차드 펄과 같은 신보수주의자가 레이건에게 믿지 말라고 한 미하일 고르바체프의 개혁이 그것이다. 그러나 신보수주의자들은 자신이 틀린 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거대한 악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한 경험은 그들에게 정반대의 신념을 가지게 하였다. 즉, 도덕적 비전만 분명하고 무력을 쓸 용의만 있다면, 세세한 부분에서는 엄청난 착각이나 뻔뻔한 기만도 괜찮다는 것이다.




In short, the administration is trying to roll the table--to use U.S. military force, or the threat of it, to reform or topple virtually every regime in the region, from foes like Syria to friends like Egypt, on the theory that it is the undemocratic nature of these regimes that ultimately breeds terrorism. So events that may seem negative--Hezbollah for the first time targeting American civilians; U.S. soldiers preparing for war with Syria--while unfortunate in themselves, are actually part of the hawks' broader agenda. Each crisis will draw U.S. forces further into the region and each countermove in turn will create problems that can only be fixed by still further American involvement, until democratic governments--or, failing that, U.S. troops--rule the entire Middle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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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 since the neocons burst upon the public policy scene 30 years ago, their movement has been a marriage of moral idealism, military assertiveness, and deception. Back in the early 1970s, this group of then-young and still mostly Democratic political intellectuals grew alarmed by the post-Vietnam Democrats' seeming indifference to the Soviet threat. They were equally appalled, however, by the amoral worldview espoused by establishment Republicans like Henry Kissinger, who sought co-existence with the Soviet Union. As is often the case with ex-socialists, the neocons were too familiar with communist tactics to ignore or romanticize communism's evils. The fact that many neocons were Jewish, and outraged by Moscow's increasingly visible persecution of Jews, also caused them to reject both the McGovernite and Kissingerian tendencies to ignore such abuses.

In Ronald Reagan, the neocons found a politician they could embrace. Like them, Reagan spoke openly about the evils of communism and, at least on the peripheries of the Cold War, preferred rollback to coexistence. Neocons filled the Reagan administration, and men like Paul Wolfowitz, Richard Perle, Frank Gaffney, and others provided the intellectual ballast and moral fervor for the sharp turn toward confrontation that the United States adopted in 1981.

But achieving moral clarity often requires hiding certain realities. From the beginning, the neocons took a much more alarmist view of Soviet capacities and intentions than most experts. As late as 1980, the ur-neocon Norman Podhoretz warned of the imminent "Finlandization of America, the political and economic subordination of the United States to superior Soviet power," even raising the possibility that America's only options might be "surrender or war." We now know, of course, that U.S. intelligence estimates, which many neocons thought underestimated the magnitude and durability of Soviet power, in fact wildly overestimated them.

This willingness to deceive--both themselves and others--expanded as neocons grew more comfortable with power. Many spent the Reagan years orchestrating bloody wars against Soviet proxies in the Third World, portraying thugs like the Nicaraguan Contras and plain murderers like Jonas Savimbi of Angola as "freedom fighters." The nadir of this deceit was the Iran-Contra scandal, for which Podhoretz's son-in-law, Elliot Abrams, pled guilty to perjury. Abrams was later pardoned by Bush's father, and today, he runs Middle East policy in the Bush White House.

But in the end, the Soviet Union did fall. And the hawks' policy of confrontation did contribute to its collapse. So too, of course, did the economic and military rot most of the hawks didn't believe in, and the reforms of Mikhail Gorbachev, whom neocons such as Richard Perle counseled Reagan not to trust. But the neocons did not dwell on what they got wrong. Rather, the experience of having played a hand in the downfall of so great an evil led them to the opposite belief: that it's okay to be spectacularly wrong, even brazenly deceptive about the details, so long as you have moral vision and a willingness to use force.

(Joshua Micah Marshall, ‘Practice to Deceive:Chaos in the Middle East is not the Bush hawks' nightmare scenario--it's their plan’, The Washington Monthly, April 2003, http://www.washingtonmonthly.com/features/2003/0304.marshall.html )
Commented by 페페 at 2007/07/28 22:35
인형사님을 이글루에서 뵙게 될지는 몰랐군요. 아니 글 본 적은 좀 되는데 인사하기는 좀 어색한 분위기라서 아무튼 글은 잘 읽었습니다.

이상주의에 대해서는 저 역시 인형사님과 비슷합니다.

윌슨 대통령 하면 이상주의자로써 이야기를 하고 그의 민족 자결주의나 십자군을 그 극치로 언급합니다만 그 근저에 깔린 배경이 유럽의 식민지 해체화의 가속, 헤게모니 장악등의 국제 정치학의 관계로 보면 철저한 현실주의 적 노선을 이상주의로 꾸민 이야기가 되니까요.

심지어 번(한)국의 경제사가들 마저 그런 면을 인정할 정도니 말입니다. (笑)

다만 문제가 된 원글을 봤는데 사실 저도 그런류의 의심은 굴뚝같이 하고는 있습니다만 그 의심을 풀 만한 증거를 찾은 적도 없고 찾을래야 찾을거 같지도 않고 해서 믿으면 패배한다라는 식으로 에둘러칠 정도로 그냥 두리뭉실 하게 언급하고는 하는데 아주 확실하게 언급하시는군요.

솔직히 저도 지금 미국이랑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털리는 것은 만만한 물주하나 잡을려고 일부러 판돈 좀 잃어주자는 짓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 들때 많거든요.

더 이상 끼일 여유도 없고 인형사님도 파장을 선언한 마당에 더 쓰기도 그렇고 아무튼 슬쩍 인사겸 한마디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7/29 10:55
인형사/ 1. 네오콘이 거짓과 기만에 대해 아주 유별난 생각을 갖고 있고 이를 지독하게 구사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제가 묻는 것은 후쿠야마와 월포위츠 사이의 바로 그 대화가 정치적 수사일만한 구체적인 근거가 있으면 제시해 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그 대화를 그렇게 판단할 근거는 없어 보입니다.
모든 네오콘이 자기들끼리 모여서도 거짓과 기만만 구사한다고 보면 네오콘은 정치세력으로 아무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2. "모든 합목적적 행동이 모험주의적/ 이상주의적이라는 말도 되는데 그러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목표와의 거리 즉, 다른 말로 하면 목표가 얼마나 원대한가와 모험의 크기(risk)는 비례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도 당연하고, 필요하면 좀 더 구체적인 논증으로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합목적적 행동이 근본적으로 모험주의적/이상주의적 성격을 갖는다는 말은 제가 볼 때 당연하다는 겁니다. 다만 모험이 모험처럼 느껴지려면 모험의 크기가 일정 하한선을 넘겨야 할 수는 있겠지요. 그 하한선은 어느 정도 주관적이긴 하겠지만 점진과 급진을 나눌 수 있는 것처럼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사이에 그을 수 있다고 봅니다.

3. "이상주의적 목적과 그렇지 않은 목적을 구분할 필요는 없을까요?"
비 이상주의적 목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상정할 수 있습니까? 세계멸망 추구 같은 명백히 자멸적인 계획 아니면 순수히 무작위적 선택?
Commented by 인형사 at 2007/07/29 14:41
페페/

저를 인형사로 기억해주시는 분이라면 과겔에서 만난 분이겠군요.

만만한 물주 잡으려고 일부러 판돈 잃어준다니 참 재미있고 적절한 표현입니다. 제가 좀 훔쳐 쓰겠습니다.

네오콘을 현실주의자로 가정하면 대략 이들의 다음 수들이 짐작되는 것들이 있는데 하도 엄청난 것들이라 과연 그렇게 될까라는 생각도 들고, 또 말해봤자 웃음거리밖에 안돼서 침묵해야할 경우도 많지요.

저는 어쨌든 공화당이 실각하고, 부시, 체니를 비롯한 네오콘들이 감옥가고, Patriot Act와 Military Commission Act가 철폐되고, 2001년의 Nuclear Posture Review와 Quadrennial Defense Review가 수정되기 전까지는 안심은 못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7/29 22:56
김치찌짐/ 아닙니다. 온라인에서 활동한다는 게 다 그런 거죠.

paro1923/ 역시 전장에는 머피의 법칙이 강하게 작용하는 법이니까요. 빨리 끝내는 게 매우 중요하죠. 파월은 베트남전 출신으로 누구보다도 그 점을 잘 배웠을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친고양이/ ^^

미카/ 예상하시던 전개 아닙니까.

페페/ 국익추구=현실주의는 아니니까요. 그건 정상적인 국가면 어디나 하고 있는 일일 뿐.
Commented by 섭동 at 2011/02/20 08:10
현지 사령관을 계속 압박하고 쥐어짜면 군살이 빠진 훌륭한 계획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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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들과 비슷해 보입니다. 직원을 갈구고 조지면 실적이 올라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협력 업체도 갈구고 조지면 납품가는 내리고 품질은 올라간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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