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enda Est에 달린 코멘트에 대해 간단히.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려면 Realpolitik의 사도 헨리 키신저와 부시 행정부 내에서 제일 잘나가는 네오콘 이론가였던 폴 월포위츠를 대비해 보는 것이 괜찮지 않을까 싶다.
(누구누구를 네오콘이라고 볼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합의는 없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제일 고위직에 있었던 네오콘 이론가는 폴 월포위츠라는데 별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이보다 더 고위직으로 네오콘과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리처드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정도인데 이들은 모두 학자 타입이 아니어서 이론가라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월포위츠는 키신저의 소련정책 뿐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과 가설들, 그리고 역사해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월포위츠는 젊었고, 그의 견해는 당시 별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이것은 키신저에 대한 정치적 우파들의 이론적 도전을 대변하고 있었다.
1976년 여름, 여전히 군비통제군축국에서 일하던 월포위츠는 하버드대 대학원생 두 명을 자신의 인턴으로 채용했다. 이들 중 한 명이 프랜시스 후쿠야마였다. 월포위츠는 어느날 자신의 집으로 인턴들을 불러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키신저의 저서 『복원된 세계(A World Restored)』를 비평했다. 『복원된 세계』는 오스트리아 정치인 메테르니히(Metternich)가 19세기 초 유럽에서 지속적인 힘의 균형체제를 어떻게 구축했는지를 다룬 책이었다. 월포위츠는 학생들에게 이것은 좋은 책이며 키신저의 역작이지만 그가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빠뜨렸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의 영웅이 현실주의자인 메테르니히가 아니라, 도덕적, 종교적 원칙을 고수하며 나폴레옹에 맞서 강경한 정책을 추구했던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1세(Alexander I)라고 지적했다.
키신저는 분명 강대국들 사이에 안정적인 평형 상태를 만들려고 시도했던 메테르니히와 그의 목표에 일체감을 느꼈다. 키신저의 대소 데탕트 정책 추구는 이 모델에 기반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복원된 세계』에서 도덕적 관심들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키신저는 “
도덕적인 주장들은 절대주의의 추구, 뉘앙스의 부정, 역사에 대한 부정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월포위츠에게는 도덕적 원칙들이 안정이나 국익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었다. 후쿠야마는 “키신저의 잘못은 그가 살고 있는 나라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니라,
이 나라가 어떤 보편주의적인 원칙에 헌신해 온 나라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점이라고 월포위츠가 지적했다.”고 회상했다.
월포위츠는 현존하는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보다 정치적 자유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그들은 레이건주의자들이 주장한 “대외정책의 도덕성” 조항을 수용했고, 이후 부시 행정부에서 정치적 안정보다 도덕적 가치를 선호하는 자신의 입장을 이라크 정책에 그대로 적용시켰다.
만일 후세인의 타도가 현존하는 중동의 힘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해도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자는 게 그의 논리였다. 월포위츠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도덕적 가치라고 여기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키신저는 포드 행정부 시절에 대한 회고록에서 우드로 월슨의 시각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신랄히 비판했다. 키신저는 “이들은 대외정책을 선과 악의 투쟁으로 바라보며, 평화로운 질서에 도전하는 악한 적들을 격퇴하는 것을 미국의 소명으로 생각한다. …윌슨주의자들은 도덕적 합의를 통한 평화를 추구하면서, 힘의 균형을 통한 평화는 거부한다.”고 비판했다. 키신저의 이 말은 사실 포드 행정부 시절부터 부시 행정부까지 지속되고 있는 월포위츠의 생각을 제대로 묘사한 것이었다.
월포위츠는 어느 공화당 인사보다 자신을 키신저와 정반대라고 생각했고, 사상의 영역에서는 그를 적으로 간주했다.
헨리 키신저와 데탕트 정책의 무력화는 미국 대외관계의 일대 전환점을 의미했다. 미국 대외정책을 둘러싼 논쟁의 초점 역시 급속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됐다. 럼스펠드와 체니, 월포위츠는 모두 이 같은 변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반대로 이런 변화들은 이후 이들의 경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Mann, James.,
Rise Of The Vulcans: The History of Bush's War Cabinet, New York:Viking Adult, 2004
(정인석 권택기 역,
『불칸집단의 패권형성사』, 박영률출판사, 2005, p.97~99)
여기서 잘 드러나는 점은 현실주의자는 현 시점에 존재하는 기성질서와 안정을 중시하며 현상유지를 위해서라면 가치쯤은 타협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네오콘은 가치를 추구하며 옳다고 생각하는 이상적 목표를 위해 혼돈과 불안정도 기꺼이 수용할 의지가 있는 집단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키신저 외교의 대표작인 미중수교를 생각해보자. 닉슨이나 키신저도 마오쩌둥이 결코 도덕적인 지도자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세력균형을 위해서라면 그정도쯤은 얼마든지 눈감아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중국을 이용해 소련을 귀찮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았던 것이다.
미국 대외정책의 주도권을 놓고 이 두 그룹이 다시 맞붙은 사건이 바로 걸프전이었다.
중동의 세력균형과 기존질서의 수호라는 가치를 옹호하면서 걸프전을 주도한 것이 현실주의 그룹인 아버지 부시와 그의 국가안전보좌관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였고, 이에 대해 악당을 살려둬서 후환을 남긴 어중간한 결과라고 목청높여 공격했던 그룹이 바로 네오콘이다. 물론 이런 비판에 대해 부시&스코우크로프트 콤비 또한 강력히 반격했다. (
과거에서 날아든 기소장 참조)
스코우크로프트의 멘터는 바로 키신저이며, 반면 아들 부시는 이들 네오콘과 합작해 정권을 잡고 후에 이라크 침공에 나섬으로서 아버지가 지지했던 중동질서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범 네오콘으로 분류해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네오콘이 윌슨 같은 전통적 이상주의자들과 다른 점은 이상주의적 목표가 아니라 그 수단에 있다. 윌슨이 국제연맹이나 민족자결주의 같은 제도적, 추상적 수단에 집착했다면, 네오콘은 일이 되려면 소위 하드파워 -군사력, 경제력, 강압외교- 을 휘둘러야 한다고 보았다. 즉 윌슨이 목표도 이상적이고 수단도 이상적이었다면, 네오콘은 목표는 이상적이지만 수단은 현실적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