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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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로원 이야기
예를 들면, 나는 여러 가지 결정사항에 서명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 그것에 동의하지는 않으면서도…. 사실, 그러한 결정들이 그렇게 사소한 문제는 아닙니다. 정치국원의 대다수가 '찬성'에 표를 던졌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 소련공산당 서기장, 레오니드 일리치 브레주네프 -


다음은 1979년 11월 정치국 후보위원이 되어 정치국 회의에 참석하게 된 고르바초프의 회고담이다.

브레즈네프 서기장 시대의 말기에는 정치국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늙고 쇠약한] 브레즈네프를 피곤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정치국 회의는 불과 10~15분 만에 끝,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즉 정치국 회의에서 논하는 시간보다 회의실에 오기 위한 시간이 더 길었다. 체르넨코가 사전에 정치국원의 승인을 취합하여, 의제가 상정될 때마다 “찬성”하는 목소리가 튀어 나오는 것이었다. 정치국 회의에 참석을 요청받은 관계자들도 입실하여 단 몇 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좋아. 나머지는 정치국에서 검토하겠소.”라는 말과 함께 퇴실을 요구받는 꼴이었다.… [국가의 중대문제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질 때에도 본질적인 의견의 교환이 시작되는 일은 전무해도 좋다고 할 정도로 없었다. 그 대시에 “본 건은 이미 동지들에 의해 검토되어 사전 의견교환도 끝낸 상태입니다. 전문가들에게도 자문을 구했습니다. 무슨 발언할 사항이 있습니까?”라는 판에 박힌 말로 한 건 낙착이었다.
…결국 특정한 문제에 관한 해결을 도출해 내기 위해서 상임위원회, 임시위원회 모두 합해 20개 이상의 위원회가 설치되어 결론을 정리했다. 정치국은 그것을 승인할 뿐이었다. 중국 위원회, 폴란드 위원회, 아프가니스탄 위원회, 그리고 그 밖에 국내문제, 국제문제의 위원회가 있었다. … 이러한 위원회들이 정치국, 서기국의 직무를 대행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정치국 회의는 점점 더 생산성이 낮은 회의가 되어 갔다.

ミハイル ゴルバチョフ, (工藤精一郎, 鈴木康雄 訳), 『ゴルバチョフ回想錄』(上卷), 新潮社, 1996年, 271-273頁
(이웅현,『소련의 아프간 전쟁: 출병의 정책결정과정』, 서울:고려대학교 출판부 p.122 에서 재인용)


브레즈네프의 뒤를 이은 두 서기장 안드로포프와 체르넨코는 처음부터 환자였다. 안드로포프는 15개월, 체르넨코는 13개월 재임 후 병사하였다. 이 시기의 정치국 분위기에 대해선 다음 이야기가 재미있다.

이미 안드로포프는 병세가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에서 서기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정치국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1983년 3월 24일, 안드로포프 못지않게 노쇠했던 체르넨코가 당 원로원의 정기회의를 소집하여 정치국원 및 정치국 후보위원, 중앙위 서기들의 업무규칙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다. 이 회의에서 발제를 맡은 체르넨코가 보고를 시작했다.

"65세 이상의 고령 정치국원에 대해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집무시간을 제한하고, 휴가기간을 연장시켜주며, 주당 1회의 재택(在宅)근무를 허용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지난번에 우리가 결의한 사항이 아직도 이행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안드로포프 역시 체르넨코를 지지했다.

"모든 사실을 정치국의 연령분포를 통해 비추어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당의 정치적 경륜이 축적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성급하고 대폭적인 세대교체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나친 긴장상태에서 집무를 하게 되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습니다. 아예 모든 정치국원에게 재택근무를 허용하고 휴일은 푹 쉬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정치국의 노인네들은 스스로에게 꼭 필요한 문제를 토론했다. 펠셰가 그 누구보다도 먼저 소견을 밝혔다.

"유리 블라디미로비치 안드로포프 동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동지께서 직접 이 업무규정을 상세히 살펴보시고 자신을 동보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국원들은 가능하면 야간연회에 참석하지 않고 외국 대사나 사절단과의 면담도 주중에만 하는 방향으로 하는 동시에 의료검진을 강화해야만 합니다."

이 노인네들이 자신들에 대한 배려조치를 강화하고 싶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Volkogonov, Dmitri, Sem Vozhdei: Galereia liderov SSSR, Moscow:Novosti, 1995
(김일환 외 역, 『크렘린의 수령들: 레닌에서 고르바초프까지(하)』, 서울:한송, 1996, pp.214-215)
by sonnet | 2007/06/19 23:38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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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우사, 1994, pp.26-30 나라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는 확신 하에, 어떻게든 정년제의 정착을 추진했던 덩샤오핑과, 이 일을 결국 끝까지 제대로 하지 못했던 소련의 사례가 대비되는 장면. 동료들의 반대가 극심해서 그 후로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개인적인 권위로 찍어누르고 뚝심으로 버티면서 어떻게든 최소한의 암묵적 규칙(6 ... more

Commented by 이녁 at 2007/06/19 23:40
역시 어떤 체제든 한 개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체제는 막장의 길을 걸어간다는 진리를 알려주는군요.-_-
Commented by 김미상 at 2007/06/19 23:45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갑자기 대단해 보입니다. -_-
Commented by paro1923 at 2007/06/19 23:52
아아악... 재택근무라니... 주 48시간 근무에, 아예 전 국원에게 확대...
...'주 5일제' 얘기는 왜 안 나왔나 싶을 정도로 뜨악한 '의견'이군요.

* [ 모든 사실을 정치국의 연령분포를 통해 비추어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당의 정치적 경륜이 축적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성급하고 대폭적인 세대교체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

...미국식 고용구조 모델에는 극렬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이런 상황만큼은 '구조조정' 생각이 스멀스멀...
Commented by didofido at 2007/06/20 00:51
읽던 도중 텍사스 목장이 떠오른 건 저 뿐입니까?
Commented by shaind at 2007/06/20 10:32
오, 말 그대로 양로원이군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6/20 10:39
소비에트 정치국의 마지막 직전의 세대는 자택에서 국사를 보셨던 겁니까....
Commented by 기린아 at 2007/06/20 11:57
대략 저런 경향은 딸이 동성애자라서 동성애자 반대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체니에게서도 볼 수 있는..(쿨럭)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7/06/20 14:50
노땅 동무들의 정치적 경륜을 활용하기 위한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소련이 붕괴된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지는군요.
Commented by あさぎり at 2007/06/20 15:17
련방판 기로소를 만들어야 하겠습네다.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6/20 19:03
브레주네프 1906년생

아프간 트로이카

안드로포프 1914년생

그로미코 1909년생

우스티노프 1908년생

덤으로 체르넨코는 1911년생입니다. 브레주네프가 사망한 82년을 기준으로 대부분 70을 넘긴 상황이었고 오히려 안드로포프가 그나마 젊은 편이었을 정도, 말그대로 노땅들이셨죠.

(특히나 군출신인 우스티노프를 제외하고 2차대전중에는 여러 전선을 돌아다니면서 행정가 및 정치장교로서의 면모를 갈고 닦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저런 분들이 일만하다 돌아가신 것은 마이너한 2차세계대전사를 추구하는 것은 물론 5~70년대 소련사를 재조망하는데 있어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챠에서 편히 쉬시면서 회고록이나 좀 남겨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Commented by 바보이반 at 2007/06/20 21:20
공개된 브레즈네프 영감님의 일기장에 대한 기사를 읽은기억이 있는데 그분 일기 내용이 다 이런식 이었답니다. X월 X일: 점심에 모모모를 먹었는데 맛이 그져 그랬다. Z월 Z일: 저녁만찬에 나온 거시기가 환상적이었다.... 순 먹고 마신 이야기 밖에 없어서 기자선생이 개탄하시길 "이런 별볼일 없는 식탐노인이 전세계 핵탄두의 절반을 쥐고 흔들었다니 오마이갓!!!!"
Commented by sonnet at 2007/06/21 10:55
이녁/ 사실 브레즈네프 체제는 소련에서 개인의존도가 가장 낮았던 시기입니다. 브레즈네프 자신이 우유부단한 인물이어서 정치국의 모든 동료를 다 만족시키는 식의 기조를 갖고 있었지요.

김미상/ 소련정치 최대의 문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임기가 없었다는 겁니다.

paro1923/ 경륜도 좋지만 집무가 힘들 정도면 좀 비켜줘야 할텐데 말입니다. 하긴 소련에서 비켜주면 새되는 지름길이라 죽기 전에 비켜준다는 것도 좀...

didofido/ 앗 과문해서 연상이 잘 --;;;;

shaind/ 네.

행인1/ 안드로포프 같은 경우 15개월 중 마지막 두 달은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습니다.

기린아/ 현 미국의 의사결정은 또 좀 다른데, 그건 다른 기회에...

길 잃은 어린양/ 그러고 보면 노땅들을 계획적으로 정리해 주고 숨을 거둔 덩샤오핑 영감은 정말 대단한 인물입니다. 자기 자신이 노땅인데 앞장서서 그 짓을 하다니...

あさぎり/ 누가 정치국원 목에 방울을?

라피에사쥬/ 회고록이 없는줄 아십니까?
체르넨코의 카자흐스탄 국경수비대에서의 '영웅적 투쟁', 안드로포프의 '카렐리야 빨치산', 18군 정치위원 브레즈네프가 "돌격해오는 파시스트들의 면상에 직접 총알을 박아넣었다는 장면이 생생히 기술된 회고록 '작은 대지'(오페라, 희곡 有) ...

바보이반/ 거기 하나 더 덧붙이자면 멧돼지 사냥이 있지요. 브레즈네프는 죽기 전날까지도 사냥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총 쏠 힘이 없어 부관을 시켜 하고 구경만...)
Commented at 2007/06/22 20:2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6/24 10:11
비밀글/ 아직 시간은 많은데 뭘, 또 하면 생각나게 되지. 달단으로 가는 길은 못봤음. 시간 내서 읽어보겠음.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6/24 10:24
면상에 직접[....] 아무래도 대인들의 회고록이란 이미 제 상상을 초월하는 범위에 존재하는 듯 싶군요. 싹 잊어버리겠습니다. -_-;;
Commented by sonnet at 2007/06/27 09:53
라피에사쥬/ 김일성장군의 무용담에 비하면 그래도 약과죠. ^^
Commented by paro1923 at 2007/06/27 23:48
수령님 하면... '피바다'!!! (......)
Commented by 腦香怪年 at 2007/06/28 13:03
70년대 일본에서 미국에 망명헀던 전 KGB 요원 레프첸코의 회고담에 보면 본국에 휴양갔을 떄 프라우다 사진사와 만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에 따르면 그 사진사의 주업무가 하나는 브레즈네프를 위시한 정치국원들의 사진이 신문이 나올 떄 "망령난 늙은이들"처럼 보이지 않도록 손질하는 것 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정치국원이 해외를 순방하거나 그 밖의 외지에 가서 귀환헀을 떄 정치국의 형제적 단결을 보여주기 위하여 다른 정치국원 들이 마중을 나가 돌아온 이를 맞아주는 장면을 합성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사람들이 국사에 바쁜 것은 고사하고 자기 몸 하나 추스리기도 힘든 노땅들이 몸을 움직이는 걸 잘도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 마인드가 참... (역시 합성의 원조는 소비에트가)

라피/ 음 위에 언급되진 않았지만 엄연히 그로미코 각하( 뭐 마지막 직책이 최고 소비에트 간부회의 의장이었으니 일종의 President인 셈이죠)의 회고록도 있지요. 이 건 언급된 작은 대지(저도 읽어보지 못헀지만) 보다는 더 읽을 만 하다고 봅니다. 국역판도 있으니 헌책방을 알아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7/01 11:19
腦香怪年/ 마중을 왜 그렇게도 자주들 나가는가 했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구만요.

paro1923/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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