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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주한 미국대사의 시각
밸리에 6.10 관련 포스팅이 몇 개 올라오는 것 같아 당 검역소는 조금 다른 관점을 제공해볼까 한다.

다음은 1987년 당시 주한 미 대사였던 제임스 릴리의 회고록 중 해당 부분이다.

(저작권관련 지적에 따라 본문 삭제)

Lilley, James R., Lilley, Jeffrey, China Hands: Nine Decades of Adventure, Espionage, and Diplomacy in Asia, New York: PublicAffairs, 2004
(김준길 역, 『아시아 비망록: 美국무부, CIA의 기밀해제된 작전 파일』, 서울: 월간조선사, 2005, pp.381-404)


이런 시각을 접하고 나면 한 가지 흥미로운 의문이 떠오른다.
대통령 직선에 대한 강력한 국민의 요구가 분출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87년 정치개혁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사실 전두환 같이 오만한 인물을 퇴로를 열어주지 않고 궁지로 몰 경우 대 파국을 맞이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는 점에서 이 시기의 성공적인 연착륙은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성공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왜 연착륙에 성공하였는가?

정부는 계엄령과 군의 투입을 통해 제2의 광주사태 같은 유혈충돌을 벌일 수도 있지 않았던가? 왜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나? '국민의 시위가 군사정권을 무릎꿇렸다' 식의 일면적인 해석은 결코 그런 문제에 대한 답을 줄 수 없다. 5공 정권 내부의 의사결정과정을 알아야 한다. 20주년이라고 한다면 좀 심도있는 분석이 대중에게 제공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by sonnet | 2007/06/10 11:41 | 정치 | 트랙백(1) | 덧글(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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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玄武 서식지 2호 at 2007/06/10 17:11

제목 : Quiz!
1987년 6월, 주한 미국대사의 시각 “나는 그날 명동을 거쳐 종로의 시위 현장으로 나갔다. 그 이튿날 아침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농성장인 명동성당에 직접 들어가보기도 하였다. 중산층까지도 반정부 운동에 적극 가담할 기세였다.… 6월18일 9시20분, 나는 비로소 대통령에게 보고할 시간을 얻었다.…나의 보고 요지는 직선제 수용만이 유일한 살길이요,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대통령 앞이라 할지라도 물불 가리지 않고 소신......more

Commented by 觀鷄者 at 2007/06/10 12:04
좋은 포스팅인만큼, 이오지마에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주위에 복잡하게 얽힌 사람들이 많아 정치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대부분 노 코멘트로 일관하고 있고 이글루에 들어오는 횟수도 줄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sonnet님의 글을 읽으면서,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함부로 떠들 시간에 공부하는 게 최고라는 것을 깨닫고 갑니다.
Commented by NOCTUM at 2007/06/10 12:53
'실제로' 요즘 관련 방송이 자주 등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민주화의 영광에만 촛점을 맞추는 방송이 많습니다.

그 날의 일익을 담당했던 사람들이라면 감동과 회한으로 넘어갈지 모르겠지만,

억지로 그런 감상을 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써는

항상 느껴왔던 공허감의 일부를 이 글로 인해 채울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 )
Commented by Madian at 2007/06/10 13:03
기존에 알려진 바, 그리고 이 포스트까지 보면 "망치와 모루"까지는 확실히 잘 맞아 떨어진 것 같군요. 여태껏 접한 5공의 속사정을 들여다 볼만한 것이 라디오/TV 드라마 정도가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이건 제 불민한 탓이지만) 요즘엔 그나마도 "6.29가 누구네 작품이다"로 엎치락 뒤치락하는 수준을 보면 한숨만 나오는군요.

코흘리개였던 저 때의 기억은 부산대 앞인 외가에 왕왕 머물다가 날아오는 최루탄 냄새에 코가 찡했던 것뿐이지만, 요즈음의 망각하는 세대에 동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Commented by Luthien at 2007/06/10 13:43
마음속의 악마가 추천하라고 하고 있군요. (후덜덜)
Commented by IEATTA at 2007/06/10 13:56
월.간.조.선 께서 낸 책 치고는 참 참신한 내용을 담고 있군요. (웃음)

하지만 대사가 바라보는 시각과 이역만리 하얀집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수도 있고
대사가 바라보는 시각이 항상 옳았던것만은 아니죠.
이 대사도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옳은 방향으로 시대를 이끌어야한다"
라는 선민사상에 조금 빠져있는듯한 느낌도 듭니다만.....

(이 덕분에 쌀나라 하악하악. 하시는 월.간.조.선. 에서 내 준걸지도..)

그래도 한국의 현실에 대한 외부인사로 최대한 객관적 논지를 취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여지는걸로 봐서는 꽤나 중립적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뭐 자서전이 전부 다 믿을건 아니지만 말이지요. (나중에 생각해서 창착한 내용들이
들어갈수도 있는 것이고 킁킁킁)

좁은 식견에서 뭔가 써 보고자 하니 역시 부족하네요. 공부가 답입니다!
Commented by あさぎり at 2007/06/10 14:17
훌륭한 포스팅 잘 보았습니다.
무언가를 논하려면 얄팍한 수행으로는 모자란 듯 싶군요. 아무래도 수양산에서 도를 닦아야...
[물론 푸성귀만을 먹을 수는 없으니 비상식량을 잔뜩 싸들고...(펑)]
Commented by 아텐보로 at 2007/06/10 15:01
전부터 전두환이 미국을 의식하지 않았더라면 군대를 동원할수도 있었을테고 그렇다면 과연 민주화라는게 이뤄졌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 해왔었는데 미국에서는 좀더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줬다는걸 알게되었습니다.
근데 저번작전권 반환문제처럼 또 논쟁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잡지사도 잡지사이니만큼.......
Commented by 김민섭 at 2007/06/10 15:04
좋은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ㅎㅎ 그건 그렇고 일관되게 건방진 태도의 저 미국 대사의 말투는 사실 좀 짜증나는군요.
Commented by 로리 at 2007/06/10 15:36
저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니 재미있군요. 흥미로운 포스팅입니다. 정말로 잘 읽었습니다. 억지로 저 부분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실제로 군의 개입을 막았다라는 것은 정말로 재수 없었으면 "광주의 재림"이 되었ㄲ을지도 모르니까요...

진짜 5공 내부의 회의나 의사결정과정이 궁금하긴 합니다. 정말로 공부를 더 해야 겠습니다...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6/10 16:02
요즘의 여론추세야 독일의 모처에서 '모든 잘못의 근원은 히틀러 개인이다!!!'를 수십년간 외치다가도 레준이 나타나 수정주의적 선제공격계획론을 외치니 '그래도 우리의 전쟁은 역시 정당성이 있는거였다. 사악한 이반놈들이 선제공격을 준비중이었어 바르바로싸 작전은 정당한 예방공격이야!!!!!!!!!'를 외치는 것과 비슷비슷한 성격이라고 봅니다. -_-;;

(책임을 특정인에게 돌리는 태도가 책임전체부정으로 변환된 셈인데,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여러군데서 보기 쉬운 일이죠. 한국의 경우는 책임회피를 '성과는 내꼬얌'으로 바꾸면 들어맞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Dataman at 2007/06/10 16:06
레이건 말기의 미국은 이란-콘트라 사건에서도 보듯 대외개입에 망설임이 적었던 레이건 행정부의 태도에 상당히 상처를 받은 시기죠. 아마 82년쯤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 좀 더 적극적인 개입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주화에 부응하든 반하든) 그러니 이 정도로 나서는 것도 미국으로서는 상당한 움직임,이라고 읽히는군요.

세상의 대세에 미국이 할 일은 했다,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궁금이 at 2007/06/10 16:13
흥미로운 내용 잘 보긴 했습니다만, 저렇게 한 장을 무단전제해도 괜찮은 건가요? 혹시 공개된 자료인 건가요?
Commented by あさぎり at 2007/06/10 16:19
그나저나 곧 이 유황도에 미축영귀의 대군이 몰려올 듯 해서 걱정입니다...[헛소리]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6/10 16:22
아침안개님// 시기적 요소와 '추천을 말리진 않는' 현 정책의 추세 등을 감안했을때 이것은 역시 고도의 떡밥이라는 것이 청소부로서의 판단입니다[펑]
Commented by Cato at 2007/06/10 16:35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추천을 고민했었는데 역시 제 "글"도 납치해 가신 玄武대인께서 이오쟁패에 추천해 주셨군요^^

한국 정부 내부 움직임에 대해서는 무려 전두환의 통치사료담당자였다는 김성익(?)씨의 증언이 있었다고 기억합니다만, 6월 18일 부산 시위가 군투입 여부를 결정하는 분수령이었다는 걸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6월 26일에 예정된 시위가 더 문제가 되었었는데 마침 비가 내리고 우려(?)했던 것보다는 별로 사람도 모이지 않아서 넘어 갔었구요.

명동성당의 군투입에 대해서는 정부 내 카톨릭 신자들이 반대했었다는 보도도 있었던 것 같고...내무 장관인지가 상황을 보시겠다고 사복 차림으로 명동 성당에 가셨다가 시위대에 발각되어 곤욕을 치르신 일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군요.

좀 다른 얘깁니다만, 전두환은 그 전 해부터 판을 확 갈아 엎는다는 발언을 공식 석상에서 여러 차례 해 왔고 거기에 위기 의식을 느낀 김대중 前 대통령께서는 86년 10월인가에 직선제가 되어도 대선 불출마를 하겠다는 선언을 하시기도 하셨었죠. 전두환의 이런 일련의 발언들은 bluffing이 아니었나 하는 견해도 있었던 것 같고, 김대중 前 대통령께서는 나중에 전두환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열망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직선제를 받은 것이니 불출마 선언은 없었던 것으로 가볍게 처리하셨던 것이야-_-;; 널리 알려진 일일테구요.
Commented by 屍君 at 2007/06/10 16:36
그러게요. 29만원씨 성격으로 봐선 제 2의 광주 사태가 충분히 일어날 법도 했을텐데 왜 그랬을까나.. 싶었는데, 저런 뒷얘기가 있었네요.
Commented by 윤민혁 at 2007/06/10 19:36
알려지지 않은 정부 내 비화들 중에는, 우리가 아는 5공 내부 강경 인사들이 87년 단계에서의 무력진압을 반대한 경우 - 위에선 정호용이 언급됐는데, 그 외에도 뜻밖의 인사 몇 명이 무력진압 반대 및 개헌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 가 꽤 있었다고도 하지요. 그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연구가 슬슬 시작될 때가 됐다고 봅니다. 벌써 20년 전 일이니까요. 관련자들의 저항이야 당연히 있겠습니다만... (웃음)
Commented by ssn688 at 2007/06/10 19:45
얼마 후에 있을 올림픽 때문에 "바깥" 눈치를 좀 많이 봐야했고, 그래서 29만 원 각하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 아니었던가요? 정말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7/06/10 19:50
6월 당시의 긴박했던 막후 조정의 전말을 그대로 보여주는 얘기로군요.
6월 항쟁에 대한 단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 ...만일 한국을 아무도 관계하지 않고 혼자 내버려두면
신성한 전통을 누리며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다는 신념을 한국인에게 주입시켜놓았다... ]

...미국의 시각에서 본 한국식 내셔널리즘이랄까,
선뜻 동의하기는 힘들지만 또 일견 전혀 틀린 소리는 아닌 것 같아 입맛이 씁니다.
Commented by 됴취네뷔 at 2007/06/10 19:53
일찍이 받아본 일이 없었던 영광이었다.
Commented by 유레인 at 2007/06/10 20:15
이글루스에서 소개받아서 왔습니다. 대학에서 동아리 선배들이 가르쳐 주는 것과는 다른 시점에서 볼 수 있는 글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확실히 우리나라 군부는 이 때를 기준으로 사회적으로 찬밥 신세를 하고 있는데 이 글을 보니 이러한 생각도 달리 해야겠군요. 역시 역사적인 사실은 단편적인 시각으로만 보면 안되다라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참 좋은 글이 였습니다. 제 이글루로 납치해 가겠습니다~
Commented by oldman at 2007/06/10 20:16
정말 여러가지 깨달음 많이 얻고 갑니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 ^^
Commented by pmpnp at 2007/06/10 21:11
이오공감에서 보고 왔습니다. :D
오~ 하면서 읽었습니다.

트랙백해 가서 한번 더 읽어보려 합니다.좋은 한 주 되세요^^
Commented by 스칼렛 at 2007/06/10 22:17
저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던 6월 18일에 부산에서 30만명이 기어나왔지요.
저는 부산에서 있었던 그 일이 시국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했고 타당한 면이 있습니다만, 지금 발췌하신 저 글을 읽어보니까 미국의 정책 또한 크게 고려해야 할 변수 같습니다.
Commented by 주가슈빌리 at 2007/06/10 22:49
제럴드 리의 "코리아 파일"에는 노태우의 6.29선언이 당시 지검장이었던 ㄱ검사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분이 CIA 한국주재 요원이었던 著者에게 그러한 제안을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美측에서 全,盧측의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는 요지였습니다.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위의 인용내용과 비교하며 다시 읽어봐야 겠습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6/11 00:02
미국의 개입도 중요변수의 하나였군요. 4.19때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지 않았나 합니다.
Commented by 채승병 at 2007/06/11 00:27
박철언의 회고록이나 기타 여러 증언, 탐사보도를 종합해보면 미국의 영향력은 저런 자위성 멘트에도 불구하고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쪽이 진실에 가깝지 않습니까? 저는 6/29 선언은 1986년에 거론되던 친위 쿠데타 카드의 비현실성을 깨달은 전두환(+α)이 노태우를 제쳐두고 기획한 반전카드였다는 설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7/06/11 00:28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조만간 1987년 6월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Ya펭귄 at 2007/06/11 02:28
http://news.msn.co.kr/article/read.html?cate_code=1600&article_id=200706101642576100 <== 노대통령 각하께서 친히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라, 진지한 고찰은 당장 가능할지 몰라도(이미 할 사람들은 다 했다고 생각되지만) 진지한 고찰의 공론화는 좀 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Commented by 천마 at 2007/06/11 03:03
늘 와서 눈팅만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정치이야기는 항상 이 막후 결정과정이 재미있지요. 캐네디대통령의 쿠바사태이야기나 독일 통일관련 막후 이야기등을 보면 그렇죠. 그렇지만 이 글은 다른 시각을 제공하고 당시 전두환정권의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자세한 학문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관심을 불러 일으킨 점은 좋았지만 예가 된 글 자체는 좀 함량미달이라는 느낌입니다.

저는 자서전이란 신뢰성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10년20일]이나 슈페어의 [기억]같은 것을 보면 자료성은 높지만 논란에 대한 교묘한 자기변명을 볼 수 있습니다. 위 글도 당시 김대중씨를 만나는데 동행하기를 거부하면서 민정당정당대회 참석한 문제에 대한 이유는 변명으로 밖엔 안보입니다. 20~30만명의 시위군중을 이야기하면서도 서울시내의 90%는 데모가 없다며 시위가 마치 언론이 오면 시작하는 쇼인양 말하는 모순된 내용도 나오는군요. 6.29에 대한 부분도 "내생각에는"이라는 단서가 달린 추측일 뿐이고요.

뭐 그래도 sonnet님의 글의 의도인 단순한 감회와 자부심뿐 아니라 그 막후에서 어떤일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물들의 인상과 실제 인물들의 행동이 다른 경우가 있었다는 말이 있으니 이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고찰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전달하기엔 충분해보입니다.

P.S: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 병합을 반대했다고 해서 그가 조선 독립의 수호자가 아닌 것처럼 장군들이 시위대에 대한 발포를 반대했다고 해서 그들이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발포를 했다간 파멸뿐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생존차원의 판단이었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Astral at 2007/06/11 08:43
아침에 약간 멍한 정신으로 블로그 들어왔다가 잠 깨고 갑니다. 첨부터 끝까지 한번도 눈을 못 떼고 죽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Andrea at 2007/06/11 11:17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각자의 시각에서 새로운 해석이군요...@.@
Commented by monsa at 2007/06/11 18:46
원글이 지워져서 안타깝군요. 확실히 체제수출이 한국이라는 곳에서는 성공적이라고 판단할 만한 부분이 있지요.
Commented by F.E.M.C at 2007/06/11 21:24
어떤 교수님은 미국이 한국을 절대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식 민주화/경제발전 모델이 유일하게 성공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이런 저런걸 보다 보면 틀린말도 아닌것 같아요.(한국 말고 다른곳에서는 전부 실패했다는 이야기도 되지만-_-)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7/06/12 00:21
늦게 와서 못보고 갑니다...(응?)
Commented by 지나가던이 at 2007/06/12 09:07
쩝, 원문을 못보니 판단이 안되는군요. 짐작은 좀 가도..

F.E.M.C// 부시제께서 이라크의 한국화를 얘기하시는걸 보면 정말 남한이야말로 미국의
체제수출이 성공한 유일한 나라라는 말이 되는군요. 도움준 나라중에 한국
정도 먹고살고 정치가 안정된 나라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겁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6/17 12:17
觀鷄者/ 추천 안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
사실 이 주제는 저도 잘 알지 못해서, 그냥 남 이야기 + 원론이 되어 버리네요.

NOCTUM/ 그건 어떤 의미에서 희극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6.29와 노태우의 당선은 사실 전략적 궁지에 몰린 집권층이 성공적인 지연방어전술을 펼치며 한발 한발 퇴각해 나간 끝에 끝내는 적군을 물먹인 이야기로 그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Madian/ 6.29에 대한 증언들을 보고 있으면 영화 '라쇼몽'이 생각나곤 합니다. 모든 이들의 기억은 자기에게 유리하게 각색되어 있고, 자기에게 불리한 이야긴 집요하게 추궁당하지 않는 이상 털어놓지 않는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Luthien/ 어이어이!

IEATTA/ 물론이죠. 회고록은 그 사람이 주인공인 책인만큼 충분히 감안하고 봐야 할겁니다.
다만 저는 릴리가 선민사상이라든가 민주주의 보급에 큰 관심이 있다든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었으면 그는 부시가 제안했던 대로 지금 부시행정부의 '북한인권특사'가 되어 있을 겁니다.

"본인이 북한인권담당특사로 임명된다 할지라도, 북한인권이 미국의 정책 1순위라 할 수 없다" (제임스 릴리, Radio Free Asia와의 인터뷰에서)

あさぎり/ 인터넷 시대엔 정보가 많이 흘러다니니, 본인이 관심만 갖고 있다면 정보가 지나쳐 흘러갈 때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비상식량에만 의존할 필요는 :-)

아텐보로/ 그게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a 정도의 역할은 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판단은 살아있는 당사자 전두환이 말해주는 게 최선이겠지만...

김민섭/ 아니, 일관되게 건방진 만큼 오히려 믿음이 가지 않습니까(웃음)
미국이 한국에게 정중하게 나온다면 그거야말로 정신 바짝차려야 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리/ 본문의 당사자도 언급하고 있지만, 미국이 압력을 넣은 건 사실이지만 그게 결정적인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아니겠지만 웅얼) 인거죠. 그래도 그 정도가 어딥니까. 남의 나라가 해주는 것 치고는요.

라피에사쥬/ 상황을 전반적으로 야당, 정부, 해외세력의 3자의 시각에서 균형있게 조망해주는 책이 한 권 있었으면 합니다. 한 700p정도 분량으로.

Dataman/ 사실 국무장관이던 조지 슐츠의 회고록을 읽어보아도 남한의 민주화 운동 전말은 아주 짧게 언급되고 맙니다. 천 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그 중 6p정도? 남한의 민주화에 대해선 결국 최고위층에선 거의 관심도 없었고, 정책은 주로 아태차관보인 시거 정도 레벨에서 성안된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어쨌든 한국의 민주화의 경우엔 미국이 결정적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장기적으로 '긍정적 환경조성'에는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인정해 주어야 할 겁니다. 이란이나 베트남에서 미국이 보여준 작전들을 생각해 볼 때, 미국이 꼭 긍정적 환경조성을 할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궁금이/ 지적에 따라 본문은 삭제했습니다.

あさぎり/ 피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라피에사쥬/ 동무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소?! 기본적으로 추천을 말리지 않는 것은 공지사항의 記三에 따른 것입니다.

Cato/ 사실 저는 이 주제에 대해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아서 종합적으로 논평할 자신이 없습니다.

屍君/ 당사자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은 대목입니다만, 전두환 본인은 "나니까 평화적 정권 교체를 하여 준 것이지"라는 식으로 기억을 정리한 모양입니다.

윤민혁/ 베트남전이나 쿠바 사태에 대한 컨퍼런스들이 그랬듯이 당시의 주역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대질심문에 가깝게 서로 난상토론을 해서 조각을 맞춰나가면 흥미로울텐데 말입니다. 지금처럼 한명씩 증언을 따게 되면 다들 지 불리한 이야긴 모르쇠로 일관해버리기 때문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이 주제에 정통하지 않으면 허탕치기 십상인 것 같습니다.

ssn688/ 사실 올림픽이 업적이긴 하지만, 그런 게 미국의 지지 여부만한 가치가 있겠냐 싶습니다. 조금 이르지만 아직 생존자가 많을 때 시작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paro1923/ (전체상을 본다는 의미에서의) 전말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인으로서는 미국의 입장이란 것을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흥미롭지 않습니까?

그리고 내버려두면 우리끼리 잘할 수 있다는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주장은 오래된 북한의 선전구호와 같기 때문에 아주 찜찜하지요.

됴취네뷔/ 흐흐흐흐...

유레인/ 재미있게 보셨다니 소개한 사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요즘도 파키스탄이나 터키, 타이 같은 나라를 보면 강하고 독립적인 군부가 어떤지 잘 알 수 있는데,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6/17 13:27
oldman/ 재미있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광주에 대해 미국이 먹은 욕이 상당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저런 측면에 대해 별로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은 남 탓, 잘된 것은 내 덕"의 분위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pmppnp/ 아쉽게도 저작권 관련 지적이 들어와서 본문은 지웠습니다. 좋은 한 주를 맞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스칼렛/ 한국 정치에 미국이 갖는 위상을 생각해 볼 때, 5공 정부가 전방위적인 압력을 느꼈긴 할 것 같습니다.

주가슈빌리/ 저는 그 책을 못 봤는데, 기회가 있으면 한번 보겠습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행인1/ 아마 대중 시위가 없었으면 미국은 "한국은 원래 그런가보다"하고 몇 번 말만 꺼내 보다 말았겠지요.

채승병/ 저는 시시각각으로 통제하기 힘든 대규모 시위와 외부의 압력이 강하게 들어오는 상황에서 그때그때 내린 판단과 지나고 나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회고하는 것과는 같은 사람의 생각도 상당한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생각합니다.
전반적인 외교관계에 있어서 볼 때 전두환은 박정희보다는 덜 자주적이고, 미국의 압력에 민감했다고 볼 수 있는데, 불확실한 결정의 그 순간에 느꼈던 미국의 압력은 나중에 돌이켜 본 것보다는 더 강하지 않았을까요?

길 잃은 어린양/ 뭔가 아전인수적인 해석이 너무 많은 인상입니다. 제가 릴리의 회고록을 보며

Ya펭귄/ 노대통령 각하도 전대통령 각하처럼 평화적 정권교체의 위업을 이루실지 모르니 좀 더 기다리는 거야 대수겠습니까!

천마/ 지적 감사합니다. 자서전을 읽을 때는 말씀하신 점을 분명히 숙지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해를 갖고 시작한다면, 미국의 시각을 훔쳐 보는, 즉 아 미국은 이 시기 한국을 이런 안경을 쓰고 봤구나라는 측면에 주목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1. 예를 들어 "김대중씨를 만나는데 동행하기를 거부하면서 민정당정당대회 참석한 문제에 대한 이유는 변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미국의 현명한 전략이자 분산투자이지요. 결국 어려운 시기의 노태우에게 은혜를 팔아 두었는데, 노태우가 당선되지 않았습니까?
김대중에 대한 투자는 이미 카터와 레이건이 많이 나서서 구명활동을 했던 만큼 미국 대사가 꼭 그때 가서 김대중을 만날 필요는 없었고, 그런 만큼 릴리의 판단은 깊이가 있었다고 봅니다.
이라크나 레바논 같은 복잡다기한 환경을 가진 나라에 군대를 보낸 나라라면 그 정도 머리 쓰는 법은 당연히 구사해주었으면 하는게 제 희망이기도 합니다.
또한 저는 당시 미국정부가 한국 야당 후보들의 후보단일화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았는지가 궁금합니다. 만약 미국 정부는 제3자의 냉정한 시각에서 후보단일화 가능성을 낮게 보았는데, 당시의 우리 국민들은 후보단일화에 대한 장미빛 환상을 버리지 못했다면 한국국민들은 자신의 판단착오를 냉정히 반성해야 할 겁니다.

2. "20~30만명의 시위군중을 이야기하면서도 서울시내의 90%는 데모가 없다며 시위가 마치 언론이 오면 시작하는 쇼인양 말하는 모순된 내용"
==> 이 이야기는 미국이 한국을 베트남이란 렌즈를 갖고 보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인들은 87년 민주화운동을 베트남과 비견해 보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3. "장군들이 시위대에 대한 발포를 반대했다고 해서 그들이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발포를 했다간 파멸뿐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생존차원의 판단"
==> 동의합니다. 하지만 제3세계 국가 장군들이 그정도 판단을 했다면 꽤 똘똘하다는 평은 들어야 하겠지요.

Astral/ 네,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Andrea/ 모든 이는 제눈의 안경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monsa, F.E.M.C / 확실히 한국은 미국의 쇼윈도우 아이템이긴 한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수율이 낮은지는 생각해 봐야겠지만요.

자그니, 지나가던이 / 앗 아쉽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6/17 13:30
all/ 전 개인적으로 그 해 개표가 끝나고 "노가 당선되었으니만큼, 전이 그나마 장난치지 않고 물러나겠지?"란 조심스러운 말을 들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07/07/12 07:22
후후. 재미있는 글들이 많군요. 여기도 잠깐 끼여볼까요.

6.29 당시의 구체적인 의사결정과정이야 잘 모르지만, 그 근본원인은 광주사태의 재발을 집권층도 원치 않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사태는 당시 신군부의 입장에서도 실수였을 겁니다.

왜냐하면 광주사태에서 한국전 이후 유지되어오던 한국사회의 홉스주의적 사회계약이 파기되었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홉수주의적 사회계약이란 반공주의적 독재체제에 복종을 하는 대신 공산주의자에게 행사되었던 극단적 폭력은 행사하지 않는다는 묵시적 양해 아래 성립되어있었죠.

그러기에 공산주의자는 수십만을 죽여도 상관이 없지만 비공산주의자는 단 한명을 죽여도 정권이 무너지는거죠.

광주사태는 공산주의자에게 행사될 때만 정당화 될 수 있는 폭력을 비공산주의자에게 행사했으며 사후적으로도 피해자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서 한국 반공체제의 위기를 가져온 것이지요.

한번의 위기는 어찌 어찌 넘겼지만 두 번째 위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겁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7/12 22:26
인형사/ 사실 그런 사회계약 이야기는 처음 들어봅니다만 재미있는 의견이긴 하네요.
그러나 제가 볼 때 역사적 사실로 입증하긴 힘들어 보입니다. 만약 그런 법칙이 존재한다면 전두환 정권은 광주사태 직후에 무너졌어야 맞을 테구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07/07/12 23:08
이승만은 무너졌지요. 박정희는 그의 철권통치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하나도 죽이지 않았죠.

그러나 박정희가 1979년에 부마사태가 서울로 확산되면 유혈을 무릅쓰면서 진압하려고 했을 때, 김재규에 의해 죽음을 당했지요.

전두환은 광주사태 때 무너졌어야하는 것이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반공체제의 위기와 해체를 가져온 것이지요.

비공산주의자에게 공산주의자에 대해 행사될 때만 정당화 될 수 있었던 반공적 폭력을 행사했으니, 그 반대세력도 공산주의자만는 아니어야한다는 반공체제의 제약에서 벋어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80년대 운동권의 좌경화는 공산주의라기보다는 반반공주의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의 반공주의는 공산주의의 부재를 조건으로 하는 반공주의이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항상 외부의 존재여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자생적 공산주의자가 대량으로 발생하자 반공체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당시 논의 되었던 학원 안정법이 반공체제의 논리에 가장 철저한 대책이었을텐데 결국 채택되지 않았지요. 내부에 실제로 등장한 공산주의자에게 반공적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마비되었을 때 한국의 반공체제는 종언을 고한 것이지요.

그 후의 전개는 보기에 따라 소극이지요. 자생적 공산주의자의 존재를 인정할 지 말 지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정권은 결국은 늑대소년이 되어버렸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7/07/15 18:33
인형사/ 김주열의 사망과 419를 직접적으로 연관지을 수 있는 이승만의 경우 하나를 예외로 하면 그런 법칙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전두환이 광주사태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견고하게 다져 여러 해 더 끌고 갈 수 있었음은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그렇다면 말씀하신 사회계약을 어겼다는 것이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게 된 주된 동기일까요? 아니면 영구미제사건이 되어 신비스럽게 제거된 김형욱이 공산주의자여서 정권 유지에 별 문제가 없었던 것일까요? 역시 설득력 떨어지는 이야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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