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ax robbers of all of countries, unite! by s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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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던지는 네 가지 질문』은 나치 시대에 왜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히틀러를 따랐는지에 대해 아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히틀러 유겐트였던 아버지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들어 답하는 형식의 소설이다. 80년대 인기가 있었던 전집 ABE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억하시는 분도 꽤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이 책 마지막 부분에 (나치에 반대하다 강제수용소 생활을 한 좌익) 라데만이 주인공 발터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길 하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러면 또 ‘생각하는 일은 말(馬)에게 맡기자. 머리가 크니까 말이야’라고 하며 책임을 회피하게 되지. 그렇게 되면 끝장이야. 그때에는 예전의 머리만 큰 패거리 -결국 좋은 양반들- 가 권력을 잡고 새로운 파시즘을 준비하게 될 거야. 아마 전혀 다른 이름으로 말이야. 너와 나, 우리들이라면 바로 깨달을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 자식들의 세대가 되면 어떨까?” 이야기에 지쳐 그는 입을 다물고 언젠가처럼 담배상자를 꺼내 담배를 말기 시작했다.
Burger, Horst, Warum warst du in der Hitler-Jugend?: Vier Fragen an meinen Vater, Rowohlt, 1978 (김용신 역, 『아버지에게 던지는 네 가지 질문』, 서울: 중원문화, 1991, p.219) 그런데 그들 자신이 바로 깨달을 수 있을까? 아니 우리라면 바로 깨달을 수 있을까? 첫 번째 이야기우리의 '메시아적 충동' (Our 'Messianic Impulse')* 필자: 로버트 케이건(Robert Kagan) * 출처: 워싱턴포스트* 일자: 2006년 12월 10일 미국인들이 이라크에서 겪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함에 따라, 더 크고 폭넓은 문제가 우리를 부르게 된다. 우리는 처음에 어쩌다가 이라크에 말려들게 되었던가? 몇몇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의 원칙을 퍼트리겠다는 측면에서 너무 독선적이고 호전적이며, 세계를 바꿔놓겠다는 측면에서는 너무 거만하고 간섭을 좋아하며, 우리 영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우리의 국익과 거리가 먼 위기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데 있어 너무 성급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세계를 상대하는 방법을 바꾸기만 한다면, 즉 미국이 절제와 온건함과 겸손함의 미덕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대외정책 논쟁을 피할 수 있고, 세계는 더 안전한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사실 매우 오래된 논쟁으로, 미국인들이 매 세대마다 핏대 올려가며 싸웠던 주제이다. 세계를 향한 팽창적이고 이상주의적이며 개입주의적 접근은 미국인의 기질에 깊이 뿌리내려 있으며, 건국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독립선언서에 들어있는 자유주의의 보편적 원칙에 포함되어 있다. 컬럼니스트 조지 윌(George Will)이 말한 바 있듯이 그러한 “메시아적 충동”은 “미국인의 민족적 특성 중 하나로, 미국 애국주의의 한 요소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대한 구상에 대한 반대 또한 그에 못지않은 특성이었다. 비판자들은 미국이 건국될 때부터 그러한 구상을 해외에서의 끝없는 전쟁에 대한 보증수표이자 국내적으로는 미국 민주주의를 해치는 행위로 간주해 왔다. 그러한 투쟁은 최초의 순간, 즉 헌법 비준에 대한 논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조지 워싱턴, 알렉산더 해밀턴, 벤자민 프랭클린 그리고 제임스 메디슨 같은 지지파들은 미국이 스스로의 국제적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세계적 강대국이 되려면 강력한 중앙정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신생 미국은 “위대한 제국의 싹”이라고 해밀턴은 주장했다. 패트릭 헨리는 이에 맞서 “이 나라를 강대하고 거만한 제국으로 바꿔놓으려 한다”며 이 나라의 존재 목적을 저버린다고 헌법 지지자들을 비난했다. “미국의 정신이 젊었을 때, 미국의 말은 달랐었다. ‘자유를 찾읍시다, 여러분’이 당시의 기본 목표였다.” 존 퀸시 아담스는 이 투쟁에서 양쪽 편을 모두 들었다. 1821년에는 “쳐부술 괴물딱지를 찾아 나서는” 해외에서의 이상주의적 모험에 대해 경고했지만, 몇 년 후에는 미국인들이 우리의 “원칙과 도덕”의 편에 서서 세계에서 “독보적이며 지도적인 역할을 떠맡을”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19세기의 마지막 수십 년 동안, 링컨의 공화당은 이 팽창적이고 개입주의적인 관점을 확대했고, “미국의 사명과 다가올 위대함” 그리고 “세계를 더 좋게 만드는 데 있어 미국의 중추적 역할”을 찬양했다. 민주당의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국무장관 월터 Q. 그레샴은 이에 맞서 “망상을 불태우지 않는 한 관계없을 일인데도 사서 곤경에 뛰어들려는 충동”에 대해 경고했다. 이러한 “방종”을 억제하는 것은 “대중 정부의 힘과 절제와 선행의 사례로서 세계에 지고 있는 의무”였다. 로버트 A. 태프트는 야심적이고, 세계를 바꿔놓으려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해리 트루먼, 딘 애치슨의 정책에 대한 투쟁을 계속했다. 이 영향력 있는 공화당 상원의원은 “우리는 다른 나라들의 민주주의 이상을 방어하는 일을 떠맡아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하면서, 미국이 모든 파이에 손가락을 올려놓은 쓸데없는 참견꾼이 될 것을 우려했다. 그는 “다른 나라들에 대한” 그러한 패권은 “그 목적이 선의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제국주의를 가져오게 된다”며, 패권에 대한 유혹과 거드름을 경고했다. 트루먼과 애치슨은 이러한 충고를 거부하고 대신 전세계적 우세를 추구했으며, 전세계에 걸친 “세력의 상황”과 이데올로기로 가득 찬 봉쇄 전략은 이론적으로 지구상 어디에서든 미국을 전쟁으로 이끌 수 있었으며, 베트남에서 바로 그렇게 되었다. 오늘날 태프트는 교양 있는 계층에서 나쁜 평판을 듣는다. 그러나 해외에서 벌이는 미국의 모험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우리의 팽창적 대외정책 전통에 대한 최근의 비판자들에 의해 다시 한번 채택되었다. 낡은 반론은 계속된다. 미국을 그 팽창주의의 오랜 역사로부터 탈선시키려고 노력해온 사람들의 문제는, 전세계적 변혁의 가능성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념 -메시아적 충동- 이 예나 지금이나 이 나라의 보다 지배적인 개성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나라의 건국 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미국의 정력적인 야심과 그들의 정당성에 대한 압도적인 인식의 결합이 낳은 건강한 자식이기도 하다. 비판자들은 이따금 그러한 경향을 가로막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일시적이나마. 해외에서 세계를 바꿔놓으려는 노력의 실패 또한 그러한 효과를 갖는다. 하지만 단지 일시적일 뿐이다. 많은 이들은 베트남전의 종결을 힘과 이데올로기적 불멸주의에 대한 애치슨적 원칙에 대한 거부의 징조로 보았다. 그러나 베트남전이 끝난 5년 후, 미국인들은 로널드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뽑았고, 그는 그러한 원칙들을 거칠게 휘둘렀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이라크에서의 어려움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세계에 대한 메시아주의와 야심에 반대하도록 만들 것으로 믿고 기대한다. 역사는 그들의 편이 아니다.로버트 케이건은 워싱턴 포스트에 월간 컬럼을 쓰고 있다. 그는 최근에 미국 외교 정책사를 다룬 책 "Dangerous Nation"을 출간했다.역자 주: 케이건 3부자는 미국의 알아주는 네오콘 패밀리이다. 아버지 도널드 케이건은 전쟁과 인간(On the origins of war)을 써서 네오콘 전쟁이론을 뒷받침했고, 프레드릭 케이건은 작년 연말에 AEI에서 이라크에 병력을 증파하면 아직도 이길 기회는 충분하다는 보고서( 200612141_choosingvictory6.pdf)를 써서 부시를 움직인 바 있다. 한 줄 요약: "나는 돌아온다." -Douglas MacArthurNeocon- 로버트 케이건이 든 예는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꽤 교묘하게 고른 것이긴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결론을 부정할 수가 없다.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한 수 가르쳐 주시겠다는 메시아적 충동은 미국인들의 문화적 DNA에 아로새겨진 것이어서 쉽사리 없어질 물건이 아니다. 그런데 그게 꼭 미국인들의 문화적 DNA에만 새겨진 것일까? 두 번째 이야기이라크 전쟁은 우리에게 우리 실체에 대해 말해준다메소포타미아가 난장판이 된 데 대해, 부시 행정부, 이라크 민중, 이란이 욕을 얻어먹고 있다. 하지만 미국 대중 자신이 이 문제의 진정한 근원이다 필자: W. Patrick Lang, Jr. 출처: Foreign Policy일자: 2007년 2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래 4년 동안, 우리의 전쟁이 지독하게 꼬이고 있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우리는 이라크를 너무 적은 병력을 갖고 침공했고, 적절한 대안적 통치 수단 없이 이라크 군대와 행정부를 파괴했으며, 이라크의 인적 인프라라고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소속되어 있던 바아쓰 당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은 몽땅 공직에서 추방해 버렸다. 이런 실수의 목록은 끝없이 계속될 수 있다. 부통령이 "실수가 저질러졌다"고 인정(물론 아마 자기가 한 일은 아니라고 하겠지만)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잘 교육받고, 부유하며, 강력한 미국인들이 그렇게 끔찍하고 파멸적인 일련의 실수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시사만화가 Pogo가 명언을 남긴 바 있다. "우리가 드디어 적을 찾아냈는데, 그게 바로 우리더라!" 맞다. 그 말이 정답이다. 부시 행정부도 아니고 불행한 이라크인도 아니며, 끼어든 이란인(새로운 희생양)도 아니다. 우리, 미국 대중들이 문제의 원천이다. 이는 우리의 문화적 DNA에 아로새겨져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우리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말할 때,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똑같다는 식으로 잘못 믿고 있다. '귀엽고', '매력적인' 토속 의상, '기괴한' 결혼 풍습, '기묘한' 음식들 뒤에는 모든 인류이 동경하는 생활방식과 미래가 있으며, 시간이 흐르고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더 그런 방향으로 통합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바로 (뉴욕타임스 컬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이 『세계는 평평하다』란 책에서 주장한 것, 즉 기술과 경제적 변화는 인류를 문화적 동질성의 미래로 향해 몰아간다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하면 풍습과 습성이 어떻게 다르던지 간에 민족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런 차이는 곧 사라질 것이고 21세기에 미국이 갖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세계 문화로 대체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외교 정책은 모든 사람들은 미국인처럼 되고 싶어한다는 관념을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기 전 몇 달 동안, 교육받았다는 사람들이 아랍인들, 특히 이라크인들에게는 지켜야 할 만한 삶의 방식이 없으며, 모든 「낡은 것들」 - 그들의 전통, 사회적 제도와 가치들- 을 훌훌 털어버린다면 더 잘살게 될 것이고, 또한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흔하게 들을 수 있었다. 미군과 미해외원조처(USAID)가 중동을 근대화하는 예리한 칼날이 될것이라는 것이었다. 미국인들은 어떻게 전 세계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항해에 동참하고 있으며, 우리야말로 밝은 미래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인도자라고 믿게 되었던가? 우리 자신의 문화는 계몽사상, 낙관주의, 청교도적 유토피아주의, 죄인을 용서치 않는 칼뱅주의적 경향, 약하고 어리석은 "원주민"들을 깔보는 개척자적 사고방식 같은 요소들이 잘 혼합되어 숙성된 결과물이다. 미국에서 그런 흐름들은 우리로 하여금 보편 이데올로기의 용광로에 들어있다고 믿도록 몰아갔다. 이 신념체제는 공립학교, 헐리우드, 그리고 쉴새없이 떠드는 24시간 뉴스 채널 등을 통해 우리에게 주입되었다. 이는 세속적인 종교, 너무나도 강력해서 그 신조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즉각적이고 맹렬한 비난이 쏟아지는 바로 그런 종교가 되었다. 소위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라는 것은 외계에서 날아든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은 다 똑같다라는 널리 퍼진 미국인들의 신념에 대한 자아회복 선언에 불과하다. "보편적인 가치들"의 존재가 역사를 지배해 왔다고 반복해 단언하는 미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바로 그런 증거이다. 미국인들은 우리의 세계관에 맞춘 상상 속의 이라크를 쳐들어갔다. 우리는 모든 이라크인들 안에는 낡은 허물을 벗고 빠져나오려는 미국인이 들어앉아 있다고 확신하며 이라크에 쳐들어갔다. 우리가 꿈꿔왔던 이라크에서 우리는 폭군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구식 삶으로부터의 해방자로 환영받을 터였다. 같은 나라에서 80년 동안 살아왔으니 이라크인들은 자연스레 그들 자신을 통합된 이라크 민족으로 볼 것이며, 결국에는 보편적 인류라는 민족으로 완전히 동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터였다. 우리에게도 불행하고 그들에게도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은 진짜 이라크가 아니었다. 진짜 이라크에서는 서방과의 문화적 차별성이 여전히 소중하며 이슬람의 문화적 "대륙"에 대한 소속감의 표현이다. 부족, 종파, 공동체는 개인의 권리들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채로 남아있다. 바아쓰 당원, 나세르주의자, 공산당 (혹시 존재한다면 토마스 프리드먼과 네오콘들처럼 세계가 "평평하다"고 믿는 신도들) 정도를 제외한다면 아무도 자기가 소속한 공동체 외부의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라크인들은 미국인들이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시아파, 쿠르드, 수니파 아랍이면서도 우리에게는 "우리는 모두 이라크인입니다"라고 말해 준다. 잘못된 이라크 속에 뛰어든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서도, 미국인들은 진짜 이라크인들은 우리 꿈 속의 이라크인들처럼 행동해야 하며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고집스럽게 우겨댔다. 그 결과는 좌절과 낙담, 그리고 이라크인들의 '광기'에 대한 분노였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꿈을 따라 행동하면서, 이라크 총리 누리 알-말리키의 시아 종파 정부가 국가를 '단결'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말리키가 만인을 위한 공공선을 추구하는 이라크의 조지 워싱턴 같은 사람이라고 상상하고 있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의 핵심 목표는 시아 아랍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며, 그 목표를 달성하는 동안 미국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까지 그는 우리에게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긴 뭐든지 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환상을 유지하는데 필요해서 내뱉었던 많은 말들을 버려도 상관없게 되는 즉시 헌신짝처럼 버릴 것이며, 우리의 아둔함에 걸맞게 우리를 대우해 줄 것이다. 이방인들을 그들의 방식대로 다룰 것을 거부하고 대신 우리의 전통에 따라 대응함으로서, 우리는 이라크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낼 실질적인 희망을 몽땅 죽이고 있다. 이라크에서 우리의 사명은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선교 사업을 펼칠 다른 곳들이 남아 있다.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이란... 또 다른 꿈을 꾸어 볼 그런 곳 말이다. 그러한 또 다른 재앙을 피할 지혜를 찾아 우리의 내면을 탐색해 보도록 하자. W. Patrick Lang, Jr는 예비역 육군 대령으로, 베트남에서 특수부대로, 웨스트포인트에서 아랍어 교수로, 걸프전 당시 국방성 중동담당 정보책임자로 근무했다. 한 줄 요약: "세계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위대한 희생양을 찾아야 한다. 지구상의 90%의 인민이 이를 원하고 있다" - 레닌 - 앞선 글이 네오콘 지지자의 글이었다면, 이번 글은 네오콘 반대자의 글이다. 그러나 결론은 똑같다. 네오콘은 보다 깊은 뿌리가 있으며 네오콘이 쇠락한 것처럼 보여도 그 뿌리는 제거되지 않은 채 남는다는 것이다. 나치, 볼셰비키와 네오콘은 닮은 구석이 너무 많다. 그 가장 근본적인 공통점은 권력을 잡고 자신들의 이상세계를 진짜로 실천에 옮기려고 드는 것이다. 이상주의자는 룸펜인 동안에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 권력이 쥐어지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라데만의 말처럼 나치도 볼셰비키도 네오콘도 아닌 전혀 다른 이름을 내걸고 예전의 머리만 큰 패거리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과연 알아볼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을 적시에 격퇴할 수 있을 것인가? 세 번째 이야기이를 바라보는 2천년 역사를 가진 다른 제국의 시각은 이렇다. 미국의 민족주의는 승리와 앞을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짧고도 영예로웠던 역사에 대한 기억은 미래는 보다 아름다울 것이라는 굳건한 신념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미국은 과거에 굴욕과 좌절을 겪었던 대다수 민족의 비정(非情)과 뒤를 돌아다보는 마음에 대한 이해와 동정이 부족합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민족주의는 정치적 이상과 민족 자부심, 고립주의의 혼합물로서 태생적인 고고함과 선교사 정신을 갖습니다. 그 패러독스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은 강렬한 민족주의를 갖고 있으면서도 민족주의를 부인하고 멸시하며, 필연적으로는 다른 국가의 민족주의와 충돌을 일으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첫째는 외국 정부와 인민으로부터 많은 원한을 삽니다. 둘째는 외국의 적대 정권을 파괴하려고 시도할 때 강력한 반작용을 낳습니다. 셋째는 미국이 해외에서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위선으로 보이게 돼 미국의 국제 신용과 합법성을 약화시킨다는 것입니다.
錢其琛, 外交十記, 2003 (유상철 역, 『열가지 외교 이야기』, 랜덤하우스 중앙, 2004, pp.417-435) 한 줄 요약: "口尙乳臭" -中南海-
# by sonnet | 2007/06/28 10:23 | 정치 | 트랙백(1) | 핑백(4) | 덧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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