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by sonnet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rss

skin by 이글루스
Delenda Est
『아버지에게 던지는 네 가지 질문』은 나치 시대에 왜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히틀러를 따랐는지에 대해 아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히틀러 유겐트였던 아버지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들어 답하는 형식의 소설이다. 80년대 인기가 있었던 전집 ABE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억하시는 분도 꽤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이 책 마지막 부분에 (나치에 반대하다 강제수용소 생활을 한 좌익) 라데만이 주인공 발터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길 하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러면 또 ‘생각하는 일은 말(馬)에게 맡기자. 머리가 크니까 말이야’라고 하며 책임을 회피하게 되지. 그렇게 되면 끝장이야. 그때에는 예전의 머리만 큰 패거리 -결국 좋은 양반들- 가 권력을 잡고 새로운 파시즘을 준비하게 될 거야. 아마 전혀 다른 이름으로 말이야. 너와 나, 우리들이라면 바로 깨달을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 자식들의 세대가 되면 어떨까?”
이야기에 지쳐 그는 입을 다물고 언젠가처럼 담배상자를 꺼내 담배를 말기 시작했다.

Burger, Horst, Warum warst du in der Hitler-Jugend?: Vier Fragen an meinen Vater, Rowohlt, 1978 (김용신 역, 『아버지에게 던지는 네 가지 질문』, 서울: 중원문화, 1991, p.219)

그런데 그들 자신이 바로 깨달을 수 있을까? 아니 우리라면 바로 깨달을 수 있을까?

첫 번째 이야기

우리의 '메시아적 충동' (Our 'Messianic Impulse')
* 필자: 로버트 케이건(Robert Kagan)
* 출처: 워싱턴포스트
* 일자: 2006년 12월 10일

미국인들이 이라크에서 겪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함에 따라, 더 크고 폭넓은 문제가 우리를 부르게 된다. 우리는 처음에 어쩌다가 이라크에 말려들게 되었던가? 몇몇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의 원칙을 퍼트리겠다는 측면에서 너무 독선적이고 호전적이며, 세계를 바꿔놓겠다는 측면에서는 너무 거만하고 간섭을 좋아하며, 우리 영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우리의 국익과 거리가 먼 위기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데 있어 너무 성급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세계를 상대하는 방법을 바꾸기만 한다면, 즉 미국이 절제와 온건함과 겸손함의 미덕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대외정책 논쟁을 피할 수 있고, 세계는 더 안전한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사실 매우 오래된 논쟁으로, 미국인들이 매 세대마다 핏대 올려가며 싸웠던 주제이다. 세계를 향한 팽창적이고 이상주의적이며 개입주의적 접근은 미국인의 기질에 깊이 뿌리내려 있으며, 건국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독립선언서에 들어있는 자유주의의 보편적 원칙에 포함되어 있다. 컬럼니스트 조지 윌(George Will)이 말한 바 있듯이 그러한 “메시아적 충동”은 “미국인의 민족적 특성 중 하나로, 미국 애국주의의 한 요소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대한 구상에 대한 반대 또한 그에 못지않은 특성이었다. 비판자들은 미국이 건국될 때부터 그러한 구상을 해외에서의 끝없는 전쟁에 대한 보증수표이자 국내적으로는 미국 민주주의를 해치는 행위로 간주해 왔다.

그러한 투쟁은 최초의 순간, 즉 헌법 비준에 대한 논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조지 워싱턴, 알렉산더 해밀턴, 벤자민 프랭클린 그리고 제임스 메디슨 같은 지지파들은 미국이 스스로의 국제적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세계적 강대국이 되려면 강력한 중앙정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신생 미국은 “위대한 제국의 싹”이라고 해밀턴은 주장했다. 패트릭 헨리는 이에 맞서 “이 나라를 강대하고 거만한 제국으로 바꿔놓으려 한다”며 이 나라의 존재 목적을 저버린다고 헌법 지지자들을 비난했다. “미국의 정신이 젊었을 때, 미국의 말은 달랐었다. ‘자유를 찾읍시다, 여러분’이 당시의 기본 목표였다.”

존 퀸시 아담스는 이 투쟁에서 양쪽 편을 모두 들었다. 1821년에는 “쳐부술 괴물딱지를 찾아 나서는” 해외에서의 이상주의적 모험에 대해 경고했지만, 몇 년 후에는 미국인들이 우리의 “원칙과 도덕”의 편에 서서 세계에서 “독보적이며 지도적인 역할을 떠맡을”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19세기의 마지막 수십 년 동안, 링컨의 공화당은 이 팽창적이고 개입주의적인 관점을 확대했고, “미국의 사명과 다가올 위대함” 그리고 “세계를 더 좋게 만드는 데 있어 미국의 중추적 역할”을 찬양했다. 민주당의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국무장관 월터 Q. 그레샴은 이에 맞서 “망상을 불태우지 않는 한 관계없을 일인데도 사서 곤경에 뛰어들려는 충동”에 대해 경고했다. 이러한 “방종”을 억제하는 것은 “대중 정부의 힘과 절제와 선행의 사례로서 세계에 지고 있는 의무”였다.

로버트 A. 태프트는 야심적이고, 세계를 바꿔놓으려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해리 트루먼, 딘 애치슨의 정책에 대한 투쟁을 계속했다. 이 영향력 있는 공화당 상원의원은 “우리는 다른 나라들의 민주주의 이상을 방어하는 일을 떠맡아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하면서, 미국이 모든 파이에 손가락을 올려놓은 쓸데없는 참견꾼이 될 것을 우려했다. 그는 “다른 나라들에 대한” 그러한 패권은 “그 목적이 선의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제국주의를 가져오게 된다”며, 패권에 대한 유혹과 거드름을 경고했다. 트루먼과 애치슨은 이러한 충고를 거부하고 대신 전세계적 우세를 추구했으며, 전세계에 걸친 “세력의 상황”과 이데올로기로 가득 찬 봉쇄 전략은 이론적으로 지구상 어디에서든 미국을 전쟁으로 이끌 수 있었으며, 베트남에서 바로 그렇게 되었다.

오늘날 태프트는 교양 있는 계층에서 나쁜 평판을 듣는다. 그러나 해외에서 벌이는 미국의 모험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우리의 팽창적 대외정책 전통에 대한 최근의 비판자들에 의해 다시 한번 채택되었다. 낡은 반론은 계속된다.

미국을 그 팽창주의의 오랜 역사로부터 탈선시키려고 노력해온 사람들의 문제는, 전세계적 변혁의 가능성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념 -메시아적 충동- 이 예나 지금이나 이 나라의 보다 지배적인 개성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나라의 건국 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미국의 정력적인 야심과 그들의 정당성에 대한 압도적인 인식의 결합이 낳은 건강한 자식이기도 하다.

비판자들은 이따금 그러한 경향을 가로막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일시적이나마. 해외에서 세계를 바꿔놓으려는 노력의 실패 또한 그러한 효과를 갖는다. 하지만 단지 일시적일 뿐이다. 많은 이들은 베트남전의 종결을 힘과 이데올로기적 불멸주의에 대한 애치슨적 원칙에 대한 거부의 징조로 보았다. 그러나 베트남전이 끝난 5년 후, 미국인들은 로널드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뽑았고, 그는 그러한 원칙들을 거칠게 휘둘렀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이라크에서의 어려움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세계에 대한 메시아주의와 야심에 반대하도록 만들 것으로 믿고 기대한다. 역사는 그들의 편이 아니다.

로버트 케이건은 워싱턴 포스트에 월간 컬럼을 쓰고 있다. 그는 최근에 미국 외교 정책사를 다룬 책 "Dangerous Nation"을 출간했다.
역자 주: 케이건 3부자는 미국의 알아주는 네오콘 패밀리이다. 아버지 도널드 케이건은 전쟁과 인간(On the origins of war)을 써서 네오콘 전쟁이론을 뒷받침했고, 프레드릭 케이건은 작년 연말에 AEI에서 이라크에 병력을 증파하면 아직도 이길 기회는 충분하다는 보고서(200612141_choosingvictory6.pdf)를 써서 부시를 움직인 바 있다.

한 줄 요약:
"나는 돌아온다." -Douglas MacArthurNeocon-


로버트 케이건이 든 예는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꽤 교묘하게 고른 것이긴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결론을 부정할 수가 없다.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한 수 가르쳐 주시겠다는 메시아적 충동은 미국인들의 문화적 DNA에 아로새겨진 것이어서 쉽사리 없어질 물건이 아니다.

그런데 그게 꼭 미국인들의 문화적 DNA에만 새겨진 것일까?


두 번째 이야기

이라크 전쟁은 우리에게 우리 실체에 대해 말해준다
메소포타미아가 난장판이 된 데 대해, 부시 행정부, 이라크 민중, 이란이 욕을 얻어먹고 있다. 하지만 미국 대중 자신이 이 문제의 진정한 근원이다
필자: W. Patrick Lang, Jr.
출처: Foreign Policy
일자: 2007년 2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래 4년 동안, 우리의 전쟁이 지독하게 꼬이고 있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우리는 이라크를 너무 적은 병력을 갖고 침공했고, 적절한 대안적 통치 수단 없이 이라크 군대와 행정부를 파괴했으며, 이라크의 인적 인프라라고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소속되어 있던 바아쓰 당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은 몽땅 공직에서 추방해 버렸다. 이런 실수의 목록은 끝없이 계속될 수 있다. 부통령이 "실수가 저질러졌다"고 인정(물론 아마 자기가 한 일은 아니라고 하겠지만)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잘 교육받고, 부유하며, 강력한 미국인들이 그렇게 끔찍하고 파멸적인 일련의 실수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시사만화가 Pogo가 명언을 남긴 바 있다. "우리가 드디어 적을 찾아냈는데, 그게 바로 우리더라!" 맞다. 그 말이 정답이다. 부시 행정부도 아니고 불행한 이라크인도 아니며, 끼어든 이란인(새로운 희생양)도 아니다. 우리, 미국 대중들이 문제의 원천이다.

이는 우리의 문화적 DNA에 아로새겨져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우리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말할 때,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똑같다는 식으로 잘못 믿고 있다. '귀엽고', '매력적인' 토속 의상, '기괴한' 결혼 풍습, '기묘한' 음식들 뒤에는 모든 인류이 동경하는 생활방식과 미래가 있으며, 시간이 흐르고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더 그런 방향으로 통합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바로 (뉴욕타임스 컬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이 『세계는 평평하다』란 책에서 주장한 것, 즉 기술과 경제적 변화는 인류를 문화적 동질성의 미래로 향해 몰아간다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하면 풍습과 습성이 어떻게 다르던지 간에 민족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런 차이는 곧 사라질 것이고 21세기에 미국이 갖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세계 문화로 대체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외교 정책은 모든 사람들은 미국인처럼 되고 싶어한다는 관념을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기 전 몇 달 동안, 교육받았다는 사람들이 아랍인들, 특히 이라크인들에게는 지켜야 할 만한 삶의 방식이 없으며, 모든 「낡은 것들」 - 그들의 전통, 사회적 제도와 가치들- 을 훌훌 털어버린다면 더 잘살게 될 것이고, 또한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흔하게 들을 수 있었다. 미군과 미해외원조처(USAID)가 중동을 근대화하는 예리한 칼날이 될것이라는 것이었다.

미국인들은 어떻게 전 세계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항해에 동참하고 있으며, 우리야말로 밝은 미래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인도자라고 믿게 되었던가? 우리 자신의 문화는 계몽사상, 낙관주의, 청교도적 유토피아주의, 죄인을 용서치 않는 칼뱅주의적 경향, 약하고 어리석은 "원주민"들을 깔보는 개척자적 사고방식 같은 요소들이 잘 혼합되어 숙성된 결과물이다. 미국에서 그런 흐름들은 우리로 하여금 보편 이데올로기의 용광로에 들어있다고 믿도록 몰아갔다. 이 신념체제는 공립학교, 헐리우드, 그리고 쉴새없이 떠드는 24시간 뉴스 채널 등을 통해 우리에게 주입되었다. 이는 세속적인 종교, 너무나도 강력해서 그 신조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즉각적이고 맹렬한 비난이 쏟아지는 바로 그런 종교가 되었다. 소위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라는 것은 외계에서 날아든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은 다 똑같다라는 널리 퍼진 미국인들의 신념에 대한 자아회복 선언에 불과하다. "보편적인 가치들"의 존재가 역사를 지배해 왔다고 반복해 단언하는 미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바로 그런 증거이다.

미국인들은 우리의 세계관에 맞춘 상상 속의 이라크를 쳐들어갔다. 우리는 모든 이라크인들 안에는 낡은 허물을 벗고 빠져나오려는 미국인이 들어앉아 있다고 확신하며 이라크에 쳐들어갔다. 우리가 꿈꿔왔던 이라크에서 우리는 폭군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구식 삶으로부터의 해방자로 환영받을 터였다. 같은 나라에서 80년 동안 살아왔으니 이라크인들은 자연스레 그들 자신을 통합된 이라크 민족으로 볼 것이며, 결국에는 보편적 인류라는 민족으로 완전히 동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터였다.

우리에게도 불행하고 그들에게도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은 진짜 이라크가 아니었다. 진짜 이라크에서는 서방과의 문화적 차별성이 여전히 소중하며 이슬람의 문화적 "대륙"에 대한 소속감의 표현이다. 부족, 종파, 공동체는 개인의 권리들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채로 남아있다. 바아쓰 당원, 나세르주의자, 공산당 (혹시 존재한다면 토마스 프리드먼과 네오콘들처럼 세계가 "평평하다"고 믿는 신도들) 정도를 제외한다면 아무도 자기가 소속한 공동체 외부의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라크인들은 미국인들이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시아파, 쿠르드, 수니파 아랍이면서도 우리에게는 "우리는 모두 이라크인입니다"라고 말해 준다.

잘못된 이라크 속에 뛰어든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서도, 미국인들은 진짜 이라크인들은 우리 꿈 속의 이라크인들처럼 행동해야 하며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고집스럽게 우겨댔다. 그 결과는 좌절과 낙담, 그리고 이라크인들의 '광기'에 대한 분노였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꿈을 따라 행동하면서, 이라크 총리 누리 알-말리키의 시아 종파 정부가 국가를 '단결'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말리키가 만인을 위한 공공선을 추구하는 이라크의 조지 워싱턴 같은 사람이라고 상상하고 있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의 핵심 목표는 시아 아랍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며, 그 목표를 달성하는 동안 미국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까지 그는 우리에게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긴 뭐든지 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환상을 유지하는데 필요해서 내뱉었던 많은 말들을 버려도 상관없게 되는 즉시 헌신짝처럼 버릴 것이며, 우리의 아둔함에 걸맞게 우리를 대우해 줄 것이다.

이방인들을 그들의 방식대로 다룰 것을 거부하고 대신 우리의 전통에 따라 대응함으로서, 우리는 이라크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낼 실질적인 희망을 몽땅 죽이고 있다. 이라크에서 우리의 사명은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선교 사업을 펼칠 다른 곳들이 남아 있다.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이란... 또 다른 꿈을 꾸어 볼 그런 곳 말이다. 그러한 또 다른 재앙을 피할 지혜를 찾아 우리의 내면을 탐색해 보도록 하자.

W. Patrick Lang, Jr는 예비역 육군 대령으로, 베트남에서 특수부대로, 웨스트포인트에서 아랍어 교수로, 걸프전 당시 국방성 중동담당 정보책임자로 근무했다.

한 줄 요약:
"세계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위대한 희생양을 찾아야 한다. 지구상의 90%의 인민이 이를 원하고 있다" - 레닌 -


앞선 글이 네오콘 지지자의 글이었다면, 이번 글은 네오콘 반대자의 글이다. 그러나 결론은 똑같다. 네오콘은 보다 깊은 뿌리가 있으며 네오콘이 쇠락한 것처럼 보여도 그 뿌리는 제거되지 않은 채 남는다는 것이다.

나치, 볼셰비키와 네오콘은 닮은 구석이 너무 많다. 그 가장 근본적인 공통점은 권력을 잡고 자신들의 이상세계를 진짜로 실천에 옮기려고 드는 것이다. 이상주의자는 룸펜인 동안에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 권력이 쥐어지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라데만의 말처럼 나치도 볼셰비키도 네오콘도 아닌 전혀 다른 이름을 내걸고 예전의 머리만 큰 패거리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과연 알아볼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을 적시에 격퇴할 수 있을 것인가?


세 번째 이야기
이를 바라보는 2천년 역사를 가진 다른 제국의 시각은 이렇다.

미국의 민족주의는 승리와 앞을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짧고도 영예로웠던 역사에 대한 기억은 미래는 보다 아름다울 것이라는 굳건한 신념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미국은 과거에 굴욕과 좌절을 겪었던 대다수 민족의 비정(非情)과 뒤를 돌아다보는 마음에 대한 이해와 동정이 부족합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민족주의는 정치적 이상과 민족 자부심, 고립주의의 혼합물로서 태생적인 고고함과 선교사 정신을 갖습니다. 그 패러독스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은 강렬한 민족주의를 갖고 있으면서도 민족주의를 부인하고 멸시하며, 필연적으로는 다른 국가의 민족주의와 충돌을 일으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첫째는 외국 정부와 인민으로부터 많은 원한을 삽니다. 둘째는 외국의 적대 정권을 파괴하려고 시도할 때 강력한 반작용을 낳습니다. 셋째는 미국이 해외에서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위선으로 보이게 돼 미국의 국제 신용과 합법성을 약화시킨다는 것입니다.

錢其琛, 外交十記, 2003
(유상철 역, 『열가지 외교 이야기』, 랜덤하우스 중앙, 2004, pp.417-435)


한 줄 요약:
"口尙乳臭" -中南海-
by sonnet | 2007/06/28 10:23 | 정치 | 트랙백(1) | 핑백(4) | 덧글(23)
트랙백 주소 : http://sonnet.egloos.com/tb/320747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어부의 이것저것; Ju.. at 2007/06/30 00:51

제목 : Groupish memes of Korean
Delenda Est에서 sonnet 대인님이 쓰신 글에 감히 한 마디. 대인님의 글에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Robert Kagan)의 결론을 부정할 수가 없다.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한 수 가르쳐 주시겠다는 메시아적 충동은 미국인들의 문화적 DNA에 아로새겨진 것이어서 쉽사리 없어질 물건이 아니다. 그런데 그게 꼭 미국인들의 문화적 DNA에만 새겨진 것일까?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7/07/24 15:48

... Delenda Est에 달린 코멘트에 대해 간단히.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려면 Realpolitik의 사도 헨리 키신저와 부시 행정부 내에서 제일 잘나가는 네오콘 ... more

Linked at 어부의 이것저것; Juveni.. at 2007/08/14 13:13

... 에 따른 쿠바 위기를 봐도 그렇죠) 과대평가하면 더 큰 문제가 오게 마련입니다. 현재 미국이 이라크에서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 제가 전에 본 Delenda Est 글을 비롯해 sonnet 님의 수많은 이라크 관계 글들을 보면, 국제 관계에서 현실을 부차적으로 간주하고 원칙을 우선적으로 추구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03/30 16:27

... 이라크 전쟁은 우리에게 우리 실체에 대해 말해준다</a>, Foreign Policy, 2007년 2월 미국이 이런 특성을 갖고 있다는데는 전쟁의 비판자들 뿐 아니라 주도세력인 네오콘들도 동의한다. 미국을 그 팽창주의의 오랜 역사로부터 탈선시키려고 노력해온 사람들의 문제는, 전세계적 변혁의 가능성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념 -메시아적 충동- 이 예나 지금이나 이 나라의 보다 지배적인 개성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나라의 건국 원칙에 뿌리를 두고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03/31 23:41

... 행동해야 하며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고집스럽게 우겨댔다. 그 결과는 좌절과 낙담, 그리고 이라크인들의 '광기'에 대한 분노였다. Patrick Lang, 이라크 전쟁은 우리에게 우리 실체에 대해 말해준다, Foreign Policy, 2007년 2월 ... more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6/28 11:26
나치=볼세비키=네오콘 인겁니까.... 확실히 네오콘은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극도로 이상주의적인(혹은 몽상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Commented at 2007/06/28 13:0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미친고양이 at 2007/06/28 18:45
한줄요약들이 아주 죽입니다. 특히 첫 번째 한줄 요약은 캘리포니아의 모 근육 모에 주지사가 떠올라 흠칫하네요..^^;;
Commented by 루시앨 at 2007/06/28 19:35
구상유취라... ^^;

잘 보고갑니다. ^^;
Commented by 김미상 at 2007/06/28 21:31
나치, 네오콘, 볼셰비키에 덧붙여 우리나라의 모모한 정치인들과 정치집단들도..... -_-
Commented by 로리 at 2007/06/28 22:30
멀군요... 멀어요....
Commented by 하얀까마귀 at 2007/06/28 22:50
전기침 선생님 말씀이 물론 명언이긴 한데...

"정치적 이상과 민족 자부심, 고립주의의 혼합물로서 태생적인 고고함..." 대목을 보니, *중화사상*은 혁명으로 이미 극복했다고 생각하시는건지 궁금해지는군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07/06/28 22:52
'환상 속의 그대'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특정한 관념에 굳어져 사로잡힌, 그러면서 일정 이상의 '힘'을 가진 집단의 행보는
대체로 비슷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브레이크는 대중의 인식과 감시라는 것인데,
이것만큼 성능이 불확실한 ABS도 없는 것도 사실이니...;;;
Commented by sonnet at 2007/06/28 23:28
행인1/ 혁명을 수출하겠다는 생각부터가 흡사하지 않습니까.

비밀글/ 감사!

미친고양이/ 거버네이터의 요즘 사진은 그야말로 안습이던데요 --;;;

루시앨/ 제국주의의 노하우가 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김미상/ "역사는 우리 편이다"라고 주장하는 집단은 그게 누구건 위험세력으로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쯤 되면 병이 이미 깊어 치료가 불가능한 듯...

로리/ 아니 가깝습니다. 곧 돌아 올겁니다 (음?!)

하얀까마귀/ 속이야 어쨌든 자기들이 포장은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지? 요즘 중국의 외교를 보면 미국이 오만하게 보여서 잃는 표를 소리 없이 쓸어담는데 주력한다는 인상입니다.

paro1923/ 그런 행동대 집단도 문제이지만, 위 두 컬럼은 사실 그런 행동대 뒤에 그들을 뒷받침하는 보다 보편적인 대중의 정서가 깔려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7/06/29 00:17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으니 더욱 두렵군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6/29 09:51
나치즘을 정신의학의 측면에서 일원화추구경향이 있는 인간본성에서 원인을 찾는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있는데 이와 조합해보면 아예 팽창주의가 '인류보편의 정서'로까지 치달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문화적 DNA를 넘어서 생물체의 DNA 영역까지 조사해봐야 할까요[펑])
Commented by sonnet at 2007/07/01 11:14
길 잃은 어린양/ 저도 그렇습니다 *부르르*

라피에사쥬/ 너무 과도한 해석을 하는 것은 금물.
Commented by Luthien at 2007/07/01 12:29
트랙백해보고 싶은 이야기인데, 구상도 어설프고 시간도 없는 관계로...(흑)
Commented by 인형사 at 2007/07/12 06:40
저런 미국적 선민주의의 이면은 더 이상 탈출구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갖힌자의 불안의 몸부림입니다.

미국이 온 세상의 마지막 피난처이며 시온일 때 그곳에 또 다시 문제가 발생하면 더 이상 도망갈 피난처는 이제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미국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나라라고 신경질적으로 주장하여야하고 그것이 도전 받은 떄는 폭력적으로 됩니다. 그것이 외부에 대한 폭력일 수도 있도 자기파괴일 수도 있지요.

프론티어가 사라졌을 때 세일즈맨은 결국 알라스카에 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도피를 자유로 착각하는 미국인은 끊임없이 도피를 꿈구고 그 꿈을 세계에서 제일 거대한 고속도로망을 건설하는 것으로 실현하지요. 멈포드가 그런 말을 했지요. 미국인은 속도를 자유로 착각하는 사람들이라고.

아마 조승희도 출구없는 막다른 골목에 갇혀 자폭한 사람인지도 모르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7/07/12 22:37
Luthien/ 휴가 나와서 한번 봅시다래.

인형사/ 말씀하시려는 요지를 이해하기 좀 힘들군요.
하여간 제 관점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저런 움직임은 이상주의가 득세할 때 흔히 나타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볼셰비키들이 갖고 있던 사고방식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07/07/12 23:47
미국의 선민의식과 토크빌이 이야기하는 미국인의 불안이 실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언덕 위의 마을로서 미국의 선택된 지위는 타락한 구세계를 버리고 탈출하였다는 의식에 근거합니다. 그래서 미국은 피난처이며 또한 마지막 피난처입니다. 그러기 이곳에서 더 이상 피난 갈 곳이 없습니다.

더 이상 갈곳이 없는 마지막 피난처에 도달한 사람은 더 이상 유토피아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현재 이곳보다 더 좋은 시대나 장소를 상상한다는 것은 바로 자기 존재의 부정이 되까요.

미국인이 외국인을 만날 때 가장 흔히 하는 질문이 당신 나라와 미국을 비교하면 어느쪽이 더 좋은 나라이냐는 것이지요. 미국이라는 대답을 기대하는 질문이라는 것은 뻔한데, "미국이 좋은 나라이기는 한데 미국 사람들이 미국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훨씬 더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응수를 하지요.

조승희를 언급한 이유가 다음 칼럼을 읽은 적이 있기 떄문입니다.

http://www.guardian.co.uk/Columnists/Column/0,,633620,00.html

허기는 볼셰비키도 역사의 끝을 상상한 사람들이니 더 이상 유토피아를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군요.

제 요점은 그 이상주의 밑에 상당한 불안이숨어있고, 그 불안은 계속적인 자기확인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7/15 18:45
인형사/ "선민주의의 이면은 더 이상 탈출구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갖힌자의 불안의 몸부림이다"란 말씀은 자기확신적 선언적으로 들리지, 설득적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즉 제가 던지는 반문은 조승희 같은 자멸적인 행동에 나서는 사람은 어떤 사회에나 소수는 존재하기 마련인데, 그런 것을 선민주의, 더 나아가 강대국의 정책을 설명하는데까지 연결시킬만한 강한 인과관계를 어떻게 확인할 것이냐는 겁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07/07/16 06:20
조승희 이야기는 여담이지요. 그리고 선민주의 이데올로기에 적응을 하지 못한 소수에 관한 이야기인것이고요.

누가 강대국의 정책을 소수의 비적응자로부터 바로 설명을 하려고 했습니까?
미국식 선민주의가 자신감만이 아니라 미국이 최고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도 근거하고 있다는 지적이었지요.

그런 선민의식도 국가정책에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요. 네오콘이 한 것은 그런 선민의식을 국가정책에 바로 합선시켜버린 것이겠지요.

순진해서일까요? 교활해서일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7/07/20 10:18
인형사/ 아, 조승희가 '불안의 몸부림'을 보이는 '선민주의의 이면'이 아니고 '선민주의의 이면'에서 배제된 그룹입니까?
하여간 저는 여전히 말씀하시려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저와는 상당히 다른, 제가 잘 모르는 유형의 자기완결적인 논리를 갖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07/07/21 07:23
별로 대단한 이야기도 아닌데 어렵다고 하시니 오히려 제가 송구스럽군요.

네오콘과 미국식 선민주의를 동일화하셨고 이를 또 볼셰비즘과 같다고 하셨는데, 글쎄요?

미국식 선민주의를 볼셰비즘이라고 한다면 준거틀이 좀 협소한 것이 아닐까요? 미국 문학사나 문화사의 이해들, 청교도주의, 영미적 경험주의와 지역주의의 연관 같은 것들이 준거틀을 확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제 이야기는 준거틀을 확대하는 도움이 될 수 있는 팁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미국식 선민주의를 볼셰비즘과 같은 것이라고 하셨으니, 볼셰비즘을 부정적인 것의 대명사로 사용하시는 것 같군요. 저도 볼셰비즘은 별로 좋하지는 않습니다만, 알고 계시지요? 네온콘이 바로 극단적인 반볼셰비즘에서 출발했다는 것을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7/07/21 23:30
인형사/ 저는 선민의식/선민주의란 말을 쓴 적이 없죠. 그건 귀하가 갖고오신 개념이지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은 아닙니다. "미국식 선민주의를 볼셰비즘이라고 한다"쯤 되면 더더욱 말이 안되구요.
제 입장은 볼셰비키나 네오콘 같은 집단들은 '정치권력을 수단으로 한 이상주의의 적극적 실현'이라는 현상의 개별 사례들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준거틀을 확대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연관성이 약한 먼 주제에서 뭔가를 끌어온다는 것은 실제로는 불필요하게 장황하거나 주장의 적실성만 약화시키는 경우가 많아서 주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낭떠러지에서 실족사한 사람의 이야기를 묘사할 때 낭떠러지가 생겨나게 된 지각의 융기부터 설명한다는 것은 관련은 분명히 있겠지만 불필요한 것처럼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07/07/23 06:23
적실성을 중요시 한다면 장황한 과정은 생략하고 결론만 말씀드리기로 하죠. 님은 네오콘을 극단적 이상주의자로 파악하고 계십니다.

저는 네오콘을 극단적인 현실주의자로 이해합니다. 네오콘과 미국적 이상주의의 관계도 냉소적인 조작과 동원의 관계로 보고요.

네오콘의 현실주의가 진짜로 현실주의이냐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겠지요. 볼세비키도 과학적 사회주의에 입각한 현실주의자라고 할테니까요.

제가 이해하는 네오콘은 과장된 이상주의에 대한 과장된 실망을 바탕으로 성립된 현실주의의 외피를 쓴 냉소주의쯤 된다고 할까요? 이상주의자로 파악하기에는 곤란함이 많은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과정이라면 그 장황함이 꼭 불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7/07/23 23:25
인형사/ "성공적으로 준거틀을 확대할 수 있으면" 저도 좋다고 보는 겁니다. 다만 저는 미국 문학사 같은 것은 잘 안다고 할 수 없고, 그쪽을 뒤져서 뭔가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자신도 없어서 나서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누가 그 먼 관계를 방대한 구조물로 채워넣어 완제품을 만들어냈는데 괜찮아 보이면 수입할 용의는 있습니다.

제가 네오콘을 이상주의자로 보는 것은 맞습니다. Machtpolitik한 수법을 적극 활용해 현상변화를 노리는 이상주의자라는 것이 제 평가입니다. 이 점은 별도의 글로 간단히 다뤄 보도록 하죠.

:         :

:

비공개 덧글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