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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의 민주주의론
칼 포퍼는 20세기의 영향력있는 철학자 중 한명으로, 보통 과학철학자로 이해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1945)를 출간한 이래 반세기 동안 전제정과 맞서는 민주정을 옹호하기 위한 이론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다음은 포퍼가 만년에 쓴 에세이의 일부인데,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생각을 충실히 발전시키고 있다. 여기서 포퍼는 민주정(democracy)이란 대중이 지배하는 것도, 대중의 의사를 충실히 따라 통치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 민주정/민주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봉착하게 되는 문제다. 민주정의 제도나 운영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으면, 통속적인 지식 혹은 널리 선전되는 바와는 달리, 도대체가 대중의 의사를 충실히 따라 통치하기 위해 설계되고 운영되는 제도라고 생각하기 힘든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도 예전에 비슷한 문제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지배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중요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앞으로 알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그러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하다.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들은 도덕적 성격을 띤다.

언제나 혼란을 야기하며 도덕적 문제의 측면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문제가 하나 있는데, 순수하게 언어적이다. 즉, ‘민주주의’는 ‘국민의 지배’를 의미하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서방 세계에서 우리들이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국가 형태의 이론에 있어서 ‘국민의 지배’라는 용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다양한 국가 행정 형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름을 붙였다. 그것은 분명히 가능한 정부의 형태들 가운데서 어느 것이 좋은지 나쁜지, 더 좋은지 나쁜지를 묻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배자의 도덕적 품성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명칭의 정체를 구분했다. 이것은 플라톤이 많이 활용한 구분이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그것을 표현했다.

1과 2 군주제: 한 명의 선한 사람에 의한 지배. 그 왜곡된 형태가 전제군주제(한 명의 악한 사람에 의한 지배)
3과 4 귀족제: 소수의 선한 사람들에 의한 지배. 그 왜곡된 형태가 과두제(소수의 선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한 지배)
5. 민주제: 국민 다수, 군중에 의한 지배

이 가운데서 플라톤은 한 가지 형태(1과 2 군주제) 만을 확인했다. 여러 사람이 지배자가 되는 경우 언제나 나쁜 사람들도 많이 포함되기 때문에 나쁜 정치 형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도식의 바탕에 깔린 문제점들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누가 국가를 지휘해야 하는가?’. ‘누가 지배 권력을 행사해야 하는가?’라는, 어떤 의미에서는 소박한 물음으로부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소박한 물음들은 아테네의 도시 국가들처럼 작은 국가에서는 분명히 제기될 수 있다. 아테네의 도시 국가에서는 중요 인물들 모두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치적 논의에서도 분명히 무의식중에 이런 물음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대부분의 민주적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마르크스나 레닌,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부단히 이 같은 매우 개인적 문제를 깊이 숙고했다. 종종 그것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일반 규칙을 정식화했을 때, 보통 그것은 ‘누가 지배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 플라톤의 답변은 ‘가장 선한 사람이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도덕적인 답변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들이 지배해야 한다’(오늘날처럼 자본가들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라고 응답했다. ‘프롤레타리아들이 실제로 국가를 지휘해야 한다. 그들은 독재적인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이 답변에도 도덕적 요소들이 약간 있지만 감춰져 있다. 국가를 지배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선한 프롤레타리아들이지 나쁜 자본가들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히틀러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의 답변은 간단히 ‘나’다. 이전의 사람들처럼 그도 ‘누가 지배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기본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분명하다.

약 50년 전에 나는 이 물음을 단호하게 매장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왜냐하면 그 물음은 도덕적 명령에 상응하는 우스꽝스러운 엉터리 해답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거짓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덕적 관점에서 보아도, 정치적인 반대자들을 도덕적으로 악한(그리고 자기 파당을 선한) 것으로 간주하는 행위는 매우 비도덕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은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고 권력을 제한하는 대신에 권력을 강화하는 태도로 우리를 인도한다. 증오란 언제나 나쁜 것이다.

우리가 본래 관심을 가진 것은 서로 다른 정치 형태들을 비교하는 것이지, 억지로 사람들이나 계급, 종족, 또는 종교까지도 좋고 나쁜 것으로 구분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 지배해야 하는가?’라는 플라톤적인 물음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만한 정부 형태들이 있는가?’라는 전혀 다른 물음, 그리고 그 반대 물음인 ‘악한 정부, 또는 심지어 무능하고 해롭기까지 한 정부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주는 정부 형태가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대체한다.

그러한 물음들은 부지불식간에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뿌리 박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지배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묻는 플라톤의 물음과는 매우 다르다. 그 물음들은 현대 서구의 민주주의에서처럼 아테네 민주주의의 바탕에 깔려 있던 것이다.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부르는 우리는 독재 정권이나 전제 정치를 도덕적으로 악한 어떤 것 - 설명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탱하기 힘들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지탱될 수 없는 것 - 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참고 견디는 것이 바로 무언가 잘못된 짓을 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독재 권력은 우리가 책임질 수 없으며 일반적으로 우리 스스로 변경할 수 없는 상황을 강제적으로 부과한다. 그것은 인간적으로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독재 정권이 도래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도덕적 의무이다.

이른바 민주주의 국가 형태들로써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며, 그런 국가 형태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유일한 방식이 그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중적인 주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독재 정권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마련된 제도이다. 민주 국가들은 독재의 지배, 권력의 축적을 허용하지 않으며 국가 권력을 제한하는 길을 찾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그 권리와 의무를 존경하는 데 실패한다고 해도 우리가 그 정책이 나쁘거나 잘못된 것으로 여긴다면 피를 흘리지 않고 정부를 제거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현안 문제는 지배자가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요점은 정부가 너무 많은 지배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혹은 좀더 좋게 말하면, 국가가 ‘어떻게’ 운영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태도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이면에도 놓여 있었다. 물론 아주 명백하게 표현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들이 견지해야 하는 태도이며,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래야 한다. 어떤 집단 - 군인, 공무원, 노동자와 피고용자, 언론인, 라디오 및 텔레비전 논평가, 작가, 테러리스트, 또는 젊은이 - 이 자신들을 국민과 동일시하든 관계없이- 우리는 그들이 힘을 갖거나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두려워하게 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강제력에 맞서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를 원하며,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한 것이 우리 서방 세계의 정부 형태들이 목표로 하는 것이다. 언어적 애매성과 습관의 힘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르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한 정부는 단 하나의 예외, 즉 주권의 지배, 법의 지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지배 형태로부터도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피를 흘리지 않고도 정부를 물러나게 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정부의 형태를 논의할 때 감안할 사항 가운데 하나는 피를 흘리는 일 없이 정부를 물러나게 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 - 그 후에 새로운 정부가 권력의 고삐를 넘겨받는다는 것 - 이다. 이러한 정부와 정권의 교체가능성이 보장된 국가라면, 새로운 선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국민적 집회에 의한 것인지, 혹은 헌법 재판소의 재판관들 다수에 의한 것인지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는 해직이었지만, 닉슨 대통령의 사임보다 더 분명하게 미국의 민주적 특성을 입증해 주는 것은 없었다.

이러한 부정적인 힘, 즉 해직의 위협은 정부의 변화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다. 정부 또는 수상을 임명하는 긍정적인 힘은 부정적인 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불행하게도 이런 점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이 임명하는 일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것에도 상당한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정부의 임명권은 유권자에 의해서 면허가 인정된 것, 즉 국민의 이름으로, 그리고 ‘대중적 의지’를 통해서 합법화된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된 정부에게 책임이 있는 오류, 심지어는 죄악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알고, 국민은 무엇을 아는가?

얼마 지나서 우리는 정부 또는 정책을 판단할 수 있으며, 아마 그것에 대해서 찬성을 하고, 그래서 그 정부를 다시 선출할 것이다. 아마 우리의 지지는 미래에도 연장될 수 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며, 아무 것도 알 수 없으며, 정부를 알지 못하고, 그래서 우리는 정부가 우리의 신뢰를 오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없다.

투키디데스에 의하면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은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념을 표현했다.

“우리 가운데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정책을 고안하거나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라도 우리 모두가 그것을 평가할 수 있다.”

이 문구는 간명하지만 근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문구는 국민에 의한 지배라는 관념, 심지어 대중의 주도권이라는 관념을 에누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기 바란다. 그 두 관념은 국민에 의한 평가라는 매우 다른 이념으로 대체되었다.

페리클레스(또는 투키디데스도 아마 똑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는 여타 어떤 종류의 어려움이 없을 때조차도 국민이 지배할 수 없는 이유를 매우 간단하게 말하고 있다. 이념들, 특히 새로운 이념들은 그것이 비록 소수의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으로 해서 분명해지고 향상될 수는 있을지라도 한 개인의 작품일 수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다음에 그 이념들이 좋은지 나쁜지를, 특히 그 결과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경우에야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평가, 그 같은 ‘예 또는 아니오’ 식의 판정은 보다 많은 선거인단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대중의 주도권’과 같은 표현은 오도된 것이고 선전문구에 불과하다. 주도권은 보통 소수의 주도권이다. 그 소수는 기껏해야 비판적 평가를 위해서 국민들 앞에 세워진다. 그러한 경우들에 있어서는 평가를 위해 제안된 척도들이 그 소수를 평가하는 선거인단의 능력 밖에 있는지 여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물음에 대한 논의를 마치기에 앞서서, 자신이 대중이 지배하는 -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사실일리도 없다 - 체제 속에서 살고 있다고 국민들이나 아이들이 배우게 될 때 야기되는 위험을 경고하고 싶다. 왜냐하면 갑자기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들은 단순히 불만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기만당했다고 느끼고 실망을 금치 못하지만, 전통적인 언어적 혼동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이 정치의 영역에서는 물론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해서도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테러리즘으로 이끌릴 수도 있다. 실제로 나는 그러한 경우를 알고 있다.

(본문 중 굵은 글씨로 된 강조는 원문대로, 붉은 글씨는 인용자)

Popper, Karl R., ''Lesson of this Century: With Two Talks on Freedom and the Democratic State'', Routledge, 1996
(이상헌 역, 『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서울: 생각의나무; 2000, pp.212-222)
by sonnet | 2007/05/29 11:32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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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대해서 점진적이지만 진보가 이뤄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주 인용하는 포퍼의 글을 붙입니다. http://sonnet.egloos.com/3200089 ps. 웃긴것은 지금의 대표적인 좌와 우라는 세력이 실제로는 절대왕정과 신권에 대한 인간 이성의 우위를 되찾는데서 나왔고 ... more

Commented by 2071 at 2007/05/29 12:56
흠 일전의 제 논의와도 맥락이 닿는 거 같네요. 저야 그 글에서는 '이상 그 자체'를 말한 것이지 현실 정치를 말한건 아니니 다르긴 하지만. 포퍼 역시 현실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가 이상적인 모습을 띄지 못한다는 것에 보다 천착한 것 같고요 (애초에 그런 이상이 펼쳐질 수 있다는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 같지만 그건 넘어간다면 말이죠)

포퍼라함은 그런데 그 사람 맞던가요? 현대 경제학 기타 과학들에 대해 사상적 기틀을 제공한 그 사람.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철학을 만들고, 점진적인 과학발전론을 주장했던. 아마 이 사람에 의해 신자유주의와 시카고학파 기타 논의들이 시작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칼 포퍼가 맞으려나 모르겠네요. 그 사람이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글을 썼다니 또 한가지 배웠군요 ^^
Commented by IWBJ™ at 2007/05/29 13:05
'대의제'가 채택된 이유를 단지 '국민의 직접통치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중등교육에서는 그것 밖에 언급하지 않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Commented by rainkeeper at 2007/05/29 14:10
잘 읽었습니다. ^_^
Commented by poppy at 2007/05/29 15:22
sonnet님의 블로그는 폴리티컬 사이언스 교과서 부록.
가방끈은 긴데, 지식(혹은 지능일지도)은 짧은 제게는 많은 공부가 됩니다.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07/05/29 18:17
항상 헷갈리는 거지만, 공화정과 별 다른 점이 없어 보이네요..?
Commented by 지나가던이 at 2007/05/29 18:44
하이버니안// 그래도 대의 민주주의에서 국회의원은 시민이 뽑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그냥 공화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칼 포퍼께서 좋은 글을 남겨주셨군요. 책은 서점에서 가끔 봤는데 읽어봐야겠습니다.

P.S 좀 생각해 보니 '대중의 주도권'같은 선전문구를 적극적으로 쓰셨다가 뒤로 갈 수록 전혀 신경도 안쓴 분이 있군요. 흠..
Commented by sonnet at 2007/05/29 20:23
2071/ 사실 그 글을 염두에 두고 올린 것입니다. 포퍼 같은 경우는 그건 이상이 아니라 언어적 혼란에 불과하다는 입장인 것 같구요. 저는 포퍼와 입장이 똑같지는 않지만 민주정에서 사용되는 의사결정의 방법은 말씀하신 것 같은 이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IWBJ™/ 확실히 대의제를 직접민주제의 열등한 동생처럼 생각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 중3버릇 여든까지 가는 것일까요...

rainkeeper/ 처음 써주셨던 의견이 더 재미있는 것 같은데 ^^

poppy/ 헉.. 제 부록이 팬케익 바꿔먹을 만한 가치가 있으려면 갈 길이 멀겠는데요 ^^

하이버니안/ 굳이 말하면 (민주정이라고 불릴만한) 입헌왕정은 공화정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 같네요.

지나가던이/ 그거야 정권 잡기 전과 후의 기분이란게 같을 수 없다는 한계 아니겠습니까. 마오 주석처럼 한참있다가 관료주의의 폐혜를 일소하겠다고 대중을 동원해 간부들을 조지면 사실 더 끔찍하거든요.
Commented by rainkeeper at 2007/05/29 22:26
헉, 보셨군요. 요즘 보신주의 덧글 정책 적용중입니다. :) 특히 ‘이오쟁패’ 자주 올라가시는 메이저 분 블로그는 요주의~. ㅎㅎ.
Commented by 2071 at 2007/05/30 00:40
간단한 역사가 하나 있지요.
우드로우 윌슨이 논문 행정의 연구를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관료제란 (최소한 미국에서는) 엽관주의에 힘입어 민주정에 입각해 세워져 있었죠. 다만 엽관제, 민주정에 의거한 체제로서는 행정의 계속성과 전문성이 담보되질 못한다는 비판이 가해졌고, 이 논의에 따라 행정학이 발생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전문화된 관료제 사회가 생기게 되었죠.
링크하신 글에 대한 답글이 되겠습니다만, 민주제 자체가 기득권층 음모적이라는 논의는 제가 아는 역사에서는 꼭 항상 적합한 것은 아닌 거 같은데요/

게다가 두번째로 sonnet 님의 참고글과 이 글에서의 논의는 중요한 게 한가지 빠진 거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전 그런 생각을 합니다. 현실에서 나타나는 양상이 어떠한지도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그와 비슷한 정도 (더, 일지 덜, 일지는 개인의 가치관이겠지만요)로 중요한 것이 '이 현실이 지향해야할 목표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우리가 현재 몸담고 있는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sonnet님의 논의는 '어떠해야하는가' 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 생략된 것은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듭니다. 물론 '어떠하였는가'에 대한 논의는 차고 넘칠 정도로 세세하지만요. 제가 질문 드리고 싶은게 있어요.

그렇다면 sonnet님은, 과연 우리가 어떠해야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Commented by 2071 at 2007/05/30 00:45
음, 살짝 좀 전투적으로 말을 건넨 무례를 저지른 거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이러해서 그래요.

전 현실 국가체계로서의 민주를 말한 것이 아니었어요. 민주화, 내지는 민주주의 지향, 같은 말에서 언급되는 형태의 기층 민주주의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었지요. 근데 sonnet님은 헌법질서적 민주주의, 바꿔 말하면 고권 민주주의를 얘기하시면서 비판하시네요. 이건 틀이 좀 다른 거 아닐까요 'ㅅ')? 사실 명백히 말하면 규범적 논의에서 등장하는 이상향으로서의 민주주의 (제가 이걸 지지한다는 건 아닙니다만, 현상황에서는 이 이상의 이상적인 형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또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어서요)와 현실정치 하에서 왜곡된 형태로 도출되는 민주주의는 엄연히 다른 형태를 띄는 것 아닐까 싶어요.

물론, '민주주의를 말하는 그 어떤 시도도 결국 현실 민주주의의 형태를 띌 수 밖에 없다'라거나 기타 제 논의가 위의 포퍼가 언급한 현실 민주주의의 논의와 결국 맞닿을 수밖에 없는 다른 논리구조를 생각하셔서 그리 비판하신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본문 중 딱히 언급이 없으시기에 질문 드려요.
Commented by Ya펭귄 at 2007/05/30 01:29
두 줄짜리 제 의견은...

747기를 일반인이 조종할 수는 없겠지만 적절한 조종사를 태운 뒤 뒤통수에 권총을 들이대면 조종이 가능하기는 하지요...

권총 방아쇠라는게 제어자유도는 무지막지하게 떨어지지만 중간층에 조종사를 두면서 어느정도 먹혀들어가는 제어는 가능해 진다는 것...
Commented by joyce at 2007/05/30 11:03
그냥 두 가지 문제가 떠오릅니다만. 하나는 민주주의는 실현되더라도 지속될 수 없다는 것.(그리스인들에게는 어떠한 가치 평가 없이 이 '군중의 지배'가 참주정의 전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백했을 듯.) 또 하나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내걸고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와 대립하는 근대 정부 체제가 있다는 것. 이 두 가지의 연관은 불명확한 것인데 포퍼는 떼었다 붙였다 편리하게 하고 있는 것 같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7/05/30 18:30
2071/ 1) 제 포스팅 어디를 보고 "민주제 자체가 기득권층 음모적이라는 논의"라고 느끼셨는지요?
2) "현실이 지향해야할 목표는 무엇인가"는 지금 현실이 어떤지에 대한 기본적인 파악이 되고 나서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Ya펭귄/ 재미있는 비유입니다.
문제는 대중이 조종사의 뒤통수에 총구를 들이대고 계속 노려보는 식으로 운영된다는 비유와 실제의 민주정 운영이 별로 비슷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747의 비유라면 탑승시에 조종사랑 수인사를 나눈 승객 400명이 기내식을 맛나게 드시고 몇몇 분은 이미 깊게 잠들고 몇몇 분은 손에 포크를 들고 있는데, 승객 좌석에서 창 밖을 가끔 보는 정도로는 지금 맞게 가고 있는지 알기 힘들다 정도여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비행기가 크게 흔들리거나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하면 승객들의 행태도 바뀌겠지만...

joyce/ 이 글이 아니라 다른 에세이에서지만, 포퍼는 도편추방을 아테네 민주정의 중요한 방어기제로 묘사합니다. 포퍼의 눈에는 닉슨의 사임과 도편추방이 어떤 유사성이 있는 것처럼 비치는 모양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5/30 18:36
rainkeeper/ 아니 그런 ^^
제 기준으로는 포퍼도 역시 이론가여서 민주정을 너무 환원적으로 바라보는게 아닌가 싶은데, 그 이야긴 다른 글에서 한번 다뤄보든가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2071 at 2007/05/31 00:39
좀 극단적으로 말한 탓이 아닌가 싶긴 합니다만..

“우리 가운데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정책을 고안하거나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라도 우리 모두가 그것을 평가할 수 있다.”

이 문구는 간명하지만 근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문구는 국민에 의한 지배라는 관념, 심지어 대중의 주도권이라는 관념을 에누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기 바란다. 그 두 관념은 국민에 의한 평가라는 매우 다른 이념으로 대체되었다.

라는 부분도 조금쯤은 그렇게 이해될 수 있는게 아닐까 싶었어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7/05/31 23:04
2071/ 그건 그냥 대의민주정의 한 특징을 무난히 서술한 것처럼 보입니다만. 어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평생동안 정책을 고안하거나 실행하는 업무를 한 번도 맡지 않는 사람이 절대 다수가 아닐까요?

일전에 말씀하신 엘리트관은 제가 볼 때는 선험적인 반엘리트주의를 민주주의에 억지로 비끌어매려는 행동처럼 느껴집니다. 대의민주정 하에서 선출된 권력, 즉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갖는 막강한 권력을 생각해 볼 때, 이들을 엘리트라고 규정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Commented by 잡지식98 at 2017/03/17 00:59
'피를 흘리지 안고 정부를 물러날 수 있게 하는것' 이라는 대목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관습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오랜만에 눈물흘리며 울어본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피흘리지 안고 정부를 물러나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여기까지 왔다는것에 기쁨의 눈물이나고 또 이런 날을 위해 죽어간 사람들이 생각나 눈물이 납니다. 정말 이 순간 대한민국의 국민인것이 자랑습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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