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마디

두 사람 이상 모여 현 정세에 대해 논해서는 안 된다.
당국의 허가 없이 종교 및 다른 단체를 결성하는 것은 금지한다.
혼례와 장례 및 제전의식은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 『경성일보』 1942년 8월 2일 -
by sonnet | 2007/05/21 11:05 | 한마디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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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기린아 at 2007/05/21 12:54
저런 시절을 긍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더 무서울 뿐이죠;;
Commented by paro1923 at 2007/05/21 13:19
당시 암울했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포고령이군요.
그런데도 일제가 우리에게 해 준 것도 있다느니 하면서
가끔 철 없는 소리 하는 상아탑의 나이 지긋하신 샌님들은 정말이지...
(통계와 결과론만 있을 뿐, '인간'이 안 보이는 그 분들의 연구 논문이란...;;;)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5/21 16:58
그야말로 극강의 사회통제군요....
Commented by 들러갑니다 at 2007/05/22 07:49
이런 시절에도 백백교 사건이 있었으니...빠져나갈 구멍이야 "요령"과 "재력"이면 ok
Commented by Madian at 2007/05/22 12:54
과연 저런 정책 아래에서의 대책은 얼마나 극단을 달릴지.
Commented by 지나가던이 at 2007/05/22 15:07
행인1// 동감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5/22 19:21
기린아, paro1923/ 안병직도 인터뷰에서 1940년대가 혹독했다는 건 인정하는 것 같더군요. 역사란 건 원래 다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너무들 평면적으로 접근하는 인상입니다.

행인1/ 영어단어 하나 쓸 때마다 10전씩 벌금을 물리겠다는 포고도 있습니다. 사실 그거 술자리에서 벌금 걷어서 술값낼 때 많이들 하는게임인데, 총독부는 이러한 엔터테인먼트도 개발해 주고 아주 감사~합니다요.

들러갑니다/ 엄밀히 말하면 백백교는 이보다는 조금 전인데, 일본 입장에서는 그때도 전시니까 사실 비슷했을 것 같습니다. 장덕수 암살사건 후에 한민당에서 한독당을 백백교라고 비난했던 내용들을 읽은 적 있는데, 그 당시는 아직 그 기억이 선명했던 모양입니다.

Madian/ 그런데 뭔가 카피가 영화 '옹박'을 생각나게 하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5/22 21:34
영단어 금지포고가 쵝오[..] 잠깐 그럼 도쿄 로즈 방송을 찬미해도 안되잖습니까. -_-;;
Commented by sonnet at 2007/05/23 10:18
라피에사쥬/ 찾아봐야겠지만 VOA같은 것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단파 라디오 자체에 무슨 규제가 있었을 겁니다.
Commented by 들러갑니다 at 2007/05/23 21:07
당시 일본 국내에서 윗동네에서 하는 방식처럼 수신 주파수 대역을 제한시킨 라디오를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항복이나 패전이라는 말을 하나도 넣지않은 무늬만 항복방송을 할 때에 대부분 위의 라디오로 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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