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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과 미국
다음은 전 중국 외교부장 첸지천이 2003년 9월 베이징 대학 국제관계학원에서 가진 이라크전과 미국의 국제전략에 대한 연설 전문이다. 길지만 이 연설은 배울 점이 많기 때문에 한번 읽어볼만 하다.

예리한 판단력
우선 이라크 전쟁 종전 선언이 내려진지 반년도 되지 않은 2003년 9월 시점에 벌써 이정도로 그 이후에 벌어질 사태와 그 원인을 냉정하고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많이 분석된 역사적 사건과는 달리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한 분석은 무척 틀리기 쉽다. 2-3년 지나고 나서 그 당시의 분석 기사들을 찾아서 다시 읽어보면 황당무계하게 틀린 것을 수도 없이 발견하게 되기 마련이다. 전체적 구도에서 수 년 후를 정확하게 짚는 분석은 매우 드물다. 그런데 이 연설이 바로 그렇다. (당시 한국정부의 주요 국책연구소인 외교안보연구원이나 국방연구원에서 나온 보고서들과 비교해 보면 좋을 것이다) 이 글은 중국 지도부의 통찰력에 대해 커다란 두려움을 갖게 할 정도이다.

중국이 보는 국제정세, 내지는 중국 정부가 보는 미국관
첸은 물러난 사람이지만, 중국은 일당독재국가여서 정책적 시각의 연속성이 매우 강한 편이다. 그의 시각은 전반적인 현재 중국 지도부의 견해를 잘 반영한다고 보아도 크게 틀림은 없다.

분석의 기법
나는 예전 토론 중에 공개된 정보를 이용해 미국의 정책기조를 분석하는 기법을 소개한 적이 있다. 일본 외무성 전문가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의 "국가정보관 설치를 제안한다"란 글이다. 이 기법을 염두에 두고 아래의 연설문이 어떤 자료들을 근거로 주장을 전개하는지 면밀히 살펴본다면 두 사람의 방법론은 동일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해외 뉴스를 소개하고 논평하려는 블로거들에게도 큰 교훈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라크 전쟁과 미국
연사: 첸지천(錢其琛), 전 중국 외교부장 겸 부총리
출처: 베이징 대학 국제관계학원 연설
일자: 2003년 9월 10일

베이징 대학의 국제관계학원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다시 만나게 돼 기쁩니다. 먼저 오늘 교사절(敎師節)을 맞은 선생님들께 좋은 하루가 되실 것을 빕니다. 또 새로 입학한 학생들을 환영하며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맞게 된데 대해 축하를 드립니다. 그리고 학원 전체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지난 몇 개월 동안 사스(SARS)와 싸워 이긴 것에도 축하를 보냅니다. 여러분 모두 새로운 학년을 맞아 수업과 업무, 생활 각 방면에서 새로운 진보가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교사절에서 저는 주로 ‘9·11’ 사건 이후의 미국 및 중미 관계를 주제로 이야기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국제 정세엔 새로운 복잡한 변화가 야기됐습니다. 그 중 제일 관심을 끄는 사건은 이라크 전쟁입니다.

이번 전쟁이 지속된 시간은 별로 길지 않습니다. 3월 20일 전쟁이 시작돼 5월 1일 부시 대통령이 주요한 전쟁은 끝났다고 선포하기까지 모두 6주가 걸렸습니다. 실제 전쟁을 치른 것은 3주 정도에 불과합니다. 전쟁의 진행 과정에 대해선 여러분 모두 잘 알고 있어 여기선 별도로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커다란 국제적 배경 아래에서 이번 이라크 전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또 전쟁이 미국의 전략적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점입니다.

먼저 ‘9·11’사건이 미국의 세계 전략에 미친 영향부터 시작합시다. ‘9·11’사건 이후 미국은 세계가 ‘포스트 포스트 냉전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인식하게 됐습니다. 미국은 포스트 냉전 시대의 주요 특징으로 소련이 해체돼 미국이 더 이상 소련의 위협에 직면하지 않게 됐다는 것을 꼽습니다. 포스트 포스트 냉전 시대의 특징은 미국이 세계 테러의 현실적인 위협을 맞게 됐다는 점입니다. 이로써 미국이 추진 중인 세계 전략의 중점에 그 순서와 관련하여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리즘의 위협을 해소하는 것이 미국 전략의 주요 임무가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2년 동안 미국의 전략 조정은 크게 다음의 3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단계는 ‘반응 단계’입니다. 그 시점은 대략 ‘9·11’이 발생한 이후부터 2002년 초까지입니다. 지난 200여 년 이래 미국 본토가 이처럼 심대한 습격을 받기는 처음입니다. 이 탓에 미국은 신속하게 강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편으론 본토 방어를 대폭 강화했으며, 국토안전부 설립을 계획하고 연방조사국과 중앙정보국을 개편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론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반테러’가 핵심이 되는 국제 반테러연맹을 건설했습니다. 아프간 전쟁을 일으켜 ‘알 카에다’ 조직 및 그 비호자인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습니다. 이 단계에서 미국은 반테러를 구실로 과거 발 디디기가 어려웠던 중앙아시아 지역에 진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흐름은 반응을 보이면서 방어를 강화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준비 단계입니다. 시간은 대략 2002년 1월 29일 부시 대통령이 ‘연두 시정연설’을 발표한 시점부터 2003년 2월 ‘반테러 전략’을 내놓기까지입니다. 이 단계에서 미국은 자신의 세계 군사 안보 전략에 대해 냉전 이래 가장 심각한 반성을 합니다. 그리고선 ‘마약관리 전략’ ‘국토안전 전략’ ‘국가안보 전략’ ‘대규모 살상무기 방어 전략’ ‘반테러 전략’ 등 일련의 문건을 잇달아 내놓습니다. 그 중 가장 깊은 의미를 띠고 주요 작용을 하는 것은 부시의 두 차례 연설입니다. 2002년 1월의 ‘시정 연설’에서 부시는 처음으로 ‘악의 축’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해 6월 1일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서의 연설에선 부시는 또 ‘선제압’ 전략을 밝힙니다.

이 단계에서의 세 가지 변화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는 미국이 테러리즘을 전쟁 행위로 간주하여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으로 과거와 같이 행정 및 사법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미국의 대외정책 중에서 무력남용 경향을 높이고 있으며 또 미국 정부 내의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방부가 차지하는 영향력을 제고시키고 있습니다.

둘째는 미국의 반테러 공격 대상에 변화가 일고 있다는 점입니다. ‘알카에다’ 조직이 커다란 타격을 받고 흩어진 이후 미국은 집중적으로 공격할 대상을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때문에 주요 목표를 테러분자들이 대규모 살상무기를 획득하지 못하도록 예방 조치를 취하는 쪽으로 방향이 선회됐습니다. 미국은 ‘국가안보 전략’에서 ‘불량국가와 테러리즘은 천생의 벗’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들 국가가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가장 위험한 적’의 수중으로 넘기지 못하게 막으려고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은 반테러와 불량국가 단속을 한데 엮은 채 한 걸음 더 나아가 중동 개조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프간과 이라크 이후 북한과 이란, 시리아 등이 미국의 주시 대상이 될 것입니다.

세 번째, 미국은 소위 ‘허약하고 실패한 국가’가 테러집단에 의해 쉽게 이용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즉 중동과 중앙아시아, 동남아, 동북아로 이어지는 이른바 ‘불안정한 아크(arc)'가 반테러의 취약 부분이란 이야기입니다. 이들 지역에서의 통제력과 대응능력을 제고시키기 위해 미국은 그 군사력을 재평가, 해외 주둔군을 조정하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미국은 반테러의 기치 아래 전략 요지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실시 단계입니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이미 새로운 글로벌 군사안보 전략을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이라크 문제는 완전하게 해결된 상태가 아닙니다. 미국은 오랫동안 ‘이라크 억제와 사담 후세인 전복’ 정책을 유지하며 이라크에 대한 제재정책 포기를 거부해 왔습니다. 이라크 또한 때때로 유엔과의 무기사찰 부문의 협력을 중단해 미국에 구실을 안겼습니다.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면 이라크 문제 해결은 미국이 중동 통제를 강화해 패권주의와 강권(强權) 정치를 계속 추구하여 초강국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 피가로>의 올해 4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부시 집권 이전에 이미 현재 부통령인 체니, 국방장관인 럼스펠드, 국방부 부장관 울포위츠 등으로 대표되는 ‘신보수파’는 2000년 9월에 내놓은 ‘미국의 신세기’ 계획에서 ‘이라크 공격과 후세인 타도’ 구상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구상을 미국의 통제 아래에서 세계 평화를 강화하고 미국의 세계 맹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는 첫걸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미국은 ‘9·11’ 이후 국제 사회가 반테러와 핵비확산을 중시하는 유리한 시점을 이용해 후세인이라는 눈엣가시를 제거하여 중동이라는 전략 요충지와 석유·가스 자원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라크 핵무기 사찰 위기가 다시 불거진 이후 비록 유엔이 1441호 결의를 통과시키고 계속적인 사찰 진행을 요구할 때도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 주위에 병력을 집결시키는 행위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습니다. 사실 미국은 이미 일찍부터 안보리의 무력사용 동의 여부를 받는 것에 상관없이 개전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습니다. 미국과 영국이 그래도 새로운 결의 초안을 제안하려 했던 것은 유엔이라는 합법적인 외투를 입으려는, 즉 명분 있게 전쟁을 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기타 대국과 국제 사회도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안보리 안팎에선 매우 격렬한 논쟁이 펼쳐졌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새 결의 초안을 수정한 이후 또다시 표결 시간을 늦췄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새 결의안이 통과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자 표결 추구를 포기하고 후세인에게 48시간의 ‘최후통첩’을 알리고는 서둘러 전쟁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곧 국제 사회의 역량이 균형을 상실한 상태에서 대국들은 서로 쉽게 타협하는 것을 바라지도 않지만, 또 미국과의 직접적인 충돌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해 줍니다. 국제 사회는 미국이란 단극을 바라지도 않으며 또 미국이 자기 멋대로 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다음 세부 사항은 여러분이 주의해야 할 대목입니다. 3월 20일 부시 대통령이 개전을 선언했을 때 그 배경엔 두 장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한 장은 그의 두 딸이고 또 한 장은 그의 부인과 애견이었습니다. 부시는 이 기회를 이용해 그가 가정을 중시한다는, 즉 인성(人性)을 존중한다는 점을 부각시켜 이것이 이라크 인민을 해방시킨다는 개전의 목표와 일치한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5월 1일 전투기를 탄 부시가 걸프 해협에서 돌아온 항공모함 ‘링컨’ 호에 착륙해 중요한 전쟁은 이제 끝났다고 선포했을 때는 항공모함이 그 배경이 됐습니다. 이는 미국이 무력을 사용하기로 결심했었다는 속내를 반영합니다.

그 전쟁은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91년의 걸프 전쟁 당시 미국은 55만 명의 병력을 투입했고 40일간 폭격을 퍼부었습니다. 지상군의 전투 시간은 100시간에도 못 미쳤습니다. 그러나 이번 미군 투입 병력은 지난번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지만 지상 공격을 곧바로 시작해 불과 21일 만에 바그다드를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이 진정한 승리를 거뒀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한편으로 국제 사회는 미국과 영국에게 전쟁을 일으킨 이유에 대해 부단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미영은 아직도 이라크가 대규모 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거나 알 카에다, 또는 9·11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믿을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9·11 이후 다섯 명이 사망함으로써 미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탄저균 문제가 테러 집단의 소행이 아닌 미국 생화학 무기 전문가가 미국 군대의 실험실에서 몰래 훔쳐가지고 나왔을 가능성이 높은 것임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또 미영 국내엔 심지어 양국 정부가 이라크의 금지 무기에 대한 정보를 거짓 보고하여 각기 자국 국민을 오도했다는 여론이 팽배합니다. 영국 의회의 외무위원회 조사는 영국 정부가 정보를 부당하게 처리하여 이라크의 금지 무기 위협을 확대 해석했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BBC에 관련 정보를 제공했던 국방부의 무기 전문가 켈리가 갑자기 자살하여 영국엔 큰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의회의 상·하원 양원의 정보위원회도 정보 문제와 관련하여 비밀 청문회를 가졌으며, 2004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하는 존 케리와 버몬트 주의 전 주지사 하워드 딘은 공개적으로 부시 정부가 대중을 오도하는 행위를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또 한 보도에 따르면 올해 1월의 ‘국정 보고’ 중에서 이라크가 니제르로부터 핵물질 구입을 시도했다는 부시 대통령의 비난은 검증되지 않았거나 또는 조작된 정보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미국 중앙정보국의 테닛 국장이 긴급히 성명을 발표하여 자신의 잘못이라고 해명하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부시 대통령 또한 부득이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각 방면으로부터 질문이 거듭되자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새로운 해명을 끄집어냈습니다. 즉 미국 정부가 비록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새 정보를 얻지는 못했지만 9·11 사건은 미국이 이전의 정보에 대해 새롭게 검토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럼스펠드는 지난해 6월 다음과 같은 아주 우스운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증거가 없다는 것이 꼭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The absence of evidence is not evidence of absence)." <워싱턴포스트>는 6월 22일 한 문장을 실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지 못했고 이에 대해 제대로 해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군사적 승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선제압 전쟁을 일으키는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현재 부시 외교 정책의 핵심인 선제압 이론은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다.” 그런가 하면 영국 신문 <인디펜던트>는 미영이 전쟁을 위해 날조한 20개의 거짓말을 아주 구체적으로 적시하기도 했습니다.

5월 1일 부시 대통령이 주요 전쟁은 끝났다고 선포한 지 이미 4개월이 지났으나 이라크 사태는 아직도 평온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기억하시겠지만 전쟁이 시작됐을 때 베이징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 엄습했습니다. 이제 사스는 지나갔지만 미국은 이라크 문제에 있어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제대로 풀지 못한 채 적지 않은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후세인의 행적은 묘연하고 미군의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반미 시위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 미군 습격 사건이 빈번히 발생해 5월 1일 이후의 미군 사망자 수는 전쟁이 격렬했을 때보다도 오히려 많습니다. 그리고 개전 이후 이제까지의 미군 사망자 수는 1991년의 걸프 전쟁 당시를 훨씬 초과합니다. 럼스펠드 또한 이라크 정세의 불안정은 앞으로도 수개월 더 지속될 것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미국은 적지 않은 국가들에게 파병 협조 요청을 했고 또 수차례 대규모 소탕 작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매일 한 명 이상의 미군이 사망하는 상태에서 좀처럼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군사적으로 타격을 입히기는 쉽지만 인심은 얻기 어려우며 특히 사회를 개조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미국의 최근 한 여론 조사는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에서 잇따라 습격을 받고 또 재건 업무 또한 더디기 이를 데 없는 탓에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율이 4월의 73퍼센트에서 이젠 50퍼센트로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최근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문제와 관련한 특별 담화를 발표했는데 그 속내는 대선을 겨냥해 국내 지지를 얻고 국제 압력에 밀려 국제 협력을 꾀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에 대해 대략의 비교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전쟁은 흡사한 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이 테러리즘을 가장 현실적인 위협으로 인식하여 그 안보 전략을 조정한 이후에 발생한 국부적인 전쟁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내세운 목표도 독재 정부와 테러리즘을 타도하여 민주를 시행하고 그 지역 인민을 해방시킨다고 한 점입니다. 또 미국의 전략 요충지 진입을 가능케 해 객관적으로 미국이 계속 단극 체제를 유지하는 데 유리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이 두 차례 전쟁에서 미국은 모두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가지고 사상자를 최소화했으나 빈 라덴과 사담 후세인 등 가장 중요한 대상을 잡지 못한 채 계속적인 저항에 부딪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차례의 전쟁은 서로 크게 다른 점도 갖고 있습니다. 먼저 국제적인 반응이 다릅니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탈레반과 알 카에다 조직을 공격했습니다. 이는 명분도 있고 해서 국제 사회의 일정한 동정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일부 국가는 군대를 파견하여 다국적 부대에 합류했고 아프간 재건을 위해 대량의 원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라크 문제에 있어선 미영은 절대 다수 국가와 세계 반전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또 10여 년에 걸친 유엔의 이라크 제재와 핵무기 사찰이 진전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증거도 없이 안보리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선제압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즉 ‘대의명분이 없었던 것’으로 국제 사회의 전반적인 반응은 부정적이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은 전쟁의 목표가 달랐습니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 목표는 비교적 명확하고 한정적인 것으로 주로 빈 라덴과 알 카에다 조직의 제거였습니다. 탈레반 정권 전복도 이 목표를 위한 것으로 아프간 전체를 개조시키겠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아프간의 북부연맹의 힘을 빌렸고, 또 아프간에서 다수를 점하는 파슈툰 사람들의 이익을 고려했으며, 늙은 국왕인 자히르 샤의 입장도 배려하는 등 각 세력간의 힘의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정교(政敎) 일치의 탈레반 정권 전복은 객관적으로 아프간의 정통 가치와 사회 구조의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탈레반을 반대하는 아프간의 각 파벌은 본 대회에 참석하여 카르자이를 추대해 비교적 세력간 균형을 갖춘 신정권을 출범시켰던 것입니다. 비록 신정권이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고 제 역할을 다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카불에 현지 정권이 들어서고 외국 대사관들도 활동을 재개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 때문에 역량을 집중해 알 카에다 소탕 작전을 벌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라크에선 미국의 목표는 너무 많습니다. 후세인 정권 전복뿐만이 아니라 이라크를 개조해 민주제도를 수립하고 이슬람교 전통에서 벗어난 자유국가로서 아랍 중동 지역 국가의 민주 모델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같은 목표로는 이라크 반대파를 흡수하기 어렵습니다. 후세인 정권 자체가 하나의 세속적 정권입니다. 여러 반대파, 특히 이라크에서 영향력이 있는 파벌은 기본적으로 부족이나 종교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이들은 비록 후세인에게 반대하지만 또 미국에도 반대합니다. 때문에 미국은 적합한 사람을 찾기 어렵고 새로 성립된 임시관리위원회의 대표성 또한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외국 사절도 활동을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전쟁 목표가 확대됨에 따라 미군은 후세인 정권의 당·정·군과 경찰 시스템을 공격했고 원래 존재하던 권력 시스템을 기본적으론 거의 다 파괴시켰습니다. 이 같은 권력 진공 상태는 두 가지 방면의 후유증을 낳았습니다. 하나는 사회 질서가 교란돼 강도 및 보복행위 현상이 심각해졌습니다. 미군이 치안을 떠맡게 됐는데 이는 미군 사상자의 숫자를 크게 늘릴 가능성을 증대시켰고, 또 ‘점령군’이란 인상을 심게 돼 현지 주민들이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게 됐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슬람 종교 조직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베이징 특파원 역임)가 6월 24일 바스라에서 보낸 글에 따르면 미국이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킴으로써 혜택을 받은 것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바스라에서 주류 가게 주인이 총격으로 사망했고 영화관 주인도 매일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또 많은 점포들은 ‘자매들이여, 머리카락을 가리라’는 경고 문안을 내걸고 있습니다. 후세인 시절 바스라대학 과학 학과의 80퍼센트는 여성이었습니다. 현재는 적지 않은 부모들이 여학생들에게 캠퍼스 내에서도 두건을 쓰도록 시키고 있습니다. 골치 아픈 일을 만나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보도의 제목은 ‘당신의 머리카락을 가리라’는 것입니다. 이 보도는 또 과거 망명길에 올랐던 반대파 인사들이 런던에서 안락한 생활을 즐기고 있을 때 원리주의자들은 생명을 걸고 지하활동을 펴 현지 주민의 지지를 받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보도의 요지는 ‘경고’입니다. 즉 원리주의자의 은막이 이라크에 드리워질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이라크 전쟁 이후 각국은 미국의 반테러 전략 동향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인터내셔날 헤럴드 트리뷴> 보도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의 국제 관계에 대한 생각은 “미국은 세계에 평화를 가져와야 하는 사명이 있으며 미국이 반테러 전쟁에서 승리하는 날이 바로 그 사명을 완성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명을 완수하는 데 있어 걸림돌은 ‘다극 체제’의 균형된 국제 관계라고 합니다.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라이스는 6월 26일 런던의 국제관계전략연구소의 연설에서 이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라이스는 17세기 민족국가가 대두하면서 형성된 강대국 간의 대항이라는 이 파괴적인 국제 시스템을 부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유럽 각국은 반드시 다극화 개념을 버려야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진정으로 평화를 실현시킬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극화는 강대국 간의 대항과 가치 경쟁의 이론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보도는 이 같은 라이스의 말은 반드시 새로운 시스템이 다극화 시대의 유엔을 대체하고 동시에 나토의 한계를 초월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고 했습니다. 현재의 나토는 미국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그 내부가 다극화돼 있고 그 내부의 평등이 바로 미국에 장애가 되는 탓입니다.

보기에 이 같은 라이스의 말은 미국과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대서양의 동반자 관계를 새롭게 다듬어야 된다는 것으로 비쳐집니다. 5월 14일 미국의 전국무장관 올브라이트와 브레진스키 등의 18인은 미국과 유럽 관계 개선을 주장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6월 14일 유럽의 전 정치 지도자들인 독일의 콜과 프랑스의 지스카르 데스텡도 이에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이들의 공통 의견은 세계적 차원의 도전을 맞아 미국과 유럽이 단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또 미국과 유럽의 생존과 발전은 화와 복이 서로 함께 하며 미국과 유럽이 세계 핫 이슈에서의 협력을 강화, 공동으로 국제 안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쌍방의 논점을 보면 미국은 다극화에 반대합니다. 다극화는 강대국 간의 대항을 야기시키는 파괴적인 요소로 미국이 추진하는 평화적 사명 실현에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유럽은 협력을 강조하며 국제 안전 책임에 대한 공동 부담을 강조합니다. 이는 즉 유럽의 협력이 없으면 미국은 세계의 도전에 단독으로 대응할 수 없을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지난 200여 년의 역사에서 미국은 대유럽 정책과 관련하여 대부분 ‘중립’을 지켜왔습니다. 이 같은 정책은 미국의 고립주의 경향을 반영합니다. 목적은 아직 어린 미국이 유럽의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1914~1918년의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미국은 1917년 4월에야 비로소 독일을 상대로 참전했습니다. 1939~1945년의 제2차 세계대전에선 미국은 1941년 12월 진주만이 공습을 받은 이후에야 비로소 참전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경제와 군사력으로 세계의 초강국이 됐습니다. 미소 대항의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미국은 현재 유일한 초강국이 됐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같은 군사, 경제적인 절대 우세를 이용해 단극 시스템을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곧 단극의 행동자유를 추구하게 되고 나아가 국제법을 위반하고 유엔을 파괴시키는 등 무력을 최상으로 삼는 제국정책의 길로 나아가게 만들 것입니다.

미국의 일부 학자들은 이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포린 어페어> 잡지의 2003년 5월호에 카네기 국제평화기금회 연구원 페이민신(裵敏欣)의 글인 ‘미국 민족주의의 패러독스’가 실렸습니다. 이 문장의 시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이 테러 공격을 받은 지 2년이 지난 시점에 미국과 그 국민에 대한 국제 여론의 진정한 동정은 이제 숨길 수 없는 혐오로 변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직접적인 촉매제는 미국의 대이라크 강경 정책과 이에 따른 전쟁이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대외정책을 만들고 추진하는 미국 민족주의 정신에 대한 일종의 세계적인 반발인 것이다.”

이 글은 또 미국인은 매우 나라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미시간대학의 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70퍼센트가 자신이 미국인임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기타 서방 국가에서 이 비율은 50퍼센트에도 못 미칩니다. 그러나 미국인은 민족주의라는 이 어휘는 피하고자 합니다. 원인은 미국의 민족주의와 기타 국가의 민족주의 간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미국은 자신을 문화와 종족의 용광로라고 봅니다. ‘미국 종족이라는 것은 없고 단지 미국 신념이라는 것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민족주의는 자신이 스스로 세계적인 가치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기초하는 것으로 문화와 종족에 근거한 개념이 아닌 것입니다. 그 다음 미국의 민족주의는 승리와 앞을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짧고도 영예로웠던 역사에 대한 기억은 미래는 보다 아름다울 것이라는 굳건한 신념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미국은 과거에 굴욕과 좌절을 겪었던 대다수 민족의 비정(非情)과 뒤를 돌아다보는 마음에 대한 이해와 동정이 부족합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민족주의는 정치적 이상과 민족 자부심, 고립주의의 혼합물로서 태생적인 고고함과 선교사 정신을 갖습니다. 그 패러독스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은 강렬한 민족주의를 갖고 있으면서도 민족주의를 부인하고 멸시하며, 필연적으로는 다른 국가의 민족주의와 충돌을 일으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첫째는 외국 정부와 인민으로부터 많은 원한을 삽니다. 둘째는 외국의 적대 정권을 파괴하려고 시도할 때 강력한 반작용을 낳습니다. 셋째는 미국이 해외에서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위선으로 보이게 돼 미국의 국제 신용과 합법성을 약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글이 이야기하는 것은 새로운 문제는 아닙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서방 열강의 침략과 확장 때 모두 이 같은 민족주의의 패러독스가 나타났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방 국가는 기독교 윤리와 시장경제, 민주제도를 자본주의가 성공할 수 있는 3대 지주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이 3대 지주는 모두 세계적인 보편성을 띠는 것으로 소위 ‘문명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외지 민족’의 문화나 종교 전통을 초월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자본주의가 세계적인 확장을 꾀할 때 종종 선교사들이 선봉에 서서 ‘교화에 나서고’ 이어 상인들이 ‘이익 도모’에 나서는 것입니다. 시기가 성숙한 후엔 군사력으로 뒤를 든든하게 받치며 직접적으로 소위 ‘외지 민족 교화’란 전면적인 사회 개조를 단행합니다. 그 외지 민족이 자기 문화와 전통을 지키려는 ‘속이 좁은’ 또는 ‘사악’한 민족주의로 간주됩니다.

최근 미국 내에선 ‘미국 제국’ 문제에 대한 논쟁이 전개됐습니다.

이 ‘미국 제국’ 문제는 미국이 ‘제국’인가 아닌가. ‘제국’의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미국이 제국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신보수파’로 불립니다. 그들은 미국이 초강대국의 실력을 이용해 세계에 미국의 정치 가치관을 이식해야 한다고 합니다. 즉 ‘실패한 국가’에 대한 선제압 작전으로 공격을 단행하여 미국 모델로 개조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옥스퍼드 대학의 한 역사학자는 미국 정부가 미국의 제국 역할을 부인하지 말고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대영제국이 세계에 ‘번영과 진보’를 보급시켜 공헌한 것을 배워야 한다고 훈계합니다. 반면 ‘전통적인 보수파’는 ‘미국 제국’이란 주장에 반대합니다. 이는 매우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로마 제국의 멸망 원인을 검토할 것을 주장해 미국의 오늘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젠 ‘공화국 수호 위원회’를 설립해 뉴욕에서 ‘미국 제국’ 세미나 개최를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자유파’ 또한 제국 건설에 반대합니다. 유연한 방식으로 국제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펼쳐야 할 것이란 주장입니다.

미국 정부 내에서도 ‘미국 제국’ 문제에 대해 의견이 엇갈립니다. 부시 대통령은 여러 차례 미국은 ‘제국’이 아니라며 과거 ‘제국’의 행위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집권층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력을 동원해 미국의 가치관을 수출, ‘미국 제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변론에 참가한 각 파는 미국의 유일 강대국 지위를 수호하고 강화하고 유지시켜야 된다는 목표에선 일치하고 있습니다. 단지 어떻게 이 목표를 실현할 것인가와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것입니다. 이 같은 변론은 향후 미국의 대외 정책 방향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하버드대학 케네디 정치학원 원장인 조셉 나이는 ‘이라크 전쟁 후의 미국의 실력과 전략’이란 글에서 부시 정부 내엔 새 전략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와 관련 이견이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운 국제 제도의 틀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말합니다.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기존 틀에서 목표를 더 잘 실현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조셉 나이는 미국으로선 유엔을 무시하거나 그 구조를 변경시키려고 하는 것보다는 부결권을 갖고 있는 여타 강대국들과 협력함으로써 유엔을 이용해 신전략을 추진하는 게 낫다고 말합니다. 21세기 들어 세계 최강의 국가도 어쩌지 못하는 일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힘의 확장은 대중의 인내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합니다. 이라크 전쟁 이후의 여론 조사는 미국민들이 ‘제국’에 대해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시리아와 이란에 대한 침공 의사도 없으며 오히려 다극화와 유엔 이용을 계속 지지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8월 3일 의 한 글은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이 온화하고 자기 억제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점차 열전 지구를 피하는 쪽으로 바뀌며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비용의 외교 중재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원인은 임박한 대선과 미국 대중의 심리, 정보 사건, 전후 재건의 어려움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까닭입니다.

이런 모든 것은 앞에서 말한 변론에 대한 반응들입니다. 실제 어떻게 될지는 여러분들이 계속 연구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엔 현재 중동 정세를 이야기해 봅시다.

이라크 전쟁이 중동에 미친 영향은 대단한 것입니다. 현재 미국은 그 주의력을 이라크의 인접국과 중동지구에 더 많이 쏟기 시작했습니다. 4월 30일 미국과 러시아, 유럽연합, 유엔으로 구성된 ‘4자 시스템’은 정식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중동 평화 ‘로드맵’을 건넸습니다. 미국은 다시 평화적 행보를 추진, 국제 사회의 압력을 완화시키고 아랍 세계를 어우르며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킨 여세를 몰아 중동 평화정착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려고 합니다. 이는 미국이 중동의 정치 판도를 새로 짜는 두 번째 행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하마스’ 등 급진조직이 각 방면의 압력과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에 밀려 수개월간의 휴전에 동의하긴 했지만, 평화정착 과정은 아직도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최근엔 또 팔레스타인 총리 압바스가 사직했고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기습한 사건이 발생해 ‘로드맵’ 계획은 큰 어려움을 맞게 됐습니다.

미국은 원래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고 아라파트를 배척하면 팔레스타인의 반이스라엘 활동이 줄어들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화해에 도움이 될 것이란 바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하마스’ 등 급진주의자들의 영향력이 팔레스타인 인민 사이에서 오히려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에 의해 테러집단으로 낙인찍힌 ‘하마스’가 최근 가자주재 유엔 복리 및 취업 연락사무소 직원위원회의 선거에서 80퍼센트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하마스’의 군사조직이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투쟁을 고수하는 한편, 정치 조직이 자선 인터넷을 통해 가자지구의 주민에게 대량의 원조를 제공하는 두 가지가 선거 승리의 양대 요인으로 지적됐습니다. 호화주택과 의복에 신경 쓰는 팔레스타인 내각 구성원들과 비교해 생활이 검소하고 항시 생사의 위험을 넘나들고 있는 ‘하마스’ 지도부가 팔레스타인 인민의 지지를 더욱 받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미국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충돌을 더욱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고 계속 이스라엘 정책편에 선다면, 새로운 충돌을 야기하고 더 복잡한 정세가 돼 중동의 평화 정착은 또다시 큰 위험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이 중동을 개조하려면 또 다른 두 가지 중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즉 시리아와 이란 문제입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미국은 시리아를 다소 봐주는 편인 반면 이란에 대해선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상태입니다. 한편으론 이란의 힘이 크기도 하고, 또 중동의 많은 급진 조직에 대해 영향력을 갖고 있는 탓입니다. 이라크 내에도 시아파가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후세인도 반대하고 또 미국도 반대합니다. 또 한편으론 미국과 이란은 역사적인 은원 관계에 있습니다. 이란과 아랍은 역사적으론 앙숙입니다. 그러나 무슬림 국가로 원래 구소련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은 테헤란에서 루스벨트와 회담을 가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란의 팔레비 국왕은 친미 입장을 보였고 미국은 이란을 반소련 기지로 만들고자 팔레비를 크게 도와 이란의 서구화를 꾀했습니다. 그 결과 이란은 미국식의 상류층과 무슬림의 하류층으로 사회 분화가 심각하게 진행돼 민중들의 반미 정서가 매우 강렬했습니다. 팔레비 국왕이 호메이니의 혁명에 의해 무너진 후 미국과 이란 관계는 계속 나빠졌습니다. 후엔 이란이 미국대사관의 인질을 억류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병력을 출동시켜 인질을 구출하려 했으나 실패하여 그 정치적 생명이 단축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미국이 외국 민족주의에 대처한 한 실패 사례일 것입니다.

때문에 이란과 이라크 전쟁 기간 서방 국가는 모두 후세인을 지지했고 특히 미국은 대량의 무기를 후세인에게 제공했습니다. 여기에 단맛을 느낀 후세인은 나중엔 쿠웨이트를 침공해도 서방 국가들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후세인이 미국의 중동 지역 내 전략적 이익을 위협한 것으로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1991년 걸프 전쟁과 12년의 제재에 이어 이라크 전쟁이 터진 것입니다.

현재의 중동 정세와 미국 내부 상황을 볼 때 미국의 대선 전에 또 한 번의 전쟁이 일어나긴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이라크 전쟁은 우리에게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은 현제 선제압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 정책은 어떤 국가가 나쁘다고 생각되면, 또 테러를 돕는다는 의심이 들고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평화를 위협한다고 여겨지면 먼저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국제 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한 변화로 우리의 전략적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점입니다.

이 문제에 관련 나는 먼저 중국은 강대국으로서 자신이 스스로 혼란에 빠지지 않고 착실한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자신의 일을 잘 처리하여 국제적으로 친구를 많이 사귀고 적을 만들지 않는다면 여타 국가는 감히 중국에 맞서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9·11 사건을 겪고 난 뒤 미국은 반테러와 핵확산 방지를 위해선 강대국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여 우리에 대한 압력을 다소 완화했습니다. 미사일 방어 시스템 구축 목소리도 예전 같지 않고 최근 몇 차례 실험 실패도 투자를 적게 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셋째, 현재 미국의 전선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필리핀과 미국의 관계가 나쁘지 않지만 반테러에 있어선 어려움에 부딪쳐 미국이 직접 파병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리베리아 국내에 문제가 발생하여, 미국의 후예들이 연루되자 부시는 출병을 고려하게 됐습니다. 아프간의 문제도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이라크 문제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세계의 많은 국가를 모두 ‘미국식 자유’ 국가로 개조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종교 전통은 개조가 불가능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일을 미국이 모두 관리하기엔 힘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전에 우리는 미국의 전략 중심이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투자가 증가했습니다. 특히 9·11 이후 일부 지역에 대한 포석을 강화했지만 아직 미국 전략의 동쪽 이동에 대한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먼저 미국의 세계 전략의 중점은 여전히 유럽에 있습니다. 근래 유럽과 미국 관계에 새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은 과거에도 마찰이 있었지만 이번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갈등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비록 연맹 관계가 유지되곤 있으나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미국은 러시아는 용서할 수 있고 독일에 대해선 책임을 추궁하지는 않겠으나 프랑스는 결코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또 유럽을 ‘신(新)’과 ‘노(老)’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일부 ‘새 유럽’ 국가는 미국과 함께 합니다. 예를 들어 폴란드의 경우, 미국은 폴란드로 하여금 이라크의 일부 지역을 관할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주요 세력은 프랑스와 독일입니다. 이 같은 마찰이 계속된다면 미국과 유럽에 대한 전통적인 영향력은 축소돼 장차 유럽과 미국 관계가 평탄치 않을 것입니다.

그 다음 군사적으로 볼 때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규모로 포진할 필요가 아직 없습니다. 미군이 지금 전쟁을 하려면 먼 거리에서 병력을 수송해도 됩니다. 기지가 앞에 있고 뒤에 있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항공모함이 오면 그것이 곧 기지입니다. 장거리 폭격기는 미국 본토로부터 출격하여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정확히 폭탄을 투하하고 돌아가면 됩니다. 완전히 사전에 계획된 순서에 따라 진행하면 될 뿐입니다. 미군이 현재 걱정하는 것은 전장이 너무 가까운 경우로 주한미군을 현 위치에서 200킬로미터 후방으로 빼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은 매번 전쟁을 치를 때마다 모두 시간을 갖고 힘을 결집한다는 점입니다. 또 많은 힘을 들여 많은 국가와 미국 내 인민에 대한 설득 작업을 펼칩니다.

한편 현재 그리고 향후 한 동안 미국의 주요 임무는 반테러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에 놓이며 중국과는 보다 많은 협력을 희망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으로 포위할 필요도 없으며 또 능력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시아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고려해 이 같은 대중국 포위 작전에 참여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일만 제대로 한다면 중미 관계는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안정을 유지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20년의 좋은 기회라는 시기가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계산해 보니 오늘로서 제가 이미 다섯 차례나 여러분과 교류를 가졌습니다. 5년 동안 국제관계학원은 국가를 위해 우수한 전문 인재를 양성, 배출했습니다. 학원 전체 교직원 여러분의 노고에 충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저는 이미 지도자 대열에서 내려왔습니다. 아울러 베이징대학의 총장에게 저의 국제관계학원 원장직의 사임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저는 자리를 함께 한 젊은이들이 하루 빨리 성장하여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공헌하기를 바랍니다.

錢其琛, 外交十記, 2003
(유상철 역, 『열가지 외교 이야기』, 랜덤하우스 중앙, 2004, pp.417-435)
by sonnet | 2007/04/22 09:02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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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錢其琛 외교부장의 연설을 다시 읽으며, 국내정치에 관해 생각함 -- 이는 군사적으로 타격을 입히기는 쉽지만 인심은 얻기 어려우며 특히 사회를 개조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것을 말해 ... more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4/22 13:10
'미국 민족주의'란 단어가 독특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군요. 민족이 아닌 가치관에 근거한 민족주의라...
Commented by 미친고양이 at 2007/04/22 13:32
무서운 아저씨군요. 브레진스키 아저씨의 책을 읽을 때보다 더 큰 공포심이 몰려오는데요...;; 바로 옆의 대국에 저런 아저씨가 있으니 여기 거스름돈은....ㄷㄷㄷ
Commented by joyce at 2007/04/22 13:50
후세인 정권 자체가 세속 정권이었다는 지적이 날카롭네요. 결국 원리주의자들을 위해 세속 국가를 파괴해 온 것이 중동에서의 미국의 역사적 사명이었던 듯...
Commented by 어부 at 2007/04/22 14:02
미래를 내다보는 거울이라도 들고 있나 의심스럽군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4/22 15:37
벌써 4번째 보는 글이군요. 날카로운 판단력면에선 이미 충격이라 부를 수 있을만큼 큰 감명을 받았고, 기본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그리 길지 않은 문장에 충실히, 또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표현을 썼다는 점 등 그저 글쓰기란 분야에만 한정해도 참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습니다.
Commented by 팰컨 at 2007/04/22 16:47
저기 위의 "미국의 <포린 어페어> 잡지의 2003년 5월호에 카네기 국제평화기금회 연구원 페이민신(裵敏欣)의 글인 ‘미국 민족주의의 패러독스"가 Foreign Affairs 이 잡지에 있는 글이 맞습니까? 직접 그 웹싸이트를 찾아가서 2003년 5월호를 봐도 나타나질 않더군요. 페이민신이라는 이름도 미국이름을 한자로 변형하다보니 저리된것 같기도 하고....정말 한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군요. 미국의 민족주의라...
Commented by あさぎり at 2007/04/22 17:20
'페이첵'에 나오는 미례를 예언하는 기계를 사용한듯한 발언이군요...[ㄷㄷㄷ]
Commented by umberto at 2007/04/22 17:38
이라크전에서 미군의 삽질을 예언한 것은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만(저같은 변방의 포의도 종전선언에도 불구하고 만만치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이라크 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분석을 하고 있었군요.

반후세인세력의 특성이나 권력의 진공상태.... 이 두가지가 인상 깊군요. 하긴 이라크 전쟁의 추이에 대해서는 중국이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고 예상을 해봤겠죠. 마지막 결론이 의미심장 하군요. 결국 미국이 아무리 힘자랑해도 결국 힘의 한계를 깨달을 테니까 우리는 우리일만 잘하면 끝이라는 이야기네요. ㅎㅎㅎ 20년의 좋은 기회라? 북한 문제에 있어서 돌발변수는 인정하지 않는 건가?
Commented by 들러갑니다 at 2007/04/22 20:05
중국이 일을 잘하게 내버려두면 주변국가는 참으로 괴로워질 것 같군요. 영토문제로 집적대지 않는 국가가 없으니 말이죠. 미국은 제국화 될지도 모르는 상태지만 러시아나 중국은 이미 제국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단순한생각 at 2007/04/22 21:11
거스름돈에 들러붙는 세금도둑이 되고싶은 왜소한 단세포생물의 입장(...)에서는 마지막의 저 거스름돈 발언이 좀 꺼림칙하긴 합니다만, 본문에서 내다보는 미래에 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군요.

확실히 과거를 디비기는건 쉬워도, 미래를 디비기는건 아무나 하는일이 아닌가봅니다.
Commented by uriel at 2007/04/22 21:31
저런 식의 식견이 있는 사람이 연구소/언론에 있는 나라(미국)와, 당에 있는 나라(중국)라는게 참 의미심장하네요.
Commented by 바보이반 at 2007/04/22 22:12
천하의 모든 인재가 당으로 모이니 그것이 일당독재의 장점! 단점은 이렇게 모인 인재들이 다함께 아스트랄의 경지에 달하면... 망하죠.
Commented by 팰컨 at 2007/04/23 06:13
찾았습니다. Paradox of American Nationalism 입니다. http://www.carnegieendowment.org/pdf/files/Pei_Paradoxes_of_American_Nationalism.pdf

글쓴 사람도 중국사람이 맞군요.
Commented by 팰컨 at 2007/04/23 06:13
Foreign Affairs가 아닌 Foreign Policy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4/23 12:18
미친고양이/ 특히 미국의 단견과 중국의 통찰력이 대비되는지라 더욱 두렵습니다.

joyce/ 사실 어설픈 정책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들곤 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번 것은 꽤 아픈 결과인 것 같습니다.

어부, あさぎり/ 후세인 체포 등 그 뒤에 세부적으론 변한 것도 있지만, 큰 그림은 무척 정확하게 봤다고 생각합니다.

라피에사쥬/ 이제는 중국도 저런 연설에 상당한 정보가 들어있는 걸로 봐서 공개정보 수집에 노력을 기울이면 상당히 건지는 게 있을 듯 합니다.

umberto/ 당시 한국 정부 산하의 국책연구기관들이 어떤 보고서들을 내놓았는지 한번 돌이켜 보시면 재미있으실 듯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한국의 연구기관들은 이구동성으로 "RMA 짱!"이란 이야기만 목청을 높여 외치다가 게릴라전과 내전에 미군이 녹아날 위험, 그리고 그 결과 중동에서 미국이 전략적 수세에 몰리게 될 가능성을 완전히 놓쳐버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들러갑니다/ 중국의 부상은 이미 당면한 현실인지라, 어떻게 살아남을지 생존전략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생각/ 예언자는 자기가 내뱉은 말을 돌아보면 찔려서 죽는다는 말도 있죠.

uriel/ 한국은 과연 어디에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바보이반/ 덩 샤오핑의 주요 업적 중 하나가 (한때는 영리했지만 이젠 퇴물이 된) 당의 노친네들의 발목을 잡고 동반 은퇴하면서, 정기적으로 지도부 교체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설치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건 소련이 망할 때까지 해내지 못했던 일이기도 하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7/04/23 12:23
팰컨/ 지적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 글은 Foreign Policy 2003년 5/6월호에 실렸던 글이군요. 원 연설에 오류가 있었던 건지, 연설이 수록된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 잘못이 있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http://www.foreignpolicy.com/story/cms.php?story_id=21&print=1

팰컨, 행인1/ 미국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우리는 누구인가: 미국의 민족 정체성에 대한 도전』(Who Are We: The Challenges to America's National Identity)이 잘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사뮤엘 헌팅턴의 미국』이란 제목으로 국내 번역되어 있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gforce at 2007/05/01 15:09
이건 대단하군요. 특히 미국의 National Identity의 성립이 공통된 미국적 가치관이나 이상론에 근거한다는 부분은 5년간 생활하면서 계속 느끼던 것이지만... 여전히 전율이 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5/02 08:18
gforce/ 헌팅턴의 latino에 대결해 true(not real) majority인 WASP 문화로 대동단결해야 한다는 글을 보면 더 깨실 겁니다.
Commented by gforce at 2007/05/02 09:07
아, 그거야 익히 들어 알고 있지요. 후(먼산)
Commented by 루시앨 at 2016/09/28 08:41
세부사항은 아마추어라 잘 모르겠지만, 큰 방향은 지금 다시 읽어도 소름끼칠정도로 정확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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