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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라호마 대학 자폭사건(2005년)
버지니아텍 사건으로 주위가 온통 요란한 것 같아 기억나는 사건을 하나 적어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포스팅을 했지만 솔직히 진부한 이야기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gforce씨의 일련의 포스팅 - 1편, 2편, 3편 - 은 물론 예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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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1일 오후 8시경, 오클라호마 대학(OU) 구내 벤치에서 21살 먹은 Joel Henry Hinrichs III라는 이름의 학생 하나가 사제폭발물을 몸에 두른 채 자폭해 사망하였다. 그 외에 다른 피해자는 없었다. (선의의 피해자가 없었기에 이 사건은 그 의의에 비해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만 보면 간단히 어느 미친 녀석의 자살극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가 자폭한 곳에서 150m 떨어진 곳에서는 84,500명이 모여앉아 University of Oklahoma Sooners와 Kansas State Wildcats 간의 풋볼 경기를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참고로 폭발이 일어난 시간은 하프타임 조금 전이었다)


자살의 방법으로 폭사를 선택한 후 폭탄을 어렵게 만들어서 온몸에 두르고 대형 운동경기가 열리는 시간에 운동장 앞까지 가서 자폭해버리는 것이 과연 설득력이 있는 방법일까?

대테러리즘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우연은 생각하기 힘들다. 테러리스트에게 있어 인기있는 운동시합은 절호의 표적이다. 운집한 수만 명의 관중은 거사 때 많은 수급을, 경기 취재를 위해 모여든 언론은 확실한 뉴스거리를 보장해 준다.

따라서 이 자의 행동이 실패한 테러 공격이라고 간주한다면 표적은 명약관화한 것이다.

그가 사용한 폭발물은 TATP(triacetone triperoxide)였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아세톤과 과산화수소 같은 비교적 구하기 쉬운 소재로 제조가능하기 때문에 아마추어 폭탄테러범들이 선호하는 물건 중 하나이다. 2005년 7월 7일과 7월 21일의 런던 지하철 폭탄테러 사건, 이스라엘에서 발생한 여러 폭탄테러 공격이 이 물질을 사용한 바 있다.

그런데 TATP는 불안정한 물질로 작은 제조상의 결함, 취급부주의나 충격 등으로 조기폭발할 수 있다.

인터넷에는 조금만 검색하면 개인적으로 사모을 수 있는 재료들을 갖고 약간의 노력으로 집에서 강력한 사제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제법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다. 터지는 폭탄 제조 정도는 인터넷을 보고 중학생도 따라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다음 단계에 있다.

1) 원하는 시간에 확실히 터지는, 그리고 그 이전에 고장나거나 미리 터지지 않는 신뢰성있는 폭탄을 제조하는 요령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제폭발물의 레시피는 다양한데, 뭐가 정확하고 뭐가 부정확한지 알아내기란 어렵다)
2) 얼마만한 크기의 폭탄을 만들어야 노린 표적에 대해 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가?
3) 그 폭탄은 어떻게 설치해야 되는가? (빌딩이나 다리를 날려버리고자 한다면 폭탄을 아무데서나 터트려서는 곤란하다)
4) 일반적인 검문이나 경비의 눈을 따돌리며 안전하게 표적에 대한 사전답사와 폭탄을 운반하는 요령
등등...

이 모든 것은 사회나 군대에서 폭발물 취급과 관련된 정규교육을 받았거나, 잘나가는 테러조직에 들어가 사부를 모시고 도제로 일하거나, 개인적으로 실험을 거듭해 가면서 경험을 쌓지 않고서는 배우기 쉽지 않다. 잘 모르는 사제폭발물을 어설프게 개인적으로 실험하고 있다간 꼬리가 밟혀 체포되거나 실험 도중에 폭사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결국 기초지식은 인터넷에서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성공적인 폭탄테러범이 되기 위한 노하우는 그리 간단히 배울 수 없는 것이다. (그것마저 쉬웠다면 틀림없이 이 세계는 훨씬 더 위험한 곳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어떤 위험조직에도 가입하지 않고, 누구와 상의하지도 않고, 저혼자 집에서 망상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독고다이'(lonewolf) 형 테러리스트를 치안조직이 사전에 적발 검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어설프게 위험물질을 대량으로 구입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이상 그런 사람을 알아낼 도리가 없다.)

대학에서의 총질로 사람이 여럿 죽었다고 난리지만, 사실 총질 자체는 대학이 일반사회보다 특별히 더 취약할 것은 없다. 그러나 폭탄이나 생화학무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학, 특히 자연대나 공대는 그러한 무시무시한 장난감을 만드는데 필요한 소재와 설비, 기초지식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다. 대학의 보안 강화는 앞으로 노력할 거리가 무궁무진하지만 그 초점을 총기에 맞추는 대책은 위협을 왜곡할 소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참고: 이 사건에 대한 위키페디아 영문판 항목
by sonnet | 2007/04/18 01:22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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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03/12 07:27

... 어이없이 당할 가능성이 크다. 딱히 더 할 말은 없고, 과거 이 주제에 관련해 포스팅했던 다음 글들이 참고가 될 만하다. 사제폭탄 공격에 대해 생각해볼 점 * 오클라호마 대학 자폭사건(2005년) 학교를 폭탄공격으로부터 지키려면 * 학교총격사건에 대한 기술적 분석 * 안전한 학교 구상 요약 자라나는 후배들을 위한 선배들의 한 말씀. (이 책만 있 ... more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4/18 01:41
베슬란 초등학교 사건 범인들의 이동경로를 추적한 러시아어 기사를 훑어본적이 있는데.. 보안강화니, 대테러가 아닌 반테러로의 발전이니 하는 용어로는 도저히 가망이 없을 정도로 국경은 넓고 구멍은 많더군요.

상대적으로 주목은 덜 받고 있지만 코카서스 전선이 당분간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어느정도 실체가 드러나 있는 조직을 상대하는데도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은 참 힘겨운 일입니다.

(그만큼 이번에 대통령이 된 람잔 카디로프와 그의 정부군이 신나게 사람을 죽여댈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의심의 여지가 없겠지만[..])
Commented by 미친고양이 at 2007/04/18 05:15
이미 게임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대책이 상당히 왜곡될 거라는데 도토리 10개를 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어부 at 2007/04/18 10:16
광묘님; 도토리 10개가 아니라 10000개를 걸어도 당장은 충분할 겁니다.
sonnet님; 제가 공돌이고 화학 교육을 받은지라(지금 그게 바로 본업), 조금 머리만 쓰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폭발물에 대해 접근도 쉽고 반응 및 정제도 용이하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TNT 같은 녀석 만들기는 번거롭고 위험한 일이죠.
제가 빈 라덴 및 기타 테러조직이라면 화학 관계 공돌이들을 포섭하려고 애쓸 거라는 데 도토리 100개. Call?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4/18 12:10
자폭태러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었군요.
Commented by BigTrain at 2007/04/18 14:07
... 갑자기 노벨이 위대해보입니다... 규조토에 니트로글리세린 흡수시켜 굳히면 되는 게 아니었군요. 역시 어릴 때 읽은 위인전의 위력은 오래가는군요. --'
Commented by 들러갑니다 at 2007/04/18 14:21
인공지능 유도탄의 오작동(?)이었던 건가요...폭탄이나 총기나 역시나 사람이 통제요인으로 격하되는 사회가 되기 전까지는 방지가 요원한 문제겠군요
p.s : 이번 버지니아 사건 덕분에 미의회의 위안부 문제가 날아가 버렸더군요. 일본의 로비 덕에 유야무야 될 것은 알긴 했지만서도 좀 그렇더군요.
Commented by 하얀까마귀 at 2007/04/18 21:55
테러에 민감한 나라들에서는 경기장측도 그런점을 알고 있기 대문에 신경들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패닉에 의한 압사도 있고 테러와 무관한 훌리건들의 난동(...;)도 있고 숫제 노후한 시설로 인해 사고가 나기도 하지만, 제 기억엔 경기장에서 테러나 총기난동 등의 사건이 난 적은 없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그토록 매력적인(?) 타겟인데도요.

그래도 폭탄 자켓 같은걸 입고 들어가는걸 과연 탐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있습니다만.. -_-
Commented by marlowe at 2007/04/19 14:53
열 사람이 도둑 한 명을 못 잡는다는 속담을 이럴 때 쓰는 건가 봅니다.
이러다 Terror-pedia나 Drug 人 같은 사이트도 생겨나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7/04/19 17:12
라피에사쥬/ 오, 당과 인민은 라피에사쥬 동무가 시험이 끝나는 대로 베슬란 특집 포스팅을 올려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바입니다!

람잔 카디로프는 거의 푸찐 황제가 토비들만 소탕할 수 있다면 너를 왕으로 책봉해 주마... 라는 수준의 인물이라서리 향후의 무용담이 실로 기대가 됩니다.

미친고양이/ 미국에서는 콜럼바인 사건 이래로 학교에서 총질하는 놈들은 요구조건두 없구 협상도 불가능하니 가능한 빨리 쏴버리라는 쪽으로 결론이 난 듯 합니다. 한번 학교 측의 대응에 대해서도 글을 써볼만 할 듯.

어부/ 하하. 반대쪽에 배팅하면 반드시 도토리를 잃을 것 같습니다.
공돌이라면 누구나 잘 알겠지만 소재로서의 폭약을 만드는 것과 제품으로서의 완성도가 있는 폭탄을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니까요. 알 카이다의 요르단 호텔 폭파사건을 보면 생포된 범인 하나는 기폭장치에 문제가 있는 폭탄을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사에 실패했었습니다.
실제로 빈 라덴이나 알 자르카위는 폭탄제조기술자를 중간지휘관들보다 더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폭탄제조기술자를 많이 잡아죽일 수 있다면 아마 테러조직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행인1/ 자폭을 하기로 결심한 상대인데 그게 보통 놈이겠습니까?

BigTrain/ 디젤엔진을 생각해 보세요. 디젤엔진의 원리를 말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실제로 한번 만들어 보라는 숙제를 내주면 눈 튀어나오는 거지요.

들러갑니다/ 저는 저 사건을 폭탄을 어설프게 다루다가 표적에 접근하지 못하고 사고사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보는 편입니다.

하얀까마귀/ 사실 그런 건 조직의 성향이나 bias가 많이 작용하는 편이 아닌가 합니다. 패턴을 보면 테러 조직들은 자기가 선호하는 유형의 표적이 있습니다. 알 카이다 같은 경우는 교통기관을 표적으로 삼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비행기 납치나, 인질극 같은 것을 좋아하는 그룹들도 따로 있구요.

marlowe/ 사실 여러 테러단체들, 알 카이다뿐 아니라 Real IRA나 백인 우월주의 단체들에서 그런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알 카이다는 테러기술을 전수하기 위한 pdf 전자잡지 Muaskar al-Battar(칼의 캠프)를 발행했는데 그 잡지 발간사에서 "Alone, in your home or with a group of your brothers, you too can begin to execute the training program."
Commented by 지나가던이 at 2007/04/19 19:00
음.. 알 카이다가 폭탄 제조 매뉴얼을 만들고 있었군요. 하긴 그 정도 조직이니 이상한 일이 아니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7/04/20 14:50
지나가던이/ Muaskar al-Battar는 단순한 폭탄 제조 매뉴얼은 아니고, 조직건설, 자금전달, 접선법 등 보다 폭넓은 스킬을 가르치는 종합전문지인 모양입니다. (저도 아랍어를 하지 못하는 관계로 직접 읽은 것은 아니고, 언론 보도에 의하면)
Commented by Cato at 2007/04/21 14:27
트랙백 신고합니다. 스켑렙에서의 아다리님이나 바니님의 글들을 읽다가 E.H. Carr의 인과관계에 관한 얘기가 떠올라서 끄적여 보았는데 sonnet님의 입장을 제가 오해한 것은 아닌가 싶어 조금 걱정은 되는데 교시 부탁 드립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4/21 15:33
Cato/ 어허, 이런 교시라니요.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제가 곤란합니다 :-)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른 입장이 있을 수는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다만 그런 입장이 정책적 함의를 갖는 공개 논쟁으로 발전할 경우, 논쟁을 통해 각 입장의 우열은 드러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입장은 따로 간단히 써 보든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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